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雪化)
관노부는 흉흉(어수선하다)했다.
조의두대형 모사달이 처참하게 암살당한 후, 관노부 출신의 중앙 관료와 지방관료가 연이어
암살당하는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연관이 없어 보이는 관료들이었지만, 살해방법이 일치하는 것으로
보아 동일인이 저지른 일이 틀림없었다.
“대체 이것이 어찌된 일이오?”
“벌써 셋이나 당했소. 우리 계획이 밖으로 새나간 것이 틀림없소!”
“하지만 정말 그렇다면, 은밀히 암살할 이유가 없지않소?”
“자객의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소. 그리고 자객이 하나가 아니란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소.”
“무리지어 다니는데도 전혀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허허, 이것 참...”
“우리를 척살하려는 척살단임이 틀림없소!”
“짚이는데가 있소?”
“...솜씨로 보나 그 날램으로 보나... 달나미라면 모를까...”
“달나미라면... 허어... 허나 그럴 리가 있소? 계루부쪽과는...”
“몰라서 하는 소리요. 새 후계자는 무척 용의주도하다 들었소. 우리쪽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는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그럼, 이렇게 당하고만 있을거요? 내일은 또 누가 당할지 모르는 일 아니오!”
“허나 정말로 달나미가 움직이고 있다면...”
“일단은 몸을 피해 있는 것이 좋겠소. 어떤 핑계를 대서든 여기 남아
있어선 안되오.”
모사달이 살아있을때에는 줄을 섰던 사람들이 정작 초상집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암살 당했다는 소문 때문에 꺼리는 자가 많았기 때문이다.
내성(왕이 머무는 성)에서는 원이를 불러들였다.
조의두대형의 자리가 비었기 때문이었다.
원이는 아버지의 초상을 핑계로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
“언제까지 왕의 부름에 거역하실 생각이십니까?”
주부의 딸이며 원이의 아내가 된 모로(현대말로는 물을 뜻하는 고구려말)는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아버지의 초상을 치르는 동안에도 원이는 내내 다른 생각에 팔려 있는 것 같았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도 크게 보이지 않았다.
그것이 필시 아버지가 암살당한 밤, 신방에서 일어난 일과 무관하지는 않다는 것을
모로는 짐작하고 있었다.
“조만간... 배알할테니, 너무 걱정마시오.”
“......”
모로는 궁금한 것을 묻지는 못했다.
모로는 순종적이고 헌신적인 아내역할을 하기로 마음 먹었던 것이다.
내성에 갔다오기만 하면 남편은 조의두대형의 자리에 오를 것이기 때문이다.
28. 강술의 검
“허허... 솜씨가 보통이 아닌 것 같습니다...?”
유골을 모시고 온 대장장이가 문득 담이의 처소에 들어서며 감탄했다.
담이는 이미 고수의 경지에 올랐음에도 멈춤없이 성장하고 있었다.
꽤 오랜시간 단련하고 있었는데도 담이 이마에는 땀 하나 흐르지 않고 있었다.
“어서오세요.”
“실력을 보아하니 한 두해 익힌 무술이 아닙니다...?”
“스승이 훌륭해서 실력이 많이 늘었습니다만... 아직도 멀었어요.”
“아직 어린데다 여자의 몸인데 무공을 그렇게 늘려, 어디다 쓰시려구요?”
“......”
“허허, 이런... 아직 제 소개도 안했군요. 저는 흙이나 파서 연명하는 강술이라고
합니다.”
“전... 담이라고 해요.”
“아버지를 많이 닮으셨군요...”
담이와 강술은 나란히 마루에 걸터앉았다.
“...아버지는 제게 어머니를 많이 닮았다고 하셨어요.”
“...아버지와 그리 길게 지내지는 않았지만 성품이 강직하고 무척 훌륭한 분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어쩌다 그런 참변을 당하셨는지... 그것도 제가 자릴 비운 사이에...”
“혹시... 아버지를 살해한 이들을 보시지는 않으셨지요?”
“예... 제가 돌아왔을때는 이미 모두 흔적을 감춘 후였고 아버지는... 절명하신
후였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암살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집안에서 사라진 물건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죽인 상처는 급소를 정확하게
노린것이었습니다. 변변찮은 솜씨가 아니었습니다.”
담이는 차마 더 들을 수 없다는 듯 얼굴을 무릎에 파묻었다.
문득 강술은 담이의 발목에 삐죽하게 튀어나와있는 단검으로 손을 뻗었다.
담이는 반사적으로 먼저 단검을 뽑았다.
“허허... 늙은이 놀래키시려고 그러십니까...”
“미, 미안해요... 나도 모르게...”
“검 좀 볼 수 있을까요?”
“...네.”
강술은 단검을 받아 이리저리 살피더니 웃음을 띠었다.
“왜 그러세요?”
“이 녀석이 여기 있었군...”
“...?”
“어쩌다 이 검을 갖게 되셨습니까?”
“아아, 그건... 여기 계신 휘님이 주신거에요.”
“휘님이라면... 주부의 장자이신 거련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그 분을 아세요?”
“정확히 말하자면 그 분을 아는 것은 아닙니다. 그 분 아버지와 오래전에 잠깐 인연이
있었지요. 이 단검도 그때 그 분께 드린거구요.”
“그럼... 이 검을 만드신 분이...”
“부끄럽지만 그렇습니다. 제가 만든 녀석입니다.”
“그래요? 정말 놀라워요...! 이 검이 저를 두 번이나 살렸거든요... 비록 단검이지만 칼
끝의 기운이 장검 못지않게 기운차요. 단검에 쇠를 쓰시다니... 정말 대단한 솜씨셔요...”
“허어... 부끄럽습니다.”
“아니에요. 검을 들여다보며, 만드신 분이 누굴까 궁금했었어요.”
말을 마친 담이의 표정이 갑자기 묘해졌다.
볼이 점점 붉어지며 무언가 단단히 흥분하고 있는 것이었다.
“호...혹시...”
“?”
“가, 강술아비 아니세요? 맞지요? 강술아비가 맞죠?”
“허... 그렇습니다만...”
“이럴수가...! 강술아비를 만나다니...!”
“이 미천한 소생을 아십니까?”
담이는 강술의 손을 버럭 잡았다.
“그럼요... 제 어렸을적 꿈이 강술아비의 검을 한 번 보는것이었는걸요...”
“허어... 그렇게 알아주시니 감사합니다.”
“저도... 제 검을 갖고 싶어요.”
“......”
“물론, 저, 저같은 신통찮은 검사에게 검을 만들어주실리는 없지만...”
“그게 아닙니다. 아가씨... 저는 이제 검을 만들지 않습니다. 검이란... 사람을
지키는데에 쓰여져야 하는 것입니다.”
“......”
강술은 단검을 내려다보며 흐뭇한 웃음을 띠었다.
“그래도 이 녀석이 자기 의무를 다 한 것 같아 기쁘군요.”
강술은 단검을 만지며 야릇한 기운을 느꼈다.
검끝의 떨림이 강술의 두터운 손바닥을 울려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