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투이스트 이랑의 좌충우돌 도보여행기
마흔이 되어 혼자 떠나는 길 2편
START 2014년 3월 28일 서울광장
http://pann.nate.com/b322047729 1편
행복이란..
4년 전 KBS에서 방영되던 다큐 프로에서 내가 해오는 일들과 일상을 담고 싶다며 섭외가 들어 왔었다. 지난 수년간 타투 합법화 운동을 진행해 오면서 많은 방송 인터뷰와 출연 그리고 뉴스 기사로 내 소식이 전해지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전할 좋은 기회라 여기고 출연을 약속했었다. 하지만 촬영 시작을 얼마 남기지 않아 돌연 방송국 측에서 일방적인 취소를 해버렸다. 이유인즉슨 타투(문신) 행위가 현행법상 불법인 상황에 공영방송국인 KBS에서 타투 합법화 운동을 하는 타투이스트를 방송으로 내보내기가 어렵다는 방송국 고위층의 말씀 몇 마디에 일방적인 결정을 해버린 것이다. 일방적인 취소 통보를 받은 나는 화가 나기보다는 그저 씁쓸하고 이러한 현실을 그냥 받아드려야 하는 나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 보였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만 하는 걸까? 많은 생각과 고민 끝에 "그래 내가 직접 만들어 보자!! 이런 생각으로 기획을 잡고 프로젝트를 진행을하였다. 그것은 바로 영화였다. 영화는 내가 말하고 싶은 것 보여주고 싶은 것을 모두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운영하던 타투 스튜디오 보증금 삼천만 원과 급히 융통한 이천만 원, 그렇게 총 오천만 원으로 영화 관계자들을 찾아다니며 설득과 구애를 펼친 끝에 타투 영화(새기고 사라지다)를 찍을 수 있었다. 내가 그동안 해오던 일들과 그에 진정성을 믿어준 영화인들이 아무런 대가 없이 참여해 주어서 완성을 시킬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 뒤에 감당할 것들은 내게 너무 큰 짐으로 다가왔다. 스튜디오에서 거주하던 나는 영화가 끝난 이후에는 선배 타투이스트 작업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아주 가난한 신세가 되어 버렸다. 영화는 개봉도 하지 못하는 운명을 맞았고 나의 전 재산을 걸고 진행했던 프로젝트는 점차 사람들의 기억들 속에서 잊혀지고 말았다.
힘들게 하루하루 지내고 있을 때 나의 스승님이신 김중만 선생님을 찾아뵈었다. 선생님께서 한동안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시다 말씀을 꺼내셨다.
랑이야.. 힘드니? 선생님 저는 괜찮습니다.. 하고 겸손히 속마음을 감추고 대답을 하였다.
랑이야.. 마음은 어떠니? 네 선생님 사실 경제적으로는 조금 힘이 들지만, 마음은 행복합니다..
그러자 선생님께서는 "그래 마음이 행복하면 너는 부자인 사람이다. 선생님은 너의 삶을 믿는다. 힘내고 다시 시작하자!! 나는 그때의 선생님의 말씀을 잊지않고 항상 가슴속 깊이 간직하고 있다.
그래 나는 부자다, 그리고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나의 스승님이시자 가장 존경하고 무서운 그리고 사랑하는 김중만 선생님
타투영화 : "새기고 사라지다" 의 한장면
4월 7일(월) ~ 4월 11일(금) 두번째 이야기
4월 7일(월) - 동송
지난 며칠 간의 대마리 생활을 마치고 어제저녁 철원군 동송읍에 도착하여 우선 PC방을 찾았다. 이번 여행을 많은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었기 때문에 피곤하고 귀찮더라고 기간별로 정리해서 포스팅하기로 했다. PC 방에서 짐을 풀고 자리를 잡았다. 첫 포스팅이라 잘 써내려 가지 않았다. 저녁 8시에 시작한 포스팅 작업이 새벽 두 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그러자 참고 있던 배고픔이 한 번에 몰려들었다. 서둘러 PC방 계산을 마치고 시원한 생맥주 집을 찾아 나섰다. 지난 며칠 간 가장 먹고 싶었던 것이 치킨에 생맥주 였기 때문에 온 동네를 뒤지고 다녔지만, 그 시간에 영업을 하고 있는 호프집은 한 곳도 없었다. 그러다 들어간 곳이 삽겹살이나 갈매기살 등을 파는 식당이었는데 치맥의 미련을 떨치지 못한 나는 식당 메뉴가 내키지는 않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식당 주인은 늦은 시간 커다란 배낭을 메고 들어온 나를 위아래로 훑터본다. 그러고선 1인분은 팔지 않는다는 무언의 압박을 눈빛으로 보내고 있었다. 사장님~ 여기 갈매기살 1인분에 소주하나 주세요!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당연히 NO였다. 나는 쓸데없는 오기가 발생했고 며칠 대마리에서 번 돈이 있어 여유가 있던차라 이만원짜리 육회에 소주 한잔을 하기로 했다. 평소에 소주를 즐겨 먹지 않는 나는 비싼 육회가 아까워 소주 두 병을 마셔 버렸다. 원래의 계획은 오늘 아침 동송을 출발하여 다음 행선지로 가야만 하는 건데 술에 취해 새벽 6시가 되어서야 잠을 청한 탓에 그날 오후 3시가 되어서야 잠에서 일어날 수가 있었다. 한참을 온탕에 몸을 담그고 나니 조금씩 정신이 깨끗해지기 시작했다. 늦은 아침 겸 점심을 먹기 위해 시장을 거닐다 떡볶이를 파는 분식집 앞을 지나다 빨갛게 버무려진 떡볶이와 겹겹이 쌓아놓은 튀김들을 보니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가 없었다. 떡볶이 1인분과 모듬 튀김 1인분을 시켜놓고 주인아주머니의 떡볶이 버무리는 손동작을 멍하니 지켜 보았다. 내가 사는 홍대에는 조폭 떡볶이, 죠스 떡볶이등 스스로 맛집을 자랑하는 수많은 떡볶이 전문점들이 즐비하다. 그러나 오늘 내가 맛본 떡볶이의 맛은 그 어떤 가게보다 뛰어난 맛을 자랑하고 있었다.
동송 전통 시장
새벽 두 시가 되어서 나선 동송읍
혼자만의 회식
동송읍 시장안의 무한리필 떡볶이 맛집
맛있는 떡볶이와 튀김으로 허기진 속을 달래고 입가에 매운맛을 지우기 위해 가까운 편의점에서 1,000원짜리 얼음 커피를 사서 입에 물고 동송읍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오늘 하루는 이렇게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며 내일의 일정을 준비하였다.
<타투이스트 이랑의 전국 도보여행>
4월 8일(월) 동송 - 도창리
어제 하루 특별한 일정 없이 푹신 탓인지 오늘 몸 상태는 아주 가볍고 상쾌하다. 날씨 또한 시원한 바람과 맑은 하늘이 하루를 시작하는 내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어 주었다. 오전 9시경 찜질방에서 나와 걷기 시작했다. 금세 동송을 빠져나와 대위리 방향으로 걸음을 재촉하였다. 콧노래를 부르며 시간 가는지 모르게 걷다 보니 어느새 시간은 정오를 가리켰다. 슬슬 배가 고파오기 시작했지만, 근처에는 식사할만한 식당을 찾을 수가 없어 그냥 배고픔을 참고 걸어가다 보니 눈앞에 작은 구멍가게가 보였다. 가게 안 진열해 놓은 상품들은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고 여든 살이 넘어 보이는 할머니께서 허름한 카운터에 앉아 계셨다. 나는 200mm 작은 우유와 빵하나을 사 들고 가게 앞 낡은 평상에 앉아 간단히 점심을 한후 다시 걷기를 시작했다.
아주 예쁜 초등학교를 보았다. 자연스레 그곳으로 내 발걸음이 옮겨졌다. 하지만 요즘 세상이 각박하고 무섭기에 초등학교 정문에 들어서자마자 학교 관계자가 어떤 일로 오셨냐며 묻는다. 나는 도보여행을 하는 작가라고 소개를 한 후에야 안심 한 듯 보였으나 다시 말하길 학생들이 점심을 먹고 운동장에 나와 마주칠 수가 있으니 그 전에 나가달라는 부탁을 한다. 조금은 씁쓸했지만 요즘 세상의 어른들이 너무나 무섭고 험한 일들을 일으키고 있으니 학교 관계자님의 심정도 충분히 이해할 수가 있었다. 제발 누구든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는 일으키지 않았으면 하는 절실한 바람을 가져보며 전과전력이 없는 초범의 실수, 음주로 인한 심심 미약 상태 등 아주 엿 같은 이유로 이해할 수없는 형량을 내리는 대한민국 사법부의 행태에도 너무나 큰 실망을 넘어 내 감정의 분노를 느낀다!!
아침에 불던 시원한 바람보다 이제는 따갑게 내리쬐는 햇살이 느껴진다. 몇 개의 작은 마을들을 지나고 나니 이제는 길 양쪽으로 끝없이 펼쳐진 들녘으로 가득 차 있는 끝도 없는 길이 나온다. 이제서야 철원평야라는 말을 실감할 수가 있다.
건물 외벽을 예쁜 색의 조합으로 꾸며 놓은 오덕 초등학교
어디로 갈까?
길 양옆으로 펼쳐진 철원평야
지루하고 심심한 철원 평야 길을 아무 생각 없이 두 시간 정도 걸으니 대위리 후방 통제소(민통선)가 나온다. 잠시 그늘진 곳에 자리를 잡고 근처에 있는 매운탕 전문이라 쓰인 식당에 들어가 물 한잔을 얻어 가지고 나와 마른 목을 축였다. 최전방의 길을 걸으며 눈에 자주 들어오는 것들은 대한민국이 남과 북으로 갈라져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휴전상태의 국가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하는 상징물들을 쉽게 볼 수가 있었다.
분단 국가라는 현실을 실감케 하는 모습들
아주 지루하고 심심한 걸음이 계속되고 있을 때 아주 황당한 일을 겪게 되었다. 내가 오늘 도착지로 정한 곳이 정연리라는 마을이었는데 특별한 정보는 없었고 하루 걸을 수 있는 거리를 계산해 오후 5시 정도에 도착할 수 있는 마을이 정연리라는 마을이였다. 오후 5시 이전에 도착해야 하는 이유는 마을회관에서 신세를 지려고 생각할 때는 동네 어르신들이 댁으로 들어가시기 전에 마을회관에 도착하여 노인 회장님이나 마을 이장님에게 부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과 마을을 2km 정도 남겨두고 아주 급한 생리현상이 내 몸을 자극했다. 그냥 길가 아무 데서나 볼일을 볼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어 지나가는 자동차 행렬에 태워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많은 차들이 그냥 지나치는 가운데 1톤 트럭 한 대가 내 옆에 멈처 섰다. 노인분께서 운전 하고 계셨는데 정연리 마을까지 태워달라고 부탁을 하니 옆 좌석에는 짐이 있으니 트럭 짐칸에 타라고 하셨고 나는 감사하다는 인사와 동시에 트럭 짐칸에 올라타 등을 지대고 앉자 정연리 마을까지 갈 수가 있었다. 노인분께서는 나를 정연리 마을회관 앞에 내려주시곤 다시 출발하셨는데 알고 보니 정연리 마을은 출입 허가증이 없이 외부인은 들어올 수 없는 민간인 통제구역 즉 민통선 안 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난 마을 회관 주위를 서성대고 있었는데 바로 십 분도 되지 않은 시간에 군 헌병 트럭이 내 앞에 멈처 섰고 무장한 군인들이 내게 다가왔다. 요즘은 북한에서 백령도를 향해 포 훈련사격을 빌미로 도발을 감행하고 정찰 무인기가 국내에서 추락한 것이 발견되어 군 당국 분위기가 상당히 어수선할 시기였다. 그리고 지금 최전방 모든 부대가 훈련상황에 들어가 있어 민통선 경비에 더욱 민감 할 수 밖에 없다. 무리 중에 책임자로 보이는 김모 중사가 내게 어떻게 들어 왔느냐며 묻는다. 나는 좀전의 상황을 설명하였고 김모 중사는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요청을 했으나 칠칠하게도 나는 신분증을 빠트리고 여행을 시작한 터였다. 김모 중사는 경비초소 까지 동행 하자며 타고 온 군 트럭에 올라 탈것을 요구하였다. 출동한 군 장병들과 함께 경비초소까지 간 다음 다시 인근 파출소로 이동하여 신원조회를 하였다. 파출소 안에는 두 명의 경찰관이 있었는데 그 중 선임으로 보이는 나이 지긋한 경찰분께서 내 몸 밖으로 보이는 타투를 보시더니 못 마땅에 하시는 표정을 지으며 이것저것 쾌 물으신다. 나 또한 기분은 썩 좋지는 않았지만, 신분증을 두고 온 내 잘못이 크기에 이 상황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나는 경찰관님께 믿음을 주기위해 인터넷(네이버)에서 등록되어 있는 내 인물정보를 보여 드렸더니 나를 대하는 태도가 갑자기 친절모드로 바뀌어 버렸고 그 후 함께 커피를 마시며 지금껏 해오던 일들과 이번 여행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처럼 나는 타투이스트로서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조금씩 배워가며 여행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런데 노인분께서는 왜 나를 정연리 마을까지 태워 주셨을까???...)
민통선에 허락없이 들어오면 안돼요~
여길 들어갔으니...
네이버가 날 살렸다~
사인 한 장 해놓고 가라는 경찰관님의 명령으로 어색한 사인을 해드리고 파출소를 빠져나왔다. 어느새 하늘은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고 나는 서둘러 가까운 마을로 잠자리를 구하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도착한 마을은 도창리라는 작은 마을이었는데 마을회관은 이미 잠겨있었고 하는 수 없이 회관 현관에 적혀있는 노인회 회장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정중히 인사를 드리고 잠자리를 부탁했더니 잠시 후 회관으로 직접 나오셔서 혼자 다니느냐? 저녁은 먹었느냐? 하면서 몇 가지 물으시더니 같이 식사를 하러 가자고 하신다. 함께 간 곳은 철원군 초대의장을 역임하셨던 분의 집이었다. 미리 전화해놓으셨는지 두 내외분이 나를 환하게 맞이해주신다. 정성껏 차려주신 시골 밥상과 의장님께서 숨겨두시고 아껴 드시는 와인을 꺼내시더니 내게 한잔 가득 따라 주셨다. 너무나 따뜻한 분들의 환대를 받으며 맛있는 저녁 식사 시간을 보낸 아주 행복한 시간이었다.
4월 9일(수) 도창리 - 와수리
오전 9시가 될때쯤 전경달 회장님께서 집에서 내려오셨다. 잠은 잘 잤는지? 아침은 어떻게 할 건지? 걱정스런 말씀을 건네신다. 아주 고맙고 죄송한 마음에 아침은 원래 하지 않는다는 선의의 거짓말을 하고선 배낭을 챙겨 출발 준비를 마친 후 총무님께 인사를 드리고 어제저녁을 대접해 주신 의장님 댁에도 들러 작별인사를 드렸다.
오늘은 김화읍을 지나 와수리까지 걸을 셈이다. 도창리를 빠져나오니 길옆으로 남대천이 흐르고 많은 낚시꾼들이 명상하듯 곧은 자세로 낚시에 몰입하고 있다. 그중에 중년의 남자 세 분이 함께 오신 팀을 발견했는데 그분들은 식사를 하는 듯 보였다. 나는 그쪽으로 자연스럽게 다가가 능처스럽게 말을 건넸다. 낚시하러 오셨나 봐요? 그분들은 커다란 배낭을 메고 걸어온 내가 여행자라는 한번에 알아채셨다. 아침은 했는지 물으신다. 네 아직 전입니다, 라고 대답을 했다. 몇 마디가 오가고 나는 자연스레 합석한 후 아침을 든든히 채울 수가 있었다.
낚시터의 중년들
정오를 지날 때쯤 백골연대를 지나고 있다. 점심을 거르고 계속 걸음을 이어갔다. 시작부터 이어지던 남대천 아래에 쉬어가기 알맞은 장소를 발견하고선 배낭을 내려놓고 휴대용 매트를 바닥에 펼친 후 몸을 뉘었다. 따뜻한 햇볕과 시원한 바람에 자연스레 눈이 감겼다. 그렇게 한 시간 반 정도를 낮잠을 잔 후 잠에서 깨어났다.
천하무적 백골연대
잠시 쉬어갑니다~
인생을 여행하다...
오후 5시가 돼서야 김화읍에 도착하였다. 이제 한 시간 정도만 더 가면 오늘의 목적지인 와수리에 도착할 수가 있다. 느긋한 마음에 천천히 쉬엄쉬엄 걸어 와수리에 도착하고선 화장품 가게에 들러 마스크 팩을 오천 원 어치 구입을 했다. 지난 대마리에서 민 얼굴로 현장 일을 한 탓인지 얼굴이 뒤집혀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그리고선 군장 판매소에 가서 군인들이 얼굴을 가리는 머플러를 구입했다. 저녁을 먹고 나서는 PC방에서 시간을 보내다 밤 늦게 찜질방으로 향했다. 그러나 와수리의 하나뿐인 찜질방은 폐업한 상태였고 나는 다시 잠자리를 구하러 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밤늦은 시간에 잠자리를 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 아주 저렴한 민박을 이용하기로 했다. 주인 할머니께 걸어서 여행을 다닌다고 말씀을 드리니 삼만 원인 숙박비를 만원에 해주셨고 밤늦게 배고플 거라며 라면을 끓여 주셨다. 나는 여행을 다니면서 많은 분들의 따뜻한 마음과 배려에 감동받고 배우고 행복감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어 이 모든 것이 그저 감사하고 행복할 따름이다.
샘터 민박 주인 할머니~
4월 10일(목) 와수리 - 감성마을
오늘은 수피령을 넘어야 하므로 아침 일찍 여행을 시작하였다. 와수리에서 근남면까지의 거리가 약 5.5km의 거리이고 근남면에서 시작되는 3km의 오르막길이 끝나면 다시 7km 거리의 수피령 고개를 올라가야 해발 850m의 수피령 정상에 오를 수가 있다.
수피령 고개길의 시작
좀만 올라가면 수피령 정상!!
수피령 정상에서
수피령 정상에서 내려가면 다목리라는 마을이 나온다. 삼거리를 우측으로 돌아들어 가면 이외수 선생님이 계신 감성마을이 나타난다. 작년 이맘때쯤 뵙고 딱 1년 만에 선생님을 찾아뵙게 되는 것인데. 선생님께서 내일 서울에 사인회가 있어 오늘 아니면 선생님을 뵐 기회가 없기에 일정을 오늘로 맞출 수밖에 없었다. 수피령을 내려가다 뜻밖에 횡재를 했다. 마침 배가 슬슬 고 파오기 시작했는데 아스팔트 위에 전투식량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내가 해병대 생활을 할 때는 볼 수 없었던 제품이었는데 바로 뜯어서 먹어보니 맛 또한 무척이나 맛이 있어 한 봉지를 금세 먹어 치웠다.
득템!
파운드케이크 먹을만 하네요~
한방 찍고 갑니다~
수피령 정상에서 내려와 다목리에 도착하여 터미널 옆 편의점 의자에 잠시 배낭의 내려놓고 숨을 돌렸다. 이외수 선생님께 다목리에 도착했다는 메세지를 보내고 감성마을로 향했다.
감성마을이 얼마 남지가 않았네요~
이외수 선생님이 계신 이외수 문학관에 도착했다. 어김없이 많은 관람객이 관람을 하고 있었고 선생님은 한쪽에서 관람객을 맞이하면서 여러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인사를 드린 후 지금까지 거쳐 온 일정을 말씀드린 후 문학관에는 나도 처음 와본 것이라 천천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문학관 안에는 선생님이 예전에 직접 쓰셨던 원본 원고들과 직접 그리신 그림 작품들과 여러 가지 소장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외수 문학관의 외부 전경
작년 춘천마임축제 공연에 응원차 들려주시 이외수 선생님
1년만에 다시 뵌 이외수 선생님
이외수 문학관의 내부 모습
선생님 곁에 오래 머무르느 것이 많은 관람객을 맞이하는 선생님에게 민폐가 될 것 같아 여행이 끝나고 다시 인사를 드리겠다고 말씀을 드린 후 다시 다목리 마을로 향해 마을회관 총무님께 부탁을 드려 하루를 묵었다. 오늘은 수피령 고개를 넘는 일과 감성마을을 제시간에 도착을 해야 하는 문제 때문에 다른 날보다 많은 거리를 걷다 보니 상당히 피곤함을 느끼고 있었고 수피령 고개를 넘으며 온 몸에 근육통이 생겨 움직임에 조금 불편함을 느끼는 하루였다.
4월 11일(금) 다목리 - 오탄리 곡운구곡
다목리를 출발하기전 마을회관 총무님께서 김치국밥을 만들어 주셔서 총무님과 아침을 함께 하고 출발~
아침을 차려주신 다목리 노인회 총무님
김치국밥으로 아침을 든든히 하고 춘천 방향으로 향했다. 길을 지나가 나무를 캐는 아주머니들과 인생 이야기를 주절주절하기도 하고 어린아이들과 함께 사진도 찍으며 기분 좋게 걸음을 이어갔다.
나물캐는 아주머니들과 인생 이야기 주절주절~
내가 마냥 신기한 초딩들~
다목리에서 춘천으로 넘어가는 길은 철원에서의 지루함은 전혀 없다. 산과 계곡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이 내 눈에 펼쳐 보여졌다.
춘천 가는 길
호반의 도시 춘천에 들어서다.
풍경을 담다.
곡운구곡
풍경에 매료되어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시간을 보내다 그리곤 다시 힘을 내어 만월 고개를 넘어섰다. 오탄리에 도달했을 때쯤 메밀 막국수 간판에 홀려 식당으로 들어가 메밀 막국수 그리고 감자전과 화천 막걸리를 시키고선 하나도 남김없이 먹어치웠다. 내가 사는 홍대에서는 절대 접해 볼 수 없는 정말 끝내주는 맛이었다.
낮술의 위력에 나는 걸음을 걸을 수가 없었고 식당을 나서신 채 십 분도 가지 못하고 근처 계곡에 텐트를 치고 일찍 취침에 들어갔다.
<타투이스트 이랑의 전국 도보여행>
여행을 하면서 마음이 따뜻하고 인정도 좋으신 분들을 많이 만나고 있습니다. 그 분들 덕분에 힘든 길도 힘을 내어 갈 수가 있습니다. 모든 분들 감사드립니다.
확실히 여행은 단순한 관광 이상이다. 여행은 삶에 관한
상념들에 계속해서 일어나는 깊고, 영구적인 변화이다.
-미리엄 비어드
지나온 길 : 서울시청 - 의정부 - 동두천 - 전곡 - 신망리 - 백마고지역(대마리) - 동송읍
이동코스 : 동송읍 - 도창리 - 와수리 - 감성마을 - 오탄리
예정코스 : 춘천 - 양구 - 고성 - 속초 - 강릉...
이동거리 : 98km 누적거리 : 208km
여행 출발경비 : 1,00000원
여행경비 : 가족, 지인 송금x 현장에서 일해서 경비마련
이동방법 : 무조건 도보
숙박 : 마을회관, 찜질방, 텐트, 가정집.
* 현재 저는 4월 12일(토) 춘천에 도착하여 지내고 있습니다.
춘천부터의 여행기록은 3편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블로그 blog.naver.com/hill433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artistr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