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숙제를 끝냈다.
참 길었다. 참 고통스러웠다. 끝낼 수 있을지 몰랐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사촌네의 방학이라고 부모님이 거기로 보냈다.
지금 생각하면 어려운 형편에 몇 주만이라도 알바를 하려고 한 엄마의 마음이었다.
엄마는 자기의 형편에 내가 그런 일을 당했다는 사실에 가슴 아파했지만, 나는 어차피 일어날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사촌언니와 놀고 있을 때, 사촌오빠가 나만 불렀다.
그리고 문을 잠구었다.
바지를 내리고 팬티를 내렸다. 만지고 냄새를 맡았다.
불쾌했으나 이걸 끝내지 않으면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고 했다. 냄새나는 곳을 왜 만지지? 그땐 그 생각 뿐이었다.
다음 방학에도 마찬가지였다. 기분이 좋지 않아 거부를 하자 화를 냈다.
당시의 오빠는 언니한테 소리를 막 지르는 무서운 사람이었다.
싫어 죽겠는데 오빠가 하는대로 가만히 있었다.
어른들께 말하고 싶은데 오빠가 무서웠고 이모가 무서웠고 나랑 친한 사촌언니가 나를 싫어할까봐 무서웠고 매일 아빠와 싸우는 엄마가 화를 낼까봐 무서웠다.
초등학교 저학년이 되자 성교육 시간이 있었다.
역시 잘못된 것이었다.
거기선 안 돼요. 싫어요. 이렇게 말하라고 한다.
속으로 이죽거렸다.
막상 당사자가 되면 못할텐데 말은 잘하네.
해가 갈수록 내 거부 강도는 높아져 갔고 오빠의 방법도 다양해져 갔다.
테일즈위버라는 게임에 언니와 내가 한창 빠져 있었는데 컴퓨터를 항상 차지하고 있는 오빠 때문에 오빠가 집에 있으면 게임을 하지 못했다.
게임을 시켜준다고도, 몇 분만 한다고도, 이제 마지막이라고도, 사촌언니랑 못놀게 한다고도.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런 거에 넘어갔는가 싶은데 당시엔 초등학생이었으니. 그리고 의지할 어른이 없었으니.
사촌네에 가는 건 좋으면서 싫었다.
내가 온다고 평소 집에선 못 먹는 맛있는 음식을 사주고 언니랑 놀 수 있으니까.
그리고 매년 이번엔 아닐거야, 오빠도 나이를 먹었으니 잘못된 거 알고 있을 거야. 하고 이상한 기대를 했다.
그리고 부모님이 날 보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고 있어서 거절하지 못했다.
마지막은 중학교 2학년이었다.
아직 그때의 마음, 집 구조, 계절, 시간대가 기억난다.
나이가 드니 사촌언니는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사촌오빠는 고등학생이었는데 당시에 나와 둘이 있었다.
그 방학은 나를 건드리지 않아서 나는 안심했다. 오빠가 달라졌구나.
둘이서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만화를 보고 싶어 리모컨을 가지러 티브이 쪽으로 향했다. 뒤에서 갑자기 끌어 안았다. 그리고 나를 들어 바닥에 눕혔다.
내 몸에 숨을 불어 넣었다. 옷을 벗기려 했다.
웃기게도 나는 자책을 하고 있었다. 그런 사람인 줄 알면서 내가 무방비하게 뒤를 보였다. 노출 있는 반팔, 반바지를 입었다. 내가 오빠를 자극했다.
여름이니 반팔, 반바지를 입고 있던건 당연한 건데도 나는 가해자가 아닌 내 탓을 하고 있었다.
강아지 똘이가 우릴 보고 있었다. 나는 강아지가 우릴 보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부끄러웠다.
오빠의 힘이 약해진 틈을 타 도망가 방문을 잠구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끝은 끝이 아니었다.
사실 초등학생 내내 1년에 두어번 음식을 거부하고 구토를 하는 증상으로 입원을 했었다. 그 증상은 내가 중3까지 지속되었다.
원인을 찾으려 해도 모든 게 정상이었다.
지금 세상이라면 심리검사를 했을 거 같은데 왜 그땐 안 했나 모르겠다. MRI도 막 들어오던 시기였으니 그런 쪽으론 아예 생각을 못했었나.
성인이 되고선 공황장애에 시달렸다. 갑자기 심장이 빨리 뛰고 숨을 못쉬다가 어지러움증을 느끼고 그대로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 앉았다.
버스에서든 대학교에서든 시내 한복판에서든 그 증상은 날 계속 따라다녔다.
나는 그게 공황인줄 모르고 심장에 이상이 있는 줄 알았다.
검사는 모두 정상이었다.
정신의학과를 추천하는 의사에게 표정을 굳히고 나왔다.
대구에서 첫 직장을 거치고 지금은 서울로 이직을 한 상태이다. 서울에 오니 많은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정신과를 다니고 있었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리고 내 증상이 공황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4달 전, 병원을 방문했다. 상담 시간이 길었다.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말하다 보니 사촌네와의 일도 나왔다.
내 속에 그렇게까지 울분이 있는 줄 몰랐다. 펑펑 울었다.
약을 받고 다음 상담 때 부모님께 말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 직후 바로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말했다.
엄마는 펑펑 울었다. 내 말을 믿어주었다. 맞다. 엄마는 날 믿어줄 사람이었다. 왜 진작 그 어린 나이에 말하지 못했을까.
엄마효과는 대단했다. 이모한테 바로 전화해 싸우고 삼촌한테도 알렸다.
삼촌은 날 믿어줬지만 이모는 나를 ㅁㅊㄴ이라고 욕하면서 거짓말쟁이로 몰았다. 긴 싸움이 되겠구나 직감했다.
감히 오빠한테 연락할 생각은 못했다. 아직 나에게 그 사람은 무서운 존재였다.
사촌언니가 인스타 댓글을 달았다. 이모는 아무에게도 말을 안 했구나 생각이 들어 언니에게도 알렸다.
언니가 충격을 받고 나를 위로해주고 날 데리고 방문을 잠궜던 일을 말하니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언니는 친오빠의 일인데도 날 믿어 주었다. 힘을 얻었다.
모두가 내 편 같았다.
다음 상담 때 이제 사촌오빠에게 연락을 할 수 있을 거 같다고 용기를 내겠다고 했다.
칭찬을 들었다.
매듭을 지을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촌언니는 내 연락을 잘 받지 않았다. 번호를 받으려 했는데.
시간이 몇 주 흐르고 사실대로 말했다. 사실 사촌오빠 연락처를 받고 사과 받고 싶어서 그랬다고.
연락처를 순순히 주었다. 그걸로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언니가 앞으론 신중하게 행동하라고 화를 내었다.
어느 순간 나는 그쪽 집에서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가 되어 있었다.
오빠가 부끄러움을 알고 내가 겪었던 고통을 받았으면 좋겠어서 그랬다고 하니 자기한테 고통을 줘서 참 고맙다고 비꼬았다.
자기가 오빠의 그런 사실을 알고 오빠를 어떻게 생각하겠냐고 화를 내었다.
마음이 약한 사람인데 순간적인 이기심에 그런 거라고 오빠를 두둔했다.
나는 그때부터 눈물이 났다. 어찌할 바를 모르겠어서 우리가 이렇게 감정 상할 이유는 없는 것 같다고 그만하자고 했다.
퇴근길 내내 그리고 밥을 먹는 동안 계속 울었다. 1시간 반 넘게 울고 있었다.
다음날 눈을 뜨니 눈이 부어서 안그래도 작은 눈이 반이 되어 있었다.
이제 화가 났다. 잘못한 사람은 따로 있는데 피해자가 가해사실을 알린 순간부터 가해자 취급을 받는 게 너무 억울했다.
게다가 가해자 엄마는 날 믿지 않고 미쳤다고 욕을 한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그래. 이렇게 된 이상 사과가 아니라 보상 받아야겠어.
난 7살부터 29살인 지금까지 이렇게 힘들어하고 병원에 다니고 있는데 오히려 가해자는 아직까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잖아.
보상이라도 받아야지 속 편하겠어.
번호를 알려주기 싫어서 톡을 했다.
거기선 모른 척하며 예뻐서 안아주고 뽀뽀한 일 때문이냐면서 그게 힘들었으면 사과한다고 했다.
안그래도 감정적으로 힘들었는데 더이상 날 잡고 있던 이성 한 가닥 마저 끊어졌다.
그 정도였으면 이랬겠냐고. 아니, 애초에 안고 뽀뽀하는 거도 비정상이라고.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네가 고등학생때까지 그랬는데 기억 안나는게 말이 되냐고.
그렇게 회피할 거면 나도 정확한 피해사실은 변호사에게 전달하겠다고 했다. 문의했는데 공소시효가 남았다는 말도 함께.
전화를 하자고 한다.
퇴근 후 전화를 했다.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다고 말해달라고 한다.
모든 일을 다 말했다.
그러자 기억은 여전히 나지 않지만, 자기가 정말로 그랬다면 사과를 한다고 한다.
그리고 고등학생 때면 자기는 방학때도 나가고 야자하고 공 차고 한 기억 뿐인데 이런다.
누군 고등학생 안 겪어 봤는가. 방학이 단 하루도 없는 고등학생이 어디에 있지? 설마 내가 있던 몇 주 동안 우리가 함께 있던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없었을까.
그렇게 말하니 듣고 보니 일리가 있다고 미안하다고 한다.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 어제 사촌언니한테 그런 얘기 듣고 이모는 욕하고 하니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나서 지난 내 시간이라도 보상 받아야겠다고 했다.
보상을 해준단다. 기억은 없지만 사실이라면 어린 시절 욕망을 주체 못하고 그런 거 같다고 미안하다고.
내가 볼땐 기억하는데 못한 척하는 거다.
그런데 웃기게도 사과를 듣는 순간 대부분의 화가 풀렸다. 너무 웃겨.
보상 얼마를 생각하냐길래 그건 내가 얼마 달라고 말하기 싫다고 그쪽에서 알아서 생각한 다음에 빠른 시일 내에 연락달라고 했다.
미뤄왔던 숙제를 끝내자 꿈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칭찬을 들었다.
내가 너무 늦게 가져와서 미안하다고 그리고 숙제 퀄이 좋지 않다고 쭈뼛거리자 괜찮다고 잘했다고 해주었다.
숙제를 끝냈다. 정말로.
이렇게나마 일기로 남기고 싶은 내 마음을 누가 알까 모르겠지만, 그리고 아무도 보지 않겠지만.
이렇게 내 기쁜 마음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