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달콤쌉싸름한 30살(5)

리드미온 |2004.01.10 02:15
조회 35,134 |추천 0

리츠칼튼 호텔로 오라는 민준의 말에 간단히

'그래'

라고 대답을 해놓고 보니 여간 걱정이 앞서는 것이 아니었다.

 

무슨 옷을 입고 갈 것인가, 화장은 어떤 톤으로 할 것인가, 차는 가지고 갈 것인가...

이럴 줄 알았으면 오늘 약속이 있으니 내일 만나자고 할 걸 그랬나...라는 후회까지...

또 아예 만나는 걸 취소하는 전화를 다시 할까...등등.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리 속을 휘젓고 있으면서도 손은 옷장의 뒤적거리며 가장 적당한 옷을 찾고 있었고 거울을 보다가 아예 머리를 다시 감고 몇 년 동안 쓰지 않은 셋팅기를 꺼내서 전원을 키고, 어제 빨아놓은 스타킹이 맘에 드는데 그게 말랐나...손으로 만져 보고....

무엇 보다 걱정은...

 

'아..그 때보다 나이 들어 보이면 안되는데.....'

라는 것이었다.

 

선전도 있다. '절정일 때 지켜라~ 27살....'

그 선전이 왜 이제야 나오는 건지....내가 27살 땐 주름방지 아이크림이나 레티놀이 최고 인기 였는데 말이다. 하긴 그렇다고 아이크림이나 레티놀은 쓴 것도 아니었다.

평소에는 '여자는 가꾸어야 한다'라는 말은 상술이거나 아니면 외모지상주의자들의 압박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가끔 데이트를 하려고 준비할 때는...역시 그 말이 맞아...라고 공감하면서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 저주스러웠다.

 

아, 생각났다. 순간 미백크림....작년에 사둔 것이 있는데 다행히 아직도 좀 남아 있었다. 이걸 바르면 순간은 얼굴이 티가 가려지며 3년은 젊어보이리라....

 

아무튼 너무 준비한 티를 내면 안되니까 스스로 리츠칼튼 호텔에 도착하는 것을 1시간 30분후로 정하고 바삐 움직였다. 여자가 최대한 짧은 순간에 많은 일을 할 때가 데이트 준비할 때일지도 몰랐다.

 

택시를 타고 리츠칼튼 호텔 앞에 내리는 순간이었다.

아주 낯익은 얼굴 하나가 내 앞을 황급히 지나갔다. 그리고 호텔 벨보이가 몰고 나온 차에 올라 타고 있었다.

 

이런 우연이....

분명 K양이었다.

내가 K양이라고 지칭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그녀의 이름이 원래 '김연실'이었는데 데뷔하면서 예명으로 '김미나'로 바꾸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처음 그녀를 안 것이 '김연실'이었는데 어느 날 느닷없이 '김미나'라고 하니 어색하기만 해서였다.

 

연예인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기는 처음이었다.

분명히 그녀는 아름다웠다.

사람들이 우연히 어떤 연예인을 처음 봤을 때

'정말 이쁘더라...'라는 부류에 속하는 것 같았다. 그녀가 성형미인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래...이젠 세상이 바뀌었다. 자연추녀 보단 성형미인이 대접받는 사회이다.

나도 그 사회에 적응해서 뭐 하나는 뜯어 고쳤다면 좋았을텐데....라는 후회가 막심했다.

그 넘의 교육은 '외모보단 마음이 최고'라는 것 이상을 가르쳐주지 않았었다.

'외모가 개인 경쟁력이며 곧 재산이 된다는 것'은 서른이 되서야 피부로 느낄 수 있고, 이미 절감했을 땐 인생의 결승선에 와 있는 노처녀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아니다. 그래도 나름대로 나는 잘 살아왔다. 놀고 먹는 백조도 아니고, 거기다 3년 전의 남자가 잊지 않고 연락을 해오지 않는가....

K양은 끝없는 구애를 받고 있다고 하더라도 3년 만에 그 애틋한 키스의 추억을 갖고 다시 연락할 남자는 없지 않을까...어쨌든 그녀가 남들이 말하는 성공적 인생을 살고 있다면 나는 로맨스에서만은 그녀보다 성공할 수 있다....

값으로 말할 수 없는 '자신감'이 나에겐 넘치고 있다고....

 

나는 조금 더 당당해 보이려고 허리를 펴고 또박또박 힘있게 걸으며 호텔 리셉션 데스크로 가서 '1207호의 손님과 연결해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또 하나의 의문이 들었다.

민준은 왜 핸드폰을 쓰지 않았던 걸까? 굳이 호텔 전화를 거는 이유는 뭘까....

아까 나에게도 핸드폰 번호를 알려주지 않고 호텔로 전화하라고 하지 않았던가...

 

"방으로 올래? 로비에서 사람 북쩍이는 데서 만나는 것도 싫고...내가 저녁을 룸서비스로 준비해놨거든..."

 

'방으로 오라고?'

호텔로 오는 것도 좀 꺼림직했는데, 이젠 방으로 오라니....

그러나 그의 말투는 여전히 다정하고 친절해서 내가 '방으로 오라구?' 되묻는 것이 쑥스러울 정도였다.

 

'그래 몇 년만에 호텔방이라도 구경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호텔이라고는 2년 전쯤 워크샵으로 부산에 갔을 때 가본 것이 마지막이었다.

도대체 마지막으로 해본 것이 다 몇 년 전인지...난 그 동안 도대체 뭘하고 살았던 건지....

 

1207호 앞에서 벨을 누를 때까지 웬지 모를 긴장감에 심장이 뛰고 있었다.

내 심장이 뛰는 거였군.....

그냥 죽지 않을 정도로 숨이나 쉬라고 있는 심장인 줄로만 알았는데 나름대로 반응을 할 줄 알았던 심장을 달고 있었던 것이다.

 

호텔 방문을 여는 민준을 대한 순간 나는 더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모습은??

 

3년 전의 모습은 어느 한구석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가장 먼저 느꼈던 것은 낯모르는 향기....향수인지 스킨 냄새인지 샴푸냄새인지 모르는 세련되고 산뜻한 향기...

그리고 후즐근해서 눈길 가지 않았던 옷차림은 다년간의 코디네이터 경험이 있는 듯한 깔끔한 캐주얼 패션으로 바뀌어 있었고, 아무 것도 바르지 않아 푸석했던 헤어스타일은 방금 미장원에 나온 것처럼 잘 정돈된 멋을 풍기고 있었다.

 

'여전하군'

민준의 그 한마디가 나의 펄떡거리며 뛰고 있던 심장을 평소 상태로 돌려 놓았다. 

여전하다니......

여전히 아름답다는 뜻은 아닐테고...여전히 발전이 없구나...란 뜻으로 들렸다.

 

호텔방은 한 눈에 보기에도 평범한 객실이 아니었다. 현관과 거실이 있고 침실이 안보이는 것으로 보아 정말 말로만 듣던 '스위트룸'이었다.

 

도대체 표정관리가 되지 않았다.

맘편히 생각하자고...정월 초하루에 좋은 구경하는 거라 생각하자고....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있었다.

이렇게 어울리지 않는 곳에 와본 적은 아마 인생의 처음이지 않을까 싶었다.

 

"뜬금없이 연락도 다하고?"

애써 태연한 척 한마디했다.

 

"그나저나 날.... 기억하고 있었어?"

"으~응. 그럼~"

단 두 마디만에 평정심을 찾은 나를 보며 역시 연륜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3년만에 연락된 남자와 호텔방에서 단 둘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이 여유는 이십대 초반엔 불가능한 것이리라...

 

"반갑다."

민준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그리고 보니 3년 전에도 손은 잡아보지 않았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민준의 악수를 받아주었다.

 

식탁으로 보이는 곳엔 과일과 와인이 놓여 있었다.

민준은 익숙하게 와인 한 잔을 따라 내밀었다.

 

전화 통화만 할 때는 몰랐는데 민준의 행동은 모든 게 자연스럽게 느껴져서 내가 거부할 수 없었다.

그저 나는 그의 말과 행동에 응해주면 영화가 계속 이어지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있었다.

 

"안 물어보네...여전해...그 자존심...."

"뭘?"

"안 궁금해? 왜 내가 지금 나타나서 연락을 했는지?"

 

궁금했다. 그 궁금함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닌가....

 

"그때 정말 좋아했었지. 그 자존심...그 자존심 지켜주고 싶어서 동갑이란 거 끝까지 말 안했던 거고..."

 

3년 만에 어쩌면 이렇게 모든 것이 달라질 수 있는지 신기했다.

민준이 아르바이트 할 때는 송별회의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 아니면 오늘이 있기까지는 내가 우위에 있었다.

 

'민준씨, 다 됐어요?', '오늘 왜 지각했어요?', '어머니 생신인데 일찍 들어가세요'....

내가 명령을 하는 쪽이었다면 그는 그 명령에 복종하는 아르바이트생이었다.

 

그런데...그 날 키스 사건 때문인지...민준은 너무나 친근하게 혹은 나를 꿰뚫고 있듯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네가 날 변하게 했어...넌 알지 모르겠지만..."

 

'내가 민준을 변하게 했다고?'

도대체 내가 뭘했길래....

가만.... 송별회 때 내가 선물을 해주지 않아 미안하긴 했었다. 그 때 워낙 정신이 없었던 탓이고 팀차원으로 선물을 챙기는데 그걸 내가 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선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못했는데 많은 여직원들이 송별회 자리에서 개인적 선물을 내놓는 바람에 당황했었다.

나만 선물을 안해줘서...분노의 칼을 간 것인가...

아니면, 그 날의 단 한번의 키스가 너무 달콤해서 날 잊을 수 없었다는 그런 변화인 것인가....

그건 아닐 것이다. 27살의 남자가 여자와 잠을 잔 것도 아니고 단 한번의 키스로 일생의 변화를 겪게 된다는 것은 영화나 소설에서나 나오는 얘기가 아닌가....

 

"아르바이트 끝나고 복학을 안 했어. 미국으로 갔지...."

내가 미국으로 가라고 했었나?

아니다. 아르바이트 끝나고 뭐할거냐고 물었을 때 '글세..'라고 해서 한대 패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게 전부였는데...

 

"그래서?"

민준에 대한 궁금증은 더욱 증폭되기만 했다.

도대체 이 인간은 나한테 어쩌라고 이렇게 계속 호기심과 궁금증만 유발시키고 있는 건지....

어쨌든 지금 내가 앉아 있는 소파는 너무 안락했다.

 

---------------------클릭, 달콤쌉싸름한 30살 6편 보기---------------------

 

 

 

 

 

☞ 클릭, 열번째 오늘의 톡! 밥 두그릇 퍼놓고 도망간 도둑 아저씨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