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착한~병, 나만죽는다. 5

ㄷㅊ |2021.12.15 19:15
조회 668 |추천 3
오늘은 일하고왔음.
재밌다는 사람도 있고, 안쓰러워해줘서
민망도하지만...
욜 호구닝겐 인생으로 살아온
내이야기는 오늘은 사회생활및 친구들과의
관계에 대한이야기가 될듯해.

오늘도 막쓸거니까,
존대는 읍따요. 그런거 기대하믄 백백..

첫친구는 다섯살.
미취학아동시절에 사귀었다.
옆동네 손주들 혼자키우는 할매가
우리집에 나랑친구하라고 손지하날 데리고놀러오셨다.

울할매랑 동양화맞추기 친구셨던건 안비밀.

이친구는... 내인생 최대의 악행을
몸소보여준애였다.
내 정체성이 매우 거지같을만큼 참다가 돌아버리게
만들어준 원흉이 애다.

애를 1이라고 할게

1은 엄빠가 읍었다.
그거야 지선택이 아니니까 그러려니,
원래 애들은 그런거 신경안쓰고 논다.

근데 얘는 나랑놀땐 꼭 저만좋은걸 하고싶대
술래잡기하면 술래가 꼭 나여야하고,
소꿉놀이하면 꼭 지가 엄마나 애기 포지션이어야하고,
구슬치기도 지가 구슬뺐기면 무르자고 땡깡이었다.

식탐도 많았다. 근데 나는 식탐없으니까.
다 양보해줬는데
욕심이 날로심해졌다.
어린 내입장에선 나눠먹고, 나눠가져야하는게 상식인데
이건 날강도였다.

내가 왜 너만? 을 시전하자,
악을쓰며 소리질렀고
할머니들 한테는 내가 때렸단다.
엄마가 그때 우릴 보고있지않았다면
난 영락없이 얘를 때린애가 되었을텐데,
엄마는 1이 하는짓을 보자 매우화가났는지,
1의 할머니에게 다신데려오지 말라고 화를냈다.

그뒤로도 1은 엄마가 있는지없는지 보고
나랑 놀기로 했다고
거짓말을 하고 집에 놀러와서
언니목걸이나,
내 머리끈이나,
브로치같은거나,
연필등을 훔쳐갔다

내가 없는데, 1이 왔다갔다고 하면
나는 머리끈등이 들어있었던 내물건상자를
확인할때마다,
화가나야했다

너 거짓말하지말라고 악을쓴 뒤에야
1은 우리집에 오지않았다.

그뒤 학교를 입학했다.
난 유치원을 다니지않았는데
1은 유치원을 다녔고,
그애들 그대로 1학년으로 입학했다

1은 착한척했고, 내가 자길 일방적으로
부모가 없어서 싫어하는 애를 만들었다.
이래서 입이 산것들이 정말싫다.
유치원을 안다닌 내가 한글을 다 뗀것도
컨닝한거라고 우겼고.
우리 언니오빠들이 애들 다 보는데서
나한테만 받아쓰기를 따로 시켜보자
그제서야 누명을 벗었다.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내가 엄마없다고 자길 무시한다고
우겨대서 매일 담임에게 욕과 무시,
매맞기일쑤였고


내가 그애때문에 지갑도둑 우유도둑으로
몰려서 우유를 15년간 안마시고,
지갑이란걸 사지도 들지도 않고산걸
친한애들은 다 알정도로
나와 그애는 철천지원수였다.

다른애들과 친해져 무리를 이루자
동네오빠들한테 거짓말로 내가 나쁜애라고
날 때리라고, 친구들같이 다니니까
내 언니오빠들이 시킨것처럼
산길로 유인해서 어린게 집에 못걸어갈정도로
맞아서 쓰러진걸
산지기 할아버지가 발견해서 집에 업어다줬다.

왜냐고, 내가 너한테 뭘했길래 라고했더니,
언니오빠들에 엄마아빠 다있고 사랑받는 니가
죽었으면 좋겠다했다.
난 그래서 학교 조퇴하고 그애집에 가서
할머니 허락받고
그애서랍을 뒤져 내게서 훔쳐간 것들을 찾아냈다.
나랑, 내위에 언니에게
가족들이 길가다 보이면 사준것들 이었고
둘이 싸운다고 똑같이 선물한것들이었다.
1의 할머니한테 이런거 사준적 있냐니까 없다한걸
엄마가 듣고, 1의 할머니까지 모시고
엄마랑 나는 다시 학교로 갔다.
점심시간에 맞춰가서
고학년이던 언니오빠들까지 불러놓고
일을 벌렸다.

이때는 맨날 나 아냐 라고 울면 안된다고
엄마는 몇번이고 야단치며
할말 다하라고 시켰더랬다.

교실에가서 그걸 다 쏟아놓고 싸웠다.
니가 그렇게 도둑이라고 한 내가 아니라
도둑년은 너였지않냐고
당돌하다고 해도, 초등학교 1~2학년 내내
왕따당하고 맞다보니 서러움이 복받쳤기에
억울한건 밝혀야겠더라.

니네집에서 가져왔겠지 소리지르는 그애를
그애할머니가 따귀를 때렸다.
왜 저집딸 둘이 나눠가진걸
니가 가지고 있냐했고,
쟤가 줬다고 나를가리키며 악을썼다.

내가언제 줬는데!!!!그거 큰언니가 보고싶을때
걸고있으라고 준건데!!!! 널 왜줘!!!

그렇게 소리지르고
그자리에서 주저앉아 우는 나를
그애의 말만듣고 매일 꼬집고 때리면서
못되쳐먹었다고 미워한 담임이 보더니,
고개를 들지 못했고,
엄마는 그날 담임에게, 선생못하게 만들겠다했다.

그리고 딱 우리가 학년이 바뀔때
담임은 미안하다고 집까지 찾아와서 사과했고,
다른지방의 학교로 전근갔다.

첫단추가 이모양인데,
멀쩡한것들이랑 친해지는게
나한테는 가장 어려운일이었다.
특히나 저놈의 1의 만행은...
여기서 끝나지않았다.

애들은 재주가 생존형으로 많은
내게 모여들었다.
그림잘그리고
뭐든 뚝딱뚝딱 잘만들고,
신기하고 재밌어했다.

보고자란게 있으니,
눈치로 라도 못배우면 이상한건데,
애들은 부러워했고,
그냥나는 그런것들이 부담스러웠다.
친해지자고 부담스럽게 다가오는것도
아냐, 이러고 자리피하는 낯가림 나름
심한애였다


그러다 애들이 나한테 갖는
관심이 보기 싫었던 옆집살던 애가
우리집이 찢어지게 가난한걸
밝혔고.
그뒤로 그런거 상관없는 애들하고만 친구를 했다.
부모는, 내가 선택가능한게 아니니까.
선택가능한 친구를 골라사귀는게 맞는거였다.
내상식으로는.

중학교에 올라가기 직전,
우리집엔 지금까지 내가 말을 아낀 큰일이 있었다.
내 가족중 한명,
아직인생이 피어보지도 못한 누군가가,
비명에 세상을 떴다.
밝힐수있는건 타살이었고,
미결사건으로 남아있다는거다.

1은 중학교에 올라가서
내가 재수가없는애라
날 제일이뻐한 내 가족중 한명이 죽었다고 했다.
재수없는 년이라고.

아이들은 오래전 그애의 도둑질은 이미 잊었다.
굳이 반박할기운도 없었다.
가족을 잃어본 사람은 알거다.

그때 우리가족들은 하루하루 버티는게 용했다.
때를 잡았다고 생각한건지
말은 점점 독해져갔고

하루살아내기도 버거운 상태였던 나로선
그냥 그걸 상대할 가치도 못느꼈다.

니가 인간이긴 하니 싶은 그감정을
아이들은 이해하지 못했고,

오랫동안 친했던 애들만
내곁에 있으면서
나를 다독였지만,
정작 나쁜일을 당할땐
나를 바라볼수 없는지 고개를 돌렸다.
너네도 안당하려면,
선택은 없겠지.

그냥 그렇게 흘러간게 중학교시절이었다.
아무리 괴롭혀도 나는 가만히있고,
애들만 난리를 피우니
선생님들은 나를 불러다 상담만 수십번씩했다.
귀찮아졌다.
넌 맞는게 괜찮냐길래,
어차피 잘해도 욕먹고 맞을거고,
못해도 욕먹고 맞을거고,
내가 반항하면 더 난리칠거아니냐.

선생님들이 해결해주실수도 없지않냐고하자
멍하니 나를 바라봤다.
난 학교를 그만두면 안되냐고 했고.
심각성을 인지한 상담샘은 담임에게
알렸던 모양이었다.

그날 담임은 애들을 전부 개패듯이 팼다.
남녀공학에서,
남자새끼든 여자새끼든 할것없이
한애를 처참하게 밟는 이유가 뭐냐고

그때 되바라질대로 되바라져버린
1이 그러더라.
드럽게 가난한게, 드럽게 잘난척해서,
주제파악좀 했으면 좋겠어서 그랬다고.
가족도 죽게만든 재수없는게 쟤라고.

담임 무슨말을 그따위로 하냐는데
나때문에 그뒷말을 잇진 못했다

내가 정말, 화가나야하는데
미친듯이 웃어버렸고
애들은 날 왜저러냐고 쳐다봤다.
담임은 나보고 왜그런지 말을 하라고 했고
나는 숨을 고르고 담임과 1을 바라봤다.

사실, 그 도둑사건이후로 난 1과 말을 섞은적이 단한번도
없었다.

그리고 그때 내입에서 나오는말은 나도 내입으로 나온다는게
의심스러운 말들이었다


우리oo죽는거 너 봤니? 나때문이라고 말 쉽게 하는데 니가범인이야?. 살인범이 아니면 못할소리일텐데?
그리고 애들 다 기억할걸. 우리 9살때 무슨일이 있었는지.
니가 날 가난하다고 욕할 자격있어?

같은 학교를 나왔던애들은 모두 술렁거렸던듯 했다
선생이 강제전근간 사건이었다.
완전히 잊혀질리는 없었다

나역시 충분히 시달린 뒤였기에,
어떻하지 쟤 상처일건데 싶다가도,
받아도 싸. 내버려두자. 라는 상태가 되었던것같다.

그뒤엔 좀 편해졌다.
더이상 길가다 욕먹거나
돌에맞아 멍들거나
하는일도 없어졌다.

속알머리없이 그일이 무슨일이냐고 묻는애들때문에
내가 애들을 피했었다
내입으로 굳이 더 가해자로 전락하긴 싫었다.
1 괴롭혀줄까 라고 하기에 뭐하러.
그러고 자리를 피했던 나였기에

남자애들은 미안하다고 쪽지를 두고가거나
어깨 툭치고 미안해 하고 가기도했고,
1의 할머니는 또 내게 미안하다고
머리를 숙였다.

몇명은 정학당했고,
1이 주동자임에도 반성문 50장으로 끝난걸로 안다.
그렇게 시끄러웠던 남녀공학 중학교생활이
거의 끝나갈즈음,
나는 다섯명의 친한친구가 있었고

그애들과 지금까지도 연락한다.
나이먹어 다시 미안하다고
그당시 동창들중엔 연락오는 애들도 제법있지만,
그냥 거기까지만 선을두고,
내가 깊이 친해질생각이 없자,
안부만 전하고 지내는 묘한 관계들이 되었다.

고등학교는 무난했다.
어렵게한 졸업일망정 나는 대학을 다니긴했었다
일찍결혼하는 바람에 졸업장 획득까지
꽤 힘들었긴 했다.
그래도 1의 방해가 없어서 인지
친구는 많았다.

내친구들에게 나는 일반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첫번째로 연락하는 친구였다.
간접경험이 많다보니, 아는게 많아서 였다.

그것도 귀찮은데, 이것들은 하다하다
콩나물잡채는 어떻게 하냐고도 물어봤다.
그건 니네엄마한테 물어봐도 될텐데도.
블로거, 유튜버님들이 감사한이유가
한 3년전부터는 이런전화 덜받는다.

그리고 사회생활.
심하게 직장에 적응이 힘든건
그노므 커피심부름 때문이었다.
요즘이야 카드주고 사오라고 하지만,
그땐 2.2.2, 2.2.3, 1.3
이딴각자의 기호를 맞춰주며 타줘야했다.
꼰대가 많은 사무실은 보신탕을 왜그리 쳐드시는지.

냄새만 맡아도 토하고 쓰러진다고 말했는데.
(특이체질임. 집안식구다수가 이모양임)
그걸 또 굳이 확인하는 통에
사무실총무는 못해먹겠어서
장사에 눈뜨고, 영업에 눈떴다.

힘들게딴 자격증 무용지물상황.
결국 동대문 남대문 다 짧은기간 거쳐서 장사배우고
백화점 알바로 고급화하는것도 배웠고
옷가게 신발가게등 매장매니저로 일했다

거기서 버는걸로는 성에 차지않았다.
그당시 급여, 잘줘봐야 200안쪽이었다
결국 영업에 발을딛었고
나는 빠른시간에 승진할정도로
성장이 빨랐다.

문제는... 여초회사였다.
ㅋㅋㅋㅋㅋㅋㅋㅋ 하... 치가떨린다.
다시돌아보는것 만으로도

머리를 자르면 다음날 세명이 자르고온다.
옷스타일을 바꾸면 그다음날 두명은 같은옷 사입고왔다.
나는 옷장사를 해본경험탓에,
키작고 볼륨만 심한 나라는 사람이 뭘입어야 어울릴지
누구보다 잘알았고, 구두도 장신구하나도
흔한스타일은 착장하지 않았음에도,
그래서 화장을 바꾸면 하다못해
셰도우라도 같은걸 사는 그분들을 보며,
곱게늙자고 다짐하고 또했다.

진짜 미치는건, 이다음이었다.
일터, 시댁, 친정 한동네다.

남편이 직장상사를 소개해서 그집에서
실적을 달성해오면,
바람핀여자를 만든다

일터에서, 매일보는 여자들이.

처음엔 욕도먹고, 남편도 어떤놈이냐고 하고
만난놈이 좀 있어야...
내가 만나는 놈은 다 니주변놈인데요.
라고 하고 작성해둔 실적표를 보여주니,
기가막혀하던 일들도 있었다.

남편이 정장입고 이쁘게 하고 회사앞에 꽃들고
일부러 와준날도 있었다

아줌마들 눈있으면 얘기 바람나겠는지 보라고.
다른건 몰라도 남편의 수트발은 인정...

시어머니 욕하다 사그라든 이유도 이런거였고
친정에선 자나깨나 사람조심 하랬다

욕할걸 찾으려고 달라붙는 사람도 많았고,
영업하니까 어떻게든 뭐라도 뜯어먹겠다는
이상한사람도 많았다.

문제는.
이때가.
내가 일외의 모든것들을 포기하고 산 시기,
시댁에서 일어난일들의 일부를
기억하지 못하는 시기였다.

그리고 영업은 인간관계를 완벽하게 골라내는 직업이었다.

친구랍시고 영업하니까 팔아줄게 와보라고 갑질하는
미치신분은 당연히있었다
물론 건너건너 알던 무늬만 친구들이었다.
아이문제로 고통받는거 알면서
애낳으라고 강요하는애도 있었고.
애가진거 알고
임산부는 먹으면 안되는걸 한박스 선물로준
나쁜년도 있었다.

내가 돌던 그시점이 문제였다.
암판정, 사산이 겹치고,
다집어던져버렸고,
다 엎던 그때,

회사조차도 엎어버리고
옮기려던 그시기.

오랜만에 얼굴보자고 얼굴까먹겠다고
그자릴 나오라던걸 나가지말았어야 했을까.

니가 재수가 없는년이 맞다고 농담삼아 말하고
깔깔대는 것들을 보면 안되는거였다.
애들이 내꺼도 지꺼, 지꺼도 지꺼인것들로,
남편조차도 오면 부담스럽다고 못오게한
열등감덩어리들 이었다
말듣기 싫어서,
적당히 상대하던 맘까페의 진상들.
쟤가 무슨 실력이 있어서 승진했겠냐고,
남자꼬여냈겠지 이짓거리를
내가 얼마나 만만하면 면전에서 하더라.

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멘탈이 슬슬
아웃이되가는걸 그날 그때 느낀거같다.

암인걸 알리자 입을다물기에,
그래 내가 재수가 더럽게없지.
너같은것들을 소개받아서 친구라고 봐온게
한 3년 넘게 꼴을봐줬네.
이렇게 입을뗀거같다.
정확히는 기억이 안나는건
화나면... 기억이 뚝뚝 구간구간 없다

물따귀도 때리고,
그렇게도 자신이 없어서 어떻게사냐고,
남자들은 눈없냐고,
뭐눈엔 뭐만보인다는데
니들이 바람피고사는거 아니냐고,

내새끼 죽은게 그렇게 고소한 니년들도
같은고통 겪어야한다고
너네들이 낳아키운 그애들 길가다걸리면 죽인다고도 한거같다.
내가 죽이고 감방가더라도
니들 주둥이 탓이라고.

욕을해대길래
의자로 찍어버릴라고하자
도망쳐나갔고,
그와중에 무슨정신이 들었는지
카운터에 카드주고 손실비용 다 계산하라고 한뒤
찬물을 연신 들이켰었다.

나는 그날 카드값이 24만원 나간걸보고나서야
내가던져서 깨진컵과
당황해서 날보던 사람들을 봤다.

죄송하다고 사과하고
까페언니한테 변상더 안해도 되냐고하니까,
괜찮다고,
나보고 괜찮냐고 물었다

지금은 까페언니와 가끔 서로 먹을거 싸주는 사이가 되었다.
한동안 욕은 먹었다.
살아난게 아무래도 욕먹어서? 였던것같다
오래오래 살듯...ㄷㄷㄷ

지금도 내 연락처엔 50여명의 속이야기를 하는 친구들이 있다.
블랙리스트에 스무명넘는건...
걸러낸거다 생각한다

나는 사람한테 잘하려고 했었다.
잘해서 뭐한다고,
내가 잘하는건 같이 잘하자고 알려줘왔다.

그래봤자,
돌아오는게 독이되고 상처가 되었다.

상식을 넘어서는일들을.
참는게 습관이 되었다는게 맞을거다.

아프고나서야.
칼춤추는 전투민족이 되버린건,
나에게 내가한 경고같았다.
이러다 니가 죽으니까 그만참으라고.

보여지는직업이라는것,
체면이 하느님인 양가,
자존심은 지켜야한다는 압박감,
잘해야한다는 의무감.

그게 나를 이럴게 만들어온게 아닐까.

늘 하는말이 같은거 같아도,
너네들이 주변에 사람을 두게될때
하나는 잊지않길 바란다.

니가 아는 정상적범주를 넘어선다면,
그게 아무리 봐도 이상하다고 생각되는데
당연하다고 한다면,

그들은 널 좀먹어가며 즐거워하는것들이지,
지인이나 친구란이름으로 곁에둬선 안되는것
이란걸 알고 살기바란다.

나는 사랑받아 마땅한애였고,
내 사람들도 사랑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미움받는걸 힘들어 하며
미움받고 살지마라.

나처럼사는건 바보짓이다

미워하면, 그냥 보지마.

나는 또 오겠지만, 내일은 못옴.
좋은밤들 되길.
추천수3
반대수1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