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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제국주의의 위기 - 전쟁범죄의 역사

전쟁광 |2014.03.26 05:21
조회 41 |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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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있는 《제4언론》에 카나다의 학자 미셀 초스도브스끼의 글 《미제국주의의 위기》에서 《전쟁범죄의 력사》가 실리였다.

글 내용을 소개한다.

미국의 군사전략에는 대량살상을 유도하는 계략이 현재까지도 만연하고있다.

수리아의 경우에도 례외없이 전쟁을 일으킨 침략군에 의해 자행된 민간인살상피해가 공격을 당한 피해자의 잘못으로 인한것으로 비난받고있다.

조선전쟁으로부터 현재까지 분쟁지역에서 일어난 일련의 전쟁은 미국이 《지원》하여 발생한것이다(조선, 윁남, 캄보쟈,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유고슬라비아). 저강도충돌을 비롯한 다양한 형태의 군사개입도 미국이 역시 《지원》하였다.

수리아에서의 전쟁은 기본적으로 비밀리에 주도된 공격으로 서방군사동맹군과 일부 아랍회원국의 지원을 받은 테로분자들이 일으킨 내란이다. 전쟁의 목표는 수리아를 와해시켜 국가를 전복하는것이다.

이런 전쟁에서 꼭 승리를 거두어야 했던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는 국가를 와해전복시키거나 서방의 리익을 대변하는 대리정부를 세우는것이 목적이였다. 이런 다양한 형태의 전쟁을 치르면서 미국은 1945년 8월이후 발전도상에 있던 나라중에서 44개국을 웃도는 나라들의 여러 지역을 직간접적으로 공격하였다. 다수의 어떤 지역은 수차례에 걸쳐 공격하였다.

이러한 군사개입의 목적이 《정권교체》라는것은 자명한 일이다. 일방적이고 불법적인 행위를 정당화시키기 위하여 《인권》이라든가 《민주화》라는 외피가 어김없이 등장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의 뒤를 이어 랭전이 시작되는 1940년대말부터 《제국주의화》과제를 뒤받침하는 범지구적 군사력우세를 획득하기 위한 계획이 트루맨정부에 의해 체계가 잡히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행동강령의 리념적토대가 소위 《트루맨독트린》에서 발견되는데 외교정책고문인 죠지 케난에 의해 1948년 미국무부 업무지침서에서 처음으로 공식화되였다.

랭전시대의 《봉쇄》정책에서부터 그후의 《선제공격》식 전쟁이나 《테로와의 전쟁》까지 미국의 외교정책에는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는 사실을 1948년의 이 문건을 통해 알수 있다.

《고상한 용어》로 씌여있긴 하지만 그 내용인즉 미국은 무력을 통해 경제적, 전략적우위를 담보해내야만 한다는것이다.

《…우리는 전세계 부의 50%를 소유하고있지만 인구는 고작 6. 3%에 불과하다. 이러한 격차는 특히 아시아의 인민들과 비교하였을 때 더욱 커진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선망과 원망의 대상이 안될수가 없다. 앞으로 다가올 시간에 우리가 달성해야 할 진정한 과제는 국가안보에 사실상의 손상을 입히지 않는 한도내에서 이러한 격차를 그대로 유지시킬수 있는 관계의 양식을 고안해내는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모든 감상적인 기분과 백일몽은 떨쳐버려야 한다. 이 즉각적인 국가적목표를 향해 모든 분야에서 우리의 온갖 노력을 집중시켜야 한다. 이제는 리타주의니 세계를 위한 자비심이니 하는 사치를 부릴 여유가 있다고 자신을 속이는 행위를 할 필요가 없다…

이런 상황에 직면하여 극동 아시아지역에 대하여 우리의 특별한 관심을 요구하였던 몇가지 사항에 대한 개념정리를 하는것이 우리에게 유리할것이다. <환영을 받는다>거나 또는 고상한 품위를 지닌 국제적 박애주의자로 받들어지는것에 대한 열망을 집어치워야 한다. 아우를 지켜주는 형이 되기를 자처하는 행위를 그만두어야 하며 도덕적이나 리념적조언을 제공하는 행위도 자제하여야 한다. <극동 아시아를 위하여>라는 명목으로 하던, 애매모호하고 비현실적이였던 인권운동, 생활조건향상, 민주화 등등의 과제에 대해 그만 입을 다물어야 한다. 단도직입적으로 권력이 무엇인가라는 개념파악에 돌입할 날이 멀지 않았다. 관념적인 구호를 떠들어댐으로써 시간을 지체하는 일이 적으면 적을수록 더 유리한것이다.》(죠지 케난, 1948 미국무부 업무지침서)

유엔을 분렬시키려는 계획은 유엔이 창립되던 1946년에 이미 미국의 외교정책 청사진속에 포함되여있었다. 이렇게 계획된 유엔의 종말은 1948년에 륜곽을 갖춘 《트루맨독트린》의 필수사항중 하나였다. 워싱톤은 유엔이 구상, 창립되는 최초의 순간부터 한편으로는 자기들에게 리익이 되는 방향으로 유엔을 조종하는 방법을 모색하였고 또다른 한편으로는 유엔을 약화시키고 언젠가는 결국 파괴하려는 계획을 가지고있었다.

죠지 케난의 입을 빌려 들어보자.

《때때로 유엔은 유용한 쓰임새가 있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는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더많이 만들어내였고 결국 우리의 외교적노력을 상당할 정도로 분산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유엔의 다수결을 리용하여 중요한 정치적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노력으로 우리는 언젠가 우리에게 총구가 돌아오게 될지도 모르는 위험한 무기를 사용하고있다. 이것은 우리측의 몹시 주의깊은 연구와 선견지명을 요구하는 상황인것이다.》

공식적으로는 《국제사회에 공헌하는것》이라고 하지만 워싱톤은 대체로 유엔에게 입에 발린 말만 하였다. 현재 유엔은 여러 측면에서 미국정부기관 부속물의 하나이다. 하나의 기구로서의 유엔을 약화시킨다기보다는 미국과 그 우방들은 유엔사무국과 주요 유엔기구들에 통제권을 행사하고있다.

제1차 이라크전쟁이후 유엔은 대부분의 경우에 고무도장역할을 하고있다. 미국의 전쟁범죄에 눈을 감고있고 앵글로-아메리칸침략자들을 대신하여 소위 일컫는 《평화유지활동》을 시행하였다. 이것은 유엔헌장에 위배되는 행위이다.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서 미국의 세력권을 구축하기 위해서 우에서 언급한것처럼 《트루맨독트린》은 제2차 세계대전시기 일본의 항복을 받아내기 위하여 1945년 8월에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에 핵폭탄을 투하함으로써 시작된 미군사전략의 최정점이였다. 동아시아에서 미국은 전쟁이 끝난 후 남조선과 같은 일본의 옛 식민지들을 인수하여 점령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후 제국주의일본의 패망에 뒤이어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아우르는 미국의 지배권은 일본의 《대동아공영권》지역에서 형성되였다.

아시아에 있어서 미국의 패권은 일본, 프랑스, 네데를란드의 식민지관할구역에 있던 나라들에 기반하여 주로 형성된것이다.

오바마정권이 공공연히 주창하고있는 《아시아로의 회귀》정책은 이러한 력사적변화과정의 마지막 단계이다.

조선전쟁(1950-1953)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국에 의해 주도된 첫번째 주요 군사작전이였다. 완곡하게 표현되였던 《랭전》이 바로 태동하는 단계에 들어선 때였다. 여러가지 면에서 조선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의 련속선상에 있었다. 일본의 식민지였던 지역이 새로운 《식민지강대국》인 아메리카련방국의 손아귀에 넘어가버린것이였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하고 3주일이 지난 1945년 9월 8일 남조선에 있던 일본의 관료들은 과도기업무를 보장하기 위해 하지가 이끌던 미군정을 도왔다. 서울에 있던 일본 식민지관료들과 남조선의 경찰관료들은 새로 온 식민지수괴들과 결탁하게 된것이였다.

일본은 패배한 제국으로 대접을 받았고 남조선은 미군의 규률과 점령군의 관리를 받아야 하는 하나의 식민지로서 파악되였다. 미국이 지목한 리승만이 맥아더의 전용비행기를 타고 1945년 10월 서울로 날아들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에 일본과 도이췰란드의 민간인에 가해진 폭격과 조선을 상대한 전쟁때의 민간인폭격은 대량살상을 유발하는 사건을 실행하는 기초단계를 다진것이였다. 대규모범죄가 미군의 무력에 의해 자행되였다.

미군 소장 윌리암 띤은 《북의 도시와 마을은 대부분 모조리 돌무더기페허가 되였거나 흰눈에 덮인듯 희뿌연 황무지가 되였다.》고 하였다.

북에 대한 폭격을 지휘하였던 커티스 르메이는 《3년이라는 기간동안 우리는 20%에 달하는 인구를 죽였다. … 북에 있는 모든 마을을 불태워버렸고 남에 있는것도 다 태워버렸다.》고 뻔뻔스럽게 인정하였다.

브라이언 윌슨은 《지금 믿을수 있는 사실은 1950년부터 1953년동안의 38개월에 걸친 치렬한 전쟁통에 38°선 이북에 살던 8백만-9백만명중 3분의 1에 달하는 인구가 죽음을 당하였다. 적대적호전성을 가진 어떤 나라때문에 한 나라가 력사상 류례없는 학살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북은 60년이상 미국으로부터 핵무기공격의 위협을 받고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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