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겹도록 익숙한 문자알람소리에도 눈은 떠진다.
금요일 밤 9시. 감기기운 때문에 회사를 하루 쉬었는데, 죽은 척하고 12시간이 넘도록 잠을 잤다.
베개와 이불이 축축하도록 땀을 흘렸더니 한결 기분이 가벼워졌다.
왠지 이대로 주말을 맞이하긴 아깝다는 생각에 창밖을 보니다 다행이 밤 하늘이 청명하다.
먹다남은 빵과 라면, 햇반, 그리고 더플백에 미리부터 담겨있는 캠핑 용품들.
그래도 루프탑텐트로 바꾸고 난 뒤로는 짐이 많이 줄었다.
샤워를 하고 말끔한 기분에 낑낑거리면 짐들을 차에 싣고는 무작정 떠난다.
무작정이라곤 했지만, 시동을 걸면서 이미 갈곳을 정해둔터라 한결 마음이 편하다.
기분 좋게 나왔지만, 밤9시에 강변북로는 말그대로 붉은 띠 처럼 꽉 막혀있다.
(그럼 그렇지..흠~)
밍기적거리는 차들의 간격이 좁혀졌다 넓혀졌다를 수차례 반복한다.
문득, 무언가가 없음(?)(공허)를 위해서 이렇게 무언가가 많은 도로를 질주하고 간다는게 좀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집에선 항상 혼자인데 말이다.
오디오에서 radiohead의 paranoid android가 나온다.
그로테스크한 목소리와 노래가 껄끄럽지만 지금 이 주차장과는 참 잘어울린다고 생각하고 볼륨을 높인다.
얼마나 지났을까, 차들이 제법 속도를 낸다.
그러다 언제 막혔었나 싶을 정도로 쌩쌩들 달려간다.
창문을 열고, 먼저온 가을을 느낀다.
담배를 끊지 않았더라면, 한대 피워 물고싶은 그런 시원한 밤이다.
차들이 점점 줄어듦을 느낀다.
서울을 벗어나고 있다는 증거다.
강원랜드가 보이는 도로가에 차를 세웠다.
길게 몸을 펴고는 주섬주섬 가방에 들어있던 생라면을 깨먹는다.
어릴때 먹던 맛이랑 라면은 별반 차이가 없는 거 같다.
으드득 으드득 차에 앉아서 라면을 씹으며 강원랜드 주변을 한참동안 보고있다.
역시 강원도는 바람이 일찍 차가워 진다.
요근래 심적으로 많이 약해져있다.
회사에서도 계속되는 트러블.
앞으로 뭘 해먹고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고민.
고민만 하는 나에 대한 또다른 고민 등.
잠시 생각에 빠져도 20-30분은 금방 흘러가버리는 그런 요즘이다.
손에 묻은 라면 스프를 창문밖으로 손을 뻗어 탁탁 털어버리고
앞에 보이는 편의점에 들어간다.
몇몇 남성들이 컵라면서 소주를 마시고 있다.
연신 입에서는 "씨팔" . "아깝다" 가 섞인 도박이야기 뿐.
아무래도 탈탈 털렸나보다.
물질적인것을 털렸지만 느끼지 못하면 그때부턴 정신을 베팅하게 된다.
정신을 털리면 더이상 살수있는 원동력이 없어진다.
맥주 두캔과 작은 소주한병, 그리고 못챙겨온 부탄가스 1개,
천하장사 소시지 2개를 산다.
퉁명스럽다 못해, 기분나쁘기까지한 여자 종업원.
변해버린 사북이, 계속떠나고 유입되는 사람들이 아무래도 그녀를 눈마주치고 웃어주지 못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서늘하다 못해 추워서 점퍼를 꺼내입었다.
사북에서 함백산 만항재를 향해 가는 길은 생각보다 좁다.
초입에선 차가 2대 겨우 지나갈만한 좁은 길을 몇키로 달려야한다.
이렇다할 불빛도, 인적도 다들 어둠과 함께 숨어버린 다음이다.
오직 헤드라이트 불빛만 보고 앞만 보고 굽이굽이 청승맞게도 멀리 올라간다.
한굽이를 넘어서면 좀더 서늘해지고,
다른 굽이를 돌아넘어서면 더 서늘해짐을 느낀다.
예전 한겨울에 찾아왔을때, 사륜이지만 눈때문에 엄청 고생했던 기억이 문득 떠오른다.
브레이크를 잡아도 멈추지 않는 추운 겨울 차안에서
얼마나 많은 진땀을 흘렸던가....
인생도 멈출때 멈추지 않으면 언제나 두려워지고 무서워진다.
함백산 만항재 정상에 올랐다.
차로 갈 수있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도로이다.
고등학교 방송부때 처음으로 들어선 스튜디오에서 방음처리가 된 문을 닫았을때의
먹먹함마져 느껴지는 그런 공허함이다.
정말 아무것도 없다.....
진득한 안개가 잔뜩 끼어있는 함백산 정산 만항재.
사실 여기 온것은 처음이 아니다. 4-5번을 방문했을 정도로 이곳은 아름답고 깨끗하고 나에게 행복감을 줬던 곳이다. 특히 새벽에 야생화쉼터에 있는 큰 나무들 사이를 혼자 걸어보면 정말 몸도 마음도 정갈해지는..그런 내 마음의 힐링장소이다.
주차를 할수 있는 공터후미진곳에 차를 주차한다.
새벽에 등산객들이 많으니 가능하면 등산로와는 좀 떨어진곳에 주차를 하고 잠잘 동안은 편히 자고 싶었기 때문이다.
루프탑을 5분만에 펴고는 트렁크 문을 열어놓고 라면을 끓인다.
배도고프고, 춥기까지 했는데 라면의 향기는 강하게 내 식욕을 돋구는 역할을 한다.
라면에 소주,맥주까지 한병씩하니 몸도 마음도 따듯하고 금방 체온이 오른다.
릴렉스 체어에 앉아서 자동차 미등을 끄고는 어두운 그곳을 즐긴다.
정말 상상할수 없을 정도의 별.
그리고 나무들 사이로 서서히 보이는 하늘.
그리고 바람소리.
아마 이것을 찾아서 왔나보다 생각하곤 한참을 그렇게 있다 시간을 본다.
am3:10 ..잘시간이다.
오전부터 한참을 잔뒤라 별로 잠이 오진 않았지만,
꾸역꾸역 차에 설치된 사다리를 밟고 올라가서는 지붕에 있는 루프탑으로 들어간다.
침낭에 들어가서 차문을 잠그기 위해 리모컨키로 시건장치를 확인한후에 잠자리에 든다.
낼..아니 오늘 아침에 눈을 뜨면 몽환속 같은 그런 풍경을 맞이할것이다.
그래서 루프탑에 나있는 창문도 일부러 야생화 쉼터 쪽으로 두고 잠이 들었다.
지금 이순간은 다 잊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고민도...미래도... 그냥.. 다....
모든것이 아련해지는 순간이다. 손가락 사이로 기운이 빠져나가는 기분좋은 피곤함.
멀리서 길게 들리는 뱃고동 소리가 취침나팔과 같이 친근하다.
'여긴 태백인데도 뱃고동이 들리나....?.'
의아한 분이 들어 루프탑에 있는 작은 지퍼를 열어선 어디서 소리가 나는지 두리번 거렸다.
생각보다 그 소리는 가까운 곳에서 들렸다.
별일 아니라 생각하고 다시 침낭에 몸을 숨겼다.
'....붕.... 붕...붕..붕..붕붕붕붕'
팔 길이만한 고무호스를 돌릴때 나는 휘파람 소리같은 바람소리.
때론 2개를 돌리는거 같기도 하고, 그러다 또 잠잠해지는.
멀리서 들리다, 가까이에서도 들리는....
잠을 방해한다.
어느날인가 바람이 심한 바닷가에서 잠을 청했을때 바다로부터 들리던 소프라노여성의 목소리와 같은 바람소리를 들었던 적이 있다.
그래서 이역시 산에서 계곡을 따라 부는 바람 소리인가보다 생각했다.
그 시간, 아무도 없는 산속에 인위적으로 그런 소리가 만들어질리가 없다.
스스로에게 다짐하던 순간!
'드르륵... 드륵.. 드르륵'
등산화를 신고 잔돌이 많은 바닥을 지나쳐며 오는 소리!.
산책로에서부터 점점 가까워지는 소리.
문을 열고 누군지 보거나 인기척을 내고 싶었지만.
그 발걸음은 상당히 조심스러운 발걸음이었음 직감적으로 느꼈기에.
숨을 죽였다. 혹시 몰라서 주변을 더듬거렸지만, 핸드폰은 앞자리 충전을 위해 시거잭에
꽂아두었고, 나머지 과도를 포함한 호신도구들은 죄다 트렁크에 쳐박아뒀다.
후회스러웠다
차와 4-5m정도 떨어진 거리까지 왔을때 사람임을 직감했다.
왜냐하면 그들중 누군가가
"쉿"
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아름답던 망상을 쫒아서 이 시간에 인적도 없는 여기까지 온 내가 병신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삽시간에 아름답다고 노래부르던 내 주변의 모든것들이 아무말도 없이 이런 나를 지켜보는
무서운 어둠으로만 느껴졌다. 오직 머리속에는 몇가지 말들만 반복되고 있었고, 손가락도, 숨도 제대로 쉴수 없을 정도로 최대한 바깥소리에 집중했다.
(누굴까..)
(어쩔려고 저럴까..)
(어떻게 해야할까..)
(내가 왜 왔을까..ㅆㅂ..)
내 차 바로 아래에서 인기척이 느껴진다.
느낌상으론 두명정도인데 모르겠다. 머리속에 하얗게 된다.
보지 않아도 내 바로 아래에서 두눈을 위로 치켜뜬채 내 텐트를 조용히 응시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상황이 토할 정도로 무섭고 미칠꺼같다. 아무것도 나를 보호할 것이 없었다.
온갖 더럽고 잔인한 상상이 펼쳐진다. 찢고 죽이고, 없애고 버리고,
'야야... 잔다....자...'
그들이 말했다. 40대 초반처럼 느껴지는 적당한 저음의 목소리.
장난스럽지 않고, 담대한 목소리가 소름끼친다.
이젠 사다리쪽에서 그 소리가 들린다.
아 ㅆㅂ 심장이 터질꺼같다. 뭐라도 해야할텐데 아무것도 못할정도로 난 침낭에 얼굴을 묻고 있다. 후끈한 숨에 얼굴도 목도, 등도 온통 땀이다.
(뭔가 해야지 ㅆㅂ... 사다리 밟고올라와서 문열길 기다렸다가 얼굴 보이자마자 발로 차버리자..)
내 계획이었다. 사실 할수있는 모든것이었다.
(차버리자, 차버리자)를 속으로 되뇌이다가 나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들어가며 몸을 움직였다.
덕분에 텐트를 고정하고 있던 가로바에서 "삐걱"라는 소리가 났다.
'쉿!'
그들은 다시한번 숨을 돌렸다. 그러나 사다리쪽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변함이 없다.
계속 바라보고 있음을 느낀다.
사다리를 잡는 느낌이 든다.
심장이 터질꺼같다. 다리가 문쪽을 향해있어 그대로 보이기만 하면 차버릴수 있다.
두근두근거리는 심장소리가 귀에서 요동친다. 그래도 조용히 있었으니 무장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스스로 위안한다.
사다리에 둔탁한 무게가 실리며 알루미늄에 잔돌들이 밟히는 소리가 들린다
올라오는 것이다.....
한2계단만 오르면 바로 머리가 보일 것이다. 그럼 난 정확히 있는 힘껏 차기만 하면 된다.
그리곤 위에서 아래를 지켜보면서 나머지 놈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면된다.
제대로 처음놈만 차버리면 된다...
지근거리 1~2m 남짓,
숨소리까지 들릴꺼같다. 저기로 머리만 나오면 차면 된다.
(어차피 메쉬(망사)문만 닫아놓았으니 충격은 그대로 전달된다. 차면 된다. 제발..)
캄캄한 사다리쪽에서 무언가 올라오길 똥그랗게 눈을 뜨고 기다렸다.
두번째와 세번째 계단을 밟는 소리가 난다.
(머리형상이 보인다!)
(지금이다!)
난 있는 힘껏 몸을 뻗으며 검은 머리가 있는 곳을 정확히 찼다.
순간, 몸이 쭉 빨리듯 사다리 아래쪽으로 당겨지며 떨어졌다.
내 기억은 여기까지다.
왼쪽 관자놀이가 미친듯 아프고
몸이 축축하다.
내몸과 딱 맞는 나무관속에 들어있는듯이 손가락 하나도 못움직일 정도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소리.
눈을 떴을때 90도로 보이는 내 뒷 타이어.
뭐가 어떻게 된건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내 차밑으로 멀리보이는 등산객들의 신발만 보일뿐...................
그렇게 한참을 아무말도 없이 앉아있다가 홀린듯 막 쑤셔넣고는
차를 몰고는 내려와서 강원랜드 근처 사우나에서 목욕을 갔다.
왼팔과 등 얼굴에 피멍이 들어있다.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어안이 벙벙하다는건 이런걸 두고 하는 말인가보다.
내가 어느정도 기억을 찾은건 집에 왔을때다.
아니 보다 정확히 이야기를 하자면 습기에 젖은 루프탑을 말리기 위해 지상 주차장에서 루프탑을 열었을때이다.
뭔가를 강력하게 찼다고 생각했는데 발에 맞는 느낌은 없었다.
과도하게 강하게 차려한 나머지, 난 루프탑 문을 통해 사다리 아래 마사토 흙더미로 떨어지면
기억을 잃었던거 같다. 그리고 루프탑 사다리와 통해있는 망사창은 열려있었다.
그게 지금까지의 기억이다.
그 이후로 난 다시는 혼자서 외딴곳에 캠핑을 가지 않는다.
적어도, 누구에게도 연락하지 않고 떠나는 무모함은 버렸다.
내가 어디로 가는지, 언제 돌아오는지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는 아까운 사람들에게 알려두고
어딜가든 주머니엔 핸드폰과 작은 나이프는 항상 휴대하고 다닌다.
비단. 그날 내가 실제로 그들을 조우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난 앞으로도 그럴것이다.
혹자들은 실제로 어떤 존재를 조우했다는 느낌이 어떤건지는 모를것이다.
나도 루프탑텐트안에 찍힌 진흙투성이의 어지러운 발자국을 발견하기 전까진 한낱 꿈인줄 알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