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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밤.

괴르디올라 |2013.05.10 17:04
조회 635 |추천 4

대학생 시절, 평소 친하게 지냈던 4살 터울의 형과 함께,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그 형의 외가댁에 있는

 

남해의 작은 마을을 찾아갔다.

 

마치, 전원일기에서나 나올 듯한 평온한 분위기에, 저녁으론 집집마다 모락모락 연기들이 피어오르는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쉴 수 있는 곳을 찾았는데. 참 잘 찾았다고 생각했다.

 

가까운 거리는 아니더라도 기회가 되면 매년 오고싶다는 생각을 먼저할 정도로 매력적인 풍광을 가진

 

그 작은 마을이 참 아름다웠다는 기억이 든다.

 

 

도착한 첫날은 너무 피곤하기도 했고, 시간도 늦어 저녁을 먹자마자 사랑방에서 형과 함께 잠이 들었다.

 

담날 아침에 눈을 뜨고는 마을 이리저리 둘러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름답기만 했던 마을인데, 집뒤로 빈집들이 많고 우리를 쳐다보는 마을 사람들의

 

표정은 부담감을 줄 정도로 냉랭했다.  들뜬기분에 마을어귀에 앉아계신 할머니에게

 

"안녕하세요~ 할머니" 하고 넉살 좋게 인사를 드렸지만, 대꾸도 없이 쳐다보기만 하시는 할머니에게

 

더이상 말을 건낼 수는 없었다.

 

이상한 기분에 돌아와서 형님네 할머니께 아침을 먹으면서 물어봤다.

 

'할머니..근데요 여기 마을에 왜 이렇게 빈집들이 많아요?'

 

'응..여기가 불과 6-7년 전만해도 사람들이 마이 살았는데, 머 한두집 빠지면서 인자는 별로 없지..'

 

'아... 다들 뭐 일하러 도시 나갔나바예..'

 

'아..그런것도 있고,.. 여게(여기) 머시 들어선다고 케가지고, 4년전이가... 그 머시고...그래..투기!  그

투기 바람이 불었는데.. 그  바람에 우리 뒷집 이장하고 몇놈이서 돈을 거기다가 다 갖다가 부어가지고,

망해삐가지고 다 빈기라'

 

'아 맞습니까.. 사람들이 마이 나갔나보네예 그럼 집 뒷쪽 대밭있는데는 완전 텅텅 빈거 같든데..'

 

'그래 저집이 이장집이라.. 마 이장은 죽어삐고, 딸래미랑 마누라는 어데갔는지도 모르겠고

그래가 몇~~년 째 저래 텅텅 비어 가지고 인자 뭐 흉가 대삐찌..나도 보기 싫어 죽겠어'

 

아무래도 대밭 입구에 있는 큰집이 말씀하시는 그집인가 보다 생각했다.  기분나쁜 생각이 들었지만,

 

한여름의 남해는 그런 생각을하기에는 너무 많은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할머니 댁에 있는

 

사륜오토바이를 빌려타고는 시골길을 달려 근처에 있는 해수욕장으로 가서 하루종일 놀다보니 어느덧

 

시간은 오후 6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형과 함께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향하는길.

 

문득 집뒤 대밭앞에 있는 몇몇 흉가들이 보고 싶었다.

 

앞쪽 도로와는 다르게 대밭쪽은 고용할 정도로 조용했다.

 

오후가되면 해가 비추지 않는 곳이라 그런지 밖은 훤했지만, 왠지 대밭쪽은 어두 침침한 늦은 저녁과

 

같았다. 보고 오라고 오토바이에서 내린 형은 골목길을 통해서 할머니댁으로 돌아갔고, 난 혼자서 사륜

 

오토바이를 타고 천천히 그 집들 앞으로 지나가며 집들을 보고 있었다.

 

대문도 없고, 있더라도 반쯤 부서진.... 담들은 흉하게 무너져 있었으며 잡초들이 무성한 마당..

 

별채에 있는 창호지문들은 너덜너덜 한 채로 열려있고, 그 속에는 가지고 가지 않은 이불가지 나

 

광주리 같은 소도구들도 얼핏 보이는 듯했다.  을씨년스럽고, 바람에 따라 우는 대나무 잎사귀 소리도

 

긴장감을 느끼게 했다.

 

 

큰 병풍처럼 뒤를 감싸고 있는 대밭 앞쪽에는 집 3채가 자리잡고 있었다.

 

아마도 마지막에 있는 제일 큰 마당을 가진 집이 할머니께서 말씀하신 이장집이었다.

 

3채모두 마당에 비슷한 크기의 우물을 가지고 있었다.  티비에서 봤던 우물과는 약간 다른 모습이었고,

 

각자 우물이 있는 위치는 달랐지만 왠지 폐가에 있는 우물은.. 그 존재만으로 기분나쁘게 했다.

 

마지막 집 대문을 지나치는데 몇몇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여름 방학을 했지만 놀곳이 없는 애들에게는

 

이런 폐가도 좋은 놀이터가 되는거 같아 마음이 짠 하면서도 한편으론 경계심이 무너졌다.

 

연신 돌을 주어서는 일렬로 서서 우물에 돌을 던져넣고 있었다.

 

우물에 들어간 돌은 한참이나 떨어져서 '풍덩' 하는 소리를 만들어 냈다.  나도 한번 들어가서 던져보고

 

싶었지만, 먼저간 형이 저쪽 끝 골목에서 저녁먹으라고 하는 통에 그냥 돌아서 집으로 내려왔다.

 

 

 

 

집에 돌아오니 할머니께서 삼겹살을 구워주셨다.

 

하루종일 놀고 마당에 있는 평상에서 먹는 삼겹살은 너무 맛있고, 낭만적이었다.

 

할머님과 형과 소주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그렇게 여름밤은 지나가고 있었다.

 

먹은 밥상을 물리고, 수박을 드시던 할머니께서 주무신다고 방으로 들어가시고 우리도 고단함을 느껴

 

사랑채로 들어갔다.  금방 잠에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귓가에서 모기 소리가 왱~ 하고 들리기에 잠결에 얼굴을 떄렸더니 잠이 달아나 버렸다.

 

밖에서 엄청나게 울어대는 개구리와 귀뚜라미 소리. 그리고 옆에서 들리는 형의 코골이까지..

 

 

 

 

"지익...."

 

'첨벙'

 

 

 

 

"스..윽"

'첨벙'

 

 

 

 

사랑채 뒤쪽에 있는 쪽문쪽에서 뜬금없는 소리가 귀에 들어온다.

 

 

"머지..."

 

누워있는 채로 어두컴컴한 천정을 보며 눈을 껌뻑 껌뻑 거린다.

 

 

"지...익"

"첨벙"

 

 

 

비정기적으로 들리는 소리. 뭔가 무거운 포대자루 같은걸 끌고가서는 물에 던지는 소리..

 

시계를 보니 2시가 넘은 시각.

 

퍼뜩 정신이 들면서 할머니 뒷집에 있던 흉가들이 생각났다.

 

분명 그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10분이 넘도록 규칙적이지 않게 계속적으로 뭔가 던져넣는는 소리

 

분명 우물속에 뭔가를 던지고 있는 소리다.

 

괜시리 이상한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귀찮기도 했고 한편으론 무섭기도 해서 그 소리를 듣다가 잠이

 

들었다.

 

 

 

담날 부산으로 돌아가야하는 길이라,

 

아침부터 분주하게 서둘렀다.

 

아침을 먹고 가방을 싸서 마당 평상위에 놓고는 할머니는 찾았는데 할머님께서는

 

우리한테 주실 배추니 고추니 이런것을 따시느라 텃밭에 계시다고 했다.

 

 

 

 

집뒤를 돌아가니 저 멀리 텃밭이 보이고, 분주하게 고추를 따고 계신 할머니에게 찾아간다.

 

'아이고 할머니~ 안그러셔도 되는데요~~'

 

'아니야..이게 농약도 안친거라서 맛있어 집에 가져다줘..'

 

'네~~ 고맙습니다~'

 

할머니랑 대밭근처를 지나오다 어제 밤에 들었던 소리가 생각나서 할머니한테 물어봤다.

 

 

'할머니 근데 어제 밤에 들어보니까, 사람들이 물에다가 뭘 버리는거 같은데...쓰레기 같은거 버리는거

아니에요?'

 

'어따가?'

 

'저기 뒷집에 있는 우물에다가 뭘 막 던지는거 같던데?'

 

'우물?'

 

'네.. 저~~기 마당에 있는 저거요..'

 

 

'우물이 있어?'

 

 

내 말이 이상하다는 듯. 성큼성큼 폐가들 쪽으로 들어가시는 할머니.

 

 

'아... 이거?'

 

 

'네 ....우....무 .. (응?)'

 

 

할머니가 발로 우물을 툭 찼다.

 

우물이 아니었다.

 

그냥  하수도 공사에 사용하는 큰 석관을 놓아둔 것이었다.

 

물론 석관 속은 일부 잡초와 햇볕을 제대로 받지 못한 탓에 바닥 색이 달랐지만.

 

그 속엔 아무것도 없는 바닥이었다.

 

 

주마등처럼

 

어제 돌을 던지면 놀던 아이들이 생각났다.

 

 

 

아무리 떠올려도

 

아이들의 얼굴은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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