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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lraq 갈등과 분쟁의 고리 종교통합과 만국회의로

이라크 Iraq 갈등과 분쟁의 고리 종교통합과 만국회의로

 

 

 

 

 

이라크 Iraq 서남아시아의 페르시아만 꼭대기 부분에 있는 나라로 사우디아라비아, 시리아, 요르단, 이란, 쿠웨이트, 터키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수도는 바그다드, 공식언어는 아랍어, 쿠르드어, 공식이름은 이라크공화국


국민의 95%가 이슬람교도이다. 그 가운데 절반이상이 시아파 신자이고, 나머니는 수니파에 속한다. 바그다드 남동쪽에 사는 아랍인은 대체로 시아파 신자이다. 쿠르드족은 수니파에 속한다. 이라크 중부와 남서부에는 수니파와 시아파 신자가 섞여 산다. 바트당이 이라크를 지배할 때 최고위 층들은 수니파에 속하는 아랍인이었다. 시아파 이슬람교도는 수니파가 정권을 독차지하는 것에 불만을 가졌다. 그 밖에 전 인구의 5%만이 크리스트교를 믿는다.

 

 

 


이라크는 7세기에 아랍 제국의 일부가 되어 이슬람 문화를 받아들였다. 오늘날 인구의 75%가 아랍인이다. 크르드족도 많이 살고 있다. 쿠르드족은 오랫동안 자치권을 얻으려고 투쟁을 해왔다.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 사담 후세인 대통령의 바트당이 집권하고 있을 때 세 차례의 큰 전쟁을 치렀다. 1980년~1988년 까지는 이란과 싸웠으며, 1991년에는 미국을 비롯한 39개 나라가 연합한 다국적군과 걸프전쟁을 벌였다. 2003년에는 이라크를 침공한 미국·영국 연합군과 전쟁을 벌였다. 후세인 정권은 이 전쟁에서 패해 몰락했고, 이 세차례의 전쟁으로 이라크는 크게 파괴 되었다.

 

 

[이라크 전쟁]

2003년 3월 부터 4월까지 미국을 비록한 다국적군이 이라크를 상대로 벌인 전쟁

배경: 2001년에 9·11테러 사건이 일어나자 미국 정부는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는 한편, 10월 7일 9·11테러사건의 주범인 빈 라덴이 숨어 있는 아프가니스탄에 전쟁을 개시하여 탈레반 정부를 축출했다. 그 뒤 미국은 2002년 1월에 북한, 이라크, 이란을 테러를 배후에서 지원, 조종하는 '악의축'으로 규정했다. 한편, 이라크의 후세인 정부가 빈 라덴을 지원하면서 비밀리에 대량 살상무기를 만들어 중동에서 새로운 전쟁을 일으키려 한다며 이라크 대량 살상무기 제거를 명분으로 삼아 이라크전쟁을 준비했다. 그러나 이라크에서 대량 살상무기가 나오지 않은데다, 이라크군 포로에 대한 비인간적인 대우가 폭로되면서 미국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더욱 거세졌다.

 


전쟁이 끝나자 미국은 미군정을 실시하는 한편, 2003년 8월 과도통치위원회, 2004년 6월 1일 과도정부를 세웠고, 과도정부는 2005년 1월 30일에 총선을 치러 시아파의 알자파리를 총리로 선출했다. 그럼에도 이라크인들의 자살폭단 공격이 이어져 이라크의 치안과 정세는 갈수록 악화되어 2005년 8월까지 미군 사망자가 1,900명을 넘어서는 등 그 피해가 날로 커졌다.

 


[이란-이라크 전쟁]

1980년~1988년까지 이란과 이라크 사이에 일어난 전쟁. 이란과 이라크는 국경분쟁, 이라크의 쿠르드 반라군에 대한 이란의 지원, 시아파를 신봉하는 이란과 수니파를 신봉하는 이라크 사이의 종교적 갈등으로 서로 대립하고 있었다.

 


이에 이라크 지도자들이 1979년 혁명의 후유증으로 이란 정세가 불안정한 틈을타서 1980년 9월에 이란을 침공해서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라크군은 신속하게 진격했으나, 곧 강력한 저항에 부딪쳤다. 그 후 전쟁이 교착 상태에 빠지자 이라크는 평화 협상을 추진했다. 그러나 이란은 타협에 응하지 않고 전쟁을 계속해 이라크의 후세인 대통령을 타도라려고 했다.

 


두 나라는 각각 상대국의 도시와 석유 시설 등에 폭격을 가했고, 페르시아만에 정박해 있던 유조선을 공격핸ㅆ다. 그 결과 두 나라는 수십만 명이 죽거나 다쳤고, 석유 시설이 파괴되어 경제에 큰 타격을 입었다. 이란은 경제가 악화되어 더이상 전쟁을 계속할 수 없게 되었고, 마침내 1988년 8월에 정전에 합의햇다.

 


전쟁에서 이라크는 혁명정부가 반대하는 중도아랍국가들의 재정 지원을 받았으며, 암암리에 미국과 소련의 후원도 받았다. 반면, 이란을 도운 동맹국은 시리아와 리비아뿐이었다. 이 전쟁으로 이라크는 아랍 국가들에 막대한 빚을 진 반면, 강력한 군사력을 갖게 되었다. 이것은 후에 이라크에서 걸프전쟁이 일어나는 원인이 되었다.

 


[걸프전쟁]

미국을 중심으로 조직한 국제연합의 다국적군과 이라크가 1991년 초에 벌인 전쟁. 1990년 8월에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점령하자, 미국, 사우디아라비아, 시리아, 영국, 이집트, 프랑스를 중심으로 39개 국이 다국적군을 결성해서 쿠웨이트에서 이라크군을 몰아내려고 전쟁을 벌였다. 이 전쟁으로 아랍 세계는 심하게 분열했으며, 소련이 해체된 상황에서 미국이 국제 사회를 주도하는 상화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라크는 8년간 이란과 전쟁을 하며 많은 부채를 졌으며,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받았다. 그러나 군사력으로는 중동지역의 강국으로 떠올랐다. 한편 이라크의 후세인 대통령은 이라크를 아랍 세계의 맹주로 인정해야 하며, 이라크의 경제 재건을 다른 아람 국가들이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라크는 쿠웨이트와 협상에서 채무 면제와 경제 원조 규모에 합의를 보지 못하자, 1990년 8월 2일에 쿠웨이트를 침공해서 8월 8일에 쿠웨이트를 합병했다고 발표했다. 이라크는 쿠웨이트의 풍부한 원유를 장악해, 석유수출기구에서 이라크의 위상을 높이고 채무를 없애려고 했다. 많는 국가가 이라크의 침공을 비난했으며, 이라크가 사우디아라비아도 침공할 우려가 있다고 생각했다. 후세인은 이라크의 행동을 비난하다며, 아랍-이스라엘 전쟁에 획득한 영토를 계속 점령하고 있는 이스라엘도 비난받아야 한다고 주쟝했해서 팔레스타인 아랍인을 비롯한 일부 아랍인의 지지를 받았다. 그리고 아랍의 주요 석유 수출국들이 가진 부(富)를 모든 아랍인에게 공평하게 분배해야 한다고 주장해서 더 많은 지지를 얻었다.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는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자, 그것을 비난하는 결의안을 채택하고 이라크에 이료지원과 식량을 제외한 모든 교역을 금지했다. 1990년 11월 29일에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는 이라크가 1991년 1월 15일까지 쿠웨이트에서 철수하지 않는다면 무력을 사용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이에 이라크는 유엔의 요구를 무시했고, 다국적군은 철수 마감 시한 2일 뒤에 이라크를 공격했다. 그러나 이라크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의 인구 밀집 지역에 미사일 공격을 했다.

 


다국적군은 2월 24일 이라크 서부와 쿠웨이트 남부로 진격했으며 쿠웨이트에 있던 이라크군은 보급 수송로가 차단되어 곧 항복했다. 이라크는 4월 6일에 공식 휴전을 받아들였고, 11일 국제연합안전보장이사회가 종전을 공식 선언했다.

 


이라크는 휴전협정에서 쿠웨이트에 전쟁 피해를 배상하고, 생물, 화학, 핵무기의 제조 설비를 폐기하겠다고 약속했다. 국제연합은 설비 페기를 감시하는 검사관을 임명하고 이라크에 무역 규제를 계속해서 협정을 이행하게 했다.

 


그러나, 이라크는 휴전협정을 따르지 않았다. 1993년 1월에 미국, 영국, 프랑스는 국제연합 결의안과 휴전협정을 지키도록 하려고 이라크 남부 지역을 폭격했고, 11월에는 쿠웨이트경에서 쿠웨이트에 안전 참호를 파는 것을 반대하는 이라크군과 전투를 벌였다.

 


이 전쟁에서 이라큰 사망자가 10만여 명 이상이었을 것을 추측되며, 폭격으로 교통, 통신 시설, 주요 공자, 수도와 전기 시설이 파괴었었고, 경제가 파탄 지경에 이르렀다.

 

 

[2014, 08.10 현재의 이라크]

미군이 이라크 내 수니파 반군 '이슬람 국가(IS)'를 상대로 공습을 단행한 가운데 미국의 이번 사태 개입이 장기화될 전망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현재의 이라크 사태는 단 몇 주만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또 이라크군이 반군의 공격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개혁이 필요하며 이라크 정부는 먼저 군과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은 현재 이라크 북구에 고립된 5만~15만 명의 소수 종교 신도들을 돕기 위한 인도적 구호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출처 KoreaDaily 뉴스 중에서

 

 

[극단주의 창궐… ‘공존의 나라’ 이라크 갈가리 찢어놓다]

“기독교 등 소수 종교인들도 이라크에서 안전하게 보호받으며 평화롭게 살 권리가 있다.” 2004년 알카에다 계열의 극단주의 테러단체가 기독교 교회를 파괴했을 당시 수니파와 시아파를 막론하고 이라크의 이슬람 지도자들이 일제히 비난하며 한목소리로 했던 말이다.

 

 

시아파와 수니파가 반목하고 소수 종교 공동체 야지디와 기독교인들이 몰살당할 위기에 처한 오늘날의 모습에서 ‘톨레랑스(관용)의 나라’였던 과거의 이라크를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이라크는 중동에서 가장 많은 종교와 민족이 공존하던 국가였다. 2003년 이라크 전쟁 이후 분열된 정치와 그 틈을 비집고 세력을 확장한 극단주의 이슬람 세력이 ‘문화와 종교의 용광로’였던 이라크를 갈가리 찢어놓고 있다.

 

 

이라크는 오늘날 서구 문명의 토대인 고대 문명의 요람이다. 기원전 586년 유대인들이 포로로 끌려갔던 바벨론 왕국이 현재의 이라크이고,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인 도마가 기독교를 전파한 이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독교 공동체가 존재해온 곳 또한 이곳이다. 고대 페르시아 문명에서 유래한 야지디, 바하이 등 옛 종교의 원형을 간직한 소수 공동체들도 이라크 국경 안에서 명맥을 이어왔다. 35종류가 넘는 이라크의 다채로운 민족 구성원 중에는 흑인도 포함돼 있다. 9세기 무렵부터 아랍 중개상인들에 의해 노예로 끌려온 아프리카인의 후예들은 천년 넘게 이라크에 뿌리를 내려왔다.

 

 

이라크인들은 이러한 문화적 다양성에 큰 자부심을 가져왔다. 바그다드에서 태어난 알가이라니 우에르 영국 런던대 연구원은 “어렸을 적 내 아버지에게는 세 명의 소꿉친구가 있었는데 그들은 각각 기독교인, 유대인, 무슬림이었다”면서 “이는 조화로웠던 이라크의 과거를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내셔널지오그래픽에 말했다.

 

 

같은 뿌리에서 갈라져 나온 덕분에 많은 공통분모를 갖고 있는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의 유적들은 종교 통합의 현장이기도 했다. 알리 마무리 호주 가톨릭대 박사는 사회현상 분석지 ‘더컨버세이션’ 기고에서 “ ‘제르지스(성 게오르기우스)의 무덤’이나 ‘요나의 무덤’ 같은 곳은 기독교인뿐 아니라 무슬림들에게도 소중한 예언자의 성지” 라며 “무슬림들이 기독교 교회에서 기도를 하거나, 기독교인들이 이슬람 축제를 함께 즐기는 모습은 이라크에서 흔한 풍경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2003년 사담 후세인 정권이 무너진 후, 미 군정에 반발한 극단주의 무장단체가 세력을 확장하고, 종파갈등을 조장한 누리 알말리키 정권이 등장하면서 이라크는 위기에 처했다. 2003년 150만명에 달하던 기독교인은 극단주의 무장단체의 공격을 피해 이라크 밖으로 뿔뿔이 흩어져 지난해 35만명까지 줄어들었다. 만다야교 공동체도 2003년 7만여명에서 현재 5000명 수준까지 줄어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라크의 평범한 무슬림들은 IS가 다양성을 존중해온 이라크의 가치관을 훼손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IS가 모술에서 기독교인들을 쫓아내자, 기독교인들과 조화롭게 공존해왔다는 점을 자랑스럽게 여겨온 모술의 수니파 주민들이 크게 분노했다”고 전했다. 중동 매체인 온이슬람은 “IS에 쫓겨난 기독교도들을 보호하기 위해 무슬림 구호단체와 주민들이 앞장서서 옷과 식량을 내어주고 이들이 대피할 천막들을 마련해주고 있다”고 보도했다. 출처 경향신문 2014.08.14일자 참고

 

 

 

 

국제사회가 한마음이 되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세계평화를 위한 만국회의을 개최하므로 더이상은 이와같이 종교로 인한 분쟁이 없도록 만국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는 가운데 평화는 과연 누가 가져다 줄 수 있을까요?

 

 

이제는 행동해야 할 때이다. 상생과 통합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은 오직! 종교가 하나가 되는 종교대통합만이 그 답이다. 지구촌은 종교로 인해 끊임없이 발생하는 갈등과 분쟁을 막을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인들의 마음이 하나가 되는 종교대통합을 이루어야하고, 국제사회는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만국회의를 통해 대화와 화평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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