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룸메이트 - (33화)

윙윙 |2013.05.27 12:58
조회 1,274 |추천 3

출처 ; 웃대(인생사프리님)

제가읽었던 이야기들중 재미나게 본 이야기입니다.

스크롤 압박이 있어요..^^

 

 

 

 

룸메이트 1화 ; http://pann.nate.com/b318390630

룸메이트 11화 ; http://pann.nate.com/b318393961

룸메이트 21화 ; http://pann.nate.com/b318396686

 

 

 

 

 

전날 푹 쉬었지만 아침에 일어나지 못했다. 일어나고 보니 이미 해는 떠있고 약속시간은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는 시계를 보고 벌떡 일어났다. 어젠 고기를 먹느라 상처부위를 보진 못했지만, 일어나자마자 화장실로 가서 붕대를 보니, 붕대는 깨끗한 걸로 바뀌어져 있었다.

 

 

나는 서주희가 세탁을 해 놓은 민창수의 양복으로 갈아입고 나갈 준비를 했다. 준비를 하는 내 모습을 보고 서주희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또 나가게요?”


“어제 말 했잖아. 약속 있다고.”


“그런다고 일어나자마자 나가요? 또 어제처럼 그 꼴로 오려고?”


“오늘은 그냥 사람만나는 거라 그러진 않을 거야.”


“절대 그러지 마요. 어제 나한테 무슨 짓 했는지 기억나요?”



서주희가 워낙 사납게 쏘아붙이자 나는 눈을 감고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다.

 

 

내가 한 일이라고는 집 앞까지 피를 질질 흘리며 와서 쓰러진 기억밖에 없었다. 내가 다시 눈을 뜨고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서주희를 바라보았다.

 

 

서주희는 기가차다는 탄식을 내 뱉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내가 아픈 사람 앞에 두고 속없다는 소리 들을까봐 가만히 있었는데요, 어제 문 열어줬더니 피투성이 손으로 내 얼굴을 비볐잖아요!”



서주희가 자신의 손으로 얼굴을 마구 비벼대며 이야기 하자 나는 머쓱해지고 말았다.

 

 

소리 내지 말아달라는 차원에서 입을 막은 건데, 예상치 못하게 서주희의 얼굴에 피칠을 하고 말았다.

 

 

나는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미안해. 내가 정신이 없었어.”


“됐어요. 오늘도 그러고 오기만 해봐요. 내가 얼굴에 피칠을 해버릴 테니까.”



서주희는 내가 바로 사과를 하자 더 이상 말하지 않고 희원이를 돌보러 갔다. 희원이는 한쪽 작은 책상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나는 어제 입었던 옷에서 지갑이나 권총의 소지품을 꺼내어 외투에 집어넣었다. 그 과정에서 권총을 보니 어제의 혈흔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나는 휴지에 물을 묻혀 피를 지워낸 후에 탄창을 살폈다.



“10발 뿐이군.”



어제 4발이나 쏘아댄 것 같았다. 사실 한은이를 구할 때 그것보다 훨씬 많이 쏜 것 같지만 막상 남은 총알이 10개밖에 없자 조금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권총을 외투 안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시원한 느낌을 줄 파랑색 넥타이를 매고 집을 나섰다.

 

 

서주희는 약간 토라져 있는지, 내가 나가든 말든 희원이를 보고 있었고 나도 별 신경 쓰지 않으며 밖으로 나왔다.

 

 

밖의 날씨는 우중충하긴 했지만, 비가 올 것 같진 않았다. 아직은 좀 이른 시간이라 나는 한껏 여유를 부리면서 약속장소에 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나는 칠복이 아저씨가 있는 지하철에 들렸다. 칠복이 아저씨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한손엔 삼각김밥을 들고 있었다.

 

 

나는 칠복이 아저씨에게 다가가 말했다.



“경기는 좋아요?”



내 말에 칠복이 아저씨가 날 올려다보더니 말없이 앉을 자리에 박스를 깔아주었다. 나는 싱글벙글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앉자마자 칠복이 아저씨가 말했다.



“팔은 괜찮냐?”


“물론이죠. 괜찮아요.”


“그래, 상처 치료한지 얼마 안됐으니 덧나지 않게 해라.”



칠복이 아저씨는 이미 여러 번 덧난 사실을 모르는 것 같았다. 나는 서주희가 비밀을 지켜주어 고맙게 생각했다.

 

 

하지만 칠복이 아저씨는 나를 물끄러미 보더니 말했다.



“온김에 어디 한번 상처 부위좀 보자.”


“예? 갑자기 왜요?”


“왜긴 왜야. 주치의가 환자를 주기적으로 진단하는 건데. 까봐.”



칠복이 아저씨가 나의 외투를 벗기며 말했다.

 

 

나는 웬만하면 보여주고 싶진 않았지만, 피도 많이 흘렸고 서주희가 제대로 치료를 했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고분고분 셔츠의 팔을 걷었다.

 

 

붕대는 좀 엉성하긴 했지만 꼼꼼하게 감겨 있었고, 칠복이 아저씨는 대견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소독도 했냐? 뭘 좀 아는 놈이군. 소독은 자주 해줄수록 좋다.”


“그렇긴 하죠.”


“어디 풀어봐.”


“예.”



붕대 내부의 상태가 어떤지는 나도 잘 모르기 때문에 내심 걱정을 하며 붕대를 풀었다.

 

 

붕대를 풀자 피가 약간 베어나와 있는 거즈가 눈에 띄었고 칠복이 아저씨의 표정도 썩 좋지 못했다.



“아직도 피가 나? 이거 상처가 깊은 모양인데?”



나는 칠복이 아저씨의 말에 굳이 대답을 하지 않고 거즈를 떼어냈다. 피가 굳어 딱지도 같이 떨어져 나가면서 굉장히 쓰렸지만 애써 괜찮은 척을 했다.

 

 

한차례 고통이 파도처럼 지나간 뒤에 칠복이 아저씨 표정을 살피니 무섭게 상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거 몇 번 덧난 흔적인데? 뭐야, 왜 말 안했어?”


“그냥 혼자 처치할 수 있는 수준이었어요. 그래서 굳이 말을 안했어요.”


“잠깐.”



칠복이 아저씨는 상처를 보다 말고 내 입술을 잡아당기며 살폈다. 나는 뜬금없는 고통에 엄살을 피우며 소리를 질렀다.

 

 

칠복이 아저씨는 한껏 잡아당긴 입술을 놓더니 말했다.



“피를 엄청 흘렸나본데? 입술 색이 시퍼런걸 보니.”


“좀 흘리긴 했었죠.”


“좀? 똑바로 말해. 얼마나 흘렸어?”



칠복이 아저씨가 꽤나 날카롭게 물어오자 나는 무서워서라도 똑바로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당당하게 말하기가 힘든 일이라 일부러 약간 뜸을 들이며 말했다.



“2시간 정도?”


“뭐?”



칠복이 아저씨는 내 대답을 듣고 한마디만 뱉고,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조용히 다시 거즈로 상처를 덮고, 붕대를 깔끔하게 감아주었다. 그 후에야 말했다.



“니 몸 걱정 좀 하고. 밥도 꼬박꼬박 먹어라. 헌혈같은 건 하지 말고.”



당연한 말이긴 했지만 칠복이 아저씨가 진지하게 말을 하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 후로는 칠복이 아저씨가 자꾸 가라는 눈치를 주는 바람에 쫓겨나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정오가 된 시각이라 아직 그 점원이 와 있지는 않을 것 같았다.

 

 

애초에 시간을 정확히 정해 두지 않고 점심을 먹자고 약속을 잡은 것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나는 혹시 몰라 먼저 편의점에 가 있기로 했다. 하지만 편의점 앞에 이미 점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소 여유롭게 걷던 나는 깜짝 놀라 편의점까지 뛰었다.

 

 

멀리서 보이는 점원이 천천히 오라는 손짓을 보냈지만, 이렇게 하는 척이라도 해야 조금이라도 호감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다소 원망하는 어투로 말했다.



“꽤나 빨리 오셨네요. 전 제가 좀 일찍 나온 거라고 생각했는데.”


“죄송해요. 시간을 정확히 몰라서 일찍 나오고 말았어요.”



나의 말투에 점원은 도리어 미안해하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나는 점원의 반응에 오히려 무안해졌다.

 

 

나는 어색한 분위기를 풀 겸 일단 이야기를 나누며 걷기로 했다.



“가게에서 일한지 얼마나 되셨나요?”



나는 질문을 내 뱉자마자 속으로 아차 했다. 전선기의 가게는 오픈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기껏해야 한달정도 밖에 안될것이다.

 

 

그걸 다 알고 있는데, 이런 질문을 해 봤자 였다. 하지만 점원은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고 나에게 말했다.



“정식으로 시작한지는 2주정도 됐어요. 그 전 2주동안은 교육을 받았어요.”


“2주 동안이요? 그렇게나 길게?”


“네. 여러 종류의 칼을 다루는 만큼 기본 지식이 필요한 일이거든요. 대신 페이가 센 편이에요.”


“그렇군요.”



간단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어색한 공기는 풀리는 것 같았다.

 

 

실제로 나를 만난 뒤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점원의 모습도 이제는 살짝살짝 웃으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더불어 약간 긴장상태였던 나도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점원의 옷차림이 눈에 들어왔다.



“머리를 풀으셨군요?”


“아, 네.”



가게에서는 단정하게 머리를 묶던 것과 달리 점원은 머리를 풀고 나왔다. 머리칼의 길이는 허리까지는 아니었지만 어깨는 훨씬 넘는 길이었다.

 

 

화장은 티가 나지 않을 정도였다. 옷차림을 보니 먼저 상의는 상아색의 여성스러운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고, 하의는 약간 짙은 갈색의 스커트였다.

 

 

핸드백은 검은 색의 심플한 디자인이 돋보였다. 항상 가게에서의 정장 스타일의 유니폼만 보다가 이렇게 사복을 보니 다른 사람 같았다.



“저기에요 제가 말했던 곳.”



점원이 가리킨 곳에는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만한 레스토랑이 있었다. 나는 들어가기 전에 지갑을 슬쩍 확인해보며 자금의 상태를 확인해 봤다.

 

 

형식이가 준 돈과 형님이 나눠준 돈이 있긴 했지만 모두 천금 같은 돈이었다. 레스토랑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한발 한발이 고역이었다.

 

 

겨우 웨이터가 안내 해준 자리에 앉고 메뉴판이 나왔다. 점원은 내 눈치를 보며 물었다.



“어떤 거 드시겠어요?”



나는 메뉴판의 적힌 가격을 보기도 싫고 이런 고급 레스토랑에 와본 적도 처음이라 첫 페이지를 보고 메뉴판을 닫아버렸다.

 

 

그리곤 표정을 숨기며 최대한 젠틀 하게 말했다.



“저한테 도움이 될 만한 요리를 시켜주세요. 예를 들자면 이런 요리에는 이런 칼이 쓰인다는 그런 거요.”


“알겠어요.”



점원은 미간을 찌푸리면서까지 신중하게 식사를 고르더니 웨이터를 불렀다.

 

 

웨이터는 점원과 처음 듣는 단어를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하더니 주문을 다 받고 갔다.

 

 

나는 내 앞에 놓인 물만 홀짝홀짝 마셨다. 주문을 마친 점원이 약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그런데 안색이 좀 안 좋으세요. 어디 불편하세요?”


“아닙니다. 어제 헌혈을 해서 그런 거 같아요.”



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차라리 헌혈을 2번 했다면 마음이 편할 것이다.

 

 

어제 사건 현장 사방에 내 피를 뿌려놨으니 그게 마음에 좀 걸렸다.

 

 

나 여기 있었다고 광고를 해놨으니 어떤 방식으로든 경찰 쪽에서 반응이 올 것이다.

 

 

심각한 생각을 하자 절로 표정이 굳는 것 같았다. 점원은 그런 내가 걱정이 되는지 말했다.



“그러셨군요. 일부러 헌혈까지 하시다니, 그런 생각하기 쉽지 않은데.”


“그러게 말입니다. 이렇게 몸에 안 좋을 줄 알았으면 적당히 좀 뺄걸 그랬나 봐요.”



웃으라고 한 말은 아니었는데, 의외로 점원은 활짝 웃으며 좋아했다. 나도 머쓱하게 따라 웃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 와중에 음식이 하나하나 나오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화제는 칼 종류로 넘어갔다.

 

 

나는 진심으로 배우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이야기를 들었고, 점원도 열심히 설명을 해주었다.

 

 

그리고 음식을 다 먹은 후에 후식이 나왔다. 나는 칼 이야기를 듣기위해 온 게 아니라 전선기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 온 것이었다.

 

 

나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근데 가게 사장님 말인데요.”


“사장님이요?”



전선기의 이야기가 나오자 점원은 약간 긴장하는 눈치였다. 예상 못한 바는 아니다.

 

 

전선기가 2주동안 직원들 교육을 시키면서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입막음 안했을리가 없다.

 

 

하지만 한은이 사건도 있고 나는 다소 과감하게 말했다. 지금은 가짜 전선기라도 잡아둬야 했다.



“사장님을 개인적으로 뵙고 싶은데, 혼자 있는 시간이라든지 사는 곳을 아십니까?”

 

 

 

 

 

내 질문에 점원은 크게 조금 당황한 모습이었다. 그리곤 잠시 생각을 하더니 말했다.



“죄송해요. 그건 사장님이 주의를 하신 사항이에요.”


“사장이? 왜요?”


“이유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냥 자신에 대해서는 함구하라고 하셨어요.”


“이상하다고 생각해 본 적 없어요?”


“이상하다기 보다는, 사생활을 들키기 싫어하는 사람이구나 했죠.”



하기야 자신에 대해서 말하지 말라는 게 그렇게 수상한 일은 아니었다. 가벼운 결벽증 정도로만 생각을 하면 의심하지 않고 지나갈 문제였다.

 

 

나는 생각대로 일이 풀리지 않자 일부로 조금 토라진 모습을 보였다.



“말하기 싫으시면 어쩔 수 없죠. 알겠습니다.”


“저기... 싫다기 보다는...”


“아뇨.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내가 말까지 끊으며 강경한 자세로 나오자 점원은 안절부절 못하기 시작했다.

 

 

입술이 들썩들썩 거리는 걸 보니 말하는 걸 고민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애매하게 정보를 얻고 싶진 않았다.

 

 

이런 식의 대답은 많은 중요한 요소를 숨기고 말할 가능성이 크다.

 

 

차라리 아예 마음을 돌려서 진실 된 정보를 얻고자 했다. 나는 말을 기다리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 드셨습니까? 일어나시죠.”



내가 벌떡 일어나자 의자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거북스럽게 레스토랑에 울렸다.

 

 

나는 계속 어찌할지 모르고 있는 점원을 내버려두고 계산을 하기 위해 카운터로 향했다.

 

 

카운터에는 일반 웨이터보다 약간 더 고급스러운 정장을 입고 있는 중년의 남성이 있었다.

 

 

계산서를 보니 식은땀이 흐를 지경이었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카드를 건넸다. 중년의 남자가 카드를 긁더니 말했다.



“서명해 주십쇼.”


“예.”



서명을 하는 손이 덜덜 떨렸다. 서명을 하고 있는 펜을 떼기 싫을 정도였다.

 

 

하지만 가차 없이 카드에서 돈은 빠져나갔고, 다시 내 지갑 속에 들어갔다. 뒤에서 다급한 하이힐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점원이 급한 걸음으로 오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무심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계산 다 했습니다. 나가시죠.”



점원은 부랴부랴 핸드백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돈을 세어보지도 않고 나에게 건넸다. 그 모습을 보고 난 피식 웃고 말았다.



“여기 제 몫이에요.”



내가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점원의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세어보지도 않고 꺼낸 지폐는 천 원짜리 몇 장뿐이었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그 정도 주실 바에는 안 받겠습니다. 6천원쯤 되나요?”



내 말에 점원은 자신의 손에 들린 천 원짜리를 보더니 무안한지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천 원짜리를 다시 집어넣고 만 원 몇 장을 집어 들려 했다. 나는 벌려진 점원의 지갑을 움켜잡으며 말했다.



“농담이니까 굳이 안내셔도 됩니다.”


“그래도 같이 먹은 건데요.”


“제가 먹자고 했으니 이번엔 제가 내겠습니다.”



마음속에선 돈을 받으라고 울부짖고 있었지만 애써 참으며 말했다. 밖으로 나선 우리는 한참동안 말을 하지 않고 걷기만 했다.

 

 

슬쩍슬쩍 점원을 보니 심각한 얼굴로 무언가를 계속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혹시나 화를 낼까 이제 그만하기로 했다.

 

 

그 순간 점원이 각오를 마친 듯 입을 열었다.



“이봐요.”


“죄송합니다.”


“예?”



내가 뜬금없는 말을 하자 막 쏘아붙이려던 점원이 의아한 표정으로 변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거침없이 입을 열었다.



“아깐 정말 죄송했어요. 생각해보니 제가 너무 속이 좁았네요.”


“갑자기 왜 사과를 하세요?”


“경은씨도 사정이 있을 텐데 제가 너무 제 입장만 생각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점원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나를 빤히 바라만 보았다.

 

 

내가 마침표를 찍듯이 고개를 숙여 사과를 하자 점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다시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요. 저야말로 대답해드리지 못해서 마음이 안 좋았어요.”



그 이후로는 별 문제없이 대화가 오갔다. 하지만 분명히 조금 더 가까워지긴 한 것 같았다.

 

 

나는 기왕 이렇게 되어 버린 거, 저녁까지 함께 먹을까 생각도 했지만 자금문제도 있고 더운 여름에 땀이라도 많이 흘렸다간, 상처가 도질 수도 있기 때문에 관두기로 했다.

 

 

어느 정도 걸었다고 생각되자 나는 말했다.



“집이 어디 쪽 이시죠?”


“가게 근처에 있는 빌라에 살아요.”


“혼자 사세요?”


“네, 대학교 졸업하고 독립했죠.”



먼 거리도 아니라 나는 점원을 데려다주기로 했다. 점원은 깜짝 놀라며 사양했지만 나는 억지로 그녀를 집에 데려다 주었다.

 

 

말한 그대로 점원이 사는 곳은 전선기의 가게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녀가 사는 라인 앞에 도착하자 들어가기 전에 나를 보고 말했다.



“감사해요. 이렇게 까지 안하셔도 되는데.”


“아닙니다. 제가 하고 싶어서 한 건데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오늘 덕분에 참고가 많이 됐습니다.”



내가 고개를 살짝 숙이며 감사를 표하자 그녀는 손을 저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저도 즐거웠어요.”



그녀가 다소 수줍게 이야기를 하자 나는 어색해 지려는 분위기를 너털웃음을 지으며 무마시켰다.

 

 

그러자 그녀도 따라 웃었고 우리는 잠깐 동안 아무 말 없이 웃었다. 그러다 난 웃음을 멈추고 말했다.



“들어가시죠. 들어가시는 거 보고 가겠습니다.”



내가 들어가라고 말을 했지만 그녀는 쭈뼛거리며 들어가는 걸 망설였다. 나는 왜 들어가지 않고 있는지 알 수 없어서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한참을 망설이던 그녀가 나에게 수줍게 말했다.



“다시 볼 수 있을까요?”


“다시?”



내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되묻자, 그녀는 당황해서 양손에 들고 있는 핸드백을 흔들며 다소 큰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얻어먹은 것도 있고! 제가 받은 건 꼭 갚아야 하는 성격이거든요!”



하지만 내가 계속 시무룩한 반응을 보이자 큰 목소리로 말하던 그녀가 조심스럽게 나에게 물었다.



“싫으신가요?”



나는 대답하지 않고 계속 미간의 주름에 힘을 주었다.

 

 

그에 따라 점원의 표정도 점점 우는 표정이 되었고 나는 그 상황을 충분히 즐기다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아뇨. 좋습니다. 제가 다시 연락드리도록 하죠.”



그녀의 우는 표정은 다시 환한 미소로 바뀌었고 나는 그녀를 돌려보내자마자 뒤를 돌아 인상을 찌푸렸다.

 

 

땀을 조금 흘렸는지 팔의 상처가 쓰리는 게 얼른 돌아가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얼른 시원한 지하철로 들어가 땀을 식혔다.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곳으로 가서 시원하게 바람을 쐬며 외투를 벗어 셔츠를 보니 아직은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나는 덥기도 하고 상태를 지속적으로 볼 겸해서 외투를 어깨에 걸고 이동을 했다. 더 이상 땀을 흘리지 않으니 상처 쓰림도 점차 멈췄다.

 

 

원룸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외투를 벗고 상처를 보았다. 붕대를 풀고 보아도 거즈에 피가 배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소독을 자주 해주는 게 좋다는 말에 소독을 하기 위해 구급상자를 가져왔다. 희원이는 낮잠을 자고 있었다.

 

 

내가 소독을 시작하자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던 서주희가 말했다.



“오늘은 웬일로 잘 왔네요?”


“내가 맨날 쫓기고 다니는 줄 아냐?”


“맨날은 아니죠. 오늘만 멀쩡하게 돌아왔으니까.”



이 말에 할 말이 없었다. 하긴 그동안은 나가기만 하면 피떡이 되어서 돌아왔으니 그걸 보는 입장에서는 밖으로 나가는 내가 불안하긴 할 것이다.

 

 

소독을 마치자 서주희가 팔에 붕대를 감아주었다. 매듭을 마무리 짓고 서주희가 말했다.



“또 나가요?”


“아니.”


“다행이네요.”



그날은 말한 것처럼 나가지 않았다. 저녁엔 희원이와 밥을 먹고 책을 읽어주는 등 놀아주었고, 서주희는 평소에 하는 집안일을 했다.

 

 

그러다 갑자기 생각이 난 게 있어서 전화기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잠시 평화에 취해서 내 상황을 잊어버린 것 같았다.

 

 

나는 일단 이 반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반장은 급한 상황이 아닌지, 한참 있다 전화를 받았다.



--어, 선후야.


“반장님. 한은이에게 언제쯤 가 볼 수 있을까요?”


--가고 싶으면 언제든지 괜찮지.


“내일 가 봐도 될까요?”


--그래. 내일 점심시간에 시간을 낼 테니 그때 보자.


“예”



한은이를 생각하자니 한숨이 다시 목구멍을 타고 올라왔다. 아직 혼수상태라면 빨리 깨어날수록 좋은데, 내일 상태를 봐야 알 것 같았다.

 

 

밖에서 조용히 이것저것 생각을 하며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모기 한 마리가 손등에 앉아있었다.

 

 

원래 담배를 피우고 있으면 벌레 같은 건 잘 접근을 하지 않는데, 이놈은 상당히 비위가 강한 놈 같았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때려잡으려다가 이미 모기의 배는 불룩해진데다가 괜히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 내버려두었다.

 

 

모기는 몇 초간 더 포식을 하고는 바늘을 뽑고 날아갔다. 배가 뚱뚱해져서 그런지 날아가는 속도가 상당히 느렸다.

 

 

나는 물린 자국을 손으로 몇 번 문지르고 남은 담배를 다 피웠다. 문득 헌혈을 하지 말라던 칠복이 아저씨의 말이 떠올랐다.



“이것도 헌혈이라면 헌혈인가?”



나는 담뱃재를 털어내며 피식 웃었다. 손등이 점점 간질거리며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부어오르는 부분을 꾹꾹 누르며 간지러움을 억제했다. 붉게 부어오른 부분이 하얗게 되었다가 다시 붉게 스르르 변한다.

 

 

나는 그 장난을 몇 번 더 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장롱을 뒤져 내일 한은이를 만날 때 입고 갈 옷을 정했다.

 

 

옷들이 다 검은색 정장뿐이라 고를 것도 없었지만, 거기에서도 오래되지 않고 비교적 깔끔한 옷을 골랐다.

 

 

옷을 골라놓고 보니 할 일이 없었다. 비록 잠은 쏟아지고 있었지만, 희원이가 잠들기 전까진 잠을 잘 수 없다는 철칙이 있었다.

 

 

나는 다리미를 들고 한쪽에서 내일 입을 옷을 다리기 시작했다. 내 모습을 본 서주희가 말했다.



“어? 제가 할게요.”


“아냐, 할 게 없어서 그래.”


“어이구, 할 게 없으면 희원이랑 좀 놀아주세요.”



비꼬는 듯한 말이었지만 나는 할말없이 머쓱해지고 말았다.

 

 

하지만 이미 다리미의 열은 달아올랐고, 나는 옛날 면접을 보기 전에 다림질을 하던 실력으로 양복을 다리기 시작했다.

 

 

양복이 먼지를 먹어서 그런지, 아니면 습기가 많은 요즘 날씨 때문에 그런지 모르겠지만, 양복은 풀을 먹인 듯 빳빳하게 잘 다려졌다.

 

 

다리미 밑에 누르스름한 얼룩이 신경쓰이긴 했지만, 다 다리고 나니 얼룩은 별 상관이 없었다.

 

 

나는 집에 있는 플라스틱 옷걸이로 한쪽에 잘 걸어놓은 뒤에 희원이에게 갔다.

 

 

희원이는 슬슬 잠이 오는지 눈 초점이 휑해져 있었고, 나는 한쪽에 희원이가 누울 이부자리를 깔아 두었다.

 

 

혹여나 딱딱한 바닥 때문에 아플까 싶어서 일부러 3겹을 겹쳐서 이불을 깔아주었다.

 

 

희원이와 같이 있던 서주희는 내가 이부자리를 다 펴자, 희원이를 안고 이불에 눕혔다.

 

 

나는 내가 잘 곳에 따로 이불을 깔았고, 잠시 목이 말라,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한 컵을 가득 채워 마셨다.

 

 

냉기는 목구멍으로 빨려 들어가 덥혀진 내장을 차갑게 식혀주었고, 나는 그에 걸맞은 탄성을 자아냈다.

 

 

그리고 뒤를 돌아 이불에 누우려는데, 서주희가 내 자리에 누워있었다. 나는 어이가 없어 말했다.



“뭐하는 거야?”


“네?”


“몰라서 물어? 내 자리잖아.”


“그런 게 어디 있어요? 눕는 사람이 임자지.”


“뭐?”



이해할 수 없는 서주희의 행동에 나는 기가차서 한마디 해주려고 했지만, 서주희는 이불을 덮으며 말했다.



“희원이랑 자요. 조카 좀 챙겨 봐요.”



말을 마치고 서주희는 더 이상 할 말 없다는 듯 눈을 감고 잠든 연기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희원이 이야기가 나오자 할 말을 잃고 허탈한 웃음만 짓고 말았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이불을 들고 희원이 옆에 깔았다. 그리고 현관 옆에 달린 스위치를 눌러 불을 껐다.

 

 

자리로 돌아오려는데, 갑자기 불을 끄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손을 앞으로 치켜들고 천천히 오는데, 서주희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나는 신경쓰지 않고 자리에 누웠는데 서주희의 짜증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일부러 그런 거죠!”


“뭘?”


“내 발 밟고 갔잖아요!”


“걸리던 게 네 발이었어? 미안해. 미안.”



서주희의 원성이 한참동안 들려왔지만, 일단 자리에 눕자 피로도 함께 쏟아지는 것 같았다.

 

 

이불에서 전해지는 기분 좋은 냉기가 온몸을 어루만져 주는 느낌이 아주 좋았다. 나는 기 기분을 만끽하며 간만에 기분 좋게 잠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습기가 많은 게 느껴졌다. 일어나 밖을 내다보니 먹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었다.

 

 

비가 오진 않았지만 금방이라도 빗방울이 떨어질 것 같았다. 서주희는 아직도 자고 있었고, 희원이는 말할 것도 없었다.

 

 

나는 최대한 소리를 안내며 조심스럽게 일어나, 내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씻기 위해 화장실로 갔다. 화장실 거울에 부스스한 내 모습이 비쳤다.

 

 

머리는 산발에 눈은 반쯤밖에 떠지지 않았지만, 혈색은 많이 좋아진 것 같았다.

 

 

서주희가 사다놓은 고기도 먹고 비싼 레스토랑에서 좋은 음식을 먹어서 피가 금방 생산이 된 것 같았다.

 

 

나는 개운함을 느끼며 간단하게 세면을 마치고 어제 잘 다려놓은 양복으로 갈아입었다.

 

 

습기와 땀에 절은 옷을 벗고 새 양복을 입자 산뜻함이 온몸을 감쌌다.

 

 

나는 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몸을 돌려보며 옷의 맵시를 확인했고, 결과는 꽤나 만족스러웠다.

 

 

마무리로 머리 모양을 다듬고 있는데, 뒤에서 서주희의 잠 덜깬 목소리가 들렸다.



“나가게요?”



뒤를 돌아보니 서주희가 산발이 된 긴 머리를 뒤로 넘기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잠시 돌아보다가 선반에 올려진 손거울을 서주희에게 던져주었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반찬거리를 꺼내어 밥 먹을 준비를 했다.

 

 

 서주희는 의아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다가 거울을 보더니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들어갔다.

 

 

곧 화장실에선 세찬 물소리가 났고, 내가 밥을 다 먹을 즈음해서야 서주희는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비벼 닦으며 나왔다.

 

 

내가 밥그릇을 설거지하고 있는데 서주희가 다시 물었다.



“어디 나가게요?”


“응. 벌려놓은 일이 있어서.”


“금방 와요?”


“그건 모르겠는데, 피투성이가 되진 않을 거야.”



나는 나가기 직전에 권총이나 담배등의 소지품을 확인하고 밖으로 나섰다.

 

 

구름에 아슬아슬하게 빗줄기가 걸쳐 있는 것처럼 날이 어두웠지만 나는 굳이 우산을 챙기지 않았다.

 

 

우산을 들고 다니면 한 손이 자유롭지 못한데, 나는 이미 오른손이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우산이 필요 없다는 생각이었다.

 

 

일단 비에 젖으면 바로 원룸으로 돌아올 거라는 생각이었다. 게다가 지하철에 있다가 이 반장에게 갈 생각이라 비가와도 상관은 없었다.

 

 

나는 핸드폰으로 시간을 한번 보고 전에 항상 참석했던 아침 모임 장소로 갔다.

 

 

일부러 정시에 도착해서 사람들은 다 모여 있었다. 그들은 날 보자마자 작은 환호를 질렀다.



“이게 얼마만이야?”


“그 양복은 뭐냐? 팔자 고친 거냐?”


“팔은 괜찮냐?”



그들의 열렬한 환호에 나는 뒤통수를 긁으며 어색하게 인사를 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되진 않았지만, 간만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보자 반가운건 당연한 일이었다.

 

 

형님도 꽤 즐거워 하셨지만 시간이 되자 다시 무게를 잡으며 회의를 진행했다.

 

 

회의가 끝나자마자 칠복이 아저씨와 형님이 나에게 왔다. 먼저 칠복이 아저씨가 내 상처부위를 곁눈질로 보며 말했다.



“무슨 일로 아침 모임까지 왔냐?”


“가끔은 얼굴을 내밀어야겠다고 생각했었거든요.”



내 말에 형님이 한숨을 푹 내쉬곤 말했다.



“마음가짐은 참 기특하다만, 넌 아직 환자에다가 쫓기는 몸이야.”


“그렇긴 합니다만, 아직은 활동에 지장 없어요. 해야할 일들도 산더미구요.”


“우리가 도울 일은 없냐?”



형님이 다소 조심스럽게 이야기 했다.

 

 

내가 총상을 당하고 온 이후로 아마 형님은 내가 먼저 이 말을 꺼내주길 바라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도움이 필요해지면 꼭 말씀 드리겠습니다.”


“마음 바뀌기 전에 말해라.”


“네!”



나는 우렁차게 대답을 하고 자기 구역으로 떠나는 사람들을 배웅했다.

 

 

모든 사람이 다 떠날 때 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를 보고, 칠복이 아저씨가 물었다.



“넌 안가냐?”


“전 잠깐 여기 있으려고요.”


“왜?”


“딱히 갈 곳도 없고, 생각 좀 정리하려고요.”


“그래?”



내 말을 듣고 칠복이 아저씨는 떠나려는 걸음을 붙들고, 다시 자리에 주저앉았다. 나는 의아해서 물었다.



“아저씨는 안가요?”


“너한테 들을 게 있다.”


“뭘요?”



사람들은 이미 다 떠났고, 이제 모임 자리엔 형님과 칠복이 아저씨 그리고 나뿐이었다.

 

 

형님과 칠복이 아저씨는 심각한 표정으로 내 앞에 앉았고, 나는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어서 멍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분위기가 좀 가라앉자, 형님이 말을 꺼냈다.



“너 또 무슨 일 있었지?”

 

 

 

 

 

“예?”


“칠복이 한테 들었어. 상처가 심각하게 도졌었다고. 무슨 일이야?”



형님의 직설적인 추궁에 나는 변명할 생각을 접었다. 이 사람들한테는 거짓말을 해 봤자 금방 드러나니 거짓말을 할 수도 없었다.

 

 

사실 한은이에게 있었던 일을 형님에게 말하지 않은 건, 형님이나 칠복이 아저씨에게 위해가 생길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미 어느 정도 눈치를 챈 이상 변명해봤자 득 될게 없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솔직하게 한은이에 대한 일을 말해주었다. 내 말을 들은 형님의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화를 내며 말했다.



“어떻게 그런 새끼가 다 있지? 어이가 없네.”


“지금까지 당한 일들로 따지면 아직 멀었다고 봐요. 얼른 죽여야겠죠.”



형님은 직접적인 어투로 화를 내긴 했지만 나를 도와주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나에게 부담이 될 거란 걸 알고 계신 것 같았다.

 

 

칠복이 아저씨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을 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대화는 거의 나와 형님이 하였다.



“그래서, 점심 시간 때 가본다고?”


“예. 상태가 어떤지 좀 알고, 경찰의 동태도 파악을 해둬야겠어요.”


“그럼 그동안 여기 있겠네?”


“그러려구요.”



내 대답에 형님은 잠시 말을 하지 않고 곰곰이 생각을 했다. 그리곤 뭔가 결정을 하고는 나에게 말했다.



“알겠다. 나도 너 가기 전까진 같이 있어 주마.”


“그러셔도 되겠어요?”


“괜찮아. 반나절쯤은.”



꽤나 시원스럽게 대답을 하던 형님은 칠복이 아저씨를 돌아보더니 어떻게 할거냐는 눈치를 주었다.

 

 

하지만 칠복이 아저씨는 별로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저도 있겠습니다. 선후 상처도 한번 봐야겠어요.”



칠복이 아저씨는 내 상처보고 소독을 해 주었고, 형님과는 그동안 있었던 일을 다시 한 번 곱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시 처음부터 이야기를 하자니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가야할 때가 됐다는 것을 이 반장에게 전화가 오고 나서야 알았다.

 

 

내 전화가 울리자마자 형님과 칠복이 아저씨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가 편하게 전화를 받을 수 있게 밥을 먹으러 돌아갔다.

 

 

나는 그런 둘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뒤에 전화를 받았다.



--어, 선후야. 준비는 다 됐냐?


“예. GG은행으로 나갈까요?”


--그래. 거기로 와라.



나는 전화를 끊고 GG은행으로 향했다. 요즘엔 특히 많이 가본 장소라 사람들의 시선을 거의 받지 않고 이동하는데 어려움도 없었다.

 

 

GG은행에 도착한 나는 그늘이 있는 은행 계단의 한쪽에 앉아서 이 반장의 차를 기다렸다.

 

 

가끔 은행 내부의 보안원이 나의 행동을 살피고 가긴 했지만, 그때마다 셔츠를 펄럭이며 더위에 짜증난다는 표정을 지어주면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다.

 

 

이 반장은 오자마자 크락션을 울리며 나를 불렀고, 나는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차에 올랐다.

 

 

차 내부는 이미 에어컨이 틀어져 있어서 타자마자 콧노래가 나게 했다. 이 반장이 그런 내 모습을 보고 말했다.



“얼씨구? 기분 좋나보네?”


“더웠는데, 차 안은 시원하니까요.”



이 반장은 나의 대답에 헛웃음을 치고 차를 몰기 시작했다.

 

 

이 반장은 운전을 하면서 혼자 미소를 짓는 등, 알 수 없는 행동을 했다. 내가 궁금해서 물었다.



“저보다 이 반장님이 더 기분 좋은 것 같은데요.”


“그러냐? 아니, 생각해보니까 웃겨서 말이야.”


“뭐가요?”


“너 총에 맞아서 강물에 빠졌을 때는 정말 꼼짝없이 죽었다고 생각했었거든. 경찰 쪽에서도 그렇게 알고 있었고. 니가 한은이네 학교에 피칠을 해놓기 전까지 말이야.”


“그게 좀 마음에 걸리긴 했어요.”


“나는 그때 너한테 전화 왔을 때, 왜 당연한 듯 받았는지 모르겠네.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그렇군요. 왜 그러셨어요?”


“너무 익숙해져서 그랬나봐.”



이 반장은 시원하게 웃었다. 이 반장의 얼굴을 보니 정말 걱정이 하나도 없는 표정이었다.

 

 

마음의 짐을 다 내려놓은 것 같았다. 이 반장은 어느 정도 웃더니 나에게 물었다.



“총 맞은 데는 괜찮냐? 총 맞긴 맞았지?”


“당연하죠. 오대수 그놈이 사격 솜씨하나는 인정해 줘야 한다니까요.”


“난 거기에서 도망친 네놈을 더 인정해 주고 싶은데?”



이 반장의 장난 섞인 말에 나도 크게 웃고 말았다. 병원은 얼마 걸리지 않아 도착했고, 나는 마스크를 착용하려 했지만, 이 반장은 그럴 필요 없다고 했다.

 

 

덕분에 자유롭게 병원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 반장을 따라 입원실 앞까지 오자, 한은이의 이름이 적힌 이름표가 보였다.

 

 

그 이름표만 봤을 뿐인데, 아까의 좋았던 기분은 온데간데없었다.

 

 

이 반장이 조심스럽게 입원실의 문을 열었고, 안에서 풍겨오는 병원 특유의 약품냄새가 느껴지자,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입원실 내부에는 한은이의 어머니가 우리에게 인사를 하며 반겨주었고, 얼굴은 예전에 뵈었을 때에 비해서 훨씬 초췌해져 있었다.

 

 

한은이 어머니는 나를 보자마자 나의 손을 잡으며 연신 고맙다는 말을 했다.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아닙니다. 저는 그냥...”


“고마워요. 정말로 이 은혜는 꼭 갚을게요. 고마워요. 형사님.”



나는 울음이 울컥 올라왔지만, 꾸욱 누르며 한은이 어머니를 위로해드렸다.

 

 

한은이는 별다른 상처 없이 침대에 누워있었는데, 마치 잠을 자는 것처럼 차분하게 일정한 호흡을 유지하고 있었다.

 

 

나는 잠시 한은이를 지켜보다가 이 반장에게 상태를 물었다.



“지금 어떤 상태에요?”


“저번에 말한 것처럼, 네 덕분에 생명은 구했지만 저산소 공급으로 뇌에 손상이 있는 상태야.”


“언제 깨어날지 그런 건 모르나요?”


“장담할 수 없지.”



흔들면 금방이라도 기지개를 켜며 깨어날 것 같은 한은이의 모습이었다. 나는 속이 답답해져서 이 반장에게 말했다.



“커피라도 한잔 드실래요?”


“그러지.”



병원건물 전체는 금연건물이라 담배를 태울순 없었고, 우리는 1층에서 간단하게 자판기 커피를 뽑아먹었다.

 

 

여름이라 그런지 커피를 쥔 손이 유독 더 뜨거웠다. 나는 커피를 입술에만 살짝 적셔서 먹기 괜찮은 온도인지 확인을 했다.

 

 

아직은 좀 더 식어야 할 것 같았다. 내가 좀 더 식히기 위해 커피에 바람을 불고 있는데, 이 반장의 몸이 깜짝 놀란 것처럼 들썩 거리는 게 느껴졌다.

 

 

이 반장을 쳐다보니 뜨거운 커피를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반장은 무안한지 헛기침을 가볍게 한번 하더니 입을 열었다.



“아까 오대수에 대한 이야기가 잠깐 나와서 말이야.”


“예.”


“오대수한테 너에게 있었던 일들 이야기 해 줬다.”


“뭐하러 그런 이야기를 하셨어요?”



나는 조금은 원망스럽게 이 반장을 쳐다보았다. 이 일은 여러 사람이 안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어쩌면 오대수같은 성격에 나를 돕겠다고 나서다가 전선기의 표적이 되어버리는 수가 있었다.

 

 

이 반장은 도리어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널 돕는 사람이 많으면 좋은 거 아니냐?”


“꼭 그렇지만은 않죠. 그래서 반응이 어떻던가요?”


“처음엔 꽤나 충격을 받더군. 자신이 쏜 총에 다리 밑으로 떨어졌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갖기도 하고.”


“그럼 지금은 다르단 말 인가요?”


“그래. 저번 사건을 통해서 니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그 짐을 조금 덜어놓는 것 같았지.”


“그 정도로 끝나면 다행이군요.”



나는 진심을 담아서 대답을 했다. 오대수가 쓸데없는 일에 신경 쓰지 않고 이정도로 끝났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내 말에 이 반장은 조금 의아하단 표정을 짓고 있었고, 나는 어느 정도 식혀진 커피를 마셨다.

 

 

단맛이 다 가라앉았는지 첫 맛은 꽤나 썼다. 이 반장은 어느새 다 마셨는지 컵을 구깃구깃 구기며 말했다.



“어쨌든 너도 오대수에 대한 안 좋은 감정 있으면 내려놔. 서로서로 좋게 가야지.”


“아뇨, 저는 그날의 대수한테 감사하고 있어요. 대수가 적당한 곳에 총알을 맞춰줘서 다리로 떨어질 수 있었거든요.”



나는 웃으며 솔직하게 말했다. 하지만 이 반장은 내가 오대수를 비꼬는 줄 알고 쓴웃음을 지었다.

 

 

나는 커피 남은 것을 다 먹어버렸다. 컵 아래에 설탕이 깔린 게 다 녹지 못한 것 같았다. 나는 이 반장처럼 컵을 구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일어서자 이 반장도 나를 따라 일어났다. 우리는 한은이 어머니에게 인사를 드리고 돌아가기로 했다.

 

 

병실에 들어서니 한은이 어머니가 아까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 반장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희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네. 바쁘신데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박 형사님도 정말 감사드려요.”



한은이의 어머니가 허리를 굽혀 나에게 감사를 표하자 나는 손을 저으며 한은이 어머니를 만류했다.



“아니에요. 더 빨리 못 구해서 한스럽습니다. 그리고 형사도 이제 아니니 그런 호칭은 쓰지 말아주세요.”


“아니요, 저희 가족에게는 형사님 맞아요.”



나는 가슴이 저릿저릿한 느낌을 받으며 병실에서 나왔다.

 

 

이 반장은 말없이 차를 몰았고 나는 가만히 생각을 하다가 큰 결심을 하고 이 반장에게 말했다.



“반장님.”


“어.”


“돈 좀 빌려주십쇼.”


“뭐?”



내 말을 듣자마자 순간적으로 차가 휘청했다. 이 반장의 표정도 순간 일그러지는 게 꽤나 예상 밖의 문제였나 보다.

 

 

이 반장은 애써 침착성을 유지하며 말했다.



“갑자기 돈은 왜?”


“수입이 끊겼어요. 전선기를 잡는데 돈이 필요할 것 같아서요.”


“니가 나에게 그런 말까지 하다니, 형편을 알만하다.”



이 반장은 씁쓸하게 웃으며 한손으로 운전을 하며 주머니에서 힘겹게 지갑을 꺼낸 뒤 나에게 던져 주었다.

 

 

하지만 지갑을 열어보니 오천 원짜리가 몇 장 보일 뿐, 큰돈은 있지 않았다.

 

 

내가 인상을 찌푸리며 뭐라고 하려 하는데 이 반장이 먼저 말을 했다.



“신용카드 꺼내가라.”


“신용카드요?”


“많이 나오면 바로 끊어 버릴 거야.”



나는 이 반장을 말없이 쳐다보다가 신용카드를 꺼내어 내 지갑 안에 넣었다.

 

 

거리가 얼마 되지 않는 만큼 은행에 금방 도착을 했다. 나는 문을 열고 머뭇거리며 말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허튼 일엔 쓰지 않을게요."


"허튼 일에 써도 되니까 얼른 일이나 마무리 짓고 돌아와."



나는 씨익 웃고 차 문을 닫았다. 살짝 닫았는데도 그 소리가 그렇게 흥겨울 수 없었다.

 

 

나는 바로 원룸에 돌아갈까 하다가 전화기를 꺼냈다.

 

 

 

아직 점심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김경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냥 가만히 전화를 걸다간 갑자기 비가 쏟아질 것 같아서 발걸음은 빠르게 지하철 쪽으로 향했다.

 

 

몇 차례 내귀에 통화음을 쏘아대던 전화는 곧 김경은의 목소리로 바뀌었다. 그녀는 약간 당황한 듯한 목소리였다.



--여보세요?


"접니다. 어?"


--왜요?


"그러고 보니 제 이름을 안 알려줬네요. 제 이름 궁금하지 않으세요?"



내 이름을 알려주지 않았다는 건 나도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그녀의 이름을 알고 있으니 그녀도 당연히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궁금했어요. 근데 제 이름은 바로 아셨는데 물어보기가 좀 그랬어요."


"그렇군요. 점심 드셨어요?"


--지금 막 포장 뜯고 먹으려고요.


"포장?"


--예. 저희는 점심때 도시락을 시켜서 먹거든요.


"누구랑 같이 있어요?"


--아뇨. 혼자...


"그럼 그 도시락 그대로 들고 나오시죠. 같이 먹게.


--네?


"끊습니다."



나는 대답할 겨를을 주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전선기의 가게 근처로 가는 동안 그녀에게 전화가 한차례 왔지만, 일부러 받지 않았다.

 

 

가게 근처로 가자 제복 차림의 그녀가 도시락을 든 채 안절부절 못하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나를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이보세요! 저 이러다가..."



이번에도 나는 이야기를 듣지 않고 그녀의 팔을 잡고 한쪽으로 끌었다.

 

 

전선기의 가게 앞에서 시간을 끌다가 전선기에게 노출되면 그 순간 끝장이다.

 

 

그녀는 알 수 없는 감탄사만 내뱉으며 내 손에 끌려왔다. 나는 처음으로 보이는 코너를 돌고 근처에 보이는 편의점으로 들어왔다.

 

 

편의점에 들어오자마자 그녀가 내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저 이러다 사장님한테 걸리면 바로 잘려요."


"왜요? 점심시간이잖아요."


"그러긴 한데, 다들 안에서 점심을 먹어요. 곧 사장님이 점심 드시러 나가는데 항상 그 시간에 직원들을 둘러보신단 말이에요."


“그래요?”



나는 편의점에서 도시락 세트를 하나 사서 전자레인지에 돌리며 대답을 했다.

 

 

그녀는 새침한 얼굴로 도시락을 들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고, 내 도시락이 다 덥혀지자 나는 웃으며 말했다.



“이 근처 아파트에 바람이 잘 드는 정자가 있어요. 거기에서 드실래요?”


“내 말 못 들었어요?”


“일단 가서 이야기 합시다.”



내가 실실 웃으며 이야기를 하자 굳어있던 그녀의 표정도 점차 풀렸다.

 

 

나는 말한 대로 근처 아파트에 있는 정자에서 도시락 포장을 뜯었다. 그녀도 나를 흘끗 보고 밥 한 젓가락을 입에 넣고 말했다.



“잘리면 어떡해요?”


“책임지죠 뭐.”



내 말에 그녀는 마치 밥 먹다가 머리칼이 도시락에서 나온것 처럼 흠칫하였다. 하지만 나는 지금 그녀의 반응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최대한 밥을 흡입하며 다음으로 할 행동을 생각했다. 방금 전선기가 밥을 먹으러 간다고 했었다.

 

 

나는 얼른 밥을 먹고 전선기에게 접촉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때에 따라서는 전선기를 사살할 마음도 가지고 있다.

 

 

나는 얼른 밥을 먹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그녀는 갑작스러운 나의 행동에 토끼눈이 되어서 나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걸 신경 쓸 겨를도 없이 그녀를 잡아끌고 가게 앞으로 갔다.

 

 

그리고 한참동안 정신을 못 차리는 그녀에게 가볍게 한마디를 해줬다.


“전 박선후라고 합니다.”

 

 

 

 

 

“박선후 씨...?”



나는 그녀를 향해 달콤하게 웃어 보이고 자리를 떠났다. 아마 근처에 전선기가 타고 다니는 차가 있을 것이다.

 

 

나는 최대한 몸을 숨겨서 주변을 물색했다. 하지만 노력한 것과는 반대로, 손쉽게 전선기의 차량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번에 보았던 하얀색 SUV가 보란 듯이 세워져 있었다. 하지만 귀찮은 일이 있었다.



“돈도 많나보군. 개인 운전기사까지?”



전선기의 차 운전석에는 전선기가 아닌 다른 사람이 타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차 안에 숨어있기도 힘들다.

 

 

하지만 일단 나는 주변을 배회하며 전선기가 나오길 기다렸다. 몇 분 지나지 않아서 경은 씨의 말대로 전선기가 흥얼거리며 가게에서 나왔다.

 

 

하지만 진짜 전선기는 아니었고, 일단은 가짜였다. 가짜는 나오자마자 당연하다는 듯 자신의 차의 조수석에 올라탔다.

 

 

타자마자 운전석의 사내와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무슨 내용인지는 알 수 없었다.

 

 

웃으며 이야기를 하는 걸로 보아 심각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았다.

 

 

곧 차는 천천히 출발했고, 골목길에 있는 주정차들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덕분에 속도를 낼 수가 없었다.



“참나, 주정차들이 고맙긴 처음이군.”



형사시절엔 그놈의 주정차들 때문에 범인을 놓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고, 순찰을 하는데도 어려움이 따랐다.

 

 

마음 같아선 다 견인해 버리고 싶었지만 차량이 너무 많아 늘 골칫거리였다.

 

 

하지만 그 주정차들이 지금은 나를 돕고 있었다. 나는 웃음이 올라오는 걸 꾸욱 참고 전선기 차의 속도에 맞춰서 이동을 했다.

 

 

전선기의 차가 멈춘 곳은 보쌈을 전문으로 팔고 있는 한 식당이었다. 골목에 있지만 꽤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들어가고 어느 정도 있다가 그들을 따라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종업원이 붙었다.



“몇 분이세요?”


“동행이 있습니다. 방금 들어온 남자 둘이었는데요. 어디 있죠?”


“2층으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그 전에 화장실을 좀 가고 싶은데요.”


“화장실은 1층에 있습니다.”



나는 전선기에게 가지 않고 화장실로 왔다. 화장실의 분위기도 화사하게 잘 꾸며져 있었다.

 

 

나는 화장실에 들어가자마자 변기 칸에 들어가 문을 잠갔다. 전선기가 화장실에 올지 모르겠지만, 일단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이것뿐이었다.

 

 

나는 화장실 변기에 앉아서 조용히 전선기가 오기를 기다렸다.

 

 

전선기의 구두를 확인해 두었으니 누군가 들어오면 아래의 틈을 통해서 확인하면 된다.

 

 

그리고 곧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좁디좁은 화장실 칸에서 몸을 구기며 확인을 했지만, 전선기는 아니었다.

 

 

그 후로도 몇 차례 같은 일이 있긴 했지만, 전선기가 들어오는 일은 없었다.

 

 

시간이 꽤 흘렀고, 나는 포기하고 화장실을 나가기로 했다.

 

 

상실감에 화장실 문을 천천히 여는데 뭔가 문에 부딪혔다. 나는 고개를 숙이며 사과의 말을 건넸다.



“죄송합니다.”


“너는?”



되돌아온 말은 절대 잊을 수 없는 목소리였다.

 

 

나는 고개를 슬쩍 들어 상대의 얼굴을 확인했고, 확인이 되자마자 팔을 꺾으며 화장실 안으로 넘어뜨렸다.

 

 

가짜는 진흙이 벽에 들러붙는 소리를 내며 화장실 타일바닥에 넘어졌다..

 

 

나는 가짜의 팔을 꺾은 채 바닥에 붙어있는 머리 뒤통수에 총을 겨눴다.

 

 

가짜는 어디 한 곳 부러진 것처럼 이를 악물고 신음소리를 냈다. 나는 전선기가 허튼짓을 하기 전에 경고했다.



“내가 시키는 대로 안하면, 머리에 숨구멍이 하나 더 생길거야.”



내 말에 가짜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대답은 조그맣게 해라. 같이 온 운전수는 어딨냐?”


“먼, 먼저 나갔어요! 걔는 운전수가 아니라 가게 직원이에요! 저는 계약 건이 있어서 계산을 하고 화장실에 들렸어요!”



전선기가 나온 시간으로 봐서는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나는 계속 총을 겨눈 채 말했다.



“지금부터 밖으로 나갈 거야. 만약에 이상한 행동을 하면 그 자리에서 땅바닥에 눕게 될테니까. 알아서 해라.”


“네, 넵!”



나는 총을 가짜의 등에 겨눈 채 가짜를 일으켜 세웠고, 외투를 벗어 권총을 가렸다.

 

 

누가 낌새를 알아차리지 않는다면 이상하게 보진 않을 것이다. 가짜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화장실을 나와서 한걸음씩 옮겼다.

 

 

실내의 날씨는 에어컨 덕분에 가을이었지만, 내 등엔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가짜의 표정이 너무 딱딱하게 굳어서 마음에 안 들었지만 그에겐 아마 이게 최고로 노력하는 중 일 것이다.

 

 

겨우 식당을 벗어난 나는 가짜를 운전석에 태우고 나는 뒷좌석에서 목 받침의 틈을 통해서 권총을 가짜의 목에 겨누었다.

 

 

차가운 물체가 몸에 닫자, 가짜는 고드름 맺힌 것 마냥 몸이 뻣뻣해졌다.

 

 

그 상태에서 손을 뻗어 가짜에게 있는 핸드폰이나 지갑 등의 소지품을 꺼냈다. 그리고 나는 가짜에게 짧게 말했다.



“운전해.”


“어... 어디로요?”


“방향은 별다른 말 없으면 직진해.”



가짜는 극도의 긴장으로 인해 운전대를 잡은 손이 드릴을 잡은 것처럼 떨렸다.

 

 

내가 방향을 지시한 곳은 민창수가 전선기에게 총을 맞았던 곳이었다.

 

 

사람 두 명이 한순간에 죽어버린 그 건물은 저번에 왔을 때보다 더욱 황폐해져 있었다.

 

 

차에서 내린 나는 계속 가짜를 총으로 겨누며 말했다.



“5층까지 올라가.”


“대체 여기서 뭘 하려구요?”


“잔말 말고 올라가.”



내가 권총으로 가짜의 등을 툭툭 두드리자 가짜는 몸은 바짝 긴장을 하며 내 말을 따랐다. 내부로 들어오니, 저번에 왔을 때보다 더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철 계단을 한발씩 딛을 때마다 철제물이 기지개를 켰다. 그렇게 5층으로 올라온 나는 가짜의 등을 발로 차 버렸다.

 

 

가짜는 먼지 때문에 회색빛이 되어버린 바닥에 뒹굴었다. 가짜가 미끄러진 바닥은 수십 마리의 지렁이가 기어갔던 흔적이 남았다.

 

 

나는 바닥에 납작하게 엎드려서 신음소리를 내는 전선기의 머리를 밟았고 살짝 비틀어주었다.

 

 

왁스와 스프레이로 고정되어 있던 가짜의 머리모양이 거미줄처럼 떡지고 있었다. 전선기가 고통을 참기 힘든지 소리쳤다.



“왜 이러세요? 제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몰라서 물어? 너 진짜는 어딨어?”


“진짜라뇨?”


“진짜 전선기 말이야!”



나는 짓누르고 있는 발에 힘을 주었다. 힘이 들어가는 세기에 따라서 가짜의 신음소리는 볼륨을 높여갔고 나는 잠깐 다시 볼륨을 낮췄다.

 

 

곧 전선기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때 거짓 진술한 죄값은 맞았잖아요! 그 이후로 아무런 잘못도 안했어요!”


“잘못? 잘못한게 지금 생겼어. 진짜 전선기가 어디 있는지 말 안하는 거야.”


“진짜고 가짜고, 제가 전선기예요!”



나는 엎드려 있는 전선기의 한쪽 팔을 뒤로 꺾어서 뒤틀어버렸다.

 

 

가짜는 그 반응속도에 맞춰서 비명을 질렀고, 나는 나머지 한쪽 팔도 여지없이 비틀어 버렸다.

 

 

그리고 가짜의 비명소리를 들으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가짜가 눈물 콧물을 쏟으며 부르짖었다.



“진짜... 진짜 몰라.”


“알았어. 알았어.”



나는 담배를 입에 물고 가짜를 발로 밀어서 눕혔다.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팔이 이상한 각도로 휘어져 있는 가짜의 모습이 드러났다.

 

 

나는 권총을 가짜의 얼굴에 겨누었다.



“잠, 잠깐!”


“모른다며?”


“모르는 걸 나보고 어떡하라고!”



오만상을 쓰고 있는 가짜의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방아쇠를 당겼고, 5층을 때리는 듯한 화약소리가 들렸다.

 

 

가짜는 멍한 표정으로 총구멍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오른쪽 귀는 찢어진 만두피처럼 모양이 일그러져 있었고, 피가 흘렀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여유 있게 웃어주었다.



“이제 말할래?”



그 순간 멀리에서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말하는 걸 멈추고 무슨 소리인지 집중했다.



“사이렌 소리?”



이건 분명 경찰차가 오는 소리였다. 나는 얼른 창문을 열었다.

 

 

아직 날이 밝아 사이렌 불빛이 번쩍하는 건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는 서둘러 방을 나서서 철제계단으로 나가보았다.



“아차!”



올라오는 동안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전혀 눈치 채질 못했다. 계단을 올라오는 여기저기에서는 CCTV가 날카롭게 눈을 빛내고 있었다.

 

 

이런 걸 간과하다니, 어설펐다. 확실히 인질극이 일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았고, 이런 장치는 경찰 쪽에선 기본에 해당하는 일이다.

 

 

아마 내가 올라오는 걸 보고 바로 출동했을 것이다. 나는 다시 가짜에게 돌아왔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문득 가짜를 보자 가슴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가짜의 심장 부위에 총을 겨누었다.



“살려줘.”



멍하던 가짜의 입에서 침을 뱉듯,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대로 방아쇠를 당기려던 나는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가짜는 죄가 없다. 그저 세뇌당하고 이용당했을 뿐이다. 그런 이유로 죽다니 불쌍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흔들며 정신을 다잡았다. 지금 이놈을 죽이면 전선기가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러면 나에게 살인죄는 씌워지겠지만 전선기와 금방 다시 접촉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가짜의 심장을 향해 방아쇠를 두 번 당겼다. 한껏 긴장되어 있던 가짜의 몸은 축 늘어졌고, 방광이 풀렸는지 아랫도리가 축축해졌다.

 

 

전선기는 죽고서도 눈을 부릅뜬 채로 죽었지만, 나는 애써 그의 시선을 무시하고 서둘러 건물을 빠져나왔다.

 

 

밖에 세워둔 SUV는 시동이 걸려서 제자리에 서있었고 나는 얼른 차를 타고 근처를 빠져나가려 했다. 이미 사이렌 소리는 많이 가까워져 있었다.



“벌써 붙었군.”



건물 근처는 빠져나왔지만, 사이렌 소리는 멀어지지 않았다. 근처에서 계속 추격당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속도를 조금 내서 경찰차를 따돌려 보려고 했다. 가끔 보이던 단속 카메라가 걸리긴 했지만, 나에게 벌금딱지를 보낼 순 없을 것이다.

 

 

문득 전화기를 꺼내서 슬쩍 보니 이 반장에게 전화가 몇 통 와있었다. 역시 경찰의 목표는 나였다.

 

 

내가 속도를 내기 시작하자 경찰이 눈치를 챘는지 점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귀찮게!”



경찰들은 몇 번의 추격을 해봐서 그런지 상당히 똑똑하게 나를 쫓고 있었다.

 

 

최소의 차량만 뒤에서 따라오고 있었고, 아마 나머지는 옆길에서 튀어나오던지 이미 퇴로를 막고 있을 것이다.

 

 

그 순간, 옆 골목에서 경찰차 두 세대가 튀어나와 내 차를 향해 돌진했다.

 

 

경찰차들은 꽤나 용감하게 나에게 부딪혀 왔고 나는 핸들을 확 꺾어서 아슬아슬하게 살짝 스치는 정도로 끝날 수 있었다.

 

 

하지만 상황이 완전히 끝난 게 아니다. 조금 더 올라가니 이미 경찰차들이 한 줄로 늘어서서 도로를 막고 있었다.



“한 줄로 뭘 어쩌겠다고!”



경찰차 한줄 정도는 돌파할 수 있었다. 나는 속도를 올려서 틈이 제일 넓은 곳으로 차를 부딪쳤다.

 

 

한참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었던 경찰들은 당황하며 안전한 방향으로 몸을 피했다.

 

 

육중한 SUV의 무게 탓인지 경찰차들은 쉽게 문을 열었고,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한 고비를 넘기긴 했지만 금방 다시 쫓아올 것이다. 나는 급하게 방향을 틀어서 외길 골목으로 들어갔다.

 

 

백미러를 보니 뒤쫓는 차량은 없었다. 나는 안도하며 골목을 누비다가 차를 둘 곳을 찾기 위해 적당한 곳에서 큰길로 나왔다.

 

 

그때 뭔가 튕기는 소리가 들리며 차가 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차가 한쪽으로 기운 채 달리는 그런 느낌이었다.

 

 

뒤를 확인해 보니 덤프트럭 한 대가 맹렬한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창문 밖으로 삐져나온 권총을 든 손을 보고 나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전선기? 저 새끼가 어떻게 알고?”



의문 드는 점이 많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여유가 없었다. 저렇게 거대한 몸집의 차를 가지고 총까지 마구 쏴대는 놈이 적어도 경찰들 보다는 훨씬 무서웠다.

 

 

차가 한쪽으로 기울었다는 이야기는 아마 타이어 바람이 빠졌다는 것이다.

 

 

핸들도 자꾸만 한쪽으로 돌아가려 했고, 얼마 안가서 휠까지 가버리면 움직일 수 없다.

 

 

속도도 함부로 낼 수 없는 상황에서 사태의 심각성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덤프는 어디서 난거야?”



곧 한쪽 바퀴에서 드르륵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더 이상 이 차론 달릴 수 없었다.

 

 

나는 한쪽에 차를 세우고 절망을 온몸으로 느끼며 핸들에서 손을 놓고 이제 다가오고 있을 전선기를 기다렸다.

 

 

곧 살짝 내려진 창문 틈에서 권총의 장전소리가 매정하게 들렸고 나는 천천히 옆을 돌아봤다. 하지만 돌아보는 순간 믿을 수 없었다.



“오대수? 왜 네가?”


“너는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다. 손 머리로 올리고 차에서 내려.”



오대수는 차가운 표정으로 나에게 총을 겨누고 있었고, 나는 시키는 대로 차 문을 열고 손을 머리로 올린 채 차에서 내렸다.

 

 

오대수는 내 손을 뒤로 내리고 수갑을 채우며 조용히 속삭였다.



“수갑 열쇠는 오른쪽 주머니에 넣어 두었습니다.”


“뭐?”


내가 되물었지만 오대수는 다시 소리를 높이며 나에게 말했다.



“따라와, 차에 타라.”



오대수는 나를 경찰차에 밀어 넣었고, 나는 차에 타기 전에 살짝 고개를 내밀어 주변을 살폈다.

 

 

덤프트럭은 보이지도 않았고, 내 차는 총을 꽤나 맞았는지 뒤에 구멍이 많이 뚫려 있었다.

 

 

아무래도 전선기의 권총엔 소음기가 달려있었나 보다. 차에 오르자 오대수가 차를 운전하였다.

 

 

하지만 분명 경찰청 방향도 아니었고 무전기에서는 나의 행방을 묻는 무전들로 가득했다. 나는 의아해 하며 물었다.



“어디로 가는거야?”


“안전한 곳에서 내려드리겠습니다. 일부러 문을 안 닫았으니 발로 세게 차면 열릴겁니다.”




오대수의 말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오대수는 골목 한쪽을 돌자마자 차를 멈추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차 문을 발로 차서 밖으로 빠져나왔다.

 

 

내린 주변에는 여기저기 틈도 많고 숨을만한 곳도 많았다.

 

 

나는 내리자마자 문을 닫으며 한쪽 구석에 몸을 숨겼고, 오대수는 그대로 차를 출발했다.

 

 

곧바로 큰길이 나오기 때문에 누가 봐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나는 몸을 굴려서 열쇠를 빼내고 낑낑거리며 수갑을 풀었다.

 

 

수갑은 혹시 몰라 주머니에 잘 넣어두었다. 그리고 오대수에게 조금이나마 감사를 표현하기 위해 고개를 슬쩍 빼내고 큰길로 나가고 있는 오대수의 차를 보았다.



“고맙다.”



오대수는 여유 있게 차를 돌렸다. 그 순간 아까 보았던 덤프트럭이 속도를 줄이지도 않고 경찰차를 세게 부딪쳤다.



“오대수!”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경찰차는 덤프트럭에 몇 미터를 밀려서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택시가 있는 곳으로 뛰어갈까 하다가 이를 악물며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지금 내가 저 현장에 가봤자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아마 있다면 전선기에게 죽거나 경찰에게 잡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나는 반대방향을 향해서 미친 듯 뛰었다. 얼마가지 않아서 폐차장에 있어야 자연스러울 것 같은 전선기의 흰색 SUV가 보였다.

 

 

나는 그냥 지나치려다가 빠르게 차에 들려서 전선기의 지갑을 뒤졌다.



“꽤나 많군.”



전선기의 지갑에는 오만원짜리가 꽤 들어있었다. 뭉텅이로 빼내긴 했지만 족히 50만원은 될 것 같았다.

 

 

아마도 계약 때문에 충분히 챙겨둔 것 같았다. 나는 혹여나 누군가 볼까 얼른 골목으로 향했다.

 

 

그리고 지하철을 찾았다. 생판 처음 보는 동네였지만, 버스 정류장을 따라가자 금방 지하철역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지하철을 타고 멍한 상태로 형님이 있는 역으로 갔다. 가는 동안 전화가 걸려왔다.

 

 

핸드폰을 꺼내보니, 이 반장에게 이미 몇 통이 와 있었다. 나는 침을 삼키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너 뭐하고 돌아다녀?



나는 별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아직 날이 저물지도 않았는데 너무 많은 일이 터졌다.

 

 

내가 아무말도 하지 않자, 이 반장은 답답한지 한숨을 뱉고 차분히 말을 했다.



--됐고. 지금 상황 알려줄게. 전선기는 니가 죽였고, 오대수는 널 쫓다가 죽었어. 도망치면 외국으로 도망쳐라.


“그래도 전선기는 죽은 거죠?”


--뭐?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대답해 주세요. 죽었죠? 그렇죠?



내가 집요하게 묻자 이 반장은 고함을 치려다가 꾸욱 참았다. 성질을 누르는 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그래. 죽었다. 우리 구역 관할이 아니긴 하지만, 죽었다고 확실히 보고가 올라갔어. 그리고 니가 죽였다는 것도.



그나마 나를 안도하게 만든 건 가짜가 죽었다는 소식이었다. 나는 그만 다리가 풀려 지하철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숨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사람을 죽였다.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이 현실로 다가왔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었다. 진짜 전선기를 죽이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이 더 희생될지 몰랐다. 나는 겨우 성대 근육을 움직이며 말했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뭐?


“아직 한명 더 남았어요.”


--너 임마, 정신 차려!



이 반장이 더 이상 참지 못했는지 고함을 버럭 질렀다. 수화기를 굳이 귀에 대지 않아도 들릴 만큼 쩌렁쩌렁 주변이 울렸다.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오히려 전화기를 귀에 더욱 붙이며 이 반장의 말을 들었다.



--내가 언제까지 널 보호하지는 못해! 아니, 오히려 지금 상황에서는 당장이라도 니 위치 추적해서 널 잡아야 정상이야!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시간을 주세요. 이 일이 끝나면 제가 자수하겠습니다.”


--미친놈! 니 알아서 해!



이 반장은 화를 내며 전화를 끊었다. 나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끊어진 전화기를 붙잡고 한참을 멍하게 있었다.

 

 

도무지 움직일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겨우 움직일 수 있게 된 나는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빠른 걸음으로 형님이 있는 곳으로 갔다.

 

 

형님은 항상 있는 자리에 고개를 푹 숙인채 구걸을 하고 있었고, 나는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형님!”



형님은 고개를 살짝 들어 나를 쳐다보았다. 전혀 놀라거나 당황하는 기색이 없었다.

 

 

이런일이 언젠가 올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그 표정에 힘을 얻고, 굶주린 늑대처럼 울부짖으며 말했다.



“도와주십쇼!”



형님은 내 어깨를 잡고 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일어나라. 우리가 널 돕는 건 당연한 일이야.”



형님의 눈빛이 모든 걸 이야기해 주고 있었다. 형님은 일단은 나를 원룸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그리고 좀 있다가 있을 저녁 모임에 오라는 말을 했다. 나는 형님의 말대로 일단 원룸으로 돌아왔다.

 

 

원룸에 있던 서주희가 들어온 나를 보고 말을 하려다가, 내 표정을 보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오늘은 일찍 들어 왔네요?”


“다시 나가봐야 돼.”


“밥은 먹었어요?”


“응.”



나는 불필요한 말은 하지 않고 외투를 벗어서 걸어 놓은 뒤, 한쪽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그리고 있는 희원이에게 다가갔다.

 

 

나는 수양을 하듯 미소를 지으며 희원이와 놀아주려 했지만, 이내 그만두고 말았다. 도저히 이런 상황을 즐길 기분이 아니었다.

 

 

뭔가 초조했고, 마음이 급했다. 나는 희원이와 노는 걸 관두고 밖으로 나와서 담배를 꺼냈다.

 

 

담배를 피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지만,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담배를 반쯤 태웠을 때, 누군가에게서 전화가 왔다. 핸드폰을 보니 김경은 이었다.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전화를 밝게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저예요. 잘 들어가셨는지 궁금해서요.


“저야 잘 들어갔죠. 이제 일 끝나셨나 봐요?


--끝난 건 아닌데, 궁금해서 전화했어요.


“그렇군요.”


--무슨 일 있으세요? 목소리가 좀 안 좋으신 것 같아요.



아무리 숨기려 해도 밖으로 태가 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보다. 나는 속내를 들키자 살짝 웃으며 솔직하게 말했다.



“무슨 일이 있긴 합니다. 숨기려 했는데 들켜버렸군요.”


--기분 나쁘셨나요? 정말 죄송해요.


“아닙니다. 덕분에 기분이 좀 나아졌습니다.


--정말 다행이에요.



빈말이 아니라 실제로도 속이 조금 안정되는 것 같았다.

 

 

처음엔 담배 때문에 속이 풀린 건가 싶었는데, 전화를 받기 전까지 분명 답답했었다.

 

 

나는 좀더 그녀와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곧 그녀가 조금 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감하러 가야겠어요. 이만 끊을게요.


“잠깐만요.”


--네?


“일이 끝나고 잠깐 볼 수 있을까요?”


--그럼요. 끝나고 제가 연락할게요.


“알겠습니다.”



나는 전화를 끊고, 피던 담배를 마저 다 피웠다. 답답하던 속이 많이 풀려서 그런지, 담배의 끝맛이 참 좋았다.

 

 

나는 담배꽁초를 담장 밖으로 던져버리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내 눈치를 슬슬 보고 있던 서주희가 내 풀린 표정을 봤는지, 나에게 잔소리를 했다.



“박 형사님, 이제 담배 안피면 안돼요?”


“담배를? 왜?”


“냄새도 나고, 무엇보다 희원이가 있잖아요.”



서주희의 말에 그림을 그리던 희원이가 슥 돌아보더니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맞아. 냄새나.”



서주희에게 뭐라고 쏘아 붙이려던 나는 희원이의 한마디에 주머니에 있던 담뱃갑을 구겨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위안이 됐던 건, 담뱃갑에 남은 담배가 3개비라는 점이었다.

 

 

하지만 저번에 대량으로 사재기해 놓은 담배가 많다는 점이 다시 나를 씁쓸하게 만들었다.

 

 

나는 희원이와 좀 더 놀다가, 모임 시간이 되자 외투를 입었다. 서주희가 내 모습을 보고 불평하며 말했다.



“또 나가요?”


“아까 말 했잖아.”


“밥이라도 좀 먹고 나가지. 희원이랑.”


“나도 그러고 싶은데, 저녁 모임이라 안돼.”



서주희가 또 다시 희원이를 들먹이자 난처해졌다. 하지만 오히려 희원이는 내 구두를 챙겨주는 등 내 편을 들어주었다.

 

 

나는 희원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밖으로 나섰다. 막상 외투까지 입고 나서니 공기가 달라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물론 날이 저물어서 그런 탓일지도 모르겠지만, 주변의 공기가 살짝 차갑게 가라앉은 게 느껴졌다.

 

 

나는 온몸으로 이질감을 만끽하며 모임 장소로 갔다. 장소에는 이미 사람들이 꽤 많이 있었다.

 

 

그들은 평소답지 않게 심각한 얼굴로 웅성거리고 있었다. 칠복이 아저씨는 내가 도착하자 손을 흔들며 날 반겨주었다.

 

 

시간이 되자 형님이 저녁밥을 배분하고 말을 시작했다.



“먹으면서 들어봐.”



형님은 나에게 있었던 자세한 일은 말하지 않았다.

 

 

애초에 형님과 칠복이 아저씨만 나에 관한 사정을 깊게 알고 있고, 나머지는 내가 화재로 누나를 잃었던 일만 조금 알고 있었다.

 

 

형님은 수박 겉핥기식으로 사정을 말한 뒤에 그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형님은 먼저 전선기의 가게를 망치려고 했다.

 

 

가게가 망가지면 허점을 노출할 수 있다는 계산인 것 같았다. 형님은 몇 사람들에게 전선기의 가게 앞에서 은근히 영업방해를 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유통업계에 인맥이 있는 사람에게는 가게에 대해 안 좋은 소문을 퍼뜨려 계약을 망치게 만들었다.

 

 

나는 매끄러운 일처리가 놀라워 그들의 대화에 끼지도 못한 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모임이 끝나고 일사분란하게 서로의 역할을 나눈 뒤 헤어졌다.

 

 

나는 끝나고 남아서 형님과 칠복이 아저씨의 이야기를 좀 더 듣기로 했다. 먼저 형님이 나에게 말했다.



“우리가 하는 일은 멍석을 까는 것뿐이야. 마무리는 네가 지어야 돼.”


“예. 그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칠복이 아저씨는 계속 내 팔이 신경 쓰이는지, 계속 내 팔을 지켜보다가 물었다.




“팔은 괜찮냐?”



“네. 딱지도 잘 앉았고 이제 회복만 하면 돼요.”



“다행이다. 그 지경으로 곪았는데 회복이 빠르네.”




당분간은 전선기에 대해서 내가 할 일은 없었다. 다만, 형님에게 김경은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자 계속 접촉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무엇보다 아무 의심 없이 전선기를 최전방에서 관찰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나는 형님과 대화를 하는 내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을 하였다.

 

 

대화를 충분히 나눈 후 형님과 칠복이 아저씨도 각자 구역으로 떠났다.

 

 

나는 전화를 기다리기 위해 모임 장소에 좀 더 남아 있었다. 의자에 앉아 휘파람을 불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이제 끝났어요.



“생각보다 늦게 끝났네요?”



--죄송해요. 곤란한 손님이 있어서 수습하느라 시간이 걸렸어요.



“뭐, 됐습니다. 아까 점심 먹었던 곳 기억하세요?”



--네.



“거기서 뵙겠습니다.”

추천수3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