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비
문혜진
여름 빗속을 뚫고 맨발로 왔다
빗물을 뚝뚝 떨구며
도마뱀의 잘린 꼬리를 감고
독을 품은 두꺼비처럼
죽은 자와 산 자의 세계를 넘어
할례 날의 소년처럼
피 흘리며
피를 삼키며
백 년 만이다
그를 다시 만난 건
세상의 온갖 풍문 속에서만
그를 만나왔다
그리고 오늘,
백 년 만에 비가 내렸다
그 사이 내 귀는 구멍만 깊어져
바람이 들고난 자리가 우묵했다
창백한 젖은 이마
빗물이 흐른다
나는 긴 혀로 빗물을 핥는다
그러자
그의 희고 긴 손마디에서 푸른 이파리가 돋아났다
젖은 몸은 금새 오랜 숲처럼 울창해졌다
우리는 빗속을 뚫고
턱이 높은 말에 나란히 걸터앉아
서울을 떠났다
빗속에서 스매싱 펌킨스*를 들으며
탄력 있는 암말의 엉덩이를 걷어차며
어둠 속으로 말발굽 소리 또각이며
뒤돌아보지 않으며
*미국의 4인조 밴드로 약물 중독으로 멤버가 죽고 지금은 해체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