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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韓총리'와 한·미 FTA

지평선 |2012.02.20 07:07
조회 109 |추천 1
지난해 10월 미국 의회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최종 비준될 때 주미(駐美) 한국 대사관이 낸 보도 참고 자료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상·하원 의원 245명을 488회 면담, 2010년 3월 앨라배마주를 시작으로 31개 주 57개 도시를 돌며 현지 기업·언론·의원들 설득…." 한덕수 주미 대사의 한·미 FTA와 관련한 '활약상'이었다. 대사관의 홍보 자료가 아니더라도, 한 대사가 한·미 FTA를 위해 '발바닥에 땀 나게' 뛰어다녔다는 것은 객관적인 사실이다. 미 의회에서 한·미 FTA 반대의 최전선에 섰던 민주당 마이크 미쇼드 의원도 한·미 FTA 비준 축하 파티장에 나타나 한 대사에게 "나는 한·미 FTA에 반대하는 건 여전하지만, 당신이 정말 열심히 한 건 인정할 수밖에 없다. 축하한다"며 악수를 건넸다.

이명박 대통령이 2009년 초 이전 정권에서 국무총리를 역임한 한덕수씨를 '한·미 FTA용(用)'으로 주미 대사에 발탁했으니, 그는 16일 사의를 표명하기까지 만 3년간 이 대통령의 '미션'을 충실히 완수한 셈이다. 그런데 한 대사가 'FTA용'이라는 꼬리표를 단 것은 주미 대사 때가 처음이 아니다. 2007년 3월 노무현 대통령이 그를 총리로 지명했을 때도 정치권과 언론은 '한·미 FTA 마무리용 개각'이라고 평했다. 총리 지명 당시 한덕수 대사의 직함은 '한·미 FTA 체결지원위원장'이었다.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바통을 넘겨줄 때까지 한·미 FTA 체결을 위해 총리로서 내각을 지휘했던 사람은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다. 한 대표가 총리 시절 한·미 FTA를 적극 옹호한 것은 잘 알려져있다. 지난해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국 외교 전문에 따르면 그는 총리에서 물러난 뒤에도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 대사에게 "내년(2008년) 봄 새 정부가 들어서기를 기다리기보다 이번 가을에 한·미 FTA가 비준되길 희망한다"고 했다. 적어도 2007년까지는 한명숙·한덕수 두 전 총리가 한·미 FTA와 관련해 같은 노선에 서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로부터 5년이 채 지나지 않은 지금, 두 '한(韓) 전 총리'는 180도 반대되는 입장에 서 있다. 한명숙 대표는 지난주 주한 미국 대사관을 통해 미 대통령과 상·하원 의장에게 "한·미 FTA 재협상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폐기를 위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서한을 전달했다. 그리고 한덕수 대사는 주미 대사에 이어 무역협회장으로서 한·미 FTA의 '최종 소방수' 역할을 계속한다. 두 사람이 앞으로 FTA를 놓고 논리 충돌을 벌이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을 것 같다.

한·미 FTA에 대한 찬·반과 한명숙·한덕수씨에 대한 개인적 호(好)·불호(不好)를 떠나, 같은 대통령이 같은 정책 노선 아래 앞뒤로 임명한 내각의 총사령탑이 5년여 만에 이처럼 양극단으로 갈라져 있게 된 것이 정상적인 국가에서 가능한 일일까. 미국 친구들이 그들의 사고방식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한국 정치 상황에 대해 물어올 때 "한국 정치가 원래 좀 역동적(dynamic)"이라는 말로 어물쩍 넘어가곤 했지만, 이번엔 '역동적'이라는 말로는 부족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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