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걸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
싫어한다고 하는 게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내가 황금 같은 휴일에 급성 장염까지 걸려 골골대는 와중에 노트북을 켜고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이유는…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속에 있는 이야기를 진심을 다해서 누군가에게 털어놓기도 어렵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머릿속은 복잡하고, 생각은 정리가 안 된다. 그래서 그냥 글을 써보기로 했다.
앞서 말했듯이 현재 심한 장염에 걸려 있다. 내 기억 속에선 아마 살면서 처음 겪는 일 같다. 생각보다 많이 아프고 불편하다. 화장실은 도대체 얼마나 자주 갔는지 셀 수도 없다. 지난주 금요일부터 갑자기 오한, 열감, 어지럼증, 메스꺼움, 근육통, 두통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딱 술 먹고 다음 날 숙취가 엄청 심할 때의 느낌이었다. 병원에 갔더니 심한 장염이라고 하셨다. 바로 수액 맞고 약도 처방받았다.
어지럼증, 두통, 근육통, 열감, 메스꺼움은 가라앉았는데 복통은 여전히 심하다. 주기적으로 계속 온다. 만 30년 평생 대장내시경 한 번 안 받아봤는데, 슬슬 받아볼 때가 된 것 같다.
이런 느낌으로 계속 글을 써보려고 한다. 지금 당장은 이 행동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시간이 지나 다시 돌아봤을 때 뭔가 달라진 게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싶다. 사실 할 것도 없어서 쓰는 거다. 아마 지금부터가 진짜 속에 있었던,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내 추악한 면들을 그나마 글로 마주하는 시간이 될 것 같다.
언젠가 다들 한 번쯤 이런 질문을 받았거나, 스스로에게 해봤을 것 같다.
“너는 어렸을 때 기억 나?”
지금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는 대략 6~7살쯤부터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아주 자세한 건 아니고, 특별한 이벤트들만 뜨문뜨문 기억난다. 그런데 심지어 그 기억들조차 너무 오래돼서, 내가 꿨던 꿈인지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조차 가물가물하다. 그래도 그 시절의 감정만큼은 비교적 또렷하게 남아 있는 것 같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몇 살부터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거짓말을 자주 했다. 선의든 악의든, 어떤 상황에서든 나에 대한 책임은 최대한 없도록 없는 말을 지어내는 습관이 있었다. 그런데 그건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어렸을 때 누군가의 물건을 훔친 적도 있고, 학원 안 가고 PC방에 자주 갔으며, 부모님 돈도 훔쳤다. 가출도 해봤고, 겨울에 나체로 쫓겨난 적도 있었다. 집에서 몰래 컴퓨터 하다 걸린 적도 많고, 약 먹기 싫어서 약 봉투를 냉장고 밑에 숨기기도 했다. 또 뭐가 있더라… 하여튼 잘못을 꽤 많이 했다.
그래도 맹세코 누굴 때리거나 괴롭힌 적은 없다. 워낙 외소한 체격에, 당시엔 성격도 소심해서 당하면 당했지 가해자가 될 수는 없었다.
초등학교 시절은 솔직히 기억이 별로 없다. 중학교 때는 학교폭력도 당해보고, 시험 시간에 만화책 빌려 보다가 엄마한테 걸려 크게 혼나기도 했다. 이때도 그냥 별생각 없이 살았다. 하고 싶은 것도 없었고, 하루하루 그때 놀던 친구들이랑 노는 게 전부였다. 공부는 끔찍했다.
하필 사촌 형이 나랑 같은 학년이었다. 이 부분은 지금도 잘 모르겠다. 자세히 물어본 적도 없고, 이제 와서는 딱히 궁금하지도 않다. 한 학년 늦게 입학한 건지, 어쩌다 같은 학년이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개띠다. 한 살 많은 건 맞다. 아무튼 그 형은 공부를 잘했다. 비교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서운하고 섭섭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가 공부를 안 했다.
나는 친구들이랑 노는 게 더 좋았다. 아주 건전하게, 여기저기서 매일 놀았다. 그렇게 중3이 됐고, 공부는 진작에 내 전공이 아닌 것 같아서 당시 ‘실업계 고등학교’라고 불리던 학교들 중 가고 싶은 곳이 생겼다. 부모님께 이야기를 꺼냈는데, 아마 인생 처음으로 겪은 극심한 반대였던 것 같다. 자세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절대 안 된다”는 말만은 또렷하다.
지금도 종종 생각하는 후회 1번이다. 그냥 빨리 졸업하고 취업해서 경력 쌓고 이것저것 해볼 걸이라는 생각. 하지만 이미 지나갔다. 결국 항복하고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재밌었다. 아마 인생 통틀어 가장 많은 일이 있었고, 가장 재미있었던 시기였던 것 같다. 그때 만났던 친구들을 지금도 만난다. 다들 좋은 친구들이다. 다만 역시 공부는 안 했다. 너무 하기 싫었다.
친구 추천으로 배드민턴을 시작했다. 재밌었다. 점심시간마다 쳤고, 동아리도 만들고 대회도 나갔다. 그런데 나는 출전하지 못했다. 노력도 안 했고 재능도 없었다. 그냥 흥미만 있었을 뿐이다. 그래서 매니저 역할로 대회에 참가했다. 그래도 재밌었고, 나름 값진 경험이었다. 지금도 한 달에 한 번 정도 모여서 배드민턴을 친다. 실력은 더럽게 안 늘고 매번 지기만 하지만, 그래도 아직 재밌다. 여유만 된다면 레슨 받아서 배드민턴만 치고 싶다.
여기까지 보면 알겠지만, 입시에 대한 생각도 당연히 없었다. 고2 겨울방학 때 한 선배의 소개로 체대 입시를 시작했다. 지옥의 시작이었다. 여전히 공부는 안 했다. 그땐 힘들었지만, 돌이켜보면 입시 준비도 열심히 안 한 것 같다. 그나마 영어가 조금 재밌어서 과외는 열심히 받았다. 근데 그게 전부였다.
수능은 망했고, 입시도 망했다. 시간과 돈만 버렸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경험이라고 포장하고 싶지도 않다. 그냥 돈 버린 거다. 부모님께 죄송했다. 다군 마지막 발표 날 불합격을 보고 울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왜 울었는지 모르겠다. 그냥 서러웠던 것 같다. 남들 공부할 때 공부 안 하고, 남들 운동할 때 적당히만 하고, 남들 입시 준비할 때 여기저기 놀러만 다닌 대가였는데 말이다.
이게 후회 2번이다. 다시 돌아간다면 입시 준비 안 하고 그냥 공부할 것 같다.
대학교에 가고 싶지 않았다. 자존감은 이미 바닥이었고, 여전히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그냥 대학 안 가고 청년 지원 혜택 받으면서 취업하고 싶었다. 돈 벌고, 모을 건 모으고, 놀러 다니고 싶었다. 그런데 부모님은 죽어도 대학은 가야 한단다. 할머니, 이모까지 다 달려들어 말렸다. 무조건 대학은 나와야 한다고.
그래서 그냥 아무 데나 갔다. 전문대 중 정시 2차 뽑는 곳은 전부 지원했다. 학과도 하고 싶은 게 없어서, 그냥 한 번 해볼까 싶은 곳은 다 넣었다. 간호학과, 경영학과, 경호학과, 호텔경영과… 기억도 잘 안 난다. 어쨌든 엄청 많이 지원했다. 원서비로만 60만 원이 나왔다. 이건 아직도 기억난다.
영어를 열심히 해서 그런지 생각보다 연락이 많이 왔다. 고른다는 것도 웃겼지만, 결국 학교랑 학과는 이모부 추천으로 정했다. 졸업하면 취업도 도와주신다는 말만 믿고 입학했다. 후회 3번이다. 다시 돌아간다면 대학에 안 갔을 것 같다.
학자금 대출은 아직도 갚고 있고, 집은 서울 도봉구, 학교는 수원이라 통학했다. 교통비만 한 달에 15만 원 정도 나왔다. 들어가서도 공부는 뒷전이었다. F 받은 과목도 많았다. 졸업할 때 재수강하느라 군대 다녀와서 진짜 뒤지게 힘들었다.
2학년 1학기까지 마치고 입대했다. 지금은 연락하지 않는 친구와 동반 입대였다. 싸운 건 아니다. 자대 배치 후 나는 인사행정병, 친구는 K3 기관총 부사수로 배정됐다. 서로 다른 종류의 고생을 해서 그런지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사유는 말할 수 없지만, 나는 영창도 한 번 다녀왔다. 폭행이나 괴롭힘 같은 건 절대 아니다. 그럴 성격도 아니다. 그 일로 전역일도 달라졌고, 그렇게 영영 굿바이가 됐다. 다시 연락하기엔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다.
전역하고 일주일 뒤, 친구 소개로 바로 알바를 시작했다. 꽤 큰 레스토랑이었다. 직원이 많았는데 남자는 나랑 외국인 호스트, 그리고 나보다 어린 애 하나, 이렇게 셋뿐이었다. 일은 힘들었다. 지금 다시 하라고 하면 절대 못 한다. 그래도 그땐 재밌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착했고 좋았다. 좋은 기억이 많고, 몇 명은 지금도 가끔 만난다.
학비를 내가 벌어서 낸다는 핑계로 1년 휴학하며 계속 일했다. 하지만 학비를 벌긴커녕 잘 놀러 다녔다. 연애도 안 하는 놈이 어딜 그렇게 쏘다녔는지 모르겠다.
복학했다. 학비는 냈다고 하고 전부 학자금 대출을 당겼다. 쓸데없이 학비는 더럽게 비쌌고, 아직도 갚는 중이다. 여기서 후회 4번. 이때라도 그냥 나와서 다른 길을 찾았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 하필 또 3년제 학과라 빚만 잔뜩 생겼다.
졸업은 아마 21년도였을 거다. 졸업증명서 확인하기 귀찮다.
중간에 많은 이야기를 건너뛰었는데, 어차피 잘 기억도 안 난다. 다만 제일 중요한 날이 하나 있다.
2018년 11월 1일.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했고, 가장 소중했고, 그리고 지금도, 앞으로도 평생 후회할 사람을 만난 날이다. 어쩌면 이 글을 쓰게 된 이유가 이 사람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두서없이 떠오르는 말들을 그냥 주절주절 적었는데, 생각보다 많이 썼다.
이후 이야기는 다음에 또 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