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Y양: “아씨~진짜 방법이 없을까?”
교회오빠: “왜? 뭔데?”
동생 Y양: “부담스럽지 않게 마음을 표현하는거..”
교회오빠:“이번엔 또 어떤 놈이냐?”
동생 Y양: “오빠 죽을래? 나 심각하다구..”
교회오빠:“그러니까 뭐가 문젠데?”
동생 Y양: “오빠 내 성격 알지? 나 좀 성격 좋고 활달하잖아..”
교회오빠: “그럼~알지...성격 좋고 활달하고 남동생같고..ㅋㅋㅋ”
동생 Y양: “야!!! 요즘 아주 맞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 하지? 저 하늘의 별로 만들어줘?”
교회오빠: “나 오빠야~오빠잖아...오빠는 때리는거 아냐~”
동생 Y양: “어쨌든 그놈의 활달한 성격이 문제야.”
교회오빠: “그게 왜? 좋기만 하구만.”
동생 Y양: “내가 그놈한테 잘해주는데 아무래도 걔는 날 그냥 친구로만 생각하는거 같아.”
교회오빠: “어떻게 잘해줬는데?”
동생 Y양: “음...뭐... 다가가고 인사하고, 일주일에 한번 전화로 안부를 묻고, 책을 선물해 주기도 하고,
수련회에서 산책을 먼저 제안해서 가고, 얘기도 하고...그랬지..”
교회오빠: "음...그건 그냥 딱 친구랑 하는건데?"
동생 Y양: “그러니까 그게 문제라고...일단 내가 그놈을 좋아해 버린게 문제인데...
그냥 꾸준히 연락만 하면 되나? 일주일에 한번정도 연락 하는데,
부담스러워 할까봐 조심스러워.그렇게 정기적으로 연락하면 혹시라도 눈치를 챌까?
부담스럽지 않게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데 방법을 잘 모르겠어.
어떻게 좋은 수가 없을까?“
교회오빠: " 흐음...음....음....안알랴줌~ㅋㅋㅋㅋ"
동생 Y양: “아~~그렇구나~ 안알랴줌이구나~ 오빠 거기 딱 서라...오늘 관 짜자. 앙?!!”
인터넷에 ‘부담스럽지 않게 남자에게 다가가는 법’ 이라는 검색어로 녹색 창에 검색을 하면,
판에 박힌 듯 비슷한 조언들이 마구 쏟아진다.
‘남자가 자신을 보게 만들라’, ‘남자의 시선을 끌어라’, ‘말을 먼저 걸어라’, ‘사소한 부탁을 하라’ 등등 하나 같이
'어떻게 하면 여자가 자존심 안상하게 남자의 마음을 빼앗을 수 있는지'에 대한 조언들이다.
그러나 필자는 여기에서 그런 시시껄렁한, 임상실험을 거쳤는지 의심스러운 조언을 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는 우선 이성간의 교재에 대한 의미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누군가와 이성교제를 한다는 것은,
누군가와 호감의 서로 마음을 표현하고 확인하여 그 이후 SR(Special Relationship) 즉, 특별한 관계로의 접어든다는 것을 뜻한다.
이 특별한 관계를 만드는 중요한 요소는 가치교환이다.
다시 말해 내가 그 사람에게 어떤 가치를 전달 받았으면, 나도 그에게 어떤 가치를 전달해 줘야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그 관계가 성립되고, 유지된다. 그런 것이 이성교제의 근본적인 의미이다.
즉, '호감의 교환' 인 것이다.
(다만 호감은 남녀의 기준이 서로 다를 수 있다. (ex) 남: 여자의 외모, 여: 남자의 능력 )
그리고 또 다른 의미로 이성교제는 장래의 배우자를 탐색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것은 아주 본능적이고 생물학적인 반응이다.
결혼이라는 인륜지대사를 치르기 전에 어떤 사람이 나와 잘 맞는지 알아보기 위한 과정이라는 말이다.
가장 흔한 예로 유치원 꼬꼬마들도 이성과 짝을 짓고, 좋아하고, 연애를 한다.
이것은 인간의 유전자에 이미 종족번식에 대한 정보가 새겨져 있음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유전자가 땡기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신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하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이 아담이 독처하는 것을 불쌍히 여기시고 하와를 창조해 보내주신다.
그때 아담이 기쁨에 넘쳐 외친 말이 아주 걸작이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창2:23)" 얼마나 기뻤으면 아담이 그렇게 말했을까.
그리고 하나님을 이를 보기에 좋았다고 말씀하신다.
이와 같이 평생의 반려자를 찾는 과정인 이성교제는 신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청년기의 과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중요한 과업을 목전에 둔 우리 교회누나들은 소심하기 짝이 없다.
마음은 원이로되, 여자가 먼저 고백하면 모냥 빠지니. 어떻게든 남자가 고백을 하도록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그래서 머리를 쓸어올려 목덜미를 보여주라는 둥, 소개팅을 시켜달라고 해서 질투심을 유발하라고 하는 둥, 헛소리들을 하는 것이다.
마치 “내가 널 좋아하니 어서 나에게 고백해.(응?)” 라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또한, 먼저 마음을 표현했다가 까이기라도 하면 자존심은 자존심 대로 상하고, 교회 공동체 안에서 모냥은 있는대로 빠질 것을 우려하여
“그냥 꾸준히 연락만 하면 되나? 일주일에 한번정도 연락 하는데 부담스러워 할까봐 조심스럽다. 그렇게 정기적으로 연락하면
혹시라도 눈치를 챌까? 부담스럽지 않게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데 방법을 잘 모르겠다. 어떻게 좋은 수가 없을까?”
라는 답 없는 질문으로 어떻게든 그와 잘 안되었을 때를 대비하여 빠져나갈 구멍을 먼저 만드는데 여념이 없다.
그러나 여기서 필자는 그런 질문을 하는 교회 누나들에게 해주고 싶은 한마디가 있다.
당신들은 왜. 그토록 사랑에 대해 비겁한가. 누군가를 좋아 한다면 그에게 그 마음을 똑바로, 그리고 명확하게 전해야 한다.
그런 마음을 부담스럽지 않게 전하고 싶다고 하는데,
남녀 누가 먼저 고백을 하건, 받는 사람 입장에서 그런 고백은 어차피 부담일 수밖에 없다.
다만 그것을 받아들이느냐, 그렇지 않느냐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그리고 이성교제의 가부를 결정한 결과를 받아들이는 쪽은 먼저 좋아한 쪽이다.
먼저 좋아한 것이 죄라면 죄다. 어차피 인생의 모든 선택에는 리스크가 있다.
그런데 그런 중요한 일에 겨우 그 정도 작은 리스크조차 감수하지 못하면서 무슨 이성교제를 하겠다고 하는가.
‘진심은 통한다.’라는 말은 그럴 때 쓰는 말이 아니다. 이성관계에 있어서 그 진심은 표현하지 않으면 절대 통할 수 없다.
우리가 이성교제를 하고, 배우자를 찾는 과정이 때로는 지루하고, 답답하고, 뜻대로 안될 수 있다.
그러나 이것도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삶의 일부이다.
하지만 그렇게 어렵게 짝을 찾아 결혼했을 때, 그 기쁨과 감사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교회 누나들이여. 제발 어설픈 작전을 짜려고 하지 말고, 모냥 빠질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어차피 인생은 단 한번이다.
그 한번뿐인 인생에서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하지 못한 후회’는 남기지 말도록 하자.
P.S 누군가에게 호감을 표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칭찬을 자주 해주는 것이다. 특히 외모에 대한 칭찬은 심리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다.
교회오빠의 발칙한 상담 (http://blog.naver.com/churchopp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