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많은 이들이 알고있다싶이 예수의 생애를 기록했다는 복음서의 내용들은 그 역사적 근거를 찾을 수 없으며 실제 역사 고증과도 많은 부분이 어긋난다. 이 오류를 풀고자 역사를 파고들수록 결국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생애에 대한 묘사는 심각한 모순투성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즉, 성경이 묘사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는 그당시 통용되던 지명도 모르던, 그 시기 갈릴리 지방에 대한 고증도 거치지 않은 이들이 써 내려간 훼이크라는 것이다. 이것은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에게 매료되어 예수를 역사적으로 증명하고 그의 생애를 더 알고자 하는 열망을 품고 그 단서를 쫓던 이들이 결국 도달하게 되는 종착이다.
역사적인 배경에 대한 서술도 허술하다. 물론 복음서는 역사서가 아니다. 단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책이다. 하지만 복음서에 서술된 내용은 실제 역사적인 배경과는 동떨어져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복음서의 시각을 보자면 헬라어로 쓰여진 이것은 당시 이스라엘에서 활동했던 예수의 생애를 전하는 유대인들의 기록물이 아니라 마치 유대인을 빙자한 로마인의 기록물처럼 보인다. 단지 여기서 복음서의 사실 여부를 논하는 것은 바보같은 일이다. 이미 성경학자들 조차 복음서는 실제 역사를 기록하지 않았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으니 말이다. 예수의 생애가 훼이크라 해도 이웃에 대한 사랑을 설파하는 인본주의적인 가르침 자체가 의미가 없다고 보지는 않는다. 다만 저열한 미신주의로 치닫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다들 알고 있는 복음서의 역사 기술이 뒤죽박죽이라는 모순점은 그냥 제쳐두고 일단 예수의 생에 배경이 되는 기원전후의 갈릴리 지방은 복음서가 전하는 평화스러운 분위기와는 다르다라는 것만 언급하고자 한다. 종교적인 신앙과는 상관없는 역사적 배경만 설명하도록 하겠다. 자, 복음서가 전하는 예수의 생애를 찾아 떠난다. 복음서에 묘사된 예수는 큰 기적을 행하고 당시 이스라엘에서 많은 주목을 받던 이였다. 당연히 그와 함께 같은 지역에서 생활하며 그의 활동을 목격한 이들의 기록부터 찾아봐야한다. 하지만 당시 유대의 기록물에는 이러한 내용들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그 단서조차 잡히지 않는다. 하는수 없이 다시 복음서를 펴든다. 기독교 로마인들이 주장하듯 예수가 로마총독 빌라도 통치하의 유대인 사회에서 십자가형을 당했다? 유감이지만 이러한 주장을 서포트해줄만한 그 어떤 문건도 존재하지 않는다. 즉,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라는 인물은 실제 역사기록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십자가 죽음을 증명하려는 시도들이 있어왔다.
예수라는 이름이 흔했던 것을 생각하면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생애를 아주 일부라도 증명해줄 기록물들을 찾아야 한다. 당대 유대의 기록물에서 예수라는 인물에 대한것이 전혀 없다는 것은 매우 이상한 것이다.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는 제자를 거느리고 성전앞에서 연설도 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심지어는 유대왕국의 독립을 가져다줄 메시아로 까지 언급이 되었던 인물이다. 분명히 그에 대해 회자가 되었을텐데 말이다. 이미 기독교도가 된 로마인들의 기록물을 빼면 예수의 이름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가 없다. 이것이 선후관계를 모호하게 한다.
복음서가 말하는 예수를 증명할 내용은 당대의 기록물에서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다는 말이다. 혹시 복음서의 배경이 잘못 된 것은 아닐까? 아니다 복음서의 배경은 분명히 기원전후의 시기를 말하고 있다. 복음서가 전하는 배경과는 달리 당시 이스라엘은 유대인의 무장봉기가 끊임없이 일어나는 혼돈의 시기였다. 예수가 자란 팔레스타지방은 로마의 영토였다. 계속되는 정복사업으로 로마는 너무 광대한 영토를 가지있었다. 유대인들을 통치하기 위해 안티파터를 왕으로 세우고 그가 다스리는 팔레스타인 정권을 만든다.
당시 이스라엘은 식민통치에 반대하는 유대인들의 무장봉기로 아수라장이였다. 이 투쟁은 복음서에서 예수가 태어났다고하는 시기 이전부터 시작되어서 그가 사망했다고 말하는 시기 후에도 백년이 넘도록 계속되었다. 어떤 상황인지 감이 오는가? 20세기의 이스라엘 - 팔레스타인 갈등처럼 서로 죽이고 죽는 불안과 증오가 가득한 사회였다. 로마군과 로마가 세운 안티파터와 그 아들 헤로데스 정권에 대한 격렬한 투쟁이 계속되던 시기였다
유대인의 무장투쟁은 AD 70년 로마군에 의해 성전이 불에 타서 잿더미로 변할 때까지 계속 되었다고 한다. 특히, 예수가 어린 시절을 보내며 그 활동의 중심지라고 말할 수 있는 갈릴리는 유대인들의 무장투쟁 독립운동의 거점이기도 했다. 헤로데스가 사망한 BC 4 무렵 예수가 태어났다고 생각하면 복음서에 기술되어있지 않은 그의 유소년 청년 시기는 심각한 혼돈속에 헤로데스의 아들 아켈라오에 의해 학살극이 벌어지던 시기다. 헤로데스의 사망후 그의 아들 아켈라오는 왕권에 대한 승인을 받기 위해 로마로 향한다. 바로 그 시기 이스라엘에서는 너도 나도 왕을 자쳐하며 무장봉기가 절정으로 치닫던 시기였다. 예수가 사역을 시작한 30세 때에도 갈릴리뿐만 아니라 유대 전역, 예루살렘에서까지도 격렬한 무장투쟁이 일어나고 있었다.
당시 메시아라고 자청하던 이들은 무장봉기를 주도한 이들이였고 유대인들로 부터 메시아로 칭송되는 이는 로마로 부터 독립국가를 선포한 바르 코르바였다. 유대의 반란이 거세지자 로마군은 수천명을 십자가에 못박았으며 끊임없이 계속되는 반란으로 수십만명이 학살되었다. 셀수도 없는 십자가들이 즐비했다. 그야말로 피와 살육의 시대였다. 이러한 언급은 복음서 어디에서도 찾아 볼수 없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