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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신랑

사는게뭔지 |2008.09.30 18:14
조회 106,685 |추천 0

이렇게 많이 저에게 충고를 해주서 감사합니다.

닭이 원인이되서 큰싸움이 되었지만, 맘속에 있는 애기를 할수 있어서 그나마 스트레스 풀렸습니다.   신랑! 미안하다고 싹싹비네요..다 우리를 위해서 그런다고... 

그런 저 맘약해서, 또 넘어갔습니다.

이 싸움계기로 용돈 받기로했습니다. 경제권은 차차 빼앗아와야겠죠~^^

그리고 집사면 제명의로 해준다나..(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앞으로도 맨날 이런거 땜시 싸우지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많은걸 바라는건 아닌데... 그냥 이상태에서 좀더 여유롭게 살고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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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지 6년차입니다.

신랑연봉3천정도 됩니다. 저도 돈법니다. 울집 자식없습니다.

근데, 울신랑 돈아껴야한다고, 절대 비싼거(만원넘으면 무조건 비싼거..) 안먹습니다.

옷도 만원이상 비싼건 거의 사본적이없습니다.

집마련때문에 그런다고 하지만, 너무 심합니다....

며칠전에 통닭이 너무나 먹고싶었습니다.

그래서 x교 치킨 먹자고 하니깐, 사람존심 밑바닥으로 끌어내립니다.

철이없다는둥,온갖 말로 존심 뭉게버립니다.

정말 오기로 계속사달라고 하다, 결국에 싸워버렸습니다. 넘 화가나서요...

경제권도 신랑이 가지고 있어서, 저 옷한번 제대로 산적없고, 화장품 비싼거 사본적도 없습니다. 제 친구들한테 존심상해서 제가 경제권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월급도 고대로 자기통장으로 들어가고, 그렇다고 해서 용돈을 받기나하나, 뭐좀 사달라고 하면,"너는 사달라는게 와그리많냐" 그러질 않나...

그래서 주말에 미용알바나갑니다. 이알바돈에대해서 참견말라고 했습니다.

이건 내꺼라고,.,,,,,근데... 이돈 아까워서 못쓰겠습니다.한달에 두번밖에 안쉽니다.

계속 풀로 평일은 사무실, 주말엔 미용실,,, 정말 힘들지만, 제돈이 생긴다는 기쁨에 계속 나가네요...

열심히 번돈이라고 그런지 정말 못쓰겠어요...

울신랑, 제가 한번이라도 불쌍하게 봤으면 그넘의 치킨 당장시켜주었을텐데,..

치킨땜시 울신랑 더 보기싫어졌습니다.

정말 서럽고, 존심상하고....

혼자 열받아서라도 사먹어야겟어요....ㅡ.ㅡ

그게 저의 복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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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플문지기|2008.10.01 17:42
알뜰한거 물론 좋습니다. 그렇지만 무엇이든 넘치는건 모자라느니만 못하다 했습니다. 알뜰한것도 정도껏 해야지 아내가 통닭 먹고 싶어 그러는데 그게 몇십만원 합니까 몇백만원 합니까..인생 꼭 그렇게 살아야합니까.. 먹는것만은 그러지 말아야죠. 다 먹고 살자고 하는짓인데. 지금은 젊어 사랑이란 감정 있어서 이해되고 넘어가지만 나중에 나이들어 계속 그럼 정말 폭발합니다. 이런 사람은 주위 대인관계도 원만치 못합니다. 남한테 절대 밥한끼 안살거에요. 이래서 사회생활 어찌 합니까?.. 흥청망청 쓰는거 물론 안좋습니다. 그러나 기본은 하며 살아야죠. 이런사람 젤 답답해요. 님도 남편을 닮아가는듯, 아까워서 못쓴다니.. 아직 아이가 없어 그럴지 모르지만 애키우다보면 달라지실려나, 설마 자식한테 쓰는돈 아까워서 애 안낳겟다는 생각은 안하시겟죠??
베플백수청년|2008.10.06 09:09
요즘은 알뜰을 무조건 아껴야한다고 잘못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것같다
베플미꼬|2008.10.06 11:17
문화부장관이면서 현재 국회의원이자 탤런트 최명길의 남편인 김한길이 초대 문화부 장관이었던 이어령 선생님의 딸 이민아씨와 이혼한 뒤 쓴 글의 일부. 결혼생활 5년 동안 우리가 함께 지낸 시간은 그 절반쯤이었을 것이다 그 절반의 절반 이상의 밤을 나나 그녀 가운데 하나 혹은 둘다 밤을 새워 일하거나 공부해야 했다. 우리는 성공을 위해서 참으로 열심히 살았다 모든 기쁨과 쾌락을 일단 유보해 두고 그것들은 나중에 더 크게 왕창 한꺼번에 누리기로 하고 우리는 주말여행이나 영화구경 댄스파티나 쇼핑이나 피크닉을 극도로 절제했다. 그 즈음의 그녀가 간혹 나에게 말했었다 "당신은 마치 행복해질까봐 겁내는 사람 같아요" 그녀는 또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다섯살 때 였나봐요. 어느날 동네에서 놀고 있는데 피아노를 실은 트럭이 와서 우리집 앞에 서는 거예요 난 지금도 그때의 흥분을 잊을 수가 없어요 우리 아빠가 바로 그 시절을 놓치고 몇 년 뒤에 피아노 백대를 사줬다고 해도 내게 그런 감격을 느끼게 만들지는 못했을 거예요." 서울의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내게 이런 편지를 보내시곤 했다 "한길아 어떤 때의 시련은 큰 그릇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 시련이란 보통의 그릇을 찌그러 뜨려 놓기가 일쑤란다." anyway 미국생활 5년만에 그녀는 변호사가 되었고 나는 신문사의 지사장이 되었다 현재의 교포사회에서는 젊은 부부의 성공사례로 일컫어지기도 했다 방 하나짜리 셋집에서 벗어자 바가다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의 3층짜리 새 집을 지어 이사한 한달 뒤에 그녀와 나는 결혼생활의 실패를 공식적으로 인정해야만 했다 바꾸어 말하자면 이혼에 성공했다. 그때 그때의 작은 기쁨과 값싼 행복을 무시해버린 대가로.. -눈뜨면 없어라 中 word of 김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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