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웃대(인생사프리님)
제가읽었던 이야기들중 재미나게 본 이야기입니다.
스크롤 압박이 있어요..^^
룸메이트 1화 ; http://pann.nate.com/b318390630
룸메이트 11화 ; http://pann.nate.com/b318393961
그녀는 내 말에 피식 웃었다. 하지만 아직도 눈물은 흐르고 있었다.
겉에서 보면 아마 조금은 우스운 상황일 거라고 생각했다. 서주희는 조금 마음이 풀렸는지 나에게 말했다.
“잘나가던 형사 아니었어요? 담배 한 까치 가지고 쪼잔 하긴.......”
“그 잘나가던 형사 목숨이 누구 때문에 끊겼는데? 길게 말할 거 없이 얼마 있어? 100원 정도는 있겠지? 이래봬도 나 담배 값 때문에 하루에 한대밖에 안 핀단 말이야. 근데 너 때문에 3개나 소모했어.”
“어이구, 어이구? 그깟 100원 내가 못 줄까 봐요? 치사해서 줄 테니까 걱정 말아요.”
“줄 수 있어? 그러면 나야 좋지. 지금 내놔.”
“쳇, 기다려 봐요.”
서주희가 담배를 아슬아슬하게 손가락에 걸치고 한 손으론 주머니를 뒤졌다.
있는 주머니라고는 바지의 주머니 밖에 없었지만 이상하게 주머니를 뒤지는 시간이 길었다.
일순간 그녀의 표정이 초조하게 변했다. 나는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돈 없냐? 100원이 없어?”
“잠... 잠깐만요!”
그녀는 꽤나 당황한 듯 다시 한번 주머니를 뒤졌지만 없는 동전이 나올 리가 없었다.
나는 그런 사실을 알고 있어서 재촉하지 않고 초조하게 기다렸다. 그리고 절대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녀에게 굴욕감을 좀더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저.. 저기...”
“응? 100원.”
내가 뻔뻔한 표정으로 손바닥을 그녀의 눈앞에 내밀자 담배를 든 그녀의 손이 덜덜 떨렸다.
나는 속으로 엄청난 쾌재를 불렀다. 그녀가 차마 말할 수 없는 말을 입에 담는 듯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없는데.......”
“뭐? 안들리는데 뭐라고?”
“없.......”
“크게 말하라니까, 뭐?”
“없다구! 없어요! 됐어요? 속이 시원해요?!”
그녀가 눈을 질끈 감고 나에게 한풀이하듯 쏟아냈다. 나는 그런 모습을 고소하다는듯 쳐다보았다.
아까 내민 손바닥은 거두지 않고 계속 내밀고 있었다.
서주희는 약 올라 죽겠다는 듯 눈을 부라리며 날 노려봤고 나는 크게 웃으며 손바닥을 거뒀다.
서주희는 꽤 삐진 듯, 담배를 크게 빨아들였다.
“콜록, 콜록...! 아.... 켁.. 켁...”
하지만 아직은 그 정도까진 무리인 것 같았다.
서주희는 한참을 콜록콜록 하더니 기침을 하도 심하게 해서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나머지 담배를 모두 피웠다.
처음엔 나도 많이 놀렸지만 이젠 좀 감정 좀 가라앉히라고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그녀가 담배를 다 피웠을 때가 되어서야 내가 말을 꺼냈다.
“이제 좀 낫냐?”
“네... 감사해요.”
“그럼 이젠 어떡할래?”
“.......”
서주희의 말대로 라면 계획 없이 일단 도망쳐 나온 것이기 때문에 아마도 갈데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돈이 있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지금 그녀는 전과자에 수배만 안될 뿐이었다. 일자리를 구하기도 쉽진 않을 것이다.
“나도 지금 처지가 이래서 더 이상 널 돌봐줄 수 없어.”
“저도 구걸을.......”
“생각하는 대로 내 뱉지 말고, 신중하게 말해. 그게 될 것 같아?”
서주희도 곧 내 말을 이해했는지 고개를 떨구었다. 나는 답답함이 다시 일었다.
이건 아까처럼의 답답함이 아니라 현실의 벽에 부딪혔을 때의 답답함 이었다.
확실히 지금의 나는 서주희를 책임지고 말고 할 게 없었다. 나는 마지막 수단이라는 생각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자수할래?”
“자수요.......?”
“그게 차라리 나을지도 몰라. 아직 너는 범인이라는 확증이 없어서 금방 감옥에 집어넣진 못할거야.”
“....... 다른 방법은 없을 까요...?”
“나로선 해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스스로 살아가야 돼.”
“.......”
“좀 생각해 봐. 난 형님이랑 이야기 좀 하고 올게.”
“네...”
형님은 가지 않고 멀리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야기가 생각보다 꽤 길어져 죄송스럽긴 했지만 내가 고함을 지르고 크게 웃는 등 스펙터클한 장면을 몇 가지 보여줬으니 심심하시진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도착하는 순간엔 욕이 먼저 날아왔다.
“이 새끼야. 왜 이렇게 오래걸렸어? 지루해 디지는 줄 알았네.”
“에이, 거짓말 하지 마세요. 재미있었잖아요? 내가 꽤 재미있을만한 장면을 많이 보여준 것 같은데.......”
“잘났다. 잘났어... 그래, 어떻게 마무리 됐냐?”
“쟤 전선기 애인이에요.”
나의 말이 끝나자마자 형님은 눈동자를 크게 키우곤 약간 화난 듯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뭐?! 근데 왜 너한테 찾아온 거야?”
“음....... 이야기를 하자면 꽤 길어요. 나중에 설명해 드리죠. 그보단, 여쭤볼게 있는데요.”
“뭔데?”
“저 여자가 만약 노숙자가 되면.......”
“미친 새끼, 그게 말이나 될 것 같냐? 절대 못 버텨. 내가 십 몇 년을 이 짓거리 하는데, 저 정도로 어린 여자가 혼자 노숙하는 건 한번도 못 봤다.”
형님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이건 절대 무리다. 아무리 정신력이 좋아도 기본적 체력이 있어야 할 텐데 약간 마른 서주희에겐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었다.
나는 바로 형님에게 물었다.
“그럼 형님이 제 상황에 처했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어쩌긴 방이라도 얻어서 쳐 넣어야지.”
“예?”
이건 조금 의외의 응답이었다. 내 생각엔 도와줄 여력이 되지 않기 때문에 그녀를 버리라는 둥의 대답이 나올 거라고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방을 잡아라? 그건 좀 이상한 말이었다. 게다가 나에겐 그럴만한 여력도 없다. 나는 황당해서 재차 물었다.
“전 그럴 돈이 없는데요?”
“아직 세상을 잘 모르구만.”
“.......?”
갑자기 형님이 이상한 말을 하자 나는 할말이 없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멍하게 형님을 보고 있자, 형님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몇 년동안 돈을 모으면서 방 한칸도 없을 줄 알았냐?”
“예? 방이 있어요?”
“조그만 원룸이긴 하지만.......”
“근데 왜 거기에서 잠을 안자요?”
“거긴 우리가 쓰진 않아. 가끔 보이는 버려진 어린놈들이나 정신 못 차리고 찾아온 가출한 년 놈들을 두는 곳이야.”
“아.......”
이 말을 듣고 나는 어느 정도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서주희에게 먼저 말하진 않기로 했다.
그녀가 노숙을 한다는 굳은 다짐이 있다면 그 정도 호의를 배풀어도 된다고 형님이 말씀을 하셨다.
만약, 서주희가 자백을 하겠다고 한다면 나는 군말없이 그녀를 경찰청으로 보낼 것이다.
곧 서주희가 생각의 정리를 마쳤는지 벤치에서 일어나 우리에게 다가왔다.
우리는 조금은 긴장한 채로 그녀가 오는 걸 지켜보았다.
우리 앞에 온 그녀의 표정은 뭔가 큰 결심을 한 듯한 표정이었다.
“생각해 봤어요.”
“그래. 어떡할래?”
“노숙, 할래요.”
“뭐? 얼마나 힘든 줄 알고나 하는 말이야? 지금은 여름이라 좀 낫지만.......”
“그런 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이것 말고는 별 수가 없어요.”
“.......”
나와 형님은 서로를 바라보며 눈빛을 교환했다. 형님은 꽤 흥미로운지 살짝 미소를 띄며 그녀에게 말했다.
“자, 따라와. 구역을 정해주마.”
원룸이 있는 곳은 지하철 근처에 있는 대학가였다. 도착을 막상 해보니 이렇게 좋은 곳이 또 있나 싶을 정도로 위치가 아주 좋았다.
지하철 근처라 왕래가 쉬웠고 꽤 깊은 골목에 있어서 누군가에게 미행 당할 우려도 없는 위치였다.
나는 도착하자마자 감탄하고 말았다.
서주희는 구역을 정해준다고 굳게 믿고 따라왔던지라 영문을 모른 채 큰 눈을 깜박깜박 하며 우릴 바라볼 뿐이었다.
집 앞에서 서주희가 그 상태로 가만히 있자 내가 씨익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뭐해? 들어가.”
“구역이 여기에요...?”
“그럼.......”
갑자기 서주희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당연히 감동받았으리라.
노숙자들이 무슨 돈이 있어서 방을 내어 주겠는가?
나는 내가 마련한 방은 아니었지만 나름 으쓱해져서 어깨에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나는 조금 자랑스럽게 말했다.
“어흠! 이 정도면 괜찮지?”
“차라리 구걸을 할게요.”
“음...? 무슨 소리야?”
“전 아직 처녀인데.......”
“?!”
서주희가 얼굴을 붉히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하자 형님과 나는 서로를 바라보며 얼빵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오해가 생긴 것 같았다. 나는 당황하여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무..무슨 소리야?!”
“.... 성접대... 아니에요?”
“뭐?! 뭔 소리야? 여기서 지내라고! 아무도 없어!”
아무래도 우리가 성접대로 돈을 벌겠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나와 형님은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 밖에 나오질 않았다.
하지만 조금 생각을 해보니 서주희가 그렇게 생각을 할 만도 했다.
돈도 없는 노숙자들이 으슥한 골목으로 데려와서 이상해 보이는 집으로 밑도 끝도 없이 들어가라니, 충분히 이해가 갔다.
서주희도 자신이 오해를 했다는 걸 알고 허리를 연신 굽히며 사과를 했다.
“죄송해요! 정말 죄송합니다!”
“하하핫, 그럴 수도 있지. 괜찮아, 괜찮아.”
“아니에요! 정말 죄송해요!”
“하하하하.”
간만에 정말 크게 웃어본 것 같았다.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웃은 후에 방에 들어갔다.
내가 처음 본 방은 생각보다 아늑하게 꾸며져 있었다.
집은 그렇게 넓진 않았지만, 있을 건 다 있고 청소도 매일같이 하는 것 같았다.
서주희도 좋은건 감출 수 없는지 함박웃음을 지었다.
“자, 우린 이제 갈게. 문 잘 잠그고 절대로 나오지마.”
“알겠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서주희가 현관을 나서는 우리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했다.
형님은 괜찮다는 제스처로 손을 살짝 들어보이곤 말을 했다.
“다친 곳은 왼쪽 구석 선반에 약들이 있으니 치료를 하도록 하세요. 그대로 놔두면 곪을 수도 있으니까, 깨끗하게 씻고 치료하도록 하세요.”
“네, 네.”
우리는 계속 잘 가라는 인사를 하는 서주희를 뒤로한 채 골목을 빠져나왔다. 나는 문득 궁금증이 일어 형님에게 물었다.
“저 방 얼마나 해요?”
“월 15로 하지.”
“우와. 엄청 싸네요? 어떻게 그런 가격에.......”
“싼 방은 그 나름대로 사정이 있는거 아니겠냐?”
“네?”
“한번 맞춰봐라.”
형님이 쓴웃음을 스윽 지으며 말하는데, 왠지 모르게 소름이 스르르 돋았다.
저 정도로 아늑하고 좋은 집들이 싼 이유는 한가지뿐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집 내력이.......”
“어, 연쇄 살인마가 살았던 집이야. 저 방에서 시체 토막도 하고 인육을 끓여먹기도 했다는 군. 그래서 헐값에 주고 샀어.”
“... 그런데서 머물러도 될까요?”
“적어도 아직까진 괜찮아. 한 20명은 저기서 살다 나왔는걸? 물론 그 사실을 전혀 몰랐지만.”
“아.......”
약간 찝찝한 면이 없지 않아 있긴 했지만 이 외의 방법도 있는 건 아니어서 크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형님과 나는 그 이야긴 더 이상 하지 않고 지하철로 건너왔다. 지하철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지하철 주변이 좀 시끌벅적 했다.
경찰 사이렌 소리가 들리고 지하철의 입구에서부터 조금 소란스러웠다. 형님은 거슬리는지 짜증나는 표정으로 말했다.
“무슨 일이야? 짭새 새끼들이...”
“귀찮게 됐네요.”
우리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가 뭔일 있겠느냐 싶어서 막 들어가려던 참에, 뒤에서 누군가 나를 잡아 끌었다.
“칠복이 아저씨?”
“지금 들어가면 안돼! 어이쿠 형님.”
“뭔 일이야? 경찰들은 왜있고?”
“아무래도 선후를 잡으러 온 것 같습니다요.”
“나를...?”
“그래! 지하철 밖에는 경찰복 입은 경찰들이 깔렸고, 안에는 사복입은 경찰들이 깔렸어! 지금 들어가면 무조건 잡혀. 벌써 우리 애들 몇몇을 해코지 한 모양이야.”
“젠장, 어떻게 알고...”
칠복이 아저씨는 아직도 숨이 가쁜지 헥헥 거리고 있었다.
확실히 주변을 조심스럽게 살펴보자, 경찰들이 입구를 교묘하게 봉쇄하고 있었고, 들락날락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형사들이 보였다.
그 중에서는 수사를 같이 했던 익숙한 얼굴도 보였다. 나는 더 이상 여기 있을 수 없을 것 같아서 형님에게 말했다.
“형님, 일단 제가 여기서 자리를 뜨겠습니다.”
“어, 알았다. 조심하고 경찰들 철수하면 바로 나한테 와라.”
“네.”
나는 서둘러서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갔다.
처음엔 빠른 걸음으로 나왔지만 나는 걸음 속도를 보통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뒤에 누군가 붙었다.
“쳇.”
항상 내가 누군가를 이렇게 미행하는 입장이었는데, 미행당하는 입장이 되자 귀찮기 그지없었다.
특히, 나는 형사들이 어떤 방식으로 미행하는 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도망칠 방법을 잘 알고 있기도 하지만 얼마나 타깃을 귀찮게 하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먼저 큰길가로 빠져나왔다. 좁은 골목은 이미 다른 형사놈들이 매복을 하고 있을 것이다.
형사들의 추격하는 방법은 그러했다. 범인을 복잡한 골목으로 몰고 나서 여기저기서 한쪽으로 몰며 결국은 막다른 길로 몰아버린다.
그런 수에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큰길가로 나가는 게 좋다.
큰길은 쫓는 입장에서는 걸리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일순간 범인이 사라져 버리는 경우가 수없이 많았다.
이쯤 생각이 이르자, 내가 그 동안 왜 형사를 했는지 혼란이 오기 시작했다.
이렇게 도망치려고 형사가 된 건 아닌데 말이야.
“일단은 두 명인가?”
형사들은 내가 골목으로 가는 줄 알았는데 오히려 큰길가로 나와 버리자 좀 당황한 것 같았다.
타깃이 바로 앞에 있는데, 자랑스럽게 무전기를 꺼내 동료들과 연락을 취하는 모습을 금방 관찰할 수 있었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걸으며 이제 어떻게 할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난 금방 생각을 정리하고 코너를 돌자마자 행동에 옮겼다.
“택시!”
멀리에서 오는걸 아까부터 봐두었던 택시를 잡았다. 코너를 돌자마자 잡은 것이라 아직 형사들이 보진 못했을 것이다.
“GG은행이요.”
“네에~”
택시가 미끄러지듯 출발했고 나는 자세를 약간 숙인 채 앉았다.
마침 날이 저물어 밖에선 택시의 안이 잘 보이지 않을 것이다.
살짝 본 창밖에 형사들이 당황하여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거리고 있었다.
“우회전으로 가주세요.”
“네? 거긴 방향이 아닌데요.”
“죄송한데 제가 깜박 잊고 돈을 안가지고 타서 내릴게요. 정말 죄송합니다.”
“아나.... 그런 건 미리미리 확인 좀 하시지...”
“정말 죄송합니다.”
개인택시라 정말 다행이었다. 개인택시가 아니었다면 택시기사도 곤란하고 나도 곤란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나는 이미 사과하는 건 도가 터서 수차례 사과를 하고 택시에서 내렸다.
그리고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있는 형사들의 뒤를 잡았다. 그들은 어쩔 줄 몰라 하다가 무전을 때리더니 철수했다.
나는 대화 내용을 듣기 위해서 위험하지만 조금 더 접근했다.
“참나, 순식간에 사라지다니.”
“그 놈이 맞는 거 아닙니까?”
“글쎄? 난 아닌 것 같은데... 몇 번 본적 있는데 저런 분위기가 아니었어.”
“그런가요?”
“이쪽에선 꽤나 잔뼈가 굵은 사람이었는데 안타깝군. 어쩌다 그런 짓을 해서...”
“박선후란 사람이 그렇게 대단했어요?”
“넌 이제 와서 모르겠지만, 굵직굵직한 사건을 좀 많이 해결하긴 했지.”
역시 나를 찾고 있는 것 같았다. 나를 신고한 사람은 대충 누군지 짐작이 갔다. 전선기일 것이다.
나는 속으로 욕을 퍼부으며 형사들을 따라갔다. 그들의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근데 아까 그 점잖은 사람은 누구에요? 검사 같던데 이런일에 직접...”
“민창수 검사인가...? 그 사람도 꽤 유명한 검사라던데? 여기까지 귀한몸을 어쩐 일이신진 몰라도.”
“아... 근데 경찰하고 검찰은 왜 사이가 그래요?”
“너도 형사생활 해봐라. 더러운 꼴을 한 두 번 보는 게 아니다.”
이제야 저 얼굴이 떠올랐다. 후배로 보이는 녀석은 잘 몰랐는데, 선배로 보이는 형사는 경기지방검찰청의 형사였다.
어디 부서인지는 잘 모르지만, 전에 한번 공동작전을 폈을 때 같이 움직였던 적이 있었다.
“신고자하고 꽤 친하게 이야기를 하던데요?”
“신고자 아버지가 전부석 서울중앙지방검찰청장 이라던데...?”
“그래서 범인 잡는데 신고자가 그렇게 혈안이 되어 있는 거에요?”
“그렇겠지. 듣기로는 신고자의 애인까지 이번 범인이 탈취했다는 소문도 있어.”
“우와.......”
“소문은 소문일 뿐이지만 말이야.”
역시 예상이 맞았다. 이렇게나 적극적으로 움직일 줄은 몰랐는데 전선기도 저번 일로 꽤나 열이 받쳤나 보다.
나는 정보만 조금 캐고 물러설 생각이었지만, 이렇게 전선기라는 이름을 직접 듣고 나니, 면상을 한번 확인해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조금 위험성이 따르더라도 경찰 둘을 미행하기로 했다. 상대가 상대인지라 나는 훨씬 더 주의하며 그들의 뒤를 쫓았다.
그들은 곧 무전기로 철수 보고를 했고, 크게 별 말을 하지 않으며 왔던 곳으로 되돌아갔다.
혹시나 뭔가 주워들을게 있나 했지만, 아까 그 이후의 그들의 대화는 일상적인 대화만 오갔을 뿐이다.
그들이 원래 있었던 지하철로 돌아갈 수록 주변에서 경찰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고, 나는 더욱 더 몸을 숨겼다.
그리고 그들의 발이 멈춰선 곳에서는 익숙한 얼굴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거 참... 여기가 확실해요. 여기에서 봤다구요.”
“그래도 오늘은 이만큼 했으니 다음을 기약합시다.”
“하는 수 없지만 아쉬운 건 아쉽군요.”
“나도 참 아쉽습니다.”
민창수와 전선기였다. 전선기의 얼굴을 자세히 보니 코에 상처자국이 없었다.
불과 오늘 아침만 해도 거즈를 붙이고 다니던 전선기였는데, 이 모습을 보자 대충 파악이 되었다.
이 전선기가 진짜 전선기였다. 그 둘의 표정을 보니 정말로 아쉬워하는 표정이었다.
이쯤되니 분위기가 조금 파악이 되었다. 전선기가 최초로 경찰에 신고를 하고, 출동 보고를 받은 민창수가 내가 연루된 사건이라는 걸 알자마자 뛰쳐나왔을 것이다.
민창수는 그때의 녹음 내용이 담긴 핸드폰 때문에 나를 잡는데 혈안이 되어있는것 같았다.
하지만 고시원이 전소되었을 때 그 내용도 전소되었다.
나는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그들의 대화를 조금 더 지켜보았다. 전선기가 약간은 간사한 미소를 띄며 민창수에게 말했다.
“그럼 오늘은 철수 인가요?”
“어쩔 수 없죠.”
“어쨋든 힘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전선기가 고개를 푹 숙이자 민창수가 어쩔 줄 몰라 하며 허리까지 숙이고 있는 전선기를 일으켜 세웠다.
“허 참, 이거 왜 이러십니까? 누가 보면 어쩌려고.”
“고마운 걸 고맙다 하는데 왜요?”
“전부석 청장님 아드님 아니십니까?”
“그렇습니다만.......”
“전부석 청장님은 저희 부서 사이에선 크게 존경받고 계십니다.”
“아버지 칭찬을 들으니 왠지 기분이 좋군요.”
“어떻습니까? 따로 이야기 좀 하심이.......”
“좋죠.”
주변의 환경은 정리되는 분위기였다. 지하철에 있던 사복형사들도 하나 둘씩 욕을 뱉으며 나왔고, 경찰차들도 점점 빠져나갔다.
아무래도 상부에서 철수 명령이 내려진 것 같았다.
나는 좀더 몸을 숨겼다. 하지만 둘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승용차 바닥을 통해 그들의 구두를 확인하였다.
그 둘은 경찰이 빠져나간 뒤에도 조금 이야기를 하더니 사이좋게 어딘가로 가는 눈치였다.
“어쩌지...”
내가 판단한 지금의 상황으로 봐서는 경찰은 나를 잡는데 그렇게 혈안이 되어있지 않은 것 같았다.
오히려 검찰에서 닦달하는 분위기이다.
그도 그럴게, 형사가 범행을 저질렀는데, 경찰이 일부러 나를 잡는데 주력해서 언론에 좋지 않은 분위기를 만들 바에, 그냥 조용히 처리하는 게 편할 것이다.
하지만 검찰은 경찰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경찰을 닦달하는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민창수 저놈만 나를 잡는데 혈안이 되어 있을지도 몰랐다.
결국 결론은 지금 나의 최대의 적은 저기 두 명이라는 소리였다.
이런 천재일우의 기회가 자주 찾아오는 건 아니었다. 나는 약간 흥분이 되어 그 둘을 쫓아갔다.
아까처럼 경찰이 쫙 깔리진 않아서 그 둘을 미행하는 건 수월했다.
유흥가로 빠져나간 둘은 조금 한적해 보이는 포장마차 앞에 걸음을 멈춰섰다.
둘은 눈을 잠깐 마주치더니 민창수가 먼저 말을 꺼냈다.
“여기서 한잔 하시겠습니까?”
“하핫, 조금 의외네요. 검사님께서 이런 포장마차를 이용하실 줄이야.”
“하하하, 검사라고 다 고급 와인바나 가는 건 아닙니다. 저는 오히려 이런 맛에 여길 오죠.”
“알겠어요. 저도 여기 좋아요.”
“예, 들어가시죠.”
그들이 룸을 잡거나 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포장마차로 접근하여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자 하였다.
하지만 아무리 다가가도 만족스럽지 않아서 결국 포장마차의 바로 옆까지 오게 되었다.
그제서야 목소리가 조금씩 들렸다. 둘은 벌써 한 두잔씩 했는지 서로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사법고시를 붙으시다니, 정말 대단하세요. 저에겐 선망의 대상입니다.”
“아뇨아뇨,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저희 아버지는 검사가 못 될 거면 경찰이라도 하라고 난리세요.”
“직업에 귀천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경찰 준비도 한 2년 했는데, 이제 때려쳤죠...”
차마 들어줄 수 없는 일상적인 대화가 오갔다. 가만히 전선기 이야기를 들어보니 화가 나서 견딜수가 없었다.
내가 이런 찌질한놈한테 그런 수모를 당했다니 생각할수록 견딜 수가 없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곁에 있는 바위로 이놈의 머리를 내려치고 싶었다.
하지만 더 웃긴건 전선기가 전부석 청장 아들이라고 하나하나 아첨을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 둘은 한참동안 서로를 위로, 칭찬해 주는 말을 이어갔다.
나는 때려치고 돌아갈까 생각을 하는데, 잠시 그들의 대화가 뚝 끊겼다.
무거운 침묵은 전선기에서 먼저 깼다. 목소리가 살짝 낮아진 음성이었다.
“근데... 검사님은 왜 박선후를 잡으려고 하시오?”
“... 사실 박선후의 누나와 저는 사귀는 사이였습니다...”
“예?!”
“저는 결혼은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저쪽은 그렇게 생각 안했나 봅니다. 선후 누나가 실종되고, 저는 족쇄처럼 붙어있는 그놈의 애인이란 푯말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했었죠...”
민창수가 술이 좀 들어갔는지 발음이 꼬아지기 시작했다. 반면 전선기는 방금 인격이 바뀐 것 같았다.
목소리 톤과 말투가, 전화 목소리로 들었던 노인의 그것과 비슷했다. 하지만 민창수는 취해서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근데 왜 박선후를 잡으려고 난리시오?”
“이건 비밀인데... 여성 용의자가 한명 있었는데, 그 사람을 범인으로 몰고 사건을 마무리 하려고 했어요. 근데 박선후가 그걸 알고 음성 녹음까지 해버리는 바람에.......”
“.......”
전선기는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전선기의 표정이 보일 것 같았다.
분명 시꺼멓게 웃고 있을 것이다. 그 누구보다 사악하게.
하지만 술이 들어갈 만큼 들어간 민창수는 계속 자신의 약점을 술술 불었다.
“그래서 그놈을 잡아서 입막음을 해야죠... 나 참 세상살기 힘들어서... 내가 왜 당신 만나고 있는 줄 알아요? 당신 아버지가 검찰청장이라 그래...”
“검사님 많이 취하셨소.”
“내가 취하든 말든.......”
안에서 쿵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둘의 대화는 더 이상 이어가질 않았다.
하지만 술을 따르는 소리와 술잔을 내려놓는 소리는 계속 들렸다.
아무래도 전선기놈 혼자서 술을 마시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지금 둘을 처리해 버릴까 생각을 했지만, 포장마차 안에서도 보는 눈이 있어서 쉽게 실천으로 옮기지 못했다. 나는 좀더 전선기를 살펴보기로 했다.
나는 자리를 옮겨 포장마차가 보이고, 쉽게 발견할 수 없는 장소를 주변에서 찾았다. 마침 근처에 쓰레기 더미가 있었다.
주변이 포장마차가 많아서 쓰레기를 이쪽에 모아 두는가 싶었다. 나는 그 사이에 몸을 숨겼다.
알 수 없는 냄새가 코를 마구 할퀴어댔지만 지금은 조금만 참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한손에 깨진 유리병을 잡고 전선기가 나오길 기다렸다.
“어우! 취한다!”
걸걸한 목소리의 전선기가 밖으로 나왔다. 민창수는 그대로 두고 나온 것 같았다.
전선기는 기분이 좋은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노래를 부르며 자신의 아파트 방향으로 비틀비틀 걷기 시작했다.
나는 조용히 쓰레기 더미에서 빠져나왔다.
쓰레기를 걷어낼 때 날카로운 거에 할퀴었는지, 팔뚝에서 피가 흘렀지만 이런 기회를 놓칠 순 없었다.
전선기가 집에 가기 위해서는 골목을 지나쳐야 한다. 나는 그곳에서 처리를 하기로 했다.
“나나나~”
전선기의 노래 박자에 따라서 그의 걸음도 춤을 추듯 옮겨졌다.
아직은 그렇게 늦은 밤이 아니라, 유흥가에는 사람이 좀 있었지만, 그의 걸음을 보고 알아서 길을 비켜주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툭.
전선기가 가던 사람과 부딪혔다. 코너를 돌면서 서로를 못 본 것 같은데, 심하게 부딪혔는지 전선기가 바닥에 철부덕 엎어졌다.
취한 상태라 그런지 넘어지는 모습이 꽤 위험해 보였다.
부딪친 청년도, 당황했는지 그의 상태를 살폈다. 청년의 일행도 안절부절 못하며 주변을 감쌌다.
“괜찮아요? 이봐요?”
“으....아....음.....”
“정신이 들어요?”
“신발... 어떤 새끼가...”
“뭐요? 이 사람이 기껏 걱정해 주니까...”
“닥쳐 강아지야, 부딪친 놈이 사과해야 되는 건 당연한거 아니냐? 신발...”
전선기가 상체를 일으켜 세우며 욕지거리를 뱉어냈다. 이제 보니 아무래도 입이 거친 인격이 튀어나온 것 같았다.
아니 지금 나온 게 아니라 포장마차에서 나왔을 때부터 그의 목소리가 조금 걸걸하다 싶었다.
뜬금없이 욕을 한바가지 먹은 청년도 열이 받았는지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이 새끼가, 뭐? 부딪친 건 너 잖아?!”
“뭐라는 거야?! 신발 새끼가...”
“아나... 술을 처먹으려면 곱게 쳐 먹어라. 나이도 들어 보이는 구만. 에라이.”
청년들이 인상을 찌푸리며 지나가려 하자 전선기가 한명의 발목을 잡아 끌었다.
“우악.”
-퍽.
발목을 잡힌 청년은 균형을 잃고 꼴사납게 넘어졌다. 넘어진 청년은 안전하게 넘어지긴 했지만 얼굴이 씨뻘개진 채로 일어났다.
청년 주변의 일행이, 넘어진 청년을 보고 박장대소하기 시작했다. 주변에서도 킥킥 거리는 사람이 있었다.
“하하핫, 병신. 괜찮냐?”
“흐하하하하하!”
“이런 신발 새끼가...!”
청년은 꽤나 열이 받았는지 상체만 일으킨 채 앉아있는 전선기를 마구잡이로 밟기 시작했다.
마침 청년이 구두를 신고 있었는데, 구두 뒷 굽으로 사정없이 전선기를 밟아 댔다.
나는 얼른 일을 처리하고 싶은데, 계속 이상한 일들이 터지자 짜증이 일었다.
전선기가 맞는 건 나로썬 나쁘지 않지만, 난 지금 저 새끼를 죽이고 싶었다.
한참을 밟아대던 청년은 일행이 말리고 나서야 겨우 밟는 걸 멈추었다. 그가 씩씩거리며 소리쳤다.
“신발새끼. 운 좋은지 알아! 다음에 만나면 강냉이를 다 뽑아버릴테다!”
청년들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 자리에서 떠났고, 전선기는 아직 아픈지 끙끙거리다가 힘겹게 일어났다.
그리고 맞다가 떨어진 지갑을 챙기곤 아까보다 더 심하게 비틀거리며 집 방향으로 향했다.
그리고 드디어 보기만 해도 위험해 보이는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골목길엔 가로등이 있었지만 전구가 나갔는지 그나마도 불이 들어오지 않았고, 전선기는 좁은 골목길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지나갔다.
“조금만 더.......”
긴장감 때문에 땀이 등줄기를 주륵주륵 흘러내렸다. 이마에도 땀을 한바가지 흘리고 있었다. 다음 코너에서 전선기를 덮치기로 했다.
“.......!”
드디어 전선기가 코너를 돌았고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앞으로 튕겨냈다.
이제 저 코너를 돌아서 이 병으로 저 새끼를 난도질하면 된다. 나는 큰 소리내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코너를 돌았다.
-퍽.
“.......!”
둔탁한 소리는 전선기의 머리에서가 아닌 내 머리에서 났고, 나는 목소리도 내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눈 앞의 시야가 내 피로 점점 물들었고, 누군가가 내 다리를 질질 끌고 한쪽으로 끌고갔다.
마지막으로 내가 본 모습은 전선기가 담벼락을 짚고 비틀거리며 나에게서 멀어지는 장면이었다.
-철썩.
차가운 냉기가 나의 얼굴을 때렸다. 얼마나 차가운지 잘 쉬고있던 숨이 갑자기 확 막혀왔다. 덕분에 호흡은 거칠어졌다.
“헉...헉...”
눈을 뜨기가 두려웠지만 천천히 눈을 떴다. 강한 빛이 확 들어올 것 같았지만, 주변은 어두웠다.
달빛 같이 은은한 빛이 공간을 매우고 있었고, 내 앞은 누군가가 서 있었다. 나는 그 사람에게서 제일 듣기 싫은 목소리를 들었다.
“일어났어요?”
코에 거즈를 붙이고 있는 전선기가 내 앞에 보였다. 그는 철제 쇠파이프를 손에 쥐고 있었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쇠파이프와 바닥 타일과의 마찰음이 작은 공간을 채워갔다.
정신이 흐릿하고 시야가 좁았지만,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이 곳은 어느 집의 화장실이다.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여기에서 내가 한마디만 하더라도 전선기는 우월감을 느낄 것이다.
나는 그게 죽도록 싫었다. 나는 말을 하는 대신 그를 죽도록 쏘아보았다.
“왜 그렇게 봐요? 먼저 날 이렇게 만든 사람이 누군데.......”
“.......”
전선기의 표정에는 만족감이 가득했다. 나는 이상하게 바닥이 춥게 느껴져서 나의 행색을 살펴보았다.
1200원 주고 산 호피무늬 팬티 빼고는 입고 있는 게 없다. 굳이 말하자면 내 손을 묶고 있는 줄도 있었다.
바닥의 습하고 차가운 기운이 온몸에 스며들었다. 전선기가 야구 방망이를 들어 내 턱에 가져다 댔다.
면도를 오랫동안 하지 않아 거친 느낌이 턱을 비볐다.
“형사님이 사람을 좀 잘못 건드렸네요.”
“하하하하하핫.”
전선기의 말에 나도 걷잡을 수 없이 웃음이 터져 나왔다.
갑자기 내가 웃어버리자 전선기는 꽤 당황한 듯 쭈뼛쭈뼛 뒤로 물러나서 약간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뭐... 뭐가 웃겨?! 지금 니 상황이 어떤 지 알아?!”
“하하하핫... 내가 안 웃으려고 해도 안 웃을 수가 없네, 신발놈이. 내가 사람을 잘못 건드렸다고? 미친 소리 말아라... 내 생애 최고의 장면이 니 코를 비튼 거야.... 카악.. 퉷....”
나는 가래를 한껏 모아서 그에게 뱉었다.
그의 바지에 묻은 끈적끈적한 노란 액체가 용암이 내려오듯 천천히 아래로 흘렀다.
그는 마치 똥 씹은 표정이 되어 나에게 쇠파이프를 휘둘렀다.
-퍽! 퍽!
“이 강아지가?! 지금 누가 우위에 있는지 모르겠어?!”
-퍽! 퍽!
“뭐가 그렇게 당당해?!”
-퍽! 퍽!
“헉... 헉... 이래도... 웃음이 나오냐? 헉... 헉...”
-퍽! 퍽! 퍽! 퍽!
한동안 묵직한 타격 음이 이어졌다. 나는 최대한 몸을 지키기 위해서 머리를 푹 숙이고 몸을 웅크렸다.
별로 크게 도움이 되진 않는 것 같지만, 최소한 생존을 위해서 본능적으로 나오는 자세였다.
팔, 어깨, 등, 엉덩이를 쇠파이프가 쉴 새 없이 마사지를 해왔다.
그렇게 계속 때리던 전선기는 제 풀에 지쳤는지, 거칠어진 숨을 헐떡거리며 쇠파이프를 멈췄다.
“어때...? 신발... 이제 좀 고개를 숙일 마음이 생겼나?”
“.......”
고개를 숙이고 자시고 지금은 온몸이 욱신거려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혹시나 하는 바람에 몸을 살짝 움찔해 봤지만 그 움찔거림마저 나에게 크나큰 고통이 되어 맞은 부위를 사정없이 찔러댔다.
맞은 부위의 상태가 좋지 않은지 몸에서 열이 나기 시작했고 그래서 그런지 차갑게만 느껴졌던 타일 바닥이 시원해졌다.
마치 다친 부위를 냉찜질 하는 것처럼.
“이제 말이라도 좀 해보시지? 왜 날 이 지경으로 만들었어?”
“.......?”
전선기가 코에 붙은 거즈를 떼어 나에게 던지며 말했다.
진물인지 소독약인지, 노란 액체가 묻어있는 거즈가 내 눈앞에 펄럭이며 떨어졌다.
하지만 나는 이상하다 생각 되는 게 있었다. 나는 이왕 이렇게 된 거 직설적으로 말했다.
“... 정말 내가 왜 그랬는지 몰라...?”
“그럼 알겠냐? 신발, 선량한 시민을 갑자기 유괴해서 이 꼴을 만들었잖아? 신발 새끼야, 내가 신고를 하려다가 똑같이 복수해 주려고 참고 참아왔어.”
“.......풋...”
정말 신기하게도 기쁨의 웃음이 흘러나왔다. 내가 또 웃자 전선기는 다시 열이 받았는지 사정없이 쇠파이프를 휘둘렀다.
다시 화장실에서는 지긋지긋한 타격 음이 넘쳤다. 하지만 이번엔 오래가지 않았다. 전선기도 많이 지친 모양이었다.
“헉... 헉... 이 새끼야... 또 웃어봐?”
전선기는 쇠파이프를 던지고 나의 멱살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웃으려 해도 웃음이 나오질 않았다.
자연스럽게 전선기의 얼굴과 마주하게 되자 조그만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좀... 추운데... 옷 좀 주지...?"
"그걸 말이라고 하냐?!“
-퍽.
순간 눈앞이 번쩍했고 정신을 잡고 보니 이미 바닥에 널부러져 있었다.
맞는 순간 정신을 잠깐 놔버린 것 같았다.
맞을 때의 고통은 기억나질 않는데, 지금은 볼따구가 욱신욱신 거리고 비릿한 피비린내가 혀를 통해 느껴졌다.
전선기는 열이 가시질 않는지 욕을 뱉어내며 화장실을 왔다갔다 거리고 있었다.
“신발 새끼! 독한 새끼! 염병할 새끼!”
나는 그런 전선기가 참 우스웠지만 웃음이 나지는 않았다.
얼굴 근육을 사용하려고 하면 맞은 곳이 욱신거려 자연스럽게 찡그린 표정이 나타났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진짜 전선기는 가짜에게 많은 걸 알려주지 않은 것 같았다.
가짜 행색만 하라고 시켜놓고, 살인이나 방화에 대한 정보는 일절 알려주지 않은 상태로 보인다.
그래서 가짜의 눈에는 나는 그냥 형사 박선후였고, 당연히 억울하게 맞은 게 된다.
아마도 이 행동도 독자적으로 움직인 것 같았다. 지금 희망적인 건, 진짜가 지금 내가 잡혀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진짜가 알기 전에 이 상황을 회피해야 했다. 나는 생각을 고쳐먹고 말했다.
“미, 미안해...”
“뭐.......?”
“미안하다구...”
“갑자기 그게 무슨...”
갑자기 바뀐 나의 태도에 전선기가 어이가 없는 건지 당황스러운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돌아다니는 걸 멈추고 나에게 다가와서 쓰러진 나를 보며 쭈그려 앉았다.. 나는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사실... 내가 형사에 짤렸거든... 그 사건 때문에...”
“그래서...요?”
내가 고분고분하게 나오자 전선기의 어투도 자연스럽게 존대로 변했다.
나는 순진하기만한 가짜 전선기가 웃겼지만 웃음을 꾹 누르며 연기를 펼쳤다.
“그래서... 그때 내가... 살짝 어떻게 됐었던 것 같아...”
“뭐요...? 고작 그런 이유로?”
“미, 미안해... 그땐... 너무 욱해서...”
“아우 신발!!”
“진짜... 내가 잘못 했다...”
전선기는 어이가 없는지 확 일어나며 천장을 향해 욕을 뱉어냈다.
“아니, 형사님! 고작 그런 이유로 사람을 이렇게 팹니까?”
“진짜... 미안...”
“내 코가 이렇게 되고 얼마나 불편한지 알아요? 코로 숨을 쉴 때마다 욱신거려서 입으로 숨을 쉬어요! 그러다 보니까 나쁜 병균이 몸에 들어가서 감기도 걸렸어요! 그럼 콧물이 줄줄 흐르겠지요?! 그럼 코를 닦아야 하는데 그때마다 얼마나 아픈지 알아?!!”
전선기는 진짜 억울한지 발을 동동 구르며 나에게 쏟아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최대한 불쌍한 얼굴로 가만히 있었다.
하긴 내가 굳이 불쌍한 표정을 짓지 않아도 아까 맞은 곳이 점점 부어서 충분히 불쌍해 보일 것이다.
나의 얼굴이 효과가 있었는지, 전선기의 언성이 점차 누그러졌다.
“형사님 마음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이런 식으로 화를 푼 형사님에게도 잘못이 있는 겁니다. 알겠어요? 결코 내가 잘못한 짓거리가 아니란 말입니다.”
“.......”
나는 대답을 하는 대신 힘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가짜 전선기는 마음이 상당히 여린 것 같았다.
열 받아서 일을 내긴 했는데, 스스로 정당화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마 이것이 진짜 전선기의 성격일 것이다.
가짜는 진짜 행색을 하기 위해서 성격마저 개조를 당했을 테니까 말이다.
전선기는 나의 뒤로 돌아와서 나의 손을 풀어 주며 말했다.
“하여튼 저도 이렇게 해 버린 건 정말 죄송하게 됐어요. 내가 좀 심했다는 생각도 들고....... 뭐 쌤쌤이니 이걸로 깨끗하게 풉시다. 형사님. 아니, 이제 형사가 아닌가?”
“.......”
나는 아무 말 하지 않고 손이 자유로워지길 기다렸다. 지금은 얼른 이 자리를 벗어나야 한다.
혹시라도 진짜 전선기가 가짜에게 전화라도 걸어서 지금 뭐하냐고 물어보면 상황은 끝날 것이다.
나는 손을 압박하는 느낌이 없어지자 팔을 조심스럽게 움직여 보았다.
아까 맞은 곳이 욱신거리긴 하지만 결박은 풀렸다. 줄을 다 풀어준 전선기가 다시 나의 앞에 와서 말을 했다.
“전 먼저 갈게요. 알아서 들어가세요. 굳이 데려다주고 싶은 생각은 없고... 다음부터 마주치는 일 없었으면 합니다.”
“.......”
나는 아까와 같이 고개를 끄덕일 뿐 움직이지 않았다. 전선기가 없어지면 움직일 생각이었다.
조심스럽게 몸을 꿈틀거리며 충분히 도망칠 수 있는지 점검을 하였다.
다행히 뼈는 다친 곳이 없는 것 같았다. 그렇게 맞았는데 신기한 일이다.
“그럼 잘 가세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전선기가 화장실 문을 확 열며 밖으로 나갔다.
그제서야 여기가 어딘지 알 수 있었는데, 마을 회관이나 동사무소 같은 공공시설의 화장실 이었다.
그 순간 전선기의 몸에서 고전적인 벨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따르르르르르릉... 따르르르르르릉...
전선기는 전화를 받으려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하지만 내가 보고 있는 게 마음에 걸렸는지 앞으로 뛰어나갔다.
문이 천천히 스르르 닫히기 시작했고, 닫히는 시간이 마치 10년은 되는 것 같았다.
어느 순간 벨소리가 뚝 끊기고 전선기가 전화를 받는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네, 지금 뭐하냐고요? 그게 사실.......
다급해진 나는 화장실 문이 닫히길 기다렸다가 닫히자마자 번개처럼 일어나서 쇠파이프를 집어 들었다.
그리곤 화장실의 창문을 깨고 밖으로 나갔다.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시끄럽게 화장실을 울렸지만 지금은 빠르게 탈출하는 게 우선이었다.
정신없이 앞으로 달려가는데 화장실 창문 새로 전선기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런 신발 새끼!!!!”
10초? 아니 3초만 늦었다면 뒷덜미를 잡혔을 지도 모르겠다.
나는 일단은 옷을 구하기 위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골목이라 그런지 높다란 담 밖에 없었고, 몸을 두를만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음.......?”
가까운 가로등 아래에 누군가 쓰러져 있는 게 보였다. 나는 어둠에 몸을 최대한 숨긴 채 그에게 다가갔다.
가까이 가자마자 술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아무래도 취해서 뻗어버린 것 같았다.
그는 전형적인 회사원인 듯, 검은 양복을 걸치고 있었고, 나는 주저하지 않고 그의 옷을 벗겼다.
“으음.......”
한 꺼풀씩 벗길 때마다 그가 알 수 없는 신음을 뱉어내며 움찔거렸지만 나는 그런걸 신경쓸 여유가 없었다.
어느새 그가 홀딱 벗고 있었고, 나는 근사하게 차려입고 있었다.
“휴......”
좀 여유가 생기긴 했지만 아직 위험한 건 사실이었다. 아마 전선기가 나를 찾고 있을 것이다.
나는 오직 살아야 한다는 생각만 가지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정신없이 뛰기만 했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불빛이 여기저기 번쩍거리는 유흥가로 나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분명 아까 진짜 전선기가 밟혔었던 그 자리였다. 나는 다시 왔던 길을 되짚어 보며 지하철을 향해서 달렸다.
말이 달리는 것이지, 일반 사람들이 걷는 속도보다 훨씬 느린 속도였다.
주변 사람들이 얼굴에 피 칠을 한 나를 보고 끔찍한 토사물을 보듯, 나를 쳐다보았지만 이미 그런 시선은 익숙했다.
“헉... 헉...”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맞은 곳은 신경이 쓰이지 않을 만큼 아프지 않았다.
그만큼 급박한 상황이라고 몸이 반응하고 있는 것 같았다.
드디어 지하철 근처에 왔지만, 혹시나 경찰들이 아직 남아 있을지 몰라 숨어서 상황을 잠시 지켜보았다.
경찰은 없었고 나는 지하철로 빠른 속도로 내려갔다.
“어?! 선후야!”
“혀...형님...”
입구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서있는 형님의 모습이 보였고, 그 순간 온몸의 고통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더 이상은 한 걸음도 움직일 기력이 없었다. 마치 영화가 반틈만 다운로드 된 것같이 기억이 툭 끊겼다.
.
.
.
.
.
.
.
“........야!”
“으음.....”
“....후야!!”
“.......?”
“선후야! 임마!”
“으.......”
몸을 일으켜 세우려 했는데, 온몸의 신경에 가시가 박힌 것 같아서 눈만 슥 떴다.
처음엔 눈을 뜨기가 힘들었지만 고통 때문에 정신이 확 들었다.
“새끼, 엄살 피우긴. 일어나 임마.”
“으... 형님... 저 진짜 많이 맞았는데요.......”
“엄살 피우지 마. 몸에 멍밖에 안 들었어. 뼈도 안 다쳤구만?”
“예? 쇠파이프로 정말 디지게 맞았는데.......”
“쇠파이프? 쇠파이프로 때린 것 치고는 정말 살덩이 부분만 후렸군.”
역시 생각대로 뼈를 다친 부분은 없는 것 같았다. 마지막에 필사적으로 몸을 웅크린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아니면 혹시나 해서 배워둔 유도의 방어기술이 나온건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을 오래 할 수 없었다. 뇌에도 멍이 들었는지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괜찮...아요...?”
목소리가 나는 곳을 스윽 보니 얼굴 여기저기에 반창고를 붙인 서주희가 걱정되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어이가 없어 피식 웃었지만 그게 곧 아픔으로 다가왔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윽... 니가 그런말 하니까 참 웃기다... 니가 나보다 더 다친 것 같은데?”
“아....... 저는 그래도 치료를...”
“니 코가 석자구만 누굴 걱정해? 그럴 시간 있으면 이불깔고 잠이나....”
-퍽
“우아아아악!!!”
서주희에게 독설을 갈기고 있는데 형님이 난데없이 멍든 허벅지를 세게 때렸다.
이건 정말 감정이 실린 것 같은 고통이었다. 나는 눈을 부라리며 형님을 쳐다보았다.
“이게 무슨 짓...!”
“새끼가, 기껏 걱정해 주는구먼 그런 말을 해? 넌 좀 더 아파봐야 정신을 차리겠다.”
“그렇다고 환자를.......!”
“환자고 자시고...!”
-퍽
“우아아아아아악!!”
아프다고 발버둥칠 수도 없었다. 나는 무조건 비는 수 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다 저의 잘못입니다!!”
“새끼, 나한테 사과하지 말고 이 아가씨한테 사과를 해.”
“미안하다, 서주희! 정말 미안해! 내가 죄인이야! 그리고 걱정해 줘서 정말 정말 고마워!”
“아... 아니 그 정도 까지는...”
나의 격한 사과에 서주희가 민망한지 얼굴을 붉혔다. 그제서야 형님은 박장대소하며 나를 계속 치료했다.
까진 부위는 소독하고 약을 발랐고, 일단은 푹 쉬어야 하기 때문에 진통제를 먹였다. 나는 조금 의아해서 형님에게 말했다.
“근데 이런 약품들이 있다니 신기하군요.”
“여긴 대피소 같은 곳이야. 이 정도도 없는 게 이상하지. 너도 익숙해질 거다.”
“그렇군요.......”
온몸에 붕대를 감고 파스를 붙인 나는 흡사 미라와 같은 형상이 되었다.
움직이는 것도 머리 위로만 움직일 수 있어서 전신마비가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치료가 다 끝났을 때야 형님이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어떻게 된 일이냐? 누구한테 얻어맞고 온거야? 경찰들이 이렇게 팰 이유는 없는 것 같은데...”
“아, 그게...”
나는 말을 하려고 했지만 서주희가 신경이 쓰여 말 하는 걸 망설였다. 서주희는 아직 가짜 전선기가 있는지 모른다.
혹시나 그 사실을 알게 된다면 큰 충격을 받을 것 같았다. 말을 꺼내기가 망설여지는 건 당연한 것이었다.
“음.......”
형님도 내 눈치를 알아챘는지, 조금은 곤란해 했다. 서주희도 뭔가 분위기를 눈치 챘는지 인사를 꾸벅하고 잠시 나가있었다.
서주희가 나가자 형님은 다시 이야기를 재촉했다.
“자, 이제 이야기 해봐.”
“후유... 정말 많은 일이 있었군요.”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어제 저녁에 겪었던 일을 말하기 시작했다. 참, 어떻게 그런 일을 겪었는지 정리하기도 힘들었다.
나는 형사들에게 추격당했던 일, 역으로 추격했던 일, 민창수와 전선기가 같이 술을 마신 일을 이야기 했다.
형님이 이 부분에서 갸우뚱했다.
“민창수 검사...?”
“네, 무슨 걸리는 거라도...”
“아냐, 일단 다듣고 이야기 하자.”
“예.”
나는 이어서 진짜 전선기를 추격한 일, 가짜 전선기에게 얻어맞은 일, 화장실에서 탈출하고 옷을 훔쳐 입은 일 등을 형님에게 말해주었다.
내 이야기를 다 듣고 형님은 혀를 내두르며 나를 위로해 주었다.
“새끼....... 힘들었구나...”
“진짜 그렇죠...”
나도 원래 힘든 기색은 잘 하질 않지만, 이번일은 정말 힘들었다.
내가 한숨을 연거푸 푹푹 쉬고 있는데, 형님이 말을 꺼냈다.
“아까 하려던 이야기가 있어.”
“... 뭔데요...?”
형님이 내가 입고 온 옷들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그러곤 아무말도 하질 않았다.
나는 왜 그런가 싶어서 형님에게 물었다.
“그게 왜요?”
“모르겠냐? 물론 니가 도망칠 때는 정신이 없어서 몰랐다고 쳐도 지금 보면 알텐데?
“.......”
나는 옷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곰곰이 생각했다. 옷은 네이비 색의 핏이 잘 된 명품 양복이었다.
위아래 세트인데, 가격이 꽤 나갈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외에 특이한 점은 없었다.
나는 한참을 생각해 보다가, 영 답이 나오질 않아서 형님에게 되물었다.
“뭐죠? 모르겠는데요?”
“바보같은 놈.......”
내 말에 형님이 양복의 속 주머니에서 지갑하나를 꺼내 들었다. 돈이 꽤 많이 들었는지 지갑은 상당히 두툼해 보였다.
형님은 돈은 신경쓰지 않고 명함같은 걸 하나 꺼내더니 나의 눈앞에 비춰 주었다.
“.......!!”
“이제 알겠냐? 니가 어떤 짓거리를 하고 돌아다녔는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명함을 보는 순간 내가 정말 미친놈인 것을 깨달았다.
취한건 거기 쓰러져 있던 사람이 아니라 나였을지도 모른다. 명함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민창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