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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인에게 나쁜 선입견 갖지말아주세요.

미용인 |2013.06.17 02:46
조회 821 |추천 0
절대 결혼하면 안되는여자직업군1~3위 : 네이트판 - http://m.pann.nate.com/talk/pann/318545633&currMenu=talker&page=


남편 안들어오고, 아들안자고 찡찡거릴땐,
그렇게 졸리더니... 남편들어와서 자고, 아들도 잠들었는데, 난 왜 잠이 달아난거지?하면서
잠안와서 폰 만지며,
뉴스도 보고, 쇼핑도하고, 판을 보는데!!
결혼하면 안되는 여자직업군에
미용사...가... ?하면서 글을 쓰게되었습니다.
저의 카카오스토리...에 올린글인데 다른분들도..
단한분이라도 읽어주셨으면..하는마음으로 글올렵봅니다.
좋은시간되세요^^



카카오스토리에 올린글

왜 사람들은 미용사를 이렇게 보는것일까.
어느직업이고, 사람 나름이지 왜 통틀어서
이직업을 갖은사람은 이렇다 저렇다 평가를 하는것일까.

나는 중3때 학교마치고 5시에검도학원갔다가,
7시에 미용학원에 가서 9시까지 미용공부를했다.
그렇게 고1때까지 미용학원다녀서
필기 3번에 합격하고 실기는 2번에 합격했다.
이땐 미용실친구들이랑 놀기도 좋아서, 집중을 안한 덕분에 미용기능사 자격증은 좀 늦게땃지만,
미용배우면서 못하던 기술을 해내면,
성취감과 희열을 느끼며, 이 매력에 빠져 열심히
다녔었다.
고3때 미용대학을 진학하기위해
그 대학에서 개최하는 미용대회를 참석하게되었다.
미용자격증이 있었기때문에 수시1차에 합격되었지만,
그 미용대회에서 1등하면 내가 2년동안 장학금으로
학교를 다닐수 있었기에
자신만만하게 퍼머넌트로 3위까지 거뜬하다며,
서울 잠실 체육관에서 대회에 참석하게 되었지만,
짜고치는 고스톱이라며, 상받을 사람은 벌써 다 정해져 상패가있다는...
심사위원과 참가자들의 비리를 알게 되었고.
난 그자리에 주저앉아 억울해고 분해서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내가 꼭 능력있는 유명한 미용인으로 성공해서,
이런 드러운 비리 대회는 결코 싹을잘라놓을거라며...
다짐을 하고 내려와서
이론의 배움인 대학을 포기하고,
실기의 배움인 실전인 미용실을 생각하게 된다.
미용학원 원장님의 권유로
원장님이 차리시는 미용실에 스텝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고3때 수능을 마친뒤로 4교시 후, 하교를 였다.
친구들은 스티커 사진이니, 노래방이니,
놀러다니면서 초중고때의 공부만하던 스트레스를 풀고자
마음껏 놀러다닐때
난 친구들과 인사하고, 버스타고 미용실에 와서
교복을 벗고, 까만바지에 하얀남방을 입고 9시까지 일을했다.

그렇게 나는 한 미용실에 고3부터 22살까지
일주일에 1번 쉬며,
12시간 근무에 월급40만원을 받았다.
그러다 올려준게 45만원 , 그러다 올려준게 50만원
그러다 올려준게 55만원,

그렇게 남들보다 돈도 못벌어도
나는 기술직이니까..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나는 돈을 벌려고 일하는게 아니라.
미용을 배우러 미용실을 다니는것이다.
근데 배우면서 돈도 많는 행복한 미용인이다.
라고 체면을 걸고 아침9시~저녁9시까지 열심히 일했다.

어느날,
원장님의 권유로
한국국제미용대회를 참가하게되었다.
나의 변수정 프로필에 남기고 싶을만큼 욕심이 난 대회였다.
이번 대회는 주최하는곳이 믿을만한 큰 대회라,
그전의 상처를 치유하고자
미용실 다니면서 틈날때마다 마네킹을 붙잡고,
연습을 하였다. 손이 불어서 쭈글거리는 내 손을
그렇게 이쁠수가 없었다.
그렇게 연습을 꾸준히하여, 대회에 참석하여,
창작퍼머넌트 부분으로 대상을 받게되었다.
대회를 마치고 원주로 돌아오려고
지하철은 타서 일하는엄마에게 전화해서
엄마 나 대상탔어..이 한마디가 얼마나 목이 메이던지..
그전에 고등학교때 비리대회에서 상처받은것을
치유하는받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햄볶으며, 디자이너가 될 날을 기다리며
다시 평범한 미용일을 하는데..
아무리해도 손님을 주지않고,
디자이너로 안만들어주고,
처음과 똑같은 스텝으로 있는것이 얼마나 괴롭고,
힘들었는지...
그리고 그 원장님 밑에서 얼마나 미용일이 지져워 졌는지..

22살에 참다참다 못해
마지막으로 받은 월급60 만원을 갖고
내 많은 짐들을 들고 나왔다.

나오자마자 하늘을 봤다.
아침까지도 같은 하늘이였는데
그만두는날 오후 하늘은 달라보였다.
참.. 허무했다..

내가 고3때부터 22살까지 미용생활하면서
월급 40~60 만원 받고 12시간 근무하며,
디자이너도 못되고,
그흔한 중상위도 못되니..
정떨어졌다며, 다신 미용 안한다고 했었는데..

그리고는 마음에도 없는 휴게소일과, 사무실 일과,
공장을 다니면서 방황하였지만,
계속 마음한켠엔
'미용디자이너' 이 6글자가 남아있었다.

그러던 중...
나의 꿈을 꼭 이루고 말겠노라...
다른거 다집어치우고, 이번만은 디자이너 되겠노라.
마음을 굳게 먹고 24살에 다시미용실에 입사.
정말 열심히 했다.
원장님께 미용실키를 받아서
영업이 마친 후에도 교육받았던것들을 연습하고,
미용실 쉬는날에는 집에서 마네킹과 싸우며,
정신없게 미용에 탄력받고 있을때..

7년동안 만나던 소중한 인연에게도
미용에 집중할거라며... 이별을 선포하고,
정말 같은 스텝동생들 에게 시기질투를 받을
정도로 열심히 했다.

그러던 중
나를 좋게 바주신 디자이너 쌤의 소개로,
지금의 남편을 만나 행복하게 살고 있지만
나는 아직까지 미용의 끈을 못놓고 있다.
식구들 컷트, 퍼머를 하며 머리를 만지고 나면
나는 색다른 기운을 받고는 한다.
하지만, 나는 입으로 다신미용을 안하고 싶다고
말을한다.
왜그러는걸까? 이중인격자인가?
디자이너가 꼭 되고 싶다 는 마음과
이제 미용을 안할것이다 라는 마음이 공존하는
이유는 아직까지 나도 모르겠다.
여튼 그렇다.
나에게 있어서는 꿈이라는 단어에
늘 미용디자이너를 생각하며, 그리는 꿈인데
그렇게 안좋은 직업으로 1위로 있는것을보고
여러생각을 하게되었다.

이 세상의 선입견때문에 내 신랑도 내 전공때문에.
어디가서 와이프 직업 얘기를 못하지않았을까..
라는 마음아픈 생각을 해본다.
난 대단하고 자랑스러운 미용사인데..
이글을 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진 모르겠지만,
조금이나마 미용인들의 마음을 알아주고,
좋은 선입견으로 바라봐 주었으면 하는 마음을 갖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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