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우리엄마는 난생처음 잡은 남자,
첫연애 상대인 우리아빠와 결혼했다.
일본에서 나를 임신하고 만삭이 되어서 낳아주실때까지
아이스크림이 먹고싶은 날이면 어김없이 비가오나 눈이오나혼자 걸어가 입에물고..
나를 생각하면서 사랑받고 싶은마음 서러움, 외로운
마음을 위로 했을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찢어지고 또 찢어진다.
그렇게 내가 세상에 태어나고
엄마는 외로운생활에 빛이내려왔다고 했다.
하느님이 엄마에게 주신 선물이라고.
손바닥만한 아이와 알코올중독으로 매일 말과 행동으로
가족에게 상처만 주던 아빠를 데리고
일본에서 다른나라로 이민을결심했다.
엄마는 자신의 엄마한테 울며 힘들다고 살려달라고
도와달라했지만 결혼은 쉽게 하고 쉽게 접는 그런것이
아니라고 편이 되어주지않았고,
이미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진 우리엄마는
누구하나 포기할수없었고
옛 시절 어르신들은 여자가 참아야한다
남자한테 잘하면 복이되어 돌아온다 그 말이 너무
싫고 이해도 안되지만
아무도 힘이 되어주지않는 ...
친구도 가족도 아무것도 없는 그런 상황에
나였다면 어땠을까...
해외로 이사를가서 푸드코트에서 한식집을 시작했다
아침에 도시락을 싸주면 나는 부모님 둘중 한분 차를 타고
학교를갔다. 학교를 마치면 여러가지 액티비티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방과후학교를 갔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부모님 둘중에 한분이 데리러왔다. 아빠가 올때마다 왠지 모를 불안감에 항상 엄마는 찾고 바쁜지 계속 물어봤던 기억이난다.
하루는 아빠가 나를 데리러오고 사람이 지나다니는 길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나는 겨우 초등학교 저학년 이었고
그 모습을 보자마자 눈물을 터트리고 왜그러냐고 물었더니
“엄마가 이혼을 하쟤 니가 가서 말려줘라 아빠가 잘못했다 미안하다 제발 살려줘”
나는 정말 무서웠고 진짜 너무 무서웠다.
내가 배우기로는 가족은 엄마 아빠 자식이 함께하는걸 가족이라고 하는게 아닌가? 이해할수없었고 그냥 무섭기만했다.
그날은 잠이 들기 무척 힘들었고
엄마는 뒤돌아서 울고있었다.
정말 미안했다. 그냥 다 내탓같았고 아빠도 무섭고
그냥 다 싫었다.
물만 마셔도 체한거같다며 화장실가서 변기 붙잡고 나오지도 않는 토를 억지로 쥐어짜며 하루하루 거식증도 우리를 괴롭혔다.
날이가면서 아빠의 폭력과 폭언은 점점 심해졌고
나를 상업용 냉장고에 가두고 자신이 시킨일을 다하지않을때까지 또는 오줌을 바지에 쌀때까지 꺼내주지 않는다던가
이마에 과녁을 그리고선 펜을 던져 다트놀이를 하는건 기본
밥많이 먹는다고 밥상에서 나를 때려버리던 아빠
말대답했다고 계란이 삶아지고 있는 물을 엄마에게 붓고,
다른사람이 보는앞에서 와인병으로 머리를 내리쳐서 피가 철철흐르고. 엄마의 고통스러워하는 표정 너무 많이봤다. 응급실은 집처럼 다녔고..
술에찌들어 자고있는 엄마를 깨워 모르는 여자를 집에 데려다 달라고 하는것도 보았다.
하루는 싸우다 엄마는 나를 몰래 들춰 업고
집을 나왔다. 내리막길에 업혀서 내려오는 길이 아직도 기억난다. 우리가 어디가는지 물었다. 바다보이는 곳 멀리 가자고 했다. 그렇게 버스도 타고 배도 타고 택시도타고 진짜 예쁜 마을 같은곳을가서
낚시도 하고 맛있는 밥도 먹고 조개도 잡고 엄마랑나는 너무 행복했다. 진짜 너무너무 행복했다.
아직도 기억난다.
뒤에 벽난로가있는 동그란 저녁상에 앉아서 수다를 떨고있었다. 전화한통에 엄마는 표정이 어두워졌고
우리를 어떻게 찾았는지 우리는 집으로 돌아갔다.
아빠는 뭐가 그리 힘든지 매일밤 술과 도박에 의지하였고
엄마는 뜯어말리고 맞고를 반복하고...
기억도 잘안난다.
그러다 우리가게에 쓰던 직원오빠가 내가 예쁘다며
목마를 태웠고 그러다 나를 놓지는 바람에 머리로 떨어져
두개골에 금이 크게가 몇일간 깨어나지 않았다.
다시 깨어나도 몸이 하나 불편할수도 있다,
하지만 깨어나면 기적이라고 했다고 한다.
엄마는 기도를했다.
내 딸만 살려주시면 주님을 위해 모든하겠다고.
나는 깨어났다.
머리가 무지아팠고, 그뒤로 지금까지 머리에서 가끔
큰 통증과함께 뚝 소리가 난다.
그후로
우리는 한국을 오게 되었고..
나는 한국초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학교를 가기위해 씻었다.
엄마는 아빠랑 다투고있었다.
컴퓨터가 고장나서.
엄마는 자신이 나가는 김에 나가서 고쳐오겠다 하였고
아빠는 그냥 기사를 부르겠다 한거다.
의견차이가 있었고 거기서 아빠는 엄마를 때리기 시작했다
진열장을 열어 손목시계를 다던졌고, 엄마를 들어서 쇼파에 내다 던졌다. 방충망을 뜯고 엄마를 들어서 창밖에 내밀며 죽이겠다고 했다. 나는 다봤다 엄마가 살려달라고 울부짖는걸
그렇게 계속 한마디도 못하고 입막고 맞기만하던 엄마는
도망치듯이 나갔고 아빠는 나를 데려가면 진짜 죽여버리겠다고 했다.
엄마가 연락이 안된다.. 나데릴러온다했는데
내 핸드폰, 아빠 핸드폰,친할머니 핸드폰,집 전화..
다 안받는다.
나는 나를 버리고 간건지 엄마가 아파서 죽은건지 몰랐고
어떻게든 엄마와 통화를 했어야했다..
나는 학교로 가서 공중전화로 전화를 해봤다
받았다.
엄마는 그렇게 아빠한테 도망쳐서
부러진 갈비뼈를 움켜쥐고 경기도 광주에서 안양까지
운전을해서 가신거였다.
그뒤로 기억나는건 친할머니.
과일을 입에물고 집에서 티비를 보면서
“그년이 시금치 한다발이라도 집에 사온적있냐”
우리엄마는 자신을때리는 아빠.
당신의 아들. 그 악마의 괴롭힘을 견디면서 밥까지 해먹였어요 할머니... 속으로 이미 가족이란 단어는 없었고
나한텐 오로지 “엄마”라는 존재만 남게되었다.
아빠는 어느날 나한테 엄마 보러가자 라고했고
나는 책가방에 내 옷, 인형, 등 짐을 싸기 시작했다
나도 도망치려고 했었거든
아빠는 책가방을 절대 못가져가게 나를 뜯어말렸지만
나는 처음으로 떼를썼다.
할머니 아빠 나 이렇게 셋이 엄마를 만나러가는길은
너무 슬프고 무섭고 두려웠고 한편으로 너무 행복했다.
도착한곳은 병원, 할머니랑 올라갔다.
엄마는 병실에 누워있었고 나를보며 눈물만 흘리며
미안하다고만 하셨고 외할머니와 친할머니는 기싸움을 하기시작했다. 그렇게 두분이 얘기 나누시는 동안
나는 엄마랑 몇일만에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고 감정도 나누고있었는데 친할머니는 문을 벌컥 열더니 내손을 잡고 집에가자며 억지로 끌고갔다. 엄마는 소리를 지르고
나는 친할머니한테 소리쳤다.
“안가요. 안갈거에요. 그런 집안에서 살기싫어요 할머니 혼자가세요 저는 엄마랑 살거에요”
정적이 흘렀고 친할머니는 그대로 뒤돌아 떠나셨다.
나는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엄마랑 살게되었고
엄마는 더이상 학대 받지 않아도 되었고
우리는 행복한줄 알았다.
나는 초등학교를 오고 갈때마다 아빠가 나를 데리러올까봐
매일 불안에 떨어야했고.
낫지 않는 거식증은 우리를 매일 괴롭혔고.
그러던 와중
엄마와 아빠는 그렇게 공식적으로 이혼을 하게되었다.
법정에 선 아빠가 증언하는 거짓말들에 기가찰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지칠대로 지쳐있었고 같은 공간에서 숨쉬는 갓조차 두려워했다.
엄마는 양육비 위자료 그런거 다 필요없다.
내 딸만 제발 데려가게 해달라 빌었고.
나만 데려왔다. 바보같이
그 시절 동덕여대, 이화여대학원까지 졸업한 똑똑하고 능력있던 우리엄마는 졸업하자마자 술과 도박이라는 악마에게
져버린 아빠에게 팔려가듯이 시집을갔고,
그 결혼 생활 끝에 얻은건 나라는 못난 딸, 그리고 씻을수없는 상처, 마음의병.
엄마는 후회하지 않는다 했다.
다시 그런 상황이와도 똑같이 할거라고..
빈털털이가 된 엄마는 어떻게든 나와 자신을
먹여살려야했고 나를데리고 거기서 차려주시는 끼니로 배를 채우며 여기저기 과외를 하러 다니고 남는시간은
노인복지회관, 장애인복지회관 등 여기저기 봉사활동과
못했던 공부를 해서 자격증도 따셨다.
그렇게 엄마는 배고픈거 외로운거 추운거 슬픈거 창피한거 다참고 지금의 피플컴포즈 라는 가족심리상담 연구소를 오픈하고 수많은 사람을 다른 방법으로 살리셨다.
물론 어려운 나라에 옷과 물, 연필등 보내는것도 잊지않으셨다.
이렇게 짧고도 긴시간이 지나며 엄마는 다시 재기하였다.
그치만 그 시간동안 살아가기에 급급하고 나누고 나를 보살피고 또 남을 보살피는 일을하며 미쳐 자신이 받은 상처는 회복하지 못했다.
시도때도 없이 나타나는 공황장애 증상
숨을 못쉬고 이상한 소리를 한다.
일이 아닌 다른자리에 모르는 남자가 있을때
온몸이 경직되어서 몸을 떠는것,
잠을 자다 경기를 일으키고
망가진 위는 음식물을 계속 게워냈다.
그 시간들중 엄마는 임신 4개월 크기의 혹이
자궁속에서 발견되어서 나는 해외에서 일을 하는도중이었고 갑작스런 수술에 내친구들이 대신 엄마에게 가줬다.
너무고맙다 아직도 고맙다.
시간이 흐르고
나와 엄마는 행복해지기 위해 서로에게 투자하기 시작했고
엄마와는 둘도없는 친구가되었고 뭐든 함께했다
여행, 쇼핑, 맛있는거먹기.
우리는 점차 좋아졌고 내가 딸, 친구로
엄마가 행복해지는데에 함께하며 도움을 주는데 한계가 찾아왔다. 바로 남자에게서 부터 받은 상처.
엄마는 연애를 두번하고 지금만나는 삼촌을 만나고 있다.
그전 새끼들은 내가 전화해서 욕도 몇번했다. __것들.
삼촌한테 너무 감사드린다.
우리엄마가 겁먹지않게 정말 조심스럽게 다가왔고,
출근 전 아침에 베이글을 구워 엄마에게 가져다 주는
그런 남자였다.
엄마는 점점 받아보지 못한사랑에,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감정에 퇴행이 났고 내가 봐도 정말 삼촌앞에선 애기같았다.
삼촌은 그런 애기같은 엄마를 사랑스럽게 봐주고 차문도 열어주고 단한번도 해보지 못한 데이트를 하며 엄마가 점점
한사람의 여자로, 사랑받는 여자로 변해갔다.
자존감도 높아졌고, 자신감도 생기고, 많이 웃고 말수도 많아지고 하고싶은 것도 많아지고, 먹고싶은것도 많아지고, 갖고싶은것도 많아지고, 하기싫으면 땡깡도 피우고 남자친구한테 억지도 부려보는 그런 여자가 되었다.
처음엔 나도 모르게 엄마가 그러는게 불안했던거같다
언제 상처 받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삼촌이 조금만 아니다 하거나 내마음에 들지않는 말을했을때 오히려 난리치고 더 방어적으로 행동하는건 나였다.
그럼에도 삼촌은 엄마와 나를 가족이라 이야기하며
함께했다.
처음에는 그냥 엄마의 연애상대. 또 마음을 열면 언젠간
나와 엄마를 떠나갈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삼촌은
가족이란 단어를 버렸던 나에게 다시 가족이란 걸 생각하게 하셨다.
그런 삼촌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가족이라면 나의 할아버지가 되겠지.
한번도 뵙지 못한 할아버지의 방속에는 삼촌의 사진한장만이
있었다고 한다.
삼촌의 어린시절도 행복하지않았다고 한다.
모든 사람이 행복한 어린시절을 가지고 있지않다.
지금의 우리가 되기까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우리 아빠도 그렇다
우리 아빠의 어린시절도 행복하지않았다
부모가 손잡는 모습, 사랑하는 모습, 입을 마추는 모습,
같이 누워서 잠을자는것을 나처럼 본적이 없다.
아빠는 부부가 뭔지 엄마가 뭔지 아빠가 뭔지
배우지 못했다. 사랑을받아 본적이없어서 주는법을 모르는거다. 생일때 나에게 생일선물을 사주며 절대웃지 않던 우리 아빠가 나를보며 웃는모습을 생각하면
우리아빠역시 생일때만 사랑을 느끼고 행복했나 보다.
불쌍하다. 이 단어가 부적절 하다고 할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가 쓰려는 단어가 맞다.
나는 아빠가 불쌍하다. 그리고 용서했다.
아빠가 그런 사람이 된건 자신의 잘못이지만
상처받은 어린시절 탓도 있으니.
용서하지 않으면 내가 더 불편하고 아픈것같다
상황과 사람에게 끊임없이 “왜” 라는 질문을 하게 되고
내 상처를 내가 들쑤시고 내가 아프다.
시간이 약이다.
상처를 뜯고 뜯기다 새살이 돋고 반복하다 굳은살이 되어서 인생에 추억이되거나 트라우마가 되어 나의 일부가 되는거지.
지금 내가 살아 가는데에 잡아야할 밧줄은 안잡고
쓸데없는 밧줄을 잡고 손에 피를 철철흘리고 있지는 않은가
잠시 놓고 시간을 보내면, 상처와 더러워진 손에 새살이돋고 굳은살이 생겨 이후에 이 밧줄을 다시잡을땐 더욱 힘차고 안전하게 꼭 잡아도 덜 아프도록 하는것도 나쁘지 않은가.
내가 나무라면,
나의 나무가 왜이런 모양인지 궁금하다면,
정말 밤을세고 이야기해도 모자를 것이다.
우리가 나무라면 서로의 가지가 엉켜 뒤붙으며
서로의 자리를 침범하고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고 받고
가지가 무거울땐 아래에서 바쳐주기도 하고
누군가의 상처를 이야깃거리 삼지않고
상처를 핑계삼아 무기로 사용하여 남에게 되돌려 주지않고
계단으로 만드는.
이해가 되지않아 노력을 해봐도 되지않는다면
힘들어도 밧줄을 놓고 서로가 서로의
바람을 막으며 뿌리를 내리면 더욱더 단단하고 아름다운 나무, 숲이 되겠지.
하루하루 자라고 변하는 우리에게 나빴던 기억을 준 사람도,
행복한 기억을 준 사람도, 없었다면
단단해질수 있었을까. 고맙고 사랑하고 미안하다.
다른 나무가 쓰러져도 끄떡없이 버티는 단단한 나무가 될때까지 잘부탁해.
나의 친구들, 친구들의 배우자, 아이,
앞으로 만날 친구들,
나의 배우자,
나의 엄마.
그리고 삼촌 아빠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