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29살 직장녀입니다.
글이 좀 길어 질것 같은데... 꼭 끝까지 읽어주시고 조언 부탁드립니다.
혹시 호더라고 들어보셨나요?
집안 가득 발 디딜 틈 없이 쓸모없는 물건들로 옹벽을 쌓아 놓고 살아가는
저장성강박장애를 가진 사람을 뜻하는 용어입니다.
저도 얼마전에 SBS스페셜 '호더스'편을 보고 나서야 우리 아버지가 호더이고...
그동안 왜 그런 행동들을 보였는지,
그리고 그런 행동들이 일종의 강박장애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혹시나 우리 아버지에 대한 고민을 해결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그 sbs스페셜을 본방 사수하고 열심히 보았습니다만,
아버지가 강박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게 된 것 뿐,
그 이외에는 도움이 되는 것이 없었습니다.
음, 우선.. 저희 집 상황부터 말씀드릴게요...
호더인 아버지 때문에 저희 집은 점점 발딛을 틈이 없어지고 있습니다.
우선 집으로 들어가는 입구부터 여기 저기서 아버지가 주어오신 고철들로 가득합니다.
방으로 들어가기까지 쌓여있는 온갖 잡동사니를 보면 가슴부터 답답해옵니다.
저희 집은 반지하와 1층으로 이루어져있는데요,
반 지하에 있던 2개의 방은 고물들의 창고로 변한지 오래입니다.
그나마 남아있던 1층의 큰 방은 겨우 저희 다섯식구가 누울 수 있을 정도에요.
방 한 가운데에는 작동하지 않는 커다란 선텐기계가 자리잡고 있구요..
여기저기에는 쓰지도 않는 구식 컴퓨터들, TV모니터들, 좌식 식탁들이 쌓여있습니다.
그 곳에서 어떻게 생활했냐구요?
사실은, 집이 하나 더 있어요.
저희 집이 엄청 시골이어서 중학교가 주변에 없거든요.
중학교는 읍내로 나가야 했어요.
그래서 제 동생이 중학교에 올라가고, 제가 고등학생이 된 뒤로
저희 자매는 읍내에서 조그만한 방 2개짜리 주공임대아파트에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는 정말 좋았어요..
이상한 집에서 탈 출 할 수 있을 뿐더러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제 방을 가질 수 있었거든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저는 집에서 아주 먼 곳으로 대학을 갔습니다.
저는 아버지와 멀리 떨어지는게 소원이었는데 그 소원이 이루어졌고
정말 행복한 대학생활을 보냈습니다.
멀리 떨어져서 생활하면 집이 그러워지기 마련이고...
함께 객지 생활을 하던 대학 친구들은 집에 자주 내려가곤 했지만,
저는 방학 때 잠깐, 명절에 가는 정도 였습니다.
사실 저는 집에 가는 것이 싫었어요.
집에 가도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 없었거든요..
제가 대학생활을 하는 동안 읍내에 있던..
그나마 사람사는 집 같던 그 곳 마저 창고로 변해갔습니다.
방 하나는 아예 잡동사니들로 가득찼고,
거실은 두 사람이 겨우 누울 수 있을 정도..
남은 한 방도 세 사람이 누울 수 있을까하는 정도였습니다.
오랜만에 집에 내려가면 저는 부엌에서 쪼그려 자거나..
남동생 두명의 발 아래에서 겨우 끼어서 자야했지요.
대충 저희 집 상황이 그려지시나요?
이젠 저희 아버지 성격에 대해 말씀 드릴게요...
저희 아버지 엄청 고지식하시고, 다혈질이세요.
저희 아버지는 늘 화내시며 말씀하시죠.
그리고 더욱 답답한 것은 주변 사람들의 말- 특히 가족들의 말은 잘 안들으세요.
고집이 엄청나시죠.
집좀 치우고 살자, 창피하다.. 이렇게 어떻게 사냐...
아무리 말씀 드려도 전혀 미동도 안하세요.
조그마한 물건이라도 몰래 버리면 정말 난리납니다.
그러면서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엄청 호의적이시고 친절하시고
여기저기 막 다 퍼주시고 그래요...
그런데 가족들에게는 전혀 반대지요.
저희는 아버지와는 대화다운 대화를 나눌 수가 없어요.
매번 아버지의 일방적인 통보, 화냄, 호통으로 끝납니다.
얼마전에
SBS스페셜에서 호더에 대해 내온다고 해서
엄마께 당장 전화드렸어요. 꼭 아버지와 같이보라고..!
그 걸 보시고 나면 아버지도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달라지지 않을까하구요.
그런데 아버지는 자신과는 다른 이야기라면서
자기는 꼭 필요한 물건들만 가져다 놓는 거래요.
그러면서 볼 필요 없다며 TV를 꺼버리셨다네요.
'안녕하세요'에 고민 사연을 써볼까도 잠깐 생각했지만...
방송을 통해 널리 알려지는 것도 싫고...
집 문제를 확실히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라서
그 생각은 접었어요..
저희야 이제는 멀리 떨어져 살기 때문에 상관없지만,
그 집에 함께 있는 엄마가 걱정이에요.
남동생이 아버지와 멀어지고 있는 것도 고민...
마음에 안식처인 가족들이 그리워서 고향에 내려가면
편히 쉴 수 없는 것도 고민....
이런 고민은 늘 있어왔지만, 이렇게 고민을 올리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결혼문제 때문이에요.
2년 사귄 남자친구를 아버지는 '조건'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반대하세요.
만나주지 않으시죠.
남자친구가 집으로 인사가고 싶다고 하는데... 저는 집으로는 데리고 가고 싶지 않아요.
집으로 가도 편히 앉아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도 없어요.
남자친구에게 아버지에 대해서 이야기했었지만,
남자친구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열악하거든요...ㅠ.ㅠ
또 남자친구네 부모님이 이런 저희 집 상황을 알면 뭐라고 생각하실까...를 생각하면 더욱 싫어요.
아버지와 집에 대한 컴플렉스가 생각보다 깊게 자리 잡은 것 같아요.
어떻게 이 상황을 해결해야 할 까요?
혹시 오해를 할까봐 조바심에서 말씀드리면...
제 고민은 남자친구를 어떻게 인사시킬 수 있을까?,
남자친구에게 이런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까?가 아니라...
아버지가 이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시고
고향에 있는 집을 좀 사람 사는 곳 처럼 만들고 싶다는 거에요.
아버지 나이도 이제 환갑을 바라보시는데 그런 집에서 계속 지내게 하고 싶지는 않아요.
제가 능력이 있어서 집을 새롭게 지어드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ㅠ.ㅠ
도대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