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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임금체불투쟁기 2.

아녹타민 |2013.02.20 19:33
조회 612 |추천 0

이해를 돕기 위해 내 소개를 간단히라도 해야 할 것 같다.

 

 

당시 나는 집은 지방이었고, 수원에 있는 대학교에 재학중이었으며.. 

서울시 방배동에 있는 기숙사에 살고 있었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

따라서 나의 생활권? 은 방배동이 되었으며.. 학교 마치면 방배동으로 돌아와 아르바이트를 하곤 했다.

생활비와 등록금을 동시에 벌어야 했으므로 나의 아르바이트 라이프는 빡세기 그지없었다. ㅠ

 

대학3학년에 올라가던 2007년, 나는 9시 전공수업의 압박으로 도저히 통학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그해 3월에는 학교근처 고시원에 들어가기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1~2월 겨울방학동안.. 파트타임잡 대신 빡세게 돈벌 수 있는 풀타임잡을 찾던 도중,

 

TM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아웃바운드 텔레마케팅..

왜 무작위로 전화와서 핸드폰 바꾸라고 영업하는 그거..ㅠ

그걸 내가 했다..ㅠ 평생 들을 욕 그때 다 먹었고 신경줄이 끊어지거나 혹은 철심줄처럼 튼튼해지는 장점이 있는 알바였다.ㅋ

 

왜 했느냐면..

기숙사 근처라 통근시간이 절약되었고

내가 원하던대로 2개월 단기가 가능했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종일 일할 수 있었다=돈을 많이 벌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2개월 노는 게 나았었겠지만 말이다.

 

당시.. 사장 밑에 팀장이 셋, 각 팀장 밑에 알바생이 약 10명 정도.

방배역 근처의 허름한 사무실이었다.

독서실처럼 칸막이된 책상에 유선전화 한 대와 마이크달린 헤드셋만 있었다.

 

 

팀장은 우리에게 데이터베이스,라고 해서 휴대폰번호가 빼곡히 적힌 종이를 주었고..

우리는 그저 전화만 하면 되는 거였다.

 

 

알바생들은 나처럼 단기로 할 아르바이트를 찾던..수능이 끝난 고3들이 많았다. 나머지는 거의 대학생.

서로 동네도 다르고, 학교도 다르고, 전공도 달라 접점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었다.

이 이야기를 굳이 왜 하냐면..

결과적으로, 알바생들 사이에 접점이 없었던 이 상황이 독이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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