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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투이스트 이랑의 좌충우돌 도보여행기 - 마흔이 되어 혼자 떠나는 길 1편

이랑 |2014.04.06 22:54
조회 42,567 |추천 66

 

 

타투이스트 이랑의 좌충우돌 도보여행기

마흔이 되어 혼자 떠나는 길 1편


 START 2014년 3월 28일 서울광장

 

 

 

prologue "아프니까 청춘이다" 이 글은 김난도 교수가 펴낸 책 제목이다. 이 책은 시대적인 상황이 잘 맞아떨어져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많은 청춘들이 이 책을 통해 위로받고 아픔을 치유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 한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아프니까 마흔이다"라고...

 나는 올해 마흔이 되었다. 마흔을 흔히 불혹의 나이라 한다. 그 어떠한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는다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하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세상의 마흔들은 너무 아프다. 나는 지난 십년간 타투이스트로서의 삶을 살면서 많은 일을 이루어 냈고 존경하는 스승님 사진작가 김중만 선생님을 만나면서 많은 걸 배우고 느끼며 새로운 가치관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내 나이 마흔이 되자 어느 순간 나 또한 아프기 시작했다.

나는 잘살고 있는 것일까? 이대로 괜찮은 걸까? 이 두 가지 물음을 내 스스로에게 던졌다. 하지만 나는 아무 답도 내놓지 못하였다. 그래 나는 아직 한없이 부족하고 모자란가 보다.

이렇게 여행은 시작되었다... 일상의 현실에선 찾을 수 없는 답을 나는 길 위에서 찾기로 했다.

몇 주가 걸릴지 몇 달이 걸리지 정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여행에서 돌아오는 시간에는 다른 모습의 나를 만나고 싶다.

​​3월28일(금)~4월5일(토) 첫번째 이야기

3월28일(금)서울시청-의정부​

 ​어제 난 거의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어린 아이가 학교 봄 소풍 가기 전날 잠을 못 이루는것 같이 마흔이 다된 나 또한 새로 시작되는 여행을 앞두고 많은 생각이 머리에 가득 차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자는 둥 마는 둥 뒤척이다 어느새 아침이 밝아왔다. 어제 저녁 마지막 확인을 마친 배낭은 현관 출입문 앞에 빨리 떠나자고 나를 재촉한다. 출발하려고 하니 이제서야 졸음이 미친 듯 밀려온다. 하품을 연신 해가며 배낭을 메고 여행의 출발지점인 서울 시청으로 향했다. 출근 시간은 지나서인지 지하철 안은 한산했다. 다행히 앉아서 갈 수가 있어 몇 분 안되는 시간 이지만 그 틈을 이용해 잠시 눈을 붙였다.

서울 시청에 도착하여 구경을 좀 하다 보니 배가 고 파오기 시작했다. 어디서 식사를 할까 하다가 서울 시청은 직원들 밥은 잘 나올까 하는 쓸데없는 궁금증이 생겨났다.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부탁하여 직원용 식권을 구할 수가 있었다. 기대하고 들어선 서울 시청 직원용 식당의 규모는 상당히 큰 편이었고 깨끗해 보였다. 하지만 4000원 짜리 음식은 보통 수준의 맛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광장으로 나오니 햇볕이 따뜻했다. 아침부터 밀려오던 잠이 따뜻한 봄기운 에 더욱더 기승을 부렸다. 어차피 정해진 시간이 없는 자유로운 여행인지라 나는 광장에서 햇살을 맞으며 낮잠을 자기로 했다. 많은 사람들이 광장 주변을 여유로히 산책을 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시선은 아랑곳 하지 않고 배낭에 매달려 있던 휴대용 침낭을 깔고 낮잠을 청했다.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와 내 옆을 지나며 내는 발걸음 소리에 잠에서 깼다. 한 시간 정도를 푹 잔 거 같다. 다시 배낭을 메고 일어나 보니 저 앞에 많은 사람에 둘러싸인 덕수궁이 보였다. 잠시 덕수궁을 구경하기로 하고 1,000원짜리 입장권을 구입하여 덕수궁 안으로 들어갔다. 많은 관광객 대부분이 중국계 사람들이다.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내 귓가엔 소음으로 들려온다. 30분가량 관람을 마치고 덕수궁 한 쪽에 있는 벤치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신 후 오늘의 여정을 시작하였다.

 

 

 

 덕수궁을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동대문을 지나고 있었다. 패션의 메카라 불리는 장소만큼 많은 쇼핑센터가 들어 서 있지만 그래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앞에 세워진 세계적이 여성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설계로 건축된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이다. 일명 DDP라고 불리는 이 건축물은 각종 언론과 미디어에서 서울 중심에 세계적인 건축물이 지어졌다고 연일 떠들고 있지만 내 눈에는 그저 정치관료들의 치적 쌓기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가질 수 밖에 없는 흉측한 구조물에 불과했다. 동대문을 지나 청량리로 향해 가고 있다. 오늘 도착해야 할 곳은 의정부로 서울 시청에서 약 28KM 정도의 거리이다. 시청광장에서 늦장을 부린 터라 시간은 저녁 시간을 향해 가고 있었고 첫날이라 그런지 무거운 배낭 무게로 인해 두 어깨는 극심한 통증을 유발하고 있었으며 인터넷에서 저렴하게 구입한 트레킹화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내 두 발바닥의 피로를 가중시키고 있었다.

 

  

의정부역에서 바라본 시가지 모습

 

옛 중앙극장이 있던 자리

 

중앙로에 설치되어 있는 조각상

 

밤 9시가 다 되어 의정부역에 도착하였다. 가까운 분식집을 찾아 간단히 저녁 식사을 하고 중앙로를 향했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나누었던 장소이기도 하지만 의정부는 내 동갑내기 첫사랑이 살던 곳이기도 하므로 내겐 소중한 추억들이 남아있는 그래서 항상 기억하고 싶은 도시이다.

 

3월29일(토) 의정부-동두천

​ 어제는 의정부역 가까이에 있는 24시 사우나에서 하루를 묵었다. 시골이 아닌 이상 마을회관이나 작은 교회에서 잠자리를 구하는 것이 불가능 하므로 작은 시골 마을을 접어들기 전까지는 어쩔 수 없이 사우나를 이용해야만 한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전날의 피로를 풀었다. 오늘의 행선지는 동두천이다. 3번 국도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동두천을 지나게 되고 내 고향 전곡도 나오게 된다. 여행의 시작을 이 코스를 잡은 이유도 옛 추억을 찾아 내 기억을 꺼내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가는 거리가 어제보다는 짧아 체력적인 부담이 덜 느껴진다. 하지만 어제 뭉친 근육들이 풀어지려면 며칠은 더 고생해야지만 완전 적응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동두천 재래시장 모습

그 옛날 그 모습 그대로의 동두천 문화극장

 

미2사단의 평택기지 이전으로 사람들의 왕래가 끊켜버린 보산동 상가골목

 

동두천 지행역에 도착하여 고향친구을 기다렸다. 전곡에 살고있는 친구는 나와의 소주 한잔을 하기 위해서 일을 마치고 동두천으로 나오기로 했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를 한 두살 먹다 보니 이제 고향 친구가 몇 남지가 않았다. 그래서 더 소중하고 그립다. 늦게까지 이어진 친구와의 술자리고 인해 새벽 1시가 되어서야 짐을 풀고 잠을 청할 수가 있었다.

 

3월30일(일) 동두천-전곡

 어제 마신 술로 인해 아직 머리가 아프다. 눈을 떠보니 벌써 11시가 되어있었다. 간단한 샤워를 마치고 배낭을 메고 오늘의 여정을 시작하였다. 전곡까지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기에 조금 늦게 출발을 하여도 충분하였다. 아침 겸 점심으로 중국집에서 짬뽕 한 그릇을 깨끗이 비우고 나서는 전곡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가는 길목에 내 동갑내기 첫사랑이 다니던 고등학교를 지났다. 그녀도 지금은 마흔이 되어있는 한 남자의 아내로서의 삶을 살아 갈테지만 내 기억 속엔 아직도 열여덟 살 천방지축의 한 소녀로 기억되고 있다. 지난 기억들을 더듬으며 나는 내 고향 전곡으로 걸음을 이어갔다.

 

내 동갑내기 첫사랑이 다니던 ​동두천 보영여자 고등학교

쉬엄쉬엄 걷다 보니 어느새 전곡이 가까워졌다. 연천군 전곡이라는 마을은 성인 남자들에게 군부대가 밀집되어있는 군사도시로 알려져 있다. 대표적으로 5사단과 28사단에 근무하는 장병들이 외출을 나오거나 휴가를 떠날 때 전곡이라는 읍내를 꼭 거쳐야지만 된다. 그래서 이곳은 술집과 특히 다방들이 많이 밀집 되어 있었다. 하지만 요즘 신세대 장병들은 다방이 아닌 PC방과 프렌차이즈 커피숍을 애용하기 때문에 예전과 같은 향락산업은 더는 활발히 형성되지 못하고 있다. 내 아버지가 여기 5사단 부사관으로 25년간 근무를 했기 때문에 나는 해병대를 입대하기 전 까지 전곡에서 살 와왔다. 지금은 내 부모님마저 당신들의 고향으로 귀향했기에 특별한 연고지가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1년에 한 두번은 고향 친구들과 술 한잔을 하기 위해 내려오곤 한다.

 

연천군 시작을 알리는 구석기 표지석

전곡 시외터미널

 

 

내가 다녔던 전곡 초등학교

 국민학교 시절 머리를 깍던 육교이발관

전곡에 도착하여 후배에게 연락을 했다. 저수지를 임대하여 민물 낚시터를 운영하는 후배이다. 나는 저수지에서 하루를 묵기로 했다. 사람들의 왕래가 적은 아주 시골 깊숙한 곳에 위치한 저수지에서 이번 여행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기고자 후배에게 부탁하였다.

내가 살던 집터는 소방도로가 신설되면서 없어졌고 내가 다니던 작은 교회는 아주 큰 교회를 다시 세워 이주하였다. 이렇듯 남겨지는 것과 사라지는 것처럼 내 기억과 추억도 남겨지고 지워지고 있었다.

 

3월31일(월)​​ 백합 저수지

 

 

 

  무념무상(無念無想) 

 

4월1일​(화) 전곡-신망리

 백학 저수지에서 하루 동안의 차분한 시간을 가진 후 다시 길을 나섰다. 이 길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경원선의 마지막 종착지인 백마고지역이 나타난다. 가고싶어도 더이상 갈수없는 그래도 언젠가는 가야만 하는 곳..

 연천군의 군청 소재지인 연천읍에 도착했다. 식사를 하기위해 주위를 둘러보다 연천 초입에 냉면을 파는 음식점이 보였다. 순간 침이 꼴깍하는 걸 가까스로 참고 그 식당안으로 들어갔다. 물냉면을 10분도 되지않아 먹어버렸다. 차가운 냉면 육수의 감칠맛이 피로감을 말끔이 씻어 주었다.

 

 

길이 없으면 조금 돌아가도 괜찮아...

 

연천을 지나 신망리로 향한다. 오늘은 처음으로 잠자리를 구해볼 작정이다. 아직 시골 인심이 따뜻하다는 것을 나는 믿기에 용기를 내보려 한다. 오후 5시가 조금 넘어서 신망리를 찾아갔다. 우선 이장님을 만나는게 우선이다. 물어물어 이장님댁을 찾아 인사를 드린 후 내가 누군지 무슨 여행을 하는지 자세히 설명 한 후에야 마을회관 노인회장님에게 나를 소개해주셨다. 내 몸엔 많은 양의 타투가 새겨져 있다. 그래서 처음에는 경계심의 눈초리와 못마땅해하는 표정으로 나를 대하시지만 겸손하고 정성껏 내 소개를 하고 부탁을 드리면 오해와 편견은 뒤로한 채 많은 배려와 편의를 봐주신다. 내가 이번 여행을 통해 가장 느끼고 싶은 것이 세상사람들과의 소통이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나 스스로 이겨내고 바꿔나가야 하는 자세로 여행에 임하고 있다.

 

 신망리(상1리)변구식 노인회장님

맛 있는 저녁 감사합니다. 4월2일(수) 신망리-백마고지역(대마리)  

​ 신망리에서 따뜻한 인정 속에 편안하게 하루를 머물고 오늘의 일정을 시작하였다. 경원선의 최종 종착지 백마고지역으로 출발을 하였다. 신망리에서 출발한지 얼마 되지않아 대광리역에 도착하였다. 이곳에는 예전 우리 아버지가 부사관으로 근무했던 육군 5사단 포병부대 25**부대가 주둔하고 있다. 나는 집안에서 막내로 자랐기 때문에 아버지를 따라 군부대에 자주 가곤 했었다. 그때의 기억은 마흔이 되어있는 지금에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으며 아버지 부대 명칭과 넘버까지 잊지 않고 있다. 그래서 기억을 더듬어 잠시 30여년 전 아버지가 근무했던 부대를 찾아가 보기로 했다

 

 아버지 막내아들 다녀갑니다.

 

아버지가 25년간 몸담으셨던 부대를 찾아가 주임원사님을 뵙고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직 부대 내에서는 아버지를 기억하고 있는 분들도 몇 분이 계셨다. 아버지와 함께했던 추억들이 잔잔한 기억 속에서 살아나고 있었다.

부대를 빠져나와 다시 도착지를 향해 걸어갔다. 시골 길을 굽이굽이 걷다 보니 어느새 신탄리역에 도착하였다. 예전에는 이곳이 마지막 종착지였는데 새롭게 한역이 추가되면서 마지막 종착역이라는 큰 의미는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고대산이라는 등산객들에게 유명한 산이 있어 역대합실에는 많은 등산 인파가 서울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신탄리역에서 간단히 자장면으로 식사한 후 얼마 남지 않은 백마고지역으로 향했다.

날은 조금씩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고 일교차로 인한 저녁 바람이 약간 춥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오후 6시가 되어서 ​백마고지역에 도착을 하였다. 역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는 곳이어서 미리 준비해간 종이에 반전에 관한 메시지를 담았다.

 

 백마고지역에서 촬영을 마친 후 잠시 쉬다 보니 어느새 짙은 어둠이 내려앉았다. 오늘 잠자리는 야외에서 하기로 결정을 한 다음 적절한 곳을 찾아 나섰다. 마침 텐트를 칠만한 적합한 곳을 찾아 그곳에 짐을 풀고 텐트를 설치하였다. 나무를 구하고 불을 지핀 다음 간단한 라면으로 저녁을 해결했다. 늦은 밤이 오니 바람을 더 세차게 불기 시작했고 텐트 안에서 몸을 눕힌 나는 땅에서 올라오는 한기와 텐트를 뚫고 들어오는 새벽바람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렇게 밤새 추위와 싸우듯 뒤척이다 아침이 되어서야 잠을 이룰 수가 있었다.

 

 

4월3일(목)~4일(금) 대마리

 여행을 시작할 때 경비는 총 10만 원을 가지고 출발을 하였다. 몇 번의 사우나 이용과 식대 값으로 남은 돈이 얼마 되지 않는다. 계획으로는 화천이나 김화에서 일을 구하려 했는데 운이 좋게도 대마리에서 현장 일을 구할 수 있었다. 일을 잡아주신 분께서 이틀간 일을 하는 동안 마을회관에서 숙박을 할수 있게 해주셔서 맘 편히 일을 할 수가 있었다. 노동일은 군 복무 후 거의 처음 하는 일이라 조금은 걱정이 앞섰는데 같이 일하시는 분들의 배려로 잘 마칠 수가 있었다. 이틀간 땀 흘려 일한 대가는 16만 원 이었다. 우리가 흔히들 말하는 막노동꾼인 그분들에게서도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아 매우 소중한 시간이었다.

 

 

 

 

4월5일(토)​ 대마리-동송읍

 대마리에서의 이틀간의 현장 일을 마친 후 나는 아침 일찍 배낭을 정리한 후 동송읍으로 향했다. 일주일 만에 읍내로 나가는 터라 그동안 밀렸던 빨래와 여행의 첫 블로그 첫 포스팅을 할 예정이다. 길을 걷다 뭔지 모를 웅장한 건축물을 마주하였다. 이곳은 해방 후 북한에서 김포, 김화,철원,포천등 휴전선 중심 지역을 통치할 목적으로 세운 노동당사였다. 예전에 서태지와 아이들의 "발해를 꿈꾸며" 뮤직비디오 촬영 현장이기도 하다. 지금은 뼈대만 남아있지만, 그 당시를 떠올린다면 상당이 규모가 있고 견고하게 지어진 것을 알 수 있다. 가는 길은 잠시 멈추고 배낭에 있던 태극기를 꺼내어 잠시 기념 찰영을 하였다. 불과 반세기 전 일어났던 동족상잔의 비극이 다시금 이 땅에서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가져보며 동송읍을 향해 다시 걸음을 옮겼다.

 

 

 

4​월6일(일) 철원군 동송읍

 길을 나선 지 9일째 가 되었다. 아직은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으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도심을 벗어나 시골 길을 아무런 말없이 홀로 걷고 있노라면 어지럽고 복잡했던 머릿속이 가벼워 짐을 느낄 수가 있다. 아직 갈 길은 멀고 힘들겠지만, 묵묵히 길 위를 걷다 보면 내가 찾고자 하는 것과 이루려 하는 것이 이 여행의 끝자락에선 얻을 수 있으리라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해본다.

​이동코스 : 서울시청 - 의정부 - 동두천 - 전곡 - 신망리 - 백마고지역(대마리) - 동송읍

이동거리 : 110 KM

다음 예정 이동 코스 : 김화읍 - 감성마을 - 춘천 - 양구 - 고성군......

여행 출발경비 : 1,00000원

이동방법 : 무조건 도보

숙박 : 마을회관, 찜질방, 텐트, 가정집.

경비 : 가족, 지인 송금X  현장에서 일해서 경비 마련

  여행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듭니다. 여러분들도 행복한 여행들 많이 하시길 바랍니다~  블로그 blog.naver.com/hill433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artist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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