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기는 뻘소리 퍼레이드를 하고 있는 어떤 개독들에 대해 한마디 해 주면. ㅉㅉㅉ
역사공부좀 제대로 해 먹으라고. ㅋ
1. 당연히 기독교? 유대교에서 출발한거 맞어~ ㅋ
그럼 왜 유대교에서 분리 되었다? ㅋ 전쟁질 하다가 뒤통수 치기를 서로 해서. ㅉㅉㅉ
왜 유대교적 풍습을 내쳤냐? 로마가 가오가 있지. ㅋ
이래서 내가 니들 종교를 까는덴 동성애 옹호도 필요 없다고 하는거여.ㅋ
그건 니들 행동레벨 문제고. ㅋ
2. 기독교의 근간? 당연히 유대교 분파주의지. ㅉㅉㅉ
여기서 간단하게 내가 아까 한 질문을 함 살펴 보면? ㅋ
"퀴리니우스 총독 시대(CE6~9) 헤로데 대왕(BCE4년 사망)의 치세에 인구조사(BCE8/CE14)때 태어나서 영아 학살을 피했다가 33세에 폰티우스 필라투스(CE26~36)에게 처형당한 예수가 실존 인물이다?"
예수는 실존인물이 아니거든. ㅋ 즉, 개독들의 문제는 예수가 있었다고 치고 역사적 가설을 얼기설기 매어 놓으니 엿을 먹는거지. ㅋ
즉, 유대교의 여러 메시아닉 운동의 결과로 교파가 난립했는데, 이때 기존 유대교와 마찰이 있었고, 해외로 나간 놈들사이로 퍼진게 바로 이 유대교의 신진분파들이고, 또한 그러다 보니 헬레니즘 사상을 차용해서 본토 유대교와 성향이 달라지게 된 거지. ㅋ
또한 이때 메시아닉 사상은 당연하지만 반로마 항쟁과 연관이커서, 에세네파등과 연관성이 심각하게 있었고..ㅋ 이런 관계였는데..ㅋ
2. 자, 여기서부터가 스토리인데, 유대교 기독교간 불편한 진실의 스타트를 끊은 건 유대교지. ㅋ
유대교측 기록을 보면 타나크(유대교 정경)의 성립을 거의 주도하다 시피 한 인물, 아키바 벤 요하이라는 사람이 언급되는데, 이사람은 대략 CE80년대부터 유대교 내부에서의 경전 논쟁을 주도하다 시피했고... 주 논점은 "외경 사용자들의 정당성을 비판" 하는 것이었거든. ㅋ
이 외경 사용자? 당연히 기독교인들이지. ㅋ 문제는 당시 이런 행동들은 상당히 작위적이었고, 실은 로마를 의식해서 유대로마 전쟁의 반란시에 참여한 메시아닉 유대교(기독교의 전신쯤?) 에 대한 유대교 내부의 분리운동(토사구팽) 같은 건데, 이쯤해서 유대인들의 유대교와 이역으로 나가있는 유대교도, 헬레니즘 종교도, 기독교도 아직 아닌 어정쩡한 종교에 대해서도 이런 관점이 적용되었고 당연히 이들이 반발을 할 밖에. ㅋ
이 시점에 특기할만한 기록이 있다면 그건 에비온파인데, 나중에 기록된 나자렌파와 함께 유대 기독교의 일원으로 존재했기 때문에 건너오는 단계였고, 이들은 스스로가 유대교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유대교의 회당에 나갔던 기독교인들이고. ㅋ
문제는 이시점에서 외지의 유대교는 시궁창 현실 때문에 어쩔수 없이 지하묘지에 들어갔다가 식인종 소리를 들어먹는 안습한 상황이었거든. ㅋ 이때 등장한게 바로 호교론이란 거지. ㅉㅉㅉ
즉, 하도 욕을 먹고 일부러 잡진 않지만 걸리면 잡아서 사자 밥이나 줘라~ 신세가 기독교인들이었던 관계로 이 상황을 타개하고자 2세기에는 기독교를 변호하는 운동이 시작되는데 말여~ 여기서 이번엔 기독교가 유대교 뒤통수를 빡~ 하고 갈겨. ㅋ
3. 사건의 발단은 바르코크바 반란사건인데 말여~ ㅋ 당시 이 반란에는 저 에비온파와 나자렌파도 끼어 있었다고 허는디~
유대교 쪽에서 주장한게 이때 "코크바를 메시아로 인정해라" 였는데 이 두 분파에서 말한것이 "택도 없는 소리" 였고, 당연하지만 하라는 싸움질은 안하고 결국 반란은 실패, 이때부터 돌아올수 없는 강을 건넌건데..ㅋ
니케아 공의회보다도 이미 200년쯤 앞선 시대에 마르시온과 같은 유대교에 분노한 기독교 교부들은 "유대교 경전을 아예 빼자~!"는 주장을 할 정도로 기독교측 입장에선 빡치는 소리였던게지. ㅋ
아, 그래서 뺐냐고? 아니~ ㅋ 왜? 정치적 문제 때문에. 사실 이당시 기독교의 핵심교구는 로마였는데, 문제는 이 노다지의 땅을 두고(헌금이 제일 많은 대가리격인 교구) 이런 저런 파벌간의 문제가 극심했고, 당연히 마르시온의 반대쪽에서 당시 주교(교황) 자리를 꿰차면서 마르시온을 이단으로 선언해 버렸기 때문에...ㅋ
뭐 이후에 다시 복권하는 형태가 되긴 했지만, 사실 기독교의 유대교 배척운동은 이미 2세기에 바르코크바 반란을 기점으로 돌아올수 없는 강을 건너브렀지. ~ ㅋ
보이냐? 그니까 교리 차이 문제가 아니라고. ㅉㅉㅉ 교리는 그저 거들뿐. ㅋ
4. 아, 그라믄 니케아의 문제는 어떻게 된 거냐고? ㅋ
당시 종교의 절기를 맞춰야 하는 시점에서 콘스탄티누스의 입장과 보편교회측 입장이 맞물린 결과인데, 로마 입장에서는 "로마의 국교가 변방, 그것도 반란으로 이베리아 반도로 쳐박아 버린 소수민족의 것이어서는 안되었고", 당시 보편교회 입장에서는 "일단 뭐가 어쨌거나 아리우스파 먼저 까야 하는게 수순이라서 반 유대주의자들도 포섭을 해야 할 필요성"이 있던것. ㅋ
따라서 우리가 잘 아는 춘분제가 부활절로 간 거고, 되도록 유대교 문제는 여기서 꺼내지 않는 각도로 조정이 된 것 뿐이지. ㅋ 게다가, 개독들 착각하는게 있는데..ㅋ
기독교내에서 유대교를 완전히 팽하자고 생각한 건 율리아누스 이후임. ㅋ 즉, 율리아누스는 하도 기독교가 극성을 떨자 열받아서 종교 다원주의를 주장하고 유대인들의 예루살렘 재건을 허가해 버리는데, 이 시점부터 기독교는 위기감을 느낀 거고 결국 율리아누스 이후엔 반 유대주의적 노선을 무려 1600년 이상 유지한 거지. ㅋ
보이냐? ㅉㅉㅉ 그냥 걔들이 엄청 뒤끝이 심한 거고, 게다가 권력욕이 만들어낸 결과고. ㅋ
아, 다시 첨으로 돌아가서? 그럼 예수는 어케 된거냐? 이것도 웃기는 경우인데, ㅋ 사실 기독교는 나중에 가서야 예수라는 인물을 가공하기 시작한 거지. ㅋ 즉, 그가 실제로 있었던 인물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일단 교리적으로 "예수라는 인물이 있었단 사실은 대략적으로 합의하고 그에 맞춰서 자체적인 경전을 만들자.." 라는 주장을 하게 된 거고, 여기서 문제가 생긴건 바로 QMLP라고 불리우는 근거 사료의 문제지. ㅋ
즉, 예수의 모티브의 기원이 다 달랐고, 따라서 사실상 저 위의 예수 기록이 개발 새발인 것은 애초에 한명이 아닌 놈의 일대기를 하나로 묶으면서 생긴 오류인 거임. ㅋ 이 근거사료가 최소한 Q,M,L,P라고 불리우는 네개 이상 될 것이라는 복음서의 문서설이 바로 이것인데...
보다시피 누가복음하고 마태복음의 기록의 차이가 확 나지? ㅋ 당연히 이 경전들을 각각 만든 분파들에서 "공통적으로 쓴 것"은 같은 이야기가 되고 "자파의 자료를 인용한 것"은 다른 이야기로 남는 거고. ㅋ 문제는 이게 기록이 오류가 있으면서도 한번에 들어간 이유인데..ㅋ
원래 이 작업을 하던 인물이 바로 유세비우스인데, 사실상 그는 AD를 만들게 된 원흉이기도 한 인물이지. ㅋ 즉, 예수라는 사람이 실존했다고 주장하기 위해서 여러 근거를 조작하거나 혹은 있는 근거에 짜맞추기를 한 인물인데, 문제는 이 유세비우스가 카르타고 공의회 이전에 디져버린거여. ㅋ 즉, 만일 유세비우스가 있었다면 마태와 누가의 내용은 아마 한쪽이 짤리거나 혹은 한쪽이 조정 되었을 것이겠지. ㅋ
이게 어케 가능하냐? ㅋ 달리 말해서 4세기 후반, 유세비우스 사후 한 50년쯤 지나서야 정경이 생기고 거기서 고치지 않기로 했던 거라서 말이지. ㅋ
즉 웃기는 경우인데 동영상 보니까 생명? 풉.. 뭐 개뿔이고. ㅋ
실은 정치놀음으로 그럴싸한 종교를 만들고 타협을 봐야 하는 상황이니 알아서 짜 맞춘 건데 뭔놈의 생명은 생명이라고 구랄 치나. ㅉㅉㅉ 애초에 유대교 척결운동도 율리아누스 이후구만. ㅋ
즉 니들은 신은 애초에 니들 종교가 생겨먹던 시절에 조차 니들의 사상안에 없었어. ㅋ
자, 보다시피 뻔한건 뭐냐믄.. 현실역사를 알면 니들 종교구라는 안 믿게 되더라고. ㅋ
뒤집어 말하면 니들 행동비판을 하는 것과 교리와 종교의 주장의 구라에 대해 비판하는 내용은 전혀 별개라는 거이지. ㅋ
동성애의 문제는 단순히 말하면 니들이 되도 않는 사이비 과학으로 사기쳐 먹는 중인거고. ㅋ
이건 전혀 다른 문제로 되도 않는 교리망상으로 역사왜곡 하는 거지. ㅉㅉㅉ
메뚜기다리 네개와 메뚜기다리 여섯의 현실의 차이가 그런 법이지. ㅉㅉㅉ
깔게 그거 하나뿐이라고 생각하믄 오산이여. ㅋ 교리영역이나 기독교사 영역이라면 내 입장에서는 동성애자들 까는 니들 구라 까는 거보다 더 쉬운 영역이니까. ㅋ
그 영역으로 가면 무쟈게 괴로울텐데? ㅋ 지금까지 동성애 가지고 구라쳤다 욕먹은 거보다 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