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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20후반에 백숩니다.

BeRidiculeD |2009.03.27 15:45
조회 60,507 |추천 9

 

저도 처음부터 백수였던 건 아니었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해서 회사도 다녔었죠.

 

누구나 그렇듯이 처음부터 일을 잘하는 사람은 없잖습니까?

 

그러다 보니 하는 일은 주로 잡무였고, 선임들 뒤치다꺼리나 했었죠.

 

별 볼일 없는 일을 하다 보니 일을 하면서도 머릿속엔 잡생각만 가득했었습니다.

 


난 나름대로 일을 하긴 하는데, 뭘 하는 건가?

 

과연 이런 거나 해서 내 자신에게 발전이 있을까?


 

월급날에 월급을 받고 나선,

 

내가 뭘 했기에 이 돈을 받는 걸까?

 

과연 내가 이 돈을 받을 자격이 있는 걸까?


 

깜깜해서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불확신 때문에 직장생활 내내 찝찝했습니다.

 

그러다 회사가 어려워지자 뚜렷한 기술도 없고 만만한 저더러 나가라고 하더군요.

 

회사에서 나가란 말에 기분이 씁쓸하고도 착잡했지만,

 

그래도 이런 상황이 언젠간 올 거란 걸 예상 못했던 건 아니기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죠.

 

저 같아도 저처럼 별 필요 없는 사원은 월급만 축내는 식충이로 밖에 안 보이니깐요.

 

 

회사를 나가고서도 가끔씩 회사동료들과 만나 술자리를 가졌습니다.

 

허나, 그것도 그리 오래가진 않더군요.

 

사실, 그 사람들을 만나면서 불편했습니다.

 

물론, 제가 불편한 만큼 그들도 불편함을 느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근데, 생각해보면 회사에서 나오면서 잃기만 한 건 아닙니다.

 

너무나도 중요한 사실을 하나 깨달았기 때문이죠.

 

제 자신이 변하지 않으면, 다른 곳에 가서도 이런 일이 재차 반복 될 거란 사실을 말입니다.

 

그리고선 제 자신을 변화시켜 유능한 사람이 되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필요 없는 인간이라 회사에서 퇴출 되는 일이 두 번 다신 없도록 말입니다.

 

그래서 일단 남들 보다 내가 뒤쳐지는 것들을 보충하기로 했습니다.

 

그간 제가 살아 온 과거를 돌이켜 보았습니다.

 

남들 공부하느라 밤샐 때, 여자랑 히히닥 거리며 밤을 샜었으며.

 

남들 공부를 과하게 해서 지쳤을 때, 술을 너무 과하게 마셔서 지쳐있었고,

 

남들 교재비, 수강료에 대해 고민할 때,

 

옷 사느라 술 마시느라 긁었던 카드 값 고민 했었죠.

 

과거를 돌이켜 보니 저지른 잘못이 너무나도 많더군요.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요령 안 피우고 순서대로 고쳐나가는 게 가장 빠른 길이라 생각하고 하나하나 고쳐나가야죠.

 

그렇게 죽었다 생각하고 집에만 쳐 박히기로 하고 영어 교재부터 샀습니다.

 

그리곤 그대로 집에 틀어 박혀 버렸습니다.

 

 

 

그렇게 2년이 흘렀습니다.

 

어둡고 좁은 제 방에서 미친 사람처럼 혼자서 영어로 중얼거렸습니다.

 

오로지 책과 씨름을 하며 공부만 한다고 사람구경도 제대로 못했습니다..

 

그래서? 2년 동안 노력한 그 결과는? 제가 어떻게 됐을 거 같나요?

 

불행하게도 전, 여전히 예전과 같습니다.

 

이건 현실이지 영화가 아니니깐요.

 

2년이란 세월 동안 공부를 해서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승승장구를 하는 건

 

영화에서나 가능한 것이지 현실에선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죠.

 

2년 노력해서 남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면,

 

10년간 열심히 노력해온 남들은 바보게요?

 

그래도 뭐, 모든 건 제가 자초한 결과기 때문에 크게 불만은 없습니다.

 


어릴 적 어머니께서 하셨던 말씀이 떠오르네요.

 

부시시한 머리로 다니던 백수 아저씨를 신기한 눈으로 보고 있던 제게 어머니는 말씀하셨죠.

 

" 너도 공부 안 하면 나중에 커서 저렇게 된다." 고 말이죠.

 

그땐, 설마 했는데, 그 설마가 진짜가 됐네요.

 

그나저나 좀 있으면 떡볶이 집 문 여는 시간이니 슬슬 목욕이나 해야겠습니다.

 

제가 한 달에 한 두 번 바람도 쐴 겸 쓰레빠 질질 끌고 떡볶이 집에 가거든요.

 

거기 아주머니가 참으로 고우신데 제가 요즘 그 아주머니 보는 재미로 삽니다.

 

총각 왔다고 쑥스러워 하시는 아주머니의 표정과 서비스로 양도 푸짐하게 주시는 그 후덕한 인심에 뿅 가버렸습니다.

 

그럼 저 이만 가보겠습니다. 여러분들, 안녕히 계십시오.

 

 

 

 

 

추천수9
반대수0
베플허얼퀴퀴헐퀴|2009.03.27 17:15
"그렇게 2년이 흘렀습니다. 어둡고 좁은 제 방에서 미친 사람처럼 혼자서 영어로 중얼거렸습니다. 오로지 책과 씨름을 하며 공부만 한다고 사람구경도 제대로 못했습니다.. 그래서? 2년 동안 노력한 그 결과는? 제가 어떻게 됐을 거 같나요? 불행하게도 전, 여전히 예전과 같습니다. 이건 현실이지 영화가 아니니깐요."<-------여기가 포인트이네요..
베플자네|2009.03.27 18:56
글좀 쓰는데.. 그러지 말고 작가해볼생각은 없나?
베플갱이|2009.03.27 15:49
20대 중반 나에게도 오는 저 고민들 글쓴이에 모습이 내 20대후반 모습이 될까봐 눈앞이 깜깜하고 아찔하다 잘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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