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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문득 생각나서 쓰는 내 일생

ㅇㅇ |2022.12.03 08:17
조회 780 |추천 1
유치원생때부터 부모님의 폭력 아래 자랐다

5살. 엄마에게 떡볶이가 먹고싶다고 했다. 엄마가 해준 성인 기준 2인분의 떡볶이를 반도 못먹고 남겼더니 맞았다. 기껏 해줬더니 남겼다고. 구토를 하고서야 폭력이 멈췄다.

7살. 아빠가 밤늦게까지 술마시고 들어왔기에, “아빠 술 좀 그만마셔!” 라고 했다가 아빠가 내 앞에 있던 식탁을 엎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턱 밑에 그 흉터가 있다.

물론 중간중간 이 외에도 맞았다. (너무 어릴때라 기억은 잘 안나지만 컴퓨터책상 밑에서 바들바들 떨며 죄송하다고 빌던 것, 나를 컴퓨터 책상 아래에서 끌어가던 손, 날아오는 주먹과 발은 기억난다)


초등학생때도 폭력에 점철된 삶을 살았다.

초1. 아빠가 일찍 퇴근했는데 내가 무서워서 숨었다고 맞았다. (아빠가 그시간에 마치는 일이 정말 적어서 강도인줄 알았다)
친구들 앞에서 나를 혼내기에(부모님 허락을 받지 않고 친구를 데려와서) 무서워서 친구들과 도망나왔다가 저녁에 돌아오니 가출했다고 버릇을 잡아줘야한다며 맞았다.

초 2. 공부하지 않는다고 뺨을 맞았다. 일상이었다.
친구 생일파티에 가고싶다고 생일선물 사게 용돈 달라고 하자 맞았다.
어디선가 엄마였나? 아빠였나? 강아지를 데려왔다. 하루종일 강아지와 함께 바닥을 기어다닐 정도로 너무 좋았다. 어느날 엄마는 털알레르기가 나타났다. 내가 바짓가랑이 붙들고 눈물콧물 다흘리며 강아지 버리지 말라고 매달렸으나 다음날 강아지는 사라졌다.

초3. 신나서 뛰어다니다 아빠의 발목을 넘었다고 맞았다.
정기적으로 용돈을 받기로 했다. 일주일에 천원. 월요일이 용돈날이었는데, 달라고 할때마다 맞았다. 돈 맡겨놨냐고.
용돈으로 준비물을 사라고 했다. 용돈을 모아 리코더, 일기장, 알림장, 소고, 크레파스, 사인펜 등을 사기 시작했다. 용돈이 부족해 못 사기 일쑤였다.

초4. 태권도학원에서 받은 패딩신청서(외부체육복? 뭐 그런거였던듯 계절마다 도복입기 불편해하는 아이들 입으로 신청하는게 있었다) 한명당 한개만 하기로 했는데 아빠 패딩을 신청하고 나는 엄마가 사준 애기용 부직포 코트 하나로 겨울을 지냈다.
아빠가 회사 일로 출장을 가면 나는 매일 엄마에게 손찌검을 당했다. 머리 밀치기, 머리 때리기, 뺨 때리기, 어깨 밀치기 등.

초5. 동생이 태어났다. 너무 신기하고 귀여워서 만져보려고 다가갔다가 손 안씻었다고 맞았다(아무도 나에게 알려주는 사람이 없어서 몰랐다)
엄마와 아빠의 부부싸움으로 날아다니던 접시를 팔에 맞았다. 그 자리에 있던 내 잘못이라며 나를 등한시하고 둘은 또 싸웠다. 자는동안 팔이 간지러워 눈을 떠보니 아빠가 약을 발라주고 있었다. 병주고 약주면 뭐가 나아지냐고 묻고싶었지만 차마 묻진 못했다.

초6. 머리가 좀 컸다고, 1년 뒤면 중학생이라고 자신감이 생겼었는지 처음으로 대들었다. 대들었다고 맞았다.

그 외에도 피멍이 든 채 학교가던 일,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가정폭력 당하냐고 물었지만 아니라고, 넘어진거라고 하며 웃던 일, 매일 엄마와 아빠가 무서워서 아파트 벤치에 앉아있다 들어가던 일들이 있었다.


중1, 공부하지 않는다고 또 뺨을 맞았다. 열공 문제집을 돌돌 말아 머리를 세게 때렸다. 나는 아직도 열공 문제집같은 두꺼운 문제집을 보면 조금 짜증이 난다.
영어듣기평가 100점을 받아왔다. 그날, 내 인생 처음 엄마와 아빠의 웃는 모습을 봤다. 공부를 못해서 나를 미워했나보다 생각해서 공부를 열심히 했다(웃긴건 초등학생 때 성적이 평균 80, 90이었다)

중2. 수학 제외 인문계쪽 성적이 평균 90 이상이었다. 수학을 못했다고 밤새 엄마와 아빠에게 머리를 맞으며 수업을 했다.
너무 죽고싶어서 일기를 쓰고 서랍 구석에 넣어뒀었다. 엄마가 봤나본지 내가 죽고싶다고 한 날의 일기를 찢어 집 온 곳곳에 붙였다. 하교하고 들어온 뒤 집을 보고 기절할뻔 했다.
셋째가 태어났다. 아예 동생들에게 관심을 안가지면 된다는걸 깨달았다. 무탈하게, 그러나 정없이 동생들과 지냈다.
엄마에게 뺨을 맞고 고막이 나갔다. 지금도 오른쪽 귀는 거의 안들린다.

중3. 친구에게서 받아온 햄스터를 키우게 됐다. 어느날 보니 햄스터는 사라졌다. 성인이 되고 나서 들었지만 이 햄스터는 아빠가 꼴보기 싫다고 베란다 밖으로 떨어트려 버렸단다.
학원에서 손바닥맞고, 종아리맞고, 머리맞고, 머리채 잡히면서 성적이 올라갔다.(체벌하면서 성적 올리는 학원이었다. 나아아중에 알게 된 학부모들이 항의하여 학원은 사라졌다고 들었다.) 엄마는 그래서 성적이 오르니 조금만 더 하자고 했다. 내가 울면서 죽어버릴거라고 하자 그제야 학원을 그만둘 수 있었다. 아빠에게는 알면 학원을 부술것 같다고 엄마가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래도 부모긴 부모구나 싶었다.
용돈 맡겨놨냐는 말이 듣기 싫어 “부모 동의서”? 뭐 그런거 받아서 편의점 알바를 시작했다. 이 이후로 단 한번도 일을 쉰 적이 없다. 용돈도 받은 적 없다.

고1. 남들이 보는 눈이 있어서인지 폭력은 줄어들었으나 안맞진 않았다. 가벼운 폭력은 계속해서 있었다. 체벌, 교육, 훈육 등의 이름으로. 그럴때마다 알바하러 간다고 도망쳤다.
담임쌤이 나를 불렀다. 가정폭력을 당하냐고. 놀라서 보니 종아리에 멍이 들어있었다. 아니라고 웃었다. 이 거짓말이 익숙해질것같았다.

고2. 엄마가 퇴사 기념 회식을 했다. 아빠는 퇴근하자마자 그 소식을 듣고 바로 깡소주를 마시더니 집안 가전가구를 부수기 시작했다. 티비, 접시, 그릇, 유리창은 말할 것도 없고 내가 알바해서 산 노트북도 부쉈다. 동생들을 내 방에서 문 잠구고 자라고 일러둔 뒤 아빠를 재웠다. 술을 마셔서 그런지 금방 잠들었다. 손을 베여가며 유리들을 치웠다. 그 한시간 뒤 술에 취한 엄마가 들어왔고, 나는 거실에서 밤을 샜다.

고3. 아빠가 내 전남자친구 성을 물었다. 자꾸만 ”김씨였나? 김씨지?“ 하기에 ”아냐. 김씨는 지금 남자친구고 전남자친구는 신씨야.“ 라고 했는데 어떻게 들었는진 모르겠지만 ‘신씨’를 ㅆ발로 듣고 나를 때리기 시작했다.
머리채를 잡고, 바닥에 패대기치고, 배를 차고, 등을 밟고, 뺨을 때리고, 몸통만한 두께의 통나무(아빠가 낚시 찌를 만들겠다고 가져온 부드러운 나무가 있었는데, 그걸로 자주 맞았었다)로 얼굴 몸 할거없이 때렸다. 머리채를 잡고 질질 끌고 가서 베란다로 밀어버리려 하기도 했다. 그래도 엄마인지, 엄마가 아빠를 붙잡고 “내새끼야! 내 배 아파 낳은 새끼야! 니가 잘못 들었잖아!“ 하며 아빠를 말렸다. 그 날의 폭력은 그렇게 끝났다
다음날 얼굴이며 종아리며 팔이며 피멍이 들어있으니(등교를 해야했었다. 교복때문에 가릴수가 없었다) 담임쌤이 불러 가정폭력이냐고 물었다. 아니라고 웃었다. 이제 이 거짓말은 익숙하다.

성인이 되자마자 취직한다고 타지로 도망쳤다.
가끔 전화가 왔었다. 보러 오라고. 무서워서 못갔다. 그랬더니 친가쪽 가족들에게 나는 패륜아가 되어있었다.
이때부터 정말 가끔 환청이 들린다.

23살. 아빠가 돌아가셨다. 그다지 슬프지는 않았다. 그래도 슬펐다. 맞은 기억도 많지만 좋았던 기억도 많으니까. 그래, 어쨌건 아빠니까. 남자친구도 우리 아빠의 임종을 지켰다. 태생부터 누군가를 미워하기 힘든 성격이라 금새 다 잊고 좋은게 좋은거라 생각하고 친가와 다시 교류하려 했다.

24살. 설 연휴 다음날(평일) 밤에 아빠 제사를 해야한단다.(아빠가 설 마지막날 돌아가심) 내가 가겠다고 연락한 날과는 말이 다르다. 그날은 마지막날 제사하면 된다고 했는데, 어쨌거나 돌아가신 그날에는 숨 쉬고 있지 않았냐고, 그 다음날 제사를 지내는게 맞단다. 우리는 새벽 두시에 제사를 지낸다. 제사 지내고, 뒷정리하면… 설 연휴 쉬고, 다음날 휴가내고, 다다음날 밤샌 상태로 회사 출근을 해야하는거다. 안된다고 했다. 가족보단 내 일이 더 소중하고 중요했다. 게다가 입사한지 2개월째였다…
고모에게 발이 꼬집히고, 작은아빠에게 ”잘~한다.“ 라고 비꼼을 들었다.
서러워서 엄마에게 이야기하며, 여지껏 당한 폭력을 말하며 서럽게 목놓아 울었다. 돌아오는 말은 ”난 그것보다 더 심한 폭력을 당했어. 나때는 어땠냐면~“ 이었다.
서럽게 울면서 ”왜 사과하지 않냐“며 따지자 ”어른은 그런거 안한다, 이미 다 지나간 일이다.“ 라고 했다.
그날 짐 싸서 뛰쳐나왔다. 남자친구가 태우러 와줬다.
남자친구는 니가 어른들에게 버릇없는거 아냐고 카톡이 왔기에, 내가 엄마아빠한테 맞고 자란거 안다고 했더니 답장이 없다.

추석, 설 어떻게든 빼려고 특근도 없으면서 특근이라고 하고, 자해를 해서라도 병원을 갔다. 아파서 못간다고 하려고.

25살. 22살부터 사귀던 남자친구에게 ”결혼전제로 사귀자“는 말을 들었다. 이유를 물으니 ”너를 사랑하기도 하지만 너희집에서 너를 탈출시키려면 결혼밖에 답이 없어보여.“ 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이었다.

26살. 23살의 설 이후 친가는 아예 교류를 안했다. 연락은 했지만 얼굴 보러 가진 않았다. 그러다 남자친구가 그래도 얼굴 한번은 봐야하지 않겠냐고 했다. 난 거부했다.
추석. 남자친구가 아빠 보러 가자고 했다. 태워다주겠다고. 아빠 묘가 60도가량의 가파른 산에 있어서 차가 더러워질까봐 둘이서 등산을 하기로 했었다. 그래서 옷을 편하게 입고 갔다. 이 상황을 할머니 할아버지께 말씀을 드렸다. 그러나 남자친구를 보자마자 한 말은 ”그래도 어른 보러 오는데 단정하게 입고 왔어야지“ 였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뵐 줄은 몰랐다고 죄송하다 하니, 어른이 근처에 있는데 왜 인사를 하고 가지 않느냐며 한시간동안 혼났다.
할머니를 따라 점심을 차리고 설거지를 했다. 할아버지와 남자친구는 이야기(인적조사)를 했다. 남자친구는 사회생활을 잘하니 할아버지 마음에 쏙 드실 거라고 생각했다. 역시나였다.
남자친구는 집가는 차 안에서, ”니가 왜 사회생활을 잘하는지 알겠어.“, ”왜 군대 다녀왔냐고 친구들이 묻는지 알겠어.“ 라고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무척 군대 선임 같다고 했다.

27살. 할아버지가 결혼하라고 재촉한다. 지금 남자친구랑 결혼하라고, 헤어지거나 다른 남자를 만나면 명예살인이라고 농담따먹기를 한다. 마음에 드셨었나보다… 남자친구에겐 말하지 않았다.
남자친구가 어머님 좀 뵈라고 했다. 너무 오랫동안 안봤다고, 걱정된다고. 엄마는 아빠가 돌아가신 이후 왕복 8시간 거리의 도시로 이사갔다. 작은아빠의 회사에서 일하고 계신다. 보러 가겠다 하니, 작은아빠를 뵈어야한다고 한다. 무서워서 싫다고 하니(아빠와 닮았다. 이젠 괜찮아졌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아닌듯하다. 나도 날 잘 모르겠다. 괜찮다가도 무섭고, 무섭다가도 괜찮다.) 어른이 근처에 있는데 왜 인사를 안하냐고… 알겠다고 했다.
엄마가 작은아빠한테 전화해서 ㅇㅇ이가 왔다. 인사드리겠다더라. 라고 하자 작은아빠는 ”꼴보기 싫다. 지 아빠 제사도 안오는 년이 어딜. 평생 안보고 살 거다.“ 라고 했단다. 나에게 그걸 곧이곧대로 전달했다. 이제는 내 방이 없어진 집의 화장실에 숨어 소리없이 울었다. 아직 나는 미움받는게 무섭다.
알고보니 할아버지도 작은아빠댁에 계셨다. 할아버지 뵌다는 명목 하에 찾아갔다. 그날 나는 작은아빠에게 인사도 뭣도 받지 못했다. 투명인간이었다.

가을쯤 할머니 칠순잔치였다. 작은아빠에게 인사했으나 씹혔다. 후에 작은엄마가 와서 인사 안했냐길래, 했는데 못들으셨나봐요…^^ 했더니 ”인사는 눈 마주치고 상대가 어, 그래. 할 때까지 하는거다.“며 나를 끌고 작은아빠 앞에 세웠다. ”아까 인사드렸는데 못들으셨나봐요~“ 하며 또 인사했다. 씹혔다. 짜증이 확 나서 작은아빠 팔뚝을 잡아당겨 돌아서게 해 날 보게 하고 다시 인사했다. 그제야 떨떠름히 ”어, 그래.“ 하며 인사를 받아줬다.
잔치 내내 어른들이 나에게 와 ”작은아빠에게 인사 안했냐“, ”인사란 말이다.“ 하며 말을 거는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작은아빠가 여기저기 이야기했나보다.
잔치가 끝나고 어른들이 하나 둘 자리를 뜨시기 시작했다. 웬만큼 자리를 뜨신 후 나도 가겠다고 여기저기 인사 돌리는데, 작은아빠는 또 이악물고 못본척 하신다. 이번엔 엄마가 나를 붙잡고 작은아빠 앞에 세웠다. 또 작은아빠 팔뚝을 꽉 잡고 안으며 눈을 억지로 맞추고 인사했다. 팔을 빼려하며 인사를 받아줬다. 만족한 나는 자리를 떴다.

그 이후로 엄마와만 연락하며 지내고 있다. 일상 이야기와 동생들 이야기만 하며. 동생이 우울증에 걸린것같다. 동생은 정신병인것같다고 엄마에게 이야기하고, 학교에서 있었던 힘든 일(학교폭력이 있었다. 학폭위가 열리고, 상대가 강제전학을 갈 정도로 컸다)을 다 이야기하다보니 엄마가 이것저것 공부를 했나보더라. 난 다 숨겼는데. 동생의 똑부러지는 성격이 부럽다.
잊은듯 잘 지내다가도 문득문득 눈물이 난다.
명절이 올때마다 피하고싶다. 가기 싫다. 작은아빠는 내가 아빠, 엄마에게 폭력을 당한걸 모르신다. 작은아빠는 회사 오너여서 직원의 입장을 모르신다. 내가 제사를 빠지는 이유를 모르신다. 명절만 가까워지면 무섭다. 생각이 날때마다 덜덜 떨린다.
아직도 아빠 닮은 사람을 보면 무섭고 피하고싶다. 영화나 드라마처럼 혼절하듯이 무서운건 아니니 이젠 나아진건가? 내가 과민반응하는건가? 싶다.
엄마가 자꾸 나에게 냐악하다, 멘탈이 약하다, 니가 이상하다 하니 나도 이젠 내가 이상한건가? 힘든걸 피하는 나약한 인간인가? 싶다.
남친이 없었다면 나는 죽었지 않을까 싶다. 확실히 나는 25살이 되면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고 계획까지 해놨었다. 생명보험을 들어놓고, 수혜자는 엄마로 해놓고, 사고사인척 하려 했었다.
이젠 내가 이상한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정신병인가 싶은데 그런거치곤 일상생활은 참 잘한다. 웃고, 활발하게. 선임은 내가 참 밝다고, 분위기메이커라고, 구김살 없는 인생을 살아온 것 같다고 한다.
나는 성격 자체가 밝다. 그런 일을 당하며 살아왔어도 일상생활은 참 잘한다. 정신병은 아닌거같은데. 그러다가도 밤만 되면 죽고싶다. 우울하다. 죽어버리고싶다. 매일 밤마다 잠들기전에 운다. 근데 다음날이 되면 또 일상생활을 참 잘한다. 나도 나를 모르겠다.

나도 나를 모르겠다. 죽고싶은데 죽고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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