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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한 백혈병환자와 추억여행

조백혈병 |2012.09.26 16:28
조회 43,792 |추천 108

안녕하세요. 파안

 

요즘 너무 자주 오는 게 아닌가 걱정스러운 조부지런

오늘도 등장했어요. 안녕

아마 이번 판쓰고 당분간 판을

못 쓸거 같다는 허걱

 

요즘 날씨가 쌀쌀해서 그런지 자꾸 결석은 내 몸속으로 들어와서

자리를 잡고, 최근에 결석 덕분에 구급차를 또 탔어요.

이번엔 택시를 타고 병원을 향했는데, 분명 출근시간대도 아니고

그런데 왜 그렇게 차가 막히는건지 옆구리 부여잡으며 기사아저씨

빨리가주세요. 그러는데 이미 차들은 오작교들처럼 옹기종기

모여서 나아갈 생각을 않더라구요. 마음 같아선 견우된 마음으로

그 위를 걸어가고 싶었지만 여하튼 택시를 타고는 도저히

방법이 없을 것 같아서 택시에서 내려 구급차를 불렀어요.

 

구급차에 누우면 창 밖을 볼 수는 없지만 멈춘다는 기분은 들지 않아

다행이다. 나는 구원 받았어 불법침거한 결석의 난동을 막을 수 있어

라는 기분으로 바깥은 꽃밭일거라는 착각을 가지게 됨. 여하튼

누워서 가다보니 구급대원께서 신상이랑. 상태를 물어보더라구요.

그래서 병아리! 삐약삐약 참새! 짹짹 강아지! 멍멍 하는 어린이의 마음으로

어디가 아프세요 옆구리요 생년월일은요 90년생 3월 6일 생이요 했음

뭔가 반사적으로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같은 듯) 다르게

 

결석의 통증은 선명해서 그런지 항암으로 느끼는 고통과는 많이

다르더라구요. 항암은 사람을 짓누르는 그래서 액화 시키는 기분인데

조 쥬스, 으엑 생각만해도 맛은 없겠군 냉랭 으 소름돋았어

결석은 선명하게 한 부위만 쥐어짜는 기분이라 정신을 못 차리겠어도

더 아프더라구요. 으악 그래서 아파가지고 진통제가 들기 전에는

걸어다니면서 엄마야! 소리쳤는데 사람들이 다 쳐다보는 것 같아서

작은 소리로 누나야 강변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이라고 한건

우리들만의 비밀. 아 그게 더 부끄러운건가 메롱

 

 

 

타임머신편을 쓰고 얼마 후 마음에 여유가 생겨서 방명록을 보는데

소대장형이 써놓은 방명록이 뙇! 알았어요 알았어 사실 휴대폰에

방명록 올라왔다는 표시 나오면 바로 봄. 나는 집에서 빈둥거리는

하프물범이니까 실망 

 

소대장형과 추억이야기를 많이 했네요. 제가 병을 확진 받았을 때

부대는 유격훈련중이었어요. 아임 럭키가이! 입원 햇을 때 과립구가

0이었으니까 만약 병을 모르고 유격훈련에 갔었다면 어휴 생각만해도

행군하다가 군장무게에 고꾸라지고 그러면 판도 못쓰고 그랬겠지 실망

 

훈련중에 제 소식을 들었던터라 얼마나 놀랬을지, 지금 생각해도

정말 황당했을꺼 같은 생각이 들어요. 타임머신에 소대원들 이야기가

없는건 그렇죠. 휴가복귀하는 마음으로 쓰던거라, 휴가 복귀 할 때

소대원이 생각나는건 빵집에서 빵을 살 때 맛있게 먹어줄 생각할 때뿐 음흉 

 

복귀하기 전까지 우중충, 아 내가 돌아가야 하다니 이건 꿈이야라고 싶은게

정석 아닌가요. 꿈 이야기 하니까 처음 훈련소 갔을 때, 첫날 꾼 꿈이

전역하는 꿈이라서 일어나서 괴로워 했던 기억이 나네요. 전역하고

어머니랑 페밀리 레스토랑에서 고기 먹은 것 까지 생생한 꿈이었는데

일어나니 이등병도 아닌 훈련병이었음 어휴 설마 이것도 꿈이 아니겠지

 

여하튼 나는 소대장형이 좋으니까 언제 밥 한 번 사줘요. 보고 싶다.

그러고 보니까 후임이었던 친구들도 보고 싶네 나왔을 때 이등병이었던

친구가 지금은 전역했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는데 어휴 무섭다 아차

소대장형 그런데 저 살 다시 찜. 살겠다구 마구마구 먹어서 군대에서 뺀 살

다시 요요 왔음 부끄 항암하면서 요요오는 사람 처음봤다고 했음 안녕

 

살들아 안녕 반갑구나는 개풀 다이어트는 긴장을 풀면 적이구나싶음

투병하는 순간에도 긴장은 놓지 말아야 함 통곡 이게 뭐야 무서웤 슬픔

 

 

 

 

 

치료가 끝나니까 옛날 생각을 많이 하게 되더라구요.

먼 시절부터 가까운 시절까지. 제가 살던 곳은 미아6동 달동네였는데

지금은 그 흔적도 찾을 수가 없음. 그 수많은 골목들과 사람들

모두 어디로 갔는지 알수가 없음. 모두 임대아파트에 들어가진 못했을텐데

 

아 임대아파트 하니까. 중학생 때 반대항으로 합창대회했는데

우리 반이 아파트마을이라는 노래를 불렀던 기억. 그 때

어느 친구가 임대아파트 아래엔 임대아파트 있는 임대아파트마을

그러면서 그 친구 킥킥거리던 기억이 있음. 참 철 없던 친구인데 잘 지내니?

 

지금은 돌산으로 가던 계단이라던가 골목은 온데간데 없고

아파트들만 서로 꽁냥꽁냥 모여 있는 모습을 보면 내 추억이

모두 환상은 아니었나. 그러니까 내가 기억조작을 당한거야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함 난.. 난 조사이보그? 당황

 

여하튼 예전 그 풍경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있던 차에

블로그를 확인하려고 들어온 차에 메인에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라는

타이틀로 포스팅한 글이 보이더라구요 그래서 냉큼 클릭

 

사진들을 보니까. 어렸을 때 생각이 많이 낫음. 같이

추억을 찾아서 떠나보는 게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

가는 길을 봣는데 노원역에서 내려서 버스를 타야 한다고

 

몇 번 출구에서 타는지 알려주셔야죠 블로거님ㅠㅠㅠㅠ

노원역까지 갔는데 반대편에 타야 하는 버스는 지나가고

건너가니까 버스 정류장은 보이질 않아 당황했음

위에 철도를 보면서 상계역까지 갔음.

바보같은게 반대편에서 지나가면

앞으로 걸어가서 찾는 게 아니라

바로 역에서 건너 편 출구로 건너갔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 계단 오르기 싫다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들어서자마자 고추말리는 풍경이 떡하니 시장통닭 파는 곳도 있고

아 치킨이란 말보다 통닭이란 말이 더 달라붙는데, 조각나지 않고

나온 닭을 아버지가 뜯어주면 침을 나이아가라 폭포수처럼 흘리면서

옆에서 껄떡이던 그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고추에겐 안 좋은 추억이 있음. 그래요. 친구들과

얼음땡하고, 꼼꼬미하다보면 어두워지고 어두워지면 어두워지는데로

어둠속에 굴러다니는 축구공 쫓아다니고 늦게 들어왔던

방탕한 유년기를 보냈던 저입니다. 그래가지고.

저녁도 못 얻어먹고 쫓겨나봤음. 바깥에서 배회 하는데 동네에

밤인데 돗자리에 말린 고추를 들여놓지도 않고 있더라구요 그래서

고추를 한쪽으로 몰아놓고 거기에 대자로 뻗어 잤었는데.

어휴 매운 맛은 통점이라고 그랬던 거 같은데.

자가다 김치 되는 줄 알았음 폐인 

벽쪽으로 몰아붙여놓은 고추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고춧가루 향이며, 매운기운은 맞아본 적이

없지만 최루탄의 고통이 이런 것일까 라는 생각을 들게 했음

 

혹시나 고추 옆에서 자게 된다면 고추 조심하세요.

자나깨나 고추 조심. 고추는 좋은거기도 하지만 위험하기도 함

아무 생각 없이 너무 가까이 가면 안 좋은 듯.

그런데 뭔가 야한 이야기를 하는 듯한 기분은 뭐지. 착각이겠지부끄

 

 

조금만 더 걸어 들어가니 약국이 보이네요. 그래

이참에 야한 이야기 하는데 하나만 더 하자 파안

 

어렸을 때 약국에서 처방받아서 약을 사먹을 수 있었을 때

그 때 어느 날인가 거기가 너무 아픈거에요 그래요 거기

위에 위에 사진에 많네. 그래요 거기. 그렇다구요. 어험

여하튼 그래가지고 울면서 혼자 약국에 가면서 아저씨한테

다짜고짜 바지를 내리고는 아저씨 여기가 아파요 살려주세요

아저씨는 놀라가지고 연고를 주면서 집에 가서 바르라고 했던

그렇고 그런 훈훈한 이야기(?!) 쓰고 나니 안 야하고 훈훈해서

다행이다. 약사아저씨 아저씨 덕분에 안아파요 그리고 어디서

그렇게 함부로 바지 내리지 않으니까 너무 걱정하지마세요. 안녕

 

여하튼 그 후로 약국에 가면 아저씨가 귀엽다고 비타민 C 캔디

하나씩 더 주고 그랬는데. 문득 그 게 생각나네요 그런데 지금은

비타민 C 주시면 킵해놓을께요. 어디에 계신지 몰라도 보관해주세요.

비타민 C랑 결석이랑 관련있다네요 똥침

 

 

 

이제 본격적으로 오르막길에 올라가볼까 하니까.

이발소가 보이네요. 이발소 옛날에 빨래판같은 걸

의자에 올려놓고 거기에 올라가서 머리를 자르던

그리고 면도칼로 구렛나루와 뒷머리를 정리할 때

간지러워서 으캬하핳 으캬하하핳 거리며 혀를 깨물고

있던 기억이 있어요. 원래 아랫입술을 깨물어야 된다는 것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알 게 됐다죠. 혀가 안 잘려서

다행인거 같아요. 여하튼 그 통증에도 별 효과가 없어서

결국엔 아버지의 꿀밤 어택을 맞고나서야

바로 앉아 있었더랬죠. 크하하하. 아 지금 생각해도

간지러워. 실망 

 

 

 

올라가는 길 사이 사이에 골목들이 많더라구요.

예전엔 저런 골목 다 내 손바닥 안이었는데.

소독기 들고 다니던 아저씨 따라가면 모든 골목을

통달하는 능력이 생겼죠. 음악에만 춤을 추는게 아니라

하얀 연기 속에서도 막춤 추던 그 모습들이 생생하네요.

그러다 길 잃어버려가지고 울고. 여긴 어딘가 나는 누군가.

그러면서 우는 친구를 끌고 집에 가려는데 나도 길 잃어버려서

울고, 울다가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나가면♬ 흥얼거리면서

반나절 만에 아는 길을 찾으면 웃고 그랬는데 에헴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 길을 많이 잃어버린 것 같아요

5살 때로 기억하는데 그 때 동네에서 어떤 여자아이와 놀았는데

왜 그랬는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무작정 걸었던 적이 있어요.

그러다 옷가게 앞에 서가지고 입 벌린 채 옷들 구경했는데

문득 여긴 어디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울면서 파출소 주변을

서성거리던 기억, 츤데레처럼 나 길 잃어버렸습니다. 하지 못하고

앞에서 엉엉어으어엉 난 길 잃어버렸으니 나를 데리고 들어가라

그랬더랬죠ㅋㅋㅋㅋㅋ 그래서 그 날 밤 겨우 집에 들어갔는데.

그 여자아이는 그 날 이후로 그 이전에도

기억에 없어요. 어렸을 때 친구들은 실루엣이라도 기억에 있는데

그 아이는 같이 옷가게를 구경하던 것 밖에 기억이 안나네요.

뭐지. 뭘까. 뭐야. 여하튼 그 친구는 디자이너가 됐을 것 같은 기분.

 

 

 

엄마가 만든 고추장이 생각이 남

그건 사람이 먹을 수 없던 음식이었지.

항아리 째 사라졌던 그 고추장. 어휴

 

어디서 농구공 주워가지고 혼자 농구공 튕기면서

놀다가 항아리 깨고 깨진건 항아리인데

미친 듯이 울었던 기억도 나네요. 뭐 이리 많이 해먹었지

 

그러고 보니까 또 5살 때 동네 형들이 동네에

주차된 택시 앞 유리창에서 미끄럼틀 타는 거 보고

따라했던 기억도 있어요. 그래가지고 주인아저씨에게 걸려서

너 집이 어디야 물어보시길래 네 따라오세요 했던

해맑은 나의 모습이 불연 듯 떠오르네요. 왜 그랬지.

미친 것 같아. 폐인 

 

 

 

 

 

가을이긴 가을인가봐요. 감이 열렸음

옛날에 이 즈음엔 떫은 감 몇 개 따서

텔레비전 위에 올려놨었죠. 그리고

아버지 몰래 한 입 베어물고

집어 던지고. 집어 던져지고 쉿

 

어느 날 부턴가 감을 따먹는 것보다

사서 먹는 게 더 자연스럽고 좋은거라

바뀐 모습에 스스로에게 놀랐어요.

 

저 풍경을 보고 혹시나 낙엽이 있을까해서

책장 사이에 낙엽들 보관하고 싶어져서

북한산 둘레길을 올랐는데 오래 된 낙엽 밖에

없더라구요. 그래서 그냥 내려왔음.

모기한테 쫓기 듯 도망내려온건 우리만의 비밀 부끄

 

 

 

 

 

 

깨진 유리조각을 붙여놓은 담을 너무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 저 담에 왜 유리조각을

그렇게 붙여놓은거지. 담 만들다가 술병 깨져서

재료 보충하려고 섞은건가 싶었는데 쇠창살 대신

그렇게 해놓은거더라구요. 그 떄는 키가 작았으니까.

지금도 작지만.. 뭐.. 여하튼 자기 중심적으로

세상을 바라볼 나이였으니까 왜 넘지도 못할 담을

유리조각까지 하다니 이상하다 싶었네요. 똥침

 

 

 

 

 

걸어다니다가 할아버지 한 분이 앉아 계시길래

괜히 말을 걸어봤어요. 많이들 이사 갔다고. 이제 반도

안사는 것 같다고. 재개발 되기 전에 빈집들이 많았을 때

저도 동네에 갔었는데 그 빨간 철거 글씨가 여기저기

있던 생각을 하니 소름이 돋더라구요. 친구가 살던 집에 가니

친구는 없고 왜 무너진지는 알 수 없지만 집은 무너져 있고

예전처럼 누구야 놀자 소리쳐도 아무도 대답이 없던 풍경

동네 아줌마라도 이노무 자식아 좀 조용히 해라고 했던

그 풍경이 사라졌을 때 그 서글픔이란. 재개발이 예정되어서

그런지 이화마을처럼 벽화를 그려놓긴 했지만 채색되지 않은

벽화들이 많더라구요. 이화마을에 갔을 때 벽화들이 좋았지만

너무 부자연스럽다는 생각을 많이 햇는데. 커플도 많고 우씨

여긴 미완성된 벽화처럼 제가 갔을 때 그 풍경이 공허하더라구요.

부자연스럽진 않았지만 괜시리 마음이 허하고 그랬음. 차라리

빨리 채색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그랬네요.

 

 

 

더 깊은 골목들을 찾아가니까. 달동네 라는 말 보다

무슨 마을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어요.

군대도 그렇고 자신의 물건이 누가 훔쳐갈까봐 관리하고

주의하고 지금도 밖에 물건을 널어놓을 수가 없는데

누가 훔쳐가지 않아도 두려움 때문에 제 기억 속 풍경이나

이 곳에서나 집 밖은 다른 곳이 아니라. 서로 공유하는

하나의 또 다른 집이라는 기분이라는 거. 그래서 편히

빨래를 걸어놓을 수 있다는 생각에 여러 생각을 하게 됐음.

 

그런데 지나가다 보니까 역시 빈집이 많으면

좀도둑도 많나봐요. 지나가는 어느 나이 든 모녀의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사진을 찍으로 다닌다면서

빈 집에 숨어 살면서 도둑질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카메라를 들고 있던 저는 도둑도 아닌데 카메라를

숨기게 되더라구요. 여기까지 숨어들어서

도대체 뭘 훔쳐가겠다고. 나쁜 좀도둑들 쳇

 

 

 

군대에서만 먹을 걸 준다고 종교를 자유자재로 바꿨던 게

아니었음. 어렸을 때에도 친구가 어디가 맛있는 거 준다고 해서

따라갔던 기억이 새록새록 해요. 그 때도 초코파이나

과자같은거 받으면 헤벌레 하면서 좋다고 먹고 그랬는데

친구들과 가위바위보 하면서 몰아주기도 하고 그렇게까지

먹을 것에 집착을 안하게 되고 먹을 거에 종교를

함부로 선택하는 게 아니라고 어머니에게 혼난 덕분에

자연스럽게 안가게 되었지만.

동네의 교회를 보니까 어렸을 때 과자를 들고 우루루

나왔던 친구들과 제가 생각이 나네요. 만족

 

 

 

 

걸어가다 보니까 연탄이 있더라구요. 주변에서 독감에 걸렸다고

고생중이라고 그렇게 콧물 풀면서 이야기 하던 사람이 많았는데

연탄을 보니까 진짜 추워지긴 했구나 싶더라구요. 어느 날부턴가

연탄도 고기를 구워먹는 용도로만 생각하게 된 것 같아서 참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구나 싶었어요. 옛날에 연탄 가스 해결법에

포상금이 엄청 많이 걸려 있던거 같은데 지금도 그런가 똘똘

 

 

어허 이놈아, 어허, 이건 족발이 아니야, 어허 먹을까 말까 고민하지마 어허.

 

 

걷다보니까 어느 포스팅에는 길거리에

주인 잃은 개들이 많다고 그랬는데 모두

많이 수습을 하셨는지 몰라도 한 마리도

못 봣네요. 그러다 만난 강아진데 이 놈이

요망하더라구요 당황

 

 

 

 

 

멀리서 혼자 비닐봉투와 씨름하던 검둥이에게

쫄랑쫄랑 가더니 비닐봉지 강탈. 검둥이는 구석에서

멍하니 쳐다보고 누렁이는 비닐봉지 뜻고 씹고 맛보고 즐기다가

다시 주인에게 가는데 집에 들어가기 전에 자기가

당한 것처럼 끼깅 거리면서 들어가더라구요 놀람

세상 살아가는 법을 아는 강아지...

 

 

 

 

 

 

 

 

구름도 별로 없고 그래서 그런지 여기저기 고추를 많이 말리더라구요.

마구 걸어다니면서 풍경들을 보는데 빈 집이라는 표시와 문 앞에 놓여진

화분도 보니까 기분이 참 묘하고 그랬어요. 문은 들어가라고 있는건데

아무도 들어갈 수 없게 저렇게 막혀 있는 거 보니까. 기분이 그냥저냥

오래 된 빈집인걸 알려주겠다는 듯이 녹슨 자물쇠들도 있고. 여하튼

동네에 할머니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으셔서 이야기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아 어린아이들은 없나보네 했는데 아직 하교 시간이 아니더라구요.

 

옛날에 초등학교 1학년 때 아침 일찍 8시에 나가면

동네 슈퍼 앞에 있는 오락기에서 한 판만 딱 한 판만 하고

학교 가야지 했는데 이상하게 오락을 하고 나면 10시더라구요

그래서 맨날 지각했던 기억이 있는데. 조게임의 고수였음 똥침

요즘엔 많이 없어졌더라구요

학교 앞 오락기에서 트럭이 급 후진되가지고 친구들 몇 명이

먼저 가버렸던 이후였던 것 같아요. 그 친구의 누나를 인터뷰하던

기자들이 왜 그렇게 싫고 화가 났던지. 그리고 뒤에서 브이자

그리며 카메라에 얼굴 들이대던 또래 친구들도.

 

 

동네에서 빠져 나오니까 남매가 올라가더라구요.

저 모습을 보니까 동생과 계단에 돗자리 깔아놓고

구르면서 해바라기 했던 모습도 생각나고 학교가는데

막내가 따라오겠다고 땡깡부리며 끝까지 따라와

우유도 주고 선생님이 과자도 주고 해서 달래봐도

부모님이 겨우 끌고 가서야 통곡하며 돌아갔던 기억도 나고

혼자 후레쉬맨 놀이하다가 넘어져서 머리 깨졌는데

동생들이 걱정할까봐 덜 울었던(?!) 기억도 나네요.

그 땐 참 나도 좋은 오빠였는데

 

지금은 맨날 시키기만 하다니. 실망

미안하다. 동생들아. 그렇지만 난 또 시키겠지...안녕

 

 

별 기대를 안하고 갔었는데, 어렸을 때 풍경과

많이 오버랩 되어서 좋았어요. 추억들을 생각하면서

나쁜 생각이 별로 안 드는 것 보니까 참 미화가 많이

되었겠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고요. 분명 안 좋았던

일도 있었을텐데 그건 별로 기억이 나지 않는거 보니까

있는 그대로 무언가를 가지고 있기란 어려운 것 같아요

사람에 대한 기억도 그렇죠. 누군가를 떠올리면

그 사람의 본 모습보다 안 좋았던 모습이라던가

좋았던 모습 특정 부분만 남게 되는 것 같더라구요.

결국 전부가 남는 사람은 얼마 없다는거겠죠.

그래도 같이 투병했던 분들은 모두 좋았던 사람들이니까

그런 걱정할 필요 없긴 하지만 더 많은 시간을 교류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이런 이야기처럼

아직 안한 이야기들도 많은데. 어렸을 때 그런 암은

드라마에서나 보는 병이라고 생각했는데 먼 이야기가 아니더라구요

톡커님들도 건강검진 꼭 받으셨으면 좋겠어요. 말썽쟁이였던

건강하게 뛰어 다니던 아이도 커서 병에 걸리잖아요.

거기다 가을이고 외롭고 배고픈 계절인데 건강에 대한 걱정을

덜어도 참 좋은 계절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네이트 판을 쓰면서 좋은게 서로 소통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자신의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주는 게 아니라 주고 받는다는 것

저는 모든 댓글들을 다 읽어봐요. 같이 이야기해요. 우리.

좋잖아요. 서로 이야기한다는거. 그리고 건강검진도 좀.... 콜

그 동안 판 쓰면서 건강검진으로 암 초기에 발견해서 잘

치료 하고 계시다는 분도 계셨어요. 모두 건강하게 살아가면서

지금도 좋은 추억으로 만들자구요.

 

 

 

잡아먹지않아요. 그러니까 건강검진을 추천과 공감으로 약속해줘요 윙크

 

추천수108
반대수17
베플직딩남|2012.09.26 18:46
오늘도 내가 너같은 사람땜에 하루를 버틴다...
베플추성훈|2012.09.27 05:49
꼭오래오래살아주십쇼 당신은축복받은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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