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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20대를 바쳐서야 할 수 있었던 말.

ㅇㅇ |2018.02.22 20:06
조회 35,870 |추천 527

 

 

안녕하세요. 계속 일에 치이다 오랜만에 한가해졌네요.

맥주 한 캔 홀로 마시다 그냥 익명을 빌려 속얘기를 끼적이러 왔습니다.

하소연과 비슷한 글이라 얘기가 길어질 듯하니 양해를 부탁드릴게요.

일기적듯 쓰는 글이라 반말인 점 미리 죄송합니다.

 

 

 

 

사람의 첫기억은 누구나 다르다고 했다.

내 첫기억은 조금 강렬한 편이었다.

동생이 있었다. 나이차이는 얼마 나지 않지만 어린 나이에도 마냥 어려보이던 아이였다.

둘이 함께 놀이터에 놀러갔었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동생의 손에는 작은 풍선 하나가 들려있었다.

한참 신나게 뛰어놀았고 그러다 실수로 동생이 풍선을 놓쳤다.

다행히 구름다리 끄트머리에 용케 걸렸고 우는 아이를 달래주기 위해 나는 그 위에 올랐다.

그리고 그대로 떨어졌다. 어딘가에 잘못 걸린 건지 모래사장 사이 자갈이 있었던 건지 왠지 피가 뚝뚝 떨어졌다. 밑에 있던 동생도 넘어져 생채기가 났다.

어린 마음에 같이 울었다. 아팠고 조금 무서웠다.

엄마에게 갔다. 그리고 혼났다. 동생 다리의 생채기가 이유였다. 같이 있으면서 애를 돌보지 않고 뭐했냐며 욕을 했었다.

조금 어안이 벙벙했다. 그 잔뜩 화난 엄마의 얼굴이 내 첫기억이었다.

나는 더 다쳤는데. 나 여기 팔에 피가 잔뜩 흐르는데. 무서워서 찾아간 엄마는 내게 더 무섭게 화를 냈다.

그 날은 다락방에 하루종일 갇혀 있었다. 불빛 하나 들지 않는 먼지투성이인 그 곳에서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그건 기억나지 않는다. 조금 울었던 것도 같다.

 

남동생과 나의 차별. 그 전에도 분명 존재했었겠지만 확실히 인지한 시점은 그때였던 거 같다.

집은 무서웠다. 가끔 화를 내곤 하지만 대부분 무뚝뚝하게 계시던 아빠는 나를 따뜻하게 바라본 적 없었다. 엄마의 차별은 수위가 높아져갔다. 졸졸 따라다니던 귀여웠던 동생은 고스란히 부모님의 행동을 배웠다. 야야거리거나 발로 차는 건 예사였다.

 

아주 어릴 적에는 사랑받고 싶었다. 칭찬받고 싶었다.

한데 백점짜리 시험지를 들고 가도 두 분은 무덤덤했다. 오히려 화풀이를 하고 싶을 때만 더 나를 주목했다.

애원하고 애걸하고 체념하고 화를 내고. 참 무수히도 반복했었다.

 

많은 일이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 금전적인 문제는 없었다.

내가 알기로도 우리 집은 꽤나 풍족한 편에 속했다. 체면 탓이었을까 최소한의 인정이었을까. 용돈은 남동생의 십분의 일도 채 되지 않았지만 나름 한달마다 작은 돈까지 받았다. 준비물을 사기에도 빠듯한 돈이라 선생님들의 일을 도와드리면서 몇 달에 한 번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던 기억도 난다.

 

궁금하지만 묻지 못했던 이유. 정말로 우리 집은 가난하지 않았다. 지방이긴 해도 번듯한 이층집을 자가로 지니고 있었고 승용차도 두 대나 있었다. 크지는 않아도 아빠 소유의 별장도 지녔다. 한데 내게는 왜 그렇게 각박했을까. 이제는 묻고 싶지도 알아도 납득하지 못하겠지만 그 어릴 적에는 그게 참으로 궁금했었다.

 

내 생일에 미역국은 중학교 때 처음 먹어봤었다. 친구가 분식집에서 시켜줬었다.

다만 남동생의 생일은 굳이 달력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때가 가까워지면 집 냉장고가 풍족해졌다.

고기와 케이크, 각종 먹을거리가 산재한 주방을 바라보다 결국 새벽에 1층으로 몰래 내려갔었다.

냉장고에는 딸기가 있었다.

씻지도 못하고 허겁지겁 새빨간 딸기를 입 안 가득 베어물었다. 정말 너무 맛있어서 냉장고를 열어놓은 채 커다란 과육을 한입에 먹어치웠다.

딱 하나만 먹으려고 했는데 욕심이 났었다. 하나 더, 하나 더. 세개째 베어물던 순간 주방에 환한 불이 켜졌다. 엄마였다.

그날 엄청 맞았던 기억이 난다.

집에 도둑년을 키웠다면서 감히 지 동생 걸 훔쳐먹느냐면서. 어디서 배운 손버릇이냐며 테가 나지 않을 부분만 손으로 발로 구석에 웅크려 맞았었다.

그리고 벌을 받았다.

나는 2주가 넘게 식탁에 앉지 못했다. 거실 소파 밑에 꿇어앉아 맨밥에 물 말은 그릇을 들고 거기서만 먹어야 했다. 방에 들어간다 하면 화를 냈었다. 버릇을 고쳐야 한다고 했다.

며칠 후 남동생의 생일, 또 소파 밑에 앉아 맨밥을 마시면서 식탁을 봤었다.

이상하게 그 기억은 뚜렷하게 떠오른다.

진한 고기 냄새, 커다란 케이크. 웃고 계신 부모님과 남동생. 왠지 거리가 너무 멀어 보였었다.

배가 고팠는데 고기보다는 다른 데 더 시선이 갔다.

대접 위 한가득 담긴 새빨간 딸기. 남동생이 손도 대지 않아 고스란히 쌓여있던 그 딸기가 아직도 뇌리에 박혀있다.

아마 엄마는 모르시겠지만. 알고 싶지도 않으시겠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과일도 딸기였었다.

 

내가 뭔가 먹는 걸 싫어하셨다. 항상 내 앞에는 김치와 나물만 있었다.

소세지 반찬 하나 집어먹으려고 하면 손을 쳐내시고 왜 이렇게 식탐을 부리냐고 타박하셨다.

여자애니까 몸매 관리 하라며 김치를 밀어주셨다.

나는 그때 분명 정상체중보다 훨씬 떨어져서 내 나이로 보이지도 않을 시기였는데도.

잘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혼나는 게 두려워 몇 번 시도하다 그냥 내 몫만 먹었다.

그래도 정말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가족들이 다 먹고 난 후 식탁정리를 하다 남은 소세지 반찬을 음식물 쓰레기 봉투에 다 밀어넣는 엄마를 보면서는 더더욱.

 

애정을 구걸하다 체념하다 화를 내다 분노하다 절망하다 자괴감에 빠지다.

몇 번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면서 나는 어느새 독립을 꿈꾸고 있었다.

혼자 살 수는 없었다.

부모님이 아르바이트를 극도로 반대하셔서 나는 내 작은 용돈을 모으고 또 모으며 나갈 날만을 꿈꿨다.

벗어나고 싶었다.

 

살다 보니 시간은 흘렀다. 대학을 갈 수 있었고 다행히 기숙사와 각종 장학금도 얻어낼 수 있었다. 조금 더 원하는 과는 따로 있었지만 그곳은 부모님의 지원이 필요했었다.

대학교는 편했다. 무엇보다 떨어져 나와 살 수 있어 숨을 쉴 수 있었다.

나름 성적은 나쁘지 않아 과외를 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조금씩 돈을 모았다.

이때도 부모님께 일정 수입을 드렸다.

키워준 몫이라 하셔서 드려야 한다 생각했다.

아마 지금 생각하건데 다 체념했다 여기면서도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이곳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남편은 참 좋은 사람이었다. 사랑받고 자란 게 눈에 확 보이는 이였다. 밝고 유쾌하고 그늘이 없었다. 밀어내도 다가와 무서웠는데 모순적이게도 곁이 편했다.

 

정신과 치료는 남편의 권유였다. 나는 잘 살고 있는데. 이제 괜찮다며 몇 번이나 거절했지만 남편은 끈질기게 권했고 나는 못 이긴 척 따라나섰다.

진료를 받았다.

생각보다 무섭지 않았다. 선입견이 있었는데 그냥 내 속마음을 얘기했더니 가만히 들어줬다. 처음에는 괜히 부끄러워 숨기다 몇 번 반복하니 익숙해져서 지금 이 글을 쓰는 것처럼 덤덤히 얘기를 했다. 그리고 결과물을 받은 날 나는 처음으로 억울해졌다.

 

나름 열심히 살아왔는데.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내게는 이상한 것들이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우울증, 강박증, 각종 정신질환이.

난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한데 왜 이런 게 내게 달려있었을까.

그날은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억지로 마셨다. 그리고 남편에게 화를 냈다.

내가 왜, 내가 왜. 소리를 질렀다. 그 말을 들을 당사자들을 배제하고 오히려 남편에게 화풀이를 했다.

끝내는 그냥 울었던 것 같다.

내게는 흑역사인데 남편은 간혹 그때 얘기를 꺼내며 좋았다 한다. 다행이라 말하는 모습에 고맙지만 여전히 창피하다.

 

나는 인복이 있다.

수축되고 업악되어 그늘이 서렸음에도 학창시절 만난 내 친구는 나를 위해 울어줬었다.

그게 엄청난 위안이었다.

그리고 남편은 내 얘기를 듣고 날 위해 울어 준 두 번째 사람이었다.

 

그 뒤로도 공부를 하고 대학교 시절을 보내고 돈을 벌면서도 꾸준히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그리고 이십대 후반이 되어서야 또다시 돈을 보내라는 부모님께 하고 싶었던 말을 할 수 있었다.

내 잘못이 아냐.

정말로 내 잘못이 아니었다. 나는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었다.

이 간단한 말을 하기 위해 나는 내 20대를 고스란히 바쳐야 했다.

다 당신들 탓이었어.

소란은 생겼지만 속은 시원해졌다. 그 뒤로 연락을 다 끊었다. 아마 상관이 없으셨을 터였다.

분명 우리 집은 재산이 있었고 지금도 먹고 살기 충분할 테니.

 

조금씩 괜찮아졌다. 결혼해도 될 거 같았다.

다만 친정식구 하나 오지 않는 결혼식이 어떤 흠이 될지 몰라 고민하자 남편은 자신에게 다 맡기라며 부모님과 얘기를 한다 했다.

이때 어떤 얘기가 오고갔는지 나는 묻지 않았고 남편도 굳이 말하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시부모님께서는 내 친정에 대해 지금까지도 언질이 없으시다.

 

결혼하고 꽤나 시간이 흘렀다.

이제 와 돌이켜보건데 살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살아있어서 다행인 거 같다.

무엇보다 집과 가족이 생겼다.

같이 살아도 그 곳은 내 집이 아니었고 곁에 있어도 그들은 내 가족이 아니었다.

오롯이 쉴 수 있는 공간이 집을 정의한다면 나는 결혼 후 처음으로 내 집을 가졌다.

 

상처가 없어지진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는 괜찮아졌다 스스로를 세뇌하면서도 분명 괜찮지 않았다. 지금도 멀쩡하진 않다. 이렇듯 익명을 빌려 글을 써내려가는 것을 보면. 한 몇년쯤 지나면 여전히 아팠구나 하며 지금을 떠올리진 않을까 싶다.

마음의 상처는 눈에 보이지 않아서 얼마나 아물었는지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분명 계속 나아지고는 있다.

 

우리 집 냉장고에는 사시사철 딸기가 있다. 남편은 전혀 귀찮은 내색을 하지 않고 며칠에 한 번 싱싱한 딸기를 채워둔다. 내가 일이 바빠 물러터져 버리더라도 다시 새로운 딸기를 넣어둔다. 여전히 참 맛있다.

 

시부모님은 그냥저냥 평범하시다.

시아버지께서는 많이 무뚝뚝하지만 무섭지는 않다. 시어머니는 음 나름의 갈등은 있지만 가족간 당연한 거라 여겨 괜찮다. 무엇보다 두 분 다 날 아끼시는 게 보인다.

결혼 후 몇 차례의 명절이 지나고 한날은 시어머니께서 약주를 거하게 드셨다.

조금 많이 드시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날이 날이니만큼 분위기를 맞춰드렸다. 잠시 후 안방으로 나만 조용히 부르셨다.

자리에 앉자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하고 반복하셨다. 나도 덩달아 한 대답을 몇 번이나 다시 했었다.

어머니께서 갑자기 지갑을 들고 오시더니 오만원권 두 장을 내게 주셨다.

맛있는 걸 사먹으라 하셨다.

뜬금없는 용돈이지만 그냥 좋았다. 고마워요. 감사해요. 인사드리자 기분이 나셨는지 갑자기 지갑에서 현금을 툭툭 꺼내셨다.

아무리 봐도 깔깔한 게 조카들 세뱃돈 같아 잠시 고민을 했다. 다시 지갑에 넣어드려야 하나.

받고 또 받고, 그렇게 몇 장을 더 받다 어머니께서 내 손을 꽉 잡으셨다.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말하라고. 뭐가 됐든 사주신다고. 치사하게 먹을 걸로 사람을 상처주냐고.

어머니가 우셨다. 음. 아마 술기운이셨을 거다. 그 다음날 민망하셨는지 내 얼굴을 보지 않으셨다.

역시 그냥 나는 좀 인복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결혼 후 날 위해 울어주는 세번째 사람을 만났다.

 

그래도 내 인복의 최고 정점은 남편이다.

남편은 내게 단 한번도 그래도 부모니까. 그래도 엄마니까. 그래도 아빠니까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부모인데. 오히려 부모잖아 이러며 나보다 더 화를 냈었다.

그건 그 무엇보다 내게 가장 큰 위안이었다.

 

사는 게 이제는 참 괜찮다. 그래도 아직 아이 가지는 건 좀 무섭다.

분명 이것도 시간이 지나면 차차 나아지겠지. 내가 결혼에 한 걸음 다가섰던 만큼 어느 순간 성큼 성장해 있겠지. 그래도 딱 한 명만 낳고 싶긴 한데.

가끔 남편과 아이 얘기를 종종 하곤 한다. 어떻게 생겼을까. 공부 잘하면 좋겠는데. 건강하면 좋겠다. 누구 닮았을까.

그래도 무엇보다 가장 바라는 게 있다면 철이 아주아주 늦게 들었으면 좋겠다.

어리광도 부리고 칭얼거리기도 하고 떼도 쓰며 그 나이대로 컸으면 좋겠다.

사랑받는 게 너무나 당연해서 사랑을 구걸하는 자체를 인지하지 못했으면 좋겠다.

 

사람 사는 데 좋은 일만 오지는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거야 딱히 이 말을 믿지도 않는다.

오히려 클수록 힘드록 나쁘고 어려운 일이 더 찾아오는 것도 같다.

그래도 바꿔 생각해보면 굳이 나쁜 일만 오지는 않는 거 같다.

좋은 일도 종종 오니까. 언젠가 웃을 날도 분명 있으니까.

 

 

 

 

얘기가 너무 길어져서 여기까지 읽으신 분이 있으신지 모르겠네요.

그래도 혹시 계신다면 당신의 삶이 행복하길 바랄게요.

부디 평안하세요.

추천수527
반대수5
베플커피|2018.02.22 22:36
님 가정에 축복이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행복하고 건강하게 잘~사세요. 꼭 그러실거에요
베플ㅇㅇ|2018.02.23 00:41
고마워요 저도 글 읽으며 눈물이나네요.. 이제 행복하실거예요
베플ㅇㅇ|2018.02.22 21:49
쓰니도 아.. 나 이런 글도 썼었구나.. 할 만큼 아픈 기억이 무뎌지고 내내 행복하고 웃을 일만 많이 생기길.. 고생했어요..이미 알고 있겠지만, 절대로 쓰니 잘못이 아니에요. 어린 쓰니는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어요.
베플남자ㅇㅇ|2018.02.23 14:32
진짜로 글을 너무 잘 쓰신다.. 뇌리에 콕콕 박히고 그 장면이 막 머리속에 그려지고 더 화나고 안타깝고... 글 진짜 잘 쓰세요. 앞으로는 행복한 나날만 가득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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