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첫날... 그 놈들??과의 첫 대면..
" 아니 아직도 자는 거야? "
문을 세차게 두드리는 소리에 난 눈을 떴다.
순간 백지 상태였던 내 머릿속에 어제의 일들이 떠올랐다.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아침 아홉시!
아뿔싸!
그동안 일없이 하루를 보내다 보니 오늘 해야할 일을 망각하고 있었다.
나는 지금 가정부고 지금 밥을 지어야 한다.
내가 밥을 하지 않으면 이 집사람들이 굶는다는 생각이 들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 아니 이렇게 게을러서야 어디 가정부일 하겠어? ... 도대체 밥이나 얻어먹겠냔 말이야"
대충 머리를 수습하고 나가보니 그들은 이미 외출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 저 지금 준비할게요. 죄송해요. 시계를 맞춰 놓고 잔다는 것이 그만... "
" 지금 뭘 준비해요. 우리 나 갈 건데.. "
서경이 어제 같지 않게 쌀쌀한 말투로 얘기한다.
" 미리 좀 깨우시지.. "
" 뭐라구? 아주 이젠 우리보고 일찍 안 깨웠다고 핀잔주는 거야? 지금 누가 누굴 나무라는 건지 모르겠네. "
여우같은 것이 또 여러 소리한다.
" 늦었는데 얼른 가죠. 가서 간단하게 먹죠 뭐... "
어제 보았던 그다...
이 사람이 영원...인가?
슬픈 꿈을 꾸던...
그들은 나갔고 난 홀로 남겨졌다.
그들이 가고 잠깐 동안은 정신이 들지 않았다.
자력으로 깬 것이 아니고 보니 사실 그들이 나갈 때도 비몽사몽이었다.
이제 정신이 들고나니 스스로를 탓하게 된다.
' 바보같이... 늘 차려주는 밥만 먹다보니까... 에이, 멍충이."
난 스스로 자책이라도 하듯 머리를 한 대 쥐어박았다.
' 씨이... 아프다... '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 여보세요? "
" 나 나영이야, 알지? "
" 근데요? "
" 저 우리 해피 아침 좀 주라 구... 목욕도 좀 시키고... "
" 해피요? "
" 응, 내가 애지중지하는 강아지야. 아마 내 방에 있을 거야? 조심해서 다루라고 족보 있는 비싼 개야. "
" 네..."
' 개라? 으으으~ 난 개가 정말 싫은데 어쩌지? 아~ 신이시여.'
그래도 할 수 없는 일이라 난 조심스럽게 이층으로 올라갔다.
근데 어떤 방이지?
그러구보니 이층은 방이 꽤 많은 것 같았다.
이 방은?
그의 방인가?
물건이며 분위기가 남자의 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옆방...
난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 으악~ "
" 사람 살려~ "
" 아악~ "
" 저리가~ "
' 해피는 무슨 얼어죽을 해피야? '
이름과 어울리지 않게 몰골은 정말 안 해피 해 보이고 사납게 생겼다.
짖어대며 냅다 쫓아오는 폼이 며칠은 굶은 몰골이다.
입에 침을 질질 흘리고 눈은 퀭 한게 쭉 찢어지고 덩치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것이 어설프기 그지없다.
털은 다 빠진 듯이 민들 거리고 거무티티한 살 거죽 색에 군데군데 그리다만 얼룩이 물들었는데 달겨드는 폼이 사생결단이라 먹을 게 없다면 너라도 잡아먹겠다는 표정이다.
' 그건 그렇고 여기는 어딘 고? ... '
내가 잠시 정신을 잃었나 보다...
발꼬락에 알코올을 바르고 난 듯한 시원함이 느껴지면서 정신이 들었다.
' 아악~ '
' 저리가~ '
놈이 그 끈적끈적한 액체를 듬뿍 발라가면서 내 발꼬락을 핥아대고 있다.
놈이 거칠게 숨을 내쉴 때마다 더운 김이 발가락에 기분 나쁘게 와 닿았다.
그나저나 내가 지금 어디 있냐고요?
나도 참... 급한 김에 뛰어오른 곳이 쇼파에요.
쇼파 등받이 끝에 올라앉았는데 이 녀석이 민첩하게 쇼파 위로 뛰어올라와서는 내 발꼬락을 핥아대고 있어요.
" 저리가~ "
" 저리 가라니까~ "
난 발로 그 놈의 면상을 쓰윽 밀었다.
" 으르릉~ 왈왈 "
" 아악~ "
진짜 물릴 뻔했다.
... ...
여긴 또 어디냐?
이번엔 좀 안심이다.
넓디넓고 높디높은 식탁 위니까.
그나저나 이 녀석과 나의 대치상황이 1시간이 지났는데...
" 아~ 함~ 졸려! "
질긴 놈이 처음엔 포기하고 돌아가는 듯 하더니 이젠 아예 내 앞에 자릴 잡고 누워서는 꿈쩍을 하지 않는다.
' 오냐! 누가 이기나 두고 보자고... '
' 이래봬도 나도 제법 오기 있고 지고는 못 사는 사람이었다 이거야? '
... ...
" 아~ 함 졸려! "
' 왜 이렇게 선 하품이 자꾸 나냐? '
아무래도 내가 양보해야 할 것 같다.
내 인생에서 두 번째로 맞보는 좌절의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자 마음 한편이 오히려 대담해 졌다.
마음은 대담해 졌는데 발끝은 여전히 소심하여 식탁 밖으로 한 발을 내리 뻗기가 힘들었다.
발을 내리려고 하면 어느새 알아채고 이놈이 다가와서는 그 흉악한 면상을 식탁위로 드리밀었다.
' 도대체 너는 무슨 족보 있는 개냐? '
' 하긴 그 면상에 다른 것들과 섞이기 힘들었으니 혈통유지는 쉬웠겠다.'
........
' 그나저나 어쩐다. '
놈이 좀 잠잠하니 눈을 감고 있는 것 같다.
' 잠이 들었나? '
살짝 발을 내리 뻗으니 놈이 약간 미동을 하는 듯 하여 긴장했으나 이내 잠잠해졌다.
" 와아! "
드디어 내가 맨땅에 첫 발을 내딛었다.
최초로 달에 발자국을 찍은 암스트롱도 이런 심정이었을까?
난 살금살금 녀석이 깰까봐 조심하면서 무엇을 먹여야 할지 싱크대선반을 뒤지기 시작했다.
저위에 팝콘 봉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 저건가?... '
' 저게 아닐텐데?... '
일단 까치발을 서서 꺼내고는 개수대 아래쪽 수납장들을 열어 보았다.
' 저기 있다. '
저 안쪽 깊숙한 곳에 개 사료가 있다.
' 아! 저거다. '
' 자, 잠깐~ '
' 저, 거긴 한데... '
거기 까지다.
그 놈이 잠복 중이다가 나를 덮쳐서는...
난 어찌어찌 하여 그의 면상에 팝콘 봉다리를 집어던지고는 흩어지는 팝콘알갱이들을 뒤로한채 이층으로 냅다 뛰어야만 했다.
근데... 왜 이렇게 조용하지?...
잠시 후 평정을 찾아 내려가 보니 이 녀석이 팝콘 봉다리에 얼굴을 묻고는 입에 쳐 넣느라고 정신이 없다.
근데 몇 알 안 남았다.
난 손살같이 놈의 옆을 지나 그 깊숙한 곳에 놓여있던 사료 봉다리를 거의 나꿔 채다시피 하여 손에 입수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는 마지막 남은 팝콘 한 알을 입에 넣고 나를 쳐다볼 즈음엔 그 녀석의 면상에다 사료들 쏟아 부었다.
순간 퀭한 눈에 그의 이름에 어울리게 해피한 표정이 스치더니 이내 게걸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너무 많이 부어 주어서 일까 배터지도록 먹어도 남아서 뒹굴 거리는 사료를 뒤로하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는 휑하니 나가더니 햇볕이 잘 드는 거실창가에 배를 깔고 누웠다.
그리곤 늘어져서 코까지 골며 잠이 들었다.
순간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녀석이 자는 걸보고 있으려니 나도 하품이 나기 시작했다.
' 에라, 모르겠다. 어차피 사람들도 다 나갔고 좀 자고 일어나서 청소부터 시작해야지 '
그리곤 나도 아까 들쑤셔서 억지로 깬 잠을 마져 보충하기 위해 방으로 들어갔다.
' 흐악~ 지금 몇 시야? '
난 입가에 흐르는 침을 닦으며 일어나 앉았다.
이런 벌써 해가 지려는지 방안에 어둠이 들려하고 있다.
' 이를 어쩐다. 진짜 큰일이네... '
' 뭐부터 해야하나? 우선 청소부터? 아니야, 아니야 밥이 먼저지? 반찬은 뭘 하지? 청소부터? 아니야 밥부터? 그럼 반찬은?? 에라 모르겠다. 일단 밥부터 앉히고 청소하면서 반찬 생각하자. '
' 역시 난 합리적이야 '
다행이 밥솥이 압력밥솥이라 밥하는 건 문제가 없었다.
우리 집에서도 늘 애용했던 것이니까.
' 자 그럼 이제 슬슬 청소를 시작해 볼까? '
난 청소기를 들고 이층으로 올라갔다.
일단 먼지부터 털기 위해 거실 창문을 열었다.
호수로부터 일렁이던 눈부신 노을 빛이 바람을 타고 살랑거렸다.
' 정말 멋지다! '
이곳의 풍경은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곤 방부터 하나씩 청소하기로 했다.
우선 그의 방!
아까 잠깐 구경했던..
영원이라고 했던...
깔끔하게 잘 정리된 방이었다.
난 청소기를 돌리기 시작했다.
바닥청소를 하고 책상의 물건을 정리하고 침대 시트를 바로했다.
' 이만 하면 됐어. 그럼 다음 방으로. '
' 다음 방이면 그 놈이 버티고 있는 곳인데? '
깜박 잊고 있었는데 그놈이 보이지 않았다.
이 놈이 혹시 방안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덮치는 건 아닌가 싶어 불안한 마음으로 방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살짝 열고 안을 들여다보니 조용하다.
녀석이 숨어있을 만한 곳을 청소기로 쑤셔보았는데 별반 반응이 없다.
' 휴, 다행이다. '
난 편안하게 청소를 마칠 수 있었다.
그렇게 청소를 마치고 나오는 데
' 흐 악~ 이건 또 웬 놈이냐? '
옷을 홀딱 벗고는 거실 창 밖을 내다보며 유유히 젖은 머리를 털어 대고 있는 저 놈은...
' 강.. 강도인가 보다. '
순간 눈앞이 하얘지면서 전에 신문에서 읽었던 기사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 엽기강도... 빈집에 든 강도가 라면도 끓여먹고 샤워도 하고 갔다는?? '
' 대담한 놈인데! '
순간 더 바짝 긴장이 되고 온몸이 떨렸다.
선재 공격을 하기 위해 청소기의 버튼을 최고조로 올렸다.
순간 그가 고개를 돌린다.
순간 너무 당황한 나는 고개를 숙이면서 청소기로 방어자세를 취하며 소리쳤다.
" 도.. 돌아보지 말 구... 옷 입어... 너 가... 강도지. "
" 뭐야? "
그가 얘기한다.
고개를 드니 머리를 털던 수건으로 아랫도리에 둘렀다.
" 넌 뭐야? "
내가 반격했다.
" 야! 청소기 꺼. 시끄럽잖아. 잘 안 들려. "
난 일단 청소기를 껐다.
그가 날 가소롭다는 듯이 위 아래로 훑어보면서 다시 한마디한다.
" 넌 뭐냐? "
" 나, 난 이 집 가정부다. 너 넌 뭐냐? "
" 나? 난 강도다 왜. 어쩔래? "
난 그의 말에 청소기의 흡입력을 최대로 올리고 공격자세를 취했다.
" 야, 너 어디가 좀 모자라는 거 아니냐? 그걸로 강도를 잡을 수 있을 것 같냐? 시끄러워 꺼~ "
소리를 버럭 지르고는 신경질 적으로 청소기를 밀어낸다.
그러면서 고개를 잘레잘레 저으며 한마디 덧붙인다.
" 아휴, 어째 좀 근사한 여자는 없나? 맨 오는 게 노망난 노인네 아니면 저렇게 촌스럽고 모자라는 기집애냐?... "
" 야, 나 피곤해서 자야하니까 청소기 키지마. 시끄럽게 하면 죽을 줄 알아. "
그리곤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잠시동안 정말 그의 말대로 어벙벙하게 서있었다.
' 저 사람도 이 집사람인가? '
내가 누구!
궁금한 건 못 참는 스타일!
난 그의 방문을 노크했다.
기척이 없다.
꽤나 건방진 놈인 것 같다.
" 저기요"
난 더 세게 두드렸다.
그가 얼굴을 잔뜩 찌푸리면서 고개를 내민다.
" 너 내가 잠자는 데 시끄럽게 하면 죽는다고 했지"
" 저기 근데 궁금해서 그러는 데... 누구세요? 혹시 이 집사람이 신가요? 어제 인사할 때 못 봬서. "
" 야, 그럼 넌 내가 아직도 강도로 보이냐? ... 근데 너 지금 밥 태우냐? "
' 아뿔싸, 하 악~ 밥. '
" 쯧 쯧 쯧 "
완전 바보취급 하는 그를 뒤로하고 난 부리나케 뛰어내려왔다.
솥 단지의 추 소리는 천지에 요동하고 매캐한 냄새와 함께 뿌연 연기가 사방을 뒤덮었다.
낮은 포복으로 매운 포탄 연기 속을 뚫고 들어가는 군인처럼 가스렌지로 다가가 불을 껐다.
다행이다.
큰일 날 뻔했다.
일단 사방환기를 시켰다.
' 어쩐다. '
새엄마 오기 전에 일을 마치지 못했던 콩쥐의 심정이랄까?
그냥 주저앉아 있었다.
' 다 그 놈 때문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