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과 결혼했다는 그 여자는 남편이 직업 군인이라 돈을 많이 벌지 못 한다고 만날 때마다 투덜거렸다.
그 여자의 둘째 언니는 여동생의 말을 듣고 위로하듯 말했다.
"나도 가난한 집에 시집 갔어. 너랑 같은 처지지만 그래도 열심히 사는 시댁의 모습을 보면 존경 할만한 시댁같다고 너희도 시댁도 그러지 않니?"
그 여자는 잔뜩 찌푸리고 찡끄린 얼굴 표정으로 말대신 부정의 뜻을 밝혔다.
그리고 남편은 자기를 속이고 결혼했다며 나쁜 놈이라고 말했다.
동창들은 부자 남자 만나서 일 안 하고 시댁 재산으로 먹고 노는걸 자랑하는데, 자기도 그러고 싶었는데 그 놈한테 속아 결혼해서 망했다고 남편을 원망했다.
그 여자는 자기 언니들한테 말해 봤자 자기 편 들어 주면서 같이 욕해주며 공감해주지 않는다며 툴툴거렸다.
그 여자는 남편의 집안이 가난한 것이 불만이었는지,
만날 때마다 시댁과 남편에 대해 욕을 했고
돈에 관심이 많은지 재테크를 하겠다며 부동산 투기를 하려고 형제자매 이름으로 집을 사서 투자했다.
그렇게 한 이유에 대해서는 그 여자가 직접 말했었던 것을 기억한다.
자신의 명의로 집을 여러 채를 구매하면 세금이 가중 돼서 부가된다.
그렇지만 집이 없는 무주택자 이름으로 구매를 하면 세금도 많이 안 내고 무주택자들은 집을 구매할 때 혜택을 받아서 집을 싸게 살 수 있다며 자기가 돈을 많이 벌고 싶다고 가난한 집에 시집가서 힘들다며 형제들의 명의를 가져가 부동산 투기 쓰고 싶다고 했다.
그 여자의 큰언니는 그 여자의 요구대로 해 줬다.
그 여자의 큰언니는 집안에 장녀로써 베이비부머 세대로 태어났다.
그 여자의 큰 언니 말로는 자기는 은수저를 물고 태어났다고 한다.
600평 대저택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가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어서 아버지의 재산을 탐내고 노린 사람이 아버지를 죽이고 집 안에 불행이 닥쳤다고 말했다.
그 사실을 그때 당시에는 몰랐다고 한다.
그저 홀로 아버지 기다리시는 엄마와 배고프다고 울고 있는 동생들을 보며 그 여자의 큰언니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졸업하고 취직을 하려고 했다고 한다.
그녀들의 어머니는 취직 하겠다는 딸에게 취직 하지 말고 대학 가라고 하셨는데 큰딸은 그런 어머니의 뜻을 거부 하고서...
그녀의 어머니는 양반댁 규수였지만, 일제강점기라는 역사의 암흑기에 태어나셨다.
그렇지만 그분의 아버지가 대단한 집안 사람이며 한의사 였기 때문에 전쟁과 난리 속에서도 가정형편은 나쁘지 않았다고 한다.
훌륭한 명의여서 아픈 사람들은 잘 치료해 주었기 때문에 전쟁 통에 아픈 사람은 많았고 치료 받은 사람들은 고맙다며 좋은 걸 많이 가져다주어 가정형편은 좋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그 여자의 어머니는 그 옛날에 대학교를 다니며 공부한 신 여성이었다.
소학교 선생님을 했으며 그림을 잘 그렸고 아버지의 훌륭한 의술을 여자라고 전수 받지 못 했지만,
아버지가 치료해 주셨던 치료 방법과 아버지 치료하시는 모습을 보며 아버지가 안 계시면 내가 아프게 될 때 어떡하나? 고민하다가 스스로를 위해 의술 연구 하셨다.
그래서 그 분도 훌륭한 명의로서 사람들의 병을 치료 해 주셨다.
그 여자의 어머니는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한다며 배움에는 끝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말씀하셨던 분이라 그런지 여자라고 배울 필요가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시대에 자신의 딸들을 다 대학으로 보내시고 싶다고 하셨다.
그렇게 말씀하셨던 분인지라 자신의 큰딸이 대학에 진학하기 원하셨다.
그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공부를 잘해서 전교 3등 씩이나 하고 늘 학교에서 상을 타고 오는데, 너 같은 애가 대학에 가서 공부를 해야 하지 않겠니?"
그 여자의 큰언니는 어머니 말을 거부했다.
"지금 아버지도 안오시고 집에 돈은 없고 동생들은 배고파서 힘들어서 울고 있는데 돈을 벌어 와야죠."
그 여자의 큰언니는 그때 그렇게 했던 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내가 그때 엄마의 말을 거역하고 엄마 말대로 하지 않은 건 공부할 때도 체력이 필요한데 배가 고파서 어지럽고 쓰러질 거 같은데 어떻게 공부할 수 있겠냐고 생각했어"
그때 당시 나만 배고프고 힘든게 아니라 동생들이 먹을 거 없다고 울고 남이 먹다 뱉은 껌 줏어 먹고 그렇게 하는 거 보니, 일단은 내가 일해서 돈부터 구해서 먹을 걸 사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녀들의 어머니는 큰딸이 대학 가서 성공하고 잘 돼야 동생들이 그걸 보고 따라 배울 텐데..
이런 말씀을 하시면 아쉬워 하셨고
그렇게 그녀의 큰언니는 취직을 했고 일해서 번 돈으로 생활비를 댔다.
그녀의 둘째 언니도 큰언니를 보고 학교를 더 다니기 보다 일을 해서 가정형편에 보태고 도우려고 했다.
그래서 다니던 학교를 몇 년 그만두고 식모 일을 하며 돈을 벌어서 가족들을 도우려고 하다가
그러던 둘째 언니는 몸이 약해 쓰러지고 어린 나이에 밖에 나가 일하기도 쉽지 않은 거 같다고 느끼고
돈 벌러 다니시는 엄마와 큰언니 대신 집 안에서 빨래하고 청소하고 요리하며 엄마와 가족들을 위해 일했다.
42년전 그때 당시 한국에는 세탁기나 청소기가 없었다.
맨손으로 어린 나이에 가족들을 위해 빨래와 음식을 하며 자신의 학업은 미뤄두고 그 여자의 둘째 언니는 그렇게 수고를 했다.
그녀의 엄마는 직업이 화가셨다.
조선 왕실의 화가 이당 선생의 몇 안되는 여제자 중에 하나였다.
그림 그리는 화가들의 특징은 그림을 아무리 잘그려도 팔리지 않으면 돈이 없다.
그래서 큰딸이 일해서 번 고정적인 수입으로 생활을 유지하려고 했지만,
지금 여성의 인권 수준이 올라갔다 해도 여자들이 그렇게 돈을 잘 벌 수 있는건 아니듯이 그때 당시에는 더 쉽지 않고 어려웠으리라...
그녀의 여동생 중 하나는 먹을게 없어서 영양실조로 쓰러졌다고 한다.
가난한 집안에서 엄마와 언니들이 열심히 수고 했지만 그래도 녹록치 않은 가정형편에서 힘들었다고 했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셋째 딸인 그녀는 돈에 대한 집착이 엄청 났는지 그 여자는 언니 명의를 가지고 부동산 투기를 했다.
그 여자의 언니들은 자신보다는 엄마와 동생들을 위해 노력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 여자 돈을 벌고 싶다고 명의를 가져가 쓰는 걸 동생 잘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하게 두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