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룸메이트 - (29화)

윙윙 |2013.05.26 10:34
조회 2,146 |추천 11

출처 ; 웃대(인생사프리님)

제가읽었던 이야기들중 재미나게 본 이야기입니다.

스크롤 압박이 있어요..^^

 

 

 

 

 

룸메이트 1화 ; http://pann.nate.com/b318390630

룸메이트 11화 ; http://pann.nate.com/b318393961

 

 

 

 

 

말한대로 내가 대답을 하자마자 전화는 바로 끊겨버렸다.

 

 

나는 끊겨진 전화를 한동안 멍하게 내려다보다가 찝찝한 마음이 들어 침을 뱉었다.



“퉤...”



이번에도 뭔가 말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대답만 하라고 해서 대답만 하다니, 충분하게 준비를 하지 못한 결과였다.

 

 

하지만 뭔가 홀가분한 건 사실이었다.

 

 

오랫동안 몸을 눌러왔던 긴장감과 책임감이 쑤욱 빨려 내려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별 생각을 하지 않기로 하고 다시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왔다.

 

 

시간을 보니 12시 30분 정도 되어 있었다.



“으읍.. 춥다...”



저녁이 되어 공기가 좀 차가워 진 것 같아서 신문지를 몇 겹 겹쳐 목 위까지 덮었다.

 

 

뻣뻣하지만 어느 정도 두툼해진 신문지는 곧 체온을 따뜻하게 올려주었다.

 

 

왠지 잠도 이제 슬슬 올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름 행복감을 느끼며 잠에 드려는데, 앞쪽에서 자고 있는 형님이 보였다.



“.......”



신문지를 2장만 겹쳐서 자고 있었다. 나는 혹시나 추울까봐 신문지를 몇 겹 더 덮었다.

 

 

그제서야 나는 내 자리로 돌아와 잠에 들 수 있었다.

 

밤새 푹 잤는지, 눈을 감았다 뜬 것 같은데 벌써 아침이 되어 있었다.

 

 

기지개를 안 풀어도 될 만큼 몸이 상쾌했다. 시계를 보니 이제 6시였다.

 

 

모임이 6시 30분이니, 적당하게 자고 일어난 시간이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신문지들을 잘 개고, 깔린 박스들은 자판기 뒤에 밀어 넣은 뒤에 밤새 굳은 몸을 좀 풀어보았다.



“으이샤!”



알 수 없는 체조를 하면서 몸이 덥혀지자, 살아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정말 오랜만에 이런 기분을 내는 것 같았다.

 

 

내가 요란스럽게 움직이고 있자, 형님도 곧 잠에서 깼다. 형님은 반쯤 떠진 눈으로 날 바라보며 말했다.



“왜 이렇게 시끄러워...?”


“어이쿠 형님, 일어나셨어요?”


“그래... 몇시냐?”


“벌써 6시 5분이에요!”


“으음.......”



형님은 고개를 힘겹게 끄덕끄덕 하더니 상체를 세우고 땅바닥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그러다 고개를 세차게 몇 번 흔들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제 일어났냐? 중간에 어디 가더만.”


“아... 알고 계셨군요? 잠이 안와서 잠깐...”


“그러냐.......”



형님은 뒷통수를 긁으며 하품을 시원하게 내지르고 난 뒤에 자리를 정리했다.

 

 

자리 정리는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나는 조금이나마 형님을 도왔다.

 

 

자리 정리를 마친 우리는 시간에 맞춰서 아침모임 장소로 갔다.

 

 

그 곳에는 몇 명 이미 와 있었는데, 하나같이 잠이 덜 깬듯한 모습이었다.

 

 

나는 조금이나마 분위기를 바꾸고자, 목소리를 조금 키우며 말했다.



“잘들 주무셨습니까?!”


“응........”


“너도 잘 잤냐...?”



하지만 사람들은 귀찮은 듯 느린 말투로 대답을 하였다. 나는 크게 웃으며 내가 속한 자리로 가서 앉았다.

 

 

처음 왔을 땐 보이질 않았지만, 칠복이 아저씨는 먼저 와 있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아침 인사가 먼저 나왔다.



“잘 주무셨어요?”


“그래....... 아침부터 기운이 넘친다? 휴가라 그런가?”


“저야 항상... 휴가요?”


“그래 휴가. 너 오늘 휴가잖아?”


“휴가라뇨? 노숙자가 휴가도 있어요?”


“아직 몰랐구만... 깡통 한개 채워서 오면 하루는 휴가로 보낼 수 있어. 5천원을 휴가비로 주지.......”


“5천원이나?”



내가 계속 질문을 해오자, 잠이 덜 깬 칠복이 아저씨가 졸린 눈으로 팔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좀 있다가 모임 시작하면 알게 될거야...”


“음.......”



칠복이 아저씨가 아침잠이 덜 깬 것 같아서 나도 더 이상은 말을 걸지 않았다. 곧 아침 모임이 시작 되었고, 형님이 말을 꺼냈다.



“선후가 깡통한개를 다 모았는데... 오늘 휴가야.”


“예!”


“뭐야, 알고 있었어? 나름 깜짝 선물이라고 생각 했는데.......”



형님이 조금은 실망한 표정으로 말을 하자 칠복이 아저씨가 눈치를 슬슬 봤다. 나는 웃음이 터지려고 했지만 꾸욱 누르고 말했다.



“충분히 깜짝 놀랐습니다!”


“알았어... 자 5천원이다.”


“감사합니다!”



나는 꾸깃꾸깃한 5천원을 기쁜 마음으로 지갑에 넣었다.

 

 

이미 나는 민창수가 가지고 있던 지갑에서 많은 돈을 챙겼지만, 민창수의 지갑에 있던 5만원과 지금 내가 받은 5천원은 무게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과연 아까워서 쓸 수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5천원에 대하여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는데 형님이 말했다.



“저녁 식사 모임엔 안와도 된다. 오려면 와도 되고.”


“와... 엄청난 특혜인데요?”


“특혜긴....... 뭐 할건 있냐?”


“예, 있긴 있죠.”



내가 실실 웃으며 대답을 하자 형님도 씨익 웃었다. 나는 형님들과 사람들에게 인사를 마치고 지하철을 나섰다.

 

 

간만에 생긴 자유시간을 그냥 허비할 순 없었다. 나는 일단 원룸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원룸에 들어가자 서주희가 여전히 집안일을 하고 있었다. 서주희가 온 뒤로 하루가 다르게 집이 화사하게 변해갔다.

 

 

서주희는 날 보자, 조금 놀랬는지 말했다.



“어젠 뭐하고 지금 들어와요?”


“나 이제 여기에서 안자. 다시 노숙해.”


“아.......”


“됐고, 양복 어딨어?”


“정리해놨어요. 왜요?”


“입고 나가려고...”


“흥, 양복 입는다고 거지가 양반되나요?”



서주희가 서랍 한 켠에서 양복을 꺼내며 나에게 핀잔을 주었다. 나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피식 웃고 말했다.



“그래도 거지같아 보이진 않잖아?”


“......그건 그러네요.”



서주희도 따라 웃고 말았다. 나는 그녀가 건내준 양복을 받고서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그녀에게 물었다.



“웬 넥타이야? 원래는 없었는데....... 그때 넥타이까지 훔칠 시간이 없었거든.”


“집에 몇 개 보이기에 제일 상태 괜찮고 양복하고 잘 어울리는 것으로 맞춰봤어요. 있는게 낫지 않아요?”


“그러긴 하군.”



나는 화장실로 들어가서 깨끗하게 씻고 머리도 정리를 한 뒤에 양복으로 갈아 입었다. 넥타이까지 걸치자, 꽤 폼이 나보였다.

 

 

내가 화장실에서 나오자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서주희가 기어이 한마디 했다.



“... 역시 옷이 날개네요.”


“참, 말을 해도... 난 저 옷도 잘어울려.”



내가 가르킨 곳에는 내가 노숙할 때 입는 외투와 바지가 덜 마른 오징어처럼 쭈글쭈글하게 바닥에 쌓여 있었다. 서주희는 폭소하며 말했다.



“호호홋, 그렇다고 치죠. 언제 올거에요?”


“글세... 일이 끝나면! 나 나갈게”


“조심하세요.”



간만에 제대로 된 옷을 입어서 그런지 기분이 산뜻했다.

 

 

자세히 보니 옷에 주름이 없는 걸로 봐서 서주희가 다림질을 해 놓은 것 같았다.

 

 

넥타이도 양복과 매칭이 꽤 잘 되는 것 같았다.



“그럼.......”



나는 지갑에서 청년의 신분증을, 그 중에서도 학생증을 꺼내들었다.



“WW대학 법학과...”



WW대학이라면 버스로 3정거장 거리이다. 나는 쓸데없이 돈을 쓰기가 싫어서 걸어가기로 했다.

 

 

대학 근처라 그런지 학교에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젊은 학생들이 많이 보였다.

 

 

문득 대학생 시절이 떠올라 싱글벙글한 표정이 되었다.



“참... 좋을 때구만.”



대학가는 역시 대학가라, PC방이나 노래방, 당구장이 많이 보였다.

 

 

마음 같아선 휴가 기분을 즐기고 싶기도 했지만 늦지 않기 위해서 바로 WW대학 안으로 들어갔다.



“우...와...”



WW대학은 생각보다 컸다. 아니, 여느 대학이 다 이렇게 큰 것일지도 모른다.

 

 

여러건물 사이를 헤치고 법과대학을 찾아봤지만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찾다가 결국 제풀에 지쳐서 길가는 여학생을 불러 세웠다.



“이보세요. 길좀 물읍시다.”


“예?... 예.......”


“.......”



뭔가 씁쓸한 기분이었다. 내가 노숙자 차림일 땐 사람들은 눈조차 마주치는 걸 피했는데, 막상 양복을 빼입고 오자 여학생의 표정부터 달랐다.

 

 

심지어 조금은 상기된 것 같았다. 나는 살짝 짜증이 올라왔지만 신경 쓰지 않으며 말했다.



“법과대학이 어딥니까?”


“법과대학이... 저쪽 위에 올라가다 보면... 경상대학 옆에 붙어있어요.”


“음... 감사합니다.”



나는 살짝 고개를 끄덕해서 감사함을 표시했다.

 

 

여학생은 뭔가를 기대한 눈치였지만 나는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알려준 곳으로 갔다.



“저기군.”



나는 법학과실을 찾아, 그 안으로 들어갔다. 안은 학생들 몇 명으로 꽤나 시끌벅적했다.

 

 

하지만 갑자기 내가 등장하자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아... 그게...”



이런 분위기에선 말하는게 익숙하지 않았지만, 나는 최대한 어색하지 않게 어설픈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사람을 찾는데... 이 사람 혹시...”



내가 청년의 학생증을 꺼내들자, 바로 반응이 나타났다.



“어? 기철이 형이네?”


“어, 진짜 기철이 오빠.”


“이리 주세요 저희가 전해 줄게요.”



가장 앞에 있던 여대생이 내가 가지고 있던 학생증을 향해서 손을 뻗었다.

 

 

나는 그대로 학생증을 뺏길 순 없어서 손을 빼며 말했다.



“직접 전해주려고 하는데...”


“그냥 저희가... 아, 저기 왔네요. 기철이 오빠!”



나는 여대생이 가르킨 곳으로 시선을 돌리자 학생증에 박힌 사진의 주인공이 법학과실의 문을 열고 들어오고 있었다.



“응?”

 

 

 

 

기철이라고 불리던 청년은 수업시간에 질펀하게 자다가 왔는지 얼굴이 살짝 부어있고, 하품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눈도 조금은 풀려있었다.

 

 

나는 일이 좀 잘 풀리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지려는데, 청년이 갑자기 욕을 뱉었다.



“신발! 너지?!”


“?”



갑자기 뺨을 얻어맞은 것 같이 정신이 없었다. 나름대로 학생증을 찾아주려고 왔더니, 왠 욕이란 말인가?

 

 

나는 잠시 멍하게 있다가 질 수 없다는 생각에 욕을 뱉었다.



“미친 새끼. 뭐라고? 신발?”


“너잖아! 니가 내 카드로 계산하고, 지갑은 카운터에 버렸잖아! 게다가 신분증만 가져가? 이거 뭐 스토커 아냐?”



나는 흠칫 놀랐다. 생각해보니 내가 이 청년에게 지은 죄가 없진 않았다. 청년의 카드를 가지고 계산을 한 건 분명 범법행위였다.

 

 

그땐 기분이 좀 더러워서 한 건데, 이렇게 다가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하지만 어린놈에게 기가 눌려서야 체면이 살지 않는다. 나는 얼른 말을 지어냈다.



“똥 싸고 있네. 니가 무슨 연예인이냐? 스토커? 신발, 지나가는 똥개를 스토킹하고 말겠다. 난 단지 술 마시다가 이걸 주워서 돌려주려고 왔을 뿐이야. 똥개 새끼야.”



내가 한바탕 갈겨버리고 나자, 청년은 당황한 듯 입을 헤 벌리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승리감에 의기양양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 학생들도 청년과 얼굴이 똑같이 변해 있었다. 청년은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 그럼 그런 거지 왜 마..말을 그렇게 심하게 해...요...”


“내가 지금 흥분 안하게 생겼냐? 간만에 좋은 일 좀 하려고 왔더니 뭐...? 스토커...? 똥개 새끼가!”


“죄... 죄송합니다...!”



청년은 이제야 좀 분위기 파악이 됐는지 나에게 90도로 허리를 굽히며 사과를 했다.

 

 

나는 좀더 할 생각이었는데 먼저 허리를 굽혀오자 머쓱해져 버렸다. 나는 계속 사과를 하는 청년을 말리며 말했다.



“그럼 따로 어디 가서 이야기 좀 하지.”


“예...? 예...”



나는 멍하게 우리를 쳐다보고 있는 학생들을 뒤로 한 채 청년을 끌고 건물 밖으로 나왔다.

 

 

대학교 안이라 그런지 앉을 곳은 많았다. 나는 그 중 테이블이 있는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그늘도 있고, 사람도 많이 지나다니지 않는 곳이라 훨씬 좋을 것 같았다.



“앉아.”


“예.”



청년은 어느새 고분고분해져 있었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목소리를 깔고 말했다.



“너 이름이...”


“이기철이라고 합니다. 법학과 3학년이에요.”


“3학년이면 군대는 갔다 왔겠군.”


“예.......”



나는 어떻게 대화를 풀어갈까 생각 좀 하기 위해서 일부러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집은 어디지?”


“....... 부산인데요.”



이기철은 이런 걸 물어보자 이상하게 여겼는지 고개를 조금 갸웃거리곤 대답을 하였다.

 

 

나는 그것을 눈치를 채고 내 지갑을 꺼내어 형사시절에 쓰던 신분증을 보여주었다.

 

 

이기철은 나의 신분증을 보자마자 흠칫 놀래며 눈알이 동그랗게 변했다.



“경찰....,,,!”


“쉿!”



하지만 내가 주의를 주자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부들부들 떨었다. 나는 재미를 느끼며 이야기를 지어냈다.



“어처구니없는 짓을 했더군?”


“예...? 그게 무슨...”


“너, x월 xx일날 기억 안나? 술 취한 사람을 밟던 거.”


“.......”



내가 전선기와 접촉을 했던 그날을 이야기 하자 이기철의 얼굴에서 땀이 흐르기 시작하였다.

 

 

그날 분명 이기철은 전선기를 개 밟듯 밟았고, 법대생인 이상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법을 아는 사람이라면 더 이야기가 빨랐다.



“니가 법대생이라서 법은 어느 정도 알거라고 생각이 들어.”


“예...”


“사실 니가 그날 밟았던 사람이 내가 아는 사람이었어.”


“.......”


“그 사람이 경찰에 신고를 한 건 아니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 일부로 내가 직접 찾아왔지.”


“그렇다면 합의를...!”


“급하긴... 이야기를 들어봐.”



나는 흥분해서 벌떡 일어나며 말하는 청년을 가볍게 손을 흔들어 다시 벤치에 앉혔다.

 

 

청년은 초조한 듯 다리를 떨며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만 실소를 지었다.



“난 내가 아는 사람이라고 했지 친하다고는 말을 안했어.”


“그건... 무슨 소리죠...?”


“니가 밟았던 사람은 사실 어떤 조직의 간부급 되는 인물이야.”


“.......!”


“너를 백방으로 수소문하면서 찾아다니고 있지. 혹시 그날 지갑 잃어버리지 않았냐?”


“마..맞아요! 잃어버렸어요!”


“그 놈이 가지고 있어.”




이 대목이 이르자 이기철이 온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하기야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상당히 공포스러운 말일 것이다.

 

 

나는 거짓말을 하고는 있었지만 죄책감이 들지는 않았다. 어떻게 보면 나는 선의의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전선기에게 걸렸다간,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죽어 버릴 테니 말이다.

 

 

이기철은 한참을 멍하게 테이블을 응시하더니 에게 시선을 확 돌리고 말을 했다.



“저... 전 어떻게 하면 되죠?”


“나한테 협조를 좀 해줬으면 한다.”


“협조요...?”


“그래. 난 그놈을 쫓고 있어. 경찰에서는 명확한 근거가 없어서 가만히 두고 있지만 나는 그놈이 어떤 사건에 연루되어 있다고 생각을 하거든. 그래서 이렇게 독단적으로 그 새끼를 쫓고 있는 중이야. 그 과정에서 니가 다음 목표란 걸 우연치 않게 알게 되었고.”


“하..할 수 있는 건 뭐든지 하겠습니다! 제발 살려주세요!”



이기철이 내 손을 양손으로 덥썩 잡으며 사정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속으로 씨익 웃을 뿐이었다.




이기철과의 만남을 끝내고 나는 곧바로 원룸으로 돌아왔다.

 

 

서주희가 방구석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는데, 내가 들어오자 화들짝 깨며 말했다.



“벌써 오셨어요?”


“어, 내 옷은?”


“빨아놨어요. 다 말랐으려나?”


“괜한 짓을...”


“그럼 그걸 또 입게요?”



서주희가 덜 깬 눈을 비비며 배란다로 나갔다. 나는 넥타이와 외투를 잘 정리를 해 놓고 방안에 앉아 기다렸다.

 

 

서주희가 곧 미안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나타났다.



“아직 덜 말랐는데요...”


“얼마나 말랐는데?”


“약간 축축한 정도?”



나는 벌떡 일어나 베란다로 나갔다. 베란다의 빨랫줄에 내 옷들이 걸려있었다. 나는 손으로 내 옷들을 하나하나 만져보았다.

 

 

습기가 좀 남아있긴 하지만, 아예 축축한 정도는 아니다. 이 정도는 지하철로 가면서 다 마를 것 같았다.

 

 

마침 햇빛도 꽤 강하다.



“그냥 입지 뭐.”


“.......”



서주희는 미안한지 계속 쭈뼛쭈뼛 서 있었다.

 

 

나는 옷들을 가지고 화장실로 들어가려다, 그런 모습이 좀 안쓰러워 그녀에게 다가가서 밴드가 붙어있는 부분을 꾸욱 눌렀다.



“으앗!!”



꽤나 고통스러운지 서주희가 확 피하며 표정을 찌푸렸다. 찡그려진 그녀의 입에서 곧바로 소리를 질렀다.



“이게 뭐하는 짓이에요?! 아파 죽겠는데!”


“이제 좀 낫네.”



-쾅.



나는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으며 화장실문을 쾅 닫으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옷을 갈아입었다.

 

 

아직 물기가 남아있어서 그런지 팔과 다리가 잘 들어가진 않았지만, 막상 입고나자 옷이 시원시원한 게 좋았다.



“어디 갔다 온 거 에요?”


“잠깐 대학교.”


“대학교를 왜요?”


“몰라서 물어? 전선기 잡으러.”


“선기 오빠를 왜 대학교에서...”


“그만, 그만, 복잡하니까 나중에 이야기 하자.”


“.......”



서주희가 계속 물어보자 내가 손을 저으며 이야기를 끊었다. 나는 담배를 한 갑 챙기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나오자마자 더위에 숨이 탁 막혔다. 이 정도면 젖은 옷 정도는 순식간에 마를 것 같았다.

 

 

핸드폰을 꺼내어 보니, 이기철에게서 문자가 여러통 와있었다.

 

 

자신의 뒤를 누가 따라오는 것 같다느니, 집에만 있으면 안 되겠냐는 불안한 문자들뿐이었다.

 

 

나는 아직은 괜찮다는 말만 보내고 시간을 확인하였다.



-3: 46



시간은 많이 남아있었다. 막상 휴가를 나오고 보니 할 게 많이 없었다. 나는 심심해서 형식이에게 한번 전화를 해보기로 했다.



--뚜...... 뚜....... 딸깍. 여보세요?!


“어, 형식아 오랜만이다.”


--야 임마, 그동안 연락도 안하고... 어떻게 지냈어?“


“그냥 뭐... 요즘 어때?”


--몰라서 물어? 너 때문에 바빠 죽겠제.


“아직도? 캬... 오래도 간다.”


--한달도 안됐는디 뭐... 잘 있제?


“나야 잘 있지. 그나저나... 민창수는 어때?”


--민창수 검사? 갑자기 왜?


“아냐, 됐다.”


--싱겁긴. 그 인간은 별일 없다는 것만 알어. 다만...


“다만?”


--니가 그때 전선기가 범인이라고 했었제? 그 전선기가 검찰쪽에 손이 닿는 모양이여. 오늘 본께 민창수 검사랑 같이 있더라니까.


“.......!”

 

 

 

 

전선기가 남에게 쉽게 노출이 될 정도로 조심성이 없을 리가 없다.

 

 

민창수와 만나고 있다는 것을 남이 알 정도면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판단할 수 있었다. 나는 이 이야기에 관해서 자세히 듣고 싶어 졌다.



“만나서 이야기 하자.”


--응? 그래. 7시에 우리 집으로 오면 될 거야.


“그래.”


-뚝.



전선기가 이렇게 빨리 움직일 줄은 몰랐다. 아마도 민창수의 버릇과 행동방식을 파악해서 죽일 계획을 짜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계획엔 반드시 내가 포함이 될 것이다. 쓸데없이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진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일단 형식이네 집 근처로 이동을 했다. 형식이의 집은 5층짜리 빌라다. 원룸은 아니지만, 혼자살기에 넉넉한 평수로 되어 있었다.

 

 

물론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지 않기 때문에 일부로 숨을 필요도 없었다.

 

 

나는 일단 놀이터로 가서 그네에 앉았다.

 

 

그네의 연결부분이 꽤나 녹이 슬었는지 움직일 때마다 삐그덕 거리는 소리가 고요한 놀이터를 울렸다.



“... 정말 심심하군.”



날이 점점 어두워지자, 놀이터는 흡사 공포물 영화에서 나오는 그림이 연출이 되었다.

 

 

거기에 내가 삐그덕 거리는 소리를 양념으로 치자, 더욱 더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해 냈다.

 

 

마침 바람도 조금씩 불어서 더욱 으스스했다.



“있을 곳이 못되는 군.”



처음엔 이런 괴기스러운 상황을 즐겼지만 계속 있으니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차라리 형식이네 집 앞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그네에서 일어났다.

 

 

팽팽하게 당겨지던 쇠사슬이 흔들리면서 찰랑거리는 소리를 냈다.

 

 

나는 혹시나 더럽혀졌을 엉덩이를 툭툭 털며 놀이터를 가로질러 걸어 나왔다.

 

 

혹시 떨어뜨린 게 있나 확인하기 위해서 뒤를 돌아봤다.



“뭐지.......?”



분명이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놀이터의 미끄럼틀 아래에서 한 아이가 흙놀이를 하고 있었다.

 

 

나는 혹시 주변에 또 누가 있나 알아보기 위해서 주변을 한번 스윽 둘러보았다.

 

 

이가 빠져있는 벤치는 비어 있었고, 그 외에는 누가 있을만한 곳이 없었다.

 

 

내가 내던 삐끄덕 거리는 소리가 없어진 놀이터에는 어린 아이가 흙 놀이를 하면서 내는 사각거리는 소리만 작게 울릴 뿐이었다.



“히히힛...”



갑자기 웃음소리가 들려 뒤를 화악 돌아봤지만 아무도 있지 않았다. 아무래도 저 아이가 낸 웃음소리 같았다.

 

 

나는 무언가에 이끌리듯, 그 아이에게 다가갔다. 날이 점점 어두워지는데 이렇게 혼자 있다니 위험할 것 같았다.

 

 

내가 조금 기척을 내면서 가까이 다가갔지만, 그 아이는 뭔가에 열중하듯, 계속해서 땅을 파고 덮고를 반복할 뿐이었다.

 

 

나는 잠시 그 아이를 지켜보다가, 자세를 낮추고 그 아이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꼬마야?”


“.......?”



아이가 천천히 돌아봤다.



“헉...!”



나는 순간적으로 깜짝 놀라 뒤로 넘어져 버렸다. 얼굴의 모습이 흉측해 보였는데, 다시 보니 흙먼지가 묻어서 거뭇거뭇해진 것뿐이었다.

 

 

나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천천히 일어났다. 가까이에서 보자 분명 여자아이였다.

 

 

아이는 내가 갑자기 소리치자 이상했는지, 갸웃거렸다. 나는 손을 털며 아이에게 말했다.



“부모님은 어디계시니...?”


“아빠는 아직 안 왔어.”


“엄마는...?”


“엄마는 없어.”



순간 속으로 아차 하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아이가 해맑게 웃으며 이야기를 해서 나는 아이의 머리를 말없이 쓰다듬어 주었다. 아이가 걱정되는 눈빛으로 나에게 물었다.



“아저씨 안 아파? 아플 것 같은데...”


“응... 괜찮아.”



나는 되려 나를 걱정해주는 아이가 조금은 기특해 보였다. 심심하기도 하고 할 것도 없는 나는 아이와 조금 더 이야기를 해 보기로 했다.



“몇 살이니?”


“4살...”



아직은 발음하기가 조금은 힘든지,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조금 웅얼웅얼 소리에 가까웠다.

 

 

평소에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왠지 얼굴이 낯이 익고, 정이 많이 가서 아이를 데려다주기로 마음먹었다.



“집에 가야지. 집 어디야? 아저씨가 데려다 줄게.”


“아빠가 아무나 따라가지 말라고 했어.”


“.......”



순간 할 말이 없어졌다. 문득 나의 행색을 보니 영락없는 납치범의 모습이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하핫. 그래. 그래도 위험하니까 집에 들어가 있어.”


“응... 좀만 더 있다가...”



나는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억지로 끌고 가지 않는 한 이 아이는 아무래도 움직이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그만 일어났다.

 

 

잠시 쭈그려 앉아 있었을 뿐인데, 무릎에 통증이 천천히 밀려왔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몇 시인지 보기 위해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6: 32



시간이 어느 정도 된 것 같았다. 이제부터는 형식이를 집 앞에서 기다리면 될 것 같았다.

 

 

나는 아이에게 손을 흔들고 놀이터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형식이가 사는 라인으로 들어갔다.

 

 

형식이는 4층에 살고 있어서 나는 3층에서 4층 올라가는 계단에 머물기로 했다.



“끙.......”



나이를 먹을만큼 먹어서 그런지 올라가는데 무릎이 살살 아파왔다.



“헉.. 헉.. 옛날같지 않구만...”



겨우 3층을 올라왔을 뿐인데, 호흡이 턱밑까지 올라왔다. 나는 조금 더 숨을 고르고 담배를 하나 꺼내들었다. 비닐이 아직 담배를 감싸고 있었다. 새 거다.



“오늘 담배를 안폈었나?”



생각을 해보니 오늘 담배를 피질 않았었다. 나는 나름 뿌듯함을 느끼며 담뱃갑을 거꾸로 들고 몇 차례 툭툭 친 뒤에 비닐을 뜯었다.

 

 

그리고 가지런히 놓여있는 20개의 담배 중에서 오른편 구석에 있는 녀석을 꺼내어 입에 물었다.

 

 

새로 뜯은 담뱃갑은 뚜껑을 열고 닫는 느낌이 참 좋다.



“라이터가...”



다시 담뱃갑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주머니를 툭툭 쳐보며 라이터가 있는 곳을 찾았다. 라이터는 오른쪽 주머니에 있었다.


-칙... 칙... 칙... 칙... 화륵...“



“가스가 벌써 다됐네...”



노숙인이 된 이후에는 라이터를 무조건 끝까지 쓰게 되는 것 같았다.

 

 

형사 시절에는 라이터를 끝까지 쓴 역사가 없었지만, 막상 돈이 궁해지고 담배를 피울 일이 많이 없어져서 끝까지 쓸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버리기 전에 가스양을 눈여겨보니, 아직 4번 정도는 더 불을 켤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다시 라이터를 바지의 오른쪽 주머니에 넣고 창문을 통해 밖을 감상했다.



“어라...?”



창문을 통해 놀이터가 보였다. 아까 그 아이도 아직 놀이터에서 흙장난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광경을 마치 TV를 보는 것처럼 편안하게 감상을 했다. 형식이가 올 때까지 이러고 있으면 될 것 같았다.

 

 

잠도 조금씩 오는 것 같고, 조금은 졸린 눈으로 아이를 보고 있는데 자동차 엔진 소리가 났다.

 

 

형식이 차인가 보려고 소리가 나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형식이의 차는 아니었다.

 

 

하긴 형식이의 차가 저렇게 좋은 엔진소리를 낼 리가 없다. 묵직한 엔진 소리를 내는 차는 고급 중형 세단이었다.



“저런 고급 차가 왜 이런 빌라에... 어...?”



대수롭지 않게 시선을 옮기려는데, 나는 다시 그 차를 볼 수밖에 없었다.



“저 차는...!”



저 차는 본 적이 있다. 아니 분명히 아는 차다. 차종을 아는 게 아니고, 차 주인이 누군지 나는 알고 있었다.

 

 

그 차는 천천히 주차장으로 진입해 들어오더니, 놀이터의 가장 가까이 있는 공간에 주차를 했다. 그리고 차에서 누군가가 내렸다.




“아빠!”




한참 흙장난에 집중하던 아이의 높은 톤의 목소리가 나의 귀를 후볐다. 아이의 얼굴이 익숙했던 이유가 있었다.

 

 

나는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창틀을 움켜잡고, 겨우 덜덜떨리는 손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비록 고급 차에서 내린 사람의 뒷통수만 보일 뿐이었지만, 나는 그 모습을 단박에 알아 차릴 수 있었다.








“민창수...!!”

 

 

 

 

본능적으로 나의 몸이 낮춰졌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던 담배가 불꽃을 튀기며 땅에 떨어졌다.



“대체 왜 저놈이...!”



나는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떨어진 담배를 주우려했다. 하지만 몇 차례 실패를 하고 겨우 내 입술에 물릴 수 있었다.

 

 

나는 억지로라도 이 기분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담배를 크게 빨아들여 보았다.

 

 

하지만 몸이 거부를 하는 듯 고통스러운 기침이 목구멍을 타고 올라왔다.



“켁!! 콜록 콜록...”



나는 혹시라도 밖에 들릴까 입을 틀어막으며 기침을 했다. 기침을 할 때마다 내 폐에 갖혀있던 담배연기가 기도를 타고 올라와 뿜어진다.



“하아...”



밖에선 아이의 대화가 계속 들리고 있었다. 어린 아이의 목소리라 그런지 톤이 높아 목소리가 잘 들렸다.

 

 

그에 반해서 저음에 속하는 민창수의 목소리는 웅얼거리는 소리밖에 들리질 않았다.



“아빠, 나쁜놈들 잡았어?”


“........”



겨우 기침이 진정이 되자 머릿속이 조금은 정리가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와 함께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올라왔다.

 

 

머리에 열이 가득 차 뜨거워지는 게 느껴질 정도 였다. 나는 방금 전 아이가 민창수에게 말한 단어를 다시 한번 곱씹어 보았다.



“아빠라구...? 아빠...?”



아이는 분명 4살이라고 했었다. 누나와 민창수가 아무리 오래 사귀었다고 해도 임신기간 10개월 동안 내가 눈치를 못 챌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둘이 사귄 기간은 5년 정도 밖에 되질 않았다. 만나자마자 애를 임신했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결국 결론은 저 애는 다른 여자의 아이가 분명했다.



“애를 가지고 있으면서 누나를 만나...?”



문득 저번에 민창수가 말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 새끼는 실종된 누나를 자신의 발목을 잡는 족쇄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강아지...!”



그때, 창 밖에서 차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높은 톤의 아이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곧 부드러운 엔진소리가 나더니 그 소리는 점점 빌라에서 멀어져갔다. 그러는 동안에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민창수에 대한 분노로 계단 복도에 껴있는 거미줄의 갯수만 세고 있는 꼴이었다.

 

 

엔진소리가 아예 들리지 않게 된지 한참이 지나서도 온갖 사념이 머릿속을 가득 매우고 있었다.



“으엑...! 콜록...콜록... 퉤!”



담뱃불이 필터까지 태워버리고 나서야 나는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나는 조금 타버린 필터를 창 밖으로 뱉어버리고 계단 벽에 기대어 앉았다.

 

 

그 동안 민창수를 죽이는 일에 전선기와 손을 잡았던 게 잘한 일인지 조금은 긴가민가했었는데 드디어 잘한 일이라고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더불어 형식이를 만나기로 한 일을 정말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깊은 한숨과 함께 알 수 없는 웃음이 새어나왔다.



“하하하하하하핫.......”



한바탕 웃은 나는 혹시 아랫집에서 사람이 튀어나올까봐 정색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시 담배를 꺼내어 불을 붙이려는데, 아래층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복도에선 흡연 금지여.”


“빨리도 오시는구만... 복도에서 흡연 금지하는 게 어디 있어? 흡연자는 어디서 담배 피라고?”


“부녀모임에서 결정된 일이라 참아줘.”



형식이는 웃으며 다가와 내 입에 물려진 담배를 톡 빼냈다. 나는 다시 낚아채듯이 담배를 받고, 엉덩이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식이는 그 동안 문에 붙여진 전단지를 떼어내고 집문을 열었다. 전단지가 나풀거리며 바닥에 떨어졌다.

 

 

그중에서 피자 사진이 맛있게 나와있는게 있었다.



“나 피자 좀 시켜주라.”


“피자? 너 맨날 경찰청에서 피자 시켜먹는다고 싫어 했잖여.”


“안 먹으니까 그립네.”


“하핫... 그래 시켜주지.”



형식이는 떨어진 전단지를 주워들고 집 문을 열었고, 나는 형식이를 따라 들어갔다.

 

 

나는 막상 집에 들어가려고 하자, 더러워진 내 옷들 때문에 들어가기가 좀 망설여졌다.

 

 

형식이가 겉으로 보기엔 덩치 좋은 형사였지만 집은 꽤 깔끔하게 해놓고 살고 있었다.

 

 

내가 신발도 벗지 않은 채로 현관에 서 있자, 형식이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왜 안 들어오는거여? 모기 들어오니까 빨리 문 닫고 들어와.”


“... 이 꼴로 들어가도 되냐? 밖에서 이야기 할까?”


“자식이 농담이 늘었구만. 괜찮으니까 들어오기나 해.”


“.... 고맙다.”



나는 어색하게 말하고 형식이네 집에 들어와 앉았다.

 

 

조금 앉아있자, 형식이가 냉장고에서 포도주스를 꺼내 투명한 유리잔에 따르고 꽃무늬의 쟁반에 받혀서 왔다.



“고마워. 잘 먹을게.”


“.......”



내가 컵을 들고 서너 모금 마시는데, 뭔가 시선이 느껴져서 앞을 보니 형식이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왜?”


“아니 그냥...”


“쳇, 싱겁긴... 그래, 민창수가 전선기랑 만나고 있었다고? 자세하게 말 좀 해줘.”


“그래. 자세한 것 까진 아니고, 내가 그냥 둘이 같이 있는 모습을 봤었어.”


“그래...? 둘이 어떻던데?”


“희안하게 민창수 검사가 전선기에게 조금 밀리는 것 같은? 그런 말투를 쓰고 있었제. 꼭 상관 모시는 것 같던디.”


“그러기야 하겠지...”



형식이는 아직 전선기가 전부석 서울중앙지방검찰정장의 아들이란 사실을 모르는 것 같았다.

 

 

나는 말을 해줄까 하다가, 괜히 색안경을 씌워줄 것 같아서 굳이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민창수 검사가 니 사건에서 손을 뗏어.”


“뭐...? 그럴 리가...”


“진짜여. 요즘은 이상한 일에 손을 대고 있던디.”


“무슨 일?”


“대학가 폭행사건에 대해서. 그 있잖아? 술먹고 싸우는 애들... 너도 알듯이 보통은 경찰 선에서 합의로 끝내잖여?”


“보통은 그러지.”


“근데, 민창수가 뭐라드라? 유흥가의 안 좋은 일면을 뿌리 뽑는다던디?”


“.......”



갑자기 민창수가 이상한 곳에 신경을 쓰니 뭔가 찝찝했다. 민창수는 은근히 출세욕이 높은 놈이었다.

 

 

사건을 맡아도 힘들고 굵직굵직한 사건만을 고집하고, 휴가도 반납하고 경찰들과 현장을 왔다갔다 할 만큼 경찰입장에서는 상당히 피곤한 검사였다.

 

 

그런 놈이 난데없이 성과도 없는 대학가의 술판을 조지겠다고?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눈을 감고 생각을 좀 해보기로 했다. 그런데, 형식이가 말을 꺼냈다.



“넌 어떻게 하기로 했냐?”


“응?”



형식이가 나에 대해서 말을 꺼내자 난 눈을 뜨고 되물었다. 형식이가 어울리지 않게 조금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넌 전선기를 어떻게 처리하기로 했냐고. 전선기가 범인이라는 증거를 잡고, 어떻게 우리한테 넘겼다고 쳐봐. 그 이후엔 어쩔거여?”


“그 이후...”


“그렇다고 니 죄가 없어지는 건 아니잖여. 넌 여전히 죄를 가지고 있고 죗값도 받아야 할텐디...”



나도 그 이후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아니, 애초에 죄값을 받을거란 건 당연하게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물론 전선기를 털끝하나 건드리지 않고 증거만을 포착해서 법을 통해서 유죄를 입증해 낸 후에 죗값을 받는다면 억울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표창장 한 장 줄 생각 않고 감옥에 보낸다니, 그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하지만 나는 법을 통해서 전선기를 심판할 생각이 없었다.

 

 

나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난 전선기를 깜방에 쳐넣을 생각이 없어.”


“그건 무슨말이여?”


“난 그 새끼를 죽일거야.”


“.......?”



형식이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그 시선을 무시하듯 유리잔을 들어 남은 포도주스를 모두 맛봤다.

 

 

약간을 떫고 신맛이 혀끝을 자극했다.

 

 

내가 유리잔을 다시 내려놓고 형식이를 보았을 땐 형식이의 표정은 상당히 화가 난 표정으로 변해 있었다.



“그게 무슨 소리여? 죽여? 진심으로 하는 말이여?”


“그래. 진심이야.”


“그럼 니가 그 새끼랑 다를 바가 뭐가 있어? 너도 똑같은 놈 아니여?”


“그래 똑같은 놈이지.”


“너, 이...!”



형식이가 더는 들어줄 수 없는 듯 나에게 돌진을 하여 나의 멱살을 잡았다.



-쨍그랑.



그 과정에서 내가 비우고 내려둔 유리잔이 형식이의 발에 걸리며 깨져버렸다.

 

 

나는 그 유리잔을 보며 미리 포도 주스를 다 먹어두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새끼야. 다시 한번 말해봐. 진심으로 하는 말이여?”


“어.”



나는 형식이의 시선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약간 힘 빠진 듯이 말을 했다.

 

 

형식이는 내 말에 상당히 열을 받았는지 꽉 쥔 주먹을 치켜들었다.

 

 

나는 신경 쓰지 않고 시선을 바닥으로 향했다. 치려면 치라는 제스처였다.

 

 

형식이는 부들거리는 주먹을 한참동안 공중에 방치시켜놓더니 나를 바닥에 패대기쳤다.



“에잇...!”



나는 그 힘을 못 이겨 꼴사납게 바닥에 쩍 달라붙었다. 바닥에 엎드린 채로 잠시 있자, 형식이의 씩씩거리는 소리가 귀에 박혔다.

 

 

아마 그의 시선도 내 뒤통수에 박히고 있을 것이다. 나는 힘없이 일어나 다시 자리에 앉았다.

 

 

형식이도 다시 자리에 앉더니 숨을 고르곤 말했다.



“너 많이 변했구만...”


“뭐가?”



갑자기 형식이가 어색한 분위기를 풍기며 말하자, 나는 내 주변에 있는 유리조각 파편을 쟁반위에 올리며 말했다.

 

 

형식이가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어이없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말을 시작했다.



“나쁜놈들은 법으로 해결하기로 했잖여... 첫 출근 할 때부터... 지금까지...”


“.......”



유리 파편이 맑은 소리를 내면서 쟁반위에 쌓여져 갔다. 나는 손가락이 혹여나 다칠새라 조심조심 큰 파편을 옮기며 말했다.



“분명히 그랬었지. 이 새끼 전까지는.”


“.......”


“너무 끔찍하고 상상할 수 없는 많은 일이 있었어.”



형식이가 마치 나의 이야기를 보는 것 같이 집중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할 생각은 없었다.



“니 말대로 난 그 새끼랑 똑같은 놈이야. 똑같은 놈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지.”


“... 그건 무슨 소리야...?”


“진짜 나쁜 새끼를 잡으려면 나도 진짜 나쁜 새끼가 되야 해.”


“.......”



형식이는 나의 말에 더 이상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한쪽 방에서 청소기를 가져오더니 청소기로 잘잘한 파편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휘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



우리 둘 사이에는 아무런 대화 없이 청소기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음을 알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문을 나설 때 청소기의 소음이 꺼지더니 형식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울음 섞인 목소리가.



“다신... 볼일이 없을거여.”

"........"











“그래.”

 

 

 

 

 

그대로 나는 형식이의 집을 나왔다. 형식이의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그렇게 서글플 수 없었다.

 

 

하지만 어쩌면 잘 된일 일지도 몰랐다. 이제 형식이는 전선기로부터 안전할 것이다.

 

 

사실 이렇게 조금씩 도움을 받는 것도 불안하긴 했었다. 계단을 한걸음 한걸음 내려갈 때마다 한숨이 푹푹 흘러나왔다.

 

 

그때,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핸드폰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여러번 울리지 않고 한번만 울리고 그치는 걸로 보아서 문자가 온 것 같았다.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 앉았다. 전선기로부터 온 문자인가? 나는 먼저 방수핸드폰부터 꺼내어 보았다.



“.......”



하지만 방수 휴대폰은 달라진 게 없었다. 아니, 애초에 액정이 안보이게끔 박살이 난 핸드폰인데, 문자 따위를 볼 리가 없었다.

 

 

나는 방수핸드폰은 다시 집어넣고 형식이가 전해준 핸드폰을 꺼내보았다.

 

 

역시, 문자는 스마트폰으로 와 있었다. 아마도 형식이 한테 온 문자 같았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문자 내용을 보았다.



-핸드폰은 그냥 써라.



나는 문자를 읽자마자 피식 웃고 말았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웃음 속에서 알 수 없는 씁쓸함이 베어나왔다.

 

 

그것을 느끼자 속에서 울컥 무언가가 끓어올라왔지만 꾸욱 눌러담고 나는 빌라를 나섰다.

 

 

해는 거의 저물었고, 날은 점점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시간이 궁금해져 시계를 보았다.



-8:30



이젠 전선기의 전화만 기다리면 된다. 나는 내 구역 근처에 최대한 인적이 드문 곳에 자리를 잡았다.

 

 

전선기에게 전화가 오면 어떻게 대답을 할 지에 대해서 생각을했다. 가장 궁금한 건 전선기가 나와 접촉을 할건가 였다.

 

 

만약 접촉을 한다면 나는 그 자리에서 전선기를 죽여버릴 것이다. 그 순간 속이 답답해졌다.



“어떻게 죽여...?”



지금까지 전선기가 살인을 저지를 때 사용한 수단이 돌맹이였을 뿐이지, 그 치밀함은 도를 뛰어넘었다.

 

 

만약에 전선기가 나를 만나고자 한다면, 내가 그냥 올 거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칼 정도의 흉기로는 전선기를 죽일 수 없다. 기회가 있는데도 죽이지 못하는 꼴이라니, 스스로가 우스워졌다.

 

 

총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총이면 충분하다.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어떻게 총을 구할지 바로 생각이 넘어왔다.



“암시장에서 사야 하나...?”



총을 구할 수단은 많았다. 이것저것 알고 있는 암시장만 5~6곳은 된다. 하지만 문제는 돈이었다. 암시장에서 총을 산다면 엄청난 돈이 들었다.



“....... 모르겠군.”



총에 대한 생각은 버리기로 했다. 처음부터 생각을 다시 해보니 전선기가 나와 직접적으로 접촉을 할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럴 생각이 있었더라면, 저번 통화가 이루어진 직후, 나에게 다시 전화를 거는 것보단 직접 만날 시간을 말하는 게 훨씬 효과적 이었을것이다.

 

 

이렇게 이것저것 생각을 하다보니 시간이 꽤 지나 있었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깡통을 가져와 구걸이라도 할 걸 잘못했다.

 

 

시간이 돈이라더니, 그 말이 틀리지 않았다.


한참 전선기에 대한 생각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 잡생각을 이리저리 하게 되었다. 그 모습을 발견한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너무 일찍부터 긴장을 했던 것 같다. 덕분에 지금은 긴장이 과도할 정도로 풀려 버렸다. 시간은 거의 다 되었다.

 

 

날은 이제 완전히 저물고, 어둠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주변엔 사람 한명 없이 고요했다. 귓가를 스치는 건 바람에 휘날리는 나뭇잎 소리 뿐이었다.

 

 

시간이 점점 다가오자, 슬슬 긴장감이 다시 올라왔다. 이게 적당한 긴장감 이었다.

 

 

방수 핸드폰을 꺼내어 무릎위에 부드럽게 올려놓는데,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위이이이이이잉, 위이이이이잉.



전화를 바로 받을까 손을 뻗었지만, 난 잠시 멈칫하고 잠시 기다리기로 했다. 바로 받는다면 왠지 내가 낮추고 들어가는 것 같은 짜증이 일었다.



-위이이이이잉, 위이이이이잉, 위이이이이잉.



이정도면 됐다.



“어. 말해.”


--늦게 받는군. 기다리던 전화가 아니었소?



노인의 목소리이다. 노인의 어투에는 약간 조롱하는 말이 묻어있었다. 나의 의도를 어느 정도 눈치 챘다는 뜻이었다.



“써억, 기다리던 전화는 아니었는데.”


--알겠소. 쓸데없는 말은 이제 그만 하도록 하겠소.


“그래.”


--일단 정확히 말해 둘게 있소.


“.......?”


--민창수를 죽이는 사람은 나요. 내가 직접 죽이겠소.



먼저 이런 말을 해주다니, 전선기가 고맙다고 느낀적은 처음인 것 같았다.

 

 

나로서는 환영할 일이다. 혹시라도 내가 전선기의 이동 경로를 예측한다고 할 때, 이편이 훨씬 좋았다.



“그래, 대신 나는 계획의 전권을 당신에게 위임하지.”


--....... 예상외의 말이군. 알았소.



노인의 말투는 정말 의외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말로만 이렇게 할 뿐이지, 전선기의 말을 곧이곧대로 따를 생각은 없었다. 때에 따라서 기회만 생긴다면 언제든지 이 새끼를 저격할 것이다.



“그래, 생각한 걸 한번 이야기해 봐.”


--지금은 계획을 짜는 중이오. 아직 정확한 윤곽은 잡히질 않았소.


“....... 뭐가 부족한데.”


--정보요. 정보.


“...?”


--그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파악해 놓을 필요가 있소. 사소한 버릇이나, 행동... 그리고 약점까지. 그의 숨쉬는 패턴까지 읽은 뒤에 계획을 짤 것이오.



전선기의 이런 말을 듣자 짜증이 확 일었다. 물론 치밀하게 움직이는 게 나쁘다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나에겐 시간이 많이 주어져 있지 않았다.

 

 

조금 멀리 본다면 내 목표는 전선기 인데, 시간을 끌면 끌수록 전선기는 더 깊숙한 쥐구멍으로 들어가 버릴 것이다. 나는 짜증이 일어 즉각적으로 말했다.



“시간을 끌어보려는 수작인가?”


--무슨소리요?


“모르는 척 하기는. 내가 아직 네놈을 노리고 있다는 건 알텐데? 이런 식으로 시간을 벌어놓고 튀겠다는 수작 아냐?”


--...... 말이 좀 지나치오. 물론 정보를 얻는데 여러 가지가 필요하지만 그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말은 하지 않았소.


“무슨 소리야...?”


--그리고 계획의 윤곽이 잡히지 않았다고 말했지, 계획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오.



전선기의 말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묵직함이 담겨있었다.

 

 

그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속이 갑갑해져 오는 게, 짜증이 일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는 침착하게 물었다.



“계획이 뭔데...?”


--계획에 대한 건 나에게 전권 위임한 거 아니었소? 그건 말해줄 수 없소.


“하하하하핫.”



웃음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이 말은 전선기가 나를 지켜보겠다는 말이었다.

 

 

그 말은 다르게 해석하면 내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꿰뚫고 있다는 말이 되었다.

 

 

아직 전선기는 나의 정확한 소재를 파악하지 못했다. 지하철 어딘가에 있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다.

 

 

그건 저번에 내가 화장실에서 전선기에게 된통 당했던 사건만 봐도 알 수 있다.

 

 

전선기는 경찰을 이용해서 지하철 전부를 차단했었다. 그게 이유였다.

 

 

하지만 전선기가 일방적으로 나에게 지시를 한다면, 나는 전선기의 손안에 들어간 거나 마찬가지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말했다.



“그럼 니 새끼가 나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가지고 놀겠다는 말이 아니냐?”


--아무래도 서로간의 신뢰가 부족한 것 같소.


“신뢰? 신발 신뢰? 달팽이관 오그라드는 소리하지마 새끼야.”


--그럼 내가 어떻게 하면 이 계획 중에는 당신을 해치지 않는다고 믿겠소?


“.......”



잠시 생각을 했다. 이것은 내가 생각해두었던 대답 리스트에 있지 않았다. 애초에 전선기가 먼저 이렇게 파격적인 제안을 할지 몰랐었다.

 

 

전선기도 나의 대답이 좀 길어질지 알고 있었는지, 재촉하지 않았다. 나는 생각을 충분히 하고 말했다.



“너의 위치를 추격할 수 있는 GPS랑 권총.”


--...어이가 없군...



이런 반응이 나올줄은 충분히 예상을 하고 있었다. 나는 나름대로 높은 가격으로 흥정에 임한거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중재는 전선기의 몫이다.



--...알겠소.


“?!”


--내일 중으로 보내도록 하겠소. 어디로 보내면 되겠소?


“.......너의 전소된 고시원으로 보내라. 내일 모레에 내가 받을 수 있도록.”


--알겠소.



나로써는 쾌재를 부를만한 흥정이었지만 이렇게 손쉽게 일이 끝나자 의심이 가는 게 먼저였다.

 

 

이렇게 불리한 조건을 순순히 인정하다니, 뭔가 있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지금은 전선기에게 대항할 수단을 갖는게 우선이었다.

 

 

나는 일단은 유리한 지점이 되었기 때문에, 숨을 고르고 이야기했다.


“그럼 서로간에 할 말은 이걸로 끝난 것 같군.”


--아직이오.


“.......?”


--지난 날에 당신이 민창수와 만났던 시간이 많았다고 들었소.


“그렇긴...하지.”


--그에게 약점이 될 만한게 없소?


“약점...?”


--그를 처리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오.


“........”



난 잠시 생각을 했다. 민창수에게 약점이 있었던가? 지난날에 내가 가졌던 약점은 있었다.

 

 

민창수가 서주희를 범인으로 몰고 간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그것을 녹음한 핸드폰은 이미 전선기의 고시원과 함께 전소되었다. 나는 혹시나 해서 말해보았다.



“민창수가 서주희를 범인으로 몰고 가려고 했어.”


--그건 괜찮군. 증거는 가지고 있소?


“니 고시원 불타면서 없어졌는데... 그게 전에 니가 언급한 그 약점이야.”


--.... 그런 약점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소. 증거가 있어야 하오.


“그 정도는 알고 있어.”



나도 답답할 따름이었다. 생각을 해보니 민창수와 알고 지낸 시간이 꽤 되는데도, 민창수는 약점하나 없었다.

 

 

완벽한 엘리트 검사님 이었다. 그만큼 빈틈없는 인간이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계속 생각을 해 보았다.



--없소...?


“.......”


--급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소. 좀 늦어지기야 하겠지만.


“미안하군.”


--다음 통화 시간은 아까 보내달라던 물품을 보내면서 쪽지로 남겨두겠소. 그럼.......



전선기가 전화를 끊으려는 말을 하자, 나도 들고있던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때, 번개처럼 머리를 스쳐가는 무언가가 있었다. 나는 얼른 전화기를 들고 고함치듯 외쳤다.



“잠깐만!!!”



나는 고함을 치고도 놀라서 혹시나 주변에 누군가 있는지 다시 한번 둘러보았다.

 

 

하지만, 주변엔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내지른 목소리만 파도치듯 나뭇잎 사이를 배회하고 있었다.



--....... 뭐요?



하지만 나는 이 말을 하기가 곤란해져 버렸다.

 

 

이 말을 해도 될 것인가? 분명 민창수에게 치명적인 약점이었지만, 인간적으로 내가 이 정보를 전선기에게 주어도 될것인가가 문제였다.

 

 

이 약점은 분명 민창수를 죽이는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말 하시오. 우리한텐 시간이 많이 있질 않소.


“그... 그게...”



입이 쉽게 떨어지질 않았다.

 

 

그렇게 독해지고 마음을 굳게 먹겠다고 다짐을 했지만, 이건 그동안 내몸에 베었던 정의와는 완전히 정반대의 행동이었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이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결론만 나올 뿐이었다. 그때 전화기에서 조용하게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민창수는...


“...?”


--당신의 누나를 죽였소. 움직이지도, 비명을 지르지도 못하는 그녀를 불태워서...


“...!!”



흔들리면 안되는 이야기였다. 이건 명백한 도발이었다. 이런 유혹쯤은 뿌리치고 내 소신을 지켜야했다.

 

 

하지만 나의 입은 나의 의지와는 다르게 움직였다. 누나에 대한 이야기에, 온 세포가 독립하여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나는 온몸에 끓어오르는 피의 분노를, 한마디에 담아 전화기에 대고 나지막히 속삭였다.










“민창수에게... 딸이 있어.”

 

 

추천수11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