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웃대(인생사프리님)
제가읽었던 이야기들중 재미나게 본 이야기입니다.
스크롤 압박이 있어요..^^
룸메이트 1화 ; http://pann.nate.com/b318390630
룸메이트 11화 ; http://pann.nate.com/b318393961
룸메이트 21화 ; http://pann.nate.com/b318396686
하지만 진짜는 아닌 것 같았다. 가짜는 진짜 전선기를 마구 욕하며 민창수의 집에 들어갔다.
나는 숨까지 참으며 들키지 않으려 애썼고, 곧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바로 내려가려고 했지만 뭔가 느낌이 이상해서 계단에 있는 창문을 통해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
아파트 주차장에 하얀색 SUV가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보이지 않을 테지만, 컴컴한 저녁이라 헤드라이트를 켠 게 유난히 돋보여 보였다.
아마도 진짜와 가짜가 같이 온 것 같았다. 이대로 내려갔다간 잡힐게 뻔하다.
“이런...!”
일단은 숨어있어야 했다. 나는 좀더 확실히 숨기 위해서 가지고온 물건들을 일단 숨기기로 했다.
어디에 숨길까 하다가 주변을 둘러보니 소화전이 있었다. 결국 일단 챙긴 물품들을 소화전에 쑤셔 넣기로 했다.
파일 철은 어떻게든 들어갔지만, 챙겨온 돈이 될만한 물품들은 들어가지 않았다.
“쳇...!”
하는 수 없이 다음 층으로 올라가 다음 층 소화전에 쑤셔 박았다.
살짝만 건드려도 열릴 것 같은 모양이었지만 어떻게든 넣어서 안심이 되었다.
그때, 민창수의 집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가짜 전선기의 목소리도 들렸다. 통화중인 것 같았다.
“없어요. 누가 가져간 것 같아요. 아, 왜 욕을 하세요?! 없는 걸 나보고 어쩌라고.”
역시 전선기도 이 파일 철에 용건이 있는 게 틀림없었다. 나는 숨을 죽이고 통화내용을 계속 엿들었다.
“아, 그럼 올라와서 직접 봐요....... 진짜 올라올 거에요? 알았어요.”
전화는 끊겼고, 가짜가 투덜거리는 소리는 계속 들렸다.
새로운 구두소리는 점점 가까워졌고, 그 소리가 가까워질 수록 가짜의 투덜거리는 소리도 없어졌다. 진짜 전선기는 거친 목소리로 가짜에게 말했다.
“넌 여기 있어. 새끼가, 이거 하나 못찾아서...”
“왜요? 같이 찾으면 좋을 것 같은데.”
“새끼가... 잔말 말고 여기있으라면 있어.”
“예...”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전선기는 가짜를 밖에 세워두었다. 하지만 나는 답답할 지경이었다.
가짜 놈이 저기에 있는 이상 함부로 내려갈 수 없었다. 나는 초조해하며 그 둘이 얼른 일을 마치고 내려가기를 기다렸다.
곧 진짜 전선기가 나왔는지 둘의 대화소리가 이어졌다.
“정말 없네. 신발.”
“없죠? 제가 없다고 분명히...”
“올라가봐야겠어.”
“예?”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올라오면 결국 잡히고 만다. 나는 어떻게 할지 초조해져서 이리저리 생각을 했다.
하지만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대화를 마친 둘의 발소리가 천천히 위로 향하고 있었고.
나는 일단 소리가 안나게끔 극도로 조심하여 위로 올라갔다. 하지만 계단이 구름까지 이어질 순 없는 일이다.
결국 이 아파트는 20층이 끝이고 내가 지금 올라가는 층은 17층이었다.
‘어쩌지...!’
나는 주머니에 있는 총을 만지작거렸다. 총알은 이미 충분하고 총을 겨누면서 내려가면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전선기는 내가 그 자료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알면, 곧바로 나를 죽이려는 행동을 시작할 것이다.
그때 문득, 창문이 보였다. 나는 입술을 깨물고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나는 차분하게 전선기가 올라오기를 기다리다가, 막 올라올 때, 창문 밖으로 몸을 던졌다. 물론 손으로 창틀을 꽉 붙잡았다.
‘큭...’
손가락이 잘릴 것 같은 고통이 느껴졌다. 하지만 견디는 수밖에 없었다. 아래쪽은 일부러 쳐다보지 않았다.
아마 까마득한 높이에 현기증이 일어나 손을 놓쳐버릴 것만 같았다. 물먹은 옷이 이렇게 무겁게 느껴질 때가 없었다.
그리고 떨어지는 빗방울도 한 방울 한 방울이 마치 철퇴를 내다 꽂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곧 전선기의 목소리가 들렸다.
“쳇... 없군.”
“도대체 왜 올라 온 거에요?”
“혹시나 있을까 했지. 됐어. 가자.”
“예.”
드디어 갈 마음이 생겼나 보다. 나는 손이 떨리기 시작했지만 꾹 참으며 버텨냈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날 전선기가 아니었다.
“혹시 밖에 가고있을지도 모르니 창문한번 봐라.”
“예.”
‘....!’
어이가 없을 정도로 치밀한 새끼였다. 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것 같았다. 나는 아픔도 잊어버릴 정도로 긴장했다.
점점 구두 소리가 창문가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창문에 전선기의 얼굴이 확 드러났다. 순간 나는 소리를 지를뻔 했다.
“.......”
전선기와 눈을 마주치진 않았다. 전선기는 밖을 쳐다보는지, 스윽 살피더니 이내 다시 돌아갔다.
“없는데요?”
“그래? 가자.”
그 말을 끝으로 구두 소리는 점점 멀어졌다. 거의 들리지 않을 때쯤이 되어서야, 나는 다시 창문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몸을 끌어올리는데도 상당한 힘이 들어 까딱하다 창틀을 놓칠뻔 했다.
나는 다시 아파트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그 자리에 누워버리고 말았다.
지금 얼굴에 흐르는게 땀인지 비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헉... 헉... 헉...”
아마 몇초만 더 전선기가 버티고 있었다면 이미 떨어졌을 것이다. 떨어지는 순간을 상상하니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나는 당분간 그러고 있기로 했다. 바닥에서 냉기가 올라오긴 했지만, 그게 오히려 정신을 차리게 만들어 주고 나름대로 시원했다.
그렇게 십여 분을 있다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혹시 몰라 창밖을 다시 한 번 살펴보았다.
“... 없군...”
주차장 전체를 봐도 흰색SUV는 있지 않았다. 의심 가는 차량이 있긴 했지만 아예 상관없는 곳에 있거나 모양새가 달랐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 소화전에서 물건들을 꺼냈다. 그리고 지친몸을 이끌고 아파트를 나섰다.
돈 될 만한 물건들은 있는 주머니에 다 쑤셔 넣었고, 파일 철만 옆구리에 끼고 한걸음 한걸음을 처벅 처벅 걸었다.
왔던 길과 돌아가는 길은 크게 차이가 없었지만, 나에겐 많은 게 달랐다. 주변의 시선에 의식할 필요성도 느끼질 못했고, 그저 목적지만을 바라보고 걸었다.
그렇게 결국 원룸에 도착했다. 나를 본 서주희는 말없이 수건을 2개 건네주었고 나는 현관에서 벗을 수 있는 옷을 대충 벗고 수건으로 몸을 닦았다.
그리고 걸려있는 민창수의 양복을 꺼내어 샤워를 한 뒤에 갈아입었다. 그렇게 한 고비가 지난 뒤에 서주희에게 물었다.
“희원이는?”
“희원이가... 누구에요?”
“내 조카 말이야.”
“아... 그 애 이름이 희원이었어요?”
“그래 민희원.”
“지금 밥먹고 자고 있어요. 감기엔 안걸렸는지 모르겠네요. 자기 전까지 몸을 계속 떨었어요.”
“.......”
“깨울까요?”
민창수를 죽이는데 내가 직접적으로 관여한 건 아니지만, 일단은 그런 마음이 있었고 전선기에게 결정적 정보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내 책임이 컸다.
그래서 난 희원이를 쉽게 마주할 수 없었다. 일종의 죄책감이랄까.
“아냐, 일단 자게 두자.”
나는 젖은 옷 주머니에서 돈될만한 물건들을 꺼내어, 돈은 따로 말리고 비싼 물건들은 잘 닦아서 말려두었다.
이런 것들을 꺼내자 서주희의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출처가 어딘지 묻진 않았다.
그리고 파일 철에 감싸진 랩을 제거하고, 하나 둘 살펴보았다. 굵은 파일 철은 총2개였다.
그 중 하나는 다른 사건에 대한 것을 정리해 놓았다. 그리고 두 번째 파일 철을 살펴보았다.
“뭐지...? 일기...?”
대략적으로 본 두 번째 파일 철은 민창수 검사 나름의 자료와 자신의 생각 등을 적어놓은 파일 같았다.
그 문서들은 아마 다른 사람에게 공개되지 않고 자신이 직접 작성한 것 같았다. 모든 문서가 원본이었다.
게다가 최근 사건들로 모아져 있었고, 날짜도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서주희의 연쇄살인 사건에 대한 의문점부터 내가 서주희를 탈취한 사건에 대한 자료도 있었고, 마지막엔 전선기에 대한 자료들 이었다.
문득 의문점이 들었다.
“민창수가 왜 전선기를 조사했지...?”
나는 전선기에 대한 자료를 처음부터 꼼꼼하게 다시 살펴보았다. 처음엔 내가 왜 서주희를 탈취했는지에 대한 의문점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서주희가 없어졌는데도 의외로 담담했던 전선기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었다.
처음에 민창수는 전선기와 접촉하지 않고 그 주변에서 자료를 모은 모양이다.
그 과정에서 민창수는 전선기의 인격에 대한 의문점을 품게 되었다. 매일매일 미세하게 사람의 성격이 달라진다는 기록이 있다.
그 이후에 전선기와 접촉을 했고, 그와 술을 마신 기록도 있었다.
민창수는 전선기와 술을 마시며 전선기의 심리를 알아볼 수 있는 전문적 테스트를 몇 가지 해 본 것 같았다.
그리고 그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해리성 주체성 장애. 다중인격. 어쩌면 연쇄살인의 범인일지도 모르겠다.
그 이후로의 기록은 없었다. 마지막 날짜를 보니, 희원이가 유괴당하기 직전이었다. 그래서 사건을 함부로 끝내지 못한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이건 어쩌면 결정적인 증거가 될지 모르겠다.
아마도 전선기는 자신을 조사하고 있다는 걸 눈치 채고 민창수를 죽이기로 한 것 같았다.
나는 문서를 몇 차례 더 읽어보며 이해도를 높였다. 결국 이 자료는 그동안 있었던 사건을 모두 말해주고 있었다.
서주희가 범인이 아닌 점. 그리고 내가 서주희를 탈취한 이유까지 모두 들어맞았다.
민창수가 나를 만났을 때 아예 다른 말을 한 이유까지 있었다. 민창수는 나를 그 사건에서 빼버리고 좀 쉬게 해주고 싶은 심정이었던 것 같았다.
사건이 꼬일수록 내 성격이 점점 날카로워 졌다는 부분, 체력적으로도 한계에 이르렀다는 부분.
하지만 내가 서주희를 탈취할 줄은 민창수도 생각을 못했었던 것 같았다.
“아......”
나는 아무것도 몰랐었다. 그리고 지금 내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도 난 몰랐다.
눈물이 볼을 타고 파일 철에 한방울 떨어졌을 때야 나는 코를 훌쩍이면서 눈물을 닦아냈다.
그리고 혹여나 서주희가 볼까 재빨리 수습을 했다. 나는 파일 철을 정리하고 원룸에 숨겼다.
그리고 이 자료를 경찰에 넘겨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이 되었다. 넘긴다면 전선기는 얼마 못가 잡힐 것이다.
그건 명백한 사실이었다. 내가 고민하는 부분은 좀 달랐다.
“감옥에 넣으면 그걸로 끝이던가?”
나는 전선기를 죽여야 했다. 잡아서 감옥에 넣는 걸로는 분이 풀리지 않았다. 일단 파일 철을 들고 밖으로 나섰다.
옷을 갈아입었기 때문에, 현관문 앞에 있는 우산을 집어 들었다. 문소리가 들리자 서주희가 얼른 나타나 말했다.
“또 나가요?”
“어. 금방 올게.”
마지막으로 거실에서 잘 자고 있는 희원이를 보았다. 입양 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다시 고아가 된 상태인 희원이를 보자 속이 아려왔다.
나는 금방 시선을 거두고 현관문을 나섰다. 하늘에 비가 뚫린 듯 비가 계속 내리고 있었다.
나는 검은색 우산을 들고 구두가 젖지 않도록 천천히 지하철 방향으로 걸었다. 지하철은 끊겼는지 사람이 많지 않았다.
시간을 보니 12시가 넘어 있었다. 민폐인지는 알았지만, 나는 한켠에서 자고 있는 사람을 툭툭 건드렸다.
“아저씨, 아저씨.”
“으음.......”
내가 건드린 사람은 깊이 잠들었는지 내가 조금 심하게 건드려도 쉽게 일어나려 하지 않았다. 하는 수없이 나는 조금 더 손에 힘을 주어 그 사람을 쳤다.
“칠복이 아저씨!”
“으악, 이게 뭔일이야?”
칠복이 아저씨는 기겁을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날 보더니 인상을 찌푸리고 말했다.
“선후구나. 뭔일이야 이시간에? 뭔일로 양복을 쫙 빼입었냐? 내일 아침 모임은 어떡하려고...”
“드릴게 있어요. 중요한 거니 아저씨가 좀 맡아주세요.”
나는 칠복이 아저씨에게 파일철을 주었다.
“....... 뭔데 이거?”
“내용은 보지 말라고 해도 보겠지만 일단은 그러지 말아달라고 말할게요. 혹시라도 저한테 무슨일이 생기면 경찰한테 넘기시면 됩니다.”
“...... 심각한 문서인가 보구만. 알았어. 이것만 맡아주면 돼?”
“예.”
“어렵지 않구만. 졸려 죽겠는데 귀찮게... 내일 보자.”
“예.”
칠복이 아저씨는 파일 철을 베고 눕더니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저으며 신문지를 덮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으며 다시 원룸으로 돌아왔다.
나는 바로 들어가지 않고 잠시 처마 밑에서 전화를 빼들었다. 그리고 이 반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뚜.......
--여보세요? 선후냐?
“예. 접니다.”
--벌써 전화를 하다니... 뭔일이야?
“민창수 검사... 장례식이 언제죠?”
--가족들이 수사에 방해되고 싶지 않다면서 오늘 시작했다. 조문은 내일부터 받고.
“저도... 가도 됩니까?”
--니가......?
내 말에 이 반장은 꽤나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당연히 고민이 될 것이다.
나는 아직 쫓기는 몸이고 조문객들은 아마 검사나 형사로 득실거릴 것이다. 나도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다.
--뭐... 와라. 내가 보호정도는 해줄 수 있어.
“.... 감사합니다.”
나는 다른 말은 특별히 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우산을 펴지 않은 상태에서 처마 밑에서 나와 비를 맞았다.
그리고 구름도 보이지 않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비가 얼굴을 적셨다. 눈물이 땅을 적셨다.
그날 저녁은 어떻게 잠들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양복을 입은 채로 아침모임에 나와 있었고, 칠복이 아저씨가 정신 좀 차리라고 말을 했을 때야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얌마, 정신 좀 차려.”
“예...? 아...”
“으이그 아예 혼이 나갔네, 나갔어.”
칠복이 아저씨는 아침모임에 내가 준 파일 철을 들고 나타났다. 그냥 보관함에 넣어두면 될 텐데 왜 들고 다니는지 물어봤다.
“근데 그걸 왜 들고 다녀요?”
“중요한 거라며? 그래서 들고 다닌다.”
“.......”
아침모임이 끝나고 밖에 나갔을 땐 비가 더 이상 오지 않았다. 알고 보니 어제 저녁엔 태풍이 잠시 휩쓸고 지나간 거라고 했다.
“태풍이라...”
정말 여러모로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어제 저녁이었다. 아침 모임이 끝나고 형님이 곁에 와서 말했다.
“근데 그러고 구걸할거냐?”
“예?”
“그렇게 말끔한 차림으로 누가 십원짜리 한 장 던져주겠냐?”
“... 그렇군요.”
상상을 해보니 명품양복과 구두를 빼입고 지하철에 앉아서 구걸을 한다는 게 그림이 참 웃겼다.
나는 특별히 형님에게 허락을 받고 원룸으로 가서 옷을 갈아입기로 했다. 서주희는 내가 오자 온 이유를 아는 듯 내 옷을 주었다.
어제 저녁까지 아예 축축했는데, 벌써 이렇게 말랐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내가 의아한 눈빛으로 서주희를 바라보자, 서주희가 자랑처럼 말했다.
“선풍기 틀어놓고 해 뜨자마자 햇빛에 말렸어요. 그러니까 금방 마르던데요?”
“음... 고마워.”
“근데 저 아인 어쩌실 거예요?”
“......”
서주희가 가르킨 곳엔 희원이가 있었다. 어제 저녁부터 아직 깨어나지 않았는지, 아직 잠든 상태였다.
그것도 그럴게, 아직은 조금 이른 시간이다. 나는 어떻게 할지 생각을 해 보았다.
이대로 여기에서 키우면 좋은가? 하지만 그건 다른 노숙인 들에게 민폐가 될 것 같았다.
내 집이라면 당연히 내가 키우겠지만, 그러지도 못한다. 하지만 지금은 마땅히 있을 곳이 없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휴... 좀 있다가 저녁 모임 때 말은 해볼게. 일단은 여기 두자. 일어나면 밥이랑 좀 챙겨주고.”
“예...”
“고마워.”
나는 신발을 주섬주섬 신으며 이야기를 했다. 얼굴을 직접 보고 이야기를 하기엔 어색한 부분이 있었다.
현관문을 나서니 언제 비왔냐는 듯 날씨가 밝았다. 바닥이 약간 젖어있을 뿐, 시간이 조금만 더 지나면 다 마를 것 같았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어 이 반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선후야. 가려면 새벽 좀 늦게 가야 할 텐데, 어쩔거냐?
“그렇게 하겠습니다.”
--... 알았다. 새벽 3시쯤 해서 GG은행에서 보자. 근데... 왜 장례식장에 가려는 거냐? 위험한데다... 민창수 검사랑 사이도 나빠진 것 같더니...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요. 그냥 고집이라고 생각해 주십쇼.”
--알았다.
“부탁이 있는데 들어주실 수 있으십니까?”
--뭔데?
“YY고시원 화재난거 기억하십니까?”
--물론이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고... 또...
이 반장이 말을 잇는데 망설였다. 아마 나에게 민감한 부분이 있어서 그럴 것이다.
난 입술을 깨물며 조금 무리하게 이 반장의 말을 끊었다. 그 말은 듣고 싶지 않았다.
“그때 고시원 바로 앞에 있던 CCTV좀 보고 싶은데요.”
--그거야 이미 종결된 사건이라 어렵지 않아. 알았다.
“감사합니다... 그때 뵙죠.”
나는 전화를 끊고 곧바로 보관함으로 갔다. 기억하기 싫은 일을 듣게 되어서 일부러 서두르는 감이 있었다.
날씨가 점차 더워지려는데, 지하철 안으로 들어가자 약간의 한기가 옷 속으로 스며드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익숙하게 보관함을 열어서 깡통을 들고 평소와는 좀 다른 곳에 앉았다.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원래 앉던 자리에 앉는 게 좋긴 했지만, 오늘은 좀 생각할 게 많았다.
“후유...”
앉자마자 한숨부터 나왔다. 이번 일은 얻는 것도 많았고, 나름대로 내가 생각한 일을 해내긴 했지만, 결국 결과는 좋지 못했다.
어쩌면 내 오해가 이런 결과를 가져왔을지도 모른다.
한번만 더 생각을 해보고 전선기에게 희원이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면 좀 더 바람직한 결과가 나왔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그 때문에 내 머릿속에선 끝나버린 일을 가지고 수도 없이 다른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다 허사라는 것을 아는 건 시간이 너무나 오래 걸렸다.
그렇게 복잡한 생각들로 머리를 가득 메우고 있을 때, 앞에서 그림자 하나가 어른거렸다.
“......?”
나는 갑자기 그림자가 드리워지자, 이상함을 느끼고 앞을 쳐다봤다. 곧 그림자 주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빠... 선후 오빠 맞지...?”
“...... 한은이구나?”
서있는 사람은 한은이었다. 자리를 바꾼 게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르는 척 할까 생각도 해봤지만, 나를 못 알아볼 한은이가 아니다. 한은이는 쭈그려 앉더니 나에게 말했다.
“오빠... 대체 왜 이러고 있어...”
한은이는 다소 울먹이는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나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아마 한은이는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것도 모를 것이다.
내가 서주희를 탈취한 사건도 경찰 측에서 위신이 내려 앉을까봐 언론이나 일반인들에게는 공개되지 않은 형편이었다.
나는 계속해서 고개를 푹 숙이고 말했다.
“그냥... 일이 있었어...”
“내가 알면 안되는 일이야..?”
한은이의 질문 하나하나가 대답하기 곤란한 것들 밖에 없었다. 나는 계속 고개를 숙인 채로 대답을 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혼자 말을 걸던 한은이가 포기했는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알았어. 말하기 힘든 거. 그럼 천천히 말해 줘. 매일 올 테니까 말하고 싶을 때 해줘.”
“.......”
“만약에 매일 왔을 때 여기 없으면 있는 곳 찾을 때까지 찾아다닐 거야.”
한은이는 반 협박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잘 가라는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무능력하게 한은이의 뒷모습을 쳐다보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 이후로 아무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저 멍하게 사방이 찌그러진 빈 깡통을 쳐다보는 방법밖엔 없었다. 가만히 깡통을 보고 있자니, 깡통도 나를 처량하게 보는 것 같았다.
속이 답답해져 깡통을 들고 지하철을 나섰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된지 몰랐는데,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혹시 저녁모임 시간이 지나버렸을까 깜짝 놀라 시계를 보니, 아직 그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정도면 미리 가있어도 적당한 시간이었다.
나는 밖에서 적당히 바람을 맞다가 다시 지하철로 들어갔다.
들어가기 직전에 뒤를 돌아서 잠시 밖을 바라봤다. 밖은 언제 비가 왔는지 모를 정도로 깔끔했고, 길바닥엔 젖은 흔적 하나 없었다.
“나만 그대로군...”
잠시 바깥 세상에 비난을 남기고 나는 저녁 모임 장소로 갔다.
반대편 입구로 나와 깊은 골목 끝에 있는 모임장소는, 빛 한줄기 없었지만 가면 갈수록 밝아지는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지형에 익숙해져서 그런 것 같았다. 나는 아무도 없는 빈 공터에 항상 앉던 곳에 앉으며 중얼거렸다.
“역시 좀 이르게 오긴 했네.”
작게 중얼거리는 말도 거칠게 없는지 허공을 심하게 흔들었다. 나는 소리가 생각보다 크게 나는 것에 잠시 놀래서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들은 사람은 없었다. 나름대로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고 있는데, 멀리에서 사람들 소리가 들려왔다.
하나 둘 도착하던 사람들은 가장 먼저 있는 나를 보고 의외라는 말을 건네며 인사를 했고, 나도 넉살좋게 웃으며 인사를 받아주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가까워졌을 때, 칠복이 아저씨가 나에게 다가왔다. 아저씨는 나의 뒷통수를 탁 치며 말했다.
“웬일로 이렇게 빨리 왔냐? 항상 딱 맞춰 오거나 늦던 놈이.”
“늦다니요. 딱 맞춰 온건 맞지만, 늦은 적은 저번에 한번밖에 없어요.”
“그게 늦은 게 아니면 뭐겠냐? 하핫.”
아저씨는 호탕하게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의 옆구리에는 내가 준 파일 철을 끼고 있었다. 정말 한시도 떼어놓지 않을 심산인 것 같았다.
나는 칠복이 아저씨에게 파일 철을 맡긴 걸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미소를 지었다.
간만에 훈훈한 정을 느끼고 있는데 누군가 내 머리를 정말 맛있게 때렸다. 나는 순간 열이 받아 눈을 부라리며 나를 때린 사람을 쳐다봤다.
“뭘 그렇게 좋다고 쪼개?”
“아, 왜 때려요? 나이 많으면 다야?”
“어이구, 이놈이...”
칠복이 아저씨는 언제 받아왔는지 삼각 김밥이 양 손에 들려져 있었다. 내꺼도 같이 받아온 것 같았다. 나는 인상을 풀고 김밥을 채가듯 받았다.
칠복이 아저씨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나를 봤지만 난 신경 쓰지 않고 쩝쩝 소리를 내며 김밥을 먹었다.
그런 나를 보고 칠복이 아저씨는 껄껄 웃어대더니 같이 쩝쩝거리며 화음을 만들어 냈다.
간만에 맛있게 저녁을 먹은 나는 배를 두드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우 배불러. 전 가보겠습니다.”
“또 먼저 가냐? 의리 없는 자식 같으니라고.”
“제가 아저씨 자식은 아닌데요.”
“시시껄렁한 농담하려면 저리 꺼져 임마.”
“하핫, 내일 뵙겠습니다!”
나는 일부러 우렁차게 인사를 하고 모임 장소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그 장소를 뒤로하는 순간 표정이 다시 어두워질 수밖에 없었다.
침울한 표정으로 내 자리에 와서 신문지를 머리 끝까지 뒤집으며 잠을 청했다. 새벽 3시에 나가려면 조각 잠이라도 미리미리 자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곧 형님도 돌아왔는지 건너편에서 신문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곧 잠잠해지더니 형님의 목소리가 전해졌다.
“어디 가냐?”
“예.”
“알았다. 잘 갔다가 돌아와라.”
“... 예...”
잠을 자려 애썼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일어나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결국 몇 시간 동안 뒤척이다가 신문지를 걷어차고 일어나는 수밖에 없었다. 시간은 깊어 2시가 되었지만 정신은 괴롭도록 맑았다.
나는 형님이 깨지 않도록 조심하며 자리를 정리하고 지하철 밖으로 나섰다. 새벽의 차갑고 습한 공기가 느껴졌다.
나는 정신이 더욱 또렷해지는 것을 느끼며 원룸으로 갔다.
그리고 아직 자고 있을 서주희와 희원이를 위해서 최대한 소리 내지 않으며 양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말려두었던 돈과 귀중품을 천으로 감싼 뒤 잘 챙겨서 나왔다. 구두굽이 시멘트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나를 이끌었다.
GG은행 앞엔 비오는 날에 보았던 광경 그대로 차가 한 대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비가 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차의 앞좌석에 탔다. 타자마자 이 반장이 뭔가를 던져주었다.
“봐라.”
“CCTV군요.”
“그래.”
차가 비교적 부드럽게 출발했고, 나는 CCTV영상이 찍힌 화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내가 고시원을 나서고 불이 나는 지점을 계속해서 돌려 보았다.
“근데 뭐 보려고?”
“... 별거 아닙니다.”
스스로에게 마지막으로 주었던 기회마저 CCTV를 보고 무너져버렸다.
혹시나 정말 혹시나 민창수가 고시원에 불을 질렀다면 조금이나마 이 짐을 내려놓을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역시 민창수의 흔적은 CCTV 어디에도 없었다. 불은 내부에서 치솟았고, 소방차와 경찰차가 온건 그 후이다.
민창수의 모습은 몇 번을 돌려봐도 찍혀있질 않았다. 나는 체념하며 화면을 내려놓았다. 그때 이 반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도착했다. 가자.”
“예.”
“그 전에 이거 써라.”
이 반장이 내게 검은색 중절모를 주었다. 나는 그것을 받아 얼굴이 잘 보이지 않도록 푹 눌러썼다.
도착한 곳은 유명한 병원의 장례식장 이었다. 시간이 시간이라 사람은 많지 않았다. 왔다갈 사람은 이미 많이 갔고, 남아있을 사람만 남아있었다.
그중엔 구면도 많았다. 하지만 내가 경찰에 쫓기는 걸, 아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았다. 먼저 말을 걸며 인사를 하던 검사도 있을 정도였다.
나는 어색함을 느끼고 얼른 빈소에 들어갔다. 이제 조문을 하려는데 이 반장이 말했다.
“같이 갈래? 아니면...”
“가능하시다면 혼자 가게 해주십쇼.”
“그래.”
나는 모자를 벗어 선반에 올려놓고 들어갔다. 상주는 민창수 검사의 어머니였다.
전에 자주 뵀었지만 이렇게 보니 마음고생이 심하신 듯 얼굴이 초췌했다.
나도 나름대로 길어진 머리를 정리하고 했지만 민창수의 어머니는 나를 바로 알아봤다.
“선후구나? 잘 왔어.”
“... 아닙니다...”
나는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향에 불을 피워 향로에 꽂았다. 민창수의 영정 사진이 가까워지는데 속에서 뭔가 울컥하여 향을 든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나는 뒷걸음으로 뒤로 온 뒤에 주머니에서 가져온 돈과 귀중품을 꺼냈다. 그것들을 내 앞에 놓고 난 말했다.
“형... 내가 한일 때문에 화날 줄 알고... 내가 말도 안하고... 형꺼 마음대로 가져왔다는 거, 정말 미안해... 하지만 이거... 희원이를 위해서 쓸게... 편히 쉬어...”
눈물이 끓어 넘칠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입술을 꽉 깨물며 참고 또 참았다. 이런 걸 약속하는 자리에서 눈물을 흘릴 순 없었다.
나는 겨우겨우 절을 두 번 마치고 물건을 챙긴 뒤 민창수의 어머니에게 절을 올렸다.
절을 올리고 난 뒤에 민창수의 어머니가 나를 말없이 안아 주었다. 나는 참지 못하고 눈물을 쏟아냈다.
“끅.... 끅... 죄..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정말...”
민창수의 어머니는 계속 말이 없었다. 그저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느라 요동치는 내 등을 쓰다듬어 줄 뿐이었다.
비 오던 날 이후, 나는 조금 더 적극성을 띄며 행동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그럴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준 것이 바로 민창수 검사의 파일 철이었다.
거기엔 전선기가 고시원이 불탄 뒤로 정부의 보조금을 받고 새롭게 시작한 사업에 관한 이야기도 쓰여 있었다.
사업 아이템이 약간은 섬뜩하긴 했지만, 의아하기도 했다.
“칼이라니...”
전선기는 주방용품을 주로 하여 창업을 한 상태였다. 그 중에서 식칼을 주로 하고 있었다. 나는 약간 이해가 되질 않았다.
전선기가 그 동안 살해한 방식 중에서 칼은 단 한 번도 있지 않았다.
게다가, 누가 들은 다면 조금은 의심을 할 수 있는 식칼을 다룬다니, 이건 어떤 의도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고 조금은 위험성이 있더라도 전선기에게 과감하게 접근해 갔다.
원래는 서주희의 집이었던 전선기가 사는 집에도 수시로 드나들어 전선기의 동선을 파악했다.
항상 저녁 모임이 끝난 뒤에는 잠을 자러 가지 않고, 전선기 집 쪽으로 가서 전선기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야 임마, 또 가냐? 피곤하지도 않아?”
“이렇게라도 해야 좀 보일 것 같아서요.”
“그래... 뭐, 니 생각이 그렇다면야...”
처음엔 형님도 그 부분에 관해서 걱정을 했었지만, 어떤일이 있었는지 조금 설명을 해 드리자 납득을 하시는 눈치였다.
사실 장례식장에 갔을 때, 곧바로 전선기 집에 쳐들어가려고 했었다.
하지만 돌아오라는 형님의 말이 떠올라 겨우 이성을 차리고 지하철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오늘도 꽝인가...”
거의 매일오는 전선기의 집이었지만, 허탕을 칠 때가 많았다. 새로운 사업이라 여러모로 바쁜건 둘째 치고라도, 이 집에 진짜 전선기는 오지 않았다.
매일 보는 건 가짜였다. 처음엔 알아채기가 힘들었지만, 형님이 알려준 걸음걸이며, 행동을 보니 점차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오늘은 가짜 조차도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이 아파트는 꽤 고급이라 여기저기 달린 CCTV 때문에 함부로 움직이기도 힘들었다. 나는 조금 더 기다려 보다가 포기하고 돌아가기로 했다.
“휴...”
날이 저문지 한참이 지났어도 더위는 가시지 않았다. 나름대로 노숙자 행색을 한다고 외투까지 걸치고 있으니 이 일도 할만한 일이 아닌 것 같았다.
특히 요즘에 그런 생각이 수없이 들었다.
물론 바닥이 차가운 지하철 바닥에 앉아 있으면 그렇게 나쁘진 않았지만, 요즘엔 움직이는 시간이 많아져서 그렇기도 하다.
항상 이렇게 전선기를 관찰하고 돌아오면 하는 일이 있었다.
나는 그 일을 위해 곧바로 내 자리로 가지 않고 구역 안에 있는 어떤 장소로 갔다. 그곳에 앉아 있으니 곧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오빠!”
고개를 들어 소리나는 쪽을 바라보니 한은이가 손을 흔들며 다가오고 있었다.
항상 학교 끝난 뒤 바로 오기 때문에 교복 차림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한숨을 푹 쉬고 말했다.
“언제까지 오려구?”
내 말에 한은이는 인상을 찌푸리며 내 옆에 신문지를 깔고 앉았다.
사실 그날 한은이가 매일 찾아온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일부러 한은이를 피해서 다른 곳에 있곤 했다.
그렇게 며칠을 있다가 한은이가 진짜 나를 찾아왔었다. 근데, 그 시간이 고등학교 학생이 아직 끝날 시간이 아니었다.
이 시간에 어떻게 나왔냐고 물어보니, 야간자습을 하지 않고 나를 찾기 위해 그냥 나왔다고 했다. 그 이후로 나는 이 시간에 보기로 했다.
한은이는 약속한 시간에 매일 어김없이 나타났고, 나와 조금의 대화를 나눈 뒤에 집에 가곤 했다.
“언제까지 그거 물어볼거야? 계속 올거야 오빠가 제대로 된 사실을 말해주기 전까지.”
“후유...”
“한숨 쉬지말구... 자!”
내 말에 인상을 쓰던 한은이가 방에서 뭘 꺼내고 환하게 웃으며 나에게 건네주었다. 나는 뭔진 모르지만 일단 받았다.
플라스틱의 네모난 통은 도시락이 틀림없었다. 나는 갑작스러운 선물에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뭐야...?”
“보면 몰라? 도시락이야! 내가 보니까 볼 살도 없구,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아서 좀 싸왔어.”
“......”
일단 도시락 뚜껑을 열어보았다. 산지 얼마 안된 도시락 통이라 그런지 여는데 생각보다 힘이 많이 들었다.
그것도 그럴 게, 요즘 학교는 급식이라 도시락 통이 있긴 어려울 것 같았다. 새 도시락 통 안에는 김밥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나는 김밥과 한은이를 차례로 번갈아 보았다. 보통 우리들은 정해진 양을 제외하고는 거의 먹질 않는다.
한번 배부르게 먹는다고, 다음에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혹여나 양이 늘어버리면, 지출과 직결이 되기 때문에 점심을 먹는 양도 정해져 있고, 저녁 모임에서 먹은 것 이외의 음식은 잘 먹질 않는다.
하지만 지금 한은이의 눈빛을 보자 도저히 거절할 수 없었다.
“먹어봐! 오늘 아침에 싸놨다가 양호실 냉장고에 넣어놨어.”
“으음...”
나는 정리되어 있는 김밥들중 정가운데 있는 김밥을 집어 들었다.
가운데 끼어있는 김밥을 꺼내느라 김밥모양이 조금 일그러지긴 했지만 대체적으로 보기엔 허물이 없는 모양이었다.
나는 어쩔수 없이 김밥을 입에 넣었다. 몇 차례 씹고 있는데, 옆에서 한은이가 두 눈을 끔뻑거리면서 물었다.
“어때? 어때? 맛있어?”
“음......”
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저 다음 김밥을 들었을 뿐이었다. 다음 김밥도 채 목구멍을 넘어가기 전에 나는 다음 김밥을 들어서 입에 넣었다.
쉬지않고 김밥을 입에 넣기만 하자 곧 목이 메어왔다.
한은이는 어떻게 알았는지, 투명한 페트병에 담긴 물을 꺼내어 뚜껑을 따서 나에게 주었다.
새로 산 물이라는 걸 뚜껑이 대신 말해주는 듯, 처음 열 때의 드르륵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난 아무 말도 않고 물을 받아 마시고 다시 김밥을 입에 넣었다.
“어때? 응?”
내가 김밥을 먹는 동안 한은이가 몇 차례 나에게 물어봤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가끔씩 목이 메어 물을 마실 때를 제외하고는 계속해서 김밥을 입에 쑤셔 넣었다.
한은이는 잘 먹는 내 모습이 대답이 되었는지 얼굴에 미소를 가득 띄며 김밥을 먹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김밥을 거의 다 먹었을 땐, 그 미소는 걱정하는 표정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밥도 못먹고 다니는 거야?”
“......”
그 말에 한번 한은이를 슥 쳐다보고, 마지막 남은 김밥을 입에 넣었다. 그리고 페트병에 조금 고여있는 나머지 물을 다 마시고 나는 드디어 입을 열었다.
“한은아.”
“응? 말해 오빠.”
“김밥 재료는 뭘 샀어?”
“그야 햄이랑... 맛살도 넣고... 참치도 넣고... 고소하라고 깨도 넣고... 당근하고 우엉도!”
“많이 넣었네. 맛있는 재료들을.”
“응! 그렇지?”
“단무지는?”
“......?”
내 마지막 말에 한은이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나는 도시락 뚜껑을 닫고 한은이의 가방에 다시 넣어주었다.
한은이는 충격에 헤어 나오지 못했는지 내가 물통을 버리고 오는 동안에도 입을 쩍 벌린 채 움직이지 않았다.
내가 손으로 벌어진 입을 닫고 나서야 한은이가 나를 원망하는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왜 말 안하고 다 먹었어? 잘못 만든 줄 알았으면 다시 만들었을 텐데...”
“말했으면 버릴 거잖아. 음식은 남기면 안 돼.”
나는 혀끝으로 입안에 남아있는 불순물들을 열심히 제거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일어나자 한은이도 낑낑거리면서 일어났다. 나는 한은이가 깔고 앉았던 신문지를 주워 구기며 말했다.
“조심히 들어가, 자기 전에 깨끗하게 씻고.”
“미안해 오빠...”
“뭐가 미안해? 가라.”
“오빠 잠깐만...!”
휙 뒤돌아서 내 자리로 가려는데 한은이가 내 소매를 붙잡았다. 나는 무심하게 고개를 돌려 한은이를 보았다.
“왜?”
나의 물음에 한은이는 쭈뼛쭈뼛거리며 입을 쉽게 열지 못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돌아서려는데, 한은이가 다급한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언제까지...! 이런 생활 할거야...?”
“......”
“오빠, 경찰도 그만 뒀다며? 혹시 경찰한테 쫓기거나 그런건...!”
“한은아.”
나는 몸 전체를 돌려 한은이를 바라보았다. 한은이는 아직 내가 경찰에 쫓기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아직 경찰에서 내 범행을 공개를 안했기 때문에, 일반인은 잘 모를 것이다.
하지만 그게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몰랐다. 나는 한은이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내일도 일찍 일어나야 되니까 일찍 자. 알겠지?”
“......”
나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몸을 돌려 내 자리를 향해서 걸어갔다. 뒤에선 아무런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발걸음도 들리지 않았다.
내가 코너를 돌때쯤 되어서야 뒤에서 뛰어가는 발소리가 들렸고, 그 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나는 자리로 돌아와 신문지를 덮었다.
잠이 쉽게 오지 않아 옆 벽면에 거대한 전광판을 아무생각 않고 멍하게 쳐다보았다. 속의 답답한 응어리들이 그나마 조금씩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모임에 갔을 때 사람들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나는 아침이라 그러려니 했었는데, 그 시선이 나에게 쏠리고 있으니 뭔가 이상하긴 했다.
그리고 형님이 헛기침을 한번 한 후에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좋지 못한 소식이 있다.”
형님의 말에 시선이 나에게 더욱 더 쏠렸다. 나는 어떤 일인지 알지 못했지만 본능적으로 입안의 침이 바싹바싹 마르기 시작했다.
“선후야.”
“예...?”
“너, 공개 수배 됐다.”
“공개 수배요...?”
“그래. 오늘자 신문에 났드라. 강력한 용의자를 탈취해서 사라졌다고...”
형님이 신문을 나에게 건네며 말했다. 나는 다급하게 신문을 받아들고 형님이 가르킨 곳의 기사를 보았다.
기사는 사회란에 꽤나 크게 적혀있었다. 내 사진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실명은 거론되어 있었다. 서울중앙지방경찰청 강력 2반 박선후라고.
“저...전 괜찮아요. 어차피 일어날 일이었는데요 뭘...”
나는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려 했지만, 이미 몸이 그렇지 않다는 걸 말해주는 듯 말을 더듬고 말았다.
나의 말에도 주변에선 걱정의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형님도 내 말을 듣고는 한숨을 푹 쉬고 말했다.
“우리가 걱정하는 건 그게 아니야.”
“예...? 그럼...”
“너, 이제 구걸하러 나오지 마라.”
“그... 그럼 어떻게 하나요...? 전 갈데가 없...”
“바보 같은 놈. 누가 널 버린데?”
형님이 혀를 차며 나를 구박했다. 하지만 구걸을 안 한다면 여기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나는 수배를 당하는 것 보다 이 집단에서 내 쫓기는게 지금은 더 무서웠다.
도움을 직접적으로 받진 않아도, 심리적으로 의지하는 게 너무 커진 탓이었다. 형님은 조금 기분이 나빠진 듯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우린 한번 받아들이면, 이유 없이 쫓아내질 않아. 이제 곧 수배서에도 니 얼굴이 오를 텐데, 그럼 구걸하다가 저번처럼 경찰이 출동하면 어쩔 거야?”
“......”
“그렇다고 쫓아내겠단 이야기는 아니고, 원룸에서 생활하도록 해.”
“예...?”
“넌 그 동안 옳지 않은 방법이라도, 돈을 많이 냈으니까 그 정돈 괜찮겠지.”
형님은 내가 저번에 민창수 검사의 지갑을 털어서 담배를 사고 남은 돈을 낸 걸 이야기 하는 것 같았다.
사실 그때, 형님에게 크게 혼나긴 했었지만, 다시 돌려줄 수도 없는 돈이라 하는 수없이 받은 일이 있었다.
형님은 미소를 띠며 다른 노숙인들에게 말했다.
“어디 불만 있는 사람 있냐?”
“없어요!”
“괜찮아요!”
“어려울 땐 서로 도와야지!”
다른 노숙인들은 기다렸다는 듯 격하게 긍정의 표시를 했고 형님은 보란 듯이 나를 보고 웃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말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고마워요!”
내가 고개를 수없이 숙이며 감사를 표하고 있는데, 칠복이 아저씨의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감사하면 여기서 이러고 있지말고 빨리 집으로 가버려.”
“예...! 예!”
칠복이 아저씨의 말에 나는 얼른 방향을 돌려 원룸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인사를 하는 걸 잊지 않았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 이 반장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몇 번 통화음이 울리지 않았는데 이 반장이 전화를 받았다. 나는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저 공개 수배 됐다면서요?”
--어, 선후냐?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 너 공개 수배 됐어.
“생각보단 빨리 됐네요...”
--그래 저번에 민 검사 일도 있고 해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내가 끝까지 미뤄보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어...
“그 이야긴 됐습니다. 제가 알고 싶은 건...”
--현상금?
“예... 현상금에 따라 사람들의 관심도가 달라지잖아요.”
--아직 너는 기본의 기본 현상금도 아니야, 거의 없다고 봐야겠지.
“그렇군요.”
다행이 안도가 되었다. 현상금이 작다면 보통의 사람들은 전단지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나는 전화 통화를 하는 중에도 주변 사람들을 의식하면서 최대한 사람이 없는 길을 선택하여 걸었다. 한참 통화가 가는데 이 반장이 말했다.
--이제 끊어야 겠다.
“예?”
--더 하면 통화 추적이라고 의심이 갈 수도 있잖아. 알만한 놈이 그래?
“아...”
--다음에 또 하자, 언제든지 해라. 나는 니편이니까...
그 말을 마지막으로 전화가 끊겼다. 어느새 원룸에도 거의 도착해 있었다. 나는 핸드폰을 다시 외투에 넣고 원룸에 들어가려 했다.
“......”
막상 들어가려니 망설여졌다. 민창수의 장례식이 있던 이후로 원룸에 왔던 적이 한번도 없었다. 아마 지금 시간이면 희원이가 깨어 있을 수도 있을 시간이었다.
나는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희원이를 볼 자신이 없었다. 아무래도 잘 때만 원룸에서 자고 희원이가 깨어 있을만한 시간엔 밖에 나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일단은 이런 거지꼴로 돌아다니다간 사람들의 눈을 모으기 십상이기 때문에 옷부터 갈아입기로 했다. 나는 조심히 원룸의 문을 두드렸다.
-똑똑.
“누구세요?”
안에서 서주희의 들뜬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와 반대로 목소리를 깔며 말했다.
“나야.”
“어? 웬일로 오셨네요?”
곧 철컥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문이 열렸다. 서주희가 들어오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하지만 나는 활짝 열리려고 하는 문을 다시 닫으며 말했다.
“양복 좀 가져다주라.”
“예? 안에서 입고 가세요.”
“그럴 일이 있어서 그래 가져다 줘.”
“....? 알겠어요.”
곧 서주희가 잘 개어진 양복과 구두를 가지고 나왔다. 벨트와 넥타이, 그리고 양말은 양복의 위에 잘 말아져 있었다.
나는 얼굴만 보이는 서주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서주희는 잠시 나와 눈을 마주치더니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그래요?”
“정리를 참 잘하는 구나. 원래 이렇게 살았었냐?”
“그럼요. 제가 정리는 원래...”
“옷 갈아입고 내 옷 줄 테니 잠깐 있어.”
나는 서주희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문을 닫았다. 그리고 원룸 건물의 구석으로 가서 옷을 갈아입었다.
습한데다가 먼지까지 쌓여져 있어서 꽤 꺼려졌지만 이내 아무렇지도 않게 갈아입었다. 하지만 맨발이 땅에 닿았을 때의 꺼끌꺼끌한 그 찝찝함은 참을 수 없었다.
나는 최대한 빨리 갈아입고 벗어진 옷은 나름대로 갠 후에 다시 문을 두드렸다.
-똑똑.... 철컥.
이번엔 별다른 말없이 서주희가 문을 열었다. 약간은 삐친 표정이었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고 옷을 건네주었다.
“좀 개어서 오지 이렇게 아무렇게나 던져주면 다에요?”
“아무렇게나 라니? 나름대로 정리해서 왔는데.”
“이게 정리 한 거예요?”
아무래도 자신의 말을 듣지도 않았다고 빈정이 상한 것 같았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문을 닫았다.
안에서 짜증이 뻗친 소리가 문을 뚫고 들렸지만, 나는 도망치듯 그 자리를 피했다.
“그럼 어디로 간다...”
막상 발걸음을 돌리긴 했지만 갈 곳이 마땅치도 않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루를 뭘 하면서 버티나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잡아온 놈들도 이런 느낌이었나?”
웃음이 피식 나왔다. 수배가 되자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도 없고, 그렇다고 잠은 오지도 않고 미칠 노릇이었다.
대체 그동안 잡기 힘들었던 놈들은 뭘 하면서 지냈나, 전화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전국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던데, 나는 그럴 수도 없었다. 나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전선기가 새로 차렸다는 주방용품점을 가보기로 했다.
아직 사업을 열었다는 말만 들었을 뿐이지, 실제로 조사를 하진 않았다. 나는 혹시 몰라 들고 다니던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움직였다.
“헉... 헉...”
하지만 그 한계는 얼마 못가서 드러났다. 이 더위에 마스크를 하고 다닐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곧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아 호흡이 거칠어졌다.
폐 속에 마스크의 실밥과 더운 공기가 가득 차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질식해 죽는 것보다 사람들 눈에 띄는 게 더 무서워서 아쉬운 대로 계속 착용을 하기로 했다.
지하철을 몇 번 갈아타고 민창수 검사의 파일 철에 적혀 있던 사업장을 찾는 데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생각보다 크게 열어놓고 건물도 새 건물인지라 금방 눈에 띄었다.
“의외로 사람이 많은데...?”
애초에 주방용품점이 이렇게 따로 오픈을 해서 있는 것도 처음 보았고, 백화점 주방용품 코너에도 이렇게 사람이 많았던 적은 없던 것 같았다.
희한하게도 대부분 손님은 여자가 아닌 턱수염이 있는 남자들이었다.
나는 좀 더 자세히 관찰해 보기 위해서 마스크를 벗고 안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마스크를 벗자마자 상쾌한 공기가 몸을 가득 채우는 느낌이 들었다.
더운 실외와는 다르게 안은 무척이나 시원했다. 그리고 내부의 풍경도 밖에서 보던 풍경과는 사뭇 달랐다.
여성들이 있긴 했지만 그건 정말 아주 조금이고, 따로 마련된 코너에서 프라이팬과 같은 주방용품을 보고 있었고, 대부분의 코너는 칼을 판매하고 있었다.
과도에서부터 전문 요리사가 쓰는 기다란 사시미와 벽돌 같은 중국칼 까지 종류가 다양했다.
“오싹하구만...”
에어컨 바람이 과도하게 시원한 이유가 있는 것 같았다.
내부 인테리어도 칼 각을 유지하고 있었고, 여기저기 다양한 칼들이 보이자 오싹한 분위기가 연출 되는 것 같았다. 손님들도 각양각색이었다.
“별 희한한 곳을 다 보겠군...”
진짜 요리사로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니 대부분이 아마 진짜 요리사들 일것이다.
그중에서는 외국인도 꽤 많았다. 하지만 웃긴 건 이런 손님들이 아니었다.
“아~ 전 이정도면 적당한 것 같수.”
“너무 긴 거 아니요? 가지고 다니기 힘들 것 같은데...”
팔에 길다란 용 문신, 호랑이 문신을 하고 머리는 바짝 깎은 손님들도 있었다.
그들은 칼들의 용도와는 관계없이 자신이 마음에 드는 모양과, 상대적으로 실속 있는 칼들을 고르고 있었다.
아마도 그들이 칼을 사는 건 요리를 하기 위함이 아닌 것 같았다. 그 사람들을 보면서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짓고 있는데, 누군가 나에게 다가왔다.
“손님. 어떤 물건을 찾으십니까?”
“아, 전 그냥...”
“양식 전용 칼은 이쪽입니다.”
“아... 예...”
점원으로 보이는 예쁘장한 아가씨가 나에게 안내를 해줬다. 이곳은 손님에 안내원이 한명씩 붙는 그런 시스템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아가씨는 센스 있게 내 옷차림을 보고 양식 쪽을 추천해 준 것 같았다.
나는 설명을 이것저것 듣는 척 하면서 내부 구조와 점원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손님 스타일에 따라 붙는 점원도 다른 것 같았다.
좀 거친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들에게는 남자 점원이 붙어서 안내를 하고 있었다. 나는 머리를 조금 굴려 보았다.
“음... 오늘은 살펴보러 온 겁니다. 다음에 한 번 더 오겠습니다.”
“네. 그렇게 하세요.”
점원은 활짝 웃어 보였다. 나는 그 사이에 점원의 이름표를 살짝 보았다.
-김경은.
그리고 몸을 돌려 입구로 향했다. 예상대로 점원은 나를 입구까지 배웅해 주었다.
나는 문을 열고 나가기 전에 멈칫 하고는 다시 뒤를 돌았다. 점원은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말했다.
“뭐 생각나신 거라도 있으십니까?”
“아뇨. 그것보다, 정말 친절하시군요. 다음에 왔을 때도 제 안내를 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나는 최대한 젠틀 해보이도록 말했다. 내가 봐도 오글거릴 정도였지만 꾹 참아내며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점원은 길게 생각하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손님. 카운터에 문의해주시면 바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아뇨. 내일 이 시간에 올테니 그렇게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나는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밖으로 나왔다. 다시 더운 기운이 온몸을 감쌌다. 나는 저 여직원을 통해서 정보를 캘 작정이었다.
전선기의 가게라면 내가 자주 가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았다. 점원 한명정도 심어둘 필요가 있었다.
나는 다시 마스크를 착용하고 거리를 걸었다. 가게에서 꽤나 오래 있었는지 벌써 점심때가 다 되었다.
“뭘 먹지...?”
문득 원룸을 생각해 봤지만 고개를 저었다. 아직 희원이랑 점심을 같이 먹는 건 내가 힘들 것 같았다. 나는 잠깐 생각을 하다가 한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여기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곳이었다. 내가 간 곳에는 한쪽에서 노숙자가 고개를 푹 숙이고 깡통을 앞에 놓은 채 구걸을 하고 있었다.
나는 가까이 다가가 깡통에 200원을 넣으며 500원 짜리 동전을 꺼냈다. 그 순간 그 노숙자의 손이 내 손목을 꽉 잡았다.
그 힘이 생각보다 강해서 고통 때문에 인상을 찌푸리는데, 노숙자가 고개를 들며 말했다.
“어디서 이딴 수작을... 어? 선후 아니냐?”
“아이고 아파라... 빨리 놔요!”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지만, 나를 금방 알아본 칠복이 아저씨가 손을 놓자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손목을 살폈다.
어찌나 세게 잡았는지 손자국이 남아있었다. 그런 나를 보며 칠복이 아저씨는 너털웃음을 짓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의 엉덩이엔 내가 맡겨둔 파일 철이 있었다.
“근데 무슨 일이야? 이 시간에 온 적은 없었잖아?”
“밥 좀 같이 먹으러 왔죠. 그런데 이런 대접을 받을 줄이야... 아이고...”
내가 손목을 부여잡고 엄살을 피우자 칠복이 아저씨는 손목을 가볍게 찰싹 치더니 파일 철과 깡통을 챙겼다.
깡통에서는 꽤나 묵직한 소리가 났다.
“많이 모으셨군요.”
“이정도 쯤이야... 나도 휴가 좀 나가야지. 요즘 한참 좀이 쑤셔서 죽겠어.”
“뭐 먹을래요?”
“말하면 사줄 거냐?”
“까짓것 사주죠 뭐.”
“음...”
칠복이 아저씨는 잠시 생각을 하곤, 손뼉을 탁 치며 말했다.
“그래! 냉면이 컵라면으로 나왔다는데, 그거 한번 먹어보고 싶군.”
“겨우 그거에요?”
내가 찝찝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자 칠복이 아저씨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에게 설교하기 시작했다.
“뭐라고? 그게 대체 얼마인지는 알고 말하는 거냐?”
“천....”
“천 사백 원이다. 그거면 삼각 김밥을 2개나 먹을 수 있어. 그리고 음료수를 투 플러스원으로 3개나 사먹을 수 있지.”
“차라리 냉면을 드시죠.”
“자식이 구걸 안 한다고... 안돼! 난 그 냉면이면 돼.”
나는 하는 수 없이 냉면을 사주었다. 하지만 냉면을 만드는 법은 꽤나 까다로운 것 같았다.
뜨거운 물로 면을 익히는 건 어느 정도 됐지만 찬물의 비율을 맞추는데 실패해서 맛이 맹맹할 뿐이었다.
나는 한쪽 귀에만 마스크가 걸리게 하여 먹긴 했지만 이내 젓가락을 내려놓고 말았다.
하지만 칠복이 아저씨는 뭐가 그렇게 맛있는지 후루룩 소리를 마치 컴퓨터로 내는 것처럼 맛있게 먹었다.
CF를 찍으면 시청률이 10퍼센트는 나올 것 같았다.
“맛있어요...?”
“음식을 맛으로 먹냐? 가격으로 먹지.”
“음......”
정말 배워야 할 자세였다. 나는 마음 속 깊이 반성하고 덩달아 맛있게 냉면을 먹었다.
그렇게 맹맹한 냉면을 순식간에 먹고, 칠복이 아저씨는 2개를 먹던 삼각 김밥을 1개만 사먹었다.
그리곤 만족스러운지 배를 뒤집어 까고 탕탕 치며 말했다.
“그런데, 형님이 원룸에 있으라고 했는데 왜 돌아다니냐?”
“원룸엔 들어갈 수 없어요.”
“왜?”
“아직 희원이 얼굴을 볼 수가 없네요.”
그 날 사건에 대해서는 우리 모임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그래서 칠복이 아저씨는 더 이상 그 건에 대해서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얼른 화제를 바꿨다.
“그래도 이렇게 돌아다니면 사람들한테 들키면 어쩌려고.”
“흠... 그렇군요. 하지만 너무 심심해서 견딜 수가 없어요. 할 일이 없다는 게 이렇게 답답한 일인지 몰랐네요.”
내가 심각하게 칠복이 아저씨의 말에 수긍하는 척 하며 말하자 칠복이 아저씨는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시게요?”
“응, 원래 구걸하면서 먹는데, 오늘은 니가 와서 특별히 시간을 내준거야. 벌수 있을 때 바짝 벌어야지.”
“그렇군요.”
“뭐 이야기 할 거 없으면 난 이제 간다. 너도 그만 싸돌아다니고 안전한 곳에 박혀 있어.”
“음... 알겠어요.”
칠복이 아저씨는 간단한 손짓으로 인사를 하며 자리에서 떴다. 나는 앉은 자리에서 잠시 생각을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생각을 해봤자 마땅한 곳이 떠오르지 않았다. 역시 갈 곳은 원룸 밖에 없었다.
나는 한번 환승을 하고 원룸 근처의 지하철역으로 왔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몇몇 사람들이 쳐다보긴 했지만,
가끔씩 기침을 해주면 그걸로 그만이었다. 원룸에 도착한 나는 호흡을 길게 몇 번 한 뒤에 초인종을 눌렀다.
어차피 평생 얼굴을 안 볼 수도 없는 일, 오늘 끝을 봐버려야 될 것 같았다.
“누구세요?”
“나야.”
“빨리 오셨네요.”
서주희의 목소리와 문 여는 소리가 동시에 났다. 서주희는 아까의 삐침은 잊어버렸는지 원래의 표정대로 미소를 살짝 띄고 있었다.
나는 희원이를 만날 생각에 긴장이 되었지만 애써 억누르며 아무렇지도 않은척을 했다.
“희원이는 있지?”
“예, 밥먹고 있어요.”
“음...”
나는 약간은 어색한 걸음걸이로 방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 희원이가 낯선 사람을 보는 듯 경계하는 눈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그 눈빛은 사라지고 나를 손가락질 하며 말했다.
“어? 그때 놀이터에 있던 아저씨다!”
“아...”
막상 희원이를 보자 뭐라고 해야 할지 할 말이 없었다.
내가 꽁꽁 얼어붙어 있는데, 서주희가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희원에게 말했다.
“아저씨가 아니야, 삼촌이야, 외삼촌.”
“외삼촌?”
희원이가 큰 눈을 빛내며 나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나는 심장소리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 것을 느꼈다.
희원이가 싫어하면 어쩌지?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서 울려퍼졌다.
“정말이야? 아저씨가 우리 삼촌?”
“으...응...”
“근데 왜 그땐 그런 말 안했어?”
“그... 그게...”
“자, 희원아. 밥부터 다 먹고 이야기 하자.”
서주희가 이렇게 고마울 순 없을 것 같았다. 서주희는 내 말을 끊고 희원이 옆에 앉아서 밥그릇에 김치를 올려주었다.
희원이는 생각보다 크게 한술 떠서 야무지게 한입 먹고 우물우물 거렸다. 그 모습이 귀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어색하게 양복 외투를 벗고 옷걸이에 걸어놓은 뒤에 벽에 기대고 앉았다. 희원이에게 눈길을 뗄 수가 없었다.
희원이는 밥그릇을 싹싹 비우고 물을 먹은 뒤에 배부른 듯 배를 감싸고 누웠다. 하지만 서주희가 여지없이 주의를 주었다.
“밥 먹자마자 누우면 안 돼. 일어나.”
“으응...”
희원이는 아쉽다는 듯 꾸물꾸물 일어나 앉았다. 서주희는 밥상을 치우고 와서 희원이에게 나에 대한 설명을 해 주었다.
희원이의 엄마인 박지혜의 동생이고, 민창수 검사와 평소에 친하게 지낸 사이라고. 희원이는 이미 죽음이 어떤 건지 잘 이해하고 있었다.
민창수 검사의 이야기가 나오자 다소 시무룩해졌지만, 내가 삼촌이라는 걸 인정하고 나서는 표정이 다시 밝아졌다.
나도 점차 긴장을 풀고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이야기는 저녁까지 이어져, 결국 같이 저녁밥을 먹고 한참을 다시 이야기 하다가 저녁이 좀 늦어지자 잠이 오는지 희원이는 나에게 기대고 잠에 들었다.
서주희가 조심스럽게 희원이를 이불에 눕히고 나에게 말했다.
“어때요?”
“음...”
“헤헤... 입은 웃고 있는 거 알아요?”
나는 서주희의 말에 손바닥으로 얼굴을 몇 차례 비비고 다시 표정관리를 했다.
서주희는 그 모습이 웃긴지 웃었지만, 희원이가 자고 있어서 손으로 입을 막으며 소리 나는 걸 막았다.
나는 헛기침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을 보니 한은이가 학교에 끝날 시간이었다.
나가지 않고 있다간 나를 찾느라 밤을 새버릴 것이다. 나는 마스크를 쓴 후 서주희에게 잠시 갔다온다는 말을 남기고 집을 나섰다.
길을 걷는데 나도 모르게 웃음을 짓는 일이 많아졌다. 그렇게 웃고 정색하고를 반복하다가 지하철에 도착했다.
고등학교는 10시에 끝나니 아직 30분정도 남았지만 나는 앉을 곳을 찾아 앉아서 이것저것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때, 속 주머니에 넣어둔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를 보니, 이 반장에게 온 전화였다. 나는 아무 생각없이 그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
--야! 너 지금 혹시 지하철 역에 있냐?
“예, 그런데요...?”
--당장 튀어! 경찰 출동 중이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나는 망설이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지금은 대체 어떻게 경찰이 내가 있는 곳을 알게 되었는지도 중요하지 않았다.
어느새 경찰 사이렌 소리가 텅 비어있는 지하철 안을 울리고 있었다. 지금은 지하철 밖으로 나가기보다는 차라리 지하철을 타는 게 안전할 것 같았다.
지하철이 언제 올지는 모르지만, 지금 나가서 잡히는 게 아마 시간상으로 훨씬 빨리 잡힐 것이다.
최악의 경우에는 지하철 레일을 달리는 것까지 생각을 했다. 비록 급하긴 했지만 주변의 눈이 있어서 최대한 여유 있게 걸었다.
괜히 사이렌에 신경 써서 초조해 하는 모습을 보이면 주변 사람들이 경찰에게 제보를 해서 내 위치가 쉽게 발각이 될 것이다.
다행히 사람이 많은 노선이라, 퇴근시간이 지났음에도 역에는 사람이 많았다. 나는 카드를 찍고 계단을 천천히 내려가서 지하철을 기다렸다.
사람들 틈에 끼어있으니 나를 찾는 시간은 꽤 걸릴 것이다. 곧 내려오는 계단 쪽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죄송합니다! 협조 부탁드립니다!”
제일 선두에서 돌진해 내려오는 형사는 과도하게 사람들을 밀쳐내며 내려오고 있었다.
나는 주변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할 정도의 속도로 최대한 끝으로 이동했다.
역시 경찰들은 한 사람 한 사람 대조를 하느라 시간이 걸렸고, 그 사이에 열차는 들어오고 있었다. 웅성거리는 무리에서 짜증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뭐야?”
“이래도 되는 겁니까?!”
사람들은 과도한 경찰의 반응에 짜증을 내기 시작했고, 나는 지하철 문이 열리는 대로 탑승을 했다. 곧 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젠장! 저는 지하철에 타 있겠습니다!”
그 경찰은 신경질적으로 고함을 쳤다. 이것도 생각하던 시나리오다. 지하철 문이 열리면 당연히 경찰 몇 명은 지하철 내부를 뒤질 것이다.
그 때문에 나는 문이 열리자마자 경찰들이 탄 곳의 반대편으로 이동을 했다. 사람이 많이 타긴 했어도 빽빽한 정도는 아니다.
마주치면 잡힐 것이다. 다음 역을 보니 순조롭게도 환승역이었다.
내 구역이 이 역임을 나는 하늘에 감사한 뒤, 마지막 칸에서 초조하게 내릴 차례를 기다렸다. 웅성거리는 소리도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상한데...”
이번 경찰의 움직임은 이상한 점이 많았다. 경찰은 아무리 위급한 상황이라도 확실하지 않으면 시민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혹시라도 민원이 들어오면 상당히 귀찮아질 문제였다.
그런데 이번엔 내가 이 역에 있는지 확실한 것도 아닐 텐데 꽤나 거칠게 밀어붙이는 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나는 계속 이상한 점을 느끼다가 문 열리는 소리에 반응하여 성급하게 내렸다.
이번 역에도 내리는 사람, 타는 사람이 많아 추격에 문제점이 많을 것이다.
나는 환승하기 위해서 침착하게 계단을 올랐다. 그때, 뒤에서 고함소리가 들렸다.
“저기 있다! 저놈이다!”
“칫...!”
멀리에서 어떻게 알아봤는지, 소리 나는 곳을 돌아보니 누군가 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는 얼굴이었다.
“오대수...!”
강력팀에 막내로 있던 오대수란 놈이었다. 멀리에서도 그 체격과 얼굴 크기는 알아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제야 이해가 좀 갈 것 같았다. 경찰이 생각보다 과잉반응을 하는 이유를. 아니, 과잉반응을 하는 놈은 오대수 저놈뿐일 것이다.
내가 서주희를 탈취하고 도망가는 바람에 감봉 같은 징계를 실컷 받았을 것이다. 아마 주변에서도 사표 내라고 눈치도 줬으리라 생각이 됐다.
“그렇게 잘해줬는데...!”
나는 배신감에 이를 아득바득 갈며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이미 환승해야겠다는 생각은 사라지고 없었다.
지금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경찰들을 따돌려야 했다. 일단 나는 발걸음이 가는 출구로 향했다.
계단을 정신없이 뛰어 올라가는데, 위에서 흥겨운 소리가 들렸다.
“저기다!!”
이 근방 지하철은 모두 점령했는지 위에서 경찰 둘이 뛰어내려오고 있었다. 나는 당혹감을 느끼며 뒤를 돌아보았다.
“잡아!!”
뒤에선 오대수란 놈이 한 손에 벌써 수갑을 덜렁덜렁 흔들며 뛰어오고 있었다.
“으윽...!”
다시 내려가기엔 위험요소가 너무 많다. 하지만 위에는 저 두 놈이 마지막 일 것이다.
나는 이판사판으로 위를 향해 달렸다. 두 형사가 신이나 나에게 몸을 날렸다. 그 순간 웃음이 절로 났다.
“신입이로구만... 순경인가...?”
나는 여유 있는 말을 남기고 아슬아슬한 순간에 몸을 확 옆으로 틀었다.
덕분에 내려오던 형사 두 명은 꼴사납게 계단에서 구르고 말았다. 나는 웃음을 거친 호흡으로 참아내고 출구로 빠져나왔다.
“멍청한 새끼들...!!”
뒤에선 짜증을 내는 오대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저 두 놈은 이번에 들어온 신입들 같았다.
그러니 오대수가 저렇게 큰 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한시름 놓긴 했지만 아직도 밖에선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고 있었다.
경찰들끼리는 무전기로 통신망이 연결되어 있으니, 내 옷차림으로 위치 파악은 순식간에 될것이다.
나는 차가 함부로 속도를 낼 수 없는 큰길가로 나섰다.
곧 뒤에선 자동차로 추격하기 껄끄러운지 경찰들이 뛰어오고 있었고, 나는 오대수의 욕을 퍼부으며 앞으로 뛰기만 했다.
골목도 없는 번화가라 따돌리기가 마땅치 않았다. 마구 달리다 보니 한강 다리 하나가 보였다.
체력엔 자신 있는지라 다리에서 체력으로 따돌릴 심산으로 다리를 향해 달렸다.
다리 입구에 들어섰을 때가 되어서야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차...!”
다리에 지나다니는 차가 있지 않았다. 가는 차는 물론이고, 오는 차도 없었다. 이건 분명 다리 전체를 막아버린 것이었다.
분명 반대편 입구엔 경찰차가 진입을 통제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입술을 깨물며 속주머니에 있는 권총을 더듬었다.
권총 모양이 내 손에 느껴졌다. 최악의 상황엔 총격전이 일어날 각오까지 해야했다.
어느 정도 건너왔는지 모르겠지만 역시 반대편에서 경찰 사이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내 뒤를 끈덕지게 쫓아오는 오대수 형사 무리를 바라보고 총을 꺼내들었다.
오대수는 깜짝 놀라며 그 자리에서 엎드리며 총을 꺼냈고, 옆에 있는 형사들도 오대수를 따라서 쭈뼛쭈뼛 엎드렸다.
“가까이 오지 마! 새끼들아!”
나는 엄폐물도 없이 뒤에 난간만을 둔 채로 좌우에서 다가오는 형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좌우에는 경찰 수십명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고, 뒤에는 한강이 흐르고 있었다. 총을 겨누고 있어도 손이 덜덜 떨리는 게 느껴졌다.
곧 경찰차도 한 무리가 와서 나를 포위했고 경찰들은 경찰차를 엄폐물로 삼고 나를 총으로 겨누었다.
그 중에는 물론 망할 오대수 놈도 보였다. 그리고 마지막에 나타난 차에서 이 반장이 내렸다. 이 반장도 총을 든 내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 것 같았다.
나는 계속해서 총을 휘두르며 경찰들이 다가오지 못하게 했다. 그렇게 대치상태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확성기로 오대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총을 버려라! 지금이라도 자수하면...!”
“닥쳐 이 새끼야! 너 같으면 하겠냐?!”
나는 경찰차의 문에 숨어서 말을 하는 오대수를 겨눴다.
저녁이라 경찰차에 있는 사이렌이 번쩍번쩍하는 광경과 시끄러운 소리, 내 목소리만 허공을 울리고 있었다.
몹시 시끄러운 상황이었지만 이상하게 집중이 잘되었다. 나는 침착하게 대화를 끌면서 상황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생각을 했다.
그리고 결심을 하고 오대수가 있는 곳을 쳐다보며 말했다.
“비무장으로 경찰 한명을 보내라! 그럼 대화에 응하겠다!”
나는 약간 어이없는 제안을 내세웠고, 오대수뿐만 아니라 주변 모든 경찰들도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경찰쪽에선 이야기가 바쁘게 오갔고, 나는 그 시간을 벌 수 있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그리고 곧 다시 확성기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받아들일 수 없다!”
“......”
당연히 안 될 건 알고 있었다. 나는 최악의 수단으로 강물에 뛰어들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 타이밍이었다. 그때 멀리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
고개를 돌려보니 한은이가 철저한 엄호속에서 겨우 보였다.
나는 갑자기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경찰들을 놓칠 뻔 했지만 정신을 가다듬고 주변에 집중했다. 그리고 한은이의 목소리는 계속 들렸다.
“오빠! 가벼운 죄래! 그냥 자수하고 죄값만 치르면 금방 끝나는 거래...! 조사에 따라 1년도 안걸릴 수도 있데! 오빠! 그냥 자수를...!”
이제야 이 말도 안되는 상황이 이해가 갔다. 나를 신고한 건 한은이였다.
아침에 내 이름이 써진 수배서를 보고 아마 자기 나름대로 최선의 길이다 생각을 해서 날 신고한 것 같았다.
나는 그 마음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었지만, 지금은 잡힐 수 없었다. 나는 입술을 깨물고 외쳤다.
“오대수!”
“말해라!”
“망할 돼지같은 새끼야! 막내놈이 이제 위치 좀 올라왔다고 까부는 것 같은데 왜, 선배되니까 좋냐? 돼지 새끼!”
오대수의 표정이 보기 좋게 변했다. 마치 똥, 그 이상을 삼킨 것 같은 표정이었다.
나는 이 상황에서 웃음이 나오려 했지만 참고 계속 말했다.
“쏠테면 쏴봐! 니가 원하던 게 그거 아니야? 쫄았냐?”
“......!”
오대수의 손은 금방이라도 방아쇠를 당길 듯 부들부들 떨렸다. 어둠 때문에 잘 보이진 않았지만 눈동자도 붉게 충혈된 것 같았다.
하지만 총을 쏘진 않을 것이다. 경찰은 건덕지가 없으면 절대 먼저 총을 쏘진 않는다. 나는 천천히 총을 위로 들었다.
“무슨짓이야!”
“음...”
한숨을 내쉰 나는 총 한발을 공중을 향해 쏘았다.
-탕!!
-탕!!
총성은 두발이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