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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는 친일파가 아니다...MBC "이제는 말할수 있다-만주의 친일파" 방송 뒤 올라온 어떤 대학강사의 글입니다...다들한번 읽어보고..우리역사를 다시 한번 생각해볼까요?

수일심 |2004.03.08 12:08
조회 421 |추천 0

네. 박정희는 친일파가 아닙니다. 최후의 제국일본군인일 뿐입니다.

1) 박정희가 어쩔 수 없이 일본군에 입대했다고요?

-> 박정희는 자발적, 적극적으로 일본군에 입대합니다. 만주와 중국에서 전쟁이 한창일 무렵 박정희는 그 좋은 교사직도 내팽겨치고 대구사범 때의 교련교관 아리카와관동군대좌의 추천과 자진 혈서를 써서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합니다. 일본을 위한 전쟁에 나서 출세하려고. 생계형이 아닙니다. 나이가 어리거나 무식해서도 아니고요.

2) 국회에서 개악된 친일조사법은 일본군 중좌(중령)이상만 조사한다는데, 박정희는 만주군(사실상 일본군) 중위니 친일군인이 아니라고요?

-> 당시 박정희근무지는 만주 동북항일연군-조중연합항일군-과 화북의 팔로군이 항일투쟁을 벌이던 곳입니다. 항일투쟁의 최전선에서 박정희는 보병 장교로 열하지역가지 나가 항일세력을 '토벌'합니다. 박정희의 군관학교 동기 몇몇은 항일세력으로 넘어갔으나 박정희는 끝내 가담하지 않았습니다. 박정희는 패전되자 투항한 최후의 제국군인입니다. 그는 8`15해방을 맞은 것이 아니라 815패전을 맞이했습니다. 그가 일본군 중위로 마무리한 것은 그의 충성도가 낮아서가 아니라 그의 생각보다 일본의 패전이 너무나 빨리 왔기 때문입니다.

3) 박정희가 광복군이라고라?

-> 패전 후 광복군의 초모공작이 이루어지면서 선배 신현준과 광복군으로 귀환합니다. 그래서 나중에 박정희 전기나 한국국군사에 박정희가 광복군으로 버젓이 올라갔죠. 광복회 명부에도 그가 광복군으로 들어가고. 정말 그가 광복군이었다면 교과서에도 실렸을 겁니다. 지금은 다 바졌습니다. 사실이 아니니까요.

4) 박정희의 일본군체험이 남긴 것은 조국근대화였다고라?

-> 일본 관동군은 쇼와유신-일본 군국주의쿠데타-와 만주 ` 중국 침략의 입안세력이며 선봉대였습니다. 만주국 도한 관동군이 만들었고 통제했지요.
군의 정치개입(쿠데타를 통한), 민주주의의 거부, 강력한 반공주의, 총력안보와 국민 통제, 국가에 의한 경제통제 등
박정희집권기의 이러한 모든 정책은 사실 관동군의 만주국 지배와 일본 소와유신체제(군국파시즘)의 모방이었죠.일본 군국파시즘이 못다한 것을 박정희는 유신체제로 완성시킵니다. 
또 일존제국의 교사로서 일본의 국가주의적 식민통치첵을 가장 잘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국어 국사 국민윤리를 국정과목으로 해 학교교육을 통해 철저하게 이데올로기세죄를 시켰습니다. 일제 떼 고구고(국어=일본어), 국사(일본사), 수신(국민윤리)를 가지고 통제했듯이.

그뿐인가요. 반상회(일제 때 애국반), 새마을운동(일제때 신촌운동), 국민교육헌장(일제 때 교육칙어), 애국조회(일제 때 애국조회), 국기에 대한 맹서(일제 황국신민서사), 교복착용, 장발 미니스커트 착용금지(일제의 미풍양속 규제), 국민건전가요보급(일제 국민가요 보급운동), 총력안보`반공방첩 등도 일제 때 나온 것을 적용. 민방위훈련, 새마을운동(일제 신촌운동과 농촌진흥운동) 이 모든 것들이 사실상 1930년대 이후 일제 식민통치책으로 사용되었고 교사이자 군인이었던 박정희는 이것이 국민 통제에 매우 유용한 것을 체득하고 1936년 일본의 군바리쿠데타(쇼와유신)을 본다 5`16쿠데타를 일으키고 이러한 정책을 그대로 시행합니다.
우리들의 민족중흥과 조국근대화는 이렇게 시작되었답니다.

참고로 저는 대학에서 한국근현대사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박정희의 죄과는 빙산의 일각도 안드러났고요
요즘 조중동이 노무현정권과 싸우던 것과 10분의 1만이라도
박정희시대의 진실을 알린다면 터무니없는 파시스트는 이 게시판에서 설치지 못할 텐데(아마 어렵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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