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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둘째 출산 후

남편 |2026.04.07 21:01
조회 149 |추천 0

2016-12-27(화) 둘째 딸 출산
 추운 겨울 아침, 세상의 빛을 처음 본 둘째 딸. 첫째 아이의 돌을 막 지난 시점에서 또 한 명의 생명이 우리 곁으로 찾아왔다. 만삭의 아내는 그동안 힘든 시간을 견뎌내며 출산의 고통을 감내했고, 나는 둘째의 아빠가 되는 기쁨과 책임감을 함께 마주했다.

작은 울음소리가 분만실을 가득 채우고, 아기의 얼굴을 처음 마주했을 때 고단한 시간들이 잠시 멈춘 듯했다. 첫째 때와는 다른 감정, 하지만 여전히 벅찬 감동. 가족이란 이름이 점점 더 무게를 더해가고 있었고, 나는 그 중심에서 두 아이의 아빠로 성장해가고 있었다.

이 날은, 내 인생에 또 하나의 생명이 선물처럼 도착한 날이었다. 이름도 얼굴도, 아직 세상은 낯설지만 너는 우리 가족의 둘째 딸로, 당당히 태어났다.

2016-12-31(토) 씨부럴, 쌍노무새끼
 둘째 아이 출산 후, 아내는 산부인과 205호 병실에서 회복 중이었다. 둘째는 역아였고, 자연분만이 어려워 제왕절개로 태어났다. 첫째 때보다 회복이 훨씬 더뎠고, 아내는 통증과 불편함으로 힘들어했다.

사실 둘째 아이도 아내가 간절히 원했던 아이였다. 나는 한 아이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혼자 자랄 첫째보다는 형제가 있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결국 마음을 열었고, 둘째까지 낳아 키워보자고 결심했었다.

출산 이후, 산후의 불안정한 감정과 육체적 고통 때문이었는지 아내는 점점 날카로워졌고, 그날 밤엔 결국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씨부럴, 쌍노무새끼…” 소파에 조용히 누워 있던 나는 그 말을 듣고 속이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병실까지 와서 이틀째 밤을 지새우며 곁을 지켰지만, 돌아온 건 날 향한 욕설뿐이었다. ‘내가 이런 소리를 들으려고 여기 있는 걸까?’

물론 아내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함께 낳기로 결정한 일이었고, 그 선택의 결과를 혼자 감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 한구석이 너무나 공허해졌다. 한 해의 마지막 날, 그렇게 나는 침묵 속에서 쓸쓸히 그날을 마무리했다.

2017-01-15(일) 아내의 소리 지름
 둘째 출산 후 집안은 더 복잡해졌고, 아내는 두 아이를 돌보느라 지쳐 있었다. 나 역시 회사와 육아를 병행하느라 몸이 고단했지만, 아내가 겪는 신체적·정신적 피로가 얼마나 클지는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임대인 할아버지께서 내게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안사람이 아기 보기 아주 힘든가 보네. 큰 소리가 자주 들리네.” 나와 있을 때도 아내는 아이를 돌보다 감정이 격해져 큰 소리를 지를 때가 있었지만, 내가 없을 때도 그랬다는 걸 이 말을 듣고 알게 되었다.

밖에서도 들릴 만큼의 소리라면, 아이들에겐 얼마나 크게 들렸을까. 아내가 정말 많이 지쳐 있다는 것도 알겠고, 그만큼 힘들다는 외침일 수도 있겠지만, 어느새 아이들에게 그 짜증이 전달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날 이후 나는 아내의 고됨만을 생각하던 시선에서 조금 벗어나, 아이들이 느끼는 정서적 환경에도 더 신경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2017-01-19(목) 실손 보험
 아내와 함께 한화손보에 들러 둘째 아이의 실손 보험 계약자 변경 절차를 마쳤다. 아내는 나를 보며 말했다. “자기랑 둘째는 보험 있는데, 나는 왜 없냐고.”  그 말에 나는 보험이 나를 위한 게 아니라 가족 모두를 위한 안전망이라는 점을 조심스레 설명했다. 사실 아내도 결혼 전에 이미 실손 보험에 가입되어 있었기에, 굳이 나에게 그런 불평을 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왜 그런 하소연을 할까? 단지 쓸데없는 욕심일까?’ 그 마음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조용히 넘어갔다. 보험이란 결국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라지만, 그날은 아내 마음 한켠의 작은 불안과 바람이 나에게도 조용히 전해진 듯했다.

2017-01-20(금) 또라이야
 우리 집 옆 테라스는 작은 쉼터 같은 공간이었다. 아이들과 놀기도 하고, 빨래를 말리기도 하던 곳이다. 이날은 눈이 많이 내려 퇴근 후 집에서 간단히 밥을 먹고 나서 테라스에 쌓인 눈을 쓸었다. 아내는 아이들을 돌보느라 지쳐 있었고, 그런 상태에서 내가 눈을 치우는 모습을 보고는 갑자기 화를 냈다.

“당신, 왜 눈을 쓸어? 또라이야.” 내가 굳이 눈을 쓸지 않으면 여든이 넘으신 임대인 할아버지께서 해야 할 일인데, 그곳은 주로 우리 가족만 쓰는 공간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쓰는 게 맞다’고 말했지만, 아내의 화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고, 여러 차례 폭언이 이어졌다. 그때 아내가 얼마나 지쳤는지, 그리고 그 감정의 무게가 얼마나 컸는지를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2017-01-28(토) 똥구멍을 꽉 찔러 버린다
 설날 아침, 7시 50분 택시를 타고 본가에 다녀왔다. 차례를 지내고 아침을 먹은 뒤 세배를 올리고, 다시 택시를 타고 처가로 이동했다. 처가에 도착해 친척들과 인사를 나누고, 얼마 후 처이모네도 처가에 방문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7시쯤, 처외삼촌께서 처가에 방문해 새벽 2시까지 술자리가 이어졌다.
이후 처외삼촌이 집으로가시고 잠자리에 들어가자 아내는 자다가 내가 깨웠다며 화를 냈다. 아내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똥구멍을 꽉 찔러 버린다.” 설날이라 여러 곳을 다니며 피곤해서인지 아내의 피로와 감정이 겹쳐져 그런 말이 나온 것 같았다. 나는 멀찍이 떨어져 조용히 잠을 청했다.

2017-02-01(수)~2017-05-01(화) 첫째 육아휴직
 결혼 전부터 아내는 콜센터 인바운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다. 그 모습을 보며 안타까웠고, 아내가 아이들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결혼 후 보육교사 자격증 취득을 권유했다. 그런데 자격증 취득 비용은 내가 부담하라고 해서, “당신이 배울 건데 당신이 해야 한다”고 말했고, 어느 날 친정어머니에게서 돈을 받아 학원에 등록했다. 과거 우리 집 같았으면 이런 일은 스스로 해결했어야 했는데, 아내의 친정과 본가가 다르다는 걸 다시 느꼈다.

인터넷으로 수강 신청을 하고 강의를 들으며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치렀지만, 연년생 출산으로 2년 정도 미뤄야 했다. 아내가 “보육교사 자격증을 포기할까, 아니면 취득할까?”라고 물었고 나는 “네가 원하는 대로 해”라고 했다. 결국 아내는 취득 쪽으로 마음을 정해 내가 첫째 육아휴직을 쓰게 되었다.

2017년 3월 13일(월)부터 4월 7일(금)까지 약 한 달간 아내는 보육교사 실습으로 근처 어린이집에서 일했다. 그동안 나는 육아휴직을 사용해 집안일과 아이들 돌보는 일을 맡았다. 첫째 출산 전부터 온라인 쇼핑은 내가 전담하여 밤에는 온라인 주문을 하고, 아침부터 아내 퇴근 때까지 아이들 분유와 기저귀를 갈며 놀아주었다. 아이들 낮잠 시간에 같이 잠들 때가 꿀맛 같았다. 가끔 직장에서 도면 요청이 들어오면 아이들이 잠든 저녁에 도면을 그리기도 했는데, 그때는 늘 잠이 부족해 피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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