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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무서운 이야기 13

그라시아스 |2013.04.10 21:27
조회 1,502 |추천 6

출처 - 웃대 (못된야옹)님 -

 

 

 

 

 

 

 

 

 

 

 

 

 

 

 

 

 

 

 

4부.접촉













속이 메스꺼울 정도의 퀴퀴한냄새가 공기마저 오염시킨듯한 어두컴컴한 지하실.
그 중앙엔 몇십년은 되보이는 낡아빠진 테이블있었고, 그곳엔 사람으로 보이는 두개의 인영이 서로 마주보고 앉아있었다. 바닥은 피를 뒤집어쓴것인지 정체모를 붉은 액체가 먼지덩어리들과 짖이겨져 섬뜩함을 자아냈고
그 주위로 널부러져있는 도구들과 알수없는 물건들은 마치 자신들만의 영역을 과시하듯 제 모습을 뽐내고 있었다. 불빛이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하는 생명력이 다한걸로 보이는 거미줄에 엉켜있는 샹들리에는 두개의 인영이
사람이라는걸 여지없이 반증해주었고, 그 모습은 마치 공포영화에서 흔히 볼수있는 흉가집을 연상케해 오감을 곤두세우기에 충분했다. 거기다 청각을 잃은게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정도의 고요함은 당장 무언가가
튀어나와도 이상할게 없어보였기에 그 공포감은 더해져만갔다.
미동도 하지않는 두인영이 마치 저대로 죽은건 아닐까 하는 의문마저 들던 찰나 스무살도 못넘긴듯한 앳된 목소리가 고요함을 깨고 청각을 자극했다.


"그래서 수정하실게 뭔데요? 정황상 더이상 손댈것도 없는것 같은데.."

이상호의 물음에 박선우는 손가락으로 이마를 짚더니 작게나마 신음을 흘리며 입을열었다.

"흐음.. 어떡할까.."

"매번 해오던건데 뭐가 그리 걱정이랍니까?.. 어차피 타살이란 증거도 없잖아요? 시체도 없고..더구나 여러가지 조작하는데 있어, 수월한 형사란 신분까지 갖춰놓고선.."

"그게 그리 간단한문제가 아닌것같아 이러는거 아니냐"

"에~ 어차피 부검결과니 뭐니도 다 거짓말이고.. 게다가 그 '고삐리'한테 다 덮어씌우려고 '그모습'으로 죽인거 아닙니까?"

"......"

말이 끝남과 동시에 실수를 깨달은 이상호는, 심장마저 얼어붙는듯한 박선우의 차가운 눈빛을 느끼며 헛기침을 한번 하더니 조심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흠..흠.... 그나저나 선배 연기력 정말 끝내줬다구요, 그때 식장에서 나까지 속을뻔했다니까요? 키키킥.. 그러고보니 그런 확실한 임펙트까지 심어줘놓고 뭐가 걱정이예요. 키킥"

화제를 돌린 덕분인지 박선우는 차가운 시선을 거두며 언제 그랬냐는듯 입을 열었다.

"그래도 역시 불씨의 싹은 남겨두지 않는게 좋겠지"

"제거하라는 말인가요? 그러게 처음부터 그냥 하던데로 했음 좋았잖아요. 괜히 '외형'은 바꾸셔가지고.. 할 필요도 없는 장례식까지 하질않나, 세간엔 말만 많아져 버렸고..
따지고보면 다 선배가 자초한겁니다?"

"그놈의 존재를 안이상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리고 이왕 벌어진일.. 조심해서 나쁠건 없으니까.. "

"지깟 놈이 뭘 어쩌겠어요? 선배의 정체를 아는것도 아니고 설사 진실을 알게된들 누가 믿어주기나 할까요? 정신병원에 갇히지않으면 다행일껄요 킥킥"

"그렇게 쉽게 판단할일이 아냐. 어쩌면 이번엔 '그분'에게 말씀드려야 할지도 모르겠군.."

"호~오? 그 고삐리 안에있는게 그렇게 대단한가요? 그분에게 말씀드릴 만큼?? 이거 벌써부터 몸이 근질근질한데요~ 아차차.. 그리고보니 이번이 몇번째였더라..? 열아홉번째던가.."

"스물아홉명째다. 이제 마흔네명까지 열다섯명 남은것이지"

"아... 아직도 꽤남았네.. 아무튼 그럼 어쩌실건데요? 당장 그분에게 말씀드리기라도 하게요?"

"일단 당분간은 좀 지켜보도록 하지.. 괜한 수고를 덜수도 있는거니까"

"쳇.. 그런건 전화로 해도 될이야기었잖습니까. 이곳까지 불러내시길래 무슨 큰일이라도 난줄알았더니만..

"사랑하는 후배 보고싶었어 그랬다 크큭"

이상호는 퉁명스럽게 투덜거렸고 그게 재밌는지 선우는 방금전까지의 진중함은 어디갔는지 입꼬리를 올리며 너스레를 떨었다.

"선배 완전 이중인격인거 알아요? 키킥, 무튼 얘기 다하셨으면 전 먼저 갑니다? 앉아만 있었더니 근질근질한게 몸좀 풀어야한다 아닙니까"

이상호의 말에 마치 증명이라도 하듯 박선우는 다시 본연의 진중한 모습으로 돌아간채 나지막히 입을 열었다.

"사실 네게 부탁할일이 하나있더군"

이상호는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말고 도로 앉으며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물었다.

"그게 뭡니까?"

"화근이 될 싹을 하나 제거해줘야겠다."

"일단은 지켜보는걸로 하자면서요?"

"아니, 일전에 말했었던 놈 말이다"

"아... 그 '고삐리랑 같은반인 놈' 말하시는겁니까? 그땐 분명히 '그분'이 제거하라고 하셨는데도 불구하고 별볼일 없는놈이라고 관심둘거 없다며 그냥 놔두라고 하셨잖습니까?"

"그랬지. 그런데 역시 '그분'의 생각이 맞더군.. 지금 제거안해두면 언젠간 분명 방해가 될 놈이다."

"하여튼 선배 변덕은 알다가도 모르겠다니깐요 킥킥.. 그나저나 너무한거 아닙니까? 선배는 가녀린 여자들만 후리고다니면서 난 왜 맨날 사내놈이냐구요 흐흑"

"억울하면 그분께 직접 말해보든가 큭큭"

"헤에~ 저보고 죽으란 소린가요? 됐네요 됐어~ 자 그럼 더이상 하실말씀 없는거죠? 이번엔 진짜 갑니다?"

선우는 아무말없이 고개만 끄떡이고는 생각에 잠겼고 이상호는 늘상 있는일인듯 개의치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곳을 빠져나갔다.

어느새 다시 찾아온 고요함을 안주삼아 홀로 생각에 잠겨있던 그는 주머니를 뒤적 거려 반짝이는 어떠한 물건를 꺼내보이고는 마치 넋이 나간듯 조용히 응시 하고있었고 이내 나지막히 입을 열었다.


"이기준이라.."


병원에서 자신의 멱살을 잡으며 쏘아보던 그 눈빛을 떠올리는듯, 작게 읊조린 그는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채, 들고있던 반짝이는 무언가를 테이블위에 올려놓았다.

그것은 둥근거울과 흡사했는데, 눈이 부실정도의 반짝임 때문인지 한번 보기시작하면 그 영롱한 빛에 매료되어 빨려들어갈것만 같은.. 마치 이 세상의 물건이아닌듯 강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영롱한 빛의 틈 사이로 희미하게 비치고 있는건.. 다름아닌.. 박지민이었다.






















왜 진작 생각하지 못했을까.... 지금까지 단순히 그장소에 지민과 나 단둘뿐이었다고 확정지은 내가 바보같아 웃음이 나올지경이었다.
어느정도 진전이 있어서였을까? 오늘 하루종일 아무것도 못먹었다는 생각과 동시에 허기가 졌던 난 집앞 편의점에서 사가지고 들어온 샌드위치를 한입 베어물고 있었다.

'쩝쩝 쩝쩝'

얼마나 배가고팠던건지 사가지고 왔던 샌드위치 4개를 순식간에 개걸스럽게 먹어치우고는 같이샀던 방그레바나나우유까지 원샷을 하고난 후에야 생각에 집중할수 있었다.

꿈이라 여겼던 곳에서 난 골목을 걸어가고있는 지민에게 다가가 팔을낚아 채었고 어디에도 우리 둘 외에 아무도 있지않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그렇겠지만, 여기선 내가 나를 보고있었다는게 포인트. 난 제 3자의 입장에서 그 광경을 보고있던것이고 그렇다면 제 3자는 단연코 나이트메어다.
여기까지 도달했다면 그당시 나이트메어의 기억에 접촉하는일은 어려울게 없어보였다. 내혼은 자고있었기에 기억할수없는게 당연하지만 내몸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을터, 덕분에 지금 내 머릿속엔
그날밤의 기억이 생생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지민을 죽인 그자식의 뒷모습까지도..

지민을 누군가 죽였다는 사실은 명확해 졌지만, 그게 누군지 왜 무슨이유로 그러했는지는 지금부터 내가 풀어야할 숙제겠지...
난 자리에서 일어나 아무렇게나 내팽게쳐저 있던 가방에서 노트한권과 볼펜하나를 꺼내어 이해가 안되는부분을 적어보기로 했다. 요샌 통 정신이없어 수업을 못들은 탓에 오랜만에 잡아보는 볼펜의 감각이 낮설게만 느껴졌다.

'첫째로 별로 늦은시간이 아니었는데도 불이다 꺼져있는 집들과 그렇게 외진곳이 아니었는데도 인적이 너무 없었다는점'
'둘째 지민은 평소와 달리 그골목을 택했다는점'
'셋째 죽는 그 순간까지도 도망가기는 커녕 저항조차 하지 않았다는점'

크게 나눠보면 이 세가지가 가장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겠지.. 그래.. 불꺼진 집들이나 인적이 드문건 그럴수도 있다. 특별히 생각해서 그렇지 따지고 보면 이상한 일도 아니다. 다들 일찍 잠이들었거나 여행을 갔다거나
이사를갔다거나.. 여러가지 이유는 많으니까.. 두번째 역시 막연하게 그냥 골목을 택했을수도있다. 아니면 지름길이었을수도 있겠지.. 그리나 세번째.. 도망치지않고 가만히 서있었다는건 그놈과 안면이있는
즉, 아는사람이었다는건데.. 내가아는 지민은 저런 남자를 알리가 없다.. 처음엔 강준석인가도 했지만 분위기가 너무달랐고 낮설었기에 금새 고개를 저었다. 게다가 그놈이 팔로감싸안는데도 지민은 저항은커녕 같이끌어안았다.
그말은 그냥 알고지냈다기보단 친분이 두터웠음을 의미했고.. 내가 알지못하는 지민의 과거가 더 존재했는건지도 모를일이었다.

"설마 양다리..?"

말도안되는 상상이 머릿속을 헤짚자 난 서둘러 고개를 저으며 지워버렸다. 지민의 과거사를 짐작해 보건대 그럴일은 매우 희박했다. 실제로 그녀는 평범한 친구조차 없는편에 속했고, 강준석이 그녀의 어머니가 무당이란걸
알아챘다는건 이미 학교내에 그런 소문이 왠만큼 퍼져있었는지도 모르는것, 그렇기에 신빙성은 전혀 없는 짐작이었던 셈이다. 고정관념은 쉽게 변하는것이 아니기에..
일방적으로 지민을 따라다니는 스토커였다고 하기에도 앞뒤가 맞지않았고..우발적인 범행이라 한다쳐도 그놈의 익숙한 모습은 확실히 계획된 행동임이 분명했다. 쉽게 답을 찾을거란 생각은 하지않았지만
나이트메어의 기억을 얻게되면서 실마리가 어느정도 풀리자 금방 진실에 도달할수 있을것이라 여겼었는데.. 그건 역시 나만의 착각이었나보다.
다시 맥이 살짝 빠지려는 찰나 순간적으로 뇌리에 꽃히는 의문이 하나 더 생겨났고, 그 의문은 나이트메어와의 접촉을 시도하게 만들었다.
그래 애초에 나이트메어의 기억을 얻기전부터 들었던 의문이 하나있었지. 내가 그장소에 있었다는것 말이다. 그땐 내가 지민을 죽였을수도 있다는 결론을 유추해냈던 의문이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민의 죽음을 목격한건 단순히 우연이었을까? 아님 정말 난 지민을 죽이려 그곳에 간것이지만 그놈이 선수를 친것이였을까.. 그도아니면 설마.. 나와 그놈은... 공범자....?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무한적으로 퍼져나가던것도 잠시 익숙한 뇌리를 울리는 음성에 난 다시 현실로 돌아올수 있었다.

"또 뭐냐, 남의 영역까지 잘도 침범하더니만 아직도 뭔가 부족한가?"

"침범 좋아하네 어차피 다 내영역이고만 절이싫으면 중이 떠날수밖에.. 안그래?"

나이트메어의 목소리에 신경질적으로 비아냥된 나는 스스로도 이런 거침없는 내모습에 새삼 놀라고 있었다. 지민이 일로 신경이 많이 날카로워진것이 제대로 한몫한것이겠지..
그러나 이런 내모습에 나이트메어는 오히려 흡족해 하는듯, 기분나쁜 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네놈은 날이갈수록 날 놀라게 만드는 재주가 있군, 큭큭 말버릇도 점점 나빠지고 말야 크크큭"

"알꺼없잖아. 용건만 묻지. 넌 그날밤 그곳에 왜 간거지? 말돌릴 생각은 하지 않는게 좋아. 이미 알고있듯, 내몸만이 어렴풋이 느끼던 이전과 달리 이젠 네 기억 자체를 엿볼수가 있으니까 말야"

".........."

"그날밤 지민은 내가 잠든걸 확인후 집을나섰어. 근데 네놈은 내혼이 잠들자마자 바로 내몸을 장악하고는 지민의 뒤를 쫓았지. 평소완 다르게 매우 서두르면서 말야"

"........."

"그렇다는건 이유는 하나뿐이지. 무슨 꿍꿍이가 있었다는것. 그렇다는건.. 직접적으로 죽이지만 않았을뿐 네놈도 그놈과 한패인거냐?"

"어떤 대답을 원하지?"

"뭐? 어떤대답? 지금 장난하는거냐? 그래, 따저보면 이 모든게 다 네놈 계획이란 생각도 드는군. 지민이 죽어버리자 마치 나한테 알리려는듯 악몽에 의해 진실에 집착하게 만들었고..
내가 진실에 조금씩 근접해가자 기다렸다는듯 네놈의 기억을 일부러 내게흘려보냈지 그것도 정확히 그날밤의 기억을 말이야. 내가 어떤인간이든 그런건 중요치 않아. 한낱 니가 말하는 하찮은 인간일뿐.
근데 그런인간이 조금 특별하다고해도 신이라불리는 네놈 기억을 가져올수 있다는게 말이되나? 네놈이 일부러 흘려보내지 않고는 말이야.
가기다.. 니가 내몸에 들어온뒤 지민이 날 갑자기 좋아했던것도 그래서 사귀게된것도 네놈에 의해 조작된것이라면.. 얼추 앞뒤가 맞아떨어지지 않나?"

"큭큭.. 재밌군.. 그래 네말이 맞다고 치자, 그럼 내가 얻는건 뭐지?"

"그건.... "

"네가 그렇게까지 생각한다면 이제 진실을 알게되도 딱히 나쁠것 같진않군"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혀서 우물쭈물데던 난 이어지는 나이트메어의 '진실' 이라는말에 마음을 가다듬고 서둘러 입을열었다.

"역시 내예상이 맞은거로군..?"

"어느정도는.. 그렇다고 할수있다."

"이런 개자식이!! "

내 위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이트메어는 침착하게 말을 이어갔다. 사실 하찮은 인간따위의 위협이 신이란 존재에게 씨알도 먹히지 않는건 어찌보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말이다.

"각오는 되어있겠지?"

"각오? 네놈이 말하는 각오란게 어떤의미인진 모르겠다만, 억울하게 죽은 지민의 한을 풀기위해서라면 난 더이상 못할게 없다고!!"

"큭큭..좋아. 그럼 알려주지"


'스르르륵'


그말을 끝으로 나이트메어의 목소리는 끊겼고, 그순간 내 몸주위로 거무튀튀한 기운이 일렁이는가 싶더니, 이내 처음만났던 그때처럼 주변을 점점 장악해 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장악해가던 검은 기운은
어느새 한치의 빛도 들지않는 독립적인 암흑이란 공간을 만들어 냈고, 난 그 익숙한 공간에 몸을 맡긴채 눈을감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난 잠에서 깨어나듯 서서히 눈을 떳고, 이제는 왠만큼 익숙해졌는지 별다른 불편함을 느끼진 못한채 어둠을 바라보았다.
그순간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난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고, 그곳엔..
나와 닮은.. 아니,
또다른 내가 서있었다.

"너는....!?"

"스스로 원해서 방문하는건 이번이 처음이겠군?!"

"뭐..?"

"큭큭.. 이곳에 온걸 환영하마. 이기준"

그랬다. 내 모습을 하고있던 이녀석은...

바로 '나이트메어'였다.


















주간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태양도 어느새 퇴근하였는지 인수인계를 마친 새하얀 달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들은 늘상 있는일인듯 미약한 달빛에 의존해 서성이고 있었고, 그중에 강준석도 예외는 아니었다. 기준이 자리를 떠난 골목길.. 지독한 줄담배로 시간을 죽이고 있던 준석은 어느새 어두워진 하늘을 뒤로한채
거리를 걷고 있었다.
평소같았으면 동혁과 민기를 불러내 동네 게임방에서 진치고 있을 그였지만, 오늘은 왠일인지 떨떠름한 기분에 피곤까지 한바탕 몰려와 지친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하고 있는중이었다.
집으로 가기위해선 늘상 지나치던 학교의 모습이었으나 오늘만큼은 그 모습을 보고싶지 않은듯, 눈을 질끈 감고 애써 고갤 돌리며 지나쳐갔다. 횡단보도를 건너 길 모퉁이를 돌아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집앞까지 당도했다는 사실을 알게된것도 잠시.. 따뜻하게 반겨줄 식구는 커녕.. 아무도 없는 텅빈 차가운 집에 들어가기 싫었는지 이내 발걸음을 멈춘 그는 깊은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아무래도 이런 기분으론 집에 도저히 들어갈 엄두가 나지않았는지.. 한동안 서있던 그는 뒤돌아 어딘가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그래 그냥 겜방가서 기분이나 좀 풀고 가자"

그렇게 줄담배를 펴놓고도 습관탓인지 은근슬쩍 주머니에서 담배각을 꺼내 한개피를 입에 물은 그는 불을붙이기 위해 라이터를 찾았으나 아무리 뒤져봐도 라이터는 보이지가 않았다.

"아 신발 아까 골목에 흘렸는갑네.."

그때였다.

"불 필요해?"

인기척이 느껴지긴커녕 분명 주위엔 아무도 없다는걸 확인했는데..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마치 그 사실을 부정이라도 하듯 존재유무를 여지없이 깨닫게 해주었다. 자신의 또래로 느껴지는 앳된 목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고개를 돌리자 그곳엔
이십대로 보이는 한 남자가 서있었고, 그 남자는 얼듯봐도 부실해보이는 싸구려 일회용라이터를 손에들고 재차 흔들어데며 물었다.

"불 필요하냐고"

"아.. 예..? ....예.."

"받아"

당황스러운 상황에 말을 얼버무리며 얼떨결에 대답한 준석에게 그남자는 들고있던 라이터를 가볍게 단졌다.

"고맙습니다."

라이터를 건네받은 준석은 고맙다고 인사한뒤 물고있던 담배에 불을 붙이는 찰나,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사내의 작은 속삭임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고맙긴"




'퍼억'




갑자기 날아온 사내의 발길질에 무방비상태로 날아가 쳐박힌 준석은 몸을 반쯤 일으켜 세우며 사내를 매섭게 쏘아보았다.

"그래그래 그렇게 일어나야 재미있다구 얼른 일어나~"

사내의 얼굴은 마치 재미있는 장난감을 갖고놀기라도 하는듯 싱글벙글 했고 입가엔 웃음꽃마저 피어있었다. 그런 사내를 보자 참을수 없었던 준석은 몸을일으켜 세우자마자 이내 자리를 박차며 달려들었고
그런 준석을 보고도 사내는 아무런 미동도 하지않은채 가소롭다는듯 콧방귀까지 끼었다.

"이 개자식아!!"

사납게 소리치며 달려들었던것에 비해 준석의 주먹은 너무나 맥없이 사내의 손에 잡혀있었고 그틈을 놓칠새라 사내는 쥐고있던 손에 힘을주었다.

"크아아아아아아....."

'이게 무슨 인간의 악력'이란 말인가 잡혀있던 주먹의 뼈마디마디가 으스러지는 통증에 준석은 자지러지게 비명을질렀으나, 사내는 아랑곳하지않고 한쪽다리를 걸어 가뿐히 넘어뜨리곤 이내 발로 준석의 머리를 짓눌았다.

"커..헉.."

"보통 이런경우 누구냐고 먼저 묻는게 예의아니냐? 키킥.. 뭘 주제도 모르고 달려들어 병신같이 키키킥"

"크으으윽...이..개..새.."

"이 벌레같은 새끼야 사람이 말하고 있는데 끊는거 아니야!"

준석이 신음하며 힘들게 뭐라고 내뱉으려하자 사내는 시끄럽다는듯 그의 머리를 지그시 누르며 체중을 싫은채 나머지 한쪽 발로 복부를 걷어찼고 갈비뼈가 몇개 나간듯 준석은 고통에 몸부림쳤다.

"누구냐고 물어볼줄 알고 조카 멋있게 '나? 저.승.사.자 킥킥킥' 라고 대사까지 준비해왔더만.. 이 븅신새끼가 사람을 뭘로 보는거야!"

사내는 생각할수록 열이 받는지 신경질적으로 몇번더 준석의 배를 걷어찼고, 미동도없이 가만히있는게 재미없었는지 이내 멈추고는 준석의 머리에서 발을 떼었다.
그리고 쓰러져있는 준석을 발로 툭툭 건드리며 중얼거렸다.

"너 근데 증말 반에서 짱 맞냐..? 뭐이렇게 비리비리하냐.. 얼마나 맞았다고 뻗어가지곤.. 이건 뭐 요즘애들 같지않게 패는맛도 없고... 이런거한테 처발릴 정도면 이기준인가뭔가 그 고삐리새끼도 안봐도 비디오구만..
'그분'도 그렇고 선배도그렇고 뭐 이런 별것도 아닌것들한테 쫄아서는... 쯧쯧"

사내는 혀를차며 널부러져 있는 준석의 주머니에서 담배를빼내 하나 입에물고는 자신의 자켓 안주머니에서 고급스러운 라이터를 꺼내 불을붙이고는 이내 다시 중얼거렸다.

"캬아.. 머리에 피도안마른 어린놈의 새끼가 담배는"

뽀얀 담배연기를 뿜으며 서있던 사내는 이내 조금씩 꿈틀대는 준석을 보고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렇게 뒈져버리면 너무 재미없으니, 특별히 넓은 마음으로 기회를 한번줄게. 이몸이 담배 다피기전까지 도망가봐~ 혹시아냐? 살수있을지 킥킥킥.. 단, 다시 잡히면 게임오버 OK?"

도망갈수있는 기회는 지금밖에 없다. 준석은 이미 오래전에 정신을 차리고 기회만 엿보고있던 터라 지금 사내의말이 마치 그 어떤 초콜릿보다도 달콤하게 느껴졌다.
비굴하고 비참한건 잠깐이다. 어차피 빵셔틀 이기준한테도 패했는데 지금 그런게 뭐가 대수란말인가 자존심이 밥먹여주진 않으니까, 지금은 이놈에게서 어떻게든 도망가는것만이 최선이다.
나름 강해졌다고 자부했던 나였지만 이놈의 압도적인 힘은 이미 인간의 수준이라고 할수 없음을 몸으로 느낀터였다. 그렇기에 더더욱 도망쳐야만 했다. 게다가 이런곳에서 이렇게 허망하게 죽어버리면
지민을 무슨 낯으로 본단말인가? 죽어서까지 쓰레기로 남고싶진 않았다. 살아야한다 도망쳐야한다.

"꼬맹아 얼른 안도망가냐? 나 담배 거의 다펴가는데?? 킥킥.. 아.. 아까 처맞은거 때문에 못움직이려나 키키킥"

이어지는 사내의 말에 준석은 욱신거리는 고통에 이를 악물고 필사적으로 몸을 일으켜세웠고, 이내 달리기 시작했다.
뒤도안보고 전력을 다해 뛰어가는 준석을 귀여운듯이 바라보던 사내는 다 타들어간 담배꽁초를 바닥메 떨어뜨리며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새끼.. 쳐뛰는 꼬라지하곤 키키킥 자~그럼 스탓뜨~!!"

















"헉...헉.."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고통에 준석은 얼굴을 찌푸렸다.
이럴줄 알았음 담배좀 끊는건데.. 란 생각도 잠시, 뒤에서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그놈을 생각하면 잠시도 멈출수 없었기에.. 이정도 고통쯤은 참아내야만 했다.

"허억...허억....."

누가보면 당장 숨이 넘어가 쓰러져도 이상할게 없을법한 거친 신음소리를 내며, 준석은 필사적으로 최대한 인적이 많은곳을 찾고있었다.
십년넘게 살고있는 동네라 이곳지리는 손바닥에 꿰고있는 그였지만.. 상황이 상황이었던지라 혼란스러운 탓인지 달리고 달려도 여기가 어딘지조차 감이오질않았다.
계속 비슷비슷한같 골목만 멤도는것이, 필시 귀신의 홀린것만 같은 기분이었고, 고통은 점점 참기힘든 지경에 이르러 상황은 점점 좋지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고있었다.

"크윽..더는..더는 .."

한계점에 다다른듯.. 준석은 갑자기 멈춰섰고, 다리에 힘이 풀린탓인지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관성의 힘을 이기지 못한채 중심을 잃어 앞으로 고꾸라졌다.
팔을 부르르 떨며 안간힘을 다해 일어나려던 그는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직감적으로 그놈이라는걸 알수있었다.





"게임오버네?"

"........."

"으~구 병신새끼 기껏 살려줘도 굼벵이같이 느려터져갔고.. 요즘얘들은 근성이 없다니까~?"


비아냥거리는 사내의 말에 준석은 눈을 부릅뜨고 쏘아보았다.


"어~라? 그 눈빛은 뭐냐? 이런 버러지같은게 기껏 기회까지 줬구만, 그태도는 뭔데 이 벌레같은새끼야"

사내는 기분이 상했는지 성큼성큼 걸어와 준석의 얼굴을 발로 후려 갈기더니 나뒹구는 그의 머리채를 잡아 벽에 내리찍고 또 찍었다.


'커헉.........'


'빠각'


'빠각'




수박깨지는듯한 소리가 두어번 들렸고 준석은 머리에 피범벅을 한채 힘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벌레만도 못한 새끼가.. 이걸 확 눈깔을 뽑아버릴라.. 아 기분 더럽네"


사내는 아직도 분이 덜풀렸는듯 옷에 묻은 준석의 피를 닦아내며 신경질적으로 중얼데고 있었다.


아직 지민이에게 사죄도 못했는데.. 결국 이렇게 여기서 죽는구나.. 난.. 비통한 현실에 준석의 머릿속엔 지난날의 아련한 기억들이 마치 카메라의 슬라이드쇼를 보는듯한 모습을 자아냈고,
그 쇼의 대부분은 활짝 웃는 지민의 얼굴이었다.


"신발 마지막으로 할말있냐?"


그렇게 정신의 끈을 서서히 놓아가던 준석은 사내의 물음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입을열었다.



"지...지..민이도..니놈이...죽였나...?"


"지민이? 아! 그 박지민~ 아마 그럴껄? 키키킥.. 살려달라고 하도 울부짖는게 어찌나 시끄럽던지.. 짜증나서 한방에 보내버렸지 킥킥.."


"큭큭.....지..랄하고..있네...호구..새끼가... 콜록..콜록.. "


준석의 말에 사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엔 너무 차가운미소를 지으며 무미건조한 음성을 나지막히 내뱉었다.


"잘가라. 바퀴벌래만도 못한새꺄 킥킥"


말이끝남과 동시에 사내의 오른손은 푸른빛이 일렁이는가 싶더니 이내 엄청난속도로 날아왔고, 준석은 모든것을 체념한채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순간..





'탁'





어디선가 나타난 검은빛의 인영은 사내의 손을 가볍게 막아내며 나지막히 입을 열었다.




"지민이 죽인게 너였냐..?"




익숙한 목소리에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준석은 초점없는 쾡한 눈으로 희미하게나마 자신의 코앞에서 멈춘 사내의 손을 볼수있었고, 그 윤곽이 점점 뚜렷하게 잡히자, 이내 자신의 앞에서 사내의 팔을 잡고있는 낮익은 인영의 모습을 확인할수있었다.

그리고..


그 인영은


다름아닌..


한때 빵셔틀이었던,



이기준이었다.







5부에 계속.

추천수6
반대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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