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36살 미혼 여자입니다.
늘 다른 분들이 올린 글에 눈팅을 하면서 조언과 위로를 받다가...
아무한테도 털어놓을 수 없는 불편하고 우울한 감정 때문에 너무 괴로워서... 도저히 속에만 담아두기 힘들어 글을 쓰게 되었어요...
저에겐 대학시절에 아주 친했던 친구 A가 있습니다. (편의상 베리라 부를게요! 이 친구가 좋아하는 과일이 딸기, 블루베리 같은 것들이라...)
물론 졸업을 하고 사회생활 하면서, 또 이런저런 다사다난한 개인사로 만나는 시간도 줄어들고 소원해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서로의 생일엔 왠만하면 잠시라도 얼굴 보며 선물 주는 그런 친구에요.
베리와 저는 취향과 관심사가 비슷해서 (둘 다 그림을 그리고, 감성적인 소녀 취향) 친해지게 되었고 그건 오랫동안 아주 잘 맞았지만... 천성이랄까 성향은 완전 정반대에요. 베리는 정말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그걸 쉽게 다른 사람에게 표현합니다. 또 그림 그리는 것도 파격적으로 그리구요. 조금 독특하기도 합니다.
일례로 학교 다닐 때, 한번 친구들한테 단체 문자를 보낸 적이 있었는데 “특종! 지금 수업 들으러 가고 있는데 힐 신어서 다리 아파 자리에 앉았더니 내 앞에 있는 남자가 지 여친한테 하는 말. 너 앉히려고 했는데... ㅠㅠ 얘들아!!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되니!! 이런 일을 겪고도 수업 따위를 들어야 하는가” 이러면서 친구들한테 하소연하고 단체 미팅 약속을 잡는 친구에요.
또 한번은 제가 대학 다닐 때 싸이월드 열풍일 때도 저는 싸이를 안 했는데... 그 친구가 넌 왜 안하냐 물어서, 미이런? 꾸미고 도토리? 모으고 사진 올리고 뭐하고 하는 게 너무 귀찮아서 안 한다 했더니 “그것도 귀찮으면 걍 왕따로 살아야지!”라고 돌직구를 날렸죠. (그때는 진짜 싸이 열풍이었는데 저 혼자 안 했으니 그야말로 팩폭- 요즘 시절에 인스타 안하는 거라 보시면 될 듯. 그렇지만 전 왕따는 아니었음.)
여하튼 남한테 싫은 소리 잘 못하고 속으로 담아뒀다 일기장에다가만 욕하는 소심한 성격의 저는 베리가 늘 부러웠습니다. 그리고 베리는 큰 키, 날씬한 몸매, 예쁜 얼굴 등 거의 연예인 급의 미모를 자랑하는 친구였기에, 저는 내심 베리의 저 거침없는 솔직함은 필시 저 예쁜 외모가 주는 자신감에서 나온다고 생각했어요. 뭔가 같은 행동을 해도 분명히 외모가 예쁘면 여러모로 플러스 알파 되는 게 많으니까요.
실제로도 저는 베리가 그동안 외모 덕을 많이 봤다고 생각합니다. 20대부터 많은 남자들이 베리를 좋아했고, 대시를 했고, 저는 길거리 헌팅을 당한 적이 36년 평생에 단 한번도 없지만 베리는 홍대 앞을 갈 때마다 무조건 번호 알려달라는 남자가 한둘은 있었어요. 본인도 스스로 예쁜 걸 너무 잘 알아서 셀카를 하루에도 수십, 수백장씩 거침없이 찍는 아이였고, 자기애가 강해서 다른 친구들이 아무리 잘 나온 사진도 본인이 안 예쁘게 나오면 거침없이 지워버리는...
(아니, 내가 잘 나온 사진은 나한테 좀 보내주고 지우면 될텐데... 순식간에 자동 삭제ㅠㅠ 그리고 난 엄청 공들여서 열장 스무장씩 찍어줬는데 내 사진은 대충 한 두장만 찍어주고ㅠㅠ 그래서 내 핸드폰으로 사진 찍자고 해도 죽어도 사진은 다 자기 핸드폰으로만 찍는ㅠㅠ 사진뿐만 아니라 뭐든 좀 자기 마음에 드는 것만 하려는 성향이 강한...)
그래서 때로는 얄밉기도 했고 서운하기도 하고 질투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고마웠어요. 어찌됐든 저렇게 예쁘고 잘나고 당당하고 솔직한 아이가 내 친구라는 게 좋았습니다. 그리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호의를 보내고, 잘해주고, 좋아해주는 남자도 많은데다 심지어 그림까지 잘 그리는 베리가 정말 부러웠어요. 베리는 이미 작가로 데뷔해서 개인 전시회까지 열었습니다. 저는 베리가 (일과 사랑에 한해선) 정말 행복한 20대와 30대 초반을 보냈다고 생각합니다.
(반면에 저는.. 제 얘기까지 하면 너무 긴데... 아주 짧게 요약하자면, 정말 정말 지극히 평범한 외모, 흔하게 생긴 얼굴에, 20대 초반까진 중산층으로 살았던 집안사정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전시회는커녕, 일반 회사에 취직하고 이직하고를 반복하며 야근에 박봉 직장인으로 살아서 제대로 된 그림 하나 못 그리다가... 뒤늦게 퇴직하고 재작년부터 다시 너무 그림이 그리고 싶어서 모아놓은 돈으로 웹툰 작가 준비 중입니다.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서 틈틈이 카페 알바를 병행하면서요...)
그런데 (제가 보기엔) 행복했던 베리의 인생이 꼬인 건, 3년 전 남자친구를 만나면서 부터였어요. 원래 베리가 감수성이 풍부하고 감정기복이 심한 건 알고 있었고, 우울증이 있는 것도 약한 우울증인 줄만 알았지... 이토록 심각한 줄 몰랐는데요. 베리가 이 남자친구와 만나면서부터 이런 감정기복과 우울 증상이 더욱 심해졌고... 가족과 갈등이 심해졌습니다. 어머니가 남자친구를 반대했는데 베리가 집을 뛰쳐나와 남자친구와 동거했습니다. 이 때부터 어머니와 가족들과의 인연이 끊겼던 것 같아요. (알고보니 베리에겐 정말 불운한 가정사가 있었습니다. 폭력 아버지와 헤어지고 어머니 혼자 베리와 베리의 오빠를 키웠고 어머니가 베리에게 기대감이 매우 컸는데... 딸이 본인 원하는 기대를 채워주지 못하니 갈등이 컸던 것 같아요)
저는 제 코가 석자인 삶을 살고 있었기에... 베리와 가끔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면서도 베리의 깊은 내면의 우울까지 들여다봐주지 못했는데요. 그래도 남자친구가 다정하고 자상한 성격이라 다행이다... 잘 위로해주겠지 그렇게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최근 몇 달 동안 베리가 SNS에 너무 우울한 글들을 올리고 있어요... 심지어 저랑 몇 몇 친구들에게 돈이 없다며 생활비 좀 보내줄 수 있냐는 카톡을 돌직구로 보내기까지 하고. 얘가 진짜 자존심이 강한 성격이고... 베리 원래 성격엔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이제는 막 친하지 않은 사람들한테까지 돈을 빌려달라고 하나봐요.
저는...무려 36살의 나이에, 결혼도 안 하고, 이제와 그림을 그려보겠다고 웹툰 공모전을 도전하고 있는지라... 그리고 그동안 벌어놓은 돈들은 다시 일러스트 배우고, 웹툰 강좌 듣고, 집안 생활비 보태는데 써버려서... 베리를 도와줄 여력이 없어요ㅠㅠ
그래도 카페 알바비를 받았으니까 (저 쓸 것도 모자라지만) 그래도 정말 베리가 다급해보일 때 종종 10만원, 20만원씩 보내주고 베리의 집에 찾아가서 밥이랑, 간식이랑, 커피랑, 생필품들 사가서 위로해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솔직히... 내가 있는 힘껏 열심히 위로해주고 응원해주었는데... 그게 전혀 1도 소용이 없으면 기운이 빠지더라구요...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베리는 나의 위로나 조언과는 상관없이 점점 더 우울해졌고... 도대체 그럼 나는, 나라는 존재는 베리에게 무엇인가? 나랑 즐겁게 얘기나누고 같이 밥먹고 하는 시간이 이 아이의 기분을 전혀 나아지게 하지 못한다면... 나는 베리에게 친구이기는 한걸까? 자꾸 그런 서운함이 밀려듭니다. 왜냐하면 지금 제 상황도 우울해서 저도 위로와 긍정에너지가 필요한데... 저도 부족한 <긍정의 힘>을 엄청 애써서 베리에게 나눠주는 건데도 전혀 차도가 없으니까요. 과연 반대의 상황이었다면... 만약 내가 심한 우울증에 걸렸다면 베리는 나에게 언제까지, 얼마나 많은 배려를 해줬을까... 의문도 들구요.
무엇보다... 정말 많은 이들이 부러워하는 미모와 재능을 가졌고, 연애도 많이 했고, 그 때문에 (객관적으로 제3자가 보기에) 너무나 행복한 시간들을 보낸 베리인데...
미모, 전시회, 진심으로 좋아하는 남자와의 오랜 연애 ==> 특히 이 3개는 정말 제가 부러워한 것들이고, 그 중 하나도 못해본 나도 이렇게 힘들게 하루하루 버티면서, 어렵지만 좋은 생각 하려고 노력하면서 사는데... 지금 도대체 누가 누굴 위로하나 웃기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고 나서는 어김없이 내가 이것밖에 안되나... 죽도록 힘들어하는 친구를 두고 무슨 이런 치사한 생각을 하나... 죄책감과 자괴감에 괴로웠습니다. 속도 많이 상했어요. 내가 이럴 때 실제로 베리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큰 돈을 빌려줄 수 있는, 그래서 깊은 우울에 빠진 친구를 기쁘게 해줄 수 있는, 그런 성공한 사람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슬프기도 하구요.
그런데... 이 죄책감과 자괴감에 찬물을 끼얹은 일이 있었으니...
베리가 또 SNS에 너무 우울한 죽고싶다는 글을 올렸을 때, 제가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이제 그만 억지로라도 집에 들어가라는 쓴소리를 정말 용기내서 했는데...
베리가 저에게 연락을 끊었습니다.
한 대 맞은 기분이었고... 정말 바보가 된 기분이었고...
그래, 나도 이제 내 인생이나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생각했어요.
웹툰 작가 데뷔, 돈 벌기, 연애, 결혼, 집안 빚 갚기, 쇠약해지는 부모님 건강 챙기기 등등 제 인생의 키워드도 이렇게 우울하고 해결해야할 문제들 투성이니까요.
그리고 저는 베리와 반대의 성격이라... 다른 사람에게 제 속사정을 깊이 말하지 못해요. (인간 불신이 너무 깊습니다. ㅠㅠ 그래서 연애도 깊이 하지 못했어요. 늘 한계가 있었고... 피상적인 단기 연애만 했구요. 진짜 제가 좋아했던 사람은 저를 좋아해주지 않아 짝사랑으로 남았었고... 그동안 주로 저를 먼저 좋아해준 사람과 크게 마음에 없어도 연애를 시작했는데... 뭔가 결정적인 순간에 상대방을 완전히 믿지를 못하고 불안해하니까... 결혼은커녕 1년 이상 사귄 적이 별로 없어요ㅠㅠ)
어쨌든 저는 그 이후에 베리를 잊고 제 삶에 집중하려 노력했습니다.
근본적으로 인간을 불신하는 저의 성격적 결함을 극복하고, 이제는 결혼까지 이어지는 안정적이고 행복한 연애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동호회도 가입하고 다이어트도 하려고 운동도 하고, 카페 알바도 열심히 하고, 그림도 열심히 그리면서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한 남자가 다가왔고... (3살 연상)
저는 또 늘 그렇듯이 저의 상황을 처음부터 다 어느 정도 털어놓았고 오빠는 그래도 좋다고 해주는 고마운 사람이었습니다. 제 나이 곧 다가올 내년엔 37살... 이런 남자가 언제까지나 나타나주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알아요. 그런데도 인간 불신이 툭하면 튀어나와요.
니가 과연 언제까지 나를 좋아해줄까?
지금은 잘해주다가도 나보다 더 좋은 여자 나타나면 언제라도 떠날 거 아닌가?
그럴 거라면 시작도 안 하는 게 나은데...
근데 이 불치병은 하루아침에 고쳐지는 게 아니므로... 일단 이번에는 진득히 연애를 해보고 싶습니다. 오빠는 아직 만난지 한달도 안 됐지만 따뜻한 사람이고 속이 여리고 상처도 많은 것 같아서 제가 더 잘해주고 싶고, 무엇보다 제 얘기를 잘 들어주고 제 꿈을 진심으로 응원해주는 좋은 사람입니다. 저도 이제 좀 조금씩이나마 행복해지고 싶고... 그간 힘들었던 만큼 앞으로는 어떻게든 좀 좋은 일만 있고 싶어서요...
베리는 이미 20대와 30대 초반에 숱하게 했던 <진심으로 좋아하는 남자와의 행복한 연애> 이걸 저는 36살에라도 좀 해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과는 해볼 수 있을 것 같아 정말 오랜만에 마음이 좀 몽글몽글 설레는 나날이었는데...
며칠 전, 베리가 SNS에 장문의 자살 예고글을 올렸습니다.
친구가 알려줘서 들어가보니... 그동안의 우울한 글과는 차원이 다른, 너무 충격적인 글이었고... (남자친구는 진짜 강아지-) 베리와 연락이 안돼서 경찰에 신고까지 했는데... 수면제 복용량이 치사량이 아니어서 다행히 고비를 넘겼습니다.
진짜 잘못될까봐 얼마나 무서웠는지... 다행히 무사해줘서 너무 고마웠고...
(근데 이게 베리를 걱정하는 것도 있지만 그것보단 제 걱정이었어요... 이대로 진짜 죽으면 내가 너무 견디기 힘들 것 같아서... 나를 위해 살아줘서 고맙다는, 결국은 나를 위한 감정이라... 또 미안하기도 하고...)
근데 또 너무 화가 납니다. 결국 너는 나를 버렸구나... 내 연락을 씹는 것도 모자라 나의 존재가, 우리 친구들의 존재가... 니가 살아가는데 아무런 힘이 안 된다는 증거가 아닌가... 결국 너는 우리 다 안 봐도 상관없다는 거잖아... 라는 생각에 너무 슬프기도 하구요...
또 너는 이렇게 힘들어하는데 나 혼자 남자와 썸 타며 즐거워했던 게 괜시리 미안해지기도 하고... 아니야, 니 맘속엔 이미 내가 1도 없는데, 왜 나만 너 때문에 이렇게 괴로워야 하나... 억울하기도 하구요...
저도 지금 진짜 인생에서 중요한 시기인데요... 열심히 그림 그려서 공모전 준비하고, 오빠한테도 정말 좋은 여자친구가 되어주고 싶고, 부모님 빚도 갚아드리고 싶고... 해야 할 일이 정말 많고. 긍정 에너지가 정말 많이 필요한데요...
베리만 생각하면... 애써 끌어올려놓은 긍정에너지가 급다운 되면서...
맘이 불편해 미치겠어요ㅠㅠ
진짜로 죽으면 어떡하나... 너무 무섭고 불안하기도 하구요...
그래서 카페알바 쉬는 날, 이틀간 난생처음 텔레마케팅 단기 알바를 했어요. 당일지급이란 말에, 이 알바비(20만원)는 돈 받으면 알바 안 한 셈치고 베리한테 보내줘야지...라고 생각했는데...
저희 아버지 당뇨가 너무 심해진 게 아빠가 그동안 먹던 약을 약값 아끼려고 더 싼 약으로 바꿔서 그렇게 된 걸 알고... 결국 알바비 20만원은 아빠 새 약 타는데 쓰게 되었어요... ㅠㅠ
물론 가족이 우선이죠. 그런데요... 왜 이렇게 마음이 우울할까요...
저 말고 베리와 친했던 또다른 친구는 말합니다.
이미... 우리 친구들이 뭘 해줄 수 있겠냐고... 가족이 품어줘야 하는 일이고...
남자친구와, 또 가족과의 일이고 거기서 일어난 트라우만데...
물론 그것도 그렇지만... 베리의 우울증을 더욱 심하게 하는 것은 베리가 난생처음 겪는 생활고이기도 하니까요...
여러분, 이 상황에서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어떻게 하면 베리가 자살 생각을 안할 수 있을까요??
쉬는 날 단기알바를 한 돈을 베리가 조금은 안정을 찾을 때까지... (근데 이게 언제일까요?ㅠㅠ 두렵긴 합니다) 어떻게든 꾸준히 베리를 보내주는 게 좋은 방법일까요?
주변에 우울증 환자가 있는 분들의 조언을 구합니다!
(만약에 이걸로 그 아이의 끔찍한 생각을 막을 수만 있다면... 힘들어도 일단은 해볼 생각입니다. 어떻게든 사람 살려놓고 봐야 되니까요.)
2. 저는 어떻게 하면 베리에게서 벗어나 제 삶에 집중하고 중차대한 과제들을 해결해나갈 수 있을까요? 주위에 비슷한 일들을 겪으신 분들... 조언 좀 부탁드려요ㅠㅠ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발 꼭 좀 조언 부탁드립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