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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소설 2탄

스카치 |2013.07.18 04:51
조회 110 |추천 0
아침에 일찍 일어나 준비를 마치고 어제 초저녁, 그녀와 헤어졌던 그 골목으로 뛰어갔다. 아직 이른 시각이어서 그런지 그곳에는 드문드문 출근하려는 직장인과 청소부 아저씨만이 지나치고 있었다.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자, 같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학교를 향해 걸어가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그 속에서 그녀를 어렵지않게 찾아낼 수 있었다.
"야."
어깨를 툭치며 말을 걸자 그녀는 고개를 돌렸고, 자신에게 말을 건 사람이 나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어?'하는 소리와 함께 인사를 건넸다.
그녀와 함께 천천히 걸었다. 시냇가 물흐르는 소리. 계절 변하는 소리. 도로. 자동차 배기가스. 자전거. 신호. 빨간색. 파란색. 가로수. 참새. 아스팔트. 눅눅한 공기. 어느새 울려퍼지는 매미소리.
이제 슬슬 본격적인 여름이 다가오는 것 같았다. 조금은 후끈한 바람을 타고 그녀의 향기가 풍겨온다.
그러고 보니, 이 아이는 항상 그렇게 엉망인 꼴로 집에 돌아가면서 부모님에게 안 들키고 잘도 계속 다니는구나.
"어제는 괜찮았다만, 저번처럼 엉망인 꼴로 집에 돌아가면 부모님이 걱정 안하시냐?"
"집에 들어가기 전에는 제대로 옷갈아입고 들어가니까. 들킬 일 없어."
"왕따 그만당하고 싶지 않아?"
"글쎄...나도 잘 모르겠다."
왠지 대답하기를 꺼려하는 그녀의 반응에 더이상 나는 그녀에게 질문할 수 없었다.

학교가 가까워지자, 그녀를 괴롭히는 아이들도 점점 늘어나 내 쪽을 힐끗힐끗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자기들끼리 수군거리기도 했다. 아마 내가 그녀와 어떤 관계이고, 나에 대한 처분은 또 어떻게 해야할지에 대해서 의논을 나누는 것 정도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기회를 보던 이들 중 하나가 우리 길 앞을 가로막고는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미안한데 내가 목이 좀 말라서 말이야. 캔커피 하나만 사와."
"알았..."
"니가 사다마셔."
그녀가 대답하려고 하는 것을 도중에 끊고, 우리 앞을 가로막은 여자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녀를 감싸고 도는 내 반응이 의외였던지 여자는 두 눈을 크게 뜨고는 기분나쁘다는 듯이 말했다.
"니가 얘 남친이라도 돼? 쓸데없이 참견하지 말고 교실에나 들어가."
어쩐지 말하는 말투에 기분이 상해서 그녀를 옹호해준다. 나도 따돌림 당할 수 있을텐데도.
"난 얘 친구인데. 넌 얘의 뭐냐? 적당히 해 등신아."
그리고는 그녀의 손목을 잡아 이끌고는 학교로 향했다.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손부채를 부치던 여학생의 모습에 조금은 통쾌했다.
그날의 난 다른 이들이 그녀를 괴롭히지 못하도록 하루종일 곁을 맴돌았다. 그 편이 마음도 편했고, 그냥... 그러고 싶었다.
모든 수업을 마치고 하교할 시간이 되자 반에서 싸움 꽤 한다던 성철이가 다가와 밑도 끝도 없이 내게 주먹을 날렸다.
"니가 아침에 내 여친한테 싸가지없게 나불거렸다며? 미친 새끼가."
그 말을 던지고 그는 끊임없이 내게 주먹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그녀를 괴롭히려던 그 여자가 성철이의 여친이었다니. 누가 누구와 사귄다는 등의 얘기에는 좀 어두웠기 때문에 이제야 알게 됐다. 하지만 또 그걸 알았으면 어떻게 했겠는가. 분명 알았다고 해도 어차피 아까처럼 똑같이 행동 했겠지.
계속 녀석에게 맞고 있자니 분하기도 하고 짜증나기도 해서 옆에 있던 의자를 들어 녀석에게 던진다. 옆구리에 제대로 맞았는지 신음을 흘리고는 분노로 얼굴이 일그러진다.
녀석은 나에게 한대 맞은게 그렇게도 분했던지 똑같이 의자를 들어 나에게 던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그로 인해 우당탕탕하는 소리에 놀라 뛰어들어온 담임에게 발견되어버렸고, 나와 녀석은 교무실로 끌려가게 되었다.


담임의 기나긴 잔소리를 듣고 나서 반성문을 쓴다. 어쩐지 나도 조금은 분하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신기하다. 여태까지 살면서 단 한번도 말썽을 일으킨 적이 없었던 나였는데 뭐가 날 이렇게 까지 변하게 만든걸까. 역시 그녀 때문일까.
옆에서 함께 반성문을 쓴다고 앉아있는 녀석의 분노어린 중얼거림을 무시하고 멍하니 창문 밖을 쳐다봤다.
깜짝 놀랐다.그녀였다.하지만 놀란 것은 그녀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옆에는 한 남자가 있었다. 키가 큰, 먼발치에서도 운동을 해서 그런지 다부져보이는 몸을 자랑하는 쾌남이었다.
남매일까? 아니면 남자친구인가?
그 남자가 그녀의 남자친구라고 생각하니 어딘지 모르게 씁쓸해졌다. 만약 남자친구라면 자신은 요 며칠동안 헛질거리를 해댄게 아닌가.
그녀의 표정이 보였다. 웃고있었다. 그녀는 나와 함께 한 며칠동안 나에게 보여줬던 미소보다 더욱 밝게 웃고 있었다. 남자가 그녀에게 무언가를 건넨다. 그녀가 그것을 확인하고 정말 기뻤는지 펄쩍 뛰어올라 남자에게 안겨들었다.
점점 어두워지는 밤의 빛깔에 잠겨가는 그녀의 모습처럼 내 마음도 허탈해진다.
'혼자가 아니었구나..."
어째서인지 그녀를 위해 싸운 내 자신이 한심하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나를 두고 남자와 떠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이 지금은 마치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조금은, 아주 조금은 우울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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