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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친구와 부자친구..

채희 |2004.04.13 10:36
조회 1,440 |추천 0

제      목 [퍼옴]착하고 성실하게 살면 언젠가는 부자가 될 수 있다??
등  록 자 리스크관리팀/김용희/사원 등  록  일 2004-04-09 17:51
내      용 퍼온 글인데, 역시 부자가 되려면 돈의 흐름을 읽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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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 가난한 친구와 부자친구

 

내 ‘가난한 친구’는 60년대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서울의 3층 양옥집에 살 정도로 괜찮은 집안에서 태어나 대학을 졸업했다. 나와 같은 동네에서 살았고 대학교는 달랐지만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전교 수석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대학에서도 내내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우등생이었다.

 

내 ‘가난한 친구’는 직장생활 20여년에 올해 49세가 되도록 단 한 달도 회사를 쉬어 본적이 없는 성실한 샐러리맨이다. 대기업 간부로서 부하 직원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있으며 미술과 예능을 전공하는 딸 둘을 위해 휴일에도 투 잡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착실한 가장이다. 그는 주위 친구들의 불행을 자기 일처럼 여기며 한번도 도로를 불법 횡단한 일이 없을 정도로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모범 시민이다. 심지어 길가에 꽁초 한번 버린 적이 없고 교통위반은 상상조차 힘들 정도다. 그는 우리주변에 흔히 보는 교활하고 뻔뻔하며 약삭빠른 친구들과 정 반대되는 정의로운 인물이다. 그는 우리가 당연히 갖춰야 할 미덕으로 배웠던 선비정신도 겸비한 인물이다. 그러나 완벽을 추구하고 옳고 그름을 분명히 하는 성격 탓에 때로 융통성이 전혀 없는 꽉 막힌 인물로 비춰지기도 한다.

 

내 ‘가난한 친구’에게는 재산 운도 따르지 않았다. 평생을 착하고 성실하게 살았지만 그 흔한 부동산 투기 바람도 매번 그를 비켜갔다. 주택청약부금에도 가입하고 나름대로 열심히 뛰었지만 한번도 제대로 된 투기차익을 올린 적이 없다. 오히려 80년대 말의 주식시장 호황기에 뛰어 들었다가 손해를 보기도 했고 99년 벤처 붐에 막차를 탔다가 속을 끓이기도 했다. 어느날 나와 함께 한 자리에서 그는 내게 딸 둘의 교육이 끝나면 연립주택 30평이 호사라며 파주의 시골동네에 원룸을 얻어 살 계획을 갖고 있다고 속내를 펼쳐 보이기도 했다.

 

서로가 가여워서 산다는 쉰줄에 합류할 날이 멀지않은 내 ‘가난한 친구’에게 남은 수단은 별로 없어 보인다. 엄청나게 오른 부동산 시장에서 이제 그에게 과거 방식의 기회는 다시 오지않을 것이고 새로운 시장에 걸 맞는 투기밑천도 없어 부동산으로 한몫 잡기는 어려울 것이다. 좋게 말해서 그가 아무리 성실하게 살아도 평범한 수준을 벗어나기는 매우 힘들 것이다.

얼마 전 국민연금관리공단은 보통사람의 노후생활자금으로 '최소 2억6천만원이 필요'하고 월 여윳돈 규모가 200만원 수준이 되려면 7억1049만원이 소요된다고 발표했다. 착하고 성실한 내 ‘가난한 친구’는 노후 대비와 삶의 질을 따지는 가족들 앞에 너무나 무기력하고 경제적인 미래는 어둡다 못해 캄캄할 정도다.

 

반면에 내 ‘부자친구’는 적수공권으로 출발했지만 수백억대의 재산가로서 지금도 땅 짚고 헤엄치는 현금 장사를 하며 여행과 골프로 인생을 즐기며 산다.

 

그는 대구에서 내 ‘가난한 친구’와 똑 같은 해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의 K대 축산과를 나와 여느 사람처럼 중견기업에서 10년 동안 직장생활을 했다. 그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열심히 모은 돈으로 이미 80년대에 재개발 아파트 2채를 사서 최초의 종자 돈을 마련했을 정도로 재테크에 탁월한 재능을 지녔다. 재개발 아파트 2채를 판 돈으로 90년 초 화랑을 시작한 그가 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이인성 전시회를 열고부터 였다. 작품 하나 없이 발품을 팔아가며 각고의 노력 끝에 국내 최초로 성사시킨 이인성 전시회를 계기로 알게 된 상류층 구매 인사들이 그에게는 미래고객으로서 큰 밑천이 되어주었다. 시기도 좋았다. 날로 장사가 번창하면서 대량의 미술품을 구입하는 호텔이나 기관에 납품도 하고 홈쇼핑에 출연해 판화 등의 미술품을 팔아 엄청난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 ‘부자친구’가 부자의 반열에 오르고 큰돈을 벌게 된 첫번째 기회는 우연히 관심을 갖게 된 베트남 미술품에서 찾아왔다.

 

그는 평소 우리나라 부자들이 외국으로 흘러나간 예술 작품들을 사오는 것을 보고 언젠가는 베트남 사람들도 자국 미술품을 수집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90년대 초반 10년 후를 내다보고 여전히 저평가된 베트남 최고 수준의 화가 작품들을 많이 사들였는데 예상보다도 빨리 베트남의 미술품 가격이 뛰는 바람에 엄청나게 많은 돈을 벌어 들였다.

IMF 때에는 고가의 예술품들을 헐값에 사들이기도 하고 예술품을 담보로 잡고 돈을 빌려 주면서 큰돈을 벌었다. 지금도 국내최대의 예술품 경매회사인 서울옥션이 예술품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고 있지만 IMF 당시에는 경기가 워낙 나빠 채무자들이 담보로 잡은 예술품들을 못 찾아가는 바람에 더 큰돈을 버는 것도 다반사였다. 미술품시장도 불황에 빠진 99년에는 벤처기업 열풍이 불었고 그는 여기서도 조기 편승해 더욱 큰돈을 벌었다.

 

인생에서 가장 재미나는 일이 돈 버는 일이라는 내 ‘부자친구’는 성공을 향한 경쟁에서 중도포기를 결코 용납하지 않을 정도로 매우 집요한 인물이다. 돈을 버는 일이라면 먹이를 쫓는 맹수처럼 포기하는 법이 없다. 손해를 피하는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이익을 얻는 일에 체면을 구기는 것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사람을 사귀어도 조금이라도 해가 될 사람은 가차없이 자르며 돈 되는 사람만을 사귄다. 지혜로운 사람들과 사귀는 일을 매우 가치 있게 여기며 돈이 되는 아이디어를 갖고있는 사람을 높이 평가한다. 또 그런 사람들을 친구로 가까이 둔다.

 

내 ‘부자친구’는 “돈은 자기 그릇만큼 담기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자신은 언제나 4가지의 포트폴리오로 돈을 버는 시스템을 유지한다고 한다. 첫째는 현금, 둘째는 부동산, 셋째는 좋은 미술품, 넷째는 벤처기업 투자다. 상장 주식투자는 수명을 단축하는 일이라며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아파트 투자도 컬렉션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하는 그는 부동산 투자에도 탁월한 안목을 지녔다. 그를 따라 부동산에 투자하면 결코 실패가 없다. 내 집사람이 IMF직후 그를 따라 파주의 통일동산 땅에 투자하여 수십 억대의 투자수익을 거둔 것도 알고 보면 순전히 그 친구의 덕분이다. 내 자신은 중도에 팔아 벤처기업에 투자했다가 원금도 전부 날려버렸지만 타워펠리스 101평형과 59평형을 구입했던 것도 그 친구 때문이었다. 지금도 보유하고 있었더라면 차익만 족히 30억원 이상은 벌었으리라.

 

내 부자친구는 지금도 재테크에 유익한 세미나라면 주제를 가리지 않고 빠짐없이 참석한다.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서 그가 참석한 세미나 숫자는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그는 5년 전 내가 개최한 제33회 정보브로커 세미나에 참석한 수강생이었다. 세미나가 끝난 후 투자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었고 동갑의 우리는 서로의 공통점을 발견한 후 곧 의기투합하게 되었다. 거기서 만나 우리는 친구가 되었고 벌써 5년이 흘렀다.

 

부자들은 ‘푸념을 늘어놓기 일쑤인 가난한 친구와 있을 때보다 부자친구와 함께 있을 때 더 행복하고 편안함을 느낀다’고 한다. 그것이 아마 대다수 부자들의 공통된 심정일 것이다.

 

융통성

 

현대 지식사회에서는 기이하게도 거의 모든 사람이 '성공’할 수 있다고 기대한다. 그래서 당신도 막연한 기대 속에 살고 있다면, 하루 빨리 꿈에서 깨는 것이 좋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족쇄에서 벗어나 융통성을 발휘하고 때로 착하지 않게 살 필요가 있다

 

우리는 학교에서 레오나르드 다빈치는 화가/건축가/공학자/자연탐구자/미래연구자로서 빛나는 업적을 쌓았다는 것을 배웠다. 그러나 학교는 우리에게 그의 창작 동기가 사악한 이기심이었다는 것은 가르쳐 주지 않았다. 기실 다빈치는 대단히 이기적인 인물로서 뱀처럼 의심이 많았고 남과 나눈다는 생각을 거의 하지 않았다. 언제나 그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훔쳐갈까봐 두려워했다. 그는 거울에 비추어 보아야 제대로 읽을 수 있는 왼손 글씨를 사용했으며 약자와 단어 붙여쓰기 등으로 다른 사람들이 해독하기 힘든 노트를 만들어 사용했으며 그 일부는 오늘날까지도 완전히 해독되지 않고 있다. 하여튼 우리는 ‘레오나르드 다빈치’가 모나리자를 그린 것도 독재자를 위해 잔인한 무기를 고안한 것도 개인의 철저한 이익추구 때문이었다는 사실은 배우지 않았다.

 

학교는 우리에게 대문호 괴테, 셰익스피어와 계몽사상가 볼테르를 정의의 사도인양 그렇게도 열렬히 가르쳤다.

 

1827년에 ‘괴테’는 60권짜리 ‘최종판권’을 발행하는 대가로 오늘날 200만 마르크에 해당하는 엄청난 액수를 챙겼다. 이렇게 늘 선인세로 출판업자들에게 엄청난 보수를 챙기곤 했던 ‘괴테’가 1829년에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을 보면 그가 어떤 인물인지를 알 수 있지 않을까?

“출판 업자들은 모두 악마편이다. 분명 그들을 위한 지옥이 따로 있다.”

 

계몽사상가 ‘볼테르’가 이룩한 재산의 기반은 복권으로 마련되었다. 그것은 우연이 아니고 복권업자의 계산 착오를 이용한 결과 가능한 일이었다. 볼테르는 복권업자의 복권을 몽땅 사들일 경우 확실하게 100만 루블의 이익을 낼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돈을 빌리고 복권을 사재기할 사람들을 동원해 복권을 사들였다. 그는 이렇게 딴 돈을 해운업과 주식에 투자했다….

 

‘셰익스피어’는 작품을 팔아 벌어들인 돈으로 엄청난 액수를 부동산에 투자 했으며, 그것들을 농민들에게 임대한 임대료로 오늘날 디즈니랜드 수준의 훌륭한 집들을 집요하게 소망했다.

 

우리들 대부분은 선행이 보상을 받고 정의가 악을 이기며 선하고 정의로운 사람이 결국은 승리할 것이라고 믿고 싶어한다. 그러나 이는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다. 그런 논리는 어릴 때 읽은 안데르센 동화나 디즈니 만화영화에서나 통할 뿐이다. 현실, 특히 비즈니스 분야에서 착하게 살아야 성공한다는 논리를 폈다간 비웃음을 사기 십상이다.

 

비즈니스에서 살아 남으려면 더러운 짓을 해야 할 때가 더 많다. 정정당당함이나 페어 플레이 정신은 이 바닥에서 통용되지 않는다. 경쟁자가 넘어졌을 때는 일으켜 주지 말고 넘어져 있는 동안 짓밟아야 한다.

이는 헨리 포드, 빌 게이츠와 같이 성공한 기업가들은 물론 삼성이 컴퓨터분야에서 다음이 인터넷 포탈분야에서 충실히 이행해 온 '비지니스 생리'다.

 

'못된 짓을 할 줄 알아야 살아 남는다'는 논리는 다른 분야에서도 통한다. 정정당당함을 최우선으로 삼는 스포츠 분야에서도 못된 짓이 되려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수가 있다.

농구 천재 허재와 세계적인 농구스타 마이클 조단 역시 마냥 착하고 선량하게 선수 생활을 해온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모두가 주지하는 바다.

 

착하고 성실하게 살면 언젠가는 ‘선한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면 하루 빨리 꿈에서 깨는 것이 좋다. 부자가 되고 나서 선하게 살 수는 있어도 선하게 살면서 부자가 되기는 매우 어렵다.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자수성가 형 부자들은 범법과 합법의 경계를 넘나들며 투기를 성실하게 수행하며 열심히 산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부자가 된 것이다.

명심하라. 부자들 중에서 성경 속의 착하고 선한 사람들을 찾기가 어려운 것은 이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매한가지다.

 

좋은 학교도 나오지 못하고 지켜야 할 조상의 명예와 기득권도 없는 부자도 아닌 사람들이 A당 지지에 열을 올리는 것은 ‘나는 바보요.’하는 것과 같다. 부자가 되기를 원하면서 가난뱅이의 길을 걷는 사람은 완전히 바보다.

 

우리 주변에는 바보들이 의외로 많다. 바보들이 범하는 가장 대표적인 불행한 삶에 대한 이해의 오류는 시간이 지나면 막연히 잘 될 것이라는 착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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