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품이의 큐티 ^ ^
{마가복음 1 : 21 ~ 28}
[시작된 우리 주님의 능력]
저희가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뭇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마침 저희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질러 가로되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예수께서 꾸짖어 가라사대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으로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다 놀라 서로 물어 가로되 이는 어찜이뇨 권세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을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예수의 소문이 곧 온 갈릴리 사방에 퍼지더라
@원어사전:
가버나움:Kapernaouvm(2584, 카페르나움)
가버나움 Capernaum.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카페르나움/ 가버나움은 '나훔(위로)의 마을'이란 뜻이다. 그러므로 '위로의 마을'이다
2. 신약성경.
복음서에 의하면 가버나움은 매우 중요한 성읍이었다.
가버나움은 당시에 번창한 도시로 세관이 있었다(마 9:9).
가버나움에는 왕의 신하의 집이 있었다(요 4:46).
또한 가버나움에는 유대인을 위해 회당을 지어준 백부장도 자기 부대와 함께 주재하였다(마 8:5-13 눅 7:1-10).
베드로와 안드레는 부르심을 받기 전부터 가버나움에 살았으며, 예수님을 만나 영접했다(막 1:16-21 요 1:4).
예수님은 나사렛에서 배척을 당하신 후에(마 4:13 요 2:12) 가버나움을 갈릴리 전도의 본부로 삼으셨다. 그리하여 가버나움은 예수님의 둘째 고향이 되었다(막 2:1).
예수님께서는 이 가버나움에서 어부들을 제자로 부르셨고(마 4:18 막 1:16 눅 5:1), 마태가 세관에 앉아 있을 것을 보시고 제자로 부르셨다(마 9:9 이하; 막 2:13 이하; 눅 5:27 이하).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여기 있는 회당에서 가르치셨으며(막 1:21 눅 4:31 요 6:59), 성전세 반 세겔을 내게 하셨다(마 17:24).
예수님께서는 가버나움에서 많은 이적들을 행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여기서 중풍병 걸린 백부장의 하인(마 8:5-13 눅 7:1-10), 왕의 신하의 아들의 병(요 4:46-54),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마 8:14-17 막 1:29-31), 네 사람이 메고 온 중풍병자(마 9:2-8 막 2:1-12 눅 5:17-26),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막 1:21-26 눅 4:31-37), 그 밖의 많은 병자(마 8:16 마 8:17 막 1:32 이하; 눅 4:23 눅 4:40 이하)를 고치셨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사에도 불구하고 이 성읍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았으므로 이 성읍이 완전히 멸망될 것을 예언하셨다.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면 그 성이 오늘날까지 있었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마 11:23 마 11:24 눅 10:15).
이와 같이 주님께서 이 성읍에 대해 예언하신 말씀은 문자 그대로 이루어져서 가버나움 본래의 모습은 찾아보기가 어려우며,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다만 지금 고고학적으로 발굴된 '텔 훔' 지역이 이 가버나움과 동일시 될 뿐이다.
회당:sunagwghv(4864, 쉬나고게)
집회, 회중, 회당.
에스라(B.C. 5세기)가 회중 앞에서 모세의 율법 책을 읽은 것을 회당 의식으로 본다면 그것이 우리가 성경에서 찾을 수 있는 회당의 최초의 기원일 것이다(느 8).
회당의 직원은 회당의 업무를 맡고 집회를 관리하는 회당장, 구제하는 집사들, 신학 교사, 통역, 성경 말씀이 기록된 두루마리를 내 왔다가 들여 놓으며 회당을 청소하며 안식일이 온 것을 모든 사람에게 알리기 위하여 나팔을 부는 조수(종)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회당의 예배는 안식일에 드리며 주간의 제 2, 제 5일에도 모였다. 초기 기독교 시대에 사용된 의식은,
① 시편이나 감사 기도로 시작하여 유대 신조(쉐마)를 암송한다.
② 율법의 정해진 부분의 낭독, 예언서의 자유 낭독, 그것의 설명이나 설교가 뒤따랐다. 일정한 설교자가 없고 누구나 자격자로 인정받으면 성경을 읽고 설명한 후 설교했다. 아주 낯선 나그네도 회당장의 초청이나 허락으로 성경을 읽고 설교할 수 있었다(눅 4:6 행 13:15).
③ 회당장의 축도 내지(민 6:24-26) 한 회원의 기도로 폐회되었다. 대개 이런 순서로 예배를 본 것 같다.
회당은 오늘날의 교회처럼 유대인의 종교 생활에 유익을 주는 중요한 기관이었다. 회당은 그의 아버지의 날과 말씀이 공적으로 인정되는 장소였다. 그러므로 회당은 가장 진지한 종교적인 사람들이 즐겨 모이는 곳이다
# 잠시 말씀드립니다, 저는 원어 사전을 거의 자주 열거를 합니다. 전에는 자세히 또 설명을 하였으나 중요한 것만 항상 선별해서 이제는 올립니다. 참조하시고요 성경의 설교학에서는 성경의 정보를 중시합니다. 설교학 해석학에서는 원어적 해석, 문맥적 해석, 역사적 해석, 신학적 해석을 합니다. 본문이 있으면 하나님은 이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메시지를 먼저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많은 정보를 얻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본문의 이러한 해석이 없이 하나님보단 자기 혼자 생각에 빠지면 자기 주장문 자기 논설문 자기 생각 설교가 되기 십상이며 무지한 해석으로 이단론에 빠질 수가 있고 남을 함부로 판단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설교 전 정보의 습득은 중요한 것입니다. 원어사전 올리는 것을 이해해 주시고요
그리고 저는 이전과 달리 지금 강해 설교를 합니다. 이전 제 주제 설교는 그 주제에 맞게 모든 말씀을 준비하기에 결론이 쉬우나 강해는 모든 문장 모든 단어에 그 설교의 핵심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통일된 결론이 나오기는 본래 힘이 든것입니다.
다소 통일된 주제가 아니더라도 주제 설교가 아니기에 양해를 구합니다. 그리고 직장 일과 사역까지 겹치다 보니 이전보다 온라인 사역이 줄어 든거 같습니다. 다시 쓰던 설교를 쓰고 보완만 하니 완전 신선한 느낌도 떨어지고요 다시금 양해를 구합니다.
본문 들어 갑니다.
예수님은 인간들과는 뭔가 다른 권능의 모습들이 본문에 일어 납니다. 뭔가 탁월한 능력이 있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서기관(옛 중동의 학자나 관리)이란 교사와 같지 않다 함은 예수님은 구약의 주인공이시며 그분께서 그들의 앞에 오셨기에 유대인과 다른 것입니다. 주께서 세상을 만드시고 사람을 만드시고 구약을 만드시고 그 약속의 주인공이 되시기에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주님은 정확히 구약을 인용하시고 사람의 마음을 다 아심으로 매우 적절히 현 삶을 적용하시며 사물의 모든 걸 바로 아심으로 완벽하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하므로 인간이며 지식의 한계가 있는 교사들은 구약을 완벽히 다 아는지 모르는지 적절히 적용하지도 못하고 하나님의 마음도 잘 모르고 그 당시 삶을 잘 비유하지 못하고 듣는 사람의 마음을 감동 시키지 못하는 서기관들과 예수님은 분명히 다른 것입니다. 근본 인간선생과 예수님의 차이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차이인 것입니다. 천사와 우주와 지구, 인간등을 만드신 예수님은 창조주로서 절대 주권을 행사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귀신 즉 악령을 쫓아내는 것은 천사가 타락하여 악령이 되었지만 근본 그들도 피조물이기에 창조주 예수님이 절대적 주권으로 쫓아내시면 도망을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여러 가지 권능을 행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다만 창조주 예수님의 도움을 받아 권능을 행합니다. 근본 그들에게서 나오는 힘은 아닙니다. 그 일중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교만하지 않도록 허락하시는 일만 역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어떠한 사람도 경배의 대상은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모두 주님께서 주신 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사람들은 주님께서 허락하시는 주님께서 기억하시는 선한 일들을 행하여야 합니다. 주님의 사랑이 담겨진 주님의 이름을 빛나게 하는 일들을 찾아 진정한 많은 일들을 행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 앞에 악령이 쫓겨나는 것은 이제는 지상으로 하늘 승리의 연장 과정에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 날 그 승리는 지상에서도 완성을 하겠지요 하늘의 싸움에서 쫓겨난 마귀와 악령은 사람에게 내려와 전쟁과 각종 악한 일을 일으키나 하나님은 이 땅에 내려 오셔서 그 마귀의 일을 멸하시려 내려 오셨습니다. 악령의 처소 광야에서 마귀와의 일대일 싸움에서도 승리하시고 그 졸개들이 있는 사람들의 처소에서 그 졸개 악령들도 쫓아 내십니다. 이제는 인간을 마귀에세서 구해 내시고 하나님과의 진노 관계에서도 사람들을 회복하시고자 십자가의 길을 걸어 가십니다.
분명히 역사적으로 기록된 이 모든 일은 감취었다가 계시로서 모든 것을 나타내시었습니다. 모든 인간은 주님의 은혜를 저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의 창조주를 친히 이 땅에 내려오셔서 십자가의 수치를 감당하시기까지 인간을 구원하려오시었건만 인간이 이 마지막 하나님의 자비를 무시한다면 절망과 멸망의 결과만이 있을 것입니다.
인간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가 낳아주고 죽을 힘을 다해 길러주고 부모를 모른 다 죽을 때까지 저주 무시한다면 그 자식이 잘 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더 젊을 때에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예배해야 하는 것입니다.
승리와 죽음으로서 우리 인간을 살리시려 내려 오시는 하나님 예수 이 얼마나 감사하고 놀라운 일인지요 승천하신 이후에도 현대 사회에도 우리의 삶을 내버려 두지 아니하시고 보혜사 성령 하나님을 보내 주시었습니다. 예수님 당시 12제자와 디아스포라(흩어 전도한 성도)들이 그 성령 보혜사 하나님의 도움으로 현대 사회의 3/1이 제자들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을 주로 시인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게 하시겠다는 예수님의 약속은 예수님께서 보내신 성령님으로 인한 것입니다. 결국 모든 걸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아니요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능력으로 현대 사회에 예수님의 능력은 놀랍게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성령님의 도움 뿐 아니라 신앙의 양날개를 또한 우리에게 씌워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구약과 신약입니다. 구약의 한날개만 있는 유대인과 교주로 변질된 한 날개만 있는 이슬람과 이단은 자유롭게 믿음의 권능을 펼칠 수 없는 나라와 단체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정립하신 우리 신앙의 양날개인 구약과 신약으로 우리 신앙의 날개를 달아주시고 함께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도움으로 우리의 신앙은 참으로 진리안에 자유로울 수 있는 것입니다. 두 큰 날개와 내안의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우리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의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품에 안길 때까지 날아 오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죄의 사슬을 끊어야 합니다. 죄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로서 다시 죄를 범하지 않으므로 끊어야 합니다. 그러해야 생명의 부활하는 휴거 때에 공중 재림을 하는 주님을 만나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이를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주님 앞에 순종하여 주님을 증거하는 한 개의 날개와 주님의 계명을 순종하는 사랑의 열매는 우리의 두 날개를 더 강하게 하고 사단을 이길 것입니다.
그 두 날개를 활짝 펴시고 성령님의 권능으로 매 삶에서 승리하시고 놀라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시기를 모두를 예수님의 권능의 이름 의지하여 축복하기를 원합니다.
아멘, 할렐루야!
역사하시는 하나님, 주님 감사합니다 이 땅에 홀로 우리를 내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인생을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의 편지 성경을 주시고 성령으로 우리를 보호하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 죄를 사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께 드리고저 외아들 예수님을 먼저 보내 주시었습니다. 더욱 젊고 어릴 때에 때가 지나기전 주님을 더욱 경배하고 더 많은 이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전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도 성경속의 바울과 같이 깨어 있는 제자들과 같이 주님의 뜻을 우리의 활동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주옵소서 매 삶을 거룩하고 온전하게 주관하여 주옵소서 매일 건강과 지혜와 모든 일용할 것을 채워 주옵소서 남북한의 화해의 통일이 있게 하여 주시고 북한에 우상으로 더러워진 영들을 쫓아 내어 주시옵소서 모든 악령의 훼방으로부터 우리를 지켜 보호하여 주옵시기를 만유보다 크신 승리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