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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 교환학생 시리즈 2편

신비퀸 |2014.12.11 13:58
조회 120 |추천 0

 

​제 2편, 한국문화 전도사 그리고 아름다운 선율 아리랑

조용하고 맑은 아침이다

오늘은 한국에서 준비해온

야심찬 선물보따리를 주섬주섬 들고

호스트 가족이 있는 방문 앞에 섰다,


"똑똑"

"Can... I come in?"

"Sure"


"This.. is called 한복.. Korean Traditional Customs.."

선남선녀가 우리나라 한복을 입고

우아한 모습을 자아내는 인형을 건냈다.

좋아하는 그들을 보니 안도의 한숨과 함께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간다.


"I.. have one more for you"

아~~리랑   아~~리랑

단소를 꺼내 들어 입에 대고,

서툴지만 열심히 연습한 기억을 더듬어 한음씩

그렇게.. 텍사스에서 아리랑을 만들어갔다.


"Thank you, shinbqueen

Fantastic​, this is really great!"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당시 고작 17살 어린아이였지만,

서로 다른 문화를 교류하는 목적하에 운영되는

교환학생의 취지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인가


마치 한국문화 전도사라도 된 마냥

엄청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 바로

이 '아리랑' 이다.

그냥 이 노래 자체를 듣고 있으면,

어딘지 모를 우리나라 그 자체를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굉장히 조용하게 잔잔한 음으로

'아리랑 아리랑'

이라고 읇조리지만,

그 내막은 왠지 모를 강한 무언가가 담겨 있는 것 같다.


그냥 그런 느낌이었다.

17살 어린 내가 느끼기에,

완벽한 영어문법으로 한국이란 나라를 소개 하는 것 보다는

가장.. 한국 같은.. 우리의 것

내 마음을 울리는 그 어떤 것을

함께 공유하는 것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잔잔한 여유를 남기는 것

그래서 호스트 가족 앞에

서툰 솜씨지만 한 곡을 완성할 수 있는 용기였다.



하루

이틀

..

십일

..

이십일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아이러니한 부분이 생기기 시작했다.

정확히 유추할 수 없었지만,

최초 호스트 가족에 대한 정보가 달랐다.


호스트 아빠는 목사님이 되고자

공부를 준비하는 상황이라 말했던 것 같다.

현재는 미용실에서 일하시며, 얼굴을 뵙기는 쉽지 않았다.


호스트 엄마는 집에서 이웃 아이들을 돌봐주면서

여러 아이들을 챙겨주느라 정신이 없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30대 초, 중반쯤 되었던 그 부부는

당시 힘이 들었던 것 같다.

모두 다 마찬가지지만,

당장 처한 현실이 고달픈 그들에게

외딴 곳, 먼나라에서 온

나는 버거웠을 것이다.

 

그렇게 부부는 대화가 없어지고,

나 역시 그들의 시야에서 벗어난 느낌이었다.

오후쯤이었던 것 같다.

"Can.. I make a phone call to Korea?"

"I'm Sorry.

but No"

단호했다

사유는 미국생활에 보다 빨리 적응하기 위해

당분간 전화는 하지 말라는 것

 

사람마다 각자의 다른 가르침이 있듯이

그들 입장에서 내린 결론이었기에

충분히 존중한다.

하지만, 당시 어린 나로서는

그렇게 원망스럽더라...

 

지금과 같이 모바일이고, IT가 발달한 시점이 아닌

아주 느린 모뎀을 사용하던 그 시절이었기에

거실에 전화기 한 대 놓고

사용하기 위해서는 허락이 필요했다.

 

이렇게

몇 번의 다툼아닌 다툼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몇 달이 채 안되,

중간 관리자가 식탁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새로운 호스트 가족을 찾기 전까지

우리집에 있을테니,

짐 챙겨서 나오라고


그렇게 다시 이민가방을 양손에 끓고

문턱을 넘어 나오고 있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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