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지난 주말 지하철에서 할아버지 두 분 덕에 아주 황당한 경험을 했네요. 몇몇 친구들한테 카톡으로 제 경험담 들려줬는데도 그 당시 생각만 하면 분이 가시지가 않아 푸념이나 하려 처음으로 판에 글 남깁니다.
이제 슬슬 3월이 다가오는데 봄옷이 하나도 없어서 지난 토요일에 엄마랑 오랜만에 나들이 겸 쇼핑을 하러 지하철을 타고 백화점에 다녀왔습니다.
양 손에 쇼핑백을 들고 지하철에 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운 좋게도 자리가 두 자리 나서 엄마랑 나란히 앉았습니다. 쇼핑백은 무겁기도 하고 다른 승객들한테 걸리적 거릴까봐 머리 위 선반에 놓았고요.
그렇게 지하철을 타고 몇 정거장을 지나니 어느새 할아버지 두 분이 제 앞에 서 있더라고요. 제가 앉은 좌석이 노약자석도 아니고 저도 하루종일 돌아다니느라 다리가 아파서 그냥 앉아갈 생각이었지만, 앞에 계신 할아버지들이 서로 "어이구 자네 다리도 안 좋은데 앉을 자리 어디 없나.." "에이 놔둬 어차피 노인네 금방 죽을 운명인데" 거리며 눈치를 하도 줘서 자리를 한 분한테 양보했어요.
고맙다는 말도 없이 냉큼 앉으시더라고요.ㅎㅎ 그러고서 얼마 지나지 않아 할아버지의 옆자리(우리 엄마 자리 말고. 엄마는 자리를 양보하지 않으심)가 비어 서 계시던 다른 할아버지가 앉았어요.
여기까지는 괜찮은데 문제는 또 얼마 후 여자 두 명이 짐보따리를 들고 지하철을 타면서 시작됐어요. 두 여자는 20대 초반 정도 되어 보였고 동대문쪽에서 지하철을 탄 걸 보니 아마 재봉하는 데에 필요한 재료 같은 걸 산 게 아닐까 싶어요.
여튼 그 여자분들도 짐이 그렇게 걸리적 거렸다면 위쪽 선반에 올려놓으시지(짐도 우리 짐보다는 훨씬 적었어요) 계속 낑낑거리고 다리 아프다 찡찡거리더라고요.
그걸 두 할아버지가 보더니 "젊은 친구들, 젊은데 고생하네. 여기 앉아" 하면서 자리를 양보하는 게 아니겠어요?
순간 저는 벙찌고, 그 때까지 계속 그 할아버지들 옆에 앉아 계시던 울 엄마께서는 제 손을 잡아 끌어 할아버지들이 일어난 자리에 앉히시며 "아니 애가 자리 양보해줬는데 그 자리를 다른 새파랗게 젊은 사람한테 양보해주는 게 말이 되나" 하시며 혼잣말 아닌 혼잣말을 하셨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엄마께서 하신 말씀 중에 틀린 말씀은 없는 것 같은데 할아버지 둘이 "에이그 저렇게 못 돼 처먹어가지고.. 이래서 대한민국 아줌마들 싸그리다 태워 죽여버려야 한다니까" "젊은 친구들 저기 개념 없는 아줌마 말 무시하고 여기 앉아요" 하시며 그 젊은 여자 둘 중 하나를 앉히고서는 내릴 때까지 우리 엄마랑 대한민국 아줌마 욕을 하더라고요.
욱해서 한마디 하려고 하니까 엄마께서 제 손 잡고 말리시며 괜히 지하철 막말녀 같은 동영상이 찍히는 게 아니라고, 우리가 더 많이 배워먹은 것 같으니 참자고 귀에 대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모처럼 엄마랑 새옷도 사고 맛있는 것도 먹고 기분 좋게 집 가는 길에 기분 잡쳤습니다..ㅠㅠ
당연히 모든 노인 분들이 저러시진 않겠지만, 자리 양보해줘봤자 다 부질없다고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내 다리 포기해가며 자리를 양보하냐던 친구 말이 갑자기 생각나는 거 있죠...
평소에 노약자석 표시가 된 곳은 자리가 생겨도 찜찜해서 안 앉았고, 머리가 좀 희끗하다 한 분들한테 웬만해서 자리를 양보해드렸는데 이런 제 행동들이 갑자기 한심하게 느껴진 하루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