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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中毒) - 마흔번째

독백 |2004.01.08 15:33
조회 219 |추천 0


" 그리고...친구의 생일이 된거야...그 친구는... 가장 인기도 많고 예쁘고 똑똑하고...공부도 잘
하는 친구였는데... 그 친구의 생일에 초대 된거야... 나는 너무 기뻤지만... 그날은 너무 슬픈
날이었어... 그 친구가 나의 어린 왕자님을 내 눈앞에서 빼앗아 갔거든... 그래도 나는 즐거워
할 수 밖에 없었어...부러웠지만...슬펐지만...나는 어린왕자님에겐 턱 없이 부족한 사람일 뿐
이었거든... 그리고...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왕자님이 나한테 말했어... 나는 너뿐이라고..."
" ......."
"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어린 왕자님 생일이 되었어... 난 며칠 전부터...아니 몇달 전부터 그날
이 오기만을 기다렸는데... 그렇게 기다린 왕자님의 생일에... 내가 준비한 선물을 건낼 수가
없었어... 내 선물은 볼품 없는 초라한... 털 장갑이었거든... 그런데... 왕자님은 둘만의 생일
파티를 준비했고...너무 기뻤어... 그리고... 난 내 가방속에 든 털장갑을 만지작 거렸을 뿐 그
에게 줄 수가 없었어... 너무도 고민 됐거든... 주어야 할 까...말까... 그런데...그때... 그친구가
나타났어... 나는 손에 들려 있던 가방속의 털 장갑을 놓았고... 누구에게 들킬까 가방을 꼭
닫아버렸어..."
" ......."
" 중학생이... 중학생이 되었어... 내 어린 왕자님은 어느 덧 많이 자라 있었고... 이제 더이상
어린왕자님이 아닌 나의 멋진 왕자님에게 고백을 하려고...학교에서 수많은 말을 준비했어...
뭐라고 해야 할까...뭐라고 해야...하는걸까...나를 받아 주긴 할까?... 그리고 왕자님은 언제나
그렇듯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그에게 달려가는데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어... 그에게 가자
그의 뒤엔 험한 얼굴을 한 아저씨가 보였고...난 그에게 가기 싫었어...근데 그의 차가운 손이
내 얼굴에 닿았고...나에 왕자님은 그에게서 용감하게 나를 구해냈지...근데... 거기서 그치지
않았고... 그날... 내가 고백 하려고 했던 그날... 나에 왕자님은 나에게서 멀어져 버렸어..나때
문에... 너무도 초라한 나 하나 때문에... "
" ......."

 

태빈은 혼란 스러웠다. 지우가 하고 있는 얘기... 어느 누구에게도 해본 적 없는 얘기를 하고 있
는 지우... 이 얘기를 들었어야 할 현표... 그는 지금 이자리에 없었다.

 

" 그리고...이제야... 얘기를 할 수 있을까... 몇년을 기다려온 내 마음을... 말하고 싶은데... 말
하고 싶었는데... 다시 나타났어... 내 어린왕자님을 빼앗아 갔던...그애가..."

 

무엇이든 말 하고 싶었다. 아니라고...현표는 널 사랑했다고 아니...살아 있다면 지금도 널 사랑
하고 있을 거라고...현표는 죽어서 조차 너만을 사랑할 거라고 말 하고 싶었다. 하지만 태빈은
지금 현표의 역할 일뿐... 현표의 마음을 대신 전해 줄 수가 없었다... 여기서 현표의 마음을 전
한다면 그건... 결국 현표가 아닌 자신과의 행복을 위한 대답일 테니까...

 

" ...누나..."
" 나...너무 바보 같지... 난... 이제 네 누나 일뿐인데... 송지우가 아닌 이지우 인데... 이런말 하
면 안되는 건데... 그치?... 우리는... 우리는 될 수가 없는데... 아니... 이건... 나만의 생각 일뿐
인데... "

 

지우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슬픈 눈을 하고 있는 지우에게 태빈의 머릿속에선 수없이
많은 말을 하고 있다. 아니라고... 그런게 아니라고... 그런건 상관없다고...
하지만...태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제는 더이상 현표의 마음을 전하는 게 아니라...
무언가를 말 한다는건 자신의 마음을 말하는 거였기에... 부정하고 싶었지만... 그는 지우를 처
음 본 순간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지우를 사랑해 왔다. 지우가 사랑하는게 그녀의 어린 왕자
현표라는 걸... 자신이 사랑해서는 안되는 거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말없이 울고 있는 그녀를 안았다. 그의 품에서 울고 있는 그녀를 마음
으로 안았다.

 

 

다음날 아침 일찍 서울로 올라가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떠날 준비를 했다. 그리고 서울
로 돌아오는 내내 차안은 조용했다. 밤새 또 고스돕을 쳤던 기석은 피곤하다며 뒷좌석에서 잠
이 들었고, 태빈은 지우의 옆에 앉아 창밖을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우 역시 운전
에 몰두 할 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 이현표! 나 졸려."

 

갑작스런 지우의 장난스런 말에 태빈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았다. 정말 졸려서 하는 말이 아
니라는 걸 알고 있는 태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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