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2년차의 다둥이 아빠입니다. 어쩌다 보니 2년 터울의 사내 아이 셋을 키우며 살고 있네요.
제가 사정상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가정 경제는
전적으로 아내의 몫입니다. 벌써 10년째 어머님이 오셔서 가사를 돌보고 아이 저녁도 챙겨주시지만
집안일도 거의 대부분 아내가 퇴근 후에 부담 합니다.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는 무능한 가장이
죠.
아내는 전문직에 경력 15년차 입니다. 결혼 전 부터 일을 해왔고 이제는 직급도 꽤 높아졌습니다.
그래서인지 작년 부터 부쩍 회식 하는 날이 많습니다. 점심에도 팀원들과의 식사는 물론이고
다른 회사의 업무와 관련 된 사람도 만나고 또 회사 내에서 협력해야 하는 부서의 사람들과도
잦은 회식을 합니다. 그래봐야 일주일에 두번 혹은 세번인데 예전에는 한달에 한 번 꼴이었으니
좀 많이 늘어났죠.
남자든, 여자든 사회 생활을 하다보면 당연히 회식이나 술자라기 불가피하게 발생하고 또 업무
특성에 따라 빈번 할 수 있습니다. 아내의 회식 자체 때문에 걱정을 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회식
을 할 때 마다 벌어지는 일 때문에 그리고 최근에 있었던 일로 마음 한 구석에 불편하고 또 염려
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아내는 술자리에서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보통 11시나 12시 정도 까지 자리가 이어지는데 핸드폰
을 가방에 두기 때문에 혹은 술자리에서 전화 받는게 내키지 않아서라는 이유로 통화가 안 됩니다.
여기까지도 그럴 수 있다고 이해 합니다. 그런데, 일종의 술버릇 처럼 회식이 끝나고 집에 바로
오지 않고 몇 정거장 전에 내린다거나 아니면 아예 몇 시간씩 걸어올 때도 있습니다.
제가 데리러 간다고 해도 술을 깨려고 그런거고 또 이런저런 생각들을 정리하기 위해서 걷는다
고 합니다. 걱정 말라고 하죠. 어떻게 걱정이 되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큰 길로 걷는다 해도
밤 늦은 시간 여성이 혼자 길을 걸어간다는게 마음이 놓이질 않습니다.
최근에 있었던 일입니다. 집으로 출발한다고 전화가 왔는데 통화 중 제가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
지 않았고 아내도 마찬가지로 통화 중인 상태에서 주머니에 핸드폰을 넣었습니다. 주변의 소리가
그대로 들렸습니다. 직장의 남자 동료로 추정 되는데 집에 가지 말라 잡고 아내는 뿌리치고, 또
쫓아가고 뛰어가면서 실갱이를 벌이는 것 같았습니다. 보통 회사 회식 때 2차 가자고 붙잡는 것
보다는 친한 친구사이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녹음 버튼을 눌러서 저장을 했습니다.
나중에 물어보지 않고서는 여러가지 오해를 할 것 같았고 그래서 확인을 하고 싶었습니다.
아내가 집근처 차에서 내렸는지 저에게 전화를 했는데 본인도 통화 종로 버튼을 누리지 않았던 걸
그제서야 확인했습니다. 저는 못들은척 가만히 있었고 아내는 전화를 끊었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 였습니다. 제가 다시 전화를 했는데 통화중이었고 30여분간 계속 통화 중으로
전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통화가 되었는데 데리러 나오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는데 또 다시 통화 중 이었습니다. 10분정도 지나서 다시 통화가 되고
아내를 데리고 집에 왔습니다.
제가 방금 전 까지 통화 한 사람이 누구인지 물었습니다. 저에게 전화를 했다고 하더라구요.
저는 통화 중 캐치콜이 되기 때문에 사실이 아니죠. 그래서, 제가 집으로 출발하기 전 통화 중
녹음 했던 것을 들려주었습니다. 아내는 술을 많이 마셔서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그날 평소보다 술을 많이 마신 건 사실이었지만 바로 1시간 전의 일을 기억하지 못 할 정도는
아닌 것 같았습니다. 아내는 다시 들어보겠다고 하더니 녹음 파일을 지웠습니다. 제가 왜 지우냐
고 하니 앞으로 계속 이것 때문에 물어 볼 것 같아서 지웠다고 합니다.
집에 와서 통화 내역을 봤습니다. 아까 실갱이를 벌였던 사람과 통화 한 것 같다는 직감이 왔습
니다. 제가 다시 물었습니다. 이 사람과 통화한거 맞냐고? 아내는 통화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 하
고 바로 잠이 들었습니다.
아침이 되어서 어제 일이 기억나는지 물었습니다. 여전히 통화 내용은 기억나지 않고 통화 내역
에 있는 사람이 통화중 녹음 되있던 사람이 맞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회사의 모든 여자들한테
그러는거고, 아내의 일을 업무상 잘 도와주는 사람인데 곧 이사를 가서 앞으로는 회식을 마치고
같은 버스를 타지 못하게 되었다고 하네요. 더는 묻지 않았습니다. 무슨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고
회식 중 해프닝인데 괜한 의심을 하는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머리 속 을
떠나지 않는 건 버스에 내려서 집에 오는 길에 왜 통화를 했을까? 그리고, 제가 기다리는 동안
통화 한 건 무엇인지. 라는 불편한 상상 입니다.
결혼 생활 동안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일을 겪으면서 마음이 무겁고 또 불안합니다.
그동안 소흘했던 일도 생각나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이혼하면 모두 제 책임이라는 아내의 말도
다시 떠오릅니다. 직급 때문에 치장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면서 부쩍 옷을 사던게 이유가 있었던
건가, 아이들이 자주 아내 핸드폰을 사용해서 최근에 잠금을 해놨는데 그것도 다른 이유 때문인가
라는 망상 까지 합니다. 한 번 의심을 하니 걷잡을 수 없이 번지더라구요.
아내를 만나기 전 사귀던 사람이 저의 가장 친한 선배와 몰래 연애를 했었고 둘은 결혼까지 했습
니다. 그 때 받은 상처가 트라우마처럼 여전히 남아있고 당시에도 약간 이상한 징조가 있었는데
설마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일이 생각 나기도 합니다.
하루 이틀 지나면서 마음은 정리가 되었지만 이제 아내가 회식을 한다고 하면 걷잡을 수 없이
마음이 불편해 질 것 같습니다. 아내는 직장 생활을 하고 싶지 않다고, 제가 돈을 벌면 아이들만
키우겠다고 했지만 그렇게 보장 해 주지 못하면서 괜한 의심만 하는 저를 자책도 합니다.
이런 마음을 어떻게 이야기 할 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내의 입장에서는 펄쩍 뛸 일이고 저에
대해 더욱 실망 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라도 고민을 털어놓아야 어지럽게 헝클어진 머리 속의 고민들이 조금은 정리 될 것 같았습
니다. 긴 이야기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하루 빨리 정신을 차려야 하는데 모든 게 다 귀찮고
바닥으로 내려 앉은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