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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이사하는 여자

누렁이 |2006.11.16 16:30
조회 27 |추천 0

매일 이사하는 여자

조 은

그녀는 짐을 싼다
그동안 해온 이사만도 트럭으로 치면
지구를 몇 바퀴 돈다고, 너스레를 떠는 그녀
이제 그만 어느 한 곳에 터를 잡고
뿌리내리고 싶은 마음 간절하건만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의 수레바퀴는
그녀를 쉬이 놓아주지 않는다
한 뼘만큼 더 자란 커다란 손으로
집안 곳곳을 훑는다
손에 착착 감기는 유리그릇들
결코 깨지는 법 없다
크고 작은 세간이 박스에 실려나갈 때마다
그녀는 새로 이사 갈 집의 구조와
평수를 떠올린다
휠릴리, 이사는 즐거워라
그녀의 달뜬 몸이 포장된다
수십 년 이사의 내공이 스스로 그녀를 들어올려
어느 새 장미의 정원을 내려다보고 있다
장롱이며 서랍장 피아노가
스르륵 제 위치를 찾아 몸을 끼워 넣는다
그녀가 스쳐 지나갈 때마다
사라졌던 물건이 빛을 내며 되살아난다
램프를 손으로 쓰다듬자 온 집안이 환하다
램프 속에서 걸어나온 누군가 다가와
수고했다며 봉투를 내민다

십 년이 지나도록 지하 셋방을 면하지 못하는 그녀,
내일은 타워팰리스로 이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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