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7월.그 날 이후로 그녀에게 다가가지 않았다.역시 사람은 안하던 짓을 하면 안되는 거다. 그래도 어느정도 성과가 있다면, 성철이와 싸우고 나서 왠지모르게 녀석과 친해졌다. 평소에는 말도 한번 제대로 안나눴었는데도. 남자는 싸우면서 친해진다더니 딱 그 꼴이 아닌가 싶다. 아무튼 그 덕분에 그녀를 괴롭히던 녀석들의 수가 조금은 줄어들긴 했다. 이제와서 그게 다 무슨 소용이냐만은..
여름방학까지 1개월도 채 남지 않은 오늘, 반에서 자리를 바꾸는 날이 찾아왔다. 따지고 보면 별거 아닌 일인데도 불구하고 반 친구들은 괜시리 들떠있다.
담임이 들어와 뽑기종이가 담긴 상자를 내려놨다. 천천히 교실을 한바퀴 돌며 학생들은 상자 안에서 종이를 하나씩 꺼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대적인 자리이동이 시작됐다.
여기저기서 기쁨과 절망이 뒤섞인 외침이 터져나온다. 그들 모두 마음속으로 같이 앉았으면 하며 생각한 짝이 있었던 것일까.
12번.
내가 뽑은 번호다.
가방을 들고 기대고 있던 벽에서 몸을 떼 자리를 찾아간다.
"아..."
그녀가 앉아 있었다.
되도록이면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녀만은 피하고 싶었는데. 최악의 상황이었다.
왠지 그녀를 보고 있으면 며칠전 그녀를 위해 싸웠던 그 날이 떠올라 한심하고 쪽팔린 기분이 들었다. 아니 사실 그것보다... 그녀에게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 때문에 그녀의 얼굴을 마주 볼 수 없다. 한심하고 쪽팔린건 얼마든지 상관없다. 문제는 그녀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그래도 그녀에게 내가 이런 기분이라는 걸 들킬 수는 없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옆자리네. 잘 부탁해."
말을 걸자 그녀가 다람쥐처럼 펄쩍 뛰어오르듯이 몸을 움찔 떨었다.
그녀가 나로 인해 떠는 것은 아마도...내가 그녀를 가지고 놀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며칠전까지만 해도 말을 걸어주며 친하게 대해줬는데, 지금에 와서는 그녀 자신에게 말도 걸어주지 않고, 거기다가 성철이와는 친하게 지낸다. 이제 녀석과 녀석의 여자친구는 그녀를 괴롭히지 않고 있지만.
혹시 그녀는 내가 그녀에게 더욱 큰 절망감을 주기 위해서 친구인 척 한게 아닐까 라고 생각한건 아닐까?마음이 괴로워진다.
"어... 그러니까, 잘부탁한다."
되도록 감정을 숨기며 평범하게 말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약간 목소리를 떨고 말았다.
그녀는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고개를 숙인 채로 끄덕여 보이기만 한다. 그리고는 작은 목소리로 응답했다.
"응..잘 부탁해..."
단지 회답을 받은 것 뿐인데도 기뻤다. 그녀가 내게 다시 말을 해줬다는 사실에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하지만 애써 무표정을 가장하며 숨겨본다.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기분이 너무나 좋았다.
'어떻게 하지? 넌 어떻게 하고 싶냐?'
나는 내 자신에게 자문해보았다.
대답은,
'그녀와 사귀고 싶어.'
어떻게 보면 정해진 답이었다.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알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단 한 번도 없었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와 사귀고 싶다는 생각도 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바뀌었다.
처음으로 알고 싶어졌다. 누군가에 대해서. 그녀에 대해서.
전에는 멀찍이서 보거나, 뒷모습만 보거나 했지만, 오늘부터는 바로 옆에서 그녀의 옆얼굴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 사실이 너무 기뻐서 빤히 바라보게 된다.
이 소중한 기분을 가질 수 있게 한 그녀에게 감사한다.그래서 결심했다.그녀에게 고백하자고.남자친구가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서는 우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내가 그녀의 남자친구가 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서도 기대하지 않기로 했다.자신의 마음을 그녀에게 제대로 전하는 것.그걸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