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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엄마와의 관계가 너무 힘듭니다.

쓰니 |2022.05.27 05:50
조회 2,431 |추천 4

글을 쓴 후에 댓글이 1개밖에 없어서 최초 댓글만 보고 잊고있었는데,, 2일만에 다시 보니 댓글이 엄청 많이 달려서 놀랬습니다..

대부분 엄마와 연을 끊어라, 이사가서 모르는 곳에 가서 살아라 등등 현실적인 조언을 많이해주시네요,, 그리고 공감도 해주셔서 감사해요,,

우선 이미 작년 말에 이사를 했습니다.

물론 부모님께는 말하지않고 조용히 이사했어요.

이사하는 것도 혼자 다 해내려니 매우 힘들었지만,, 10년 넘게 자취하면서 몇 번 이사를 했었는데 늘 혼자 했기떄문에,, 별거는 아니였어요..

아직도 제가 이사한 건 모를거에요 왜냐면 저한테 따로 택배로 반찬을 챙겨준다던지, 집으로 찾아온다던지 한 적이 없어서요,, 직전 집 주소는 알고있지만 거기서 3년 넘게 살지만요..

 

생각해보니 반찬을 한번도 받은 적이 없다고 적었었는데, 생각해보니 대학교 1학년때 딱 2번 있네요,, 한번은 파김치, 한번은 배추김치를 포기채 받았어요...

파김치는 오빠가 어릴떄부터 좋아해서 엄마가 자주 해줬던 건데요,,

저는 파김치만 먹으면 식도랑 위가 불타는 느낌이 싫어서 어릴떄부터 안먹었습니다..

아마 자기 아들꺼 만들면서 제것도 만들어서 준게 아닌가 싶네요,, (전 파김치 먹으면 속이 아프다고 어릴때부터 말했어요)

배추김치는 보통 썰어서 주지 않나요?.. 자취한지 1년도 안된 집이었어서,, 큰 도마 큰 칼이 없었는데 포기채로 김치를 줘서 안먹고 냉장고에 그대로 놔뒀던 기억이 나요,,

 

몇 달 후에 엄마가 서울에 볼일이 있어서 올라왔었는데,, 그떄 제 자취방에 들러서 왜 김치를 안먹었냐길래 제가 그냥 안먹을거다, 필요없다. 라고 하니 그걸 다시 들고 내려가셨거든요?

그걸 사촌언니한테 안잘라서 줘서 포기채로 준것만 쏙빼놓고 말해서,,

사촌언니가 저한테 쓰니야,, 그래도 그건 너무 했다,, 엄마가 들고 내려가시면서 얼마나 무거웠겠어 라고 하더라구요... 딱히 변명은 안했어요,,

그 사촌언니도 몇 년에 한번 볼까말까이고, 그 후로 본적이 없거든요,,

댓글을 보면 왜 말을 안하냐, 말을 안하니 모르는거 아니냐는 글들이 종종있는데요,,

제가 바보같이 20년 내내 조용히 입만 다물고 산 것은 아닙니다,,

 

어릴때부터 오빠가 어질러놓은 것으로 절 혼내면, 내가 안했는데! 내가 왜 치워!! 라고 그랬어요,, 그러면 엄마는 어디서 저 주둥이로 씨부리냐 야이 가시나야, 어디서 씨부리는 말도 지 할미할배 닮아서 눈을 치켜뜨고 얘기하냐 이런식의 대화 흐름이었습니다..

그냥 한마디만 해도 악담과 저주가 퍼부어졌어요,,

 

부모님 방에서 돈을 내가 훔쳐간게 아니라고도 말해도, 그냥 저라고 지목하고 쌍욕을 퍼부었구요,

왜 나만 차별하냐 이런말을 자주했는데, 그럴때마다 누가 너를 차별했냐? 먹여주고 키워준게 고마운것도 모르냐 지 할매할배닮아서 어디서 뻔뻔하게 대드냐 등등 이런 흐름이었습니다..

말이 안통했어요,, 엄마가 뭐 하나 때문에 화가 나면 그냥 눈에서 살기가 느껴지고 개가 공격하기 직전에 조용히 으르렁 대듯,, 진짜,,,으르렁 거림이 느껴졌어요..

 

아빠는 왜 아무것도 하지않았냐, 방관자다 이런 댓글들도 있는데요

이게 참 복합적인 스토리예요,,

일단 아빠가 본인 부모님에게 저같은 존재였어요,,

저에게는 할머니 할아버지고, 엄마에게는 시부모님이죠,,

아빠는 늘 자기 부모님에게 저처럼 차별 받았어요,, 제대로된 가족은 아빠가 만든 지금 가정인거에요,, 아마 자기가 만든 가정이니 깰 수 없었겠죠,,

엄마는 또 차별받는게 너무 억울해서 왜 내 남편한테만 그러냐, 왜 다른 자식만 챙기고, 우리 남편은 안챙겨주고 무시하냐 이걸로 고부갈등이 엄청났습니다.. 즉 엄마는 피해자인 동시에 저에게는 가해자죠..

 

그리고 아빠가 imf 전후로 직장동료에게 보증을 잘못 서줘서 큰 돈을 날린 적이 있습니다..

일부는 저희 외가집에서 갚아주었고, 나머지는 저 10살때쯤까지 아빠 월급으로 나눠서 갚았던걸로 알아요,, 그래서 아빠는 엄마에게 엄청난 부채감과 하나뿐인 가족이라는 생각이 있을거에요,, 그래서 아빠는 늘 저에게 너는 엄마 아빠가 죽으면 오빠만 가족인데 잘 지내야지 이런식으로 말했던거 같네요,,

그래서 아빠는 엄마한테 별 소리를 잘 못했어요,, 엄마는 늘 내가 그떄 집 안나가고 애들 키우고 빚 갚은게 대단한거다, 내가 희생한거다 이런 입장이구요,, 그 과정에서 저는 화풀이 대상이 된거죠,,

 

엄마는 오빠만 키우는 것도 힘들었는데, 절 임신한걸 몰랐는데, 임신하게 돼서 낳기 싫었다고 하더라구요, 저한테 하는 말이,, 처음에 의사가 초음파를 해보더니 쌍둥이인거 같다고 해서 그냥 지우려고 했다, 근데 니 아빠가 그래도 낳자고 헸다, 몇 달후에 다시 초음파를 해보니 애가 1명이었는데, 의사가 뭐 엉덩이가 두짝이라 그걸 잘못보고 쌍둥이라고 한거 같다고 하면서 깔깔거리고 웃은 적도 있어요,, 저한테 태어나게 해준거, 밥 먹여 키워준거 고마워 하라면서요,,, 이게 자식한테 할 소린가 싶어요,,

 

이렇게 절 무시하는 발언을 오빠 앞에서도 서슴치 않았어요,,

오빠가 초등학교 3학년쯤인가?.. 과학시간에 배웠다며, 엄마 자궁에 자기가 처음으로 들어간거니, 쓰니는 헌집에서 산거야~ 난 새집에서 산거고 쟤는 헌집이야~ 내 집을 빌려쓴 주제에~ 이러더라구요 그냥 엄마나 오빠나 늘 저를 깔보고 무시하는게 일상이었습니다..

 

어릴때는 자전거도 1대만 사줘서 나눠쓰라더라구요?

근데 늘 그런걸 사주면 오빠 손에 먼저 쥐어줘요,

그럼 오빠는 저한테 으르렁 거리면서 자기만 써요, 저는 그래서 아직도 자전거를 탈줄 몰라요,, 시골에 살았어서 뭐 공원이 있던 것도 아니고 자전거를 대여할 곳도 없었어요

그래서 자전거를 타 본적도 없어서 못배웠습니다..

대학에 와서 친구들과 한강에 간 적이 있는데, 제가 자전거를 못탄다니 다들 의아해 하더라구요,, 그래서 그냥 혼자 그런걸 운전하는게 무서워서 안탄다고 했습니다..

요즘 따릉이 타는게 유행이잖아요,, 회사 사람들도 종종 타는데 저만 못타요

 

어릴 때 가끔 광역시쪽으로 가족이 다같이 방문하면요,,

모자모양의 컵에 구슬아이스크림을 2천원에 팔았어요,,

그때 당시 하드바는 3-500원, 콘은 700원 하던 시절이었어요, 2천원이면 매우 비싼 축이죠,,

그것도 한 컵만 사줘서 나눠먹으래요, 근데 늘 오빠손에 쥐어줘요

그럼 오빠는 자기 입에 2-3입 넣고, 저 1입 줘요

근데 그것도 제가 많이 쳐먹는다고 화를 내요, 그럼 저는 눈치를 봐요,

근데 엄마아빠 아무도 아무말 안했어요,

늘 그렇게 오빠한테 얻어먹게 하는 그런 행동을 하게 했어요. 그게 자기 아들 권위 세우는거라고 여겼나봐요

 

초등학생땐 엠피쓰리가 유행했는데, 그것도 1대만 사줘요, 나눠쓰래요, 오빠한테 줘요,

근데 오빠는 노래 넣는건 귀찮았는지 절 시키더라구요.

그래서 신나서 노래를 넣는데, 제가 그떄 칠공주 노래를 넣었어요, 근

데 저한테 죽일 듯이 화를 내면서 이딴 노래 넣지마라, 죽여버리겠다 이러더라구요.

공용 물건인데, 오빠는 무조건 지 위주였어요.

나눠쓰는게 아니라 그냥 다 자기꺼고, 저는 얻어쓰는 입장인거죠.

 

근데 웃긴게요, 엄마는 바깥에다가는 자기 아들이 엄청난 효자이고, 동생을 끔찍이 위하는 착한 아이라고 말하고 다녔어요. 항상 모든걸 동생과 나눠쓰고, 양보하는 착한 아들이요.

터울 없이 태어나서 애기때부터 부모품을 뺏긴 불쌍한 아들이래요.

근데요, 어릴떄 사진보면 어린 저는 늘 서있고, 오빠만 안겨있어요.

최초글에서도 적었듯이 오빠는 고3때까지 밥을 엄마가 먹여줬어요

쌈이나 김같은건 엄마가 늘 싸서 입에 넣어줘요, 그건 어릴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저는 제가 제손으로 먹었구요, 생선도 제가 발라서 먹고 다 제손으로 먹었어요.

 

반찬도 늘 오빠가 앉은자리 쪽으로 치우쳐서 차려줬어요.

방학땐 특히 오빠 저가 나란히 앉고 엄마가 오빠가 마주보고 앉았어요(제 앞엔 아무도 없는 4인식탁) 근데 반찬이 엄마랑 오빠 앞에만 있고, 제 앞에는 밥그릇만 있어요.

반찬그릇이 자기들 앞에만 있어요. 오빠랑 저랑만 밥을 먹어도, 저는 손을 뻣어서 먹어야 할거처럼 오빠 바로 앞에만 반찬을 놔줬어요. 처음엔 몰랐는데,, 크면 클수록 그런게 눈에 보여서 힘들었어요.

 

아빠는 회사가고, 엄마는 아침운동을 가면 방학때는 제가 오빠 밥을 차려줘야했어요.

차려주고 저는 티비를 봤나? 그랬는데, 오빠가 밥을 다먹고 그냥 갔나 그랬어요.

근데 엄마가 그떄 집에 돌아왔는데, 저한테 왜 쳐먹은걸 치우지 않앗냐고 화를 내더라구요.

그래서 내가 먹은게 아니라 오빠 밥먹으라고 차려준거다, 이러니 야이년아 쳐먹었으면 반찬도 다 치우고 설거지통에 담궈놨어야지 어디서 뚫린 주둥이라고 씨부리냐 게으런건 지 할매할배를 닮아서, 어휴 , 뭐같은년 뭐뭐같은년 이러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다시한번 내가 먹은게 아니다, 오빠가 먹은거고, 오빠가 안치운거다 이랬더니

오빠가 와서는 니가 차렸으면, 니가 반찬도 치워야지 이러는거에요 하..

엄마는 아무말 안하구요, 오빠는 그런놈이었습니다. 지손으로 반찬뚜겅 하나 못닫는 놈이요.

그후로는 엄마가 심한 욕을 하던 악담을 퍼붓던 절대 밥 안차려줬어요.

 

저만 차려 먹으니, 지 주둥이만 아는년, 지밖예 모르는 년, 딱 지 할매할배고모들 닮아서 지 둥이만 아는 년이라는 욕을 해서 , 오빠가 밥을 안먹었을땐 저도 안먹고 버텼습니다. 욕도 듣기 싫고, 밥도 차려주기 싫고, 설거지도 하기 싫어서요.

 

저는 방학때마다 설거지하는게 당연한 거였는데요,

오빠가 고딩땐가 언제한번 설거지를 했떠니,그날은 아주 경사가 났어요.

엄마가 아이구 우리아들이 설거지를 다했냐고, 동네 아줌마들한테 전화해서 자랑을 하더라구요. 우리 아들은 엄마 힘들까봐 설거지도 해준다, 야무지게 싱크대도 닦고 어쩌고 저쩌고,, 저는 초등학생떄부터 해오던 일인데요.... 참나..

 

엄마는요..

보증을 잘못서 자신을 고생시킨 남편과 도움을 주지않고 차별하는 시댁이 미웠던거 같아요.

그 화를 다 저한테만 풀었구요.

저는 이미 마음의 문을 닫았는데, 이제 자기가 늙어서 저에 대한 영향력이 줄어드니

친한 척하는게 역겨워요

 

어릴 때 들었던 말 중에 자주 들었던게요..

아프리카 애들 안봣냐? 밥도 못얻어먹고 사는 애들, 너는 그거에 비하면 호강에 사는거다

호강에 겨워 요강에 똥싸냐 니 고모년들 닮아서 니가 공주인줄 아냐? 어디서 대접만 받으려고 하냐 이말이랑요

제가 억울할때마다 내가 아니다, 왜 나한테만 그러냐, 나만 차별하냐 할때마다

이 xxxx같은 년아 그럼 니가 니돈벌어서 쳐쓰고 살아라, 니돈벌어서 나가서 쳐 살아라

이말이었어요

 

지금은 제가 돈벌어서 제가 알아서 살고있는데, 왜 자꾸 짜증나게 저한테 엉기는지 모르겠네요.

엄마 본인입으로 말한대로 살고있는데요.

 

엄마한테 저는 늘 오빠걸 뺏어가는 못된년, 양보만 하는 착한 오빠를 이겨먹으려는 년, 양보를 할줄 모르는 이기적인 년, 지 고모들이랑 하는 행동이 똑같은 공주대접 받으려는 년이었어요.

 

근데요 웃긴게, 어릴 때 사진첩을 보면 공주요?..

보통 딸들은 머리도 이쁘게 만져주고, 예쁜 핀도 꽂아주고, 옷도 드레스같은거 입히고 그러지 않나요? 그런 사진이 하나도 없어요. 저는 늘 오빠가 입던 색바랜 남자옷만 입고 있구요

오빠는 늘 새옷 좋은 옷만 입고있어요.

늘 저는 오빠꺼만 물려받았어요. 집에 장난감이 몇박스 있어도 다 로봇이었고, 절 위한 인형은 없었어요. 장난감 가게에 가도 갖고싶은걸 고르라고 오빠한테만 말해요.

저는 그걸 같이 가지고 놀래요. 늘 그랬어요. 사진첩도 오빠 독사진, 오빠 위주 사진이 3권이면 제꺼는 1권도 안돼요. 둘째들은 사진이 적다지만 너무 적어요.

 

집에서 했던 행동 그대로, 회사에서도 하는데요. 사람들이 저보고 왜이렇게 착하냐고,

쓰니씨는 사람들을 참 잘 챙겨준대요. 저는 늘 했던대로 행동하는데요.

이상하죠? 똑같은 나인데, 엄마는 절 정말 못된년이라는데, 외부사람들은 제가 너무 착하대요.

 

엄마는 제 외모도 마음에 안들어했어요.

가만히 있는 절 보고 갑자기 웃으면서

넌 니 고모년들 닮아서 코가 참 들창코다. 그런 코로도 숨이 쉬어지냐 래요.

어릴떄부터 들창코 콧구멍이 다 보인다 코모양좀 봐라 콧대가 하나도 엄청 납작하다 이런말 엄마한테 엄청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는 제 외모에도 콤플렉스가 참 많았어요. 대학오기전까진 코수술하고 싶어서 난리였는데요, 대학오자마자 그런 생각이 하나도 안들더라구요. 엄마와 떨어져서 사니까 외모지적하는 사람이 없어져서 그런가봐요.

 

참 이상한걸로도 트집을 잡았는데요, 어느날은 저 초딩때 제 발이 너무 못생겨서 싫대요.

저는 발가락에 틈이 없어 발가락이 다 붙어있거든요?

그게 그렇게 꼴보기 싫대요, 아빠 발이 그렇게 생겼는데, 어디서 궃은거만 그렇게 쏙빼닮았냐고 해요. 엄마 본인이랑 아들은 발가락도 틈이 있어서 예쁘대요. 통풍도 잘되구요.

저는 그래서 고등학생떄까지 제 발도 밉게 생긴줄 알았어요. 발가락 사이에 넓어야 좋은건줄 알았어요. 근데 김태희가 티비에 나와서 자기는 발가락사이사이가 벌어져서 개구리발가락이라 외모콤플렉스라고 하더라구요. 그때 정말 놀랐어요.

저는 늘 집에서 꽉 붙은 발가락이 이상한거라고 듣고 살았으니까요..

 

그리고 이글은 엄마에게 보여주지 않을겁니다. 내가 왜 이렇게 됐는지 알려주기 싫어요.

그냥 평생 자기만 억울하고, 자기만 피해자인 채로 살겠죠. 멍청하게요.

 

(아 그리고,, 댓글 중에 제가 집에 돈을 준다고 오해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돈을 준적은 없습니다,, 19살땐가?20살 때 어버이날에 엄마 아빠께 10만원씩 드린적이 있는데요, 엄마가 그걸 오빠 자취방 장보는데 쓰더라구요? 물론 장을 봐서 본가로 왔으나, 그 장본걸로 아들집에 줄 반찬을 만들어서 보낸거죠,,그래서 그후로는 절대 돈으로 선물을 준적이 없고, 늘 선물을 사서 줬어요 10-20만원 내외로요...)

 

제 어린 시절 100가지 기억조각 중에 1조각 꺼낸 게 이정도네요..

저는 정말 지옥 속에서 살았네요..

 

이렇게 장문의 판글은 아마 읽기 싫을거 같은데,,, 천천히 읽고,, 댓글 달아주신 분들 너무 감사해요,,

추천수4
반대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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