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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1탄

스카치 |2013.07.18 03:54
조회 150 |추천 0
학창시절, 소위 말하는 왕따를 당하던 여자아이가 있었다. 우리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라면 학년을 떠나서 모두 그녀를 알고 있었다. 신기한 건, 그녀는 어떠한 감정 표현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웃는 것도, 화내는 것도, 우는 것도, 짜증내는 것도. 예쁜 얼굴에 공부까지 잘하는 그런 아이가 어째서 따돌림을 당하는 것일까라는 의문을 가지기도 했지만 전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저 누군가에 의해 자연스럽게 여론이 조성됐고, 괴롭힘을 당한다고 하더라도 어떠한 반항이나 보복조차 없었기 때문에 이후에는 단순히 일종의 장난감 취급을 받으며 놀림당해지는 것 같았다. 그날도 심술궂은 3반의 혜미에게 분필가루를 뒤집어 써 긴머리는 물론이거니와 교복까지 새하얗게 변한 채로 터벅터벅 운동장을 가로질러 집으로 귀가하고 있었다. 어쩐지 보기가 안쓰러웠던 나는 그녀를 불러세워 평소에 가지고 다니던 물티슈를 건네고는 그녀를 도와 분필 분을 털어주었다. 그 순간, 그녀가 웃고 있었다.작고 희미했지만 틀림없는 미소였다.학생들은 물론이거니와 선생들조차도 그 아이의 표정 변화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아마 누군가가 본다면 놀라서 쓰러질 것이 분명했다. 그 아이도 사람이니까 웃는 것은 분명한데도.
귀가길에 그녀와 잠시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알아낸 점은, 그녀는 소문과는 다른 아주 착실하고 행실이 바른 아이였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녀는 어째서 모두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일까?
잠시동안의 길지도 않은 대화였지만, 그 대화를 통해 한가지 알아낸 사실이 있었다. 그녀는 분명 왕따를 당할만한 이유가 없는 아이였다.



다음날, 나는 하루종일 멍하니 그녀의 뒷모습을 줄곧 바라보고 있었다. 신경 쓰인다고 해도 이정도로 대놓고 쳐다보는 경우는 없었는데, 신기하게도 그녀는 시선을 이끄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녀는 수업시간에 공책 필기도 꼬박꼬박 하고 있었다. 쉬는 시간에는 교과서를 펴서 그날의 숙제라던가 복습을 하기도 했다. 그녀의 꼿꼿하게 앉은 바른 자세와 필기를 하는 규칙적인 움직임과 행동들이 어쩐지 폴짝거리며 뛰노는 한 마리의 토끼를 연상시켰다. 그녀의 그런 모습이 재미있다고 느낀 나는 무심코 소리내서 웃고 말았다. 그러자 몇 명이 이쪽을 쳐다봤다. 분명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었기에 나는 얼른 핸드폰을 꺼내었고, 그들 모두 내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마지막 수업까지 그녀에게 시선을 거두지 못한 나는 그날 오후까지 그녀를 따라 학교에 남게 되었다. 그녀는 그날도 불량한 아이들로 부터 억지로 방과후 청소를 떠맡아 늦게까지 교실에 남아있을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생각에 잠겼다. 집에 가서 해야할 일도 많은데 어째서 지금 이렇게 시간을 버리기만 하고 있을까. 곰곰히 생각해보니, 역시 그녀가 신경쓰였다. 어제 나에게 보여준 그녀의 미소가 다정하고 부드럽고 상냥하고 따뜻해서, 또다시 그녀의 미소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수건를 빨아서 교실로 향하는 그녀. 다시 한번 그녀의 미소를 보기 위해 나도 교실 안으로 들어갔다. 교실에 들어서자, 그녀는 마침 바닥을 열심히 닦고 있었다.
"야."
괜시리 그녀의 주의를 끌기 위해 그녀를 불러본다.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에 뒤돌아보는 그 아이. 내 얼굴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것인지, 고맙게도 또다시 나를 향해 미소를 보여준다.
"도와줄게."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숨기기 위해 괜시리 퉁명스레 말을 꺼내고는 그녀가 들고 있던 대수건를 뺏어들어 바닥을 닦기 시작했다.
"고마워."
정말 조그만 목소리였지만 그녀는 제대로 내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겸연쩍음에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바닥을 닦자 그녀는 창가에 다가가 분필지우개를 털었다. 물론 나는 몰래 그녀를 흘낏거리며 관찰했다. 갑자기 창문을 통해 바람이 불어오는 바람에 흩날리는 분필가루를 피하기 위해 눈을 찡긋 감으며 허우적대는 그녀를 보고 잇으니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키가 작은 편이 아닌데도 뭔가 복슬복슬하고 사랑스러운 다람쥐 같았다. 키와는 달리 조그만 얼굴에 걸맞지 않게 커다란 눈동자 때문일까?
바닥을 닦는 것을 멈추고 멍하니 생각하고 있자 그녀는 내가 어딘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당황스러움에 후딱 수건질을 마치고 화장실로 향했다.

청소를 마치고, 또다시 그녀와 함께 하교길에 올랐다. 오늘은 청소를 마칠때부터 계속 내가 옆에 있어서 그런지 늦게까지 남아 축구를 하고 있던 녀석들도 그녀의 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궁금한게 있는데, 너 어째서 왕따 당하는거냐?"
그 아이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나도 몰라."
하긴. 생각해보면 자기가 왕따를 당하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면 어떻게 해서든 왕따에서 벗어나려고 했겠지.
"안 힘드냐? 한두명도 아니고 수십, 수백명한테 괴롭힘 당하는데."
"딱히. 이제 어느정도 적응도 됐으니까. 혼자가 편하기도 하고."
하지만 그녀의 말은 아마도 거짓말이었던 것 같다. 오랜만에 대화를 나눌 상대를 만나서였던건지,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그녀는 내내 기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봐주었다.
"내일 봐."
"그래. 잘가라."
나를 향해 좌우로 손을 흔들어주는 그녀의 모습에 어쩐지 심장이 빨리 뛰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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