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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논픽션)

책 읽어주... |2004.04.09 21:01
조회 219 |추천 0

1970년 11월 13일

그 날은 아침부터 옅은 잿빛 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었다. 

동대문 평화시장 일대에 감도는 긴장은 팽팽했다. 경비원들은 더 불어나있었고,

출동한 경찰대가 삼엄하게 경비를 펼치고 있었다.

 이윽고 오후 1시, 평화시장 인근 국민은행 앞에는 500여명의 노동자가 웅성거리고

있었다. 1시 40분경, 평화시장 건물 3층에 모여있던 몇몇이 미리 준비한 플래카드를

펼쳐들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플래카드에는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씌어있었다.

 미리 아래층에서 기다리고 있던 형사 두 사람이 플래카드를 빼앗기 위해 달려드는

바람에 실랑이가 벌어졌고, 노동자들이 들고 있던 플래카드가 금방 찢어지고 말았다.

 그로부터 10여 분 후, 담뱃가게 옆의 골목길에서 한 청년이 뛰쳐나왔다. 그의 몸에서는

벌건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불길은 순식간에 그의 전신을 불살랐다. 그는 불붙은 몸을

이끌고 사람들이 서성서리고 있는 거리를 달리기 시작했다. 그의 입에서는 고통에 찬

외침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근로기준법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그는 구호 몇 마디를 짐승처럼 외친 후 그자리에 쓰러졌다. 불길이 청년의 몸을 휩싸고

있는 가운데 그의 입에서는 고통에 찬 울부짖음이 새어 나왔다. 누군가 불타고 있는 그의

몸 위에 근로기준법 책을 던졌다. 그의 소원대로 근로기준법에 대한 화형식이 이루어진것이다.

 불길이 꺼진 뒤 그느 다시 한 번 벌떡 일어섰다. 참으로 참혹한 모습이었다. 온몸은 시커멓게

타 있었고, 살갗은 화상으로 터져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있는 힘을 다해 소리쳤다.

 "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그는 다시 바닥에 쓰러졌고, 곧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그 날 밤 10시, 그 청년은 운명했다.

그때 그의 나이 스물 둘이었다. 청년의 이름은 전태일, 직업은 평화시장 재단사였다.

 전태일의 어린 시절은 가난했다. 가정 형편 때문에 중학교에 입학하지도 못한 그는 당시

진학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운영하던 공민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힘에

부쳐 나중에는 학교를 그만두고, 식모살이를 하러 떠난 어머니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어린

여동생과 함께 무작정 서울로 향했다.

 전태일은 서울에서 신문을 팔면서 10원 짜리 수제비 한 그릇으로 하루를 버텼다.

하지만 여동생이 문제였다. 잠은 시장 바닥에 짚을 깔고 잘 수 있었지만, 계속 동생을 업고

다니며 신문을 팔 수는 없었다. 결국 그는 동생을 복지시설에 맡기고 떠돌이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열 여섯살에 정착한 곳이 평화시장이었다. 평화시장에는 각종 의류업체들이

밀집해 있었고, 여기서 일하고 있는 대부분의 종업원들은 어린 여공들이었다.

 여공들의 생활은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하루 14시간 노동에 일당은 하루 50원, 꼭 커피 한 잔

값이었다. 작업장은 기껏해야 여덟평 정도인데 그 안에는 재봉틀 열 대여섯 대와 서른 두명의

종업원이 일하고 있었다. 거기에다 천장까지의 높이는 1.5미터 밖에 되지 않아 14시간 동안

허리 한번 펼 수가 없었다.

 열 서너 살의 어린 여공들은 화장실 한 번 가지 못하고, 꽉 막힌 좁은 공간 속의 먼지와 함께

생활해야 했다. 더구나 당시는 수출을 독려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잠을 쫓는 약을 먹고

며칠씩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이런 환경 속에서 살아가면서 전태일은 점차 비인갅거인 노동 조건에 분노하게 된다.

그는 늘 일기를 쓰면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열악한 조건을 개선시키기 위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는 근로기준법이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고,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는 자각에 이르게 되었다. 마침내 그는 뜻을 같이하는 친구들과 모임을 만들고, 각급

관청을 찾아다니며 근로기준법 준수를 촉구했다. 심지어 대통령에게까지 편지를 썼다.

 그러나 그것은 쇠귀에 경 읽기 였다. 아무도 그들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은 없었다.

근로기준법은 아무 소용도 없었다. 정부조차도 이 법을 지키기 않는 업주들을 비호하고,

오히려 노동자들을 불순세력으로 간주했던 것이다. 시위를 해도 돌아도는 것은 가혹한

탄압뿐이었다.

 마침내 그는 죽음을 결심하기에 이른다. 분신을 앞두고 그는 비장한 글을 남겼다.

 

 

 친구여, 나를 아는 모든 나여, 나를 모르는 모든 나여!

 

 부탁이 있네.

 

 나를,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영원히 잊지 말아주게.

 

 그대들 소중한 추억의 서재에 간직하여 주게.....

 

 잠시 다니러 간다네. 잠시 쉬러 간다네......

 

 내 생애에 다 못 굴린 덩이를, 목적지까지 굴리려 하네.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또 다시 추방당한다 하더라도,

 

 굴리는 데, 굴리는 데 도울 수만 있다면,

 

 이룰수만 있다면......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 >     에서 발취

 

30년 전, 전태일은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지난 300년 동안 이 땅에서 인간을

위해 싸워왔던 어느 누구의 죽음보다 위대했다. 그는 인간에 대한 사랑이 어떤 것인지

우리에게 몸으로 보여주고 떠난 것이다.

 부드러운 것만이 사랑은 아니다. 때로 사랑은 격렬하고, 몸부림치는 고통 속에서 피어난다.

그는 이땅의 노동자들을 사랑했다. 그 노동자들은 바로 우리의 누이였고, 동생이였으며,

그리고 나 자신이었다.

 사랑은 강하다. 그리하여 그것은 역사까지 바꾸어놓을 수 있다.

 

          오늘날 모든 정치인들이 국민들이 사랑하는 것처럼 이야기 한다.

          그러나 그들이 진정 국민을 사랑하는것 같지는 않다.

          그들의 사랑은 자신을 위한 자아일 뿐이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

 

                       조금만 참고 견디어라.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나약한 나를 바치마.......

 

                        내 마음의 결단을 내린 이 날,

 

                        무고한 생명체들이 시들고 있는 이 때에

 

                        한 방울의 이슬이 되기 위하여 발버둥치오니,

 

                        하느님,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 전태일, 1970년 8월 9일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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