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웃대(인생사프리님)
제가읽었던 이야기들중 재미나게 본 이야기입니다.
스크롤 압박이 있어요..^^
룸메이트 1화 ; http://pann.nate.com/b318390630
룸메이트 11화 ; http://pann.nate.com/b318393961
룸메이트 31화 ; http://pann.nate.com/talk/318408053
이어지는판이 10개밖에 되질 않아서 다음 31화를 찾으시는분을 위해 링크걸어놨습니다..^^
위에있는 링크 클릭하시면 31화로 이어집니다..^^
--그건 무슨 소리요?
전선기도 당황했는지 들리는 목소리에 흔들림이 느껴졌다.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이 사실을 말하는 데도 상당히 힘든 일 이었다. 잠시 서로간의 침묵이 일었고, 그 침묵을 먼저 깬건 전선기였다.
--알겠소. 그거면 엄청난 정보요. 더 할말 없는 것 같은데, 이만 끊겠소
“.......”
-툭.
가벼운 소리를 내며 전화는 끊겼다. 하지만 나는 한참동안 전화기를 받은 채로 들고 있었다. 내 스스로가 한심해졌다.
“무슨짓을 한거지...?”
전선기는 분명 민창수를 죽이는데 딸을 이용할 것이다. 심할 경우에는 딸도 같이 죽일 수도 있다. 일단 유괴는 기본일 것이다. 문득 아까 보았던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쩔수 없어... 어쩔수 없었어...”
나는 입술을 꽉 깨물며 양심이 허물어져 버린 고통을 감내했다.
스스로 좀 더 나쁜놈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며 합리화 시키고 있었다. 나는 방수휴대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하철로 되돌아가는 발걸음이 아주 무거웠다. 땅에서 손이 올라와 내 발목을 잡고 있는 기분이다.
“후유...”
한숨이 끝없이 흘러나왔다. 지하철로 내려오니 형님은 이미 자리를 깔고 누워있었다.
나도 잠을 청하기 위해서 자판기 옆에 있는 내 자리로 가서 잘 준비를 하고 누웠다. 신문지를 덮으니, 형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휴가는 재밌었냐?”
“아직 안 주무셨군요?”
“너 오는 소리에 깼다. 뭐하고 지냈냐?”
“여태껏 살면서 가장 최악의 휴가였다고 말씀드릴 수 있네요...”
“으음...”
형님은 나지막이 소리를 내더니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최대한 나를 배려해 주는 것이었다.
나는 형님에게 감사함을 느끼고 잔뜩 긴장해 있는 몸에 힘을 풀었다.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피로가 많이 쌓여있었는지 눕자마자 잠들어버리고 말았다.
잠시 눈만 감은 것 같은데 누군가 툭툭 건드리는 게 느껴졌다. 나는 잘 떠지지 않는 눈을 겨우 뜨며 나를 건드리는 사람의 정체를 확인했다. 형님이었다.
“언제까지 잘거야? 아침모임 안갈거냐?”
“아.......”
너무 잠에 푹 빠져버린 것이었다. 나는 눈에 느껴지는 까칠 거리는 눈곱을 떼어 내고 자리를 정리했다.
형님은 이미 정리를 다 마치고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 눈빛이 부담스러워 최대한 빠르게 정리를 마쳤다. 정리를 끝내고 일어나자마자 형님이 말했다.
“가자.”
“예.”
나는 먼저 가고 있는 형님의 뒤를 정신없이 뒤쫓았다. 모임 자리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와있었다. 칠복이 아저씨가 싱글벙글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오. 휴가는 재밌었냐?”
“에이그. 말도 마세요. 피곤하고 힘들고 스트레스 받고...”
“있는놈이 더한다더니...”
칠복이 아저씨가 나를 보며 혀를 끌끌 찼다. 이번 아침 모임에는 별다른 안건이 나오지 않았다.
하기야, 안건이 나와봐야 귀찮은 정보가 주로 다뤄지니 안건은 없는게 나았다.
안건은 보통 노숙자 단속 강화나 쓸데없는 폭행에 휘말린 이야기가 많았다.
그렇게 아침 모임을 끝내고 나는 내 구역으로 가서 깡통을 놓았다.
“뭔가 허전하구만...”
텅빈 깡통을 보고 있자니 뭔가 허전하긴 했다. 그동안은 꽉찬 깡통을 들고 다녔는데, 아무것도 없으니 마음이 썩 좋진 않았다.
그렇게 구걸을 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있는데, 문득 민창수가 마음에 걸렸다.
나는 저녁 모임에서 밥을 먹은 뒤에 곧바로 공중전화박스가 있는 곳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리고 아까 챙겨둔 400원을 넣고 번호를 눌렀다. 곧 원시적인 신호음이 가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민창수의 목소리였다. 몹시 다급해 보이는 어투였다. 평소에 그렇게 침착하던 민창수가 왜 이렇게 당황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신경쓰지 않고 차분한 어투로 말했다.
“나다.”
--누..누구야! 니가 우리 희원이를...!
“무슨 소리 하는지 모르겠군. 나야. 박선후.”
--박선후...! 너야...? 니가 희원이를 데려간 거냐?!
“뭔 소리야? 희원이는 또 누구냐?”
--....... 그건 알 필요 없고! 니가 데려간 거 아니야?!
“아니야. 괜히 생사람 잡는군.”
딸의 이름이 희원이인 것 같았다. 민창수의 성을 땄을 테니 민희원. 근데 문득 의문가는 점이 있었다.
희원이를 데려가다니, 이런 짓을 할 사람은 한명 밖에 없었다.
--거짓말 하지마! 원하는 게 뭐야? 돈?
“.......”
-툭.
나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전선기가 벌써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였다.
이렇게 빠르게 움직이다니, 어이가 없을 정도로 신속했다. 답답함이 가슴을 가득 메웠다.
뭔가 모르게 씁쓸했다. 나는 위치 추적을 받을까봐 신속하게 그 자리에서 떴다. 이 날은 쉽게 잠들 수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자리에 누우니 순식간에 정신을 잃고 말았다. 다음날은 늦잠을 자지 않았다.
오히려 30분이나 일찍 일어나버려서 할일이 없었다. 나는 간단한 체조로 몸을 풀고 언제나처럼 형님을 깨운 뒤에 모임에 참석했다.
이날도 역시 별 일은 있지 않았다. 나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내 구역으로 돌아왔다.
“오늘은 사람이 적구만...”
나는 아침에 바짝 돈을 벌고 점심을 먹은 뒤에 깡통을 보관함에 넣었다. 전선기에게 물건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전선기에게는 고시원으로 물건을 보내라고 했지만, 나는 고시원쪽으로 향하지 않았다. 고시원이 아닌, 근처의 VV아파트로 갔다.
고시원으로 보내라고 했다고, 곧이곧대로 고시원에서 물건을 받으면, 전선기에게 나의 위치가 노출될 위험이 있다.
“곧 오겠군...”
형사시절에 사건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 조사했던 게 있다. 이 동네의 택배는 무작위로 가는게 아니라, 순서에 맞게 배달을 한다.
그리고 이 시간에 택배차가 오는 것이다. 나는 평범하게 아파트를 배회하며 차를 기다렸다.
그리고 곧 다소 거친 엔진소리를 내며 택배차가 아파트로 들어왔다. 나는 그 주변에서 배달원이 떠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 물건을 몇 개 들고 배달원이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얼른 택배차로 접근했다.
“좋군.”
역시나 배달원은 차의 뒷문을 잠그지 않았고, 나는 얼른 물건을 확인하고 들고 나왔다.
일이 의외로 쉽게 진행이 되어 기분이 좋았다. 나는 주변을 살피고 주변에 물건을 확인할 적당한 장소를 찾았다.
“... 저기가 좋겠군...”
멀지 않은 곳에 대형 마트가 있었고, 야외에 화장실이 하나 있었다. 나는 나름 기대를 하며 그곳으로 들어갔다.
박스의 크기는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크기였다. 그리고 투명테이프로 봉해져 있었다. 나는 길게 생각하지 않고 박스를 거칠게 뜯었다.
-지이익.
이상한 소리를 내며 박스가 열렸다. 나는 바로 내용물을 확인해 보았다.
“.......”
예상대로 내용물은 정확히 있었다. 모델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살상용이라는 건 확실했다.
총알은 장전이 되어있는 상태였고, 15발이 들어있었다. 나는 조금 더 권총을 살펴보다가 주머니에 넣고 종이를 확인해 보았다.
-오늘 20시 정각.
메모는 길게 되어있지 않고 간략하게 기술이 되어있었다. 아마 민창수의 딸인 민희원에 관해서 이야기를 할 것 같았다.
나는 메모지를 갈갈히 찢어서 화장실 변기에 넣고 물을 내렸다. 그리고 소용돌이에 휩쓸려 내려가는 걸 잠시 지켜보고 화장실에서 나섰다.
“후.......”
형사일땐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막상 주머니에 권총을 들고 돌아다니자니, 꽤 부담이 되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걸었지만, 누가봐도 어색한 걸음걸이 일 것이다. 나는 얼른 내 구역으로 다시 돌아와서 구걸을 계속했다.
얼른 8시가 되기만을 기다렸다. 저녁모임에서 내 상태가 조금 이상한걸 칠복이 아저씨가 발견했는지, 나에게 물었다.
“너 어디 아프냐? 왜이렇게 안절부절 못해?”
“예? 아뇨... 아니에요...”
“새끼 뭔가 이상하네...”
칠복이 아저씨는 나의 이상한점을 눈치채긴 했지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나는 후딱 저녁을 먹고 저번에 전화를 했던 그 장소로 다시 갔다. 시간이 느리게 갔지만, 전화 올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정확히 8시가 되었을 때, 전화진동이 울렸다. 나는 이번엔 지체하지 않고 전화를 받았다.
--식사는 잘 하셨소?
“잡소리는 집어치우지.”
--말투가 꽤나 거치오.
전선기의 말투엔 조롱이 가득했다. 그 말을 듣고 이자니 열이 뻣칠 지경이었지만 전화로는 어떠한 상처도 줄 수 없다.
나는 꾸욱 참고 말을 이었다. 일단은 그에게 확실히 확인을 해야할 게 있었다.
“니가... 했지?”
--무엇을 말이오?
“모르는 척 하기는... 민창수 딸, 민희원. 니가 데리고 있지 지금?”
--정보가 꽤나 빠르시군. 민창수에게 직접 전화라도 하신건가?
“쳇, 네놈은 행동력 하나는 일품이군.”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탄복이었다. 아마 전선기는 내가 민창수에게 딸이 있다고 알려준 다음날 바로 그 딸을 유괴했을 것이다.
“뭐, 됐고. 이제 어떻게 할건데?”
--배우들은 다 모였소. 이제 연극을 시작하기만 하면 되오.
“무슨 뜻이야?”
--원래대로라면 민창수를 죽이는데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오. 하지만 그대가 나에게 좋은 정보를 주는 바람에 일이 금방 끝나게 되었소.
“.......”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선기가 전해준 GPS를 꺼내어 확인하였다. 전선기는 아직 자신의 집에 있었다. 그때, 전선기가 말을 이었다.
--계획을 일부 수정하였소.
“일부...?”
--그렇소. 민창수는 그대 손으로 죽여주길 바라오. 권총도 있으니.
“쳇, 말이 너무 이랬다저랬다 하는 거 아니야?
--나로썬 최대의 배려요. 민창수를 직접 죽이고 싶지 않소?
“... 말해봐.”
긴장해서 그런 건지 기대되어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심장이 벅차게 뛰었다.
--내일 해가 저문 뒤에 민창수의 집으로 가시오. 그리고 그곳에서 민창수를 죽인 뒤에 빠져나오면 되오. 주변 정리는 이미 내가 확실히 마쳐두었소.
“정말 그거면 되는가?”
--못 믿겠으면 하지 마시던지.
전선기의 말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나도 그다지 의심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니, 의심하고 싶지 않았다는 말이 좋을 것이다.
전선기를 죽이겠다고 경찰서를 뛰쳐나와서, 지금까지 이뤄놓은 게 뭐 하나 있는게 없었다.
그 사이에 누나만 죽어버리고, 장례조차 치루지 못했다.
“하겠어. 해가 저물고 나서 끝을 보지.”
--좋소. 그럼 그렇게 알고 있겠소.
전화는 그걸로 끊겼다. 나는 감정을 억누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선기는 나에게 특별히 조심할 부분을 말해주지 않았다.
주변정리를 다 했다는 게 얼마나 깔끔하게 했는지 짐작이 갔다. CCTV부터 해서, 경비실, 심지어는 주변 이웃까지 조치를 취해놨을 것이다.
나는 생각을 정리하고, 지하철로 돌아왔다. 돌아오자마자 잘 준비를 하는데, 전광판을 보면서 누워있는 형님이 말을 걸었다.
“요즘 바빠 보인다? 무슨 일 있냐?”
“하하, 바쁘긴 바쁘죠. 제 일이 뭐 그렇지 않겠습니까?”
“음... 항상 몸조심하고 그래라.”
“예, 걱정 마십쇼.”
나는 씨익 웃어 보이고 자리에 누웠다. 평소엔 꽤 차갑게 느껴지던 바닥인데 오늘따라 시원하게 느껴졌다.
온몸에 흥분상태로 몸이 달아 올라있던 것 같았다. 나는 신문지를 머리 끝가지 뒤집어쓰고 눈을 감았다.
하지만 잠이 쉽사리 오진 않았다. 이것저것 잡생각이 끊임없이 생각나는 바람에 잠자는데 집중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평소보다는 다르게 꽤 오랜시간 뒤척인 뒤에야 겨우 잠들 수 있었다.
아침은 유난히 상쾌했다. 나는 아침모임에 참석을 하고 착실하게 내 구역으로 왔다.
주변에서 나에게 말을 많이 걸어주었지만, 나는 일부러 말을 아꼈다. 내가 지금 많은 말을 하게 되면 이 계획이 술술 빠져나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계속 어떤 일인지 캐 보려던 칠복이 아저씨는 결국은 포기하고 나에게 말해주었다.
“새끼, 어떤 일인진 모르겠는데, 잘해라. 몸 조심하고.”
“하핫, 네 알겠습니다. 정말 고마워요.”
“고맙긴...”
평소대로라면 누군가 내 깡통에 동전을 넣어주면 꾸벅 인사라도 했지만, 이번엔 그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여러 가지 생각이 계속 머리를 헤집고 있어서 바로 앞에 깡통에 조차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덕분에 시간은 참 빠르게 흐르는 것 같았다.
“해가 진 뒤라...”
해가 진 뒤라고 하지만, 나는 저녁모임이 끝나자마자 행동을 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요즘은 여름이라 시간도 얼추 맞는다.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매운고추참치 삼각김밥을 입속에 쑤셔놓고 있었다.
“새끼, 천천히 좀 먹어라. 누가 쫓아와?”
“아... 예...”
사람들은 더 이상 나의 이상 상태에 대해서 물어보지 않았다. 모두가 어느정도 나를 이해해 주는 것 같아 속으로만 무한한 감사를 표시했다.
나는 저녁을 먹고 형님에게 잠시 나갔다 온다는 인사를 드리러 갔다. 형님은 먼저 나를 알아보곤 말했다.
“어, 나갔다오려고?”
“예. 갔다오겠습니다.”
“조심하고...”
“예.”
민창수의 집은 누나와 사귈 때 몇 번 가본 적이 있어서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민창수의 아파트는 현역 잘나가는 검사답지 않게 수수한 편이었다.
옛날엔 왜 이런곳에 사나 약간은 불만이었는데, 지금은 보안 시스템이 더 널널한 탓에 나로썬 훨씬 좋았다.
“음...”
해가 진 뒤에 온도가 그나마 내려간 시간이라 선선한 공기가 폐를 가득 채웠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셔서 정신을 가다듬고 민창수가 사는 아파트로 들어갔다.
민창수가 사는 라인에는 전등이 고장이 났는지 켜지질 않았다. 원래대로라면 센서가 작동해서 불이 켜질텐데 그런건 없었다.
“14층인데...!”
생각을 해보니 엘리베이터를 탈 순 없었다. CCTV가 달려있다면 조심해야 할 1순위가 엘리베이터였다.
나는 하는 수없이 계단을 이용하기로 했다.
“헉...헉...”
겨우겨우 14층을 올라왔고, 땀이 비오듯 흘렀다. 나는 일단 13층에서 조금이나마 쉬었다.
막상 총을 쏘려는데 손이 흔들려서 실패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었다.
호흡이 차분하게 가라앉을 때 나는 14층의 민창수의 집 문고리를 잡았다. 그리고 천천히 돌렸다.
“....!”
문은 열어져 있었다. 그리고 작은 틈 사이로 집안을 들여다보니, 집 안은 마치 아무도 없는 듯 불이 꺼져 있었다.
나는 숨소리조차 최대한을 줄이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발자국 소리도 나지 않는다.
나는 이 집의 구조를 잘 알고 있어서 침실정도는 어딘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일단 혹시 모르기 때문에 가장 가까운 방부터 확인해 보았다.
-끼이이익
기름칠을 해두지 않았는지 문 여는 소리가 귀를 후벼팠다. 나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모 서둘러 방안으로 들어갔다.
바로 앞에는 방은 옷이 많이 있는 방이었다. 양복과 사복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일단 문소리를 내버려서 나는 문에 귀를대고 혹시 민창수가 걸어오는지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한참이 지나도 어떤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더욱 조심해서 방을 빠져 나오고 좌측에 있는 부엌으로 방향을 향했다.
어둠에 완벽하게 감싸진 방이었지만, 눈이 이미 어둠에 익숙해진 상태라 살펴보는데 크게 지장이 있진 않았다.
부엌엔 씽크대에 설거지 할게 좀 남이 있을 뿐, 특이한점은 없었다. 그리고 나는 화장실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아무래도 샤워를 한다거나 하면 화장실에 있을 확률이 높았다.
나는 화장실에 들어가기 전에 화장실의 불이 꺼진 것을 확인하고, 문에 귀를대서 안에 기척이 느껴지는지 살폈다.
“.......”
하지만 화장실 안에서도 어떤 소리도 나지 않았다.
나는 굳게 닫친 화장실문을 열어보려했지만, 억지로 열면 소리가 날 것 같아서 일단은 내버려두고, 마지막 침실쪽으로 향했다.
여기에 민창수가 있다고 생각을 하자 침이 꼴깍꼴깍 넘어갔다.
어차피 마지막 방이어서 나는 잠시 침실 앞에서 대기한 후에 거칠게 문을 열었다.
-쾅!
문이 벽에 부딪히며 큰 소리를 냈고 그와 동시에 나는 침실의 불을 켰다.
“이런...!”
침실에도 없다. 그렇다면 화장실에 있는 건가? 나는 화장실로 가서 불을 켜고 문을 확 열었따.
“없...다...?”
맥이 쭈욱 빠지긴 했지만 아직 안심할 수 없었다. 나는 온 방의 불을 모두 켜고 민창수를 찾았다. 하지만 어딜 둘러보아도 민창수의 흔적은 발견할 수 없었다.
“이럴 수가...”
나는 다시 불을 끄고 침실로 들어왔다.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전선기라면 이런 실수를 하지 않을 텐데, 대체 민창수는 어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그때, 침대 옆 선반에 한 사진이 눈이 들어왔다.
“.......?”
조심스럽게 사진을 보니 사진속에는 민창수와 누나가 활짝 웃고 있는 모습이 담겨져 있었다. 나는 머릿속에 혼란이 왔다.
“대체 왜 이런 사진을 아직까지...”
민창수와 예전에 카페에서 만났을 때, 민창수는 분명 누나를 그년이라고 부르며 비하를 했었다.
근데 아직까지 이런 사진을 침대 옆 선반에 두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머릿속에 혼란이 일었다.
나는 뭔가 이상하다 싶어 침실안의 서랍장을 뒤지기 시작했다. 뭔가 캥기기 시작하니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제길...! 대체 왜? 왜?”
민창수의 여권, 지갑, 신분증... 여러 가지가 쏟아져나왔다. 그리고 누나와 찍은 사진들도 심심치 않게 나왔다.
아니 마치 어떤 서랍장을 열면 꼭 한번씩 보이게끔 사진을 배치해 둔 것 같았다. 궁금증은 계속 쌓여만 갔다.
“아차...!”
순간 소름이 쫙 끼쳤다. 나는 지금 무방비 상태로 집안을 헤집고 있었다.
혹시라도 이게 전선기의 함정이라면? 민창수와 전선기가 손을 잡고 나를 잡으려고 함정을 판거라면? 이러고 있다간 순식간에 당하고 만다.
나는 다시 조심조심하고 창문을 통해서 밖을 살폈다. 밖에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그리고 GPS를 꺼내어 전선기의 위치를 추적했다.
“어디 간 거야?”
전선기는 알 수 없는 곳에 있었고 나와의 거리는 상당해 보였다.
“...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확인을 해봐야겠군...”
나는 신중을 기하며 다시 침실을 뒤지기 시작했다. 민창수는 깔끔한 외모처럼 정리를 잘 해두었다.
한참을 뒤져가던 나는, 한쪽 구석에 있는 작은 서랍장에서 문서 2개를 발견했다. 하나는 무슨 진단서였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친양자 입양관계증명서
그리고 양부와 양모 란에는 믿을 수 없는 이름들이 적혀 있었다. 민창수와 박지혜. 그리고 양녀의 이름 부분엔 민희원.
“이게... 뭐야...?”
나는 충격에 빠진 채로 문서를 한참동안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진단서를 살펴보았다.
진단서는 민창수의 것이 아니라 누나인 박지혜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그리고 진단명은.
“불임증.”
이건 꿈인 것 같았다. 이런 일이 있을 리가 없었다. 나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서 쉴새없이 고개를 흔들고 다시 봤지만 사실이 달라지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두 종이를 번갈아 보며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지이이이이이잉, 지이이이이이이잉.
나는 깜짝놀라 핸드폰을 보았다.
-이기철.
나는 생각을 할 새도 없이 바로 전화를 받았다. 핸드폰에서 이기철의 겁에 질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혀... 형사님!
나는 지금 내 상황도 충분히 당황스럽고 아직도 정리가 되지도 않았지만, 일단은 아무일 없는 듯, 침착하게 말을 했다.
“어... 그래 무슨일이야? 이 시간에...”
--저... 저 이상한 곳에 와 있어요. 이상한 건물 안에 있어요...
“뭐? 이상한 건물?”
--예... 무슨 오래된 건물인데...여기가 대체 어딘지 모르겠...처음 보는 어린 애도 한명...
나는 이 말을 듣고 침착함을 유지할 수 없었다. 이제야 전선기가 하려던 일을 알 것 같았다.
아마도 같이 있는 처음 본다는 어린 애는 민창수의 딸인 민희원 일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내가 이 문서들을 발견한 이상 나도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지금 당장 전화 끊고 GPS로 니 위치 찍어서 나한테 보내! 알겠어?!”
--예...! 예..
-툭.
나는 전화를 끊고 일단 밖으로 재빨리 나섰다. 나가기 전에 어지럽힌게 마음에 걸려 잠깐 뒤를 돌아봤지만 지금은 이런 것 까지 신경쓸 여유는 없는 것 같았다.
나는 계단을 3칸씩 뛰어내리며 14층을 마치 떨어지듯 내려왔다.
극도의 긴장감 덕분에 온몸이 이미 땀으로 젖어 있었는데, 격한 신체 활동까지 겸해지자, 정말 비를 홀딱 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라...?”
-뚝.. 투둑...
아파트 라인 밖으로 나가니 비가 한 방울씩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비가 오는 것이었다.
뉴스에서도 지독한 가뭄이라고 매번 보도가 났었는데, 이제야 비가 오는 것 같았다.
안 그래도 너무 더웠었는데, 차라리 비가 낫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는 아파트 단지를 나서며 바로 앞에 오는 택시를 무작정 잡아탔다.
택시를 타자마자 문자 메시지를 확인하니, 기철이가 이미 문자를 보내온 상태였다.
-JJ PC방.
나는 기철이가 보내온 문자와 전선기가 있는 위치를 대조해 보았다. 그때 택시 기사가 나에게 말했다.
“손님 어디로 모실까요?”
“... JJ PC방 아실까요?”
“아... 거기 근데 건물이 텅텅 빈 상태일 텐데요?”
“그 근처로 가는 거니 일단 거기로 가주십쇼.”
“네에~”
택시는 미끄러지듯 출발했고 비는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간혹 번개도 쳤다. 택시기사는 간만의 비가 기분 좋은지 콧노래를 부르다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이거 얼마만의 비인지 모르겠네요.”
“아... 네...”
나는 대화를 이어줄 마음이 크게 있지 않았다. 지금은 처한 상황을 생각하는 것도 머리가 깨질 지경이었다.
택시기사는 내 반응이 시원치 않은 걸 보고 분위기를 눈치 챘는지, 더 이상 말을 걸어오진 않았다.
나는 이 상황을 생각을 하며 지갑을 꺼내어 충분한 돈이 있는지 알아보았다.
다행히 지갑 안엔 넉넉한 현금이 들어 있었다. 비를 뚫고 달리던 택시는 곧 목적지에 도착하였고, 경찰 사이렌 소리가 사방을 메우고 있었다.
“12000원입니다.”
“여기요.”
“감사합니다~.”
나는 8000원을 거슬러 받고 택시에서 내렸다. 그리고 내리자 마자 이기철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위이이이이잉. 위이이이이잉.
“어! 지금 어디야?”
--아직 그 건물 그대로에요! 저 어떡해요? 사방에 경찰이 쫙 깔렸어요...!
이기철의 목소리엔 울음과 공포가 섞여있었다. 경찰차 수십대가 이미 건물을 뺑 두르고 있는 상황이었다.
곧 경찰측의 확성기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범인은 들어라! 너는 지금 완벽히 포위되었다! 인질을 풀고 순순히 자백해라!”
그리고 그 목소리는 전화기에서도 분명히 들려왔다. 이기철의 목소리 떨림이 더욱 심해졌다. 말을 더듬기까지 했다.
--혀...형사님...! 이... 이게...
“침착해 임마! 너 지금 그 건물 안이야? 누구랑 있어?!”
--그 아이랑... 아이랑...
“아이랑? 누구 또 있어?”
--궈... 권총이...
-뚝.
“야! 야 임마!!”
전화는 그대로 끊겨버리고 말았다. 마지막에 들은 단어는 분명 권총이라는 소리였다. 속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경찰들의 포위를 한바퀴 돌으며, 건물안으로 진입할 방법을 찾으려고 했다. 그때, 건물에서 고함소리가 들렸다.
“가까이 오지 마!! 죽여 버릴 거야!”
“...?!”
이 절망적인 상황을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 나는 소리가 들리는 건물 창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엔 양쪽 눈이 충혈이 된 채로 어린 아이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는 이기철의 모습이 보였다.
“저런 미친새끼...!”
나는 어떻게든 진정을 시키기 위해서 전화를 걸었다.
비가 점점 거세져서 핸드폰이 제대로 작동할지 걱정이 되긴 했지만 아직까진 무리 없이 작동을 하는 것 같았다.
-뚜.... 뚜.... 뚜.... 뚜.... 뚜....
“제발 좀 받아라!”
-지금은 전화를 받을수 없어...
“신발...!”
나는 전화 거는 걸 포기하고 어떻게 건물에 들어갈 수 있을지 생각을 했다. 이미 건물 정면은 경찰이 사방을 포위하고 있어서 진입이 힘들었다.
하지만 이제 막 포위진을 치기 시작했는지, 대열이 제대로 갖춰지진 않은 모습이었다.
건물 뒤편은 바로 큰 건물이 있었는데, 그 사이가 워낙 좁아서 아직 거기까진 경찰이 들어서진 못한 것 같았다.
나는 일단 그쪽으로 뛰었다. 그때, 경찰측 확성기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무기를 버려라! 지금이라도 자백하면 형량은 줄어들 것이다!”
그래. 정말 익숙한 목소리였다. 분명 내가 불과 30분 전까지만 해도 그를 죽이기 위해 그의 집에 침입을 했었다. 민창수 검사였다.
“한발자국이라도 다가오면 쏴버리겠어!”
이기철의 발악하는 듯한 목소리가 이어서 들렸다. 이기철은 이미 극도의 공포감 때문에 이성을 상실한 것 같았다.
지금 난데없이 인질극을 하는 것도 이미 자신의 의지가 아닐지도 모른다.
이 상황 때문에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판단도 안 서는 것 같았다.
나는 민창수의 모습을 파악하기 위해서 일단 건물로 진입하기 전에 그쪽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이미 여러 구경 객들이 모여 있어서 걸리진 않을 것 같았다. 잘 들리진 않았지만, 민창수와 경찰들이 이야기하는 게 들렸다.
“어쩔수 없군요. 제가 들어가서 설득해 보겠습니다.”
“검사님이 직접요?”
“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어린 학생이 충동적으로 일을 저지른 것 같으니... 가서 진정을 시켜야지요.”
민창수는 꽤나 침착하게 말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내 눈에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초조해서 어쩔 줄 모르는 것을 겨우겨우 억누르고 있는 게 눈에 확연히 보였다. 하지만 경찰들은 그런 것을 모르는 듯 말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알겠습니다.”
“예. 그럼...”
그대로 민창수는 들고 있던 우산을 접어 곁에 있던 한 경찰에게 건네준 후에 확성기를 하나 들고 건물 쪽으로 다가갔다.
그의 깔끔한 양복은 곧 비로 무겁게 젖어갔다. 민창수가 건물로 다가가자 이기철이 소리를 질렀다.
“다가오지 마라고!! 말 안들려?!”
“침착해라. 난 너를 다치게할 어떤 무기도 없다.”
민창수는 팔을 좌우로 쫙 펴며 아무것도 숨지기 않다는 걸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시간을 여기에서 보낼 필요가 없었다.
지금 중요한 건 저 둘이 아니라 이 무대를 만든 전선기이다. 전선기가 이대로 개입을 안 하고 끝낼 리가 없었다.
나는 아까 봐둔 곳으로 서둘러 이동했다.
예상대로 좁은 틈이긴 했지만 가스 파이프가 거미줄처럼 꼬아져 있었고, 들어갈 만한 작은 창문도 몇 개 있었다.
나는 녹슨 파이프를 위태위태하게 타고 올라가 작은 창문에 몸을 끼워 넣으며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탁한 공기가 콧속으로 빨려 들어왔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고 이기철이 있는 층으로 조심스럽게 올라갔다.
“4층이었던가...?”
멀리서보긴 했지만 어렴풋 봤을 때, 4층이나 5층이었다. 나는 약간의 조급함을 느끼며 먼지가 가득 쌓인 회색 계단을 천천히 올라갔다.
민창수가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면 이미 이기철과 접촉을 했을 것이다.
가스 파이프를 타고 올라오는데 시간을 꽤 많이 허비했었고, 애초에 건물 틈까지의 거리도 상당했었다.
아직 경찰 측의 확성기 소리가 들리는 걸로 봐서 큰 변화는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겨우겨우 4층에 도달해서 방에 귀를 대보았지만 4층 방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쳇...!”
나는 투덜거리며 5층으로 다시 걸어 올라왔다. 4층의 문은 살짝 열려있던 반면에, 5층의 방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리고 방 안에선 목소리도 조금씩 새어나오고 있었다. 나는 방 문에 귀를 대고 안에서 들리는 이야기를 들었다.
“자네가 충동적으로 그러는 건 알고 있네. 이제 총을 내려놓는게 어떤가?”
“시... 시끄러워! 너희들은 날 죽일거잖아! 당장 차들을 다 빼버리지 않으면...”
“경찰이 사람을 죽인다니... 어불성설이야. 자... 지금 자네는 너무 흥분해 있어. 총부터 내려놔.”
“저 밖에서 나에게 총을 겨누는 사람들은 뭔데? 수십명이 지금 나한테 총을 겨누고 있단 말이야!”
나는 지금 들어가 봤자 이 상황에 도움이 안 될걸 알고 있었다.
차라리 지금은 민창수에게 맡기는 게 더 좋을 것 같아 일단은 밖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딱 하나 걸리는 게 있다면 전선기의 행방이었다. 분명 어딘가에서 지켜보고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일단은 전선기부터 찾기로 했다. 여기에 있어봤자 시간낭비일 뿐, 재수 없으면 경찰에게 잡히고 만다.
GPS를 보니 전선기는 아직 이 건물 안에 있다. 아마도 기회를 노리며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나는 무작정 움직이는 건 위험하다고 판단하여 일단은 둘이 들어있는 방을 충분히 감시할 수 있는 선에서 숨기로 했다.
마침 뒤에 적당한 캐비닛이 있었다. 문을 열자마자 수북히 쌓여있던 먼지가 고운 가루로 떨어졌다.
“후우...”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먼지를 불어봤지만 별로 효과는 없었다. 캐비닛 안에는 별 물건들이 있지 않았다.
그야말로 빈 상자 같았다. 그렇게 넓진 않았지만 한 사람이 들어가긴 충분한 크기에 만족하며 나는 캐비닛에 몸을 쑤셔넣었다.
-끼이이이이익.......
캐비닛 안의 철제 바닥에 발을 올리자, 녹이 슬어서 그런지 약해질 대로 약해진 철판이 이상한 소리를 내며 휘었다.
나는 아차 싶어서 최대한 조심조심 올라선 후에 캐비닛 문을 닫았다. 비가 와서 그런지 눅눅한 느낌이 온몸을 적시고 있었다.
방안에선 꽤 오랜 시간이 지나도 대화의 소리가 들려왔다. 대화내용을 자세히 들을 순 없었지만 확실히 말하는 소리가 조그맣게 들렸다.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군.”
밖에선 여전히 경찰 사이렌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때, 방 안에서 생각지도 못한 소리가 크게 들렸다.
-탕!!
고막을 찢는 듯한 총소리가 한발 울렸다. 사이렌 소리고 빗소리고 다 잊을 정도로 큰 소리였다. 나는 급하게 캐비닛 문을 열어젖혔다.
-쾅!
캐비닛 문짝이 큰소리를 내며 출렁거렸지만 나는 거기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총은 분명 이기철만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기철이 민창수를 쐈단 말인가?
“이기철!!”
나는 둘이 들어있는 방의 문고리를 세게 밀었다.
“?!”
하지만 문은 마치 못이라도 박아 놓은 듯 열리지 않았다. 안쪽에서 잠근 것이다.
-탕!!
그때, 한발의 총성이 다시 한번 내 귀를 뚫어놓았다. 나는 다급해졌다.
발로 차보기도 하고 어깨로 밀어보기도 했지만 문은 꼼짝도 하질 않았다.
“젠장...! 젠장!!”
총성이 일단 들렸으니 어떤 방식으로든 경찰이 진입해 올 것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나는 안될 거라고 알고 있었지만 의미없이 문을 열기위해 사력을 다했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서 문에 부딪혀 가는데, 문이 벌컥 열렸다. 그리고 한 그림자가 튀어나와 창문으로 뛰어내렸다.
“너... 너는...!”
마지막으로 본 그림자의 모습은 나를 흘끗 바라보며 씨익 웃는 표정이었다. 전선기였다.
나는 얼른 창문으로 쫓아가 아래를 내려다 봤다. 5층높이에서 뛰어내리다니, 저번에 병원 4층에서 뛰어봤지만 정말 할 짓이 못된다.
만약 그때 꽤 상당한 높이의 엠뷸런스가 없었다면 나는 지금 이 자리에 서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창문 바로 아래 3층 정도에 테라스 형의 공간에 충분한 매트릭스가 깔려져 있었고, 거기에 안전하게 착지한 전선기는 1층으로 무리 없이 빠져 나갔다.
“윽...!”
눈앞에서 또 놓치다니, 속이 터질 지경이었다. 나는 전선기를 쫓아갈까 하다가 민창수와 이기철이 신경 쓰여서 열린 5층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민창수에게 그 문서들에 대해서 물어볼게 많았다. 5층 방에 들어가자마자, 참혹한 광경이 눈앞에 비춰졌다.
민창수는 입구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고, 이기철은 관자놀이에서 피를 줄줄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그의 손엔 권총이 쥐어져 있었다. 그리고 이기철 옆에, 민창수의 딸인 민희원이 정신을 잃었는지 눈을 감고 쓰러져 있었다.
나는 바로 앞의 민창수에게 쓰러지듯 달려갔다.
“민창수!!”
민창수가 총을 맞은 부위는 명치 조금 아랫부분, 상태는 꽤나 심각해 보였다.
통탄할 일이지만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나의 부르짖음에 민창수의 눈이 실처럼 가늘게 떠졌다.
“선후...야...”
“어떻게 된 건지 말해! 말하고 죽어! 씹새끼야!”
나는 챙겨온 친양자 입양관계서를 그의 눈에 흔들며 소리쳤다. 민창수는 문서를 힐끗 보더니 눈뜨고 있기도 힘든지 눈을 감으며 말했다.
“아... 알았구...나...”
“뭐?! 이거 진짜야?! 진짜냐구!”
“그...래... 쿨럭! 쿨럭!”
민창수는 더 말을 잇기가 힘들어 보였다. 그의 입에서 한덩어리의 피가 수차례 흘러나왔다.
민창수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듯 호흡을 깊게 들이 쉬더니 입을 꾸물꾸물 열었다.
“희원이... 부탁...”
“.......?”
그 말이 마지막이었다. 민창수의 호흡이 멈췄다. 나는 가슴이 갈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벌써 아래에서 뛰어올라오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나는 더 생각할 것도 없이 희원이를 안고 전선기가 뛰어내렸던 창문으로 뛰어내렸다.
-푸쉬쉬.
“으윽...!”
매트릭스가 내 몸을 받아내며 이상한 신음소리를 냈다.
나는 희원이를 안은 상태라 구를수도 없어서 그 충격을 모두 무릎이 받아내는 수밖에 없었다.
매트릭스 위였지만 충격은 상당했다. 하지만 나는 다시 1층으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전선기가 달렸던 방향과 반대로 달리기 시작했다.
전선기와 같은 방향으로 간다면 안전할 수도 있겠지만, 전선기가 날 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헉... 헉...”
얼마나 뛰었는지 모르겠다. 다행이 경찰 사이렌 소리는 내가 뛰면 뛸수록 점점 멀어질 뿐, 가까이 오진 않았다.
그도 그럴게, 현장엔 이미 시체 2구가 있었다. 그리고 그 중 한명은 협상을 하러 나선 현역 검사였다.
다른 곳에 신경 쓸 여유가 있을 리가 없었다. 만약 나중에라도 눈치 채는 게 있다면, 매트릭스가 3층에 남아있는 정도가 될 것이다.
나는 의심받지 않도록 큰길가로 나가서 택시를 잡았다.
택시를 세운 나는 일단 몸을 택시안으로 밀어넣었다. 그리고 택시 기사에게 말했다.
“주변 지하철역으로 가주십쇼.”
“아, 예...”
택시기사는 내가 흠뻑 젖어서 그런지 인상을 꽤나 찌푸리며 대답을 하였다.
그 표정을 보니 순간적으로 욱하는게 있긴 했지만, 지금 누구와 시비를 터서 좋을 일은 없었다.
일단은 희원이를 원룸에 데려다 놓고, 지하철로 돌아가 나머지 계획을 짜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지하철로 가는 동안, 문득 궁금한게 생겨서 전선기가 준 GPS를 꺼내어 전선기의 위치를 추적해보았다.
“... 씹새끼...”
나는 택시기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그맣게 욕을 뱉어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전선기는 아직도 그 건물에 남아있는 걸로 표시가 되어 있었다.
지하철에 도착하고 나서, 나는 최대한 사람이 없는 노선을 타고 원룸이 있는 역까지 도착했다.
흠뻑 젖은데다가 아이까지 안고 있어서 주변의 눈빛이 느껴졌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길을 걸었다.
한걸음 한걸음이 무겁고 축축했다. 피부 속까지 빗물에 젖어버린 것 같았다. 원룸의 초인종을 누르자마자 서주희의 밝은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나.”
내 말이 끝나자 마자 원룸의 문이 열렸고, 밝게 웃고 있는 서주희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얼굴에 덕지덕지 붙어있던 밴드가 많이 사라진걸 보아 상처는 많이 나은 것 같았다.
서주희는 나를 보더니 웃는 얼굴이 놀란얼굴로 바뀌었다.
“어떻게 된 일이에요?!”
“일단 좀 들어가지.”
“예, 드..들어오세요.”
원룸은 더욱 더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내가 들어가자, 내 몸에서 떨어진 물 때문에 곧 물바다가 되었다.
나는 걸려있는 수건을 가져와 서주희에게 던져주었다. 그리고 희원이를 조심스럽게 건냈다.
“여자애니까 부탁 좀 할게.”
“아... 예... 근데 누구죠...?”
서주희가 희원이의 젖은 머리부터 닦아주며 나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는 다시 몸을 추스리며 그녀에게 말했다.
“내 조카.”
“.......”
서주희는 내 말을 듣고 닦다가 잠시 멈칫하며 나를 바라보더니, 아무 말 없이 다시 닦는 데에 열중했다.
나는 뒤처리나, 알아볼 일이 아직 더 남아있었다. 그대로 젖은 상태로 현관문을 열었다. 그러자 서주희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그... 그대로 나가시게요?”
“어. 할 일이 남아서.”
“옷이라도 갈아입고 가시면... 감기 걸릴것 같은데...”
“난 괜찮으니까 좀 부탁할게.”
“예.......”
밖은 여전히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나는 처마 밑에서 젖은 옷 때문에 체온이 내려갈까, 간단하게 체조를 하고 형식이의 핸드폰을 꺼냈다.
푹 젖긴 했지만, 고장이 난 건 아니었다. 나는 전화번호부를 잠시 살피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 뚜.......
신호음이 꽤나 길게 이어졌다. 하긴, 지금 상황이 상황인 만큼 한번에 받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나는 충분히 이해하며 인내심을 가지고 전화를 받기를 기다렸다. 거의 끊길 무렵이 되어서, 연결되는 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이 반장님, 접니다. 선후. 괜찮으시면 지금 한번 뵙죠.”
--... 알았다. 어디에서 볼까?
“GG은행 앞에 있겠습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전화를 끊었다. 지금은 전선기도 중요하지만, 사건이 어떻게 마무리되어 가고 있나가 궁금했다.
아무래도 이기철의 관자놀이가 관통당한 것도 그렇고, 의심 가는 게 많았다.
거리가 가까운 건 아니었지만, 택시나 버스는 이용하지 않았다.
애초에 노숙자가 그런 교통수단을 이용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이기도 하지만, 이 반장이 먼저 장소에 도착해 있어야 한다.
그래야 혹시나 이 반장이 함정을 팠다고 하더라도 멀리에서 상황을 파악하기가 훨씬 쉬울 것이다.
“비가 어지간히 오는군...”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그런지 온몸이 무거웠다. 발을 들어 한발짝 옮기는데도 버거울 정도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개운하기도 했다. 그동안 너무 더워서 찝찝했었는데, 이렇게 마구 쏟아지는 비를 온몸으로 맞으니, 샤워하는 것 같았다.
게다가 큰 길이든 좁은 길이든 배수가 잘 되지 않아 마치 풀장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어차피 홀딱 젖어버린 거, 일부러 발을 크게 굴러서 물을 튀기게도 걷고, 물을 발로 차면서 걷기도 하니, 은행까지 어느 정도 거리가 있어도 지루하진 않았다.
적당한 시간이 걸려 은행 주변에 도착을 하자 빗속에서 은행의 전광판이 보였다. 엄청난 비 때문에 큰길임에도 다니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나는 바로 은행으로 다가가기 보다는, 주변의 횡단보도를 다 건너며 혹시라도 잠복할 수 있을만한 곳을 확인 한 후에 은행으로 다가갔다.
은행 앞에는 눈에 꽤나 익숙한 차가 헤드라이트를 켜고 시동이 걸린 채로 있었다. 나는 그 차를 향해 정면으로 다가가서 창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똑, 똑.
그와 동시에 창문은 살짝 내려갔고, 안에서 이 반장의 짧고 굵은 목소리가 들렸다.
“타.”
차 문을 여니 빗줄기가 맹렬하게 가죽 의자 시트를 적셔갔다.
이미 나도 젖은 상태라 크게 소용은 없겠지만, 나는 허겁지겁 차에 몸을 싣고 문을 닫았다.
그 과정에서 차문 아랫부분이 살짝 보도블록에 쓸린 소리가 났다.
오래된 연식의 차이긴 하지만, 차를 끔찍하게 아끼는 이 반장이라 나는 사과부터 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한지는 아냐? 내가 얼마나 너 때문에 욕을 먹었는지 알아? 당분간 승진도 글렀다.”
“.......”
나는 차문에 대한 사과를 했는데 엉뚱한 대답이 나오자, 멍해져서 뭐라 해야 할지 잠시 말을 잃었다. 하지만 곧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저로선 어쩔 수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어?! 그러면 나한테 귀띔이라도 해주지 그랬냐?”
이 반장은 핸들을 두 손으로 내려치며 말했다. 내려치면서 크락션 부분이 살짝 눌렸는지, 작게 소리가 나기도 했다.
“귀띔했으면 허락 하셨겠습니까?”
“.......”
내 말에 이 반장은 쉽게 대답을 하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침묵이 둘 사이를 지배했고, 간혹 굵은 빗방울이 차 천창을 때리는 소리만 들렸다.
나는 시간을 허비하지 않기 위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일단 분위기를 정리하기 위해서 한숨을 푹 쉬었다.
“일단 제가 이렇게 온건 묻고 싶은게 있어서 그렇습니다.”
“대충 짐작이 간다. 이번 민창수 검사 사건 말이지?”
“예. 알고 계셨군요.”
“하지만 이제 막 현장조사가 끝났을 뿐이야. 내가 알고 있는건 많지 않아.”
“저도 형사였습니다. 그정돈 알고 있어요.”
“근데 뭘 물어보려고?”
“민창수 검사를 죽인 건 누굽니까?”
나는 이리저리 돌리지 않고 직접적으로 물었다. 그래야 이 반장이 다른말을 섞지 않고 말할 것 같았다.
이 반장도, 내가 이렇게 직접적으로 물어볼지 몰랐는지 눈을 감고 잠시 생각을 가다듬고 말했다.
“인질극을 벌이던 이기철이다.”
“그럼 이기철은요?”
“자살이다.”
이렇게 결과가 나올거 라는 예상은 하고 있었다. 이번 사건도 전선기의 아주 치밀한 계획의 결과물이었다.
“그가 권총을 가지고 있었어. 이기철이 가진 권총과 민창수의 시신에서 발견된 총알이 일치하고, 이기철의 시신에서 나온 총알도 일치해. 게다가, 이기철이 가진 권총의 잔탄과 탄피 수도 여지없이 같아. 게다가 결정적으로...”
“......?”
“이기철에게서 초연반응의 자주색이 나타났다. 그거면 더 이상 말할 것도 없지.”
초연반응은 총을 쐈을 때 화약이 터지면서 발생한 이산화질소가 쏜 사람의 몸에 묻은 것을 화학적 반응을 통해 알아내는 조사방법 중 하나였다.
이런 명백한 증거가 있다면 경찰 측의 결과는 뻔했다.
“그럼 결과는 이기철이 협상하러 갔었던 민창수 검사를 쏘고 자살을 했다는 말이군요.”
“그래. 뭔가 뒤집을 수 있는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 이상 달라지는 건 없을 거다.”
“.......”
나는 전선기가 그 공간에 같이 있었다는 점과, 경찰이 출동하기 한참 전부터 전선기가 인질이었던 아이와 이기철을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유괴를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일부러 이 반장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이 반장의 말에 수긍하는 척 했다. 이 반장은 이런 나를 조금은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아마 십년 넘게 형사를 해오면서 느끼는 감각일 것이다. 나는 그런 눈빛을 눈치 채고 얼른 이 반장에게 말했다.
“또 물어볼게 있습니다.”
“뭔데?”
“제 죄목이 뭡니까? 다 합쳐서.”
이 질문은 전선기가 말한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전선기는 분명 민창수가 고시원에 불을 질렀을 때, 날 잡는걸 실패하자 나를 친족살인에 방화범으로 몰았다는 말을 했었다.
하지만 내 말에 이 반장이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그리고 이내 대답을 했다.
“유력한 연쇄살인 용의자를 빼돌린 거지... 뭐야? 너, 또 잘못한 거 있냐?”
“알겠습니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뭐야, 고작 이거 알려고 나 부른 거야?”
이 반장이 인상을 찌푸리며 나에게 말했다. 나는 뭔가 찔리긴 했지만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형사였다면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지만, 지금은 이런 정보도 알기가 하늘의 별따기에요. 이정도면 저도 충분하고, 더 물어보고는 싶지만 그건 반장님이 곤란해 하실까봐 그만 두겠습니다.”
“음.......”
이 반장도 그제야 수긍이 되는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나는 이 반장의 이러한 반응에 충분히 만족을 하고 차 문을 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했다.
“이후에 한 번 더 연락 하겠습니다. 그건 되겠죠?”
“그 정도야 뭐... 알았다.”
나는 비가 차안으로 들어갈까 얼른 차문을 닫았다. 그러다보니 손에 힘이 들어갔는지 문 닫히는 소리가 엄청 크게 들렸다.
나도 순간 깜짝 놀랐을 정도였다. 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닫히고, 창문이 스스 내려오더니 이 반장의 인상 찌푸린 모습이 보였다.
“야 임마, 살살 안닫아?”
“아... 죄송합니다...”
“비 맞고 돌아다니지 말고, 빨리 들어가라. 감기 걸리겠다.”
“예.”
나의 대답을 마지막으로 창문이 다시 올라갔다. 그리고 곧 시동이 켜지더니 둔탁한 엔진음을 내며 차가 출발했다.
보통 같으면 약간의 매연을 뿜으며 출발했겠지만, 비가 워낙 많이 내리다 보니 그런 걸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다시 가까운 지하철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문득 손바닥을 들어서 쳐다보니 오랜 시간 비를 맞아서 그런지 쭈글쭈글 해졌다.
계속 걷다보니 바지주머니에 들어있는 물건 때문에 허벅지가 쓸려서 조금 따가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습관적으로 물건이 뭔가 꺼내들었다.
“......”
전선기가 준 방수 휴대폰이었다. 구형 모델이라 그런지 크기도 크고 무게도 꽤나 있는데다가 비 때문에 피부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나보다.
이제 필요도 없을 거 버려버릴까 싶었는데, 역시 일단은 가지고 있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이번엔 살이 쓸리지 않게 형식이가 준 휴대폰이 있는 겉옷 안주머니에 같이 넣어두고 가까운 지하철에 도착했다.
“여기가 누구 구역이었더라...?”
분명 누군가의 구역이긴 한데, 아직 그걸 다 외운 건 아니어서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일단은 생각을 좀 정리하기 위해서 나는 시비가 오지 않을만한 구석에 쭈그려 앉았다.
앉으면서 하루의 고난이 몰려오듯 크게 한숨이 자동적으로 쉬어졌다.
“후유......”
이제부터 어떻게 할지 생각을 해보기로 했다. 먼저 전선기는 이기철과 민창수를 죽일 목적으로 이 계획을 진행했었다.
아마 이번에 이기철과 민창수를 죽인 건 전선기 일 것이다. 초연반응 같은 걸 조작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애초에 나와 손을 잡은 이유가 오직 나를 그 현장에서 떼어놓기 위해서였다.
독자적으로 일을 진행한다면 내가 빈틈을 노릴것이기 때문에 계획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나와 손을 잡는 척 하고 나를 멀리 떼어놓은 뒤에 자신은 여유롭게 계획을 진행한 것 같다.
“아...”
생각이 정리가 되자 괴로워져 견딜 수가 없었다. 민창수가 내 사건에서 손을 뗀 건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나를 자기 손으로 잡기 싫어서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전선기와 이야기를 하다가 몇 가지 허점을 그놈에게 들켰을 것이다.
“허점...?”
갑자기 궁금해진 게 있었다. 대체 전선기는 왜 민창수를 그렇게 죽이려고 한 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내가 민창수의 약점을 들고 있다는 것도 알면 자기에게 해가 될 리가 없고 오히려 잘만 이용한다면 내 덜미를 잡는데 유용할텐데, 왜 일부러 죽였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물론 이기철은 전선기의 분신을 패버려서 활동하는데 지장을 주었다는 명목이 있긴 하지만 대체 왜 민창수를 죽이기까지 했는지 알 수 없었다.
“설마...?”
나는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교통카드를 충전하기 위해서 편의점에 들어갔다.
“어서오세....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하기야, 이렇게 온몸이 젖으면 청소하기도 짜증나긴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마음이 급했다. 얼른 지갑을 열고 젖은 지폐와 카드를 들이밀었다.
“오천원... 충전좀 부탁드립니다...”
“.......”
아르바이트생은 잠시 곤란한 듯 지폐를 바라보다가 나를 스윽 바라보더니 내 눈을 보고 흠칫 놀라더니 군말 없이 충전을 해주었다.
나는 카드를 낚아채듯 받아들고 지하철을 탔다.
주변의 모든 시선이 나에게 쏠렸지만 나는 치렁치렁 길어진 내 앞머리를 늘어뜨려서 내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우산 사세요~ 우산!”
한번 우산장수가 젖은 내 모습을 보고 잠깐 접근했었지만, 가까이에서 내 꼴을 보더니 포기했다.
그것 말고는 특별히 나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은 없었다. 아니, 내가 이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면 주는 것이었다.
나는 민창수의 집 가까이 있는 역에서 내린 후에 빠른 걸음으로 민창수 집으로 향했다.
내가 분명 문을 열어놓고 왔을 테니, 지금가면 열려 있을 것이다. 아마도 경찰은 내일쯤에나 해서 민창수의 집을 조사할 것이다.
나는 14층까지 멈추지 않고 뛰어올라갔다. 그리고 닫혀진 민창수의 문고리를 돌렸다.
“휴...... 다행이군.”
민창수의 집 자물쇠가 도어락이 아닌거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열쇠로 문을 따게 되어있는 민창수의 집은 열려있었고, 나는 무리없이 들어갔다.
그리고 아까 보았던 사건 파일철을 찾았다. 민창수는 엘리트 검사답게 사건자료에 대한 사본을 집에 보관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퇴근하고 나서까지 조사를 하는 것 같았다. 사건 파일철을 찾은 뒤에 비에 맞을 수도 있어서 부엌으로 갔다.
“이거면 되겠군.”
마침 비닐 랩이 눈에 띄었다.
나는 파일철을 랩으로 빈틈없이 감싼 뒤에 돈이 될 만한 시계, 보석 등을 챙기고 현금도 꽤나 보여서 챙길수 있을 만큼 챙긴 후 얼른 집을 나왔다.
물론 누가 올 가능성은 적었지만, 누군가의 집을 몰래 뒤진다는 건 그렇게 당당한 일이 아니었다.
막 집을 나서고 소리가 안나도록 조심스럽게 문을 닫는데, 누군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또각, 또각, 또각......
구두를 신었는지, 딱딱한 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기겁하여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불평하는 소리도 같이 들렸다.
“헉, 헉... 신발... 왜 엘리베이터를 타면 안 된다는 거야? 헉... 이럴 거면 지가 헉... 헉... 갈 것이지...”
많이 들어본 목소리였다. 아니 잊을 수 없는 목소리다.
“전선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