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합니다. ==================================================================== 공감해 주시고 위로해주셔서 감사합니다.주위에 친구들이 많았어도... 부부간의 일이라 어디에 말도 못하고 많이 속만 끓였었는데. 일이 커지면서 본의아니게 몇몇 친구들과 직장 동료들에게 털어놓고 많이 의지를 했었습니다.남한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많이 노력했는데 혼자서는 해결 할수가 없어 그들에게 진술서라던지 정서적으로 많이 기댔던거 같습니다. 이혼하는게 슬퍼서 눈물 흘린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제가 너무 바보같이 참고 살았다는거 제 인생에 있어서 가장 꽃 같았던 10년을 잃어 버렸다는게 슬펐고 너무 늦게 시작했다는것이 억울했고 저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힘들어 하는걸 보는게 힘들어서 슬펐습니다. 제가 기운을 내고 일어나야 될텐데 자꾸 작아지니... 큰일입니다. 살면서 처음으로 법정에 서봤는데... 저만 억울한줄 알았는데 정말 저보다 더 심하신 분들도 이혼하기 위해서 많이 애쓰고 계시더군요... 정말 이번일로 많은걸 느낍니다. 보여지는게 다가 아니란걸을.... 그래도 댓글들 하나하나에 조금이나마 힘이 생기니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본문입니다. ==================================================================== 안녕하세요. 30대 중반의 아이둘을 키우는 여자입니다.어디서부터 어떻게 글을 적어야할지... 별거기간 포함 10년 결혼생활을 어떻게 글로 시작해야 할지 르겠지만 적어보겠습니다. 저는 비교적 여유있는 집에 외동딸로 평범하게 자라왔었습니다.그러던중... 제 나이 25살쯤 아버지께서 퇴임을 하시고 가지고 계시던 돈을 사기를 당하시고 가지고 있던 현금 자산을 모두 잃게 되고. 원래는 그해 어학연수를 가기로 되었었으나 여유가 없어서 모 대기업에 단기 사무직 아르바이트로 들어가게 되었고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7살 차이나는 남자였고 졸업을 앞둔 아르바이트생인 저에게는 하늘같은 대리님으로 비춰졌습니다. 남편은 흔희들 말하는 개천에서 용난 케이스 입니다.어렵게 살았구요... 그것때문에 더 악착같이 공부했다고해요. 시부모님은 결혼전에는 몰랐는데 결혼해서보니... 사이가 많이 안좋으시더라고요.어머님이 가끔 서울에 올라오셨었는데... 처음엔 다들 쉬쉬해서 몰랐는데 알고보니 아버님께 맞으시거나 해서 오신거였더라고요. 아무튼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으며 연애를 그간 많이 안해봤기에 다들 비슷하겠지... 싶었고 어쩌다 실수로(반 강제적) 관계를 가지게 되었으며 그게 첫 경험이였기에 많이 두려워서 전화도 꺼놓고 일주일간을 지내다가 일주일만에 전화를 키자마자 그 사람이 전화를 해왔으며 문자로 반협박처럼 관계도 가졌으니 책임을 지겠다. 어머님 아버님께 말씀을 드리겠다고해서... 두려워서 그게 두려워서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지금와 와서는 제가 많이 바보같았다는걸 느낍니다...) 그 일 말고는... 또 다시 잘해줬기에... 그냥 저만 참고 지나가면 지금 힘든 이상황을 어쩌면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아서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해서 신혼때 참 많이 싸웠습니다....그냥 참 별거 아닌걸로 많이 싸웠습니다. 그럴때마다 저도 한성격 하지만 눈이 돌아가는 남편을 보면서 아.. 그냥 내가 참아야지 되는구나 싶어서 참고 살았습니다.이혼하고 싶은 이유를 먼저 두가지로 추려보자면 지나치게 병적인 돈에 대한 집착 그리고 욱하는 성격 이였습니다.1. 경제적인 부분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생략하고 중요한 사건들만 나열하겠습니다.결혼해서 그 다음해 첫째를 출산하였습니다. 친정 근처 병원에서 자연분만을 하고 낳았으며 출혈이 많아서 고생을 좀 했었습니다.그러다 출혈때문인지 잠시 정신이 흐려져가고있는데 간호사님이 영양제를 놔주러 병실로 들어오셨습니다.평소 돈에 민감한 남편이 말하길"그거 얼마에요?"간호사님이 그 물어본 의도를 잘 모르시고는 이건 10만원인데 15만원짜리도 있긴 합니다 그걸로 하시겠어요?라고 하셨습니다."아니요 안맞을께요" 라고 남편이 말하자 간호사님이 이거 산모분들은 기본으로 다 맞으시는거에요~ 라고 하자 "우리는 안맞을거라고요. 그거 효과 하나도 없잖아요" 라는 말까지 듣은게 제 기억의 마지막 입니다. 기력이 없어서 잠이 들었던거 같아요. 그런데 애를 낳고 참 기본적으로 맞는 영양제도 못맞는구나 싶어서 많이 서러웠습니다. 그렇게 또 그냥 저냥 살아가다.... 원래는 관계도 없었는데.... 어쩌다 제 생일날 다른 부부와 기분좋게 놀다와서 분위기 잡혀서 관계를 하게 되었고 둘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첫째때 너무 서러웠던지라. 나 이번에는 영양제 꼭 놔줘~ 라고 말했으며 약속을 하고 출산 준비를 하게되었지만 역산이였기에 제왕절개를하게 되었습니다.그렇게 제왕절개를 하고 나와서 거동이 불편해서 누워있는데 병원에서 절개한 부위에 바르는 약을 처방해 주었는데 처방전을 들고가서는 집에서 바르던 '후시딘'을 가져다 주었습니다."약국에 물어보니 후시딘 발라도 상관없대" 라는 말과함께....개복수술한 와이프에게 후시딘이라니요....저는 거기서부터 마음이 정확히 많이 떠났던거 같습니다.임신초에 굽이 낮은 플랫을 사겠다며 나름 아껴보겠다고 동대문에서 6만원자리 플랫을 집었을때 과소비한다고 무안줬을때. 마트 비밀봉지 50원자리 샀다고 나무라고 스타벅스에서 라떼를 먹는다고 세상에서 제일 바보은 짓을 한다고 할때에도 그냥 참았지만 (스타벅스를 가는 이유는 할인 30%가 되는 복지가 있기에 가는것입니다.그 사람은 스타벅스에서 아메리카노 이외의 음료를 시키는 사람들을 바보라 부릅니다. 따로 바에 우유랑 다 비치되어있는데 비싼돈 주고 라떼나 뭐 가루 뿌려져있는거 시켜먹는다고...) 영양제와 후시딘은 저에게 정말 큰 상처가 되었습니다.저도 경제 생활을 하지만 월급날이면 모두 남편 통장으로 보내야했고 카드를 받아 생활했는데 정말 맘편하게 돈을 써본적이 없습니다. 맞벌이라 두 아이를 친정에서 월~금을 온전히 봐주셨는데 생활비로 50만원씩 드렸습니다.그러면 어머니가 아이들 분유도 기저귀도 사주시고 옷도 사주시고... 제가 부족하다고 말을꺼내면 욱하고 눈이 뒤집혀져서 말을 꺼내다가 못하고를 반복하였습니다.그 당시 제 연봉은 조금 낮았으며 남편연봉은 좀 높아서 그래도 둘이 합해서 9천정도는 되었었으나 참... 많이 힘들게 살았습니다.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힘들게 살았습니다. (다 나열하자면 끝이 없을것 같네요) 양말은 물론 속옷도 꿰매입었으며 제 속옷같은 경우도 꿰메다 꿰메다 너무 꿰메서 옆으로 돌아 누워자면 베길정도 였습니다. ㅎㅎㅎㅎ 제가 그당시 연봉이 적었던 이유는 학교 졸업하고 얼마 안있어서 결혼했는데 하자마자 얼마 있지 않아서 첫애를 낳고 또 둘째를 낳고 육아휴직을 하였기에... 동기들에 비해서 연봉이 많이 오르질 못했습니다. 그러면 그거에 대해서도 한창 불만이 많았습니다. 제가 어디 놀러가서 깨끗한 새아파트를 보고 "와~ 좋다" 이러면 오는말이 "돈도 못버는년이 좋은건 알아가지고" 였습니다. 참았습니다... 그냥 참았습니다,... 저는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였으니까요... 참 그렇게 바보같이 참고 있었습니다. 2. 폭력적인 부분첫 아이를 낳고 한달무렵쯤... 좀 이상하다 싶었는데 문자를 보니왠 젊은 아가씨랑 문자를 주고 받고있었습니다. 전화를 걸어서 확인해보니중대 다니는 학생이였고 등록금을 벌기 위해서 잠시 토킹바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있는데 거기 놀러왔던 남편이 먼저 들이대서 연락을 주고 받았다고 했습니다. 결혼은 안했다고 했으며 다니지도 않는 SBS에 다닌다고 거짓말을 하여 관심이 가기도하고 고객관리(?) 차원에서 문자를 주고 받았다고 했습니다. 원래 이름이 약간 촌스러운데 아주 쎄련되게 이름도 바꿔서 알려줬더군요. 강현민으로... 핸드폰 녹취를 하였고 남편 퇴근후 다그치자 오히려 책상 달력을 집어 던지고 잠시 앉아서 얘기나 하자고 넌 듣기만 하라고 오해라며 자기가 더 큰 소리를 치더군요... 그렇게 또 지나갔습니다. 처음이니까 라고 지나갔어요....두번째 큰 사건은 왜 싸웠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안납니다.친정에서 말다툼이 있었고 저는 최대한 부모님께 그런 모습은 안보여드리고 싶어서 조용히 말하는데 저를 방구석으로 밀치며 따지고 들었으며 그 모습을 본 어머니께서 둘다 보기 싫다고 내보내셨습니다. 그렇게 집으로 가고있는데 제가 뒷자리에서 계속 따지고 드니 차를 세우고는 뒷자리에 있는 저의 얼굴을 가격하였습니다. 그때 처음 맞은거라... 너무 놀래서... 무조건 도망을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뒷자석에 3살된 첫째와 슬링에 안겨 자고있던 둘째가 있었는데 제가 미쳐 첫째를 못데리고 나오고 슬링한채로 친정집으로 도망을 왔습니다. 그때 얼굴이 뻘개져 있었는데 아버지가 혹시 맞었냐고 물어보셨는데... 저는 그때도 부모님이 속상하실까봐 울어서 그렇다고 죄송하다고 하곤 방에 들어갔었습니다. 세번째 큰 사건은금요일 오후면 친정에서 우리집으로 아이들을 댓고 오는데제가 청소하고 집을 치우고 아이들을 제우면 남편은 과일을 사러 갑니다.마트에서 장볼때 같이 사면 좋으련만 항시 남편은 집앞 시장에서 문 닫기 일보직전의 떨이 과일들을 사러 갔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제가 아이들을 재우면서 피곤했는지 잠이 들었습니다. 때마침 남편이 열쇠를 안가지고 갔었으며 문을 많이 두드렸었나봅니다... 문드리는 소리에 깨어서 놀래서 문을 열어주니 발차기로 배를 차고 들어오더군요. 그러고는 밟혔습니다. 네번째 이혼을 결심한 큰 사건은연에 한번씩 적게 크게 맞았으며 주말에 세탁기 세번 돌린다고 (흰옷, 색깔옷, 검은옷)물건 아까운지 모른다고 세탁실에 가두려하고 뭐 그랬어도 늘... 아이들이 너무 어렸거나 잠들었거나... 했었기에 그냥 나혼자만 참으면 된다였어서 참았으나 더이상은 그게 아니였기 때문이였습니다. 결혼 한지 7년... 정말 힘들게 돈을 모으고 남편이 주식으로 재태크에 성공을 해서 서울에 집을 샀고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가기로 했습니다. 태국에 가기로했었으며 일정중에 무슨 쑈가 있었는데... 제가 찾아보니 여행사에서 추천해줘서 사는것보다 따로 티켓팅을 하면 인당 5천원씩 더 싸길래 공유를 해줬었습니다. 남편이 너무 좋아하더군요 그러면서 더 찾아보라고 했으나. 회사에서 그것만 찾아보고 있을수만은 없어서 더이상은 못찾고 집에 들어왔습니다. 주말 아침이 되어 아이들 밥먹이고 세탁기 돌리고 아이들 머리를 묶이고 있었습니다.그때 세탁기가 이사를 하면서 바닥에 고정시키는 고무패킹이 없어져서 탈탈탈 돌아가는 소리를 냈었습니다.세탁기 새로 살때 받은 고무 패킹이 있으면 그걸 끼우면 괜찮을텐데 LG에 물어보니 돈을 받고 팔더군요 저는 사고 싶었으나 남편이 또 그딴게 만원이 넘는다고 못사게 하였고 매번 종이를 끼워서 받쳤습니다. 그러나 다용도실 바닥은 미끄러우니 탈수가 될때마다 세탁기가 돌면서 종이는 빠지고 이상한 소리를 냈습니다. 거실에서 어제 그 티켓을 찾고있던 남편이 소리를 치면서 대체 저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가 안들리냐며 소리를 쳤고 소리가 났으면 가봐야지 왜 애들 머리를 묶이고 앉아있냐 병신이냐. 하면서 눈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딸아이 머리를 양갈래로 묶이기 위해서 한손에 머리를 잡고있어으며 오른손으로 고무줄을 돌리고 있었기에 그걸 놔버리면 다시 머리를 묶어야해서 그것좀 마무리하고 가려던 참이였는데 아이들 앞에서 그렇게 소리를 치며 욕을 하길래 저도 그날은 덤볐습니다. 대체 그게 뭐 대수라고 애들 앞에서 나를 이렇게 하대하냐 왜그러냐 좀 욱좀 하지 말아라. 그랬더니 병신 니가 제대로 하는일이 뭐 있냐며 태국 티켓도 내가 지금 찾아보니 5천원이나 더 싼게 있다. 왜 제대로 찾아보지 못하냐 마냐 그러길래 제가 너무 열이 받아서 친정 가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러더니 못가게 막더군요... 제가 가겠다고 그러자 제 잠바를 잡아 끌면서 질질질 거실을 가로질러 작은방에 가뒀습니다. 끌려가고 넘어지면서 잠바는 찢어졌고 윗 티셔츠는 돌돌 올려가 거의 가슴을 내비치기 전이였으며 아이들은 기겁을 하고 쫓아 들어와서 큰아이는 아빠 다리를 잡고 엄마 살려달라고 그만하라고 울었으며 둘째는 멀찌감치에서 우뚝서서 지켜보고있었습니다.제가 거기서도 덜덜떨면서 내보내 달라 더이상 못참겠다고하니 늘 이런일이 있으면 그러하듯 제 몸을 뒤져서 핸드폰을 뺏어서 가져가 버리고는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때리면서도 아이들앞에서 내가 배운사람이니 이정도로 끝낸다. 정말 니 목을 칼로 따서 죽여버리고 싶다고해서 둘째가 그말에 충격을 많이 받았습니다. 하얗게 질려버린 아이들을 보고... 더이상 제가 발악을 했다가는 큰일이 나겠다 싶어서 잘못했다고 했습니다. 내가 다 잘못했다고 빌었습니다... 아이들 댓고 놀이터나 다녀오겠다고....잠시뒤에 따라서 나올테니 딴생각말고 놀고있으라고 핸드폰도 주지않고 그렇게 저희 셋을 내보내 주었습니다. 그길로... 정말 덜덜 떨리는 다리를 겨우 부여잡고 놀이터를 가는척 단지 밖으로 나가 택시를 잡아타고 택시 기사님께 전화를 빌려서 친정아버님께 빠리 나와달라고한다음 아버지 손을 잡고 친정으로 들어가서 경찰서로 신고를 했습니다. 경찰 분들이 와주셔서 앞으로의 절차도 알려주시고 토요일이라 지금 담당자가 없다며 일단 병원이라도 빨리 다녀와서 진단서라도 때라고 알려주셔서 그렇게 진행을 하고 월요일 오전에 경찰서에 고소장을 접수하였습니다. 그렇게 이혼을 준비하였습니다. 변호사도 선임하고 증거도 제출하고... 이렇게 끝이 나는가 싶었는데법원에서 이혼이 기각이 되었습니다.사유는... 폭력이 상습적이 아니고 경제적인 문제도 결론적으로는 부정한게 아니였다... 뭐 그렇네요.하다못해 섹스리스 부부들도 이혼이 된다는데 저는 8년동안 관계도 없었고 남편의 돈에 대한 집착도 정상범주를 넘어서고 폭력도 있었는데.... 기각이라니요... 제가 제출한 증거로는 마지막 폭력당시 진단서와 제 몸에 멍든 사진과 찢어진 옷가지들본이이 폭력을 행사했다는 녹취그리고 제 건강기록 진단서 주변 지인들의 진술서를 제출하였는데도 기각이 되었습니다.1, 2차 모두요 제가 결혼생활 하면서 가장 힘들때 몸무게가 애 둘낳고 심할때는 40.7 키로였습니다.163cm에 40키로여서 오랜만에 해외에 살다가 온 친구가 절 보고는 많이 울었었어요... 저 이러다 죽을거 같다고요. WPW증후군이라고해서 심장박동도 늘 일정치 않았습니다. 남편 생각을 하거나 그러면 두려워서심장이 두근거리고 식은땀이 나고 어느 금요일 오후엔 정신을 잃기도 했었습니다. 다 증언하고 건강기록부로 제출한 사안이구요..... 원래 이렇게 이혼이 힘든건가요... 저는 그간 제가 맞았어도 같이 살 생각이 있어서 그냥 넘어갔던 거였고 증거를 모으지 않았었어요... 하지만 아이들 앞에서도 그러는 모습을 보고 생각을 마음 다시 먹고나서 모으고 준비를 한거였는데...일이 이렇게 되니... 앞으로가 막막합니다. 별거한지 2년이 지난 지금도 사과 한마디 없습니다. 아이들도 집앞 대문까지 와선 아이들 보고가고 2주에 한번씩 아이들 댓고가고 ,...... 이런 상황에서 이혼만 안해주겠다네요 전에 결혼생활중에 그랬었어요... 너랑은 지금 절대 이혼 안한다고 애들 다크고 결혼 시키고나서 너 늙음 필요 없을때 버릴거라고... 그게 현실이 될거 같아요... 합의도 안하고... 정말 심했던 것들로만 적은게 이정도에요... 한도 끝도 없네요. 어제 알게된 사실인데 원래 랜덤채팅을 하긴 햇었어요. 그냥 제가 그런쪽에 무지해서 몰랐는데 혹시나하고 어제 들어가보니 몇년전까지 참,.... 많이 더럽게 놀았더라고요... 닉네임이 ****응응으로 끝나는데 뭐 본인 특기 사항으로 응응 써놓고 알바 필요함 연락해~ 이럼서 여러 여자들과 쪽지를 주고 받았더라고요 내용은 너무 오래된 사항이라 저장이 안되어있구요...개복 수술한 와이프 연고 사줄 돈은 없어도 자기 섹스파트너 줄 용돈은 있었나봐요... 이것도 진작에 찾아 볼것을 ㅠㅠ 어제 정말 뜬금없이 어제 생각이 나서 찾아봤는데 나오네요... 하.....(지금 다니는 회사 윤리위원팀에 고발해 버릴까도 싶고...) SKY출신이라 그런지 머리는 비상해요... 사촌형과 선배가 법조계 연줄도 있어서 그것도 작용하는 것으로 의심되고... 그래서 결과가 이런가 싶기도하고.... 제가 그간 바보같이 살아온 것에 대한 벌인걸가요... 10년 받은걸로 부족할까요? 이제는 제가 바보 같았다는거 너무 잘 압니다. 하지만 남은 생도 그리 살라니... 저는 어떻게 해야하는건가요... 이렇게 살아야하나요?제가 죽어야 끝나는 건가요? 대법원 판결 사례들을 보니 저보다 심한 분들도 못하신 분들도 많으시더라고요우리나라는 파탄주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네요유책주의를 밝혀내지 못하면 이혼이 안된다는데 더이상 제가 어떻게 해야하나요... 저것들로는 부족하다니.... 정말 죽어서 끝내야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