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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메이트 - (28화)

윙윙 |2013.05.25 11:02
조회 2,424 |추천 13

출처 ; 웃대(인생사프리님)

제가읽었던 이야기들중 재미나게 본 이야기입니다.

스크롤 압박이 있어요..^^

 

 

 

 

룸메이트 1화 ; http://pann.nate.com/b318390630

룸메이트 11화 ; http://pann.nate.com/b318393961

 

 

 

 

 

술에 과도하게 취한 민창수가 거기에 쓰러져서 자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졸지에 현직 유망한 검사의 옷을 가져간 대범한 놈이 되어 있었다.

 

 

그 충격은 한참동안 머리에 박혀 있었다. 형님은 그런 내 모습이 웃긴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병신, 내가 살다 살다 별 희한한 놈은 봤지만 너 같은 놈은 처음이야.”


“그렇군요........”


“그렇지... 다른 의미론...”



나는 얼이 빠져 멍하게 양복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쉽게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내가 멍하게 있자 형님은 누워있는 내 이마를 찰싹 때리며 말했다.



“정신 차려 임마. 제일 긴장하고 있어야 할 놈이...”


“아... 네...”



나는 고개를 흔들며 아찔한 생각을 지우려고 애썼다. 목이 마치 담이 걸린 것처럼 아파왔지만 정신을 차리는데 더 도움을 준 것 같았다.

 

 

형님은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는지 표정을 굳히며 헛기침을 한번 한 후에 말했다.



“어험... 근데 이상한 점이 한가지 더 있다.”


“또요...? 무서워 죽겠네요...”


“새끼야 말하는데 잘라먹지 마라.”



형님이 짜증을 내며 주먹을 치켜세우자, 내가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입이 잘못을 빌기 시작했다.



“헉!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잠자코 들어. 니가 지하철에서 쓰러지고 나서, 애들을 모아서 여기로 데려와 눕혔어. 그리고 치료하기 위해서 옷을 벗겼지. 근데 참 신기한 게 있었다.”


“뭔데요?”



나는 긴장감 속에 침을 꿀꺽 삼켰다. 식은땀도 조금씩 베어 나오는 것 같았다.

 

 

형님은 잠시 골똘하게 생각을 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맞은 부위가 이상하다.”


“예?”


“너 어제 분명히 쇠파이프로 쳐 맞았다고 했었지?”


“그렇죠. 근데 그게 뭐가 이상해요?”


“그래, 확실히 맞은 부위는 쇠파이프로 맞았다 싶을 정도의 상처가 나 있어.”


“그게 이상해요?”


“말 끊어먹지 마라고 했다...”



형님이 화를 누르고 누르듯,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나는 속으로 아차 싶어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아직 피가 남아 있었는지, 비릿한 피비린내가 입안을 채웠다. 형님은 한번 꾸욱 누르듯 한숨을 뱉어내고 말했다.



“한번만 더 그러면 내 손으로 뼈에 이상을 만들어주지.”


“네, 네...”



나는 혹여나 맞을까 온몸에 긴장을 늦추지 않고 대답을 했고, 형님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뜨고 다시 이야기를 했다.



“니가 그렇게 쳐 맞았는데, 화장실에서 바로 탈출한 게 이상하지 않나?”


“.......?”



확실히 이상한 점이 있었다. 그때 화장실을 벗어나 거리를 달리면서도 움직일 수 있는 몸이 신기할 정도였다.

 

 

물론 이내 잊어버리고 미친 듯이 지하철로 달려왔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이해할 수 없는 일 이었다.



“아까도 지나가듯 말했었지? 니가 맞은 부위는 신기할 정도로 살덩이 부분만 맞았어.”


“살덩이 부분.......”

 

“엉덩이, 옆구리, 허벅지, 종아리 같은...”



나는 몸을 슬쩍 움직여 보았다. 바늘로 찌르는 듯한 고통이 몸 구석구석 느껴졌고, 나는 그 아픔이 일어나는 곳을 집중해서 알아보았다.



“.......!”


“이제 알겠냐? 너는 누워있어서 니 몸을 보진 못하겠지만, 마치 노리고 때린 것 같이 상처가 나있어. 마치 규칙적으로.”


“정말... 정말이에요...!!”


“니 옷을 왜 벗겼다고 생각하냐?”


“헉...!”


“그래 임마, 정확한 타격을 위해서.”



이상한점은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의문점이 수없이 나타났다.

 

 

전선기는 분명 그때 이성을 잃은 채로 나를 팼었고, 나는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계속 꿈틀거렸다.

 

 

신체를 전문적으로 아는 사람이 아닌 이상, 이러긴 힘들었다.

 

 

게다가 이성을 잃지 않았다는 전제조건이 필요했다. 순간 형님과 나의 눈이 마주쳤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그럼...!”


“찐퉁이다.”



형님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피식 웃었지만 나는 등골이 서늘할만한 일이었다.

 

 

나를 쇠파이프로 팼었던 건 가짜 전선기가 아니라 진짜 전선기였다.

 

 

인체를 잘 알고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오차 없는 살인 수법, 그런 상황에서의 냉정함. 전선기의 노인 인격이 틀림없었다.



“이런.......!”



기가차서 말이 나오질 않았다. 생각을 해보니 화장실에 쇠파이프를 놓고 간 것도 이상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자신이 방금까지 개 패듯 팬 사람 옆에 쇠파이프를 놓고 가진 않는다.

 

 

그리고 나는 나름 형사였다. 아무리 전선기 추격에 정신이 팔려 있다고 하더라도, 통행할 수 있는 길이 한 개 밖에 없는 골목길에서 미행을 당할 일은 없었다.

 

 

미리 거기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밖에 생각이 되질 않는다.

 

 

내가 공포감에 부르르 떨고 있는데 형님이 나에게 던지듯 말했다.



“생각이 좀 정리가 됐냐?”


“네... 네...”


“하나 더 알려줘?”


“.......?”


“이거 봐라.”



형님이 양복 속주머니에서 뭔가를 하나 꺼냈다.



“.......!”



핸드폰이었다. 그것도 내가 전에 전선기에게 받았었던 방수 기종의 핸드폰 이었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핸드폰을 멍하게 보고 있었다. 형님은 그런 나를 개의치 않으며 말했다.



“그 놈은 니가 이 검사 놈의 옷을 뺏어 입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럼 그 놈이 니 옷을 벗긴 이유는 두 가지가 되지. 하나는 아까 말한 것 같이 정확하게 살덩이 부분만 때리기 위해서고....”


“이 핸드폰을 건네주기 위해서...!”



대체 이 새끼는 어디까지 생각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얼마 전까지 살의로 물들었던 그 녀석의 이미지가 점차 공포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젠 전선기라는 이름을 생각만 하여도 두려움이 생길 것 같았다.



“쯧쯧... 새끼.......”



형님이 나의 표정을 보고 혀를 찼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제는 그야말로 전선기가 나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았다.

 

 

나는 나름대로 온 힘을 다해서 경찰의 추격을 따돌리고, 역 추격을 통해서 전선기를 죽이려 했었지만, 그것마저 이미 계산된 행동이었다.

 

 

거슬러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전선기의 위대함만 나를 짓누를 뿐, 그의 계획에는 티끌하나 존재 하지 않았다. 나는 벌벌 떨면서 말했다.



“그럼... 경찰에 신고한 건 나를 잡기 위해서가 아니었군요...”


“그래. 원초적으론 그렇다.”


“나를 그냥 가지고 놀기 위해서...”



전선기에 비하면 나는 너무나 작은 존재였다. 문득 맨 처음 전선기를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그가 신고자로 나타나고 나는 그를 멍청한 백수로만 생각했었다. 아니, 분명 멍청한 백수였다.

 

 

하지만 그 백수가 이런 존재일 줄이야. 그런 놈을 상대로 이길 수 없었다.

 

 

아니, 상대라고 하는 것도 내 처지가 너무나 우스웠다.



“박선후.”


“.......”


“야 임마 박선후!”


“...네! ......네.......”


“정신 차려!”


“.......”



형님이 멍하게 천장만을 쳐다보고 있는 나에게 소리쳤다. 나는 멍한 눈동자로 형님을 쳐다보았다.

 

 

형님조차 나를 바퀴벌레 쳐다보듯 하는 것 같았다.



-쫘악.



눈앞이 번쩍하더니 오른편 볼이 얼얼해 졌다. 형님이 얼굴이 시뻘게진 상태로 나의 뺨을 갈 긴 것 같았다.

 

 

그래. 나는 뺨을 맞아도 할말 없는 전선기의 발톱만도 못한 새끼다. 나는 뺨이 아프지만 그 아픔마저 긍정해 버렸다.



-쫘악.



이번엔 왼쪽이다. 왼쪽은 전선기에게 맞은 부위가 아니라 그렇게 아프진 않았다. 참을 만 했다. 아니, 나 같은 새끼는 참아야 된다.



-쫘악.



다시 오른쪽.



-쫘악



왼쪽...



-쫘악



“아! 좀 작작 때립시다!”


“정신 차려 미친놈아. 니가 이러면 니 누나가 다시 돌아오냐?”


“?!”


“니 친구가 다시 돌아와? 참 좋아라 하겠다.”



순간 이성의 끈이 뚝 끊겼다. 나는 몸이 아픈 것도 잊으며 벌떡 일어나 내 앞에 있던 사람의 멱살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머리가 이 사람을 때리라고 시키나? 아니었다. 그럼 척수가?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

 

 

근육 마디마디가 스스로 움직이듯, 나는 내 손에 잡혀있는 것의 얼굴 부분을 힘껏 날려버렸다.



“아.......”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눈앞을 내려다보니, 형님이 볼을 부여잡고 쓰러져 있었고 나는 그 모습을 위풍당당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혀.. 형님...! 죄송...”


“새끼, 이제야 정신이 좀 드냐?”



형님이 자신의 볼을 쓰다듬으며 일어났다. 나는 이 사태에 어쩔 줄 몰라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었다.



“설 수 있잖아! 자식아! 니가 그 정도로 포기할 놈 같았으면 내가 받아들이지도 않았어!”


“형님........”


“아니, 내가 받아들인 놈이면 그래선 안되는 거야!”


“형님... 형님...”



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나는 내 눈물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무너지고 있었다.

 

 

그때, 형님이 나의 어깨를 꽉 붙들며 쓰러지지 않게 잡아주었다. 그리고 나의 눈을 단호하게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언어가 아니었지만 내 심장에 각오를 박아 넣는 날카로운 조각칼 같았다.

 

 

 

전선기에게 된 통 당한 이후로, 나는 바로 구역을 옮겼다.

 

 

사실 구역을 옮긴다고 해서 바뀌는 건 크게 없었다. 하지만 형님은 생각할 시간을 갖으라고 일부러 사람이 얼마 없는 곳으로 옮겼다.

 

 

그 역은 전선기가 이동하는 통로도 아니었다.



“휴...”



형님 덕에 마음을 추스르긴 했지만 한숨이 잦아진 건 사실이다. 어쩌면 자부심에 상처를 입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동안 형사생활을 하면서 여러 미친놈들을 잡아봤지만 이런 놈들은 없었다.

 

 

하지만 하루하루는 시간이 빨리 지나갔다. 그저 가만히 앉아 깡통만 쳐다보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았다.



-땡그랑.



“감사합니다.”



하지만 돈벌이는 별로 시원치 않은 곳이었다. 하루에 2000원도 못 벌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인지 형님이 장난식으로 타박을 주었다.



“새끼야 이 정도 벌어서 누구 코에 붙이겠냐?”


“그 역엔 사람도 없다구요.”


“사람이 없으면 호객행위라도 해서 받아와!”


“쳇, 형님이나 한번 해보시지...”


“뭐야?!”


“아, 아니에요...”



물론 장난은 장난일 뿐이었다. 형님도 나에게 기운차리라고 일부러 그런 장난을 친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하루하루 기운이 빠져있는 건 어쩔수 없는 일이었다. 같이 밥을 먹는 칠복이 아저씨도 걱정을 많이 해 주었다.



“야 임마, 그렇게 마른 수건처럼 널부러져 있을거야?”


“.... 내가 언제 그랬어요?”


“지금 그러고 있잖아 임마.”


“어휴... 생각하느라 그래요 생각.”


“그놈의 생각. 좀 그만좀 해라.”


“어휴...”


“어이구, 한숨은... 땅 꺼지겠다.”


“죄송해요.”


“됐어. 먹어.”


“.......”



잠은 다친 곳이 다 나을 때까지 원룸에서 머물기로 했다. 소독과 같이 간단한 일은 서주희가 해주었다.

 

 

내 상처는 그렇다고 쳐도, 서주희의 상처는 꽤 깊어서 호전이 더뎠다. 내가 더 빨리 나을 정도였으니.



“질문 하나만 할게.”


“네?”


“너 상처.”


“.......”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서주희가 조금은 거부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도 그럴게 그 상처는 입에 대해서는 입밖에 꺼내고 싶진 않을 것이다.



“니가 그때 해준 이야기에 따르면... 전선기에게 맞았다고...”


“네.......”


“그때 이야기좀 자세하게 해줘. 맞는 이야기 말고 전선기에 대한 걸로.”


“.......네.”



소독을 하는 서주희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상기하기 싫은 기억을 다시 떠오르는 건 분명 괴로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한다. 나는 서주희의 기억을 통해서 진짜 전선기의 인격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이상한 부분이... 조금 있었어요.”


“이상한 부분...?”


“네, 매일 맞았다는 건 그때 이야기 해드린 그대로에요. 하지만 평소에 제가 알던 선기 오빠가 아니었어요.”


“그럼?”


“저한테 스트레스를 푸는 것 같이...”



나는 이정도의 이야기만 듣고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전선기의 살인은 아마 거친 목소리의 인격에 의한 것이다.

 

그리고 요즘엔 그의 수법에 의한 살인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

 

 

아무래도 그 인격이 살인하지 못하는 스트레스를 다른 방향으로 풀고 있다는 해석이 났다.



“알았어... 그 정도면 됐어.”


“네.......”



나는 치료를 다 받고 방에 누워 천장을 보며 생각을 했다.

 

 

지금 파악된 전선기의 인격은 3개. 주인 인격과, 거친 성격의 인격, 그리고 노인 인격이다.

 

 

더 있을지도 모르고 없을지도 모르지만 주로 활동하는 인격은 저 3개 인 것 같았다.

 

 

거기에 전선기와 똑같이 생긴 사람 한명이 더 있다. 본래의 전선기는 찌질 하고 능력 없는 멍청한 백수가 맞는 것 같았다.

 

 

귀찮은 건 나머지 2개의 인격이었다. 노인 인격은 거의 완전무결이라고 할 정도로.



“그럼 공략할 수 있는 건 다른 두 놈인가?”



가만히 생각을 해봤다. 거친 인격이 구타를 통해서 스트레스를 푼다고 하더라도 그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얼마 가지 않아서 다른 살인이 일어난다는 소리였다. 문제는 그 타깃이 누군지 모른다는 것이지만.



“모르겠다!”



나는 더 이상 감이 잡히질 않아 생각을 관두고 잠을 자려고 했다. 하지만 잠도 쉽게 이룰 수가 없었다.

 

 

요즘엔 잠을 자려고 눈만 감으면 그 날 있었던 일들이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펼쳐졌다.

 

 

지독한 불면증 이었다. 그렇게 영화 한편을 새벽 3~4시까지 보다가 겨우 잠을 잘 수 있었다.

 

 

오늘도 여지없이 영화는 상영되었다. 웃긴 점이 있다면 이놈의 영화는 맨날 봐도 질리질 않았다.

 

 

그리고 맨날 볼 때마다 전선기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미친 새끼.”



나는 머릿속에 펼쳐지는 영화를 보고 마치 진짜 영화를 보듯이 욕일 뱉어 냈다.



“응.......?”



근데, 잠시 이상한 광경이 보였다. 나는 수없이 그 장면을 뒤로 돌리고, 다시 뒤로 돌렸다.



“이게.......!”



전선기가 유흥가를 지나가다가 청년에게 밟히는 장면이었다. 청년에게 신나게 밟히고 나서 전선기는 떨어진 자신의 지갑을 주운 게 아니었다.

 

 

지갑의 주인은 전선기를 밟던 청년의 주머니에서 흘러나왔다. 정신없이 밟다가 지갑이 떨어진 것도 몰랐던 것이다.

 

 

더 웃긴 건 전선기가 그 지갑을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주머니 안에 넣었다는 점이었다. 나는 즉시 옷을 챙겨 입었다.



“어디 나가시려구요?”


“어, 잠깐...”



시간을 보니 이제 9시 남짓이었다. 아주 적정한 시간대 였다. 나는 아무런 옷이나 챙겨 입고 나가려다가 잠시 멈칫했다.

 

 

이런 꼴로 사람을 만났다간 별로 신뢰가 가지 못할 것이다.

 

 

나는 내 지갑에 있던 경찰 신분증 등을 민창수의 지갑에 옮기고, 민창수의 양복을 입고 거울을 보았다.



“...... 괜찮은데?”



이 얼마 만에 입는 양복인가? 형사 시절에도 많이 입어보진 못한 양복이었다.

 

 

나는 거울을 향해서 씨익 웃어보이곤 나가기 위해서 뒤로 돌았다.

 

 

서주희가 웃는 건지 마는 건지, 애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나는 서주희의 반응에 무안해져서 헛기침을 하였다.



“어흠....... 집 잘지키고 있어.”


“.... 알겠어요.”



분명 웃음을 참고 있는게 분명하다. 나는 도망치듯 신발을 신고 신속하게 문을 닫았다.



“캬하하하하하하핫!!”



닫힌 문에서 열광적인 함성이 울려퍼졌다. 나는 들어가서 뭐라고 한소리를 할까 하다가 관두고 나왔다.

 

 

저녁이라 그런지 골목이 어두웠지만 더위는 아직 가시질 않았다.



“이놈의 더위... 비라도 와야 좀...”



나는 말을 뱉고 나서 소름이 쫘악 끼치는 걸 느꼈다. 지금은 비가 오면 안 될 것 같았다.

 

 

그 동안 비 오는 날에 이루어졌던 전선기의 살인 행각을 봐선, 다음 비 오는 날이 살인이 터지는 날이 될 것이다.

 

 

나는 그 전에 지갑의 주인과 접촉을 해야 했다. 내 예감이 맞다면 다음 타깃은 지갑의 주인이다.



“그때 장소가 아마...”



무작정 추격한 것이라 장소를 찾는 게 어려울 줄 알았는데, 그때의 추격이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어서 쉽게 그 주변의 유흥가를 찾을 수 있었다.

 

 

그 당시엔 몰랐지만, 젊은 대학생들이 많은 걸 봐서 대학가인 것 같았다.

 

 

나는 전선기가 밟혔던 장소로 가서 담배를 하나 꺼내들었다.

 

 

요즘엔 담배를 조금은 마음껏 필 수 있는 게, 민창수의 지갑에 돈이 꽤 많이 들어 있었다.

 

 

게다가 현금카드도 들어있어서 그 카드로 양담배로 20보루는 넘게 사두었다.

 

 

당시에 걱정이 되던 형님이 잡히면 어떻게 할거냐고 말했었는데, 그럴 걱정은 필요가 없었다.

 

 

현역 유망한 검사 나으리께서 술 마시다 취해서 길가에서 자다가 아리랑치기를 당했다는 소문을 내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추적하는데도 꽤나 귀찮은 일이라고 생각이 든다. 나는 담배를 피우며 주변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좋은 때구만....”



대학을 다니면서 걱정 없이 술을 마시는 대학생들을 보자 부럽긴 부러웠다.

 

 

한숨을 퍼내듯 연거푸 담배를 피우는데 한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목소리가 들리는 곳을 따라서 고개를 돌렸다.



“시험은 잘 봤냐?”


“이 새끼야 시험을 잘 봤으면 내가 술마시러 오겠냐?”


“우하하하핫.”



분명 그때 그 애들이다. 나는 피우던 담배를 미련 없이 하수구 방향으로 버리고, 그 애들을 쫓았다.

 

 

녀석들은 1차를 이미 끝내고 2차 장소를 찾고 있는지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었다.



“어디로 갈까? 어디로?”


“노래방 갈까?”



노래방을 가자는 어떤 새끼의 말에 나는 속으로 그 새끼의 욕을 신랄하게 했다.

 

 

노래방으로 가면 이 녀석들의 정보를 캐기가 쉽지 않았다.



“벌써? 난 아직 간에 기별도 안갔는데?”


“그래그래, 더 마시다 가자.”



녀석들은 근처의 맥주집으로 자리를 잡았고, 나도 그 녀석들의 근처 테이블에서 기회를 노리기로 했다.

 

 

그때 지갑을 떨어뜨린 놈은 새로 지갑을 샀는지, 새 거 티가 나는 지갑을 들고 있었다.

 

 

나는 가볍게 맥주 500cc를 시키고 그 녀석들을 지켜보고 있는데, 옷 속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꺼내보니 방수 핸드폰 이었다. 난 침을 꼴깍 삼키고 잠시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위이이이잉. 위이이이잉. 위이이이잉.



잠시 뜸을 들인 나는 핸드폰을 열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


--오랜만이다 신발놈아.

 

 

 

 

거친 목소리가 전화기를 타고 흘러나왔다. 나는 전화기를 귀에 꽉 붙이고 있다가 생각보다 큰 목소리에 인상을 찌푸리며 귀를 살짝 땠다.

 

 

그리고 당황한 기색을 숨기기 위해서 최대한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랜만이긴, 얼마 전에 봤으면서.”


--푸핫, 아주 멍청이는 아닌가 보네.


“그럼, 그럼.”


--감상평 같은 건 없냐?


“닥치고 왜 전화했는지 말이나 해.


--뭐가 그렇게 급해? 어때? 우리한테 농락당한 기분이.


“할 말 없으면 끊는다.”



나는 무심한 목소리로 전화기를 귀에서 뗐다. 그러자 스피커에서 꽤나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잠깐!


“왜, 또?”


--할 말은 안 끝났다.


“.......”



나는 조용히 전선기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사실 지금 전화를 받으면서 엄청 긴장을 한 상태이다.

 

 

혹시나 주변에서 보고 있을까, 테이블을 옮기며 주변을 확인했다. 의심스러운 변화는 없었다.

 

 

나는 계속 주변을 신경 쓰며 전화 통화에 집중했다.



“말해.”


--너 민창수 잡고 싶지 않냐?


“.......”


--내가 도와주지.


“필요 없어. 너네 도움 따위.”



말은 필요 없다고 뱉어냈지만, 순간적으로 끌리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민창수가 직접적으로 나를 잡는 수사에 뛰어든 이상, 제거하는 게 올바른 선택이기도 하고, 감정적으로도 민창수는 나에게 원수와도 가까운 존재였다.

 

 

전선기도 그걸 잘 아는지, 나의 거부에도 계속 나를 유혹했다.



--이미 사정은 민창수에게 들어서 잘 알고 있어.


“그래서?”


--니가 좋아하는 법적 해결은 힘들겠지만, 죽이는 거엔 동참해 줄 수 있는데...


“이유가 뭔데?”


--이유라.......



난 순간적으로 답답함을 느꼈다. 원래 거친 목소리는 이런 협상 같은 걸 좋아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노인이 거친 놈에게 전화통화를 하라고 시킨 것 같았다.

 

 

나는 짜증이 치밀어 조금은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야, 넌 답답하니까 노인 바꿔봐.”


--뭐? 이 새끼가...


“아, 신발 멍청한 새끼는 꺼지고 늙은이 바꿔보라고.


--이 신발놈이 진짜.......



욕을 한껏 뱉으려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더니 침묵이 잠시 이어졌다. 아마 인격이 바뀌는 순간인 것 같았다.

 

 

나는 숨을 죽이며 노인을 기다렸다. 아니나 다를까, 곧 걸걸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참 성격이 급하신 것 같소.


“그렇게 나와야지.”



이제야 말이 좀 통할 것 같았다. 나는 바로 형식이의 핸드폰을 꺼내어 녹음을 켜고 대화를 유도했다.



“무슨 제안이야 이건?”


--민창수 검사 말이오?


“그래, 니가 왜 날 도와주겠다고 하는 거야? 이제와서...”


--....... 좀 솔직해질 필요가 있는 거 아니오?“


“그게 무슨.......”


--지금은 나보단 민창수를 더 죽이고 싶을 텐데?


“??”



나는 무슨 소린지 몰라 순간적으로 말문이 확 막혔다.

 

 

노인은 꽤나 대단할 거라고 생각을 해서 나름 긴장을 하고 전화를 받았는데, 이건 영 딴소리다.

 

 

물론 나는 민창수에게 악감정이 있긴 했지만 전선기놈 만큼은 아니다. 나는 약간 의구심을 품으며 물었다.



“그건 아닌 것 같은데... 난 니 놈을 가장 죽이고 싶은데...”


--.... 꽤나 똑똑한 형사인줄 알았는데, 내가 너무 자네를 과대평가 했나보군.


“뭐?”


--고시원에 불을 낸 게 나라고 생각하시오?


“뭐야...?!”



꽤 민감한 주제에 내 목소리가 나도 모르게 커졌다. 내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잠깐 쏠렸다.



“쳇...”



나는 시선이 몰리는 걸 피하기 위해서 일단은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갔다. 그리고 화장실의 문을 잠그고 통화를 계속했다.



“뭐야... 똑바로 말해...”


--불을 지른 게 나라고 생각 하냐고 물었소.


“니가 아니면 대체 누가...”


--민창수요.


“...!!”



순간적으로 핸드폰을 놓칠 뻔 했다. 나는 두 손으로 핸드폰을 잡아서 벌벌 떨리는 손을 억누르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 깨져버린 평정심은 다시 돌아올 생각을 하질 않았다. 나는 신음하다 시피 그에게 말했다.



“... 개소리...”


--믿지 않고 싶으면 그렇게 하여도 좋소. 사실 민창수는 나에게도 약간 짜증나는 인물이거든.


“그건 또 뭐지...?”


--자네도 알겠지만, 난 서주희의 재산을 가지고 잘 굴려먹고 있었소. 고시원도 곧 매각 대상이었소. 고시원은 안정적인 수입이긴 하지만 큰 돈을 벌진 못하기 때문에 팔아서 그 돈을 가지고 다른 곳에 굴리려고 했었지.


“그런데?”


--민창수가 나타나서 불을 질러 버렸소. 바보 같은 분신놈이 진작에 자네의 존재를 나한테 알려주지 않아서 그때 자네가 그 고시원에 살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충격적인 사실이긴 했지만 신빙성이 있진 않았다.

 

 

왜 민창수가 갑자기 들이닥쳐서 고시원에 불을 질렀단 말인가? 조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 그런지 손의 떨림도 점차 멈췄고, 평정도 되찾아갔다. 나는 짜증나는 어투로 말했다.



“개소리 하지 마, 민창수가 나 있는 건 어떻게 알 것이며, 불을 지르는 멍청한 짓을 한 위인으로 보이나? 내가 있는 걸 알았다면 경찰을 끌고 왔을 테지.”


--물론 정상적인 검사라면 그렇게 했겠소. 하지만 당신이 약점을 쥐고 있다면 그게 좀 달라지지 않겠소?


“무슨 소리야?”


--민창수는 고시원에 와서 CCTV부터 점검했다고 하오. 그리고 자네가 들어온 흔적은 있는데 나간 흔적은 없자, 그 길로 불을 질러 버렸소. 왜 그런지 아시오?


“증거... 인가...?”


--그렇소. 자네가 바로 잡히면 소지하고 있던 모든 물품이 압수당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자네가 가지고 있던 민창수의 약점이 드러나겠지. 그래서 불을 지르고 바로 경찰과 소방서에 신고를 한 것이오. 그러면 자네를 손쉽게 포위하여 잡을 수 있고, 그 약점마저 불타 없어질 테니까.


“아.......”


--서주희를 내가 발견한 건 그때였소. 지금은 다시 도망쳐 버렸지만, 아마 자네가 데리고 있다고 난 생각하오. 서주희는 어디 의지할 곳이 없거든. 웃긴 건 자네 방에서 자네는 있지 않았고, 여자 시체 한 구가 발견 된 거요.


“.......”


--신원 파악은 다 됐소. 그 여자는...


“그만해.”



나는 더 이상 그 날의 기억을 들추고 싶지 않았다. 누나의 죽음에는 내 책임도 아예 없다고 하지못한다.

 

 

불을 지른 게 민창수라니, 분노가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아직도 가끔 꿈에 불길에 휩싸인 누나가 나타나곤 했다.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움직이지 못하는 누나가...



--민창수는 그 방화에서 자네를 잡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실패로 돌아가자 어느 정도 당황한 것 같소. 바로 자네를 방화범에 친족살인을 한 범인으로 지목을 했소. 이 정도 알아낸 것도 한참 걸렸소. 민창수는 술을 잘 못하더군?


“그 날 이후로 계속 만났나 보지?”


--우리 아버지가 누군지 알 거 아니오?


“.......”



심각한 갈등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솔직한 심경으로 지금 상태는 분명 전선기보다는 민창수를 죽이고 싶었다.

 

 

한참 말없이 생각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화장실에 들어오려고 하는지, 문고리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철컥, 철컥.



문고리는 몇 차례 그런 소리를 내더니 이내 조용해 졌다. 나는 졸인 마음을 놓고 다시 생각을 하려 했는데, 이번엔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똑똑똑.


“거기 누구 있어요? 급한데 빨리 좀 나오시죠.”



신발. 욕이 절로 나왔다. 대체 이런 중요한 순간에 태클을 거는 놈이 누군지 상판때기좀 보고 싶었다.

 

 

나는 밖에 들리지 않을만한 조용한 목소리로 전화기에 대고 말했다.


“그 제안. 생각 좀 해보겠어. 잠시 생각할 시간을 줘."


--알겠소. 내일 정확히 이 시간에 다시 전화를 하지. 그때 정확한 답을 주지 못한다면 나도 자네를 적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소.


“병신. 우린 원래 적이야.”



-딸깍.



나는 전화기를 끊고 다시 양복 주머니에 넣었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짜증나게 계속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쾅쾅.


“아 씨, 누구야? 빨리 안나와?! 급해 죽겠구만!”



나는 거칠게 문을 열고 누군지 바라봤다. 문 앞에는 내가 뒤를 쫓고 있던 애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나는 그때 전선기를 밟았던 녀석의 얼굴을 뚫어지게 보다가, 고개를 꾸벅 숙이고 사과를 했다.



“헤헤, 죄송해요. 큰 거 싸는데 집의 버릇처럼 문을 잠궈 버려서 그만...”


“에이, 아저씨 다음부턴 좀 조심하시죠.”


“예~예.”

 

 

 

 

나는 신속하게 녀석들이 비워둔 자리로 돌아왔다. 역시나 자리는 완전히 비어 있었고, 지갑이 몇 개 테이블 위에 널부러져 있었다.

 

 

나는 아까 봐둔 청년의 지갑을 발견하고 슬쩍 열어보았다.

 

 

산지 얼마 안 되서 그런지 뻣뻣한 지갑의 속에는 신분증과 체크카드가 들어 있었다.



“운이 좋군...”



나는 지갑을 챙기고, 나가면서 그 카드로 계산을 한 뒤에 신분증들만 뺀 채로 지갑을 카운터 앞에 던져버렸다.

 

 

다행히 카운터에 있던 직원은 한눈을 팔고 있어서 크게 의심을 받진 않은 것 같았다.

 

 

내 생각엔 이 말끔한 의상 때문이다. 나는 그대로 주점을 나와서 원룸 방향으로 향했다.

 

 

가는 동안 나는 손에 꽉 쥐고 있는 청년의 신분증을 꺼내 보았다.

 

 

그 중 하나는 학생증이라 청년의 학교를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WW대학... 법학과...”



문득 과거에 시험 준비를 하던 때가 떠올라,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고, 청년이 조금 불쌍하기도 하였다.

 

 

그 두꺼운 법서를 보려면 진짜 뇌에 개미 수십마리가 헤엄치는 기분이 들었었다.



“쯧쯧...”



불쌍한 마음에 학생증을 보며 혀를 찼다. 학생증의 사진은 청년의 얼굴과 닮긴 했지만 많이 달랐다.

 

 

사진관에서 보정을 심하게 한 것 같았다. 나는 내 지갑을 꺼내어, 학생증을 넣어두며 내 신분증을 슥 바라보았다.

 

 

난 어찌나 내 얼굴과 똑같이 나왔는지, 요즘 기술이 얼마나 좋아졌는지 세삼 느껴졌다.



“오...”



다음 신분증은 주민등록증 이었다. 나는 생각지도 않고 꺼내들었을 뿐인데, 대박 정보가 주민등록증에 적혀 있었다.

 

 

바로, 청년의 집 주소였다. 나는 쾌재를 부르며 집 주소를 천천히 살펴보았다.



“.......”



하지만 이내 곧 짜증이 밀려왔다. 이 청년은 아무래도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온 모양이었다.

 

 

집 주소는 부산광역시로 되어 있었다. 나는 혹시나 해서 나의 지갑 안에 신분증 두개를 다 넣어두었다.

 

 

이래저래 살펴보는 데에 집중을 하다보니 어느덧 원룸에 도착했었다.

 

 

일단은 계획대로 청년의 정보를 캐는 데는 성공했지만, 찝찝하기 그지없었다. 무엇보다,

 

 

아까 걸려온 전화가 문제였다.



“... 쳇... 어이가 없구만...”



나는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로 원룸 바닥에 누워 곰곰이 전선기가 했던 말을 곱씹어 보았다.

 

 

민창수가 고시원에 불을 질러서 우리누나가 죽었으니, 민창수를 죽이는 것을 도와달라는 이야기였다.

 

 

아니, 정확히는 도와준다는 이야기겠군.



“무슨 일 있으세요...?”



고개를 슥 돌려보니 서주희가 조금은 겁먹은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서주희는 탈출을 한 이후로 소극적인 성격이 된 것 같았다.

 

 

그전에는 쫓기는 처지였어도 꽤나 활달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완전히 순한 양이 다되었다.

 

 

가끔 먼저 장난칠 때를 빼놓고는 말도 없이 묵묵하게 원룸에서 기본적인 빨래나 청소에 열중했다.



“아니... 별로...”



나는 약간 귀찮다는 생각을 하며 눈을 감았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정답이 나오질 않았다.

 

 

아니, 정답 같은 건 존재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내가 선택하는 길이 정답이 될 것이다.

 

 

항상 최악의 상황에서 선택을 해왔는데, 이런 유리한 조건이 눈에 들어오자 그것도 나름대로 고민이었다.



“휴.......”



생각에 생각을 계속하다보니 이것저것 꼬이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이 되자 생각을 하는게 귀찮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결국 나는 이것저것 사리분별을 하기 보다는 나에게 최선의 선택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았다.



“어차피 목표는 둘...”



그렇다. 어차피 둘 다 죽이려는 목적이 있다. 민창수는 죽이려고 까진 생각하지 않았지만 전선기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죽이지 않고는 못 배길 것 같았다.

 

 

만약에 전선기의 힘을 빌린다면 쉽게 민창수를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전선기를 처리하는 건 그 이후이다. 나는 결심을 내리고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좋아! 뭐 이렇게 된거...”



내가 갑자기 일어나서 놀랬는지 서주희가 토끼 눈이 되어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서주희를 슥 보고 다시 바닥에 누웠다.

 

 

누워있다보니 잠이 슬슬 와서 눈을 감아보았다. 눈을 감자마자 서주희의 목소리가 들렸다.



“식사는 안하세요...?”


“아까 먹었어.”


“아... 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씽크대에서 물소리가 들리더니, 서주희가 설거지를 하는 지 그릇을 닦는 소리가 들렸다.

 

 

언제 잠들었는지 모를 정도로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
.
.
.
.



“음........”



어제 자던 그대로 나는 방바닥에 누워 있었다. 아니, 조금 달라진 점이 있다면 양복 외투가 한쪽 벽에 잘 걸려있다는 점일 것이다.

 

 

내가자는 사이에 서주희가 불편해 보였는지, 정리를 해 둔 것 같았다.

 

 

몸을 움직여 보니, 뻣뻣하게 굳은 게 편하게 자지는 못한 것 같았다.

 

 

하기야 그도 그럴게, 이것저것 생각할 것도 많았고, 불편한 양복을 입고 자서 그런 것 같았다.

 

 

민창수는 꽤 호리호리한 편이라 이 양복바지는 나에겐 조금 작다.

 

 

나는 굳은 몸을 풀겸 정신도 차릴 겸해서 기지개를 쭉 폈다.



“으........! 응...?”



문득 창문을 보니 밝은 햇살이 커튼을 뚫고 나에게 비추고 있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헉 하는 소리와 함께 시계를 보았다.



-11:32



“우아아아악!”


“왜, 왜 그러세요?”



내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자, 방을 닦고 있던 서주희가 깜짝 놀래며 나를 바라봤다.

 

 

나는 서주희를 원망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진작 깨웠어야...!으윽...!”



나는 서주희에게 타박을 주려다가 이내 입을 다물었다.

 

 

우리 노숙자들은 아침 6시 30분 즈음에 모였다가 인원파악 및 상태를 점검하고 각자의 구역으로 해산한다.

 

 

하루의 시작이자, 각오를 다지는 모임인 것이다.

 

 

지금까지 꼬박꼬박 참석을 해서 대충 분위기를 아는데, 내가 봤을 때는 누구도 빠진 적이 없었다.



“대체 무슨 일로...?”


“됐고, 내 옷 어디있어?”


“저기에...꺅!”



남의 눈을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나는 서주희가 보든 말든 벨트를 풀고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서주희는 몸을 반대 방향으로 돌리고 눈을 손으로 가린 채 엎드려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신속하게 옷을 갈아입은 나는 얼른 현관문을 나섰다. 서주희는 그제야 나를 보고 말했다.



“저...! 밥은...!”


“됐어, 너나 챙겨 먹어.”



나는 아무렇게나 말을 뱉은 뒤에 원룸을 뛰쳐나왔다. 이렇게 초조한 적이 있었던가? 나는 속으로 수없이 무운을 빌며 지하철로 뛰었다.

 

 

원룸과 지하철의 거리는 먼 편은 아니었지만 이미 5시간 이상 늦은 나로써는 이게 최선이었다.

 

 

지하철을 내려가는 계단마저 4칸씩 뛰어내려온 뒤에, 형님의 구역으로 내려왔다.

 

 

형님이 항상 앉아있는 자리에 형님이 앉아있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형님이 나를 슥 바라보았다.



“왔냐?”


“헉...헉... 죄송합니다!”


“뭐가?”


“늦어버려서...”


“알긴 아는 구나?!”



-퍽.



“우악...!!”



형님이 서있던 나의 정강이를 주먹으로 힘껏 쳤다. 나는 꼴사납게 바닥을 구를 수 밖에 없었다.

 

 

형님은 온몸으로 바닥을 닦고 있는 나를 한심하게 쳐다보며 혀를 찼다.



“쯧쯧... 막내 새끼가, 긴장도 안하고... 너 이 새끼는 그 일만 없었으면 바로 방출이야!”


“으윽... 죄... 죄송합니다...!”


“됐고, 어젠 어딜 싸돌아 다녔냐?”



나는 아픈 정강이를 슥슥 문지르며 형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 형님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꼴값떠네... 똑바로 안 앉아?”


“아...예...”



나는 형님의 옆에 편하게 앉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내가 자리에 앉자 형님이 다시 나에게 물었다.



“어제 어디갔었냐고?”


“어제 잠깐 떠오르는게 있어서 나갔다 왔어요.”


“그니까 어디?”


“전선기 놈이 다음으로 죽일 사람을 알 것 같거든요.”


“그래.......?”



형님은 더 이상 묻질 않았다. 나는 여기서 고마움을 느꼈다.

 

 

나로서는 전선기에 대하여 많은걸 풀어놓기에 걸리는 게 많았다.

 

 

전선기는 내가 가졌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다 없애버렸다.

 

 

그래서 나는 성훈이 이후로 전선기에 관련된 깊은 사정을 누구에게 속 시원하게 이야기 한적이 없다.

 

 

물론 형님은 이미 꽤 많은 사실을 알고 있지만, 내가 너무 많은 걸 알려주게 되면 형님도 모르게 날 도와주다가 변을 당할 수도 있었다.

 

 

나는 어제 전선기에게 받았던 제안에 대하여 상담을 하려다가 꾸욱 눌러 삼켰다. 조금의 정적이 흐른 뒤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그래. 다음부턴 절대 늦지말고.”


“예.”



나는 인사를 꾸벅 마치고 내 깡통이 들어있는 보관함이 있는 방향으로 향했다. 그때 뒤에서 형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나는 조금 당황하여 대답도 잊은 채 고개를 뒤로 돌려 형님을 바라보았다. 형님은 여전히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고, 곧 입만 움직였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써먹어도 된다.”

 

 

 

 

 

 

나는 그 자리에 멍하게 멈출 수밖에 없었다.

 

 

무언가 속에서 북받쳐 올라왔지만, 나는 꾸욱 누르며 형님에게 고개를 푹 숙이고, 뒤를 돌았다.

 

 

약한 모습은 보이지 않으려는 마지막 자존심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나만 들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감..사합니다...”



그리곤 뒤를 돌아 보관함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아까부터 쇳덩이가 걸리던 주머니에서 나는 보관함 키를 꺼냈다.

 

 

보관함을 여니, 약간의 곰팡이 냄새와 동전 비린내가 은은하게 풍겨왔다.

 

 

조금은 무거운 깡통을 잡자, 꽤 오랜만에 손을 대는 듯한 낯선 기운이 손끝에 전해졌다.

 

 

아무래도 이런 대낮에 깡통을 찾아본 적이 처음이라 그런 것 같았다. 나는 깡통으로 철렁철렁 소리를 내며 나의 구역으로 갔다.



“으읏차...”



항상 앉았던, 나의 자리는 다른 곳 과는 다르게 먼지가 쌓여있지 않았다.

 

 

그만큼 내가 오랫동안 여기 머물었다는 소리일 것이다.

 

 

나는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기 전에, 깡통에 있는 돈을 세기 시작했다.



“15600원...”



마지막에 17600원이 남아 있었고 거기에서 500원짜리 동전 4개, 2000원을 꺼내서 담배를 샀으니 변동은 없었다.

 

 

나는 다시 깡통에 돈을 쏟고 고개를 푹 숙이며 조금은 굴욕적으로 보이는 자세를 취했다.

 

 

늦잠을 잤는데도, 앉자마자 잠이 쏟아졌다.



“익숙하지 않은데...?”



오늘은 왠지 기분이 이상한 것 같았다. 마치 게으름뱅이가 된 것같은 기분이었다.

 

 

그 동안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었고, 지금은 치열하게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이런 느낌을 받자, 기분이 묘했다.

 

 

나는 고개를 흔들고 나의 뺨을 톡톡 두드리며 정신을 차렸다.



“....... 이상하군.”



하지만 여느 때 같은 처절함과 긴장감은 없었다.



“왜 이러지...?”



이유를 찾기 위해 아무 생각이나 하기로 했다. 그러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역시 전선기의 제안이었다.

 

 

전선기와 손을 잡는다고 민창수를 죽일 수 있을까? 현역 유망한 검사를 그렇게쉽게?



“.......!”



나는 어느덧 전선기와 손을 잡았다고 굳게 믿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고 소름이 끼쳤다.

 

 

철천지원수와 손을 잡다니, 조금 벌어진 이빨 사이로 웃음이 흘러나왔다.

 

 

분명 손을 잡는다고 확정하진 않았지만, 이미 머릿속에선 민창수가 어떻게 죽을 건지로 가득 차 있었다.



“이건가...?”



그 동안 나를 나른하게 만들었던 것이 이것 때문인 것 같았다.

 

 

내가 굳이 수고를 하지 않더라도 목표한 바를 이룰 수 있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게 맞다. 덕분에 속으로 다시 한번 반성을 할 수 있었다.

 

 

분명 민창수도 죽여야 하지만, 그건 게임에서 말하자면 선택적 임무일 뿐. 내 주요 임무는 전선기를 죽이는 것이다.

 

 

나는 숨을 한번 고르고 다시 생각해 보기로 했다.



“하아.......”



덕분에 잠이 오던 게 확 달아났다. 나는 바닥을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듯 끄적끄적하며 생각을했다.

 

 

전선기는 내 앞에서 모습을 노출하면서 손을 잡을 것인가, 아니면 독단적으로 민창수를 처리할 것인가이다.

 

 

전자라면 나는 민창수를 노리면서 전선기를 노릴 수 있다. 하지만 후자로 반응이 온다면, 그 이상 나에게 좋은 조건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전선기가 내 도움을 받지 않고 민창수를 죽이려 한다면, 굳이 나에게 전화를 했을 리가 없다.



“복잡하군...”



나는 계속해서 지하철에 있는 시계를 버릇처럼 바라보기 시작했다.

 

 

전선기가 어제 연락을 한 시간은 12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계속 시계의 초침만 바라보고 있자, 시간이 더욱 안가는 것 같았다.

 

 

평소에는 시간 같은 건 신경 쓰지 않았지만 오늘은 왜 그렇게 신경이 쓰이는 지 알 수 없었다.



-땡그랑.


“감사합니다...”



신경이 예민해져서 그런지, 어느새 나는 동전이 들어가는 금액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이 지경에 이르자 스스로가 한심해져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차라리 잠을 자는 게 낫다고 생각이 들어서 눈을 감았다.

 

 

하지만 불안해져서 이내 다시 눈을 뜰 수 밖에 없었다.



“혹시 모르니까...”



전에 형님이 동전 깡통을 가지고 장난을 쳤을 때는 정말이지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나는 혹시 모를 깡통 도둑에 대비를 해서 깡통을 손으로 꼭 쥐고 잠을 청했다.

 

 

아직도 아까의 나른한 기운이 남아있어서 그런지 잠이 술술 왔다.

 

 

누군가가 동전을 던져줄 때마다 깰 수밖에 없었지만, 나는 다시 졸 수 있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졸고나자, 누군가 나의 어깨를 흔들기 시작했다. 목소리를 듣자마자 단박에 칠복이 아저씨 인 줄 알았다.



“새끼, 또 자냐?”


“... 아저씨가 여긴 왠일로...”


“너 아침에 안나왔잖아? 심심해서 그냥 같이 좀 가자고.”


“난 별로 심심하지 않은데요...”


“잔말 말고 따라와, 저녁식사모임도 안 올거야?”


“예...?”



나는 문득 시계를 바라보았다. 시계의 시침이 6시를 살짝 넘기고 있었다.



“벌써 이렇게...”


“응? 이놈 보게, 얼마나 잔거야?”


“그러게요? 제가 얼마나 잤죠?”


“미친놈. 일어나기나 해. 깡통은 다 샜냐?”


“아, 맞다... 아직...”


“쯧쯧... 정신을 놓고 사는구만, 놓고 살어.”



나는 깡통을 화악 뒤집었다. 동전이 대리석을 두드리는 소리가 기분 좋게 들렸다.

 

 

나는 조느라 느끼진 못했지만, 오늘 수입이 꽤나 짭짤한 것 같았다.

 

 

나는 기분 좋게 동전을 세다가 칠복이 아저씨를 슥 쳐다봤다.

 

 

아저씨는 내 시선에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왜?”


“좀 안 도와줘요?”


“내가 왜?”


“음... 그냥... 아니, 좀 도와주면 안돼요?”


“참 나. 그게 도와달라는 사람의 태도냐?”


“제가 이런 말 안 꺼내도 도와줘야죠.”


“별놈을 다 보겠구만...”



칠복이 아저씨는 툴툴거리면서도 내 옆에 쭈그려 앉아 같이 동전을 세기 시작했다.

 

 

서로 동전만 세고 있으니 중얼거리는 소리만 나와 칠복이 아저씨 사이를 오갔다.

 

 

나는 마지막 동전을 세고 꽤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칠복이 아저씨에게 물었다.



“와... 꽤 많이 번 것 같은데요? 아저씨 얼마죠?”


“난... 10800원.”


“와, 전 12400원 이에요. 도합 23200원!”


“원래 얼마 있었냐?”


“15600원이요.”


“오... 엄청 벌었는데?”



오늘은 이 깡통을 내도 될 것 같았다. 드디어 깡통 한개를 채워 낼 수 있다니 발걸음이 다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나와 칠복이 아저씨는 늦지 않게 모임 장소에 도착을 할 수 있었고, 그 곳엔 먼저 온 사람들이 인사를 했다.



“야, 이 새끼 막내주제에 아침모임에 안와?”


“죄송합니다!!”


“됐고. 뭔 일 없었냐?”


“네! 덕분에!”


“다음부터 그러지 마라~”


“예!”



나는 진심으로 죄송스러워 어쩔 줄 몰랐다. 하지만 다들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 주어서 한결 마음이 편안해 지는 것 같았다.

 

 

곧 형님이 왔고, 나는 깡통을 낸 뒤에 밥을 먹기 시작했다.

 

 

한창 맛있게 참치마요네즈를 베어 물고 있는데, 칠복이 아저씨가 나를 조금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너 뭔일 있냐?”


“예...? 왜요? 없는데...”


“분명 무슨 일 있는 것 같은데?”


“.......?”


“좋은 일 같은 거... 표정이 지금까지 본 것 과는 조금 분위기가 달라서. 안 그러냐?”



칠복이 아저씨가 옆에 있는 한 40대 초반의 아저씨에게 물어봤고 아저씨도 나를 유심히 쳐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의 뜻을 내비쳤다.

 

 

나는 조금 당황했지만 겉으로 티는 내지 않으며 말했다.



“그런 거 없는데요... 좀 들떠보여요?”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좀....... 아니다! 니가 아니면 아닌거지! 먹자!”


“예...예...”



나는 남은 나머지 삼각 김밥을 한입에 쑤셔 넣었다. 입안 가득히 느끼한 참치맛이 요동쳤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저녁 식사 모임이 끝나고, 각자 해산을 하였다. 나는 형님에게 다가가 말했다.



“형님, 저 다 나았으니 다시 노숙을 시작하겠습니다.”


“벌써? 보이는 건 영 아닌데?”


“다 나았어요. 어차피 잘못 맞은 부위도 없는데요 뭘.”


“그러냐? 그래도 무리는 하지마라.”


“예.”



나는 형님 맞은편 자판기 옆에 자리를 잡았다. 자판기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은은한 온기가 차가운 벽을 타고 내 뺨을 적셔왔다.

 

 

나는 간만에 진짜 집에 돌아온 것 같은 감동을 느끼며 신문지를 머리끝까지 덮었다.

 

 

바닥이 차갑고 딱딱하긴 했지만, 원룸에서 자는 것 보다 훨씬 마음이 편했다.

 

 

나는 그러면서도 계속 시계를 주시했다. 이제 겨우 8시 정도 된 것 같았다.

 

 

12시가 넘어서 전화가 온다고 치면, 지금은 조금 자 두는 게 좋겠지만 낮에 계속 졸아서 그런지 쌩쌩하기만 했다.

 

 

문득 형님의 상태가 궁금해서 건너편을 보자 거친 숨이 따라서 신문지가 들썩들썩하는 걸 보니 이미 잠든 것 같았다.

 

 

나는 막상 잠이 오질 않자, 답답함을 느끼며 몸을 감싸고 있는 신문지를 제꼈다.



“제길...”



지금까지 잠이 안온 적은 없었다. 그만큼 하루하루가 고단하고 심리적으로 피곤했는데, 오늘은 영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속으로 수없이 반성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지하철 밖으로 나왔다.

 

 

한여름이라 그런지 밖에 나와도 답답함은 풀리질 않았다. 나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어 입에 물린 뒤 인도의 턱에 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칙... 칙... 화륵...


“후.......”



기분이 조금은 풀리는 것 같았다. 그렇게 멍하게 지나다니는 차의 헤드라이트를 보며 아무생각 안하고 담배만 계속 피워댔다.

 

 

조금 머리가 아프다 싶어서 고개를 푹 숙이니 찌그러진 담배꽁초들이 여러마리 바닥을 기어 다니고 있었다.

 

 

나는 지금 피고 있는것도 마저 던져버리고 핸드폰을 꺼내어 시계를 보았다.



-12:04



모르고 있었는데 막상 그 시간이 갑자기 다가오자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생각을 해보니 아직 정확히 내 생각을 정리하지도 않은 것 같았다.

 

 

전선기가 어떻게 대답하든지 다 대비를 해야 했다는 생각에, 오늘 하루에 대한 후회감이 물밀 듯 쏟아졌다. 나는 급하게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생각에 들어가기도 전에 핸드폰에서 반응이 먼저 왔다.



-위이이이이잉. 위이이이이잉. 위이이이이잉.



받을까? 한번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그 사이에 뭔가를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핸드폰의 진동이 한번 울릴 때마다 내 심장은 수백번 요동치는 것 같았다.

 

 

어쩌면 이게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그 생각이 들자마자 핸드폰을 거칠게 열었다.



“어.”


--다른 말은 하지 않겠소. 그리고 다른 말도 듣지 않겠소. 오직 한 마디만 하시오. 그리고 나는 그 대답을 듣고 바로 전화를 끊을 것이고, 대답에 대한 통화는 내일 이 시간에 다시 하겠소.


“알겠어.”


--우리와 손을 잡겠소?






“.......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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